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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하나님과 사랑
비공개 조회수 397 작성일2009.07.10

최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알아가고

더 알고싶어 지면서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저는 거의 매일 나의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을 닮게 해달라고 기도 합니다

사랑이라는 것 자체가 원래 그 분으로 부터 온 것이고,

사랑이 큰 은혜가 될 수 있는 동시에

우리가 자칫 일시적인 감정이나 다른 것을 사랑으로 오인해서

큰 죄를 범할 수 있고 좋지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언급된 사랑은 네가지로 알고 있습니다

에로스와 필리아 스톨게 그리고 아가페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를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은 무조건적인 아가페사랑

 

이 사랑은 대개 가족 안에서 보여지지 않나 생각됩니다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고 부모가 자식을 또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것은 관계 이외의 조건은 드무니까요

이는 또 사회적으로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 범주가 혈연에 의한 가족에서 벗어난다면요..

예를들어 어떤이가 서로 다른 이성에게 아가페적 사랑을 베푼다면

이는 일반적인 시선으로 결코 곱게 보여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여기서 사랑이란 단어를 단순히 (아가페를 섞어서요) 무조건 적으로 누군가를 돕고 잘해준다라고

해석한다면 문제가 없겠지만(오히려 선량한 사람으로서 좋은 평가를 받겠네요) 그게 아닌 걸 누구나가 알잖아요

돕고 잘해준다는 것은 사랑에서 비롯된 몇가지의 결과일 뿐이지,

상대가 기쁘면 기쁘고, 또 슬플 때 같이 슬프고, 행복하게 해주고 싶고, 항상 함께하고 싶고 등등의 특별한 감정과

특별한 것들을 동반하잖아요 물론 하나님께서 우릴 사랑하심도 그러하심을 믿구요

 

만약 어떤이가 아가페적인 사랑을 하나님으로부터 배우고 그 길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가정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예수님이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모든 인류에게 그 사랑을 배풀 순 없을 거예요

그럼 특정의 몇몇 사람에게 그 사랑을 전하게 될텐데, 신앙이 없는 분들의 눈으로 또 몇몇의 신앙이 있는 분들의

시선으로 이는 그저 '바람둥이'로 비춰질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되네요

(사회의 시선이 그렇게 중한 것은 아니지만..)

그리고 그 어떤이도 마음 속에 큰 가치 혼란을 겪게 될 것이구요 그 사랑을 받는 사람들도 그렇겠죠

그사람이 이성이라면 그 어떤이의 행동에 혼란스럽고 질투하고-_-;;

 

이렇게 생각하면 사도바울이 독신으로 사는 것을 추천하는 것도 이해가 가고

사실 그만큼 좋은 방법이 또 없지 않나 생각됩니다

 

물론 하나님이 역사하셨다면 어떠한 것도 문제 되지 않을 것인 걸 잘 압니다

단지 궁금한 것 뿐이에요^^;

단순히 가정만 한 것 아니고, "조금은" 다른 사람의 또 저의 경험에서 비롯된 생각이고 일이기 때문에

"무조건 불가능 하다" 라는 답변 하시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어떻게 그 분의 사랑을 닮아야 옳게 닮는 걸까요?

또 이성과의 관계에서는요 그 사랑을 다르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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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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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
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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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것과

아는 것(지식,과학...)에

하나가 될때

성숙한 예수님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엡 4:13)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합니다(골 3:14)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으며,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요1서 4:18)

 

무엇보다 서로 진정으로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주기 때문입니다(벧전 4:8)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고전 13:7)

 

내 계명들을 받아들여 그것들을 지키는 사람은 나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게 될 것이고 나도 그를 사랑할 것이며 우리는 그에게로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고,

내 자신을 그에게 드러내리라.(요 14:21)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룹니다(롬 8:28)

 

당신의 말씀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만사가 순조롭고 무엇 하나 거칠 것이 없습니다(시 119:165)

200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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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win
바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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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고상하게 여기고 그 사랑을 추구하려는 열정을 가진 분의 글을 보게 되어 기쁩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구분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입니다(요1 4:16)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라고 널리 알려져있지만 아가페의 사전적인 의미나 신적인 사랑의 정신을 가지고 헌신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 심지어 4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모두 표현할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한하신 분이시기때문에 그 사랑또한 하나님과 함께 무한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하늘의 별이 몇개인지도 모르는 작은 머리를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재단한다는건 자기주제를 모른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향한 당신의 사랑을 나타내시고 알려주시려 했습니다. 가장 가깝게는 부모를 통해 자식에게 배우게 하셨고 근본적으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알려주신 유일한 목적은 인간이 하나님께 특별한 존재인것을 인정해주시기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님이 글 서두에서 지적한것처럼 지금 교회안에는 세상으로부터 흘러들어온 인본주의로 인해 거짓된 사랑의 교리가 활개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때문에 지옥에 빠진 사람들도 사랑하시고 영원히 버려두진 않을거라는 비성경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을뿐아니라 죄를 짓고 나서 그 죄를 버리지 않고도 하나님께 죄송스런 마음만 가지고 살아가면 하나님은 자기의 연약함을 아시기때문에 봐주실것이라는 착각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곤 죄에서 떠나지 않고 엔조이하면서 사는것이죠. 가끔 갈등하면서. 이 모든 배후에는 인간이 최고라고하는 인본주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하는건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또한 공의이십니다. 참된 사랑이 있기에 악인이 돌이키기를 원하시지만 참고 기다려도 돌이키지 않으면 공의를 따라 심판하시는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못한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이성과 인생의 체험, 그리고 시대의 정신만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재단하기 때문에 그분의 공의를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에만 편중된 분이 아니라 사랑과 공의를 가지신 조화로운 분입니다.

 

 님이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신 무조건적인 아가페적사랑이란 뜻은 사람이 무슨죄를 짓든 다 용서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람은 하나님앞에 죄인으로 태어나서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수 없는 절망적인 존재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기위해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어주셨다는 뜻입니다. 이걸 가리켜 예수님의 의 혹은 예수님의 공로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는 사람은 스스로 해결할수 없는 죄가운데서 구원을 받을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어떤 조건을 구하신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수 있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말할수 있는것입니다. 이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반드시 마음에 감격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구원이 필요한걸 알았지만 스스로의 노력으로 죄를 해결하지 못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죄에서 구원받은걸 알기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 마음에 감격이있고 그분의 사랑을 알게되며 또한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하는 목적이 생깁니다. 내면의 변화가 생기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변화를 주도하시는분은 성령님이십니다. 님은 지금 제가 거듭남에 대해 말씀드리고 있다는것을 아셨으면합니다.

 

 님이 위에서 언급한 가족이야기나 님이 정한 가정은 사실이 아닙니다.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기때문에 예수님처럼 완전하지 않더라도 그 예수님의 사랑이 마음에 존재하고 또한 그 사랑을 따라 살고자하는 추구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을 베푸신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그분을 닮아 살도록 안에서 충동하는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를 믿기전에는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근심을 끼쳤던 사람이 그들앞에 용서를 구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으로 바뀝니다. 가족들이 불신자라면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어떻게든 복음을 듣게 하려고 애를씁니다. 하지만 진정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거듭난 사람은 가족들에게만 이 사랑을 전하는것으로 만족할수 없습니다. 생각해보십시요. 거리거리마다 만나는 낯선사람과 교회다니지 않는 친구들의 영혼이 죽어있고 내버려두면 지옥에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때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을 대할수있을까요. 사람은 그렇다치고 그 사람안에 계시는 성령께서는 가만히 계실수 있겠습니까. 물론 예수님처럼 다수의 사람들에게 말씀의 권세와 성령의 능력으로 나타나는 기적의 체험을 통해 다수의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할수는 없지만 거듭난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계십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고 예수께서 말씀하신것은 성령을 통해 함께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다시말하면 예수님께서 하신 놀라운 용서와 사랑, 베푸신 일들을 성령을 통해 지금 우리도 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가족만을 아가페적으로 사랑하고 몇번의 실패한 경험때문에 다른사람 특히 우리를 미워하거나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제한해서 이해하거나 거듭나지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무한하신것처럼 그분의 사랑또한 무한합니다. 그 사랑이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건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모든인류에게 사랑을 보여줄수는 없지만 예수믿는 한사람한사람이 가족과 친구와 이웃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줄수 있습니다. 한사람이 예수님의 사랑을 참으로 가지고 그것을 보여준다면 적은 누룩이 번짐과 같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될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오염되고 타락한 세상을 정화하시고 곳곳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된 사람들과 교제하시면서 인간을 만드시고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200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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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2****
지존
개신교, 종교, 가톨릭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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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이라?...

님이 뭔가 잘못 알고 있으신건 아닌지요?

제가 읽어본 기독경은 그렇지 못하던데요~

 

성경을 잠시 살펴 봅시다.

[여호수아]

6장

여리고성 침략(사실 역사적으로는 그당시 여리고성이 무너지고 없던 상황이라고 고고학자들은 이야기함)

성중에 있는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

8장

아이성 침략

(아이백성)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하여 진멸하기를 마치고....

칼날로 죽이매 전부가 죽었으니 남녀가 일만 이천이라

그 성읍의 가축과 노략한 것은.....

 

[사사기14장]

삼손-여호아신이 삼손에게 크게 임하시매......삼손 사람 30명 쳐죽이고 노략하여...

 

[사무엘하12장]

다윗과 밧세바 사이의 신생아 여호아신이 죽임(다윗의 잘못으로)

(신명기24장16절)아비의 잘못으로 그 아들은 죽임을 당하지 않을것이다........

 

[호세아13장]

하나님을 배반하였으므로 형벌을 당하여 칼에 엎드러질 것이요

그 어린 아이는 부숴뜨리우며 그 아이 밴 여인은 배가 갈리우리라

 

등등.....

 

200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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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597****
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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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가 성경책을 통독 해 보노라면 정말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사랑하는 구나 하고 실감이 납니다.

그럴 땐 절로 내 마음이 뜨거워 옴을 느끼며 이상한 북받친 감정이 나를 희열케 하는 것을 느끼기도 해요.

 

하나님의 사랑은 그 십계명에 잘 나타나 있다기에 열심히 읽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공부를 해보니

첫째 계명부터 넷째 계명까지는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의 사랑이고,

그 다음 열째 계명 까지는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의 사랑으로 결론 지어져 있다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되더군요.

 

성경 고린도전서13장은 사랑의로 꽉차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에요.

예수님은 온 인류를 사랑하셔서 자신의 하나뿐인 생명까지 기꺼이 바쳐셨잖아요?

그것이 사랑이라면 우리 모두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하여 목숨을 내 놓으라는 것인데....

 

아무튼 나도 여러분도 그러한 사랑을 할 수 있기를 갈망하며

우리 모두 힘차게 사랑하며 감사하게 삽시다. 

200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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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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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신실하고 정직한 목사님한테 바르게 배워서

 바르게 믿어야만 마음에 평화가 생긴답니다.

장사꾼 목사들한테 배운 잘못된 믿음은

 믿음이 깊어질수록 오히려 더 불안하고 괴로운 믿음이되지요

 

 

공평하신 하나님


공평하신 하나님 - 정용섭목사

 

http://blog.naver.com/taekhan2/120017745949


직접적으로 이렇게 질문하자.

하나님은 예수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을 구별하실까?

우리의 신앙 유무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할까?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통해서 성공적인 삶이 보장될 것처럼 생각하지만

이것처럼 큰 착각도 없다.

 

만약 신앙이 일상에서 만나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으로 전락한다는 건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왜 기독교는 일반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문제해결에

그 토대를 두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오늘 이야기 하지 않겠다.

우리의 주제는 과연 그런 믿음으로 우리의 삶이 실제로 달라지는가에 대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도움으로 우리의 문제들이 해결되는가이다.

어떤 관점이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대답이 나오겠지만

일단 근본적으로만 본다면 우리가 예수 믿는 것과 우리의 삶의 형편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

그러니까 기독교 신자들의 삶이나 불교 신자들의 삶이나

혹은 아무런 종교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의 삶이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지금껏 혼신을 기울여 신앙생활을 한 사람에게는 이해가 안될지 모르지만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좀더 깨어있는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미 예수님이 명백하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악인이나 선인이나 가리지 않고 햇볕을 주시고 비를 주신다고 말이다.

예수 믿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는 사람이나 불문하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대하신다.

이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삶에 실증으로 나타난다.

대홍수는 인도네시아나 미국을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예수 잘 믿는 사람도 사업에 실패하고,

믿지 않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

사실 신앙적으로 살지 않아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꼭 그런 건 아니지만, 실제로는 그럴 때가 많다.

이 말은 곧 이 세상살이는 그 어떤 하나의 잣대로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복합적인 요소가 개입한다는 뜻이다.

만약 예수 잘 믿고, 교회생활 열심히 하면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복받고,

소위 삼박자 축복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면

그는 사이비에 가깝다.

돌팔이 약장사가 자기의 약을 특효라거나 만병통치로 선전하는 것과 같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의 종교와 아무런 상관없이 똑같이 행하신다.

그게 곧 하나님의 공평하심이다.

그러나 오해하지는 마시라.

하나님이 단지 기계적으로 작용하는 자연원리 쯤 된다는 말이 아니다.

그분은 자기의 인격으로만 움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의 행동을 전혀 파악할 수 없다.

그게 곧 그의 공평이다.

우리의 공평이 아니라 그의 공평이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을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 하고 말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만약 위에서 내가 말한 내용을 읽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그는 기독교 신앙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내가 왜 이 사이트에 글을 올리면서

툭하면 '기독교를 모르기 때문이다.'라거나

'그것 복음이 아니다.'라고 말할까.

내가 모든 진리를 이미 충분할 정도로 확보했기 때문에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려는 것은 그것과 정 반대이다.

신앙을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에 대한 위험성을 지적하는 것 뿐이다.

그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지난 2천년 역사가 말해온 것의 기초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지적일 뿐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이유는 하나님에게서 특별대우를 받으려는 게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새벽기도회를 드리고 말씀을 매일 읽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특별하게 대우하지도 않는다.

만약 하나님이 그런 것으로 마음이 움직이신다면 세계 창조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예수를 믿는가?

예수의 가르침, 그의 운명, 그의 사건에서 하나님이 온전하게 계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를 믿는다.

그게 그거 아닌가 하고 말할지 모르지만, 이건 전혀 다른 사태이다.

하나님의 계시라는 건 우리가 종교적인 노력을 통해서 하나님에게 특별대우를 받겠다는

그 생각 자체를 허무는 사건으로 우리에게 임하게 된다.

우리가 보기 싫다고 생각하는 열등생, 꼴찌, 죄인, 세리 같은 사람들의 삶에도

우리가 선망하는 우등생, 일등, 의인 못지 않은,

아니 그들보다 훨씬 큰 하나님의 은총이 임한다는 게 예수 사건의 핵심이다.

 

그것은 곧 몰트만 같은 사람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님 스스로 십자가에 달린 그 사건이다.

그런데 오늘 왜 기독교는 복받는다는 말을 거리낌 없인 선포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만약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믿는다면

예수 믿고 인생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설교를 해야한다.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 미혼모 같은 사람들은 우리가 동정심을 베풀어야 할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은총과 구원을 우리보다 먼저 받을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때 큰 반전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 자신이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큰 부끄러움을 당할 것이다.

이건 내 말이 아니라 예수님이 마태복음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런데 오늘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허투로 듣는다.

그대신 자기의 욕망을 성서 구절로 합리화하기에 바쁘다.

 

200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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