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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예수님 태풍구름을 잘 못 타서, 오다가 강력한 태풍 바람에 날라간 것은 아닌가요 ???
mh**** 조회수 4,625 작성일2016.10.02
 2012년 12월21일 지구인류가 종말을 맞이한다는 이른바 ‘마야 종말론’이 세상을 달구고 있다. 마야달력 시작일인 기원전 3113년으로부터 5125년(13‘박툰’)째가 되는 올 12월21일 “시간도, 인류도 존재하지 않는 ‘무()의 세계’가 엄습한다.”는 설이 그것이다. 한마디로 인류가 멸망한다는 얘기다. 여기 대비해 세계 곳곳에서 식량과 양초에 방공튜브 등의 사재기 현상까지 일어나 각국 정부와 기관이 “터무니없는 종말론에 현혹되지 말라. 12월21일 지구 종말은 없다”고 해명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1982년, 지구의 2012년 종말을 예고한 해외언론

“2012년이면 지구 끝장…대합창으로 종말 막자”
1987. 8. 14 [경향신문] 7면

이런 ‘2012년 지구 종말론’이 한국 신문에 처음으로 소개된 것은 25년 전 1987년 8월14일이다. 그 날자 경향신문은 외지를 인용해 “정확히 25년 뒤인 2012년에 지구에 도래할 종말을 막기 위해 8월 16일과 17일 이틀 동안 전 세계 11개 성스러운 곳에 14만4천 명의 뉴에이지 그룹 회원들이 모여들어 인류구원 대 합창을 벌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느닷없는 얘기였다. 또 한편 어이없기도 했다. 도대체 왜, 갑자기 ‘2012년 종말’이 운위되고 또 이를 막겠다며 사람들은 대 합창을 벌이는 걸까. 그 사연은 이랬다.

미술사가인 호세 아귤리스는 이보다 4년 전인 1983년 어느 날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다 하늘의 별들이 모여 1987, 8, 16, 17이란 숫자를 만드는 광경을 목격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믿거나 말거나’ 지만, 이후 호세는 밤하늘에 뜬 이 계시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각종 사료를 뒤지며 다각도로 연구를 벌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는 ‘그 날’이 남미의 아스텍 월력으로 “13개의 천국과 9개의 지옥이 만나는 날”일뿐 아니라 호피 인디언들 사이에도 “그 날, 14만 4천 명이 태양 춤을 춤으로서 모든 인류를 잠에서 깨어나게 하리라”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는 걸 찾아냈다.

 

실제로 종말을 막기 위한 의식이 거행되기도..

그걸로 그친 게 아니었다. 호세는 “그 날은 태양계 9개 행성이 나란히 서는 날”로서 “2012년 지구 멸망을 예언한 마야달력과 대비해보면 1987년 8월16일이 정확히 25년 전 그 날이 된다.”고 했다. 12월21일이 아닌 8월16일 지구가 망한다고 한 것이다. 어쨌거나 그는 인류멸망을 막으려면 ‘우주 힘이 모이는 곳’, 즉 멕시코 페루 이집트 그리스 인도 영국 미국 등의 성소 11곳에 14만4천 명이 모여 우주에 합창을 보냄으로서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에 모두 헛웃음을 지었지만 영적각성을 촉구하는 뉴에이지 그룹이 호응했고 여행사들은 이들을 실어 나르는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기사였다.

실제 당시의 이 행사 - 피라미드나 올림포스 산, 갠지스 강가와 스톤헨지 등에 모인 사람들의 합창-는 세계표준시 1987년 8월16일 오전 8시에 거행됐다. 14만4천 명이 다 모였는지 알 수는 없으나 참가자들은 모두 손에 손을 맞잡고 춤을 추며 길게 “아~”하는 화음을 우주에 날려 보냈다. 하모닉 컨버전스(harmonic convergence)라고 불린 이 ‘조화와 집중’ 이벤트는 이후에도 간간히 이어졌다. 행사의 효용을 믿는 사람들은 “1987년 처음으로 행성 간 영적 화음 전달을 통해 빛의 통로가 개설되었다”고도 주장한다.

 

1992년, 한국에 불어온 ‘휴거 열풍’

병든 사회 병든 종말론 
1992. 2.7 [한겨레] 17면

종말론과 관련된 이 행사는 단지 얘깃거리로만 보도되었지 특별한 후유증을 불러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보다 꼭 5년 뒤 한국사회를 찾아온 ‘휴거() 열풍’은 달랐다. 종말론과 말세론이 차고 넘쳐 용광로처럼 부글부글 끓게 만든 것이다. 종말을 믿는 사람들은 곧 닥칠 지구재앙에 대비하라며 소리소리 지르는 등 소동을 벌였다. 이 때문에 종말을 피한다며 자살하거나 깊은 산 속에 숨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기독교단은 휴거의 날짜까지 지정하며 종말론을 주장한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경찰은 그를 사기죄로 구속하기도 했지만 휴거를 둘러싼 온갖 얘기는 사회를 온통 끌탕으로 만들었다.

휴거란 “예수가 재림해 세상을 심판하러 와서 구원받을 신도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는 것”을 말한다. 영어에선 그 상황을 크고 충만한 기쁨, 환희라는 뜻의 ‘Rapture’로 표현하는데 이를 한국어로 번역한 목사가 ‘들어 올림’, 그 자체를 중시해 한자를 인용, 휴거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그러니까 최후심판의 날에 대부분은 영원한 고통의 지옥 불에 떨어지지만 믿음이 독실한 이들만은 재림예수에 의해 공중에 들어 올려 지며 바로 그게 휴거라는 것이다. 죽은 자들까지 무덤을 열고나와 들림을 받는다는 휴거는 그러니까 한편에선 종말이지만 믿는 이들에겐 부활과 영생을 약속하는 대행사인 것이다.

 

다미 선교회, 1992년 10월 28일 종말론 주장

‘10월 28일 시한부 종말론’ 절정 
1992. 8.1 [경향신문]15면

이 휴거를 한국사회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아주 맹목적으로 전파한 게 ‘다미선교회’였다. 마포에 본부를 둔 이 선교회 이장림 목사(당시 47세)는 1988년 후반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라’는 책을 내 휴거가 멀지 않았음을 주장했다. 그해엔 미국에서도 휴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적잖았다. 미국 내 일부 종교방송은 아예 터놓고 “9월에 있을 휴거를 대비하라”는 교회설교를 생중계하기도 했다. 이 목사도 이런데 영향을 받아 책을 냈으며 그가 창설한 다미선교회는 이 책 제목 ‘다가올 미래…’의 앞 글자를 따 이름을 지은 것이었다. 그는 처음엔 휴거 날짜를 명시하지 않았지만 90년 말부터는 “1992년 10월28일 밤 12시에 전 세계적으로 휴거가 일어난다.”고 명시했다.

92년이 휴거의 해가 된다는 근거는 이랬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이 6일 동안 세상을 창조하고 7일째 안식했다고 했는데 이 6일과 제 7일을 인간세상의 1천년으로 계산한 것이다. 즉 아담에서 예수까지 4천년에, 예수가 지상에 재림하는 2000년까지 합하면 6천년이 돼 서기 2000년은 인간역사가 끝나고 하나님의 천년왕국이 시작되는 해라는 것. 그 천년왕국이 시작되기 전인 1999년 땅의 역사는 끝나며 그 이전에 7년 환난이 있으므로 심판의 날, 즉 믿는 이들이 들림을 받는 해는 1992년이 된다는 얘기였다. 산 사람이건 죽은 사람이건 믿는 이는 그대로 공중에 들어 올려 지니 불신자만 사는 지상에는 일대 혼돈과 어둠, 갖가지 재앙이 겹쳐 결국 파멸케 된다는 것이다.

“휴거의 해…번지는 종말론”
1992. 2.22 [동아일보] 17면

휴거의 날, 비행기 조종사가 성도라면 비행 도중 공중으로 들릴 것이기 때문에 비행기는 추락해 불신자는 몰살한다는 얘기가 나왔다. 배를 몰던 사람이 들리면 배가 암초에 부딪치고, 아궁이 불을 때던 사람이 들리면 집에 불이 나고, 버스 택시 등 운전사들이 들리는 바람에 운전자 없는 차들끼리 충돌을 거듭하는 아수라장이 빚어지고… 설교로만 그렇게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마치 눈으로 본 듯 무시무시한 그림을 그려 돌리며 “휴거에 대비하라. 이제라도 믿음으로서 하나님의 천년왕국에 들어가라”고 주장했다.

무덤이 열려 성도들의 깨끗한 영혼들이 허공으로 헤엄치듯 올라가는데 하나님을 믿지 않은 채 죽은 자들은 썩고 문드러진 몸뚱이로 허우적대는 모습도 그려졌다. 다미선교회의 신도들은 이런 그림이 그려진 선교지를 버스정거장이나 지하철역, 심지어는 야구 축구장 앞에서까지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휴거심판이 다가왔다. 회개하라”고 고함을 질렀다. ‘92년 10월 예수 공중 재림’ 어깨띠를 두른 이들이 대중교통 차안에서 “휴거 전에 하나님의 인()을 받으라. 92년 10월28일 오실 신랑 예수님을 맞을 신부가 되자”고 설교하다 시끄럽다는 항의를 받자 “사탄은 물러가라”며 휘휘 내젓기도 했다.

 

92년 들어 더욱 극성스러워진 종말론 포교활동

일탈행동 빗나간 믿음 ‘종말론 광풍’
1992. 8.13 [동아일보] 9면

91년부터 드문드문 보이던 종말론 포교활동은 휴거가 있다는 92년에 들어서면서 더욱 극성스러워졌다. 부산 모 선교회 소속 학생들의 부모 50여 명은 “아이들이 종말론, 휴거 론에 빠져 학비를 모두 교회에 바치고 밤샘기도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진정서를 각계에 발송했다. “남편이 직장도 그만 두고 종말론 포교만 하러다닌다”, “아내가 천년왕국에 들림을 받는다며 세 살배기 아들을 데리고 가출했다”, “전세를 사글세로 바꿔 남은 돈을 모두 선교자금으로 쓰느라 가정이 파탄 났다”는 등 항의와 호소가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선교회 근처 주민들이 “낮에 어깨띠를 두르고 종말론을 외치러 나갔던 신도들이 밤 12시면 교회에 돌아와 울고불고 소리치며 구원을 갈구하는 바람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항의하는 사례도 급증했다.

그러나 지구 종말과 휴거를 주장하는 선교회의 교세는 확장일로를 걸었다. 다미선교회는 국내 180여 교회에 등록신도만 2만 명에 육박한다는 얘기가 나왔고 날짜만 다를 뿐 92년 10월 휴거를 주장하는 다른 선교회들도 계속 교세를 확장해가고 있었다. 92년 2월 들어서는 신문들이 ‘병든 사회, 병든 종말론’, ‘휴거의 해 번지는 종말론’ ‘예언인가 혹세인가’, ‘대 환란 공포 위기감 조성’ 등 경고 기사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전 재산을 바치는 피해자가 속출하고 ‘공중 들림’을 통해 ‘천국행 기차’를 타겠다는 허황된 구원에 매달린 사람들이 정상적 삶의 길을 벗어나는 행태를 고발했지만 현상을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했다. 종말이라는 그날 1992년 10월28일 자정이 지나간 다음에야 미혹의 잠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다는 듯, 시간은 더디게 흘렀고 피해자는 계속 늘어만 갔다.

후속편 계속됩니다.

민병욱 | 전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
1976년 동아일보에 입사해 편집국 사회1부장, 정치부장, 부국장, 논설위원을 거쳤다. 2009년 7월까지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들꽃 길 달빛에 젖어> <민초통신 33>이 있다.

자료출처 네이버 오픈 캐스터 




옛날부터 예수님 오신다고 종말론 참 많이도 써 먹었는데 .. 

예수님이 구름 타고 온다고 했는데 ..   

정말 오기는 오나요 ?    

혹시 먼 옛날에 구름 타고 오기는 왔는데 
태풍구름을 잘 못 타서 오다가 강력한 태풍 바람에 날라간 것은 아닌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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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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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 종교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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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기독교를 믿고 있습니다.




재림 예수님이 가까운 미래에 곧 반드시 다시 옵니다.

이건 확실합니다. 틀림없습니다. 예수님이 곧 다시 오겠다는건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종말이 있는건 맞는 얘기입니다. 
다만, 그것도 하나님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고 이 우주 전체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 지옥 세상(마귀 세상, 음부, 스올, 죄의 세상)만 다 없어지는 것이죠.



맨 처음 세상은 어디든지 하늘나라였습니다.

맨 처음 세상은 어디에서나 가장 살기 좋은 세상이었습니다.

맨 처음에는 모든 사람이 천국에서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첫 사람이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에 모든 사람이 못 살게 되었습니다.

첫 사람이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에 모든 사람은 못 살 수 밖에 없는 세상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 세상이 마귀 세상입니다.

하늘나라는 가장 살기 좋은 세상을 의미합니다.

맨 처음에는 이 세상 전체가 천국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첫 사람이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에 하늘나라와 지옥이 둘 다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첫 사람이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에 천국이 아닌 지옥 세상(마귀 세상, 음부, 스올, 죄의 세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인간 세상에는 죄가 많습니다.
현재의 인간 세상에는 거룩하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현재의 인간 세상에는 불완전한 것이 많습니다.
현재의 인간 세상에는 불만족스러운 것이 많습니다.
현재의 인간 세상에는 가증한 것이 많습니다.
현재의 인간 세상에는 질병이 많습니다.
현재의 인간 세상에는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현재의 인간 세상에는 잘못된 것이 많습니다.
현재의 인간 세상에는 망측한 것이 많습니다.
현재의 인간 세상에는 사악한 것이 많습니다.

이러므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에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다시 천국에서 살게 하기로 계획했습니다.

그러므로

곧 재림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오십니다.

예수님이 빠른 시간 안에 사람들에게 다시 오십니다.(2000년 전 쯤에 이미 한 번 오셨습니다.)

이것이 "재림"입니다.

예수님이 곧 재림하셔서 마음이 깨끗한 사람과 성도들을 하늘나라로 이끌 것입니다.

이것이 "휴거"입니다.

가까운 미래에 재림 예수님에 의해서 성도들이 마귀의 세상에서 천국으로 이동될 것입니다.

휴거될 성도들은 지옥 세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천국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휴거가 일어난 이후에 성도들은, 죄가 전혀 없고 거룩한 것만 있고 완전한 것만 있고 만족스러운 것만 있고 가증한 것이 전혀 없고 질병이 전혀 없고 자연스러운 것만 있고 올바른 것만 있고 망측한 것이 전혀 없고 의로운 것만 있는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입니다.


표준새번역 성경 고린도전서와 데살로니가전서의 일부

고전15:51 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비밀을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다 18)잠들 것이 아니라, 다 변화할 터인데, 또는 '죽을'

고전15:52 마지막 나팔이 울릴 때에, 눈 깜박할 사이에, 홀연히 그렇게 될 것입니다. 나팔소리가 나면, 죽은 사람은 썩어 없어지지 않을 몸으로 살아나고, 우리는 변화할 것입니다. 

고전15:53 썩을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하고, 죽을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어야 합니다. 

고전15:54 썩을 이 몸이 썩지 않을 것을 입고, 죽을 이 몸이 죽지 않을 것을 입을 그 때에, 이렇게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19)"죽음을 삼키고서, 승리를 얻었다." 사 25:8


살전4:14 우리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을 믿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9)잠든 사람들도 예수와 함께 데리고 오실 것입니다. 또는 '죽은 사람들'

살전4:15 우리는 주님의 말씀으로 여러분에게 이것을 말합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이미 잠든 사람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할 것입니다. 

살전4:16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실 것이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전4:17 그 다음에 살아 남아 있는 우리가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이끌려 올라가서,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이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재림이 일어나고 휴거가 일어난 이후에 하나님이 귀신을 다 없애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귀와 귀신을 다 없애는 것은 마귀 세상(현재의 사악한 인간 세상, 지옥 세상, 음부, 스올, 죄의 세상)의 종말입니다.

종말이라는 것도, 이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이 사라진다기 보다는 지옥 세상(마귀 세상, 음부, 스올, 죄의 세상)만 다 없어진다는 것이죠.

마귀 세상의 종말은 반드시 와야 하며, 마귀 세상의 종말은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지옥 세상(마귀 세상, 음부, 스올, 죄의 세상)만 다 없어지면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다시 하늘나라 안에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절대로 영원히 없어지지 않죠.





"혹시 먼 옛날에 구름 타고 오기는 왔는데 
태풍구름을 잘 못 타서 오다가 강력한 태풍 바람에 날라간 것은 아닌가요 ???"라고 쓰셨는데요.
재림 예수님은 1992년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재림 예수님은 그 때 오시지 않았지만 가까운 미래에 반드시 오시지요.

2012년에 종말은 없었지만 가까운 미래에 반드시 죄의 세상의 종말이 꼭 올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계속 있고요.















아래의 사이트에 들어가 주세요.

2016.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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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12위, 종교 35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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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우리에게로 곧 다시 오심을 재림이라고 하죠.

세상의 마지막날, 세상은 심판을 받고 하느님께서 직접 다스리시는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집니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가톨릭 신자들은 매일 기도합니다.


그때까지는 가톨릭미사에서 십자가를 지고 우리와 함께 전투중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전투의 선봉에는 우리 대장 예수님께서 앞장서 나가고 계십니다.

성체기적 검색해 보세요.

 

“나는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마태28:20)

  
예수님과 베드로로부터 전해오는 가톨릭 성교회에는

매 세기마다 몇건씩 성체기적이 꾸준히 일어납니다.

미사 때마다 사제의 축성에 의하여 빵이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살과 피로 변화되는 기적을 말합니다. 전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천년 동안 지금까지도 성체로서 교회 안에 현존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시기 전날 저녁식사를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26:26-28)

그들이 음식을 먹을 때에 예수께서 빵을 들어 축복하시고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다." 하시고

또 잔을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리시고 그들에게 돌리시며

"너희는 모두 이 잔을 받아 마셔라.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

 

(마태23:39)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 하고 너희 입으로 찬양할 때까지

너희는 정녕 나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

 

가톨릭교회는 미사의 성체성사 때마다 "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찬미받으소서,

높은 데서 호산나 " 하고 외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다시 뵙게 됩니다.



란치아노의 성체기적


이탈리아 아브루초 주에 있는 란치아노(Lanciano) 성당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던 로마 군인 백부장 성 론지노에게 봉헌된 초라한 시골성당이었다.


사건

이 사건은 지금으로부터 약 1,200년 전인 8세기에 일어난 사건이다.

성 바실리오수도회 소속의 한 수사신부가 어느 날 아침, 초라한 시골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었다. 그는 언젠가부터 예수님께서 성체 안에 실제로 현존하실까? 하는 의심으로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이날도 몹시 번거로운 마음을 간직 한 채 빵과 포도주의 성변화를 위한 축성을 막 끝냈을 때 갑자기 면병이 살아있는 살로 변하며 포도주의 외양이 살아있는 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너무 놀란 신부는 “오 내 주님이시며 내 하느님이십니다.” 라고 부르짖으며 주저 않고 말았다. 신부는 이 사실을 숨길 수 없어서 미사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고 이 소식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이 성당이 바로 이태리의 란치아노성당이다. 이 역사상 최대의 성체기적은 한 수사신부의 의심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셨던 것이다.

보존 관리

이 란치아노성당은 1176년까지 동방가톨릭교회에 속하는 바실리오회 수사들이 관리하다가 그 후에 베네딕도회를 거쳐 1252년에부터는 꼰벤뚜알회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1258년에 고딕식으로 재건되었고 1700년에 다시 바로크 형식으로 개조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기적의 성체와 성혈은 성당 앞부분 큰 제대 옆에 있는 소 성당에 보존되어 오다가 1902년부터는 새로 만든 기념제대 위에 보존되어 있다. 순례자들은 두 줄의 대리석계단을 올라가 이 기적의 성체를 공경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12 세기가 지난 지금, 살 모양으로 변한 성체는 불그스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은빛 수정성작 안에 담겨있는 성혈은 불규칙한 다섯 개 형상을 한 핏덩이로 되어 있고 무게는 16.5 그램이다. 얼른 보면 빛이 바랜 것 같은데, 밝게 하여 보면 황토색 비슷한 자연적인 색을 볼 수 있다.  

과학적 조사 1574년 이래 여러 차례에 걸쳐서 관할 주교들이 인정한 바 있었으나, 1970년과 1971년에 해부학, 병리 조직학, 화학, 및 임상현미경학 교수이며 아레쪼 병원의 수석의사였던 오도아르도 리놀리가 성 프란시스 성당을 맡고 있던 프란치스꼬회 수사신부들의 요청에 따라 기적의 성체와 성혈에 대한 최초의 과학적 조사를 시행하였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조사(1)

리놀리 교수가 1970년 11월 18일 오전10시 15분에 란치아노의 페란또니 대주교의 참석 하에 그 기적의 성체로부터 20 밀리그램 정도의 아주 작은 두 개의 샘플과, 성혈로부터 318 밀리그램의 샘플을 채취하여 아레쪼 병원의 실험실에서 시에나대학교 로져 베르텔리 인체해부학교수의 도움을 받으면서 3개월여에 걸쳐 그 샘플들을 조사하였고 1971년 3월 4일, 성체 기적이 일어났던 그 성당에서 수많은 학자들이 모인 가운데 리놀리 교수는 완료된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과학적인 분석 결과를 발표하였는데 이 때 그의 구두 설명과 함께 수많은 문서와 사진들이 제시되었다. 

그의 발표 내용과 덧붙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요약)

1. 성체 기적의 피는 참으로 피 이며, 살은 참으로 살이다.

2. 그 살은 심장 근육이다.

3. 그 살과 피는 인간의 살과 피 이다.

4. 피와 살의 혈액형은 동일한 AB형이다. 

이것은 그 피와 살이 동일인으로부터 왔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혈액형이 같은 두 사람으로부터 왔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배제 할 수는 없다.

5. 피의 성분조사에서는 정상적인 피에서와 같은 비율의 단백질들과 염화물, 인, 마그네슘, 칼륨, 정상보다 약간 적은 양의 나트륨, 정상보다 많은 양의 칼슘. 등의 무기물들이 발견되었다.

덧붙임

※ 이 살이 인간의 심장으로부터 해부적으로 잘라온 것일 가능성은 전무 하다.

※ 그 살과 피를 보존하기 위하여 화학적인 방부 조처를 취한 흔적은 전혀 없다.

※ 그러므로 그 살과 피 안의 단백질과 무기물들이 대기와 미생물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부패되지 않고 보존된 것은 절대적으로 예외적 현상이다.


조사(2)

그로부터 2년 후인1973년에 이태리의 의사이며 생물학자인 요셉 비온디니 교수는 자기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세계 건강 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에 리놀리 교수의 검사 결과를 제출하였다. 세계 건강 기구는 이 보고서의 특별한 중요성을 인식하여 7개국의 전문가들로 하여금 리놀리 교수의 분석 결과를 조사하도록 위임하였다. 그것은 리놀리 교수의 정직성이라든가 과학자로서의 능력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그의 결론이 과학에 대하여 가지는 극히 중요한 의미 때문이었다. 핵의학 등 최첨단 기술들이 동원된 15개월간의 연구 끝에 그 국제적인 과학위원회는 리놀리 교수의 결론들을 완전히 확인하였다. 그들의 보고서는 세계 건강 기구의 공식 출판물들에 실을 수 있도록 준비되었다. UN 산하의 그 과학자들은 란치아노의 성체기적이 "유례가 없는 케이스"이며,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단정적으로 선언하였다. 신앙의 신비를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음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란치아노에서의 성체 기적에 대한 과학적 조사가 신학과 영성에 관하여 지니는 중요성은 별도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각광받는 순례지

과학적 인증이 있은 후 1978년에는 이태리에서만 700 여개의 순례단이 방문하였고 그 다음 해에는 1,000개가 넘었으며, 매일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순례자들의 수는 헤아릴 수없이 많고 그 숫자는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와 북미에서도 많은 순례자들이 찾아오고 있다. 란치아노 기적의 성체 앞에서 온갖 민족과 문화와 모든 사회적 신분의 사람들이 깊은 성체 신심을 표시하고 있는 것이다. "란치아노에서의 성체기적" 이라는 제목의 이태리어 원본책자는 재판에 재판을 거듭하고 있으며, 영, 불, 독,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필리핀 섬들의 언어인 타가록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와틸랴 추기경의 방문

1974년 11월 3일 오전에 폴란드의 고위 성직자들이 란치아노의 성지를 방문하였는데, 그들 중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되신 와틸랴 추기경도 있었다. 그는 오랜 기도 끝에 방명록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더욱더 당신을 믿고, 당신 안에서 희망하고, 당신을 사랑하게 하소서."

- 기타 성체기적사건들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1345년. 한 어부가 병자성사를 받고 성체를 영한 것을 심한 기침 때문에 음식물과 함께 토해내 버렸다. 어부의 부인은 이를 화덕에 던져버렸다. 하지만 성체는 불 속에서도 타지 않고 조금도 더럽혀지지 않았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곳곳에서 성체를 공경하는 이들의 발길이 이어져 성스러운 행렬을 이루었다. 1452년. 암스테르담에 일어난 큰 화재로 온 도시는 잿더미로 변해버렸을 때 잿더미 속에서 성체는 물론 성체포도 흠 없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포르투갈 이보라; 1010년 이보라의 마리아 본당 주임사제였던 베른하르트 올리버 신부가 미사 도중에 의심을 품었다 성작에서 피가 넘쳐흘렀다. 이때의 제대보등은 아직도 보존되어 있다.

스위스 루체른 지방의 에스티빌; 1447년 성체대축일에 성체를 도난당했는데 그 범인은 잡았으나 성체는 찾지 못했다. 그 이유는 범인의 진술이 말 해준다. “가져가는 도중에 성체의 무게가 점점 불어나 도저히 들고 갈 수 없을 만큼  무거워져서 숲속에 버렸기” 때문이었다.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수녀님은 살아계실 때 예수님의 발현을 보셨습니다.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수녀


 

자비의 예수님 성화


  하느님 자비의 상(像. image)은 파우스티나 수녀가 1931년 2월 22일에 보았던 환시에서 기인한다. 그 환시에서 예수님은 그러한 상(image)이 만들어지고 그 아래에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라는 글을 넣기를 강하게 열망하셨다. 이 상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여 주고 있으며 그분의 손과 발에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흔적이 있다. 그리고 옷에 가려진 그분의 꿰뚫린 심장으로부터 두 가지의 붉은 빛과 엷은 빛이 발산하고 있다. 그 의미에 대해 여쭈어 보았을 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셨다.  "엷은 빛줄기는 영혼을 의롭게 하는 물을 나타내고, 붉은 빛줄기는 영혼의 생명인 피를 의미한다. 이 두 빛줄기는 십자가에서 창에 찔린 내 심장이 열렸을 때 내 깊은 자비에서 흘러 나온 것이다." (일기 299) 다시 말해 이 두 빛줄기는 성사들과 예수님의 찔리신 옆구리에서 탄생한 교회, 그리고 성서에서 물이 상징하는 성령의 선물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또한 "이 보호 속에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정의의 손길도 그들을 붙잡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기 299)고 말씀하셨다. 이 상본은 하느님의 위대한 자비를 보여 주고 있는데 그 자비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 안에서 완전히 드러나며 교회 안에서 성사를 통하여 가장 효과적으로 나타난다. 이 상본은 은총을 얻기 위한 그릇이며 세상으로 하려금 하느님께 의탁하고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이 꼭 필요한 일임을 상기시키는 표지이다. 이 상의 아래 부분에 씌여진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라는 말은 의탁의 자세를 말해 준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이 상본은 내 자비의 요구를 상기시킬 것이다. 아무리 강한 믿음이 있어도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일기 742) 이 상본에 대한 공경은 자비의 행위와 함께 바치는 믿음을 가진 기도에 기초를 둔다. 예수님께서는 이 상본을 공경함으로 얻게 되는 여러 가지 약속들을 말씀하셨다. 그것은 구원의 은총, 완덕에 이르는 은총, 행복한 임종의 은총, 그 밖에 필요한 모든 은총들과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그분께 의탁하며 청하는 현세의 축복들이다. 예수님께서는 파우스티나 성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릇을 하나 주는데 그들은 그 그릇을 가지고 자비의 샘에서 은총을 길으러 올 것이다. 그 그릇은 바로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라는 말이 씌여진 이 상본(image)이다." (일기 327) "이 상(image)으로 나는 영혼들에게 많은 은총을 베풀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영혼들이 이 상(image)에 나아오도록 하여라." (일기 570) "나는 이 상을 공경하는 영혼들이 멸망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그리고 이미 이 땅에서, 특히 임종의 시간에 원수를 누르고 승리할 것과 또한 약속한다. 내가 친히 그들을 내 영광으로써 지킬 것이다." (일기 48) "자비의 불꽃이 나를 태우고 있다. 나는 이 자비를 모든 영혼들에게 부어 주고 싶다. 오, 그들이 내 자비를 받아 들이기를 원하지 않을 때 나에게 얼마나 심한 고통을 주는지! ... 앓고 있는 인류에게 나의 자비로운 성심에로 가까이 달려들라고 말하여라. 그러면 나는 그들을 평화로 채울 것이다." (일기 1074) "인류가 신뢰를 가지고 내 자비에 의지할 때까지는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다." (일기 300) "내 자비에 대하여 세상에 말하여라. 모든 인류가 나의 헤아릴 수 없는 자비를 깨닫게 하여라. 이것은 마지막 시대에 대한 표징이다. 이것이 지나면 정의의 날이 올 것이다. 아직 시간이 있을 때 그들이 내 자비의 샘에 의지하게 하여라.그들을 위해 쏟았던 내 피와 물의 공로를 입게 하여라." (일기 848) "나는 공정한 심판관으로서 오기 전에 먼저 내 자비의 문을 활짝 연다. 내 자비의 문을 통과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내 정의의 문을 통과해야만 한다." (일기 1146)


성녀 비르짓다의 예수 수난 15 기도



1. 15기도에 관하여



비르짓다(라틴어: Birgitta) 성녀는 스웨덴에서 한 고을의 촌장인 아버지에게서 일곱째 아이로 태어났으며 그 집안은 왕손이었으므로 유복한 생활을 하였다. 성녀는 9살 때에 예수 수난에 대한 강론을 듣고 매우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십자가 앞에서 추위에 떨면서도 열심히 기도하였으며 그때에 십자가에 못박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려오는 것을 들었다.
"보라! 내가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심한 상처를 받았는지!" "오, 주님! 누가 주님을 이렇게 못박았습니까?" "나를 멸시하고 내 사랑을 소홀히 하는 자들이 한 짓이란다." 성녀는 뒤에 아버지의 소원을 따라 결혼을 하였고 아들 넷, 딸 넷을 두었다.
남편은 군주였는데 매우 열심하였고 두 분 모두 프란치스꼬 제 3회 회원(재속 프란치스코회원)으로서 열심한 기도와 보속의 생활을 하였으며 특히 자선 사업에 헌신하였고 매일 불쌍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을 자기 식탁에 불러들여 같이 먹게 하였다. 나중에 비르짓다는 남편의 허락을 받고 봉쇄 수도원에 들어가 특별히 기도하며 관상 생활을 하다가, 남편이 선종하고 과부가 되자 모든 재산을 다 나누어 주고 세상을 떠난 남편의 묘소 가까이에 있는 수도원에 들어갔다. 그때 첫 번째 계시를 받았는데 그 계시들 중에 소위 "비르짓다 약속"이 들어 있다. 이 기도와 약속은 1740년 예수회의 아드레안 발비레 신부님에 의해 도울즈에서 출판하여 보급되었고, 1862년 5월 31일 교황 비오 9세의 인가를 받았다. 이것을 여기에 간추려 옮겨 놓게 된 것이다. 복자 교황 비오 9세를 통해서 인정되었음은 이 기도를 열심히 바치는 사람들이 많은 은혜를 받았음을 더욱 확실히 나타내 주는 것이다.
로마의 성 바오로 대성당 감실 위에는 1350년 피엘 갈바리니가 조각한
십자가 형의 성상을 볼 수가 있는데, 여기에는 성녀 비르짓다가 주님께로부터 이 15기도에 대한 계시를 받은 것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성녀 비르짓다는 오랫동안 우리 주님께서 수난하실 때 받으시던 매맞은 수를
알고 싶어하였는데, 주님이 어떤 날 그녀에게 나타나시어 말씀하셨다. "나는 몸에 5,480번의 매를 맞았다. 만일 그대가 어떤 방법으로라도 그것을 찬미하고 싶다면, 15번의 주의 기도와 15번의 성모송을 다음 기도와 함께 (그것을 주님은 그녀에게 가르치셨다) 만 일년 동안 하면 되는 것이다. 그 일년이 끝나면 그는 나의 상처를 낱낱이 찬미하는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은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며 묵상하는 셈이 되겠고, 그리스도의 완덕에 가까워지게 되며 천상 어머니이신 성모님도 그들과 함께 특별히 계셔 주실 것이다.

2. 15기도의 약속

주님은 일년간 이 기도들을 염하는자, 모두에게 다음의 것을 약속하셨다.
1. 나는 그의 혈통 중에서 열 다섯 명의 영혼을 연옥에서 구하겠다.
2. 그의 혈통 중의 열 다섯 명의 영혼을 성총 중에 굳게 보호할 것이다.
3. 그의 혈통 중의 열 다섯 명의 죄인은 회개할 것이다.
4. 15기도를 바치는 자는 누구나 완덕의 제1단계를 달성할 것이다.
5. 그의 죽음 15일 전에 나는 나의 거룩한 성체를 그가 영원한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줄 것이다. 또한 그가 영원히 목마르지 않도록 성혈을 그에게 줄 것이다.
6. 그의 죽음 15일전에 그가 범한 모든 죄를 깊이 회개하게 할 것이며,
거기에 대한 완전한 인식을 갖게 할 것이다.
7. 나는 그를 적의 공격으로부터 도와주고 지켜주기 위해
그의 앞에 나의 승리의 십자가 인호(印)를 놓을 것이다.
8. 그의 죽음 전에 나는 나의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와 함께 올 것이다.
9. 나는 깊은 은총으로 그의 영혼을 받아 영원한 기쁨으로 인도할 것이다.
10. 거기에 인도한 후, 나는 그에게 천주성(天主性)의 샘에서 나의 기도를
바치지 자에게는 주지 않는 특별한 은총을 한 모금 주겠다.
11. 30년간 죽어야할 죄(대죄)의 상태에서 살아온 자, 그러면서도 열심히
15기도를 기도한자, 또는 15기도를 바칠 의향을 가지고 있는 자는 누구나 주님이 그의 모든 죄를 용서한다는 것을 알려라.
12. 나는 그를 강한 시험(유혹)에서 방어하며 지켜줄 것이다.
13. 나는 그의 오관(五官)을 보존하도록 항상 지켜줄 것이다.
14. 나는 그를 급사(急死)에서 지켜줄 것이다.
15. 그의 영혼은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 될 것이다.
16. 그는 하느님과 성모님께 바라던 모든 것을 얻을 것이다.
17. 만일 그가 일생을 방탕하게 살다가 다음날에 죽게 되었다면,
그의 생명은 연장될 것이다.
18. 15기도를 바칠 때마다 그는 한대사(100일)를 얻는다.
19. 그가 천사들의 가장 높은 위치에 놓여지게 되는 것은 확실한 일이다.
20. 15기도를 타인에게 가르치는 자는, 누구나 영원히 계속되는 끊임없는
기쁨과 공덕을 갖게 될 것이다.
21. 15기도를 말하고 또 장래에 말하게 될 장소에 하느님은 그 은총과 함께
계실 것이다.


■ 멕시코 과달루페
 

1. 발현지와 시대적 배경

1531년 12월 9일 멕시코가 스페인에 정복 당한 지 10년째 되는 해다. 정복자들의 폭정에 시달리던 원주민들이 이교신의 모친을 위해 신전을 세웠던 테페약 언덕에서 발현. 과달루페란 말은 ’뱀의 머리를 짓밟는 분’이란 뜻의 인디언 말이다. (그전까지 원주민들은 소녀를 죽여서 뱀에게 제물로 바치고 있었음.) 성모님이’과달루페의 성 마리아로 불리길 원한다’는 메시지를 주셨는데 이 말이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옮겨져 순례지의 명칭이 됐다.

2. 발현 모습과 목격자

인디언의 피부에 장미빛 옷과 푸른 망토를 두르고 있었다. 손은 합장한 채 고개를 약간 숙인 모습으로 스페인 식민치하에서 맨 처음 입교한 원주민 중 한명인 55세의 환 디에고에게 발현했다.

3. 메시지와 결과

"나는 평생 동정이며 생명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어머니임이 알려지기를 원한다.

나를 찾는 이들에게 나의 동정심을 보여주도록 정성을 다해 이 자리에 성당을 짓기 바란다." 며 디에고의 망토에 성모님의 모습을 새겨주었다. 발현 후 7년 사이에 800만명의 인디언들이 개종했고 전 미주대륙에 복음화의 기틀을 잡는 계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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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콘] 표상의 성모 - 러시아   

(가톨릭신문 발행일2016-09-11 [제3011호, 13면])
 
야로슬라브의 ‘표상의 성모’, 12~13세기, 러시아 모스크바 트레차코프 미술관

러시아에서는 키예프에서부터 야로슬라브로 전해지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특히 12세기에는 노브고로드라는 자유 도시를 수즈달 군이 공격했을 때, 노브고로드 시민들은 이 표상의 성모 이콘을 성벽에 걸고 성모님의 도움을 청했고, 이때 수즈달 군인들은 시력을 잃고 대패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표상의 성모는 특히 노브고로드 시에서 크게 공경을 받게 되었다. 또한 1352년에는 흑사병으로부터 노브고로드를 다시 한 번 더 구하였기에, 지금까지도 노브고로드에서는 11월 27일을 표상의 성모 성화 축일로 정하고 도시의 수호자로 크게 공경하고 있다. 이 성화는 때로는 성모님의 머리 좌우에 두 명의 천사가 날아다니고 있는 모습을 함께 그리기도 한다.
성모님의 가슴 중앙에 묘사한 그리스도 임마누엘은 마치 둥근 제병에 새겨진 주님의 모습처럼 성찬의 이미지를 나타낸다.
이사야서에 예언된 임마누엘은 바로 지상의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위한 희생 제물이 되기 위해 오셨음을 나타낸 것으로, 하늘과 땅 사이의 중재자이신 마리아를 통해 그녀의 가슴에 품고 있는 주님께서 지상으로 내려오셨다는 것이다. 성모님께서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하느님과 인류의 중재자로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이콘을 ‘오란스’라고 한다.
이러한 형태의 이콘은 4, 5세기경엔 성모님의 가슴에 아기 예수가 그려진 ‘표상의 성모’라는 변형된 형태로 등장한다. 이는 성모님이 두 손을 모두 들고 있기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품고 있는 형상으로, 이사야서 7장 14절의 “주님께서 몸소 여러분에게 표징을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라는 구절을 나타낸 것이다. 이 성경 구절에 나오는 표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표징’, 또는 ‘표상의 성모’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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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 첫 금요일의 미사에 참례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성녀 말가리다 마리아에게 약속하신 것의 하나는 다음과 같습니다.

"누구든지 아홉 달 동안 계속해서 매월 첫 금요일에 영성체하는 사람에게는 죽는 순간 마지막 통회할 수 있는 은혜와 선종하는 은혜를 줄 것이며 마지막 때에 내가 그의 의탁이 되어 줄 것이다."

말가리다 마리아에게 예수님께서 약속하심
성심께서는 불꽃의 빛과 가시관으로 성심을 두르시고 그 위에는 십자가의 모습을 보이시며 성녀 말가리다 마리아에게 발현하시어 << 이 성녀와 한마음으로 나를 공경하고 전파하면 너희도 12가지 은혜를 반드시 얻게 되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12가지 은혜
1.나는 내 성심을 공경하는 모든 이들에게 각각 필요한 은총을 줄 것이며
2. 그들의 가정에 평화를 줄 것이다.
3. 그리고 그들이 근심 걱정할 때 위로해 줄 것이며
4. 살아있을 때는 물론 죽을 때도 특별히 그들에게 든든한 의탁이 될 것이다.
5. 또 그들이 경영하는 모든 사업에 풍성히 강복할 것이며
6. 죄인들은 내 성심에서 무한히 자비로운 은총의 샘과 바다를 얻을 것이다.
7. 냉담한 교우들은 열심한 믿음을 얻을 것이고
8. 열심한 영혼은 빨리 큰 완덕으로 성화될 것이다.
9. 또 내 성심상이나 상본을 모시고 공경하는 그 가정에 강복해 줄 것이며,
10.사제들에게는 극히 완고한 마음이라도 감화시키는 은혜를 줄 것이다.
11.내 성심 공경을 전파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내 마음에 새겨 지워지지 않게 할 것이고
12.누구든지 아홉 달 동안 계속해서 매월 첫 금요일에 영성체하는 사람에게는 죽는 순간 마지막 통회할 수 있는 은혜와 선종하는 은혜를 줄 것이며 마지막 때에 내가 그의 의탁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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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토요일 신심의 은총
( "파티마" ­/ 루치아 수녀 회고록 中)
 
루치아는 첫토요일 보속의 영성체에 대한 성모님의 요청에 대한 이 보고서를 3인칭으로 쓴다. 1927년 12월 17일 그녀는 티 없이 깨끗하신 마리아의 성심에대한 신심의 기원이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신 비밀 속에포함되어 있는지에 대하여 말하라는 요구에 어떻게 따라야 할지 예수님께 여쭈어 보기 위하여 감실 앞으로 갔다.
예수님께서는 그녀가 다음과 같은 말씀을 분명히 들을 수 있게 해주셨다. 딸아, 그들이 네게 요구하는 것을 쓰도록 해라. 지극히 거룩한 동정녀께서 발현 때에 네게 알려 주신 것도 써라. 발현 때에 그분은 이 신심에 대해 말씀하셨다. 비밀의 나머지 부분에 대해서는 계속 침묵을 지켜라.”
1917년의 이 문제에 대해 밝혀진 것은 다음과 같다.
루치아가 자기들을 천국으로 데려가 달라고 여쭈었더니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그래,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는 곧 데려가겠다. 그러나 너는 좀더 오래 지상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너를 통하여 내가 알려지고 또 내가 사랑 받도록 하고자 하신다.그분은 세상에 내 티 없는 성심에 대한 신심을 불러일으키기를 원하신단다.나는 내 티 없는 성심을 받드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을 약속한다.그리고 이 영혼들은 하느님의 옥좌를 장식하기 위해 내가 꽂은 꽃과 같이하느님께 사랑을 받을 것이다.”
“저만이 혼자 여기에 남아 있게 되나요?” 그녀가 슬피 여쭈었다. “아니다,딸아, 나는 결코 너를 버리지 않겠다. 내티 없는 성심이 네 피난처가 되고 너를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길이 될 것이다.”
1925년 12월 10일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 그녀에게 나타나셨는데그분 옆으로 빛나는 구름 속에 들어 올려져 있는 한 어린아이가 있었다.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는 한쪽 손을 그녀의 어깨에 얹으시면서,다른 손에 들고 계신, 가시로 둘러싸인 심장을 그녀에게 보여주셨다.바로 그때 아기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시로 덮인 지극히 거룩하신 네 어머니의 성심을 가엾게 여겨라. 배은 망덕한 사람들은 순간마다 그 가시로 어머니의 성심을 찌르는데, 그 가시들을 빼 드리기 위해 보상 행위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구나.”그런 다음 지극히 거룩하신 동정녀께서 말씀하셨다. “딸아, 배은 망덕한 사람들이 불경과 배은 망덕으로 매순간 나를 찌르는가시로 둘러싸인 내 성심을 보아라. 적어도 너만은 나를 위로하도록 힘써라. 그리고 다섯 달 동안 계속 첫 토요일에 고백, 영성체하고 묵주의 기도 5단을하고, 또 내 성심을 거스른 죄를 보상하기 위한 지향으로 15분 동안 로사리오의15가지 신비를 묵상하면 나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임종 때에 내가구원에 필요한 은총으로 도와 줄 것을 약속한다고 말해 주어라.”
1926년 2월 15일 영해 예수님께서 다시 그녀에게 나타나셨다.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당신의 지극히 거룩하신 어머니께 대한 신심을 전파했느냐고 물으셨다. 그녀는 고해 신부의 어려움에 대해 말씀드리고, 또원장 수녀는 그것을 보급시킬 준비가 되어 있지만 고해 신부가 그녀 혼자서는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였다고 말씀드렸다.예수님께서는 대답하셨다. “너의 장상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내 은총으로 그녀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그녀는 예수님께 어떤 사람들은 첫 토요일에 고백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여쭙고나서 처음 8일 중에 아무 때나 고백하러 가도 괜찮으냐고 여쭈었다.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그렇다. 그들이 나를 받아 모실 때 은총 상태에 있고,또 티 없이 깨끗하신 마리아의 성심을 보상하기 위한 지향만 갖고 있다면좀더 지나서 가도 괜찮다.”그래서 그녀는 다시 여쭈었다. “나의 예수님, 그 지향을 세우기를 잊어버린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예수님께서는 대답하셨다. 먼젓번 기회 때의 효력이 다음 고해 때로 물려져서 그들은 다음 고해 때그렇게 할 수 있다.”

※ 다섯달 동안 계속해서 매달 첫 토요일에
① 고백성사 (첫토요일 전후로 일주일 이내에 하면된다)
② 영성체,
③ 묵주기도 5단을 바치고,
④ 성모님 성심을 거스른 죄를 보상하기 위한 지향으로
성모님과 함께 15분동안 로사리오의 15가지 신비를 묵상

※ 성모 성심을 거스른 죄 :
이 말씀에서 우리가 성모님의 성심을 거슬러 지은 죄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첫째, 원죄없이 잉태되심을 부인하는 것.
둘째, 성모님께서 하느님의 모친이심을 부인하는 것.
셋째, 성모님의 영원한 동정성을 부인하는 것.
넷째, 성모님께 대한 신심으로부터 어린이들을 소외시킨 것.
다섯째, 성모상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것이다.

* 루치아 수녀 :
1917년 5월 13일 포르투갈 파티마의 코바 다 이리아에서 성모발현 당시 이를목격한 세 어린목동 중에 한 분으로 2005년 2월 13일 선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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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 앞에서 해일이 물러가다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하여 '고요하고 잠잠해져라!' 하고 호령하시자 바람은 그치고 바다는 아주 잔잔해졌다" (마르꼬 4:39)

 

투마코는 콜롬비아의 조용한 바닷가 작은 섬이다. 1906년 1월 31일, 그곳에서 성체의 기적이 일어났다. 투마코가 엄청난 파괴를 불러왔던 해일로부터 보호받았던 것이다. 수백 명의 거주자와 그들의 영적 지도자인 아우구스틴 수도회의 제라드 라론도 신부와 줄리앙 모레노 신부가 이 역사적인 사건의 증인들이다. 오전 10시경, 투마코 주민들은 강력한 지진 때문에 몹시 놀랐다. 아주 심한 진동이 계속 되어 많은 집들이 무너졌고 성당의 성상들은 모두 바닥으로 떨어졌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집을 빠져나와 성당으로 달려가 도움을 청했다. 그들은 울면서 신부님들에게 빨리 청원 예식을 해달라고 간청하고 제의실로 달려 가 큰 십자가와 깃발과 성인상을 꺼내왔다. 라론도 신부는 우선 성당에 모인 사람들을 진정시키고 나서 밖으로 나가 바다를 바라보았다. 썰물 때가 아닌데도 바닷물이 해안에서 점점 빠져나가는 일은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다는 것을 그는 문득 깨달았다. 약 1.5km 넓이의 해안이 그 뒤로 드러나 있었다. 먼 바다 저 멀리에는 어마어머한 파도가 물의 장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이 한순간 부서진다면 투마코의 전 해안 지역이 물에 잠겨 온데간데 없이 사라질 것이다. 이 엄청난 위험 앞에서 신부는 할 말을 잃고 급히 성당으로 들어갔다. 그는 감실에서 성합을 꺼내 그 안에 모셔진 성체를 하나만 남기고 자신이 다 영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성체를 오른손에, 성합을 왼손에 들고 급히 바닷가로 내려갔다. 탑처럼 높이 솟아있던 물의 장벽이 그새 모두 부서져 엄청난 높이의 파도가 해안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남자, 여자, 어린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놀라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우리 고향이 완전히 사라지는구나.'하고 생각했다. 라론도 신부는 포효하는 그 물결을 향해 성체를 높이 들고 해안으로 걸어 내려갔다. 그리고 거의 파도 앞까지 다가가서 그 파도를 축복했다. 그러자 거대한 파도가 조그만 성체로부터 불과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그 위력적인 돌진을 멈추더니 한순간 그대로 있었다. 마치 파도가 자신들의 주님이시며 지배자이신 분을 흠숭하여 순종하는 것 같았다. 파도는 더 이상 해안으로 밀려오지 않고 천천히 물러가기 시작하여 조용히 저 먼바다로 달려가 버렸다! 죽을 위험에 처했던 사람들은 이 구원의 기적 앞에 넋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곧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모두 성체를 둘러싸고 그들의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라론도 신부는 성당에서 성광을 가져와 성체를 그 안에 모시고, 성체 대축일 때의 행렬처럼 노래를 부르고 기도하면서 사람들을 이끌고 구원받은 도시를 기쁘게 행진했다. 투마코의 이 기적은 전 세계에 알려져 큰 관심을 끌었다. 같은 날 콜롬비아의 다른 해안 지역은 그 지진 해일로 이곳저곳이 파괴되었다. 자연 재해를 당할 때, 지극히 거룩한 성체로 피난할지어다! 성체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신성과 인성, 살과 피, 육신과 영혼을 모두 지니시고, 주님께서는 참으로 현존하시며, 지상 생활에서 그러셨듯이, 바람과 파도, 폭풍과 우박, 지진과 불길을 다스리시도다! (독일잡지에서)- 마리아 2005년 9~10월 (133호) -

 

성수의 능력 (바오로 헤인즈 슈미트. 마리아니스트회)

다음의 짧은 글은 한국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아킬레스 로베르트 신부의 연례보고서(1908년)에서 발췌한 것이다. 한국 대구에서 생긴 일이다. 음력 정월 초하룻날 역전에 있는 일본인촌에서 화재가 났던 때에 매우 이상한 일이 생겼다. 이 사건은 그리스도인들이 성수에 대해 커다란 관심을 갖게 하는 데 크게 공헌했다. 불은 한 일본인 집 부엌에서 시작되었다. 때마침 바람이 강하게 불어 불은 빨리 번져나갔다. 경찰의 요청을 받아 일본 군인과 한국 군인들이 도와주러 왔다. 그러나 군인들의 노력과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불길을 잡는 데는 속수무책이었다. 군인들은 몇몇 집들을 부수고서라도 불길을 잡으려고 했다. 군인들은 집을 헐어냄으로써 불이 번지지 못하도록 하려고 했다. 희망이 없어져버린 이 지역에 한 그리스도인의 가게가 있었다. 이 가게에는 2만엔(당시 은행원의 월급이 40엔이었다고 함)어치나 되는 상품들이 있었다. 거센 불길과 연기때문에 물건들을 건지기란 불가능했다. 그런데 가게 주인인 교리교사 정 바오로는 성수를 한 병 가져다가 집에다 뿌렸다. 그리고 자신은 불길에 휩싸이지 않게 빠져나왔다. 어! 그런데 왠 기적인가! 갑자가 불길이 나누어지더니, 가게에는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비켜 갔다. 이웃집들은 모두 불꽃의 희생물이 되어 있었다. 긴 대나무 가지에 걸려 집에 기대어 세워져 있던 깃발은 타버렸으나, 집은 그 불바다 속에서도 끄덕없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가게의 벽들이 석회가 떨어져 나간 곳은 있었으나 불에 그을린 곳은 한 군데도 없다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했다. 두 달이 지난 오늘도, 이른 다섯 채의 집들이 재로 변해버린 그곳에 그 가게만 홀로 서있다.- 마리아 2001년 110호(11~12월) -

 

가난한 이의 위로자 ; 성녀 파우스티나 (소피아 미칼렌코 수녀)

"나의 나날은 '투쟁'으로 시작되고 투쟁으로 끝난다. 매일 저녁 때 나는 전쟁에서 돌아온 병사 같은 느낌이 든다." 폐결핵에 시달리고 있던 파우스티나 수녀는 수녀원 현관지기를 하면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불안을 알게 되었고, 때로는 자신이 겸손되게 손을 내민다는 것이 그들에겐 오히려 역겹게 느껴짐 알게 되었다."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나도 그들을 대접하리라"는 것이 그녀의 아름다운 생각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쓰고 있다. "오늘 아침에 누더기를 입고 모자도 쓰지 않고 맨발인 초라한 젊은 남자가 현관문을 두드렸다. 그는 추위에 떨고 있었다. 왜냐하면 장대비가 내리고 있었던 날씨도 매우 추웠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더운 음식을 좀 달라고 했다. 나는 부엌에서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내 약간의 스프를 찾아냈다. 나는 이것을 데우고, 거기에다 빵을 조금 넣어 그 가난한 사람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는 잘 먹었다. 내가 그릇을 가지러 갔을 때 그는 나에게 '자신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갑자기 내 영혼은 이런 말을 들었다. '내 딸아, 이 문을 지나면서 내게 축복을 구하던 가난한 사람들의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렸다. 순종에 이끌리는 너의 자비로움이 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나는 너의 자비의 열매를 맛보러 왔느니라'"

 

발뒤른의 성혈의 기적

발뒤른의 성혈의 기적은 1330년 독일, 지금의 프라이부르크 교구에서 일어났다. 루드비히 바이어른 왕이 신성 로마제국을 다스리던 때였다. 하인리히 오토 신부는 발뒤른의 성 게오르기우스 성당에서 미사 성제를 드리는 중이었다. 성변화의 기도가 바쳐지면, 제대 위에는 빵과 포도주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의 진짜 살과 보혈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 진리가 이날 특별한 기적을 통해 입증되기를 원하셨다. 이 기적은 수세기에 걸쳐 수많은 신자들에게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성사에 대한 믿음을 강화시켰다.
하인리히 오토 신부와 성혈의 기적
하인리히 오토 신부는 성변화의 기도문을 바치고 나서 실수로 성작을 쓰러뜨려 그 내용물을 성체포 위에 엎질렀다. 실수로 성작을 앞지른 사제가 얼마나 놀랐을지는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사제의 놀람은 경악으로 바뀌었다. 성체포가 포도주가 아니라 피로 물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핏자국 가운데에는 열한 개의 가시로 둘러싸인 가시관을 쓰신 채 십자가 위에 못 박혀 계신 주님의 머리가 보였다. 이 순간 사제의 영혼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누가 묘사할 수 있으랴! 흠숭과 경이와 경악과 두려움이 그에게 한꺼번에 엄습했다. 미사에 참례한 많은 사람들이 성작이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혼란 속에서도 무엇보다 신자들이 피에 물든 성체포를 보지 못하도록 방금 일어난 일을 숨기려고 애썼다. 그는 성체포를 급히 옆으로 치웠다. 미사가 끝나고 신자들이 떠나간 후에, 사제는 자신이 미사를 드렸던 제대 위의 제대석을 들어올리고, 피묻은 성체포를 매우 신중하고 정성스럽게 그 밑에 묻었다. 하느님께서 이 계시를 마련하신 것이 아니라면 이 성혈의 기적은 영원히 비밀에 묻혔을 것이다. 얼마 후 성혈의 기적의 증인인 이 사제는 병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잃었다. 밤낮으로 그는 자신이 숨긴 성체포의 핏자국 가운데 새겨진 그리스도의 머리를 생각했다. 그는 흠숭받아야 할 그리스도의 성혈의 기적을 숨길 것이 아니라 마땅한 흠숭을 받으시도록 밝혔어야 했다는 생각에 괴로워 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고통이 점점 켜져 갈수록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고, 양심의 가책도 점점 더 심하게 받았다. 결국 그는 고해신부를 청했다. 그리고 자신이 축성한 보혈을 쏟았을 때 일어났던 모든 일을 고백했다. 그는 통회하고, 자신이 죽은 후에 피묻은 성체포를 파내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흠숭을 받으시도록 공개해달라고 청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미사의 희생 제사 속에서 그리스도의 수난의 재현을 더욱 내적으로 묵상하고, 우리 구세주의 축성된 성혈에 지극한 흠숭을 바치게 해달라고. 하인리히 오토 신부는 고해신부에게 이 모든 것을 털어놓은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평화 속에서 눈을 감았다. 사람들은 제대 밑에서 사제가 묻어놓은 성체포를 발견했다. 그것은 아직도 피에 물들어 있었다. 그 핏자국 속에서는 열한 개의 가시로 둘러싸인 가시관을 쓰신 십자가 상 그리스도의 머리를 볼 수 있었다. 사제의 고백은 거짓이 아니라 정말이었던 것이다. 성대한 행렬 속에 신자들이 흠숭을 바칠 수 있도록 성체포가 공개되고 현시되었다. 수난받으신 구세주의 보혈에 사랑의 흠숭을 바치기 위해 도처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하느님은 이 사랑에 보답하여 수없이 많은 기적을 보이셨다. 많은 병자들이 보혈 앞에서 갑작스레 치유되었다. 발뒤른의 성혈의 기적은 심사를 받았고, 성체포와 함께 모든 심사 기록이 교황 오이겐4세에게 넘겨졌다. 교황은 이 기적이 참되다고 선언했다. 뿐만 아니라 8일간의 성체 축일동안 발뒤른 성당을 찾아가 그곳에서 통회하는 마음으로 성체성사를 받는 신자들에게는 전대사를 수여한다고 발표했다. 피에 물든 성체포가 로마에서 돌아오자 사람들은 큰 기쁨으로 맞았다. 훌륭한 성당이 아름다운 언덕 위에 특별히 세워졌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발뒤른으로 향한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오랫동안 자신의 죄를 부끄러워할 줄 몰랐던 죄인들이 바로 거기에서 눈물을 흘리며 통회하고 고해성사를 보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났다. 순례자들은 그곳 은총의 제대 앞에서 기쁘게 고백한다. 사제가 빵과 포도주 위에서 내리는 성변화의 말씀이 빵을 진짜 살로, 포도주를 참으로 성자의 보혈로 변화시킨다는 것을. (독일 잡지에서)- 마리아 2005년 9~10월 (133호)



■ 묵주기도와 레판토 해전


1. 묵주기도 성월의 유래

묵주기도 성월은 개인과 가정성화, 인류구원과 세계평화를 위하여 묵주기도를 바치는 달로,

묵주기도로 승리를 거둔 레판토 해전의 날(107)을 기념하여 교황 비오 5세가 이 날을 묵주기도의 기념일로 정하였다. 그후 1883년 발표한 교황 레오 13세의 회칙 『수프레미 아포톨라투스』(Supremi Apostslatus)에 의해 10월이 묵주기도 성월로 설정되었다.

 

2. 묵주기도 (默珠祈禱rosary)의 유래

묵주기도(로사리오rosario)의 뜻은 ‘장비꽃다발’혹은 ’장미 화관’이라는 뜻이다. 중국에서는 이를 ’매괴’, 혹은 ’매괴 신공’이라고 했다. 묵주기도의 기원은 초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교인들은 자신을 신()에게 바친다는 의미로 머리에 장미꽃으로 역은 관을 쓰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초대 교회 신자들에게 전해져 신자들은 기도 대신 장미꽃을 봉헌하곤 했다특히 박해 당시 신자들은 원형 경기장인 콜로세움에 끌려가 사자의 먹이가 될 때 머리에 장미꽃으로 엮은 관을 썼는데 이것은 하느님을 뵙고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는데 합당한 예모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때 박해를 피한 신자들은 순교자들의 시신을 거두면서 순교자들이 썼던 장미화관의 장미 꽃송이마다 기도를 한가지씩 바쳤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는 이집트 사막의 은수자들이 죽은 자들을 위해 시편 150편을 매일 외웠는데, 작은 돌멩이나 곡식 낱알을 머리에 쓰는 관처럼 둥글게 엮어 하나씩 굴리며 기도의 횟수를 세었다고 한다.

13세기 도미니코 성인에 의해서 성모송을 150번 바치면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생애를 묵상하는 것이 ‘도미니코 묵주기도’이다. 성 도미니코는 이단 세력이 교회를 위협하자 이탈리아와 프랑스 각지를 돌면서 신자들에게 묵주기도를 바치라고 호소했다. 이에 신자들은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쳤고, 그 결과 이단 세력은 점차 줄어들었다. 오늘날과 같은 묵주기도는 15세기에 생겨났다. 알랑 드 라 로슈 수사(성 도미니코 수도회)는 1464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강생과 수난, 부활에 따라 환희ㆍ고통ㆍ영광 등 세 가지 신비로 나눴다. 이 기도가 널리 퍼지자 1569년 교황 비오 5세가 15단 양식으로 묵주기도를 제정했다. 묵주기도가 급속히 확산한 것은 19세기 들어 곳곳에서 발현한 성모 마리아가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칠 것을 권고하면서부터다. 성모 마리아는 1830년 파리, 1858년 루르드, 1917년 파티마에서 발현할 때마다 묵주기도를 많이 바치라고 간곡히 요청했다. 환희ㆍ고통ㆍ영광의 신비 15단을 바치던 묵주기도에 빛의 신비를 더한 이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다. 요한 바오로 2세는 2002년 10월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를 반포하면서 ‘세상의 빛’(요한 9,5)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활을 묵상하는 ‘빛의 신비’를 추가했다. 이로써 신자들은 묵주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전 생애를 온전하게 묵상할 수 있게 됐다.

 

3. 레판토 해전

1883년 레오 13세 교황에 의해 승리의 성모 축일(10월 7일) 이 축일로 정해진 것은 레판토 해전 때문이다. 1571년 그리스도교 군대가 이슬람 군대에 맞서 싸운 큰 전투가 코린토 인근 레판토 만(灣)에서 벌어졌다. 당시 성 비오 5세 교황이 그리스도교 연합군 원정대를 조직했는데, 이슬람 국가인 터키의 함대가 로마에 상륙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때 연합군으로 참가한 군인 가운데 한 명이 유명한 소설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스페인)다. 양측 해군이 전투를 치르는 동안 바람이 터키군에게 유리하게 불자 교황은 교황청에 있는 고위 성직자들을 모두 불러 모아 무릎을 꿇고 승리를 빌며 묵주기도를 바쳤다. 그리스도교 군대가 대승을 거두자 교황은 묵주기도를 바친 이 날을 승리의 성모 축일로 제정했다. 오늘날에는 묵주기도의 동정 마리아를 기념하는 축일로 지낸다.

10세기 이상 이슬람교도들은 파괴로서 세상을 위협했다. 이들 함대는 지중해 연안을 돌아다니면서 인접 도시들을 약탈하고 교회를 더럽히고 파괴했다. 남자들은 고문을 당하고 여자들은 잡혀서 노예 시장이나 첩으로 끌려갔다. 아이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살해당하지 않으면, 이슬람교식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아프리카 주변에서 스페인에 이르기까지 강대한 세력을, 성지 이스라엘에서 그리스까지 그 세력을 키워나갔다. 오스만 제국(오스만 투르크, 터키 (6.25 때 우리를 도와준 우방국으로 이슬람교를 믿음))은 이탈리아와 스페인을 점령하려 했다. 일단 이 두 나라가 점령당했을 경우 전 유럽이 위험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교황 비오 5세는 그러한 위협을 깨닫고 전 유럽 국가들에게 하나로 단결하여 침략자를 분쇄하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프로테스탄트의 이탈에 의해 교황의 영향력이 훨씬 감소된 때였다. 교황의 호소에 응답한 것은 베네치아와 스페인 두 나라뿐이었다. 1571년 레판토에서 이슬람교의 오스만 제국(지금의 러시아를 연상할 정도로 강력하고, 넓은 영토를 차지하여 술레이만 1세 전성기 때는 발칸반도,서아시아, 북아프리카 3대륙의 20여 민족, 6,000만 명을 지배하는 대제국이었다.) 이 그리스도교에 도전하였던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군대(제3차 레판토 해전에는 베네치아, 스페인,오스트리아,제노아,사보이,말타(몰타),교황 군대등의 연합 )는 오스트리아의 돈 주앙(돈 요한)에 의해 통솔되고 있었고 이슬람교도의 막강한 함대의 군대는 오치아의 파스하에 의해 통솔되고 있었다. 파스하의 목표는 지중해를 장악하려는 해전이었다. 교황은 돈 주앙에게 강복을 보내면서 오직 도덕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로만 부대를 편성하라고 요청했다. 그는 사령관에게 그렇게 하면 틀림없이 승리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렇지만 사람의 무기는 믿을 만한 것이 못되었다. 해전이 일어나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곳에 한 군사가 있었으니 그의 팔은 기도 속에 높이 들려져 있었다. 그분은 바로 교황 성 비오 5세였다. 첫 대포가 레판토 해변을 쏘기 전부터 그는 전쟁을 위해 묵주(로사리오)기도를 빼내들고 있었다. 그는 2년 전부터 가톨릭 신자들에게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라고 명하였던 것이었다. 거리에서 모여 40시간 행렬기도를 하였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들의 손가락은 묵주알을 굴렸던 것이었다.

 1571년 9월 30일 마침내 함대가 출전했다. 출전하기 전 모든 병사들은 성사를 받았다. 돈 요한 (돈 주앙)은 함대의 키를 조종하였다. 전쟁터의 포근한 10월 아침에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이 무릎을 꿇었고 영성체를 하였다. 그리고 나서 두 시간 동안 군사들은 각자의 함대에 흩어져 묵주를 손에 잡고 기도하였다. 함대가 출전한 순간부터 교황은 초조한 마음으로 소식을 기다렸다. 그는 모든 신자들에게 그리스도교 함대의 승리를 위해서 묵주의 기도를 하라고 요청했다. 그는 추기경들에게 보속으로 하느님의 자비를 얻기 위해 단식과 애긍을 하라고 지시했다. 로마 시의 모든 가톨릭 교회에서는 기도의 행사를 했다. 교황 자신은 3일간 단식하면서 꿇어 기도했다. 매괴회 회원들은 특히 열심히 기도했다. 

1571년 10월 7일 아침, 양편 함대는 코린트 만의 레판토 근처에서 맞부딪쳤다. 이탈리아의 들판을 가로질러 로마시내에는 추기경들이 회의실에 모여 있었다. 교황은 좌석 한 가운데서 오른쪽으로 일어서서 창문을 응시하곤 하였는데, 그는 갑자기 얘기를 중단하고 의자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더니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잠시후 그는 행복에 가득 찬 환한 얼굴로 보좌관을 쳐다보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일할 때가 아니오. 가서 하느님께 감사하시오. 우리 군대가 방금 오스만 투르크(오스만제국, 터키)함대를 무찔렀소." 하고 단순하게 공표하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2주 후 사자가 도착하여 승리의 소식을 알렸다.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 그때까지 오스만 제국(터키) 함대에 유리하게 불던 바람이 돌연 방향을 바꾸었던 것이다. 전투는 하루 종일 계속되었다. 그 결과는 그리스도교 함대의 대승리였다. 그리스도교 유럽은 구원을 받았다.  

후에 성인품에 오른 비오 5세는 레판토 승전의 날인 매년 10월 7일을 승리의 성모 축일로 지낼 것을 명했다. 이 날은 그 후 지극히 거룩한 로사리오의 축일로 변경되었다. 이 축일의 달인 10월은 지극히 거룩한 로사리오(묵주) 성월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 군은 18세기에도 두 번이나 다시 침략했지만 매번 성모 축일에 패배하여 달아났다. 그 때마다 사람들은 커다란 신념을 가지고 로사리오(묵주) 기도를 올렸다. 이제까지의 중요한 승리에 있어서 인간의 힘보다는 하느님의 관여가 더 큰 역할을 했음은 명백하다. 그것은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발췌:'마리아(maria)' 통권 95호, 로렌스 언더둥크, 아베마리아출판사, '세기의 승리자, 돈 샤키 저, 오기선 (신부) 옮김, 가톨릭출판사)

 포르투갈의 파티마에서 마지막 발현 날 성모님은 "나는 로사리오의 부인"이라고 스스로 일컬으셨다. 1858년에는 프랑스의 루르드에서 묵주를 들고 발현하셨으며, 1884년 성모님은 이탈리아 나폴리의 포르투나 아그렐리에게 "거룩한 로사리오의 여왕"이란 칭호를 가장 귀중하게 생각하신다고 말씀하셨다. 세계 평화를 위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구원의 명확한 표지인 묵주기도(로사리오 기도)를 매일 바치기 바랍니다. "전쟁이 끝나고 세상에 평화가 오도록 매일 묵주기도를 바쳐라. 묵주기도의 모후만이 그것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파티마 성모님)



201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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