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STORY 2014 우수블로그
TISTORY 2012 우수블로그
TISTORY 2011 우수블로그
TISTORY 2010 우수블로그
Recent Posts
Recent Comments
Link
관리 메뉴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

'자이언트' 조민우(주상욱)의 독백 본문

종영 드라마 분류/자이언트

'자이언트' 조민우(주상욱)의 독백

빛무리~ 2010. 7. 28. 11:45
반응형






내가 정연이를 왜 사랑했을까? 그녀도 믿지 않았고, 다른 누구도 믿지 않겠지만 정연이는 처음으로 내가 원해서 선택한 내 여자였다. 다만 아버지가 선택한 정략 결혼의 상대자와 일치했을 뿐이었다. 예전에는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절대로 아버지를 이길 수 없으니까, 아버지가 원하는 다른 여자와 결혼함으로써 그녀를 잃는 것보다는 이렇게라도 내 곁에 두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던 거다.

하지만 결국 나는 잃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여자가 아니었다. 내가 그녀를 사랑한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었는데, 나는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면서도 그 마음을 움직이려 하지 않고 억지로 붙잡으려 했다. 나 자신의 어리석음을 뼛속이 아플 정도로 절실히 느끼게 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꼭 두 사람 존재한다. 아버지, 그리고 황정연.


지금은 아주 가끔 다른 생각을 한다. 만약 정연이가 황태섭 회장의 딸이 아니고 그냥 평범한 여자였다면, 그런데 내가 우연히 당당하게 빛나는 그녀의 내면을 보고 사랑하게 되었다면, 하지만 아버지가 내 정략 결혼의 상대자로 그녀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가 내 마음을 받아주기만 했다면, 나를 사랑해 주기만 했다면, 혹시라도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와 맞설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버지와 맞서서 이길 수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나 혼자서는 결코 이길 수 없지만, 그녀가 내 편이 되어 주기만 했다면, 그녀와 내가 힘을 합칠 수만 있었다면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부질없다. 나는 중정 감찰국장 조필연의 아들이고, 그녀는 만보건설 황태섭 회장의 딸이다. 내 아버지는 권력을 이용해서 그녀의 아버지를 위험에 빠뜨렸고, 그녀는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나와의 정략결혼을 승낙했다. 그녀의 성품상, 나를 사랑하기는 커녕 혐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너무도 당연했다.


아버지는 무엇이든 다 알고 있다. 이강모가 움켜쥐고 내놓지 않는 땅문서 때문에 도움을 청하려고 했을 때도,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무슨 말이 나올지를 그는 훤히 알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아버지는 정확했다. 언제나 감정적으로 정연이에게 질질 끌려다니는 못난 내 모습을 단숨에 꿰뚫어 본 것이다. 그 감정부터 깨끗이 정리한 후에 다른 방법을 찾아내라면서, 아버지는 내 뺨을 후려쳤다.

그 모습을 이미주, 그 계집애한테 들키고 말았다. 정말 귀찮은 녀석이다. 계속 달라붙으며 신경쓰이게 한다. 그 음반 회사를 통해 광고 컨셉이 유출됨으로써 회사에 입힌 손실이 얼만데, 김밥이나 세차 따위로 무마시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할 만큼 멍청한 녀석이다. 황정식이 같은 놈에게 청탁을 하면 자기가 어떤 일을 감당해야 하는지도 모를 만큼 순진한 녀석이다.


회장 아들 정식이한테 고소를 취하해 달라고 부탁하러 온 날, 그 계집애의 꼬락서니는 가관이었다. 빌려입은 티가 뚝뚝 떨어지는 옷을 걸치고, 눈과 입을 찡긋거리며 어설픈 추파를 던지는 모습에 나는 갑자기 짜증이 치밀었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그 녀석이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2년 전, 우연히 마주쳤을 때, 지갑을 소매치기당한 나를 걱정하며 차비로 쓰라고 토큰 한 개를 내밀던 그때의 모습과 너무 달라서 화가 났던 거다.

그렇다고 내가 정식이의 손에서 구해 주어야 할 이유는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정식이를 따라가려는 그 녀석의 팔을 낚아채어 내 차에 태우고 말았다. 그래도 조금은 순수해 보이는 그 녀석이, 정식이 같은 놈의 손을 거치며 결국 똑같이 그렇고 그런 계집애가 되어가는 꼴이 왠지 보기 싫었다. 하지만 고마운 줄도 모르는 그 녀석은, 자기 몸은 자기가 지킬 수 있다며 큰소리를 탕탕 치더니 내 이마를 들이받았다. 웃기는 녀석이었다.


정연이에게서 버림받은 것을 다시 확인하고, 내 속을 훤히 꿰뚫어 보는 아버지 앞에서 발가벗겨진 듯 수치스럽게 선 채로 어줍잖은 변명을 하다가 뺨을 얻어맞는 순간, 수없이 겪은 일이면서도 다시 절망감이 밀려왔다. 나는 결코 사랑을 얻지 못할 것이고, 아버지의 인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내 뜻을 세우며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평생을 이렇게 살아가야 할 내 인생이 새삼 서글펐다.

그렇게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을, 이미주 이 계집애가 내 차 뒷좌석에 숨어서 다 보고 있었던 거다. 나는 상처받았을 때면 언제나 그렇듯, 내 안에 마련해 둔 깊은 호수에 홀로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 녀석이 나타나 고요한 물을 마구 휘저으며 손을 뻗어서 나를 잡아 끌어 올렸다. 황당했다.


그 녀석은 좀 전까지 내 차를 닦느라고 걸레를 만졌을 그 손으로 내 손을 덥석 잡았고, 심지어는 그 손으로 김밥을 집어서 내 입에 넣어 주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일을 많이 하며 자란 듯 나이에 비해 거칠고 투박한 그 손의 감촉도 괜찮았고,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김밥의 맛도 싫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혼자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나는 그 녀석이 조수석에서 잠든 사이에 몰래 김밥 몇 조각을 집어서 입 안 가득 밀어 넣었다. 웃음이 났다. 입을 움직여 씹을 수도 없을 만큼 가득히 들어찬 김밥의 부피감이, 왠지 텅 비어 있던 내 마음을 약간은 채워 주는 듯 했던 거다. 이런 것으로 흐뭇함을 느끼는 나 자신이 너무나 어이 없어서 웃음이 났다. 참 묘한 녀석이다.


하지만 이것도 지금 뿐이다. 나는 조필연의 아들 조민우니까, 오늘과 똑같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는 내 인생에, 잠시의 미친듯한 웃음은 지금 이 순간 뿐이다. 나는 알고 있다.


* Daum 아이디가 있으신 분은  버튼을 누르시면, 새로 올라오는 제 글을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추천에는 로그인도 필요 없으니, 글이 마음에 드셨다면 아래의 손바닥 한 번 눌러 주세요..^^

반응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