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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5.18 민주화운동(내공100)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2,029 작성일2012.08.02

 5.18이 왜 민주화운동이죠?

96년 검찰수사기록상에도 학생들이 돌을 던지고 경찰서를 불태우고

사망자의 69프로가 무기고 총에의해 사망했다하는데

왜 교과서에서는 민주화운동이라고 하죠?폭동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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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폭동입니다.

5.18이 민주화운동이란것은

명백한 사기입니다.

계엄군이 자위권으로 총을쏜 상황을 폭도들이 만들었죠.

계엄군에 차량을 돌진시키고 경찰에 차량을 돌진시켜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했지요.

또 5.17 비상계엄은 정당한 헌법명령이었습니다.

최규하와 이희성계엄사령관이

당시의 폭력난동을 진압하기위해

비상계엄을 발동한것입니다.

수십만 데모 군중이 연일 최규하정부 물러나라고 난동을 부리고

경찰을 깔아 죽이고 파출소를 불태우고....

이런 상황에 비상계엄을 선포하지 않을 대통령이 어디 있겠습니까?

해서 5.17비상계엄을 선포한거에요.

이 비상계엄을 불러오게한 원흉이 바로

김대중 입니다.

김대중은 박정희가 서거하자

이때다 하고서는

폭력시위를 주도하면서

최규하정부에 엄포를 놓고

정권을 내어놓으라 협박한것입니다.

이런것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용납될수 없는 반란행위지요.

이런 관계로 5.18폭동 진압이후 김대중은 사형선고를 받게 되는겁니다.

5.18폭동이 일어나고

공수부대원은

헌법이 명한데로 시위진압에 나선것이고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김대중의 하수인들은 폭력시위를 벌였고

수많은 유언비어를 퍼트리면서

일반시민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합니다.

그 유언비어가 모두 지역감정유발시키는 거짓말들입니다.

요즘 말로 보이스 피싱이라고 봐야겠죠.

이렇게 폭력시위가 극에 달하면서

부상자 사상자가 속출하게 됩니다.

전쟁을 방불케하는 폭력시위현장에서

이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어야 한다는건 불가능한 주문입니다.

그리고 비상계엄하에서

시위는 어떤 이유든 불법이고

진압당해야 하는겁니다.

사실이 이런데 어떻게 5.18폭동이 민주화운동이 됩니까?

현재

교과서나

방송등에서 나불거리는

대국민사기 민주화운동 픽션은

89년 황석영 윤이상이

월북하여

김일성 지령받아 만든 픽션입니다.

해서 이 내용은 엄청 허술합니다.

요약하자면

전두환이 쿠데타를 했다.

이를 막기위해 광주시민들이 시위를 했다.

전두환은 광주시민을 학살하라 지시했다.

입니다.

자 여기서 이 엉터리 픽션의 핵심이 있습니다.

전두환이 쿠데타를 하여 정권을 찬탈하려 한다는 정보를

광주시민이 어떻게 알았는가 하는겁니다.

전두환이 쿠데타 한다고 자랑하고 다녔습니까?

전두환이 쿠데타를 할려고 하였다면

비밀스럽게 진행하는 것이 상식입니다.

만약 전두환이 쿠데타를 하려한다는 정보를

전두환 측근이 광주시민에 주었다면

그 측근이 누구인지 밝혀야겠지만 그런 인물은 전혀 없습니다.

또 광주시민들이 만약 그 쿠데타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다면

그것이 사실인지 어떻게 확인했는가 입니다.

한나라의 정권을 무력으로 찬탈하려 한다는 정보는

매우 중대한 사건이고 그에대한 정확한 정보 확인 절차가 있어야 합니다.

자 어떻게 광주시민들은 전두환이 쿠데타를 하려 한다는 정보를 확인했을까요?

89년 황석영이 월북하여

김일성 지령받아 만든

5.18 항쟁 픽션에는 이런 사항이 없습니다.

사실관계에서도 이런 사항은 전혀 없습니다.

5.18폭동 사기꾼들이

폭동을 무리하게 사기치려다 보니

이런 사항이 쏙~ 빠진거죠.

또한가지

전남 무기고 38개가 단 4시간만에 털렸습니다.

극비사항인 무기고위치를 광주시민은 어떻게 알고있었는가 하는 겁니다.

2개연대분의 무기가

단 4시간만에 털렸는데

이 사항을 점검해 봅시다.

먼곳은 100키로

인접한 반경 40키로

내의 극비사항인 무기고 38곳이 털렸습니다.

단4시간 만입니다.

목적지로 가는데 1시간..

(버스내에는 무기를 탈취할 조직이 미리 탑승하고 있었고

이는 대략 16명 의 인원일겁니다.

무기고 위치 정보보유자 1명

운전자 1명

무기적재자 10명

내부 감시자 2명

외부 감시자 2명

이들은

이들만 무기고를털러가면 정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기때문에

위장 그리고 들러리로 시민들을 탑승시킵니다.

그리고 무기를 적재할 군용 트럭도 몰고 갑니다.

군용 트럭에는 대략 2.5톤의 무기가 적재 됩니다.

이이상 적재 되면 트럭이 낙오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군용트럭에는 적량의 무기를 적재해야 하는것이고

이 무기들의 쓰임새와 적재시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노하우가 있어야 합니다.

이런 준비를 하여 목적한 무기고 까지 가는데 1시간 걸릴겁니다)

무기를 적재하는데는 빠른 속도가 필요했을겁니다.

정부에서 급파된 정부요원들이 이들의 사진을 찍을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화려한 사기극의 실체 5.18 내용을 보면 실제 그런 일이 있었다

북특전사 출신들이 증언하고 있습니다.

해서 10여명이 대략 2.5톤의 무기를 빠른 속도로 적재했을겁니다.

다시 시위장소로 복귀하는데 대략 30~40분 정도 소요 되었을 겁니다.

먼곳은 더 많은 시간을

그리고 예비군대대나 지서에는 더 많은 차량과 인원이 갔을 겁니다.

즉 전남지역에 널려있는 38개 무기고 ....직경 100키로 미터 내의...

무기고를 단 4시간만에 이런식으로 다 털었다는 것은

사전 준비가 매우 치밀한 군사 작전이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는 대한민국 현역 군인들로

6개월이상 훈련을 시켜도 불가능한 군사 작전이었습니다.

이런 사항을 어찌 광주시민들이 할수있었겠는가

그런데 2006년 북특전사 출신 탈북자들이

5.18폭동당시

북특전사가 남파되어

폭동을 유발 확대시키기 위해 무기고를 털었다 진술하였으며

그 내용이 매우 구체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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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폭동이 진압되고나서

전라도에서는 지역감정이 극에 달합니다.

경상도 차량에는 기름을 주유해주지않고

경상도 사람에는 밥도 팔지않고

경상도 사람에는 여관방도 내어주지 않고

경상도 사람에 김대중 만세 삼창을 부르게 시켰습니다.

민주화 운동 했다면서

왜 지역감정이 극에달하여 경상도 사람에 저런 행동을 했을까요?

이는 지역감정 유발시키는 유언비어에 일어난 폭동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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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옹호론자들의 주장
수사기록은 신군부가 작성한것이므로 믿을수없다.
교도소 습격사건은 조작이다.
탈북자들의 주장은 증거가 없다.
5.18측 자료는 유네스코가 인정했으므로 믿을수있다.
전두환은 하극상을 일으켰다.

+++++++++++

5.18이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는측은 5.18측 주장만 옳다하고
5.18이 폭동이라고 주장하는 측은 5.18측 주장이 틀렸다고 하는겁니다.
그러니 5.18이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신다면
5.18측이 제시하는 자료들중 의문나는 점을 해결해줘야 하는겁니다.

그런데 그 의문나는점이 5.18의 핵심 내용입니다.
5.18이 일어나게한 원동력이고
확장되어 대규모 무장시위를 하게된 두뇌라고 할수있죠

다이너 마이트가 광주 시민이라면
이 다이너 마이트가 터질수 있도록 불을 당긴 사람말입니다.

누군가 전두환이국권 찬탈하려한다고했다 ,
누군가 경상도군인이 전라도 씨말리러 왔다고 했다,
누군가 무기고를 털자고해서 몰려갔다,
누군가 무기고 위치를 알아서 따라갔다,
누군가 교도서를 습격하자고해서 따라갔다...

이런 5.18을 민주화운동이라 주장하는측의 자료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누군지는 몰라도 누군가가 그렇다 하기에 확인도 하지 않고
쫒아가서 얼떨결에 민주화운동했다....입니다.

그럼 왜 누군가가준 정보
그리고 누군가가준 정보의 진위확인이 중요한지
설명하겠습니다.

++++++++++

예를 들어
차가 도로가에 한대 서있습니다.
그리고 그 차 앞에는 한 여인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 옆에는 운전자가 그 여인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10여명의 남자들에게
누가 차로 저 여인을 치어 살해했다 알려줍니다.

그래서 그 10명의 남자들이 화가 단단히 나서
사건 현장으로 달려가려 합니다.

헌데 누군가 이들에게 몽둥이를 줍니다.

그 몽둥이를 들고 사건현장으로 달려가
그 운전자를 두들겨 패 줍니다.
그리고 운전자가 사망했습니다.

자 이 10명의 남자들은 의인일까요?
폭력배 일까요?



나중에 안 사실은
도로가에 피를 흘리고 쓰러져있는 여인을
운전자가 발견하고 앞에 차를 세웁니다.
그 여인의 상태를 확인하려 앞에 서있었던 겁니다.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누가 10명의 남자들에게 그 정보를 줬는지
누가 몽둥이를 줬는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이들은 의인일까요?
폭력배일까요?


++++++++++++++++

그러면 이런질문을 할수있을겁니다.

만약 실제 그 운전자가 그 여인을 차로 치었다면
그들은 의인인가? 폭력배인가?

이에 대한답은 매우 간단합니다.

그렇다면 민주화운동이란것이
모 아니면 도로
정확한 사실확인 없이
누군가의 말에 의존하여
일단 저지르고 본다음
운좋게 맞아떨어지면 민주화운동이되고
아니면 폭력배가 된단 말인가?

++++++++++

이렇기 때문에

최초정보제공자

최초정보전달자

정보의 진위확인자가 중요한겁니다.

+++++++++

5.18폭동 옹호론자들이 절대 거짓말 할수없는 내용 (1).

전두환이 정권을 찬탈하려 한다는 정보말이죠
이는 엄청난 중대 사건입니다.

한나라의 정권을 무력으로 잡겠다는거죠
그럼 이 정보를 누군가 알아내서 대학생이나 광주시민에게 전달했을거 아닙니까?

그사람이 누구입니까?

설마 누구인지도 모르는 어떤이가 그런 중요한 정보를 광주시민에게
전달하여 무장투쟁을 하자 했는데

아무런 확인도 없이 네~그렇군요 하고서는
무기고 탈취하여 계엄군에 총을 쏜게 아니것죠

그리고 그 누군가 즉 정보를 전달한 이의 정보가
정확하다는걸 광주시민들은 어떻게 확인하였는가?

(전두환이 국권을 찬탈하려한다.

최규하는 허수아비다. 이에대한 정보 진위를 어떻게 확인했나요?)

사실확인을 했으니
"맞다! 전두환이 정권을 찬탈하려한다 는 정보와 사실이 딱~ 맞다"
인정하고 무장투쟁을 했겠지요.

이런 사실확인도 없이
무작정 무기고 털어서 무장항쟁을 하진 않앗겠지요

자! 누가
어떤경로로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아내서
광주시민 누구에게 전달하였고

그 광주시민은 어떻게 그 사실이 맞다는걸
확인 하였는지
설명해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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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폭동 옹호론자들이 절대 거짓말 할수없는 내용 (2).

38개 무기고 위치를 누군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왜 그들은 왜 나타나질 않는가?
국가 유공자가 뭔지 몰라서?
죄의식때문에?
아니면 38개 무기고 위치를 안사람은
현재 대한민국에 살지 않아서?
설마 귀신이 38개 무기고 위치를 알려줬다고 말하고 싶은건 아니겟죠.

누군가는 알고있었것지?

무기고 탈취는 매우 중요한 대목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그 위치를 누가 알려줬는지 아무도 모른다?

즉 5.18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사람이 있기는 한데
누구인지는 모른다?

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사람
광주5.18의 핵심 역할을 한사람
이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모릅니다.

정보 유출자
정보 전달자
정보 확인자
정보 확산자

무기고 위치를 알고있었던자 최소38명

이들은 어디로 사라진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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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보제공자와 38개무기고위치정보제공자가 누구인의
중요성이 또하나 있습니다.
만일 5.18이 민주화운동이라고 주장하는 측에서
위 정보제공자들을 알지못한다면
5.18의 주인이 바뀔수 있다는 겁니다.

5.18의 주연급들이 누군인지 모르기때문에
막말로 개나 소나 돼지가 와서 그 정보는 내가 알려줬다 라고 한다면
5.18의주인이 정신병자 혹은 개나 소나 돼지가 될수 있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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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정보제공자 무기고 위치 정보제공자 이들이 사망했다 가정한다면
만약 이들이 사망했다고 한다 하더라도 또다른 의문이 여기 가세하는 겁니다.
이 중요 정보제공자의 정보를 확인한 절차가 없다는것이 이상한겁니다.
누군가 최초 정보를 줬는데 100퍼센트 믿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시위를 했다?
극비사항인 무기고 위치를 누군가 알고있어 안내하는데 이에 아무도 의심을 갖지 않았다.?
38개 무기고를 털러간 38개 조직이 있습니다.
이 조직들중 극비사항인 무기고위치정보제공자에 대하여

신분이나 그 정보를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물어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 의혹을 해소시켜 주지 않는다면
결국 5.18주인공은 북 특전사 출신들이 되는겁니다.

누군가 전두환이국권 찬탈하려한다고했다 ,
누군가 경상도군인이 전라도 씨말리러 왔다고 했다,
누군가 무기고를 털자고해서 몰려갔다,
누군가 무기고 위치를 알아서 따라갔다,
누군가 교도소를 습격하자고해서 따라갔다

그런데 북특전사 출신들이 그 누군가가 우리요 하고 5.18의 주인임을 천명했고
이에대한 구체적 진술을 했습니다.

자 이 사건 즉 북특전사들의 증언

이들이 증언한 5.18관련 내용의 의미가 바로
5.18주인이 없다는 것이고, 5.18측에서 그 누군가를 제시하지 못하면
5.18주인은 북특전사가 될수있는겁니다.

특히 유언비어 그리고 38개 무기고 위치를 어떻게 파악하여
38개 분팀을 만들어 무기고까지 갔는지 매우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5.18이 순수 광주시민들에 의해 일어났다면
빨리 정보제공자 ,38개 무기고위치 정보제공자를 찾아내야 하는겁니다

누군가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내고 뺑소니를 쳤다.
운전자는 도망쳐 어디론가 사라지고 자동차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그럼 자동차가 범죄자인가?
운전자가 범죄자죠?
그 운전자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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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남은
5.18유네스코등재 설명은 매우 간단합니다.
히로시마 원폭돔도 평화의 상징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는 특별한 사건이면 무엇이든 등재시킬수 있는곳입니다.

따라서 5.18이 유네스코에 등재되었다고

민주화운동이라 고무도장을 찍어준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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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폭동 옹호론자들이 절대 거짓말 할수없는 내용 (3).

전두환은 하극상을 일으켰다?
정승화가 계엄사령관이고 전두환보다 계급이 높아서
보안사령관인 전두환이 체포하면 하극상이 된다?

그렇다면 상급자가 범죄를 저지르면 모두 하극상이 되고
대통령이 범죄를 저지르면 아무도 체포할수 없는것인가?
대한민국의 법은 만인에 전국민에 공평하기때문에
대통령이든 계엄사령관이든
범죄를 저지르면 집행자에 의해 언제든지 체포될수있다.

정승화는 범죄자 김재규의 뜻에 동조하여 직속상관인
국방장관의 명령없이 불법적인 계엄선포를 진행했고
이과정은 5.18민주화운동이라 주장하는 측에서도 알고있는 내용이다.

(제 블로그 12.12의 진실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즉 정승화는 운좋게 계엄사령관이 되기 이전에
범죄를 저질렀고 범죄자가 계엄사령관이 된것에 불과하다.

정승화와 최규하는 전두환에 조사를 받고있다는 사실도 알고있었다.

만약 정승화를 체포한것이 하극상이나 쿠데타가 된다면

정승화와 최규하를 수사한것도 하극상이고 쿠데타가 되는것이다.

그런데 정승화와 최규하는 전두환의 수사에 적극협조를 하였다.

특히 정승화는 전두환의 수사과정에 수차례 번복까지 하였다.

수사를 받는다는것은 용의선상에 있는 사람들이고

이는 곳 혐의가 있으면 언제든지 체포된다는 말이다.

즉 수사를 받고있던 정승화 최규하는 언제든지 체포될수있다는것에 동조한것이나 다름없다.

또 전두환의 수사내용이 부당하다 여겨지면 법정공방을 통해 밝히면 되는 일이었다.

이것이 어떻게 하극상이요 쿠데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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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폭동 옹호론자들이 절대 거짓말 할수없는 내용 (4).

최규하는 전두환의 허수아비다?

전두환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였길래

그리고 최규하가 얼마나 나약했길래

허수아비가 된단말이죠

최규하가 허수아비라는 과학적 근거는 무엇입니까?

만약 최규하가 허수아비였다면 왜 지금은 대통령이 누군가의 허수아비가 되었는지

조사하지 않습니까?

전두환보다 더 무서운 김일성 김정일의 허수아비도 될수있을것이고

함마 전기톱 최류탄이 날아다니는 공포의 국회를보고 허수아비가 될수있을것이고

보다더 효과적인 최면이나 약물 아니면 가족을 인질로 잡아 협박하여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들 가능성도 있는거 아닙니까.

이렇게 비추어볼때

만약 최규하가 전두환의 허수아비였다면

김영삼은 박계동의 허수아비고

노무현은 김대중의 허수아비고

김대중은 김정일의 허수아비고

이명박은 촛불좀비의 허수아비가 맞는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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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이 5.18폭도들과 다른것은

전두환은 정승화의 범죄사실을 면밀히 조사하여
증거를 확보하고 법에따라 체포한것이고

5.18폭도들은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 의하여 들은 정보를
확인도 하지 않고 누군가가 털어준 무기로 무장하여
폭동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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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옹호론자들의 5.18기록을보면

누군가 전두환이국권 찬탈하려한다고했다 ,

누군가 경상도군인이 전라도 씨말리러 왔다고 했다,

누군가 무기고를 털자고해서 몰려갔다,

누군가 무기고 위치를 알아서 따라갔다,

누군가 교도소를 습격하자고해서 따라갔다.

즉 5.18민주화운동설을 보면

머리는 없고 몸통만 있습니다.

더욱 웃긴건 민주화운동이라고 대대적으로

매년 5월 18일 마다 기념하면서 5.18의 주역 핵심인물이 누구인지

대한민국 국민들은 물론이고 광주시민들,5.18을 연구하는 단체들 조차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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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태에서 전두환이 쿠데타를 하려한다는 정보를 정신병자가 줬다며 이런 주장을 할수도 있을겁니다.

5.18이 일어나게된 최초 정보제공자는...

어떤 정신병자때문 이었습니다.

이 정신병자는 누가 한말을 1년동안 반복하는 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운좋게 정신병원을 탈출합니다.

정처없이 돌아다니다.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궁금이왈 쿠데타가 뭐야 하고 물엇습니다.

아직 코흘리게인 친구 띨띨이가 그걸 알리 없엇습니다.

헌데 TV에 전두환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냅다.

전두환에게 물어봐

하고 답해줬드랍니다.

그걸본 정신병자는 전두환이 쿠데타를 안다? 라며 중얼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전두환이 쿠데타를 안다?

그는 잠자는 시간을 빼고서는 전두환이 구데타를 안다?를 반복햇습니다.

그 정신병자는 정처없이 걷다 전라도 광주까지 갔더랍니다.

전두환이 쿠데타를 안다?를 중얼거리면서.

전라도광주에 도착한 정신병자는 기진 맥진 힘이 다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중얼거렷습니다. 전~두~환이 쿠~데타를 하~아~안~다?

전남대 앞에서 비틀거리기 시작햇습니다.

그를본 광주시민이 놀라 그를 부축해 줍니다.

그는 그 광주시민을 보며

마지막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전~두~환이 쿠~쿠~데타~를 하~아~안~다?

이말에 놀란 광주시민들이 전두환이 쿠데타를 한다 라고 오해하여 일어난 폭동이엇습니다.

이런 주장을 누가 한다면

5.18이 민주화운동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떤대응을 하겠습니까?

"정신병자설은 허위다 " 이렇게 대응한다면 당연히 반문할것입니다.

그럼 전두환이 쿠데타를 할것이라 정보를 알려준 사람이 누구냐?

자~어떤 답변을 주시겠습니까?

결론적으로 광주5.18 정확한 정보가 아닌 누군가에 의해서 일어난 폭동입니다.그런데 그 누군가가 탈북을해 서울에 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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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폭동옹호론자들이 절대 거짓말 할수없는 내용 (5).

상식적으로 봐도 5.18은 폭동.

백번 천번 양보해도 5.18은 폭동입니다.

5.18이 그들 주장처럼 독재에 항거한 민주화운동이었다면
독재에 항거했거나
탄압에 항거했거나
부정부패에 분노했거나
이런 류의 명분으로
진압이 되고나서
그 폭동에 가담했거나 동조 동의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지역은
그에 준하는 분위기와 문화를 가지게 될겁니다.

그런데
80년이후 대한민국에선
이런 말들이 기정 사실로 인식화 되어있었습니다.

전라도에 경상도 차량이 가면 기름을 주유해 주지 않는다
전라도에 경상도 사람이 가면 밥도 팔지 않고 여관방도 주지않는다
전라도에 경상도 말투를 쓰면 구타를 당하거나 김대중 만세 삼창을 불러야 한다

전라도에서 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는데
진압이후 이들은 왜 경상도에 분노하고 원한을 가졌겠습니까?

이는 지역감정 유발시키는 유언비어에 일어난 폭동이기 때문입니다.

백번 양보해서
북의 공작이 없었다 해주어도
5.18은 결코 민주화 운동이 될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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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폭동 옹호론자들이 절대 거짓말 할수없는 내용 (6).

5.18측 사진자료엔 시작과함께 결론만 있다.

과정이 없다.

계엄군이 대검을 차고 달리는 장면 , 그리고 무참히 죽은 시신------과정이 없다.

계엄군이 대검으로 폭력시위대를 찌르는 장면이 전혀 없다.

계엄군이 화염방사기를 매고 달리는 장면, 그리고 무참히 그을린 시신------과정이 없다.

계엄군이 화염방사기로 폭력시위대를 불태우는 장면이 전혀 없다.

모든 5.18측 사진 자료에는

계엄군이 총 대검 화염방사기를 소지하고 있는장면만 있다.

그리고 시신이 무참하게 훼손된 사진만 있다.

왜그럴까?

1980~1990년도 사이에

광주비디오를 가지고 다니면서 선동하던 일이있었다.

물론 사진도 확대하여 같이 가지고 다녔다.

그 광주비디오에는 누군가가 폭력시위대를 무참히 찌르고 가르는 장면이 있다한다.

그런데 왜 공개를 하지 않을까?

너무 잔인해서?

그럼 왜 그렇게 잔인한 사진은 공개하는건가?

답은 간단하다

계엄군은 폭력시위대를 찌르지도 가르지도 불태우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5.18폭동 옹호론자들이 절대 거짓말 할수없는 내용 (7).

-시체장사-

폭도들은 당시 심하게 훼손된 시체를 끌고 다니면서 시민들을 동요케하며 선전선동을 했다.

그 시체를 끌고다니면서 시민들을 동요케 했을때 광주시민들은 내용의 진위여부를 어떻게 확인했을까?

공수부대원들이 죽였다는 시체에 대하여 어떤 확인작업을 했는가.

어떤 확인작업을 했기에 우리 대한의아들 공수부대원들이

무고한 시민을 살해하고 시신을 무참히 훼손했다 단정지었는가.

 

 

 

 

 

 

 

 

2012.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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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금한돈
지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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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폭동입니다.

처음부터 비폭력으로 맞섰다는 말은 거짓말입니다.

1980년 3월부터 시작한 대학생 시위는 5월에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국민의 호응을 얻은 시위는 한 번도 없습니다. 단 한 번도 일반시민은 시위에 가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나라가 혼란한데 저런 미친놈들이란 욕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광주 5.18은 200여 명의 대학생으로 시작한 폭력 시위(처음부터 돌을 던지며 시위함) 아무런 방어 준비도 없던 공수부대원에게 크고 작은 부상을 주었습니다. 그런 와중에 지휘관인 정웅이 무책임한 검거 명령으로 과격한 진압이 이루어집니다. 이 과격 진압에도 사망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광주시위대중 신원 미상인 사람들이 광주 시민을 거짓말로 선동하였습니다.
결국, 그 거짓말은 단 4일 만에 군, 경찰에게 총기로 맞서는 사태까지 만든 겁니다. 
민주화 운동이요 무슨 민주화 운동이 단 4일 만에 총을 들고 설치는 난동을 부립니까.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입니다. 누구 말대로 비폭력 시위를 단 하루라도 했다면 욕이라도 안 처먹죠. 처음부터 불법 시위에 폭력으로 일관한 시위를 민주화라 말할 수 있습니까?
 
 그 당시 정부는 독재 정부도 아닌 최규하 대통령하에 있던 정부이고 최규하 대통령은 1979년 12월 26일 취임식에서 헌법을 개정하고 1년 내로 정부 이양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는데 그런 건 다 무시하고 정부 물러가라는 시위를 한것이고 이런 얼토당토않은 시위가 민주화입니까. (최소한 최규하 대통령이 약속한 1년 내 정권이양이란 약속을 정부가 지키지 않았을때 그에 대한 시위를 하였다면 어느 정도 명분은 있다 할수 있습니다.)
시위에 대한 명분이 전혀 없는 시위였으며 폭력시위이고 군, 경 공권력에 대항한 반란 사건입니다. 
 

5월 18일 폭동이전부터 대학생들은 폭력시위를 하였고 5월 15일에는 117명의 부상자가 나왔습니다.

그중 4명의 대학생 부상자이고 113명이 경찰부상자입니다. 그중 정경 1명은 버스에 압사당하여 사망하였습니다. 5월 15일 전북, 전남에서의 경찰 부상자는 22명입니다.

그러한 사래로 보아도 5월 18일 대학생 시위가 비폭력으로 했다는 건 웃기는 일이고 5.18 특별법에 따라 재판이 이루어질 때 처음 시위 붙어 폭력시위로 시작하였다는 사실이 명백하게 드러났습니다.

 또 21일 발포로 시위자들도 어쩔 수 없이 총을 들고 싸웠다는 거짓말입니다.

이것 또한 수사기록에서 명백히 나왔습니다. 그날 사건을 살펴본 자료가 있습니다.

 

‘모략의 극치’ '전남도청 앞 발포사건'


5월 21일 오후 1시 경에 발생한
도청 앞 사건은 반란자들이 사기극을 꾸며내고, 국민을 기만하는 데 악용된 가장 좋은 소재였다. ‘도청 앞 사건’은 영화 화려한 휴가’(2007 개봉)가 ‘환각제를 독주에 타마시고 벌였다는 공수부대의 만행’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클라이맥스였으며, 북한 김일성이 직접 황석영과 윤이상을 데려다 제작한 영화 ‘님을 위한 교향시’(1991년 개봉)가 가장 드라마틱하게 부각시켰을 만큼 남북한 빨갱이들이 공동으로 노리는 모략의 소재였다.

1990년대 민주화와 주사파와 운동권이라는 레떼르(라벨)가 붙은 사람들이라면 환장한 한국의 거의 모든 매체들이 북한 노동당 출판사들이 내놓은 대남공작 역사책들(‘광주의 분노’, ‘주체의 기치 따라 나아가는 남조선 인민들의 투쟁’)이 내놓은 모략 내용들을 앞 다투어 사회에 전파했다.

이 매체들이 이런 행동을 한 이유는 1985년 황석영이 쓴 “광주 5월 민중항쟁의 기록”(일명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이라는 책이 북한의 위 책들을 그대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남북한 반란자들이 공수부대의 만행을 가장 극적으로 묘사한 무대가 도청 앞 광장이었고, 그런 빨갱이들의 주장에 의하면 도청 앞 광장은 그야말로 환각제를 마시고 짐승처럼 날뛰는 공수부대원들이 벌인 “살육의 현장” 이었다.

지금도 대부분의 국민들은 영화와 언론매체들이 전해준 모략의 내용들은 5.18의 진실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아래의 수사기록을 보면 남북한 반란자들이 얼마나 진실을 왜곡하고 과장 확대하여 소설을 썼는지 금방 드러날 것이다. 아래 내용은 전두환 등 이른바 ‘신군부’를 영창에 집어넣는데 결정적인 근거로 사용된 1995년 당시의 검찰 수사기록이다.

5월 21일, 광주일원에서 발생한 민간 사망자는 61명이다. 이 중에서 28명은 도청과는 거리가 먼 다른 곳들에서 사망했고, 33명만이 도청 앞에서 사망했다. 그런데 도청 앞 사망자 33명 중 20명은 칼에 찔리고 몽둥이에 맞아 사망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당시 도청 앞 상황은 계엄군과 시민이 수십 미터의 거리를 두고 대치해 있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공수대에 맞아 죽고 찔려죽는 일이 발생할 수 없었다. 그러면 이들 20명은 누가 죽였는가? 여기에 더해 13명이 총상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총상 13명 중 9명이 카빈총에 의해 사망했고, 4명은 총기불상으로 기록돼 있다. 한마디로 5월 21일에 칼에 찔리고 몽둥이로 맞고 총에 의해 사망한 61명 모두가 계엄군과는 무관한 사망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도청 앞에서 계엄군은 사격을 하지 않았는가? 사격을 했다. 그러나 연속적으로 돌진하는 장갑차에 대해서만 집중 사격을 했다.

반란자측은 5월 21일, 13:30분경에 도청 앞에서 군에 의한 집단발포가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정당방위로 무기를 탈취하여 계엄군을 향해 발포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다. 아시아자동차에 모인 북한 특수군 600명(고정간첩+남파군인)이 무기고를 털러 출발한 시점이 바로 5월 21일 아침 9시였다. 그리고 수사기록을 보면 도청 앞 발포는 5월 19일 첫 번째 발포로부터 9번째 발생했던 자위용 발포였다.

그 이전에는 반란자들이 대형 버스를 몰고 집결해 있는 공수부대를 향해 전속력에다 지그재그로 돌진해 오는 순간 죽음을 눈앞에 둔 지휘관들이 발포를 했고, 소수의 공수부대가 수만의 폭도들에 포위돼 있는 순간, 도주로를 확보하기 위해 쏜 공포였다. 이 과정에서 시민군도 1회의 발포를 했다. 5월 21일 이전에 이미 시위대에는 26정의 카빈과 7정 이상의 M-16이 있었다.

수사기록에 나와 있는 5.18의 발포의 역사를 보자.

1번째 발포는 5.19일 오후 5시, 계엄군 장교가 타고 있던 장갑차가 고립되자 시위대가 장갑차 뚜껑을 열고 불타는 짚단을 넣으려 했을 때 발생했고,

2번째 발포는 20일 밤, 공수부대 대오를 향해 고속으로 돌진하는 대형차량 바퀴에 대대장들이 권총을 쏜 것이고,

3번째 발포는 같은 날 광주역에 중과부적 형상으로 완전 포위돼 있던 3여단이 포위망을 뚫으려면 실탄이 필요했는데, 이들에 실탄을 공급해 주기 위해 전남대에 주둔했던 3공수 본부 대원들이 광주역으로 접근하는 과정에서 다수 군중에 포위되자 길을 뚫기 위해 공포를 쏜 것이었고,

4번째 발포는 광주역 앞에서 3공수 4개 대대가 포위망을 뚫고 전남대로 철수할 때 발생했고,

5번째 발포는 5월21일 새벽 5시 경에 전남대에서 시위대가 하늘을 향해 카빈총을 가지고 공포를 쏜 것이고,

6번째 발포는 5월 21읽 12시경에 무장시위대가 광주교도소를 향해 공격해 들어가면서 발생한 쌍방의 총격전이었고,

7번째 발포는 전남대를 지키던 3공수 여단의 최후저지선이 돌파 당함으로써 공수대와 시위대 사이에 주고받았던 사격이었고

8번째 발포는 도청 앞에서 장갑차 사수가 기관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방아쇠를 건드려 하늘로 쏘았던 사격이었다.

가장 문제를 삼아왔던 5월 21일 13시의 전남도청 발포는 9번째 발포였다. 5월 21일 13시경, 시위군중이 탑승한 장갑차, 대형트럭 등 수십 대의 차량이 10만 군중 전면으로 나오더니 그들 중 한 대의 장갑차가 도청 앞에 정렬해있던 11여단을 향해 돌진하여 하사관 1명(전광철 중사)을 깔아 죽였고, 1명에 중상을 입었다. 이러한 차량공격이 그 후 세 차례나 더 계속됐다.

동료의 무참한 죽음을 지켜본 병사들은 그야말로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돌진차량을 향해 위협사격을 가했다. 이것이 이른바 도청 앞 발포의 전부다. 계엄군은, 도청 앞에 정렬해 있는 공수부대를 향해 대량학살을 기도했던 4차례에 걸친 장갑차 공격을 피하기 위해 오직 장갑차만을 향해 사격을 가했던 것이다. 장갑차가 무엇인가? 이렇게 무수한 실탄을 발사해도 끄떡없는 것이 장갑차가 아니겠는가?

이 이외에도 5월 20일 밤중부터 5월 21일 오후 5시, 3공수가 전남대를 탈출하기 시작할 때까지 전남대에서는 쌍방 간의 무수한 총격이 있었다. 오후 5시는 모든 공수부대가 광주시를 탈출하기 시작한 시각이다. 공수부대가 도청과 전남대를 탈출하여 시 외곽으로 후퇴할 때 탈주로 곳곳에 대기하고 있던 무장 폭도들이 계엄군과 무수한 접전을 벌였다. 쌍방 교전이었던 것이다. 이상이 도청 앞 사건의 진실이다.

도청 앞에서 전두환의 명령에 의해 일제히 집단 발포를 했다는 저들의 주장도 거짓말이고, 집단 발포에 의해 수백 명이 죽었다는 저들의 주장도 거짓말이고, 비무장한 채 애국가를 부르고 있는 광주 시민들에게 공수부대가 갑자기 집단으로 사격을 가했다는 것도 거짓말이고, 계엄군이 13:00시부터 공수부대가 일방적으로 시민을 향해 집단발포를 했기 때문에 폭도들이 무기고를 털 마음을 갖게 되었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반란자들은 대답해야 한다. 5월 21일에 도청과는 거리가 먼 곳들에서 사망한 28명은 누가 죽인 것이며, 도청 앞에서 자상에 의해 사망한 20명은 누가 죽인 것이며, 도청 앞에서 무기고 총에 의해 사살된 13명은 누가 죽인 것인가?

매우 아이러니 하게도 반란자들이 북한 영화, 남한 영화 그리고 숱한 언론들을 통해 계엄군이 도청 앞에 집결한 십만 군중을 향해 집단 발포를 해서 마치 낫에 걸린 풀이 쓰러지듯이 수백명의 시민을 학살했다고 주장하는 그 도청 앞 사건에서 정작 계엄군은 단 1명의 광주시민도 죽이지 앉았다.

남북한 반란자들이 가장 공을 들여 모력한 도청 앞 사건은 이 글 앞에 추풍낙엽으로 전락한 것이다.


2012.8.1. 지만원
http://systemclub.co.kr/

 

지금까지 나온 5.18관련 글은 모두 구전에 의해 나온 허구아닌 허구가 많이 나와 모든 사람을 현혹하여 5.18에 대한 인식이 잘못 전달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5.18폭동 관련 가장 정확한 자료는 5.18재판입니다. 나머지 다른 관련글은 소설이라 말할수 있습니다.

재판기록이 가장 정확한 이유는 재판과정에서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을 가장 정확하게 하였기에 정확한 자료라 말할수 있습니다. 재판과정중 상대방이 거짓을 말하면 그에 대한 반박을 하여 거짓인지 진실인지 서로 대립하에 나온 결론이기에 가장 정확한 자료라 말할수 있습니다.

 

독재와 민주의 차이 중 가장 큰 차이는 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법을 수호하느냐 수호하지 않느냐
독재자는 절대 법을 수호하지 않습니다. 독재란 말 자체는 내 세상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법 이까짓 것 무엇이 필요해 내가 곧 법이야 라는 말입니다. 하지만 민주화란 법을 수호한다는 말입니다. 이점이 가장 큰 차이고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이란 독재하지 말라는 말을 해 왔던걸 민주화 운동이라 말을 합니다.
그럼 민주화 운동이란 독재자처럼 법을 어기지 말고 법을 지키란 말과 같은 말이며 법을 지킨다는 말과 같습니다.
또 독재는 폭력을 수반합니다. 그럼 민주화는 폭력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2가지가 독재와 민주의 가장 큰 차이라 봅니다.
 
5.18폭동은 법을 지키지 않은 불법 시위이기에 민주화라 볼 수 없습니다. (불법)
 처음부터 폭력시위를 한 것을 민주화 운동이라 볼 수 없습니다. (폭력)
시민이 동참한 이유도 자발적 동참이 아닌 유언비어에 선동되어 시위에 동참하였고 그 유언비어의 사실 여부를 가릴 시간적 여유도 없이 거짓말에 현혹되어 광주 시민의 감정을 격하게 만들어 시위에 동참하게 하여 시위하였습니다. (거짓말, 유언비어) 
무수히 많은 사망자가 나왔고 그에 대한 어떠한 수사도 못 하였고 그때 사망한 분들은 누가 왜 자기를 죽었는지도 모르고 죽었으며 사망원인을 그때 바로 찾아야지 무조건 시위를 하여 나중에 사망자가 어떻게 죽었고 누구에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사망자를 군인이 죽였다는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결국, 사망자의 죽은 모습에서 이 사람은 자상, 이 사람은 총상, 이 사람은 구타 등으로 분리하여 사망진단만 하는 수준에서 마무리 지었습니다. (사망자를 선동의 도구로 사용하였고 모든 사망자를 군인이 죽인 것처럼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군, 경찰의 공권력에 총을 들고 대항한 사실 또한 민주화라 볼 수 없습니다. (반란)
시위에 대한 명분이 전혀 없는 시위였으며 폭력시위이고 군, 경 공권력에 대항한 반란 사건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 당시 정부는 독재 정부도 아니고 최규하 대통령하에 있던 정부이며 최규하 대통령은 1979년 12월 26일 정식 대통령에 취임하고 취임식에서 헌법을 개정하여 1년 내로 정부 이양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습니다. 독재도 아니고 어려운 여건에서 나라를 안정시키고 헌법을 개정하여 1년 내로 자유의지에 의해 정부 이양을 약속하였습니다.
하지만 최규하 대통령의 약속한 약속은 무시하고 현 정부 물러가라는 이런 얼토당토않은 시위가 민주화입니까. 최소한 최규하 대통령의 약속 이행 1년은 지난 다음에 약속이행을 어길 때 이런 시위를 하였다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고 그렇게 하여야 최소한의 민주적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시위에 대한 명분이 전혀 없는 시위였으며 폭력시위이고, 거짓말(유언비어)시위이고, 사망자의 사망원인도 찾을 수 없는 공권력을 완전히 무너트리고 사망자 죽음의 원인도 모르게 하였고 더 나아가 시체 팔 이를 한 천인공노한 시위고, 군, 경 공권력에 대항한 국가 반란 사건입니다. 

 

 

 

2012.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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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인

이유는 간단함.

당시 정부가 미친정부였고 그 미친정부에 대항하는 봉기였다고 판단했기때문임.

 

5.18이 운동이든 폭동이라고 하든 명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발단 과 전개과정이 중요함.

 

아직 어려서 잘 모르면 나중에 크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알면서 물어 본거면 알바생일테고..

여기까지만.

2012.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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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새누리당 알바가 많은데 폭동이 아니라 민주 항쟁입니다.

2012.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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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일단 아이디는 비공개로 해두겠습니다.
저번에 5.18 관련 질문 답변으로 인해 오늘의 유머 라는 사이트에서 많은 사람들이 저의 블로그의 많은 욕을 남겼으니 비공개로 하겠습니다.

일단 제 답변은 5.18 이건 당연한 폭동입니다.
민주화 운동은 절대로 테러집단과 같은 총을 발사하며 폭탄을 터트리는일은 있을수가없지요.
어느누가 총으로 사람을 살해하고 경찰서에 폭탄을 설치해 터트려 국가적손실을 일으키고
국민들의 생활의 손실을 가하는것이 운동입니까?
정말 궁금하군요.
아래 답변하신분은 정말 특이하시네여

"이유는 간단함.

당시 정부가 미친정부였고 그 미친정부에 대항하는 봉기였다고 판단했기때문임.

 

5.18이 운동이든 폭동이라고 하든 명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발단 과 전개과정이 중요함.

 

아직 어려서 잘 모르면 나중에 크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알면서 물어 본거면 알바생일테고..

여기까지만."


라고 답변을 하셨는데 그당시 생활은 부족하지만 그만큼 가난하지는 않았습니다.

손과발 말을 듣고 눈을 보고 말을 할수만있다면 누구나 일을 할수있으며 자신의 집을 구할수있을 종도였습니다.

지금의 대기업들과 잘사는사람들은 그 시절 열심히 일한 덕 지금의 대기업들이 있고

잘사는 사람들이 있는겁니다.

애초에 발판이없다면 절대로 잘사는 나라가 될수가없지요.


여기에서 개인적인 말좀 해보겠습니다.

질문자님은 1층에서 2층까지 올라갈려면 계단을 이용해서 갈껍니다.

하지만 이 계단이없고 올라갈 수단이없다면 질문자님은 어떻게 하실껍니까?

저같은경우 사다리를 구해 올라갈꺼같네요.

지금의 잘사는사람들 또는 대기업들은 다른사람이 계단을 만들어줄때까지 기달리지 아니하였으며.

자신들이 사다리를 구하거나 만들거나 또는 다른방법으로 2층으로 올라갔지요.

그리고 5.18 폭동은 엄연히 다른 제 3자가 관여한것은 사실입니다.

그 제 3자가 지금 편안하게 대한민국의 땅에서 편하게 먹고살고있다는것도 사실이구요.


절대로 총을 쏴 사람을 헤치고 폭탄을 훔쳐 터트리는짓을 민주화 운동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무식하고 자신의 범행을 정의로 따질려는 악당들의 짓이라고 밖에 안보입니다.

201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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