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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신민회와 국채보상운동은 연관이 없나요???
비공개 조회수 5,824 작성일2019.10.21
국채보상운동을 지지했던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한 사람 중 하나가 양기탁이였고, 이 양기탁이 설립한 단체가 신민회이며, 이 신민회는 대한매일신보를 통해 국민 계몽에 앞장섰다고 하는데, 이 신민회와 국채보상운동은 연관이 없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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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신
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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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민회와 국채보상운동 관계.

ㅇ 국채보상운동은 대구에서 시작, 대한매일 신보사에서 주필을 맡았던 양기탁이 모금운동.의연금을

담당했으며, 대한매일 신보사 직원 대부분은 신민회 회원이었으니. 신민회와 매일신보,국채보상

운동관계는 연관성이 많다고 봐야죠.

* 신민회(新民會)

ㅇ 1907. 일제강점기. 결성된 항일 비밀결사 단체.

ㅇ 설립목적: 국권회복.민중계몽.실력양성. / 주요활동: 대성학교 설립. 출판회사, 출판물 보급. /

회원수: 800여명. / 절대 비밀유지를 보장하기 위하여.전달하는 상대방 이외는 절대 공개하지

않는 비밀보장을 원칙으로 하고 있음.

ㅇ 1907.전후. 일제가 보안법, 신문지법 등의 악법을 만들어,반일 계몽운동을 탄압함에 따라, 국권회복

운동을 위하여,비밀리에 조직한 단체. / 회원:안창호(安昌浩)를 발기인으로, 회장.윤치호(尹致昊)

신채호.장지연.이동휘.이동녕. 이회영 등.

ㅇ 1911. 105명의 신민회 회원 투옥사건.(105인 사건). 신민회 조직단체는 와해되고 맙니다.

*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

ㅇ 1907.대구에서 국채(국채)를 국민들의 모금운동으로 갚아, 국권회복하자는 운동.

ㅇ 인쇄소 경영하는 광문사 김광제.서상돈 등. 16명이 제휴하여, 국채보상운동을 국민들의 의연금으로

모금활동을 하여, 경제적 압박심리에서 벗어나,국권회복운동을 하자는 취지임.

일제(통감부)가 조선의 산업발전한다고, 임의로 일본으로 부터 차용한 채무(빚)를 조선정부에 떠맡겨

(합계 1300만원이라 함)조선에 간접적인 경제침략 행위라 보여짐.

ㅇ 국채보상운동에 국민모금 의연금 주관 단체: 학교.학회.언론기관.약국.수선소 등 전국 20여개 단체.

대구 언론기관인 대한 매일신보 주필.(창간) 양기탁이 국채보상운동. 모금 의연금 담당.

항일 모금운동을 저지하기 위하여, 공금횡령죄로 뒤집어 씌워,양기탁을 체포 구금하는 수모를 당함.

일제의 강력한 항일운동을 저지하는 방해공작으로 국채보상운동은 좌절되고 맙니다.

*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ㅇ 1904. 영국인 베델(Bethel)동반하여,(일제가 외국인에 대해서는 저촉하지 못함.)양기탁이 창간함.

항일운동의 성질이 농후,을사조약 부당성을 비판.해외에 알림(한글,영자신문 발간).고종친서기재.

대한매일신보 직원은 거의 항일 독립운동이 투철한 비밀조직단체인 신민회 회원입니다.

이상. ***** 답변이 됐으면, 채택 부탁합시다. *******

출처 : 시사상식.

한국 민족 문화.

2019.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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