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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부룬디 전통의상
k100**** 조회수 3,631 작성일2014.12.16
부룬디의 전통의상 좀 알려줘요!!!!
오늘 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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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y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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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예절, 의식 1위, 사회문화 1위, 폭행 15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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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의 질문에 답변을 합니다.

 

부룬디의 전통의상 좀 알려줘요!!!!
오늘 안에요

 

답변 : 아래는 부룬디에 대한 정보입니다.

 

 

부룬디(Burundi)에 대()하여

 

1. 부룬디(BURUNDI) 국기

                 

국기의 뜻과 의미

2개의 흰색 대각선이 엇갈려 위아래로 2개의 빨강 칸과 좌우로 2개의 초록 칸을 만들어내고 있다. 중앙에는 흰색 바탕에 초록 테두리의 빨강 6각별이 3개 있는데, 3개의 별은 국가 표어인 ‘통일, 노동, 진보’를 나타내며 또한 후투족(族), 투시족, 트와족의 3개 부족을 나타내기도 한다. 빨강은 독립을 위한 고난과 투쟁을, 초록은 희망을, 하양은 평화를 나타낸다. 1961년 만들어진 최초의 국기는 위로부터 빨강·하양·초록의 3색기에 노랑 문장(紋章)이 있었으나 1962년 현재와 비슷한 형태로 바뀌었고 1962년 문장을 바꾼 후 1966년 다시 단결 ·노력 ·진보를 표시하는 3개의 별로 바꾸었다. 현재의 기는 1967년 6월 28일 제정하였고 1982년 9월 27일 가로세로 비율을 3:2에서 5:3으로 바꾸는 등 수정하였다. 1967년제정 1982년에 수정

 

 

3. 부룬디(Burundi)

 

부룬디(Burundi)는 아프리카 중앙 콩고민주공화국 동쪽에 있는 나라이다. 1차 세계대전 때 벨기에 지배에 들어가 1923년 르완다-우룬디(Urundi)로 벨기에 통치하의 국제연맹 신탁통치령이 되었고 1946년부터 국제연합(UN) 신탁통치령으로 있다가 1962년 르완다와 분리, 부룬디로 독립하였다.

부룬디 국기중부 아프리카의 동쪽, 적도 남쪽에 있는 나라. 정식명칭은 부룬디 공화국이다.

 

위치 : 아프리카 중부 내륙

경위도 : 동경 30° 00', 남위 3° 30'

면적() : 27830

해안선(km) : 0

시간대 : CAT (UTC +2)

수도 : 부줌부라

종족구성 : 후투족(85%), 투트시족(14%)

공용어 : 키룬디어, 프랑스어

종교 : 기독교(67%), 토착신앙(23%), 이슬람교(10%)

건국일 : 1962 07 01

국가원수/국무총리 피에르 은쿠룬지자(Pierre Nkurunziza, 2005 8월 당선)

정체 : 공화제

통화 : 부룬디프랑(Burundi Franc, FBu)

인구() : 10,557,259(2012)

평균수명() : 51.71(2008)

1인당 명목 GDP($) : 288(2012)

수출규모($) : 0.91(2011)

수입규모($) : 5.37(2011)

인구밀도(/) : 312(2008)

1인당 구매력평가기준 GDP(PPP)($) : 625(2012)

 

정식명칭 : 부룬디공화국(Republic of Burundi)이다. 북쪽은 르완다, 동쪽과 남쪽은 탄자니아, 서쪽은 콩고민주공화국에 접하고, 남서쪽은 탕가니카호(Lake Tanganyika)를 사이로 콩고민주공화국과 국경을 이룬다. 입헌군주제로 독립했으나 1966년 공화제가 되었다. 후투족과 투치족의 대립이 가장 심각한 국가적 문제로 있다. 행정구역은 17개 주(province)로 이루어져 있다.

 

4. 부룬디 지도


 

주요도시

부줌부라


 

5. 부룬디의 자연

 

이미지 크게보기탕가니카호

 

동아프리카 대지구대 내에 위치한다. 서쪽으로 콩고민주공화국과의 국경을 이루는 루지지강()은 탕가니카호로, 동쪽으로 탄자니아와 국경을 이루는 카제르강은 빅토리아호로 흘러 들어간다. 산지의 사면은 삼림이 울창하며, 고원에는 사바나 수목지가 많고, 고도가 낮아지는 동쪽으로 갈수록 나무가 없는 사바나 초원이 늘어난다. 르완다와의 국경에는 아칸야르강, 루그웨로호 등이 있다. 부룬디는 남위 2의 열대에 위치하나, 탕가니카호() 수면의 해발고도 773m를 최저로 국토의 대부분이 1,500m를 넘는 고원에 있기 때문에 연평균기온 20로 덥지는 않다. 건기는 25, 우기는 68월이며, 수도의 연강수량은 약 780mm이다. 경작이 가능한 땅은 35.57%, 농경지는 13.12%, 초원 및 기타 51.31% (2005)이다.

 

 

6. 부룬디의 주민

 

인구성장률은 3.443%이며, 인구 1000명당 출생율은 41.72, 사망률은 12.91, 유아사망률은 60.77 (2008년 추산), 기대수명은 51.71세 이다. 다양한 종류의 전염병에 감염될 위험이 높다. 후천성 면역결핍율에 감염될 위험성이 6%(2003 년 추산)에 이른다. 부룬디 주민의 85%는 후투족(바후투족)이라 불리는 반투계() 부족으로, 언어적으로는 룬디족()이라 불리며 이것이 국명의 기원이 되었다. 이밖에 함계의 투치족(14), 피그미계의 트와족(1) 등이 살고 있다. 유럽인은 3,000, 남부아시아인은 2,000 명이 거주한다. 공용어는 프랑스어와 키룬디어(룬디어)이나 스와힐리어도 널리 사용된다. 종교는 가톨릭을 주로 하는 그리스도교도가 67% (가톨릭교 62%, 개신교 5%)를 차지하며 이슬람교도는 10, 토착종교 23%이다.

 

 

7. 부룬디의 역사

 

부룬디 왕국은 1415세기경 에티오피아 방면에서 남하한 푸치족()의 왕조가 후투족을 지배하며 건설되었다. 부룬디 왕국의 근대사는 단독으로서가 아니라 북쪽에 있는 르완다공화국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왔다. 1885년 콩고분지 조약에 의하여 1890년부터 독일령 동아프리카에 편입되었으나, 부줌부라에 주둔부대가 있었을 뿐 직접적인 통치는 받지 않았고 일종의 보호령적인 지위를 보유하였다.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콩고에서 진주한 벨기에군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며, 독일이 패망하자 르완다-우룬디로서 1923년 벨기에 통치하의 국제연맹 신탁통치령이 되었고, 1946년 말에는 UN의 신탁통치령이 되었다. 1957년부터 일기 시작한 르완다-우룬디 민족독립운동은 르완다와의 통합에 의한 즉시 독립을 요구하였으며, UN도 르완다와 우룬디가 연방국가로서 독립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러나 르완다에서는 소수민족인 푸치족 왕의 지배에 항거하여 다수 민족인 후투족이 폭동을 일으켜 국왕을 추방하였고, 이들은 1961 l 28일 공화제를 선포하였다.

 

르완다와 달리 군주제를 고수하던 우룬디는 1962 7 1일 르완다와 분리하여 입헌군주국인 부룬디로서 독립하였다. 그러나 독립 후 1966 11월에 국왕의 자이르(현 콩고민주공화국) 여행 중 총리 미콤베로가 쿠데타를 일으켜 공화제를 선포하고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그후 부족 간 항쟁이 격화하는 등 정국은 불안상태가 계속되었다. 1976 11월 중령 바가자가 이끄는 군부가 무혈 쿠데타에 성공하여 바가자는 스스로 대통령에 취임하고 의회를 해산했다.

 

대통령 바가자는 1978년 총리의 직위를 폐지하고, 의회를 해산하였다. 바가자 정권은 심각한 국내 문제인 후투족()과 투치족과의 대립 사태 수습에 나섰으나 부족대립은 쉽사리 해소되지 않았다. 1987 9월 무혈 쿠데타에 의해 투치계의 대령 피에르 부요야(Pierre Buyoya)가 국민구제 군사위원회를 수립하고 같은 해 10월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부룬디는 이후에도 계속 잔인한 학살 및 쿠데타, 여러 사회적 혼란에 시달려왔으며, 2001 2월 양 부족은 전반 18개월의 대통령은 투치계, 후반 18개월의 대통령은 후투계가 맡는 36개월간의 과도정부 구성원칙에 합의하였다.

 

 

8. 부룬디의 정치

 

2005 2 28일 국민투표에 따라 제정된 헌법에 의하면 부룬디의 정체는 대통령중심제 공화국으로 5년 임기의 대통령이 국가를 대표하며 행정수반이다. 2005 8 26일 피에르 은쿠룬지자(Pierre Nkurunziza)가 대통령직에 당선되었으며, 투치족과 후투족 출신의 2명 부통령이 임기를 달리하며 활동한다. 의회는 양원제로 임기 5년의 하원의원은 최소 100명으로 이중 60%는 후투족, 40%는 투치족에 할당된다. 여성의원은 최소 30%로 규정된다. 상원의원은 54석으로 34석은 간선으로 나머지는 국가원로와 소수민족의 몫이다.

 

군사비 지출이 GDP 5.9%(2006)년이며 군사력은 4 5500(1999)으로 대부분이 투치족이다. 대외적으로는 비동맹 중립주의를 기본방침으로 하며, 독립 당시에는 중국·북한과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동독의 승인 등 공산권과의 적극적인 외교를 전개했으나, 최근에는 경제관계로 친서방적 경향을 띠고 있으며, 특히 프랑스와는 경제·외교면에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밖에 OAU(Organization of African Unity:아프리카 통일기구), OCAM(Organisation Commune Africaine et Mauricienne:아프리카모리셔스공동기구)에 가맹하고 있다. 군사비 지출은 GDP 5.9% (2006년 추산)를 차지한다.

 

 

9. 부룬디의 경제

 

커피콩의 주산지 

 

경제성장율은 3.6%이며, 산업별 GDP 구성은 농업 33.7%, 광공업 20.9%, 서비스업 45.4% (2007년 추산)이다. 노동력의 산업별 구성은 농업 93.6%, 광공업2.3%, 서비스업 4.1% (2002년 추산)이다. 짐바브웨, 콩고민주공화국, 라이베리아의 뒤를 잇는 아프리카 최빈국이다. 경제의 농업 의존율이 90% 이상이며, 커피와 차의 수출이 유일한 경제 활력소로서 외환수입의 80%를 차지하며 국제 가격 변동에 민감하다. 정부의 14%를 차지하는 투치족이 정부와 대다수 후투족(85%)의 커피생산을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수십년에 걸친 부족 간의 내전이 경제 발전을 저해하였다. 광산물로는 컬러 텔레비전에 쓰이는 바스트네사이드, 카시테라이트, 금 등이 매장되어 있고, 소량의 카시테라이트·금이 개발되었다.

 

주요 수출품은 커피, , 설탕, 면화 등이며 수입품은 자본재, 석유제품, 식품 등이다. 주요 수출국은 스위스, 영국, 파키스탄, 르완다, 이집트 등이며, 주요 수입국은 사우디아라비아, 케냐, 일본,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2006) 등이다. 외국의 원조로 농산물의 증산이 추진되었으며, 탕가니카호()의 어업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와 국민총생산이 늘고 있으며 내전이 끝나고 정치적 안정과 함께 외국 원조도 재개되어 활력을 얻고 있다. 국내 수송망의 미비와 유통구조의 빈약함도 경제의 큰 약점인데, 철도는 없고 국내교통은 도로 총연장 12,322 km(2004)으로 국제교통은 부줌부라 중심의 항공로와 탕가니카호의 주운(舟運)뿐이다. 2007년 기준 공항은 8개이다.

 

 

10. 부룬디의 사회

 

부룬디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후투족()은 고원의 사바나에서 농업을 경영하여 트와족과 물물교환을 하고 있다. 지난 십수년 동안 지속된 종족 간의 전쟁은 20만명의 이상의 사상자와 48,000 명 이상의 피난민(탄자니아)을 발생시켰다. 어린이 두 명 중의 한 명이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15세 이상의 성인 중 한명이 후천성면역결핍증(HIV/AIDS)에 감염되어 있다. 식량, 의료, 전력 등이 부족하다.

 

모든 교육은 무료이고 7세 때부터 6년간의 초등교육은 의무교육이며, 1993~1997년간 초등학교 취학률은 56%이나 중학교부터는 5%에 불과하다. 초등학교에서는 룬디어()로 교육을 하고 중등학교 이상에서는 프랑스어를 사용한다. 1964년 부줌부라에 부룬디대학교가 설립되었고, 교수 122, 학생 600명 정도가 있다. 언론기관으로는 2000부 이상을 발행하는 일간지 Renouvean du Burundi, 주간지 L'Independant, 월간지 Burundi en Image가 있고 TV방송사 텔레브룬디(Tele Burundi)와 라디오방송사가 있다. 인터넷 호스트수는 163(2007), 사용자 수는 60,000(2006)이다.

 

 

11. 부룬디의 문화

 

포크송과 춤이 대부분인 부룬디의 문화유산은 왕권의 미덕을 칭송하는 것이 많다. 1966년 이후 문화생활은 무기력한 시대로 접어들었다. 매년 열리는 우무가누로 축제는 전통 춤을 보이는 단 한번의 기회로 '카옌다' 드럼, '이낭가', '딩기디', '이킴베'와 같은 전통악기로 연주하는 축하음악 등을 들을 수 있다. 투치족()의 민속무용은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가 노력을 하지만 문화센터는 부룬디에 하나뿐으로 미술, 공예(바구니공예와 구슬 작품)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전통명절에는 전통놀이와 축구경기를 하며, 춤추고 술을 마시며, 전통음식을 함께 나누기도 한다. 브룬디인()은 축구를 무척 즐기는 편이다.

 

1) 부룬디의 전통의상

 

전통의상은 없으며 큰 천을 하나 둘러메고 위에 어깨에서 붙들어메면 끝이다. 또한 명칭도 없다.

 


 

아프리카 부룬디에서 2011 GNC 워크샵을 가졌습니다.

GNC 지원자중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번 2011 부룬디 월드캠프에 자원봉사자로 참가하여 연결된 학생들이였습니다. 이들은 월드캠프 때에 복음의 행복을 느낀 후 IYF 활동과 자신의 마음을 흔든 복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으로 찹석 했다고 했습니다.

 

아래를 보면 이렇게 어깨에 하나씩 무늬있는 푸른천을 둘렀다. 이것이 의상이란다.

  

△부룬디 공화국의 학생들과 전통악기를 체험하는 학생

 


 

 

 

12. 부룬디의 대한관계

 

부룬디는 한국과는 1991 10 3일 수교하였고, 주탄자니아 대사가 겸임하고 있다. 1992년 외무장관 시프리엔 음본임파(Cyprien Mbonimpa), 2005 5월 코바코 가스파르(Kobako Gaspard) 공직부 장관이 방한하였다. 북한과는 1967 3 11일에 수교하였다. 수교 후 한국은 자동차, 의료기자재, 의약품 등을 무상원조하고 있다. 2000년 대한(對韓) 수출 4000달러, 수입 102.8만 달러이며 주요 수입품은 폴리에스텔 섬유, 타이어, 튜브, 자동차 등이다. 2005 11월 기준 현재 한국인 체류자 6명이다. [네이버 백과사전] 인용

 

 

 

끝으로 님의 건강과 행복이 충만 하시기를 빌겠습니다.

 

2014.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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