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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러시아를 소개할려고 그러는데.....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8,044 작성일2004.11.16
저 러시아를 소개해야 하는데 좀 해주세요 한장이나 한장넘어서 2장안되게요
내공 50검 되도록 빨리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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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Russia]



요약
극동에서 동부 유럽에 걸쳐 있는 나라.

위치 동부 유럽
면적 1707만 5400㎢
인구 1억 4489만 3000명(2003)
인구밀도 8.5명/㎢(2003)
수도 모스크바
정체 공화제
공용어 러시아어
통화 루블(ruble)
환율 30.68Rub = 1$(2003.9)
1인당 국민총생산 1,750$(2003)

본문
면적은 1707만 5400㎢, 인구는 1억 4489만 3000명(2003)이다. 인구밀도는 8.5명/㎢(2003)이다. 정식명칭은 러시아 연방(Russian Federation)이다. 북쪽으로 북해, 동쪽으로 태평양에 면하고, 남쪽으로 북한, 중국, 몽골, 카자흐스탄,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서쪽으로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라트비아, 폴란드,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핀란드, 노르웨이 등에 접한다.

동서길이 약 9,000km, 남북 최대길이 약 4,000km, 최소길이 약 2,500km에 이르는 지역을 차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21개 공화국[아디게야, 바슈키리야, 부랴티야, 다게스탄, 카바르디노-발카리야, 칼미키야, 카렐리야, 코미, 마리, 모르도바, 세베로나야오세티야(북오세티야), 타타르스탄, 투바, 우드무르티야, 체첸, 잉구셰티야, 바시야, 사하(야쿠티아), 고르니-알타이, 카라챠에보-체르케시야, 하카시야] 6개 지방, 50개 주, 10개 자치관구, 특별행정단위인 모스크바 및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총 89개 행정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1992년 1월 소련이 해체되면서 완전한 독립국가가 되었으며, 국가연합체인 독립국가연합(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CIS)에 속해 있다. 러시아는 영토가 광활한 만큼 다양한 지질구조가 발달하여 거의 모든 종류의 자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완전한 의미의 자급자족에 가장 근접한 국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광활한 국토는 장점인 동시에 약점이 되기도 한다. 즉 국토가 넓고 다양한 인종이 거주하기 때문에 효율적인 행정·개발·생산활동이 어렵고 나아가 국가의 통합마저 어렵게 하고 있다. 더구나 국토의 많은 부분이 가혹한 환경조건을 갖고 있기 때문에 경제활동과 인구분포의 지역차가 극심한 반면 지역을 연결하는 사회간접자본이 낙후하여 많은 지역문제가 발생해 왔다.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넓은 농경지가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식량자급이 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어떤 대책도 러시아연방이 안고 있는 경제적 딜레마를 쉽게 해결해주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매우 이질적인 자연과 문화가 오랜 기간 발달해 왔기 때문에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한다 하더라도 쉽게 미국과 같은 국가로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다만 러시아혁명 이후 공산정권이 취한 엄격한 통제정책들로 인해 모든 부문에서 활력이 더욱 떨어졌음은 분명하다. 가장 기초적인 생필품조차 공급이 원활하지 못한데도 불구하고, 과거 구(舊)소련 정권들은 군사적 행동을 빈번하게 일으켰고, 세계의 여러 공산국가에 대해 막대한 경제원조를 해왔다. 전통적으로 러시아인들은 독자적인 발전경로를 밟아왔다. 거기에는 식량·연료·원료 등을 자급자족할 수 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유일하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기술이었고 이것은 주로 주변국가에 의존해 왔다. 타타르인의 침공과 1453년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이후 거의 400년 동안 러시아는 유럽 대륙과 교류가 없었다. 18세기 후반부터 러시아는 근대화를 추구하면서 유럽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1917년 혁명 이후 러시아는 주변의 공산국가를 제외하고는 거의 교류가 없는 고립상태로 다시 들어갔다. 구소련 무역량의 대부분이 공산국가 사이에 이루어졌고 서방국가와는 제한된 범위에서만 무역거래를 하였다. 이 때문에 상당한 기간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무역수입이 러시아 내부 발전의 주요 수단이 되었지만, 공산국가와 제3세계국가 중심의 무역으로서는 무역흑자 확대가 어려웠다. 최근에 선진국과 교역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취약한 국내 기반으로 인해 성과가 거의 없다. 그러나 러시아 경제가 전적으로 해외의존형으로 발전될 가능성은 낮지만, 다양하고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계 경제구조 속으로 급속히 통합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러시아는 유럽러시아지역·볼가지역·우랄지역·서(西)시베리아지역·동(東)시베리아지역·극동지역·북부지역 등으로 구분된다.

유럽러시아는 주변 우랄 지역의 풍부한 자원, 높은 생활수준, 풍부한 고급인력, 남부 선벨트(sun belt)의 쾌적한 주거조건 등 뛰어난 개발여건을 갖추고 있다. 전통적으로 러시아 전체 경제성장을 유지할 수 있는 손쉬운 방편은 유럽러시아를 개발하고 확대시키는 방법이었다. 따라서 러시아는 이 지역에 집중적으로 투자하여 각종 산업이 일찍부터 발달해 왔으며, 본격적인 개방효과가 나타나면 더욱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볼가 지역은 이미 과거부터 자동차·석유화학·기계공업이 발달해 있어 용수문제와 전력문제만 개선된다면 손쉽게 성장이 가능한 지역이다. 이 지역의 성장은 중앙아시아 여러 공화국의 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쳐왔다.

반면 카프카스 지방은 용수 및 기술인력 부족, 문화적 장벽 때문에 공업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관광인구가 늘어나고 첨단산업과 노동집약산업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있어, 급속히 유럽러시아와 통합되고 있다. 서시베리아 지역은 이미 상당히 자원개발과 공업화가 이루어져 초기 투자비용에 대한 이윤을 충분히 획득하였다. 쿠즈바스·옴스크·노보시비르스크를 중심으로 한 도시서비스망과 유통망, 식량공급이 다른 지역에 비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인근의 우랄 공업지역이 공급기지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어 투자비용부담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낮아졌다.

따라서 이 지역 역시 유럽러시아와 급속히 통합되고 있다. 동시베리아 지역은 열악한 환경과 유럽러시아로부터의 거리 때문에 서부시베리아에 비해 투자비용이 훨씬 크고 그 효율도 낮다. 그러나 이 지역은 아직 개발되지 않은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어 앞으로 많은 투자가 이루어질 지역이다. 다만 최근 주요 생산물인 원목과 석유의 세계시장가격이 낮아 대규모 개발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극동지역은 일본자본과 시장에 의존하여 제한적이나마 성장을 계속해 왔다. 과거 구소련 이래 러시아는 거대한 규모의 매우 야심적인 계획을 수립하여 실행해 왔다. 이러한 계획의 결과로 유럽러시아는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개발되어 왔다. 앞으로 국가 프로젝트의 주 대상지역은 동시베리아와 극동지역이고, 이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역시 거대하고 야심찬 계획이 필요하다.

-러시아의 문화
성이삭사원
차이코프스키콘서트홀

러시아의 문명화는 문학, 음악, 발레 등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난다. 예술은 정치적 독간과 부딪쳐 순수한 러시아적인 예술의 형태와 편하지 않은 관계로 어울려졌다. 천년 역사의 러시아 문학은 러시아인의 문화, 정치, 언어적 혁명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해왔다. 현대에는 문학이 러시아인의 생활을 모든 면에서 나타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18세기 이래, 러시아 음악은 교회음악과 포크송, 춤곡으로 이루어졌다. 1700년대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의 오페라가 러시아에 소개되면서 오페라가 대중적인 예술이 되었다.

19세기 러시아는 문학처럼 세계의 음악에 점차 공헌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초반에는 이태리 음악이 모델이 되었지만 국민음악으로 발전하였다. 후반부에는 유럽의 고전 음악의 모방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때문에 러시아의 역사와 전설 등을 바탕으로 음악을 만들어갔다. 그런 그룹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와 무소르크스키의 오페라 등이다. 반면 차이코프스키는 서유럽 음악을 더욱 모방한 교향곡, 오페라 발레곡을 만들었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세계적인 작곡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으로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교향곡 6번' 등이 있다. 또한 라흐마니노프는 독일로 가서 그곳에서 피아니스트로의 명성을 떨쳤다.

20세기에는 음악과 공연이 소련 당국이 제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작곡가와 음악가를 계속 배출하였다. 그들은 그런 정책에 맞서 다른 나라로 망명, 또는 이주해 그들의 음악 활동을 계속하였다. 로스트로보비치가 대표적인 음악가이다. 또한 20세기 가장 훌륭한 작곡가라 하는 스트라빈스키는 발레곡을 작곡하고 1920년 망명했다. 1970, 80년대의 억압은 재즈, 락, 포크 음악을 음성적으로 자라나게 했다. 그래서 현재는 재즈가 러시아연방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 장르가 되었다.

록(rock)은 러시아 젊은이들이 서구의 록 그룹에 열광적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 당국에서 엄격하게 관리했고, 1980년 후반이 되어서야 약간의 록 그룹이 만들어져 1990년대 많이 활성화되었다. 러시아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발레이다. 발레의 발전에 러시아는 공헌했다. 발레는 다른 귀족적인 춤과 함께 러시아에 들어왔다. 1734년 발레학교가 세워졌고 이를 계기로 발레가 발전하여 서유럽 발레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러시아의 미술은 20세기 초반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냈다. 유명 화가로는 샤갈, 칸딘스키 등이 있다.

1919년 8월 레닌이 직접 서명한 ‘영화산업 국유화 포고’가 발효한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러시아 영화는 러시아문학의 고전작품을 영화화하는 등 소련국영 체제 아래 크게 발전하였다. 스포츠에서는 축구가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며 아이스하키도 대중적으로 널리 즐기고 있으며 테니스, 수영, 농구, 스키 등도 인기가 있다.
이르쿠츠크 드라마센터

-러시아의 국민생활


러시아 일반 국민의 생활상은 과거에는 획일적이었으나, 개혁이 진행되면서 개인의 능력과 책임 및 개성이 강조되고 새로운 생활상이 등장하고 있다. 한편 경제개방이 본격화하면서 새로운 부유층이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다. 이들의 생활상은 거의 서구의 부유층과 맞먹는 생활상을 보이고 있다.

① 생활수준 : 러시아 가구의 명목소득은 최근 급증하고 있다. 즉 가계의 1인당 월평균 화폐소득이 1991년 865루블에서 1993년 말에는 8555.9루블로 100배 가까이 증가하였다. 그러나 물가상승률이 화폐소득상승률을 훨씬 상회하여, 실질소득은 오히려 크게 줄고 있다. 한편 월평균소득 2,000∼4,000루블의 저소득층과 1만 루블 이상의 고소득층이 동시에 증가하고 있어 소득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1993년 2,000∼4,000루블의 저소득층은 전체인구의 40.5%를 차지하는 반면, 1만 루블 이상의 고소득층은 6.4%이다. 또, 2001년 8월에는 평균소득 2999.2루블, 평균연금 1126.8루블로 나타났다.

가계의 소비지출구조를 보면, 1993년 식비 지출이 전체 지출의 47.0%를 차지해 가장 높다. 그 다음으로 피복비·서비스 요금·내구소비재 구입비·주거비 순으로 지출규모가 크다. 이러한 지출구조는 본격적인 개방 이전에 비해 항목별 지출패턴은 거의 비슷하나 식비의 비율이 크게 증가하였다. 주거비 지출규모가 적은 것은 대부분의 주택이 국가에서 운영하는 임대주택으로서 임대료가 매우 싸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급실태는 10여 년 전에 비해 소폭 개선되었을 뿐이다.

한편 과거에 비해 생필품 부족현상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일부 품목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급부족현상이 계속되고 있으며, 공급이 풍부하더라도 구매력에 비해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 그러나 의료·교육·대중교통 등 공공서비스 비용은 비록 최근에 급격히 상승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는 안정되어 있는 편이다.

② 가정생활 : 러시아의 대도시에서는 3세대 동거가구를 흔히 볼 수 있으며, 대부분 자녀는 은퇴한 할머니가 돌보고 있다. 또한 부모에 대한 자녀의 봉양의무가 강하게 남아 있고, 명절이나 특별한 가족행사 때 친인척이 모이는 것이 보편적이다. 또한 가장의 권위가 높고, 일상의 가사와 금전관리는 주부가 맡는다. 이처럼 러시아의 가정생활에서는 동양적 생활상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생활상이 나타나게 된 데는 심각한 주택난도 크게 작용하였다.

노동연령에 있는 여성(14∼55세)의 대부분이 학업이나 취업을 하고 있어 주부들도 직장에 나가는 경우가 많다. 결혼연령은 평균 20대 전반으로 빠른 편이다. 이것은 결혼이 주택신청의 전제 조건이 되기 때문에, 주택난과 무관하지 않다. 반면, 주택난 때문에 부부가 동거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따라서 성도덕이 문란하고 결혼한 3쌍 중 1쌍이 이혼할 정도로 이혼율이 높다.

러시아에서는 토·일요일과 8일의 법정공휴일 및 평균 21일의 유급휴가가 있어 여가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편이다. 주말에는 스포츠와 놀이가 보편적으로 행해진다. 특히 대도시 가구의 상당수가 근교지역에 별장(다차)을 갖고 있어, 이곳에서 소규모 텃밭을 경작하면서 주말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휴가기간은 주로 여름에 집중되는데, 흑해·발트해·바이칼호 등지가 대표적인 휴양지이다.

③ 사회생활 : 러시아에서는 인간관계가 아주 중시된다. 관료주의가 강하고, 물자부족이 극심하던 과거에 비해 최근에는 많이 사라졌지만, 거의 모든 일상생활에서 인간관계가 크게 작용한다. 한국의 '백(back)'과 유사한 의미를 가지는 블라트(Blat)가 있으면 안되는 일이 없을 정도이다.

블라트와 마찬가지로 성행되고 있는 암거래와 물물교환 역시 특유한 현상이다. 암거래와 물물교환은 실제로 러시아 경제의 주요 부분이 되고 있다. 러시아의 사회문제는 술·마약·마피아·매춘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술은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서 그로 인한 알콜중독의 만연은 노동생산성의 저하, 안전사고의 빈발, 국민건강의 훼손, 가정생활의 파괴 등 막대한 국가적 손실을 일으키고 있다.

-러시아의 정치
레닌 혁명기념관

러시아는 대내외적으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의 법적 계승자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정치제도는 구소련의 것과 판이하게 다르다. 구소련이 1당 독재국가였던 데 비해 러시아는 다당제 민주국가이다. 1991년 8월 대통령 고르바초프를 실각시키고 소연방을 유지하고자 하는 보수파에 의한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간 후 소련은 급속한 해체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쿠데타 이전부터 소련의 붕괴는 예견되었다. 옐친은 1990년 5월 러시아공화국 최고회의 의장에 선출된 후 소연방을 탈퇴하고 공산당의 지도적 역할과 1당독재를 폐기하였으며 1991년 6월에는 국민에 의한 직접선거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보수파에 의한 8월 쿠데타 실패 후 중앙권력의 부재로 각 공화국은 일제히 독립을 선포했고 1991년 12월에는 고르바초프가 사임하였고 독립한 공화국들은 CIS(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독립국가연합)를 창설했다. 이로써 단일국가로서 소연방은 무너졌다. 러시아가 독립된 국가로 출범한 후 이 나라의 정치는 대단히 불안정했다. 특히 의회(인민대표자대회)와 행정부 간의 권력 분립이 불분명하여 헤게모니 다툼이 치열했다.

구소련 시절 구성되어 보수파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의회는 옐친 행정부의 개혁정책에 사사건건 제동을 걸었다. 이에 옐친은 3권분립을 명확히 하고 대통령권한을 강화하기 위해 1993년 10월 의회를 해산했다. 의회 해산 과정에서 자체 무장력을 갖추고 있던 의회보수파는 무력저항을 하였으나 진압되었다. 동년 12월에는 의회재선거가 실시되어 보수파의 입지는 크게 줄어들었다. 이로써 옐친은 보수파를 제압했으나 많은 의석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1998년 러시아 정부는 총리 위상을 강화하고 두 명의 제1부총리 권한을 축소하는 내각개편을 발표하였다. 또한 8월에 모라토리엄(지불유예)를 선언한 러시아 정부는 경제실정에 대한 책임을 물어 전면 개각을 단행했고 경제위기의 책임을 둘러싼 정부와 의회와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70여 년간 공산체제하에서 민주정치의 경험이 결여된 러시아는 새로운 민주정치체제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와 정치불안을 겪었다. 2000년 5월에 대통령에 취임한 푸친은 '강한 국가' 건설을 정책 목표로 내걸고 여러 가지 정책을 실시하면서 의회·지방·경제계에 입장을 강화하는 형태로 국내를 장악하고 있으며 정국도 안정되어가고 있다.

러시아는 국제법상 구소련의 완전한 계승자이다. 러시아는 소련이 가졌던 UN(United Nations: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의 지위를 물려받았으며 소련의 해외자산을 인수받았다. 구소련 외교의 기본방침이 마르크스-레닌주의에 입각한 서방과의 적대적 대결이었다면, 신생 러시아연방의 외교정책의 기조는 ‘서방과의 협력적 경쟁’ 또는 ‘서방에의 협력적 의존’으로 바뀌었다. 과거의 외교정책이 이념에 입각한 양분법적 도식에 의한 것이었다면 러시아 연방의 외교정책은 낙후된 러시아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서방의 경제지원을 얻어내고 국익에 철저히 입각한 것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서방7개국 정상회담에 회원으로서 참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중국과의 소모적인 경쟁을 중단하며 협력관계로 전환하고 일본과는 북방 4개섬을 반환하는 대가로 경제원조를 얻어내기 위한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미국과는 미국대폭발테러사건 후 미국의 대(對)테러 보복공격을 둘러싼 양국간 협의를 통해, 협력·협조 관계가 강해지고 있으며, 양국은 국제 테러나 대량 파괴 병기의 확산 등 평화에 대한 위협에 단호하게 대처할 것을 선언하였다. 특히 러시아는 유럽 못지 않게 일본·한국 등 동아시아를 중시하여 1992년에는 대통령 옐친이 한국과 일본을 방문한 바 있다. 러시아 국내경제 재건을 위해 서방과의 경제협력을 도모하는 것이 러시아 외교의 하나의 축이라면 다른 또 하나의 축은 구소련의 핵무기 독점을 유지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으로서 러시아의 위치를 견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러시아는 미국과 함께 핵무기 비확산에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러시아연방 탄생 이후 가장 큰 변화를 겪고 있는 것이 군사부문이다. 러시아는 구소련이 추구하던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운 세력 확장정책’에서 탈피하여 자국 영토의 보전을 위한 ‘순수 방위전략’으로 일대 전환을 이룩했다. 과도한 군사비 지출이 경제침체의 요인이 되었다는 인식 아래 러시아는 1994년 8월 독일(동독)에 주둔했던 구소련군을 철수시킨 것을 끝으로 해외주둔과 군사간섭을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한편 1997년 8월부터 대대적인 병력감축과 군비축소, 군수산업의 민수용으로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는 연방 내 공화국의 이탈에 대해서는 무자비한 군사적 진압을 하고 있다. 1994년 12월 러시아는 연방을 이탈하여 독립국가로 존재하고자 하는 체첸공화국에 대하여 무력공격을 개시하여 점령한 바 있다. 2000년 8월 12일에는 원자력 잠수함 크루즈크호(號)가 바렌츠해에서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하여 승무원 118명이 전원 사망하였다.

200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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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수도는 모스크바구요유럽러시아 중부,오카강지류인 모스크바강 유역에 자리를잡고있어요.글구 러시아의 문화는 회장시계, 제도마로스,마뜨료쉬까,제부시카가 있습니다.또 러시아의 국기는 위로부터 하양 라랑 빨강의 3색기로서 하양은 고귀함과 진실.고상함.솔직.자유.독립을,파랑은 정직.헌신.순수.충성을,빨강은 용기.사랑.자기희생을 나타냅니다.그리고 러시아의 환경은 냉대기후입니다. 러시아 자연은 아름답고 대륙성기후를 많이 받아서 건조한편 입니다.9월에 첫눈이 내리고 느리면 11월에 내립니다.개인별 국민 소득은 1,750$(달러)입니다.특산물은 성바실리 대성당,볼쇼이 발레,바이칼호,시베리아 횡단열차입니다.제가 아는건 이것뿐이예요 죄송 그래도 많은 도움 되시길....

200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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