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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러시아의 특징
dawn**** 조회수 12,686 작성일2010.11.09

저 수행평가가 있는데요, 파워포인트를 사용해서, 러시아에대한 것이에요.

 

1.러시아의 위치

2.러시아의 문화(아니면 문화제)

3.러시아랑 우리 사이

4. 러시아의 음식

5.러시아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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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24위, 한국사 70위, 사회학 14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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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러시아국기

 

 

2.위치

동부 유럽

 

3.면적

1707만 5400㎢

 

4.인구

1억 4367만 3000명(2002)

 

5.기후

 

러시아의 기후는 매우 한랭하고 긴 겨울과, 짧고 서늘한 여름을 가지는 전형적인 대륙기후이다. 남쪽의 중앙아시아에 발달한 산악지대가 습윤한 아열대성 기단을, 또 동쪽의 험준한 습곡산지가 태평양의 해양성 기단을 차단하며 서쪽의 대서양 기단의 영향은 거의 받지 않는다. 따라서 대부분 지역이 겨울에는 급속히 추워지는 반면 여름에는 급속히 기온이 상승한다.
기온의 연교차는 지역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데, 시베리아 베르호얀스크의 경우 연교차가 60℃를 넘어 세계에서 가장 큰 연교차를 보이고 있다. 이에 비해 모스크바는 연교차가 30℃에 못미치고 있으며, 발트해와 태평양 연안지역은 이보다 작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무상기일(無霜期日)이 150일 이하로 작물의 생육기간이 짧다. 1월에는 매우 한랭한 고기압부가 시베리아에서 형성된다. 바람이 육지에서 해양으로 불기 때문에 대부분 지역이 영하로 떨어지며 살인적인 추위를 느끼게 한다.
서쪽의 유럽러시아 지역은 대서양 기단의 영향을 일부 받지만 동쪽으로 올수록 그 영향이 약화된다. 따라서 1월의 등온선 분포는 북서쪽에서 남동 방향으로 뻗어 있다. 7월에는 유라시아 대륙의 기온이 상승하여 중앙아시아와 남부아시아에 저기압대가 형성된다. 이때부터 약 2∼3개월 간 강수가 집중된다. 7월 등온선 분포는 거의 위도와 평행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북극해 도서지방은 0℃, 북극해안은 5∼10℃, 시베리아 일대는 15℃ 전후, 유럽러시아 지역은 20℃에 육박하는 기온분포를 보인다.
대서양에서 발달한 해양성 기단은 러시아 강수의 주요 원천이 되고 있다. 강수량 분포는 북위 60° 부근을 정점으로 하여 남북으로 갈수록 강수량이 떨어지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대서양 기단의 진로가 북위 60°선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지역의 강수량이 500mm 이하인 가운데, 유럽러시아와 동시베리아에서는 500mm, 시베리아 중부 400mm, 북극해·카스피해 부근에서는 250mm 이하의 강수량 분포를 보인다. 우랄산맥에는 지형성 강우가 빈발하는 편이며, 지중해성 기후와 유사한 흑해 부근에서는 겨울강우량이 많다. 또한 극동지역은 몬순성 강우가 많다. 모스크바 부근은 겨울 평균기온이 영하 10℃, 여름 평균기온이 16℃이다.

 

6.특산물

원유 철강 석탄 아연 등

 

7.수출품

 

가구용 목재, 순록의 뿔, 밀, 양털 등

 

8.수입품

 

여러가지 생필품 등

 

 

 

9.러시아의 문화

 

러시아의 문명화는 문학, 음악, 발레 등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난다.

예술은 정치적 독간과 부딪쳐 순수한 러시아적인 예술의 형태와 편하지 않은 관계로 어울려졌다. 천년 역사의 러시아 문학은 러시아인의 문화, 정치, 언어적 혁명에서 독특한 자리를 차지해왔다. 현대에는 문학이 러시아인의 생활을 모든 면에서 나타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18세기 이래, 러시아 음악은 교회음악과 포크송, 춤곡으로 이루어졌다. 1700년대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의 오페라가 러시아에 소개되면서 오페라가 대중적인 예술이 되었다.
19세기 러시아는 문학처럼 세계의 음악에 점차 공헌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초반에는 이태리 음악이 모델이 되었지만 국민음악으로 발전하였다.

후반부에는 유럽의 고전 음악의 모방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을 하였다. 때문에 러시아의 역사와 전설 등을 바탕으로 음악을 만들어갔다.

그런 그룹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오페라와 무소르크스키의 오페라 등이다. 반면 차이코프스키는 서유럽 음악을 더욱 모방한 교향곡, 오페라 발레곡을 만들었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세계적인 작곡가로 명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으로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교향곡 6번' 등이 있다. 또한 라흐마니노프는 독일로 가서 그곳에서 피아니스트로의 명성을 떨쳤다.
20세기에는 음악과 공연이 소련 당국이 제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작곡가와 음악가를 계속 배출하였다.

그들은 그런 정책에 맞서 다른 나라로 망명, 또는 이주해 그들의 음악 활동을 계속하였다.

로스트로보비치가 대표적인 음악가이다.

또한 20세기 가장 훌륭한 작곡가라 하는 스트라빈스키는 발레곡을 작곡하고 1920년 망명했다. 1970, 80년대의 억압은 재즈, 락, 포크 음악을 음성적으로 자라나게 했다. 그래서 현재는 재즈가 러시아연방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 장르가 되었다.
록(rock)은 러시아 젊은이들이 서구의 록 그룹에 열광적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 당국에서 엄격하게 관리했고,

1980년 후반이 되어서야 약간의 록 그룹이 만들어져 1990년대 많이 활성화되었다.

러시아 문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발레이다.

발레의 발전에 러시아는 공헌했다. 발레는 다른 귀족적인 춤과 함께 러시아에 들어왔다.

1734년 발레학교가 세워졌고 이를 계기로 발레가 발전하여 서유럽 발레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러시아의 미술은 20세기 초반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냈다.

유명 화가로는 샤갈, 칸딘스키 등이 있다.
1919년 8월 레닌이 직접 서명한 ‘영화산업 국유화 포고’가 발효한 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러시아 영화는 러시아문학의 고전작품을 영화화하는 등 소련국영 체제 아래 크게 발전하였다.

스포츠에서는 축구가 가장 인기 있는 종목이며 아이스하키도 대중적으로 널리 즐기고 있으며 테니스, 수영, 농구, 스키 등도 인기가 있다.

 

10.러시아의 대표적인 인물

 

차이코프스키

 

 니콜라이레닌

 

스탈린

 

 

 

11.러시아의 문화재 및 여행지소개

 

 

1.붉은 광장

 

다갈색의 포석()이 깔려 있으며, 가장 넓은 부분의 너비는 100m, 길이는 500m 가량이다. 남동단의 화려한 바실리블라제누이 성당(16세기), 크렘린 쪽의 레닌묘, 북서단의 역사박물관 등 아름다운 역사적 건물과 유명한 굼 백화점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15세기 말부터 크렘린 정면의 광장이 되었으며, 차르의 선언이나 판결, 포고가 내려지던 곳이다.

역사적으로는 상업광장·화재광장 등으로 불렸다가 17세기 말부터 ‘아름다운(크라스나야)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크라스나야에는 ‘붉은’이라는 뜻도 있다). 현재 메이데이 등의 시위행사나 사열식이 행해진다.

 

2.콜로멘스코예 교회 ( Church of the Accension, Kolomenskoye , 1994 )


모스크바 근처의 콜로멘스코예 황실 영토에 위치해 있으며, 1532년에 훗날 '공포의 황제' 이반 4세가 되는 왕자의 탄생을 기념하여 건립하였다. 이 교회는 목조텐트로 된 지붕과 돌 및 벽돌로 이루어진 하부구조 형식으로 되어있으며 러시아 교회 건축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유적이다.

 

3.크레믈린(Kremlin)

러시아 역사 및 문화의 산 증거. 둘레는 2235m이고, 벽 위에는 20개의 망루가 있으며 레닌 묘, 스파스카야탑, 크타피아탑, 대회궁전, 12사도 사원, 이반대제의 종루, 궁전병기고, 레닌상, 크레믈린극장 등 명소 다수. 1156년 유리 돌고루키에 의해 최초로 목조 성채가 건축되었으며,1367∼68년에 흰색의 돌벽으로 확장,개축되었고, 1485∼95년에 러시아인과 이탈리아인의 합작으로 현재의 성벽이 건축됨. 이반 3세는 동로마제국 마지막 황제의 조카딸인 소피아 팔레오로그를 왕비로 맞아들여 비잔틴 황실과 인척관계를 맺었으며, 한때 터키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 후로는 "제3의 로마"로 불려졌음. 그후 16세기 이반뇌제의 통치기간 중 크레믈린은 황금시대를 맞이하였음. 18세기 표트르 1세가 수도를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이전하면서부터 쇠퇴하기 시작. 1812년 나폴레옹의 침략시 러시아는 수도를 불태우는 초토화 작전으로 격퇴했는데 이때 크레믈린도 소실됨.

4.성 바실리 성당(St.Basil Cathedral)


붉은광장 입구에 위치한 한가운데 있는 47m높이의 양파머리 지붕과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여덟개의 양파머리 지붕들이 성 바실리 사원이다. 그것들은 대칭으로 잘 조화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제멋데로 솟아 있는데 오히려 이런 불균형이 멋진 조화를 자아내고 있다. 이처럼 기묘한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포스트닉과 바르마이다.이반대제가 카잔 한을 항복시킨 기념여 짓도록 한 건물인데 1555-1560년에 걸쳐 완성된 사원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다시는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지 못하도록 두사람의 눈을 뽑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5.볼쇼이 극장


8개의 원기둥으로 입구가 장식되어 있는 대표적인 극장. 1776년에 창립, 화재를 겪은 뒤 1824년 안드레이 미하일로프와 오시프 보베가 다시 건축함. 내부는 평면의 일반 객석(파르테르) 외에 5층으로 된 박스석이 사면을 둘러싸고 있음.

 

6.노보제비치 수도원

지금은 여자 수도원이지만 원래는 크레믈린의 출성. 16세기 말 모스크바강을 넘어 쳐들어온 타타르군을 12개의 망루에서 발견하여 포격을 가하기도 했고, 17세기 폴란드와 동맹관계에 있던 리투아니아가 진격해 오는 것을 포자르스키가 이곳에서 출격하여 섬멸하기도 했음. 또한 보리스 고두노프가 황제로 추대된 곳이기도 함. 고골리, 체호프, 마야코프스키, 스타니슬라프스키 등 270여명의 저명인사묘가 있다.

 

 

 

12. 러시아의 산업

 

 1) 기계제조업 : 기계제조업의 발달로 연방 내의 증기 보일러, 터빈, 전기 발전기, 곡물용 콤바인, 자동차, 전기 기관차 뿐만 아니라 공작기구, 도구, 자동화 기계부품 등을 자급하고 있다. 주요자동차 공장은 모스크바, 니주니노브고로트, 미아스, 야로슬라블, 심비르스크, 이제프스크에 있으며, 가장 규모가 큰 공장으로는 톨리야티에 있는 지굴리 공장과 나베레즈니예 첼니에 있는 거대한 트럭 공장을 들 수 있다.

 

 2) 화학산업 : 화학산업은 암염, 코크스로, 목재, 감자를 원자재로 활용하기 위해 개발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야로슬라블, 예프레모프, 보로네슈를 비롯해 대규모의 감자생산지역에 합성고무 공장이 들어섰으며, 비철금속 야금업으로 유명한 크라스노우랄스크, 키로보그라트, 카라바슈, 메드노고르스크, 첼랴빈스크, 블라디카프카스에는 황산 공장이 세워졌다. 칼륨과 인산 광산이 인접한 근처에 있는 솔리캄스크, 베레즈니키, 페름, 보스크레센스크, 브랸스크, 크라스노우랄스크, 멘델레예프스크 등에는 칼륨염·인회토 비료공장이 세워졌다.

 

 3) 경공업 : 섬유산업은 유럽권 러시아, 특히 중앙에 크게 집중되어 있는데 러시아에서 생산되는 의류와 신발류 대부분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냉장고, 세탁기, 라디오, 텔레비전과 같은 내구 소비재는 주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포함한 그 주변지역에서 생산된다.

 

 

13. 농업, 임업

 

 1) 농업

  (1) 농지는 영토의 1/6이다.

  (2) 농지의 약 3/5이 경작지이며 그 나머지는 방목장과 목초지로 사용된다.

  (3) 주요농산물 : 밀, 보리, 호밀, 귀리

  (4) 사료작물 : 목초, 클로버, 옥수수

  (5) 산업용작물 :  해바라기, 사탕무, 아마

  (6) 기타 : 감자와 그밖의 채소를 재배한다.

 

 2) 임업

  (1) 러시아는 세계 최대의 삼림지대를 보유하고 있다.

  (2) 제재, 펄프, 제지, 목재 산업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3) 세계 연재 생산량의 1/5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14. 무역

 

 1) 수출품 : 석유, 천연가스, 기계제품, 소비재

 2) 수입품 : 곡물, 광물

 

 

15. 사법제도

 

러시아 최고의 사법기관은 최고재판소이다.

최고재판소는 러시아 내 모든 사법기관의 활동을 규제, 감독한다.

1991년 러시아 법과 조약의 재심리를 위해 헌법재판소가 설치되었다.

법원은 모든 시민은 법 앞에 동등하며 소비에트 법의 적용에 있어서도 동등하다는

평등의 원칙에 입각하여 헌법상의 정의를 실현한다.

과거 스탈린 시대에는 수백 만의 시민들이 비합법적 사법처리로 고통을 겪어야 했다.

비록 소규모이기는 해도 비합법적 사법처리의 관행은 1980년대초까지 공공연히 지속되었다

 

 

16. 군사제도

 

러시아 군은 육군, 해군, 공군, 방공부대와 전략미사일 부대로 이루어지며 대통령의 지휘 아래 있다.

전체 군인의 절반 정도가 징집병으로 복무기간은 육군 18개월, 해군 24개월이다.

대상은 18세 이상의 남성이지만 복무회피가 만연해 있다.

러시아의 군사기지는 몇몇 옛 소련의 공화국들에 분산되어 있으며 그 중 일부는 CIS군에 속한다.

소련 붕괴 이후 군사력은 점점 쇠퇴추세이지만

여전히 러시아군은 세계에서 가장 큰 군대이며 방대한 핵무기도 보유하고 있다.

해외와 국내 정보수집을 위해 각각 대외정부와 연방정보국이 있는데,

두 기관은 1991년 소련 KBG로 알려졌던 국가보안위원회가 사라진 후 설치되었다.

 

17. 교육제도

 

1990년대가 시작되기 바로 전까지만 해도 소련의 교육제도는 중앙집권화되어 있었다.

러시아의 교육제도는 아직까지 소련의 옛 교육제도와 유사한 제도를 고수하고 있다.

급진적인 개혁운동의 결과 많은 학습과목내용이 개정되었고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골자로 한 강제적인 사상교육이 사라졌다.

한편 유치원 교육이 매우 발달하여 부모들의 재정적 부담이 요구되는데도 불구하고

취학전 아동 가운데 많은 수가 보육원이나 유치원에 다니고 있다.

무상·의무 교육은 7세에 시작되어 최소한 8년 동안 지속되는데,

학령아동의 60% 이상이 10년까지 학교교육을 받고 있다.

대학과정을 수료하는 데는 일반적으로 5년이 소요된다.

러시아에 있는 많은 대학교 가운데 가장 유명한 대학으로는

모스크바대학교와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교가 있다.


 

18. 한국과의 관계

 

= 러시아와 그 주변 지역에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다.
= 두만강 건너편을 개척하거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하여 구 소련 땅으로 건너간 우리 동포들은 아직까지 우리말과 글, 풍속을 지켜 오고 있다.
= 시베리아 개발을 중심으로 우리 나라와 협력이 증대되고 있다.
= 우리 나라와의 경제 협력과 교류는 더욱 활발해 졌다
서울 G20 정상회의에 러시아 대통령이 방한해서 두 나라의 교류협력의 폭과 깊이가 더해졌다
 
 
 
 
러시아와 우리나라의 관계 - 상세히 -
 
 

 

 

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소련 외무부 영사단이 입국, 구상서(口上書)를 교환함으로써 양국 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89년 서울과 모스크바에 영사처를 개설하기로 합의, 9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첫 정상회담에서 양국간 국교가 정식 수립되었다.

 

옐친대통령이 92년 한국을 공식방문, 한·러 기본관계조약 등에 서명하고 6·25와 KAL기 격추사건에 대해 사과를 표명하였다. 1994년 6월 김영삼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해 북한 핵문제 공조 및 양국간 교류확대 방안을 협의하고 환경협력협정을 체결했으며, 99년 5월 김대중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 동반자관계 발전방안에 합의하고 형사사법공조조약·원자력협력협정 등에 서명하였다.

 

러시아는 북한에 1996년 9월로 효력이 끝나는 상호원조조약에 규정된 전쟁시 자동개입조항의 수정을 요구했다. 이로써 두 나라 간의 기존 군사동맹관계는 폐지되었다.

 

그뒤 한국과 맺은 주요 협정을 보면, 방산·군수협력협정(97.11), 원자력협력협정(99.5), 형사사법공조조약(99.5), 관광협정(2001.2) 등이다.

 

2002년 대한수출은 22억 1800만 달러, 수입은 9억 3816만 달러이며, 2001년 교민 15만 6000명, 체류자 4700명이다.

 

 

19. 러시아의 음식

 

러시아의 전통 음식에 대해

 
러시아인의 전통음식은 호밀로 만든 흑빵, 각종 곡물로 만든 죽(카샤), 양배추로 만든 국(시치)등이다. 음료수로는 맥아를 발효시켜서 만든 크바스, 맥주, 차(茶)를 좋아하며, 보드카도 많이 마신다. 18세기 이후 러시아의 근대화에 따라서 유럽, 특히 프랑스 요리가 러시아에 도입되었고, 주로 농민 출신의 상인들은 전통적인 미각과 식관습을 더욱 세련되게 하는 동시에, 새로 러시아 영토로 편입된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전해진 요리를 받아들여 오늘날과 같은 러시아 요리가 성립되었다.



전채(前菜), 수프, 주(主) 요리, 후식 순서로 진행되는 정찬 식사의 메뉴와 대체로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천천히 오랫동안 식사를 즐기며, 특히 손님을 초대한 경우에는 융숭하게 대접하는 관습 등 음식문화는 오늘날도 상당 부분 러시아적 특성을 그대로 간직하고있는 영역이다. 지역마다 차이가 크지만, 러시아 요리의 풀코스는 다음과 같은 메뉴로 이루어진다. ① 자쿠스카: 각종 냉육, 캐비어, 청어절임 등의 어육, 그리고 야채샐러드를 곁들인 전채. ② 수프: 양배추를 건더기로 하는 시치에 토마토와 비트로 붉은 색을 들인 보르시치, 잘게 썬 고기와 야채를 듬뿍 넣은 솔랸카, 생선을 우려낸 우하 등의 뜨거운 수프 이외에, 여름에 적당한 크바스를 주 재료로 해서 만드는 차가운 수프인 오크로슈카 등. ③ 육류, 조류 혹은 생선요리: 쇠고기를 사워크림 소스로 끓인 비프 스트로가노프와 같은 러시아에서 고안된 것, 샤슐리크와 같이 중앙아시아에서 들어온 것 등. ④ 디저트: 딸기류 아이스크림이나 각종 파이, 케이크와 잼을 곁들인 홍차 등.





러시아인의 일상의 음식 : 빵, 카샤, 시치, 블린, 피로그, 보드카, 차



러시아인들의 주식은 빵이다. 평상시 농촌에서는 주로 호밀을 이용하여 빵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색깔이 검었고, 밀로 만든 흰 빵은 잔치 때와 같은 특별한 날에 특별히 만들었다. 빵은 손님접대에 있어서 ‘융숭한 대접’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를 나타내는 용어가 바로 ‘빵과 소금’이다. 러시아인들이 귀빈을 맞이할 때 ‘소금이 담긴 둥글고 큰 빵’을 손님에게 정중히 제공한다. 빵은 소금과 함께 모든 길, 흉사에 동반되었다. 가장 귀하고 유명한 손님들, 결혼식 날의 젊은이들을 빵과 소금으로 맞이하였다. 빵의 중요성은 20세기에 접어들면서도 변하지 않았고, 평상시에는 호밀빵(흑빵), 잔치 시에는 밀빵(흰빵)을 먹었다. 그러나 소비에트 혁명 이후에는 빵의 주도적인 비중이 점차 줄어들게 되어 과거와 같은 독보적인 의미는 약해졌으며, 흑빵보다는 흰빵이 러시아인들에게 인기를 얻게 되었다. 각 가정에서 빵을 구워먹던 관습은 빵공장에서 다양한 종류의 빵이 생산됨에 따라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빵과 함께 러시아인들이 즐겨 먹던 음식은 물이나 우유에 끓인 곡물로 만든 음식으로서 죽이라 할 수 있는 ‘카샤’다. 결혼식이나, 세례식, 추도식 등에서 죽은 필수음식으로 준비되었는데, 특히 중세기 러시아에서는 결혼식 피로연을 “카샤(죽)”라고 불렀다. 러시아인이 가지고 있는 죽에 대한 개념은 독특했다. 적대적이던 상대방과 화해의 뜻으로 죽을 끓였는데, 특히 전쟁을 종결짓는 강화조약 체결 시에는 당사자가 모두 식탁에 모여 앉아 죽을 먹었다. 이로써 양국은 상호간의 동맹과 우호를 표방했던 것이다.



“시치와 카샤는 우리들의 음식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죽과 함께 옛날 러시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음식 중의 하나는 바로 국이라 할 수 있는 ‘시치’이다. 시치는 양배추가 들어간 국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러시아인들은 고기국물에 신선한 양배추나 신맛이 나는 양배추를 넣어 끓였는데, 봄에는 양배추 대신 갓 피어난 엉겅퀴를 넣기도 하였다. 순무를 넣은 순무국(순무시치)도 소중한 일상음식이었다. 시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러시아인들의 구미를 돋구는 국으로 사랑받고 있는 음식이다.



러시아인의 일상의 음식 가운데 아마도 가장 오래되었으며 대중적인 음식은 ‘블린’일 것이다. 블린은 러시아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명절음식이다. 블린은 겨울을 보내는 전통적인 명절인 마슬레니차 기간에 필수적인 접대음식이었다. 오늘날도 러시아인들이 축제나 일요일에 블린을 만들어 먹는다. 블린이 “태양, 행복한 세월, 풍성한 수확, 행복한 결혼, 건강한 자식들” 등을 상징하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결혼할 때나 아이를 낳을 때 등 다른 날에도 블린을 만들어 먹었고, 추도식 후 식사 때에도 블린은 필수음식이었다.



오늘날에도 노점에서 판매될 정도로 일상의 음식이면서도 블린과 함께 명절이나 중요한 행사시에 빠지지 않는 러시아 전통음식은 바로 ‘피로그’이다. 피로그는 조그만 반달모양에서부터 길죽한 보트모양과 둥근 모양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며, 특히 둥글고 큼직한 피로그는 마치 오늘날의 피자 파이를 연상케 한다. 둥글고 큰 피로그는 그 표면 위에 각종 야채나 고기 및 기타 음식으로 장식되며, 생크림이 가장자리에 뿌려져 아주 화려하게 보이게 하는 경우가 많다. 피로그는 명절 때나 주요 잔치 때에 항상 준비되는 음식이었다. ‘피로그’라는 단어 자체가 ‘연회’(pir)에서 유래되었듯이 피로그는 축제일에 먹는 빵을 의미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술인 보드카(vodka)는 물(voda)이라는 러시아어에서 유래되었다. 알코올 성분이 40% 이상인 무색 투명한 증류주인 보드카는 러시아인들이 가장 즐겨 마시는 술이다. 보드카는 처음부터 그 판매를 정부가 독점하였으며, 18세기 표트르 대제 시대부터 국가의 주류통제는 점차 국가세입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러시아의 민중들은 보드카를 약이나 마취제로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감기에 걸리면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듯이 러시아인들은 후추와 함께 보드카를 마신다. 배가 아플 때도 그들은 보드카에 소금을 타서 마신다. 이처럼 보드카는 러시아인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보드카가 러시아인들의 술로서 역사무대에 등장한 것은 러시아 국가의 역사에 비하면 그리 오래된 사실은 아니다. 보드카가 하나의 독자적 용어로서 그리고 알코올 도수가 40%로서 과학적으로 정립된 것은 19세기 후반에 와서 이루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인들은 보드카 없이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보드카는 러시아에서 가장 대중적인 알코올 음료다. 러시아인들은 보통 보드카를 마실 때 100g 정도씩 따라 한꺼번에 마시는 것이 관습이며, 특히 여러 사람과 술자리를 같이할 때 첫잔은 반드시 비우는 것이 관례로 여겨져 있다.



차(茶)는 250여년 전에 아시아로부터 도입되어 러시아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현재 러시아에는 차를 마실 때 다소 특이한 관습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각설탕이나 사탕을 하나를 먼저 입안에 넣고 설탕이 들어있지 않는 차를 마시는 일이다. 이러한 습성은 바로 설탕 값이 매우 높았던 이전 시대에 생겨난 전통관습이다.



국제화와 세계화의 추세가 확산될수록 러시아 음식에서도 자기만의 고유 전통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앞에서 언급한 러시아 전통 음식들을 쉽게 만날 수 있는 음식점인 ‘루스코예 비스트로’와 ‘욜키팔기’가 우리의 시선을 끈다.

2010.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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