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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본조비에 관해...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9,017 작성일2003.01.11
존본조비와 스캔들났던

연예인 누구누구있죠??

다이안레인제외하구여..

다이안레인하고는 얼마정도사겼어여?

글구 고등학교때부터 사겼던..여자친구와 헤어진뒤

다이안과 사귀고...그리고 헤어졌지여...글구나서

고등학교때부터 사겼다 헤어진 여자친구와 결혼한 것으로

알고있는데 맞나여???

영화배우라고 하던데 이름이 뭐예여?????

존본조비 나이가 우리나라 나이루 40맞아여??

글구 본조비의 음악적 위치나 영향력에대해서도

알고싶어요..

아직도 그의 인기는 여전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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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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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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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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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을 읽어보세여..본조비가 걸어온길을 알수 있고여..여자친구애기도 있어여.
그리고.본조비의 인기는 여전하다고 해야 겠죠?읽어보시면 알아여..넘 유명해서
1982년
존 본조비(John Bongiovi)의 "Runaway"로 WAPP의 록 콘테스트에서 우승 차지. "Runaway"는 방송용 편집 앨범에 수록되어 매일밤 전파를 탔고 앨범이 발매되기도 전에 높은 인기를 끌었다.
1983년
존 본조비와 A.C.E시절의 동료 데이비드 브라이언 래쉬바움(David Bryan R ashbaum,key)을 비롯 알렉 존 서치(Alec John Such,b), 그리고 티코 토레스(Tico Torres, ds) 데이브 스네이크 세이보(Dave "Snake" Sabo, g)등과 함께 John Bongiovi & The Wild Ones를 결성하였다. 7월에는 존과 폴리그램과 솔로계약을 체결하였고 이 계약은 후에 밴드 계약으로 바뀌었다. 폴리그램측에서는 존의 성 Bongiovi를 바꿀 것을 요구하여 Bon Jovi로 바꿔 밴드 이름을 썼으며 존의 철자도 Jon으로 고쳐 전체적인 균형을 맞췄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본 조비의 로고는 존의 동생 앤소니의 솜씨이다.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은 이후 본 조비는 기타리스트를 리치샘보라(Richie Sambora)로 바꿨다. 9월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Z.Z.Top의 오프닝 밴드로 무대에 섰고 10월에는 에디 머니의 서포트 밴드로 미국 남부 투어에 돌입하였다.이 순회 공연이 끝난 후 본 조비는 독 맥기와 턱 테일러의 매니지먼트인 맥기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했다.
1984년
1월에 데뷔 앨범"Bon Jovi"가 발매 되었다. 3월에는 스콜피언스의 서포트 밴드로 전미 순회 공연길에 올랐다. 4월 첫 앨범인 Bon Jovi의 싱글 "Runaway"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 등장, 최고 39위까지 행진하는 한편, 음반은 앨범순위 43위까지 상승하는 기염을 토했다. 7월에는 두 번째 싱글인 "She Don't Know Me"가 빌보드 싱글 차트 48위까지 진출하였다. 8월에는 나고야 구장에서 첫 일본 공연을 가졌고 9월에는 그룹 "Kiss"와 함께 유럽투어를 시작했다. 11월 리허설 스튜디오에서 도난사건이 발생, 이 사고로 본 조비는 녹음 기재를 잃어버려 경제적,정신적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존의 육촌 형인 토니, 그리고 파워 스테이션과도 마찰이 생겨 필라델피아의 녹음실로 자리를 옮기고 이 스튜디오 주인인 랜스 퀸의 프로듀스로 2집 작업에 들어갔다. 두 번째 작품에 실릴 곡을 만들 당시의 존은 고등학생 시절부터 사귀어 오던 여자친구 도로시아 헐리와 결별한 상태여서 "Only Lonely", "Silent Night"등 외로음이 가득찬 노래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여배우 다이언 레인(Diane Lane)과 교제하기 시작했다. 12월 17일부터 2집 녹음에 착수, 녹음 기간중 필라델피아 북서부에 있는 엠파이어 룸 클럽에서 "톰 키퍼"가 이크는 4인조 밴드 신데렐라(Cinderella)의 라이브를 보게 되었고, 이들의 실력에 감탄한 존은 레코드 기획자에게 신데렐라를 소개해 주었다. 또 그는 두 번째 앨범의 녹음 작업이 끝난뒤 엔지니어"닉 디 디어"와 함께 어릴적 친구였던 " 데이브 스네이크 세이보"가 이끄는 스키드 로우(Skid Row)의 데모 테입을 프로듀스하기도 했다.
1985년
4월에 2집 "7800 Fahrenheit"을 발매하였다. "7800 Fahrenheit"는 '화씨 7800도'라는 말로 화산폭발 때 바위가 녹는 온도인데, 바위는 영어로 "Rock"이므로 록 음악을 녹여버리겠다는 본 조비의 의도를 알 수 있다. 한편 키보디스트 데이비드 브라이언 래쉬바움은 어려운 이름 때문에 고민 하다가 끝의 성을 떼어 버리고 데이비드 브라이언으로 개명했다. 6월 두 번째 앨범의 첫 싱글 "Only Lonely"가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 54위를 차지했다. 앨범은 3주간 37위를 기록했다. 7월 "래트(Ratt)"의 전미 순회공연에 스페셜 게스트의 자격으로 동행하였다. 래트와함께한 이 투어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 중의 하나가 존과 래트의 드러머 "바비 블로처"의 미모 경쟁(?)이었다. 존이 휴게실에서 분장하고 있을 때 건장한 체구의 바비가 나타났다. 한 손에 버드와이저 맥주를 든 바비는 "이봐, 컨디션은 어때?"하고 물으며 존이 화장하는 모습을 뚫어지게 관찰했고 자연히 거울에는 존과 이를 바라보는 바비의 얼굴이 동시에 비춰지게 되었는데 선이 여리고 반 듯반듯하게 생긴 존과 우락부락한 바비의 얼굴은 극과극이었다.

바비 자신도 이 모습을 보고 마음이 편치 않았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존이 아무 생각없이 " 아...나는 왜 이다지도 잘 생긴걸까" 하고 말해 버려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화가 난 바비는 들고 있던 맥주병을 바닥에 팽개치고 나가 버렸다고 한다. 한편 루이스빌에서 벌어진 쇼에는 존의 여자친구 다이언 레인이 휴게실로 찾아왔다. 그 때 당시 그녀는 "코튼클럽","스트리트 오브 파이어" 의 출연으로 높은 인기를 자랑하고 있었고 유명 여배우를 눈 앞에서 만난 래트의 멤버들은 대소동을 벌였다.특히 래트의 보컬리스트인 "스티슨 피어시"는 눈을 빛내며 함께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는데 가엽게도 단 한마디로 거절당했다고 한다.이렇게 여러가지 일들이 있었지만 쇼는 무사히 끝났고 함께 투어를 나서기 전에는 "신인인데도 하와이에서 느긋하게 휴가나 즐기는 래트 따위 밴드는 정말 싫다"라고 말했던 존도 가까이 지내본 후에는 "래트는 정말 좋은 사람들"이라며 칭찬했다. 8월에는 텍사스주 달라스에서 열린 Texas World Music Festival에 딥 퍼플, 스콜피언스, 테드 누전트, 나이트 레인저 등과 함께 출연하여 8만여 관중 앞에서 연주하였다. 그리고 일리노이주에서 열린 "Farm Aid I"에서 어려운 농촌을 굳세게 헤쳐나가자는 내용의 "Heart Of America"를 불렀는데 이 행사 참가로 본 조비는 밝고 건강하고 가장 미국적인 밴드로 받아들여졌다. 또 17일에는 "Monsters Of Rock"에 등장하여 7만 관객앞에서 공연했으며 이날 2집에서의 두 번째 싱글 "In And Out Of Love"가 빌보드 싱글차트 69위를 차지했다. 10월에 1집 "Runaway"와 2집"7800 Fahrenheit"모두가 미국 내에서 골드 디스크를 수상하였다.

1986년
7월 3집 작업을 마친 본 조비는 텍사스주에서 개최된 "Farm Aid Ⅱ"에 참가하였다. 이 행사에서 존은 컨트리의 거장 "윌리 넬슨"과 함께 "Amazing Grace"를 불렀고 "조 월시"가 가세하여 "Rocky Mountain Way"를 선사했다. 그리고 존 본 조비, 윌리 넬슨, 조 윌시 트리오가 "Smokin' In The Boys Room"을 부를 때 이 곡의 주인공인 머틀리 크루의 "빈스 닐"이 등장해 쇼를 절정으로 끌어 올렸다. 8월 30일과 31일에 걸쳐 독일의 무대에서 스콜피언스, 오지 오스본, 데프레파드, 마이클 쉥커그룹과 함께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9월에 본조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3집"Slippery When Wet"을 발매하였다. 프로듀스는 브루스 페어반(Bruce Fairbairn)이 맡았는데, 그가 3집의 프로듀스를 맡게 된 배경은 그가 담당한 "Black And Blue"의 카세트 테입을 들어본 존은 테입의 음질이 그간의 본 조비의 CD보다 탁월한 것에 놀라 곧 브루스 페어반을 영입했다고 한다. 세 번째 앨범의 기본 개념은 "재미(Fun)"였는데, 이 주제에 근접하기 위하여 앨범 제목도 원래 내정되었던 "Wanted Dead Or Alive"에서 "Slippery When Wet"으로 변경했으며, 녹음실 주변의 청소년들을 스튜디오로 초대해 곡에 대한 의견을 듣기도 하였다. 11곡의 수록곡 중에는 존과 리치가 다른 그룹을 위해 만든 작품도 있는데 "Without Love"는 "존 웨이트"에게 줄 예정이었고, "You Give Love A Bad Name"은 "러버 보이"에게 제공할 예정이었다. 10월에는 3집 앨범이 발매 한달만에 빌보드 정상을 차지 하였다. 그리고 본 조비는 "38 Special"의 투어에 오프닝 밴드로 나선 것을 마지막으로 서포트 밴드 생활을 청산했다.

11월 영국 브랜포드를 시발점으로 유럽 투어를 단행했고 3집 첫 싱글"You Give Love A Bad Name"은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하며 본 조비에게 넘버원 싱글을 낸 밴드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선사했다. 12월에는 필라델피아에서 직접 발굴한 밴드 "신데렐라"를 서포트로 기용하여 전미 투어를 개시했다. 그리고 31일에는 고향 뉴저지로 금의환향하여 귀향 콘서트를 가졌다.
1987년
1월 두 번째 싱글 "Livin' On A Prayer"의 인기로 3집이 다시 앨범 차트 12위로 등극, 7주간 정상을 지켰다. 2월"Livin' On A Prayer"가 4주째 정상을 지키고 있을 무렵 플로리다의 95라디오 방송국 주최로 열린 자선 야구대회에 본 조비의 전 멤버가 참여했는데 많은 록 스타들이 모인 이 경기는 7회때 여자팬이 그라운드로 뛰어들면서 난장판이 되었다. 4월 존은 맨하탄의 하드 록 카페에 자신의 기타한대를 기증했다. 6월 3집의 세 번째 싱글"Wanted Dead Or Alive"가 싱글 차트에서 7위를 기록하였다. 존과 리치는 신데렐라의 비디오 크립인 "Somebody Save Me"에 출연했으며,여가수 쉐어(Cher)의 앨범" Cher"에 참가해 "All Sleep Alone"와 "Bang Bang" 두곡을 프로듀스 했다. 8월 영국에서 열린 "Monsters Of Rock"에 헤드라이너로 출연하여 디오, 메탈리카, 앤슬랙스, WASP, 신데렐라와 공연을 가졌다. 11월 존과 리치는 출판권 관리 회사인 뉴저지 언더그라운드 뮤직(Newjersey Underground Music Inc.)을 설립하고 스키드 로우와 첫 계약을 맺었다. 이 계약으로 회사는 스키드 로우가 녹음한 모든 곡과 인세를 관리하게 되는데 후에 인세의 배분으로 존과 스키드로우의 보컬인 "세바스챤 바하"사이에서 문제가 벌어지기도 했다. 21일 빌보드 주최로 열린 뮤직 어워즈에서 본 조비의 "Livin' On A Prayer"가 "Best Stage Performance"와 "Best Overall Performance"로 지명되었다. 12월 3집의 비디오 클립과 백스테이지에서의 인터뷰, 기자회견등으로 제작된 홈비디오"Slippery When Wet The Video"를 출시하였다.

1988년
9월 네 번째 앨범 "New Jersey"를 발매하였다. 4집은 10월에 차트 등장 2주만에 정상에 올랐고 4주간 자리를 지켰다. 10월말에는 아일랜드에서 "Brotherhood"투어에 나섰다. 11월 소련 프로모터 스타(Star)의 초대를 받아 3일간의 프로모션을 가졌는데 소련은 씻을 물도 마실 물도 부족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 19일에는 4집의 첫 싱글"Bad Medicine"이 차트 1위를 차지하여 본 조비에게는 세 번째 넘버원 싱글곡을 안겨주었다. 2월 두 번째 싱글"Born To Be My Baby"가 차트에서 2위를 기록하였다. 4월 28일 늦은밤, 택시를 이용해 네바다주 라스베가스에 있는 그레이스랜드 웨딩 채펄(Graceland Wedding Chapel)에 당도한 존과 오랜 여자친구 도로시아 헐리는 하객없이 두사람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아래 사진이 도로시아 헐리입니다.) 5월 본 조비, 머틀리 크루, 고르키파크의 멤버와 매니지먼트 대표 독 맥기는 L.A의 세인트 제임스 호텔에서 약물과 알콜추방운동을 하는 비영리단체"Make A Difference Foundation"의 기자회견을 열고 8월에 소련에서 공연을 가질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한편 4집의 세 번째 싱글 "I'll Be There For You"도 "Bad Medicine"의 뒤를 이어 차트 정상을 정복했다. 31일에는 기존의 권위주의 음악상에 대한 반발로 설립된 인터네셔널 록 어워즈(International Rock Awards)가 열렸는데 여기서 본 조비는 많은 부분에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은 하지 못했다. 7월 본 조비의 앨범이 멜로디야 레코드를 통해 소련에서 발매되었다. 이로써 본 조비는 소련에서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음반을 낸 최초의 서방측 밴드가 되었다. 그리고 4집의 네 번째 싱글"Lay Your Hands On Me"가 7위까지 진출하였다.

8월에는 당사자끼리만 참가하여 결혼식을 올렸던 존과 도로시아는 3개월 후인 8월 6일 뉴욕에서 파티를 열었다. 존이 이렇게 정착한 것에 비해 리치는 계속 청춘을 즐기며(?) 여배우 "알리 시디",가수 "쉐어", 그룹 "하트"의 "낸시 윌슨"등과 염문을 퍼트렸다. 12일과 13일에는 스콜피언스, 머틀리 크루, 오지 오스본, 신데렐라, 소련밴드 고르기 파크와 함께 모스크바 평화 축제(Moscow Music Peace Festival)에 출연하였다. 모스크바 공연에서 본조비는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게 되었다. 첫 곡은 "Lay Your Hands On Me"로 시작하였는데 인트로 티코의 드럼연주중에 존이 소련 군인들의 행렬가운데로 등장하는 매우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 하였다. 이 행사후 영국에 건너간 이들은 런던의 타워 레코드점 안에서 갑자기 라이브를 벌였는데 순식간에 관객이 모여들어 경찰이 긴급 출동하는 소동이 일어났다. 사전 예고도 없이 공연을 벌인 것에 대해 존은 "클럽에서 연주하던 옛날 시절이 생각나서" 기습 라이브를 했다고 설명하였다. 영국에서 열린 콘서트는 5만 5천명의 관중이 모였고 유럽, 빅슨, 스키드 로우를 이끌고 쇼를 전개한 본 조비는 앵콜로 에어로 스미스의 "Walk This Way"를 선사했는데 이 때 이 노래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스티븐 타일러와 조 페리가 무대에 등장해 함께 불렀다. 11월 호주의 시드니 공원에서 조깅을 하고 있던 존은 길거리에서 남자의 시체를 발견하고 경찰서에 연락했다. 숨진 남자는 50대 후반의 부랑자로 구타에 의해 쓰러져 숨을 거뒀는데 그곳을 지나던 사람들은 모두 못 본체 하고 시체를 방치해 두었다. 후에 이 사실을 전해들은 호주의 시민정신 부재에 몹시 화를 냈다고 한다. 12월 4집의 5번째 싱글 "Living In Sin"이 차트 9위에 올랐다. 그러나 이 곡으 뮤직비디오는 방영에 적합하지 않다는 판결을 받아 전세계적으로 상영금지를 당했다. 23일에는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열린 록 페스티발에 앨리스 쿠퍼, 화이트 라이언, 브리트니 폭스 등과 함께 참가했으며 27일에는 4일간 이어지는 영국공연을 가졌다.

1990년
1월에 영국 투어후 아일랜드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10일에는 런던 해머스미스 오디온에서 자선 콘서트를 열었다. 2월 뚜렷한 근거도 배경도 없이 드러머 티코의 탈퇴설이 돌아 본 조비의 팬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4월 주로 황실의 스캔들을 주로 다루는 영국의 "Sun"지가 의외로 본 조비의 해산설을 크게 보도하여 음악계를 술렁이게 만들었고 이에 질세라 HM전문지 Kerrang도 티코가 팀을 떠날 예정이며 존과 리치가 수입 배분 문제로 심하게 다투고 끝내는 갈라지게 되었다는 기사를 냈다. 이렇게 해산설이 나오자 라디오에도 "본 조비가 흩어진다" "리치가 밴드를 나간다"고 발표해 사람들을 더욱 혼란속에 몰아 넣었는데 이상하게도 본 조비 측에서는 아무런 해명이 없었다. 후에 존은 침묵하고 있었던 이유는 굳이 하나하나 설명할 필요조차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5월 뉴저지에서 있었던 자선행사에 존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백밴드 "E Street Band"와 함께 출현하였다. 7월 앨범에 앞서 나온 존의 솔로싱글 "Blaze Of Glory"가 빌보드 차트 58위로 등극해 그 다음주에는 36위로 뛰어 올랐다. 8월 L.A의 A&M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존의 솔로앨범 "Blaze Of Glory"가 발매되었다. 이 음반은 타이틀 넘버"Blaze Of Glory"가 영화 "Young Gun Ⅱ"의 테마로 쓰인 것은 물론 재킷까지도 이 영화의 한 장면을 쓰고 있어 존의 솔로 작품이냐 아니면 영화의 사운드 트랙이냐 하는 앨범의 소속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지만 정작 존 본인은 그 어느쪽도 아니라고 발표하였다. 존은 "Blaze Of Glory"를 카우보이 앨범으로 부르고 있으며 만약 자신의 솔로 작품을 낸다면 좀더 색다른 것을 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Blaze Of Glory"에는 제프 백을 비롯 엘튼 존, 리틀 리차드, "Tom Petty & The Heartbreakers"의 벤몬트 텐치, 존 쿠커의 백밴드에서 활동했던 케니 아라노프, "저니"의 멤버였던 랜디 잭슨, 그룹 "래트"의 로빈 크로스비, 그리고 알도 노바가 참여했다. 8월 25일에는 데이비드가 에이프릴(April)과 백년 가약을 맺었다. 11월에는 리치 샘보라가 독집 앨범에 착수하였다.

1991년
1월에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존의 "Blaze Of Glory"가 팝, 록부문 최우수 싱글로 지명되었다. 7월에는 리치의 솔로 앨범"Stranger In This Town"의 믹싱을 마쳤다. 그의 앨범에 참가 뮤지션은 밴드 멤버인 티코와 데이비드 브라이언 그리고 뉴저지 출신의 브루스 포스터, 토미 마르타 등이며 수록곡인 "Mr. Bluseman"에서는 에릭 클랩턴이 기타를 맡았다. 원래 리치의 독집음반은 존과 라치의 레이블인 "Jambco"에서 발매될 예정이었으나 리치가 회사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머큐리를 통해 나왔다. 이 때문에 본 조비의 해산설은 점점 더 확대되었다.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한 리치는 미국의 11개 지역을 돌며 공연을 가졌는데 여기에는 음반제작에 참여했던 티코와 데이비드도 동행하였다. 미국 순회공연 후에는 유럽투어도 가질 예정이었으나 본 조비의 신보 녹음으로 취소되었다. 데이비드 브라이언도 솔로앨범을 발매했는데 "Nether World"의 사운드 트랙으로 인스투루멘탈 음반이었다.
1992년
3월 "해산한다" "존과 리치가 갈라선다"라는 소문을 무시한채 본 조비는 캐나다 뱅쿠버 리틀 마운틴 스튜디오에서 새 앨범 녹음에 들어갔다. 존의 캘리포니아 이주소문도 있었는데 그 소문에 대해 존은 "내가 응원하는 N.Y자이언츠가 L.A의 팀이 되지 않는 한 이곳을 뜨지 않겠다"고 밝혔다. 3월 20일 존의 30세 생일에 존은 자신도 30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몹시 부담스러워 한다고 밝혔다. 존은 뉴저지의 자선공연때 팬들을 향해서 "내 나이가 30이 되어도 계속 사랑해 주겠냐"는 질문을 던졌다는 후문. 10월 5집 "Keep The Faith"가 한미 동시 발매되었다. (정확히는 한국에서 먼저 발매 되었다.)

4집 앨범"New Jersey"이후로 4년만에 발매된 5집 앨범은 그동안의 나돌던 해산설을 일축했던 작품이었다. 프로듀서는 Metallica 5집 앨범을 다듬었던 밥록으로 결정했다. 존은 공백기간동안 여러가지 경험을 통하여 한층 성숙해진 음악을 들려주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의 매니지먼트였던 맥기 엔터테인먼트와 관계를 청산하고 독자적인 매니지먼트인 본 조비 매니지먼트를 설립했다. 긴 머리를 짧게 자른 존과 알렉의 모습은 본 조비의 변화를 예견케 하였고 그들의 음악도 한층 성숙해지고 차분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모습은 여태까지의 본 조비 앨범에 물들어져 있던 팬들에겐 실망감을 안겨 주었고, 음반은 상업적으로 크게 이득을 보지 못했다. 첫번째 싱글 "Keep The Faith"는 싱글차트 29위까지 올랐고 두번째 싱글인 "Bed Of Roses"는 차트10위가지 올라 건재함을 과시했다. 5집 앨범은 미국내에서 보다는 유럽쪽에서 더 인기가 있었고 차트 성적도 월등히 좋았다.
1993년
5월 31일에 존과 도로시아 헐리 사이에 사이에 딸 스테파니 로즈가 태어났다. 그로 인해 밴드의 결속력은 더욱 단단해졌다고 한다. 7월에는 미국 투어중 본 조비의 공연 티켓을 둘러싼 소동이 일어났다. 사건의 발단은 어느 장난끼 넘치는 DJ의 멘트였는데, 인디애나주의 한 라디오 DJ는 방송을 통해 "식당에서 가장 미치광이짓을 한 사람에게 본 조비의 공연티켓을 선물로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이를 들은 본 조비의 열광적인 청년팬은 총알을 뺀 라이플총으로 완전히 무장하고 하디스 햄버거점에 들어가 "모두 엎드려! 나는 예수 그리스도다"라며 손님들을 공포에 떨 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 정도면 상품을 탈 만한 "미치광이 짓"이었으나 그 청년은 티켓을 얻는 대신 경찰에게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었다고 한다.
1994년
데이비드의 2집 솔로 앨범"On A Full Moon" 발표했다. 또한 3월 10일에 데이비드에게 두명의 쌍둥이 아이들이 생겼는데, "Colton Moon"과 "Gabrielle Lunar"가 그 주인공. 10월에 밴드 결성 10주년 기념작 "Cross Road"를 발매했다. 정식 명칭은 "Cross Road - 14 Classic Grooves"(한국에서는 The Best Of Bon Jovi)로 베스트 앨범의 성향을 띤 이 앨범은 여느 히트곡 모음집들과 마찬가지로 신곡 두곡이 포함됐다. 그 중 "Always"는 싱글 차트 4위까지 기록했고 앨범은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이러한 와중에 그 동안 동고동락해 오던 베이시스트 알렉이 음악상의 견해 차이로 탈퇴했다. 그가 본 조비에 없어서는 안될 결정적인 인물은 아니었지만 본조비에 성공에 있어서 한 몫을 담당하였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너무나 아쉬운 일이었다. 알렉의 후임으로는 "휴 맥도날드"라는 세션맨으로 결정되었다. 그렇게 불행한 일도 있었던 반면에 12월 15일에는 리치가 결혼을 하였다. 신부는 "머틀리 크루"의 드러머 "타미리"의 전처였던 "헤더 록클리어"로 리치의 카사노바라는 명함을 반납하게 만들었다. 연상의 여인 쉐어를 비롯해 끊임없이 스캔들을 일으키던 리치는 그의 신부 헤더에게 3만파운드 금액의 약혼반지를 선물했다. 헤더는 미국의 TV시리즈 "Melrose Place"에서 임자있는 남자들의 혼을 빼놓는 악녀 아만다로 출연했었다. 존은 밴드 멥버들이 게으름을 피우면 밴드를 해체 시켜 버릴 것이라고 협박(?)성 발언을 했다고 한다.

존은 시작된 6집 앨범작업중에 "우리의 새 앨범은 지난번 앨범들 처럼 뱅쿠버에서 녹음하지 않을거에요. 그 대신 아름답고 이국적인 케리비안과 같은 곳에서 작업할 생각을 가지고 있죠. 난 정열적인 태양과 편안한 분위기가 우리를 나태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래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밴드를 해산 시켜야 할테니까요"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했다고....
1995년
2월에 존의 두 번째 아들 "제시 제임스 루이스"가 태어났다. 존은 "아버지의 역할은 내겐 아주 잘 맞는 일인 것 같아요. 내겐 음악보다도 가족이 훨씬 더 중요하니까요. 물론 이 두가지를 모두 겸비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이번해에 있을 월드투어는 예전에 비해 좀더 시끌벅적해 질 것 같네요. 왜냐하면 내 어린 자식들과 최소한 두명정도 더 불어난 일행이 순회공연에 동참하게 될테니까요"라며 기뻐했단다. 5월 10일 본 조비는 잠실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역사적인 한국공연을 하였다. 2박 3일의 빡빡한 일정으로 내한한 본 조비는 그 와중에도 기자회견과 공연을 치러냈다. 빈약한 조명과 음향, 단순한 무대 장치, 그리고 평일공연이라는 불리한 여건들로 완벽한 공연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으나 그 동안 본 조비에 목말라 있던 팬들의 열띤 호응과 최선을 다해 성의있는 공연을 선보인 본 조비의 정열로 그런 기술적 핸디캡을 극복하여 그 동안 접하기 힘들었던 라이브의 진술을 연출,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멋진 무대를 꾸몄다. 6월 18일 6집 앨범인 "These Days"를 발매했다. 6집의 프로듀스는 "퀸스라이크"의 앨범작업으로도 유명했던 피터 콜린스와 존과 리치가 공동으로 맡았다. 6집 앨범에서는 "This Ain't A Love Song"만이 싱글 차트 14위에 올랐을 뿐 나머지곡들은 그리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그것은 과거의 앨범"New Jersey"와 "Keep The Faith"사이의 차이보다도 더 큰 강도의 것으로 보여졌다. "These Days"앨범 역시"Keep The Faith"앨범과 마찬가지로 미국보다는 유럽쪽에서 더 큰 인기를 누렸다. 12월에 존은 가족과 떨어져 홀로 이사했다. 이 사실을 두고 존의 부부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억측이 난무했는데 존의 말에 따르면 9달된 아들때문에 도통 잠을 자지 못해 LA의 호텔로 옮겼다고 한다.존은 "Young Gun Ⅱ"에 이어 본격적으로 "Moonlight And Valentino"에서 연기를 선보였다.

(사실 "Young Gun Ⅱ"에서 존은 한 장면도 나오지 않은걸로 기억된다.) 이 영화에서 그가 맡은 역은 대본에 "the painter"로 나와있는 페인트공. 따스한 인간미가 흐르는 본격데뷔작품에 존은 큰 자부심을 느끼고있는데 역시 예술성과 흥행성은 꼭 일치하는것이 아니라서 정작 존이 입장료를 내고 극장에 들어갔을때는 열명 남짓한 관객만이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고.. 영화 "Moonlight And Valentino"에서 연기한 그는 크로우 속편에도 출연 요청을 받았는데 정식으로 거절했다고 한다. 한편 리치는 "Stranger In This Town" 에 이은 두번째 솔로 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1996년
일본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본 조비는 여름 투어를 끝으로 휴식에 들어갔다. 각 멤버들은 각자 솔로활동에 전념하게 되었는데, 리치는 두번째 앨범 작업에 착수 했으며 존도 두 번째 솔로 앨범 제작에 들어갔다. 데이비드는 인스투루멘틀 앨범제작을 계획하고 있으며 가능하면 엘튼존이나 빌리조엘과 함께 공연하고 싶다고 말했다. 티코는 화가 ,극작가로서의 활동에 전념했다. 11월에 티코는 수퍼모델 에바 헤르치고바와 결혼식을 올렸다.

에바보다 15센치가 작은 43세의 티코는 뉴저지에서 350명의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성대한 결혼식을 치렀으며 이들은 한달 계획으로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이들이 처음 만난것은 스팅의 생일날. 이후 이들은 뜨거운 열애를 해오다가 결국 결혼으로 골인하게 됬다고 한다.
1997년
5월에 존은 두 번째 솔로앨범인 "Destination Anywhere"를 발표했다. 프로듀스는 유리스믹스(Eurythmics)와 탐 페티(Tom Petty)의 앨범을 제작했던 프로듀서 겸 싱어 송라이터 데이브 스튜어트(Dave Stewart)와 블랙 그레이프(Black Grape)의 프로듀서인 스티브 리노니(Steve Lironi)..그리고 존 자신이 직접 참여했다. 존은 이 앨범에 대해"그룹 본 조비의 레코드에는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그러나 이 솔로 앨범에 담긴 것은 숨김없는 나의 목소리, 바로 나의 이야기이다"라고 말했다. 이 앨범은 미국내에선 싱글차트 진입곡이 없었고, 앨범도 31위에 링크되었다. 그러나 첫 싱글인 "Midnight In Chelsea"는 영국차트에서 1위에 랭크되었다. 그리고 이 앨범은 존 본인이 직접 주연하고 데미무어, 케빈베이컨, 우피 골드버그가 함께한 같은 제목의 30분 짜리 영화로도 제작 되었다고 한다. 솔로앨범을 발매한뒤에 9월중에 미국투어를 할 예정이었던 존은 영화 촬영등의 스케쥴을 이유로 투어를 연기했다. 또한 데이비드는 캐나다 출신의 밴드인"blaxan"이라는 그룹의 매니지 먼트를 담당했다. 8월에 존은 MTV Asia, MTV India, VH1 (America), VIVA II (Europe)등 몇 개의 채널로부터 이달의 아티스트상을 수상하였고, 9월에는 MTV Latin America로부터 이달의 아티스트로 채택됬다.

10월 4일에는 리치와 부인 헤더 록클리어 사이에 귀여운 딸"Ava Elizabeth Sambora"가 태어나 두사람을 행복하게 해 주었다. 11월에 존은 1997년 MTV 유럽에서 "Best Male Artist"와 "Best Rock Act의 두 개 부문 수상후보에 올랐다.
1998년
2월 9일 존은 1998년 Brit Awards에서 Coolio, LL Cool J, DJ Shadow, Sash를 제치고 "Best International Male Solo Artist"를 수상했다. 3월 9일에 리치의 두번째 솔로 앨범인 "Undiscovered Soul"이 발매 되었다. "Undiscovered Soul"앨범의 첫번째 싱글은 영국 차트37위에 랭크되어 리치는 TOP40안에 처음으로 진출하였다. 3월 9일"Undiscovered Soul"이 영국 앨범차트 24위에 올랐다. 7월 11일에는 에어로 스미스와 여러 록밴드와 함께 부른 영화 "아마게돈"의 "Mister Big Time"과 그외에 사운드 트랙이 빌보드 Top200에 진입했다. 아마게돈 앨범은 후에 앨범차트 정상에 오른뒤 3~4주간 정상을 지켰다.
1999년
2월 MTV에서 본 조비가 뉴욕시에서 새로운 비디오를 촬영하고 있다는 보도와 함께 그들의 컴백설을 보도했다. 3월 15일"Real Life"앨범을 발매하였다. 이 앨범은 "EDTV" 사운드 트랙으로 노래는 "Old Pal"과 "Bruce Fairbairn" 의해 프로듀스 되었고, 비디오는 "Wayne Isham"에 의해 제작되었다. 3월 22일에는 "Real Life"싱글 두 번째 버전이 발매되었다. 영국에서도 발매가 시작된 "Real Life"싱글은 3월 29일 영국 차트에서 21위를 기록했다.

그전 처럼 인기가 있는것은 아니지만여..락을 좋아하는분이라면..락계에서의위치는대단하죠^^

200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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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jeal****
초수
본인 입력 포함 정보
39살 정도 아닌가요?

200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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