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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경남 하동군 화개를 소개해주세요^^
비공개 조회수 20,746 작성일2009.07.23

저, 죄송하지만 경남하동군화개를 소개시켜주세요.

특산물이나 가볼만한곳...

사진까지 첨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꼭 첨부해주세요 ㅠㅠ

내공냠냠 저주글 심리테스트 등등 신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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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신
2019 지역&플레이스 분야 지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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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군 화개면

 

(특산물)


1.밤


전국최다 주산지인 지리산 자락의 백리밤골 청.풍.수.림에서 생산되어 표질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고 영양이 풍부하며, 섬유질과 탄닌이 많은 알카리성 전통과실로서 군밤, 생과, 과자요리용으로 쓰인다.


2.표고버섯


표고버섯으로 만든 음식물에 독특한 풍미를 지니고 맛이 좋은 것은 구아닐산이라는 성분 때문인데 그 밖에도 글루타민산, 티로신, 페닐알라딘, 알라닌, 로이신, 프롤린, 아스파라긴등의 아미노산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표고버섯 찌개의 맛을 내는 것이다.


3.섬진강 재첩


오염되지 않는 강, 섬지강의 명물 하동 재첩은 섬진강변 식당에서 쉽게 맛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구입도 가능하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고 조수간만의 차가 큰 하동에서 나는 재첩은 맛과 영양에서 수입산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동재첩은 우선 색깔이 황갈색에 가깝고 알이 잘아 끓여 놓으면 흐물흐물해진다. 입에 넣으면 부드럽다. 국물이 뜨물처럼 뽀얗게 우러나 구수하면서 시원한 맛을 한껏 낸다. 반면 중국산은 알이 굵고 빛깔도 검은 빛이 나며 혀끝에 닿으면 딱딱하고 질기다. 외관으로만 볼 때는 중국 재첩이 훨씬크고 반듯하지만 국물이 제대로 우러나지 않아 시원한 맛을 느끼기 힘들다.

아무래도 하동을 찾아야 제대로 된 하동재첩을 맛볼 가능성이 높다.


4.은어


맑은 물에서만 서식하는 섬진강의 특산물 하동은어! 수박향기 그윽하고 감칠맛 나는 은어회!

은어는 강 상류에서 부화를 한 다음 바다로 흘러 내려가서 이미 은어가 될 때까지 살다가 다시 산란을 하려고 자기가 태어 났던 강 상류를 찾아 올라오는 회귀성이 강한 신기한 물고기이다.

이 종은 1년생어로서 생활구역은 물이 맑고 깨끗한 1급수에서만 살수 있으며 경남 섬진강, 밀양강 등이 은어 산지로 유명하다.

 

5.고로쇠


‘뼈에 이롭다’해서 골리수(骨利水)라고도 불리는 이 약수는 해발 600∼900m에서 자생하는 단풍나무의 일종인 고로쇠나무에서 채취한다고합니다.

고로쇠나무의 몸통에 상처를 내 뿌리에서 줄기로 올라가는 물을 인위적으로 채취해 얻는 것이죠

성분은 당분, 철분, 망간 등 미네랄 성분이 많이 함유돼 있어 산후병이나 신경통, 위장병, 고혈압, 비뇨기 계통에 탁월한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로쇠 약수는 아무리 많이 마셔도 배탈이 나지 않는 희귀한 약수로도 유명하고요 당분이 있으니까 칼로리는 있겠지만 먹어서 살찌고 할정도는 아니겠네요.


6.참게탕 및 참게장


참게는 예로부터 섬진강과 임진강 주변을 제1로 쳐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참게로 유명한 곳은 섬진강 주변. 섬진강 줄기따라 이어지는 참게 요리집은 수십군데. 섬진강변에는 봄엔 은어가, 가을에는 참게가 부각된다.

 

섬진강 주변에서 많이 잡히는 민물참게는 단풍이 드는 가을철이 살이 통통하게 올라 제철이다.

껍질에는 키토산이 많아 항균,항암작용이 있다.

된장을 풀어 팔팔 끓인 물에 깨끗이 손질한 참게와,무,호박,토란줄기,고사리를 넣고 끓인 참게탕은 담백하고 고소한 맛에 독특한 향이 일품

참게탕은 저지방 고단백 식품에 소화가 잘 되므로 허약한 체질,노인,어린이와 비만,고혈압,간장병이 있는분들에게도 좋다.


● 참게의 효능
참게는 특유의 독특한 향기가 있고 고소하고 신비한 그 맛은 한국인의 대표적인 기호식품이며 임금님의 수라상에서도 최고급 식품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참게의 단백질 중의 필수 아미노산이 비교적 고르게 함유되어 있으므로 발육기의 어린이나 노약자에게 좋은 식품이다.

 

7.녹차

 

지리산자락 청정지역의 이슬을 머금고 자란 야생차 잎을 손으로 빚어 만든 전통수제녹차는 카페인, 탄닌, 아미노산, 탄수화물, 비타민류,무기물 등의 성분이 있으며, 녹차의 카페인은 쓴맛을 내는데 차를 마시면 정신 활동이 민활하게 되고 기분이 맑아지며 피로회복이 빨라 몸과 마음이 편안하게 된다.

 

● 하동야생차의 특징

하동의 차는 다른 고장에 비해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돌 틈에서 야생 그대로 자란 차나무가 많다
두 번째로 전통적인 방법으로 덖어 만든 수제녹차로 색과 맛, 향이 독특하다.
세 번째로 하동의 차나무는 중국 계통 소엽종의 차나무로 일본종인 보성의 야부끼다 종과는 육종이 다르다.

(관광지)

 

1.불일폭포(쌍계사 지구)    

 
위 치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불일폭포는 지리산 10경의 하나이다. 쌍계사에서 3km 지점에 있어 쌍계사를 답사한 후 불일폭포를 등산하면 좋은 여행이 된다. 쌍계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4백m쯤 오르면 국사암이라는 조그마한 암자가 있는데, 삼법화상이 신라 성덕왕 21년(722)에 건립하여 수도하던 곳으로 삼법화상이 입적한 후 110년 만에 진감선사가 중건했고, 이로 인해 국사암이라고 이름 지었다.

 

또 이 국사암 입구에는 진감선사가 심었다는 사방으로 뻗은 네가지로 된 거목인 사천왕수가 특이하다. 숲속을 지나면 널따란 불일평전에 불일휴게소로 불리는 아담한 집과 정원이 특이하다. 이 휴게소에서 약 2백m 가량 깍아지른 듯한 비탈길을 내려가면 거대한 깊은 곳에 있는 불일암 밑의 만길절벽에 흘러내리는 불일폭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처럼 중간의 학연에서 돌려 다시 쏟아져 내린다.

 

높이 60m, 폭 3m의 지리산 유일의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거폭으로, 상하 2단으로 되어 있는 폭포이며, 계절에 따라 수량의 차이는 있으나 연중 단수의 고갈은 없다. 폭포 밑에는 용추못과 학못이 있어 깊은 자연의 신비를 안겨주기도 한다.

 

2.쌍계사             

 
위 치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번지 (지리산 남쪽 기슭) 

 

전남 구례읍에서 21km 지점,경남 하동군 화개면 화개리에서 운수리까지의 6km 구간에는 벚꽃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바로 이곳 지리산 남쪽기슭에 신라 성덕왕 21년(722년)에 의상대사의 제자 삼법스님이 창건한 쌍계사가 있다. 처음 이름은 옥천사였으나 그 후 문성왕 2년(840년)에 진감선사가 대찰로 중창시킨 후 887년 정강왕이 선사의 도풍을 앙모하여 '쌍계사'로 개칭하였다.

 

지금의 절은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인조 10년(1632년)에 벽암대사가 다시 세운 것이다. 봄철의 벚꽃이 특히 유명하며 계곡의 맑은 물, 기암과 고목들이 어울려 빼어난 경승을 이룬다. 경내 볼거리로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친필 쌍계석문, 진감선사 대공탑비(국보47호)를 지나 북쪽 500m 거리의 국사암 뜰에 천연 느릅나무(사천왕수), 또한 동북쪽으로 2km 남짓거리에 청학봉과 백학봉의 두 계곡을 끼고있는 높이60m, 폭3m의 불일푹포(지리산 10경 중의 하나) 등의 이름난 곳이 있다.

 

한편 쌍계사는 차와 인연이 깊은 곳으로 신라 흥덕왕3년(828년) 김대렴이 당나라 사신으로 처음으로 차 나무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남쪽 줄기 쌍계사 일원에 심었다고 하며 일주문 못미쳐 차시배 추원비가 세워져 있으며 마을 차밭에도 차 시배지 기념비(도기념물 제 61호)가 있다.

 

* 쌍계사 구층석탑
이 탑은 고산스님이 인도성지순례를 마치고 돌아올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여래 진신사리 삼과와 산내 국사암 후불 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 이과와 전단나무 부처님 일위를 모셨다.

*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
대웅전 앞에 서 있는 고색창연한 비석으로 신라 진성여왕 원년 (887)에 건립되었다. 신라 헌강왕의 칙명에 의해 신라 최고의 문호 최치원이 글을 짓고 쓴 진감선사의 전기비이다.

* 쌍계사 마애불
대웅전 동쪽 경내에 있는 큰 암석 한면을 움푹 들어가게 파내고 그 안에 여래좌상을 두껍게 양각하였다. 그러므로 감실안에 봉안한 것 같이 보이는 특이한 불상이다. 이 불상은 마치 승상으로 보일 만큼 소박한 형상이며 조성년대는 고려시대로 추정된다.

 

3.지리산국립공원        

 
위 치  경남 하동군 화개면 , 범왕리 

 

전북, 전남, 경남의 3개 도에 걸쳐 있는 지리산 국립공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명산으로 지역이 넓은 만큼 구경할 만한 관광명소가 수없이 많다. 경남지역에는 쌍계사, 칠불사 등의 절을 비롯하여 불일폭포, 화계계곡, 청학동, 도인촌 등의 관광 자원이 풍부하다.

 

4.칠불사     

 
위 치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쌍계사 북쪽 20리 되는 곳인 지리산 토끼봉(1533m) 아래 800m 고지에 있는 절이다. 연담 유일(1720-1799)이 쓴 칠불암 상량문에 의하면 신라 신문왕 때 지리산 옥부선인이 부는 옥피리 소리를 들은 일곱 왕자가 입산하여 6년만에 도를 깨닫고 이 절을 창건했다 고 한다.

 

그러나 전설에 따르면 선사 옥보를 따라 출가한 가락국 수로왕의 7왕자가 지리산에 운 상원을 짓고 수행하여 6년만인 103년 8월 보름에 성불했기 때문에 칠불암으로 고쳤다고 한다. 신라 옥보고는 이 절의 운상원에서 50년 동안 거문고를 공부하고 30곡을 지어 세 상에 전하였다고 한다.

 

칠불사는 1948년 여순반란군토벌 때 불에 타버려 다시 지었다. 신라 때 김해에서 온 담공선사가 지었다는 아자방의 2중 온돌이 복원되어 있다.

 

5.화개계곡      

 
위 치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 , 대성리 

 

섬진강본류와 화개천이 마주치는 화개장터에서부터 십리벚꽃길을 따라 의신마을까지 약 16km의 계곡을 말한다. 특히 화개계곡은 수려한 자연과 이름난 사찰들, 수많은 역사적 자취로 가득하다.

 

봄이면 수령 수십년을 헤아리는 벚꽃나무가 길 양쪽으로 줄지어 심어져 십리에 걸쳐 벚꽃길을 자랑하고 버들강아지와 들판의 파란 보리밭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어 봄의 정취를 물씬 느끼게 한다. 여름이면 지리산 줄기에서 흘러내리는 웅장한 물줄기와 기암괴석의 바위들이 어우러져 여름 무더위를 잊게 해주고, 수십리에 걸쳐 이어지는 계곡의 아름다운 자태는 가족 휴양객들에게 자연 속의 휴식과 물놀이의 기쁨을 배가하여 준다. 특히 화개천 지류를 따라 신흥마을에서 의신으로 1km에 이르는 선유동은 바위와 나무들의 조화롭고 은밀한 아름다움으로 조용한 휴식을 찾는 도시인들에게 좋은 안식처가 되고 있다. 또한 냇물소리가 요란한 깊은 계곡 언저리의 푸른 숲에는 녹차밭이 곳곳에 있어 하동의 자랑인 녹차향기가 코끝으로 스쳐온다.

 

인근에 쌍계사와 칠불사, 불일폭포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고, 영호남 화합의 장소가 된 화개장과 가까이에 토지의 무대가 된 평사리가 있다. 화개계곡은 화개에서 의신마을로 가는 곳의 계곡을 총칭하는 말로 화개천계곡, 연동계곡, 단천계곡, 의신계곡, 대성계곡, 선유동계곡으로 세분할 수 있다.

 

6.십리벚꽃길    

 
위 치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 ~ 대성리(지방도 1023호선) 

 

하동의 오랜 사찰인 쌍계사를 찾아가는 길로서 하동의 대표적인 벚꽃길이다. (쌍계사는 국보1점, 보물2점의 지정문화재와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유) 섬진청류와 화개동천 26.7km구간을 벚꽃이 아름답게 수 놓고 있으며 새봄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화사한 볼거리 제공 및 다채로운 문화행사 개최한다.

사랑하는 남녀가 두 손을 꼭 잡고 걸으면 백년해로 한다고 하여 '혼례길'이라고도 불리는 십리벚꽃길. 하얀 눈처럼 피어난 벚꽃이 섬진 청류와 화개 동천구간을 아름답게 수놓아 화사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7.삼신녹차마을    

 
위 치  경남 하동군 화개면 삼신리 262-1 

 

삼신녹차마을은 김동리 선생의 소설 '역마'의 배경으로 유명한 인심 좋은 화개장터와 여기서 시작되어 쌍계사까지 펼쳐지는 건설교통부 선정 최우수 아름다운 길이자 청춘남녀가 두 손 꼭 잡고 거닐면 백년해로 한다고 하여, 혼례길로도 불리우는 십리벚꽃길, 거울같이 맑디맑은 화개동천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 중심에 있는 고장이다.

삼신 녹차마을에서는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과 볼거리가 다양하다. 대표적인 체험프로그램인 녹차체험(야생녹차 잎따기, 수제녹차 만들기, 다도체험하기)을 비롯하여 시원한 화개계곡에서의 은어와 다슬기도 직접 잡아 볼 수 있고, 직접 딴 야생녹차 잎을 곁들인 맛있는 녹차삼겹살과 다양한 음식을 즐길 수도 있다.

마을에서 5분여 거리에 위치한 차 문화센터는 차의 역사와 재배방법 등을 소개하는 전시실과 다도를 배우는 다실로 구성되어 차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 또한 인근에 1,400여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쌍계사가 있다.


8.하동 영당마을 [녹색농촌체험]     

 
위 치  경남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 557 

 

화개장터와 19번 국도를 끼고 전국 7개 명찰인 쌍계사 인근에 위치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지역으로써, 봄에는 녹차, 고사리, 산나물 등을 생산하며, 초여름에는 매실과 섬진강 은어, 가을에는 하동밤, 대봉감, 송이버섯 등이 지역 특산물로 생산되고 있다.

 

또한 매실담그기, 매실장아찌만들기, 산나물채취, 은어고기잡이, 전통된장만들기 등의 각종 농촌체험 프로그램과 각종 작물 재배를 위한 주말농장 등을 마련하고 있다. 영당마을의 주요 생산물은 녹차와 매실이며 주민의 주요 소득원이 되고 있다.

 

9.화개장터


위 치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


화개장터는 화개면 탑리에 있으며 5일장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이다.

 

지리산 맑은 물이 흘러내려와서 섬진강과 만나는 곳에 자리한 화개, 경상남도와 전라남도를 이어주는 화개장터는 해방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5대 시장중 하나로 전국의 어느 시장보다 많은 사람이 붐볐던 곳이다.이곳엔 5일장이 섰으며, 지리산 화전민들은 고사리, 더덕, 감자 등을 가지고 와서 팔고, 전라도 구례,경남 함양 등 내륙지방 사람들은 쌀보리를 가져와 팔았다.

 

그리고 전국을 떠돌던 보부상들도 이 장을 놓칠세라 생활용품을 가지고 왔으며, 또한 여수, 광양, 남해, 삼천포 충무, 거제 등지의 사람들은 뱃길을 이용하여 미역, 청각, 고등어 등 수산물을 가득 싣고와 이 화개장터에서 팔았다.
김동리 소설 [역마]의 무대이기도 한 화개장터는 벚꽃길 따라 수많은 관광객이 지리산 쌍계사와 더불어 왕래하고 있으며,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도로변은 봄날이면 환상적인 벚꽃터널을 이룬다.

 

옛날 시골장터의 정취를 물씬 느낄수 있는 화개장터에는 국밥집, 도토리묵, 개첩국집, 주막, 엿장수, 산나물,녹차 등의 특산품 등이 있어 훈훈한 인심을 주고받는 만남과 화합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문화재)

 

1.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

 

종 목  국보  제47호 
지 정 일 1962.12.20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쌍계사 
시 대 통일신라


통일신라 후기의 유명한 승려인 진감선사의 탑비이다. 진감선사(774∼850)는 불교 음악인 범패를 도입하여 널리 대중화시킨 인물로, 애장왕 5년(804)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흥덕왕 5년(830)에 귀국하여 높은 도덕과 법력으로 당시 왕들의 우러름을 받다가 77세의 나이로 이 곳 쌍계사에서 입적하였다.

 

비는 몸돌에 손상을 입긴 하였으나, 아래로는 거북받침돌을, 위로는 머릿돌을 고루 갖추고 있는 모습이다. 통일신라 후기의 탑비양식에 따라 거북받침돌은 머리가 용머리로 꾸며져 있으며, 등에는 6각의 무늬가 가득 채워져 있다. 등 중앙에는 비몸돌을 끼우도록 만든 비좌가 큼지막하게 자리하고 있는데, 옆의 4면마다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직사각형의 몸돌은 여러 군데가 갈라져 있는 등 많이 손상된 상태이다. 머릿돌에는 구슬을 두고 다투는 용의 모습이 힘차게 표현되어 있고, 앞면 중앙에는 ‘해동고진감선사비’라는 비의 명칭이 새겨져 있다. 꼭대기에는 솟은 연꽃무늬위로 구슬모양의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진성여왕 원년(887)에 세워진 것으로, 그가 도를 닦던 옥천사를 ‘쌍계사’로 이름을 고친 후에 이 비를 세웠다 한다. 당시의 대표적인 문인이었던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글씨를 쓴 것으로 유명한데, 특히 붓의 자연스런 흐름을 살려 생동감 있게 표현한 글씨는 최치원의 명성을 다시금 되새기게 할 만큼 뛰어나다. 거의 온전한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나, 탑 전체가 많이 갈라지고 깨어져 있어 소중히 보존해야함을 절실히 느끼게 하는 귀중한 유물이다.

 

2.쌍계사 부도

 

종 목  보물  제380호 
지 정 일 1963.01.21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쌍계사 
시 대 통일신라


쌍계사는 성덕왕 23년(723) 의상의 제자인 삼법(三法)이 창건한 절이다. 삼법은 당나라에서 귀국하기 전 “육조혜능의 정상을 모셔다가 삼신산의 눈쌓인 계곡 위의 꽃이 피는 곳에 봉안하라”는 꿈을 꾸었다. 귀국 후 눈 위에 꽃이 피는 땅을 두루 찾아다녔으나 찾지 못하고 지리산에 이르렀다. 그 때 호랑이가 나타나 길을 안내하여 지금의 쌍계사 금당 자리에 도착하였다. 그 곳이 꿈에서 계시한 자리임을 깨닫고 옥천사라는 절을 세웠는데 그후 정강왕 때 쌍계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임진왜란으로 불에 타버린 것을 벽암이 인조 10년(1632)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쌍계사 북쪽 탑봉우리 능선에 위치한 이 탑은 진감선사의 사리탑으로, 사리를 모시는 탑신을 중심으로 아래는 받침부분인 기단이고 위는 머리장식부분이다.

 

기단은 엎어놓은 연꽃무늬가 새겨진 아래받침돌 위에 8각의 가운데받침돌을 올렸다. 그 위로 다시 솟은 연꽃무늬를 새긴 윗받침돌을 올려 대칭적으로 표현하였다. 기단 위에는 두꺼운 괴임돌이 삽입되어 눈에 띄는데 구름무늬가 가득 새겨져있다. 탑신의 몸돌은 밋밋한 8각이다. 지붕은 넓으며 밑면에는 서까래인 듯 보이는 받침을 두고 있다. 추녀는 끝에서 위로 들려있고 여덟 곳의 귀퉁이 끝에는 아름다운 꽃조각이 앙증맞게 솟아있다.

 

머리장식으로는 보개(지붕모양의 장식)가 있고 짧은 기둥 위로 타원형의 돌이 솟아 있다.

 

모든 부재를 8각형으로 조성한 탑이며, 각 부의 비례가 적당하지 않고 조각도 생략되거나 형식화되는 과정을 보이고 있다. 탑비와 함께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3.쌍계사 대웅전

 

종 목  보물  제500호 
지 정 일 1968.12.19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쌍계사 
시 대 조선시대


쌍계사는 통일신라 성덕왕 21년(722) 대비화상과 삼법화상이 세워 옥천사라 불렀다고 하며 정강왕(재위 886∼887)이 두 개의 계곡이 만나는 절 주변의 지형을 보고 쌍계사로 고쳤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절이 불에 탔던 것을 벽암대사가 인조 10년(1632) 다시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의 중심 법당으로 석가모니 불상을 모신 대웅전은 이 때에 다시 지은 건물로 짐작한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밖으로 뻗쳐 나온 재료들의 형태가 비교적 우아한 곡선과 오래된 양식을 보이고 있다. 가운데 3칸에는 4짝의 여닫이문과 기둥 사이에 공포를 2개씩 놓고 있으며, 양쪽 끝 칸은 2짝씩 문을 달아 공포를 1개씩 놓았다. 건물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안쪽을 가린 우물천장으로 꾸몄고 불단 위로 지붕 모형의 닫집을 화려하게 만들어 놓았다.

 

전체적으로 기둥이 높아 건물의 규모가 크게 느껴지는데 조선시대 불교 목조 건축의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어 중요한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4.쌍계사 팔상전 영산회상도

 

종 목  보물  제925호 
지 정 일 1987.07.16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쌍계사 
시 대 조선시대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한 내용을 묘사한 영산회상도이다. 크기는 길이 410㎝, 폭 273㎝이다. 석가불을 중심으로 사천왕상, 여러 보살, 제자 등의 무리가 석가불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이다. 석가불은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우견편단의 옷을 걸치고 중앙에 앉아 있으며 얼굴은 둥글고 이목구비는 작으며 신체는 건장하고 풍만하다. 사천왕상, 여러 보살, 제자들의 모습은 석가불처럼 풍만한 모습이다. 색채는 밝고 부드러운 중간색을 주로 사용하였다.

 

조선 숙종 7년(1681)에 그려진 이 불화는 비교적 큰 편이지만 짜임새 있는 구도를 보여주고 공간의 처리방법과 회화기법이 매우 뛰어나며 17세기 중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우수한 작품이다. 

 

5.쌍계사 대웅전 삼세불탱

 

종 목  보물  제1364호 
지 정 일 2003.02.03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쌍계사 
시 대 조선시대


쌍계사대웅전(보물 제500호)에 보존되어 있는 그림으로, 중앙의 석가모니불도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약사불도, 오른쪽에는 아미타불도를 배치한 삼세불탱화이다. 탱화란 천이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액자나 족자 형태로 만들어지는 불화를 말한다.

 

석가모니불도는 화면 상단 중앙에 큼직하게 본존불을 그린 다음, 좌우 대칭이 되게 문수·보현을 비롯한 8대보살과 제석·범천, 2위의 타방불, 가섭·아난존자를 비롯한 10대제자, 용왕·용녀와 6금강, 2위의 사천왕을 배치하였다. 본존불은 17∼18세기 유행의 전형적인 키 모양의 광배에 악귀를 물리치는 뜻을 가진 항마촉지인의 손모양을 하고 있다. 정수리에는 상투 모양의 육계가 뾰족하며, 머리에는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큼직하고 귀·눈·입·코 등은 단정하나 몸의 형태가 네모꼴을 이룸으로써 18세기 후반의 불화들에서 나타나는 경직성을 느끼게 한다.

 

약사불도는 아미타인과 같은 손모양을 하고 왼손에 약합을 든 약사불을 중심으로 좌우로 대칭이 되게 일·월광보살을 비롯한 6대보살과, 2위의 사천왕, 12신중을 그려 놓았다. 전반에 걸쳐 인물의 형태와 색채 및 표현기법 등은 석가모니불도와 유사함을 보이나, 아미타불도와 함께 화면 구성이 다소 느긋함을 볼 수 있다.

 

아미타불도는 주불을 비롯하여 주위에 빙둘러서 관음·세지보살을 포함한 8대보살과 2위의 사천왕, 2위의 타방불, 마치 16나한의 모습과도 같은 10대제자를 배치시켜 놓았다.

 

이 삼세불도는 18세기 전반 전라도지역에서 크게 활약했던 대표적 불화승 ‘의겸’으로부터 1780년대의 ‘승윤’ ‘평삼’으로 이어지는 불화승의 계보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완전한 형태를 갖춘 18세기 후반의 대형불화로서 비교적 정교한 필치와 화려하면서도 은은함을 보여주어 화풍파악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6.쌍계사 팔상전 팔상탱

 

종 목  보물  제1365호 
지 정 일 2003.02.03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쌍계사 
시 대 조선시대


쌍계사팔상전(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87호)에 모셔져 있는 불화로, 석가의 생애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묘사한 팔상탱이다. 탱화란 액자나 족자형태로 만들어 법당에 걸 수 있게 만든 불교그림을 말한다.

 

팔상탱의 여덟 장면은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코끼리를 타고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장면인 도솔래의상, 석가모니가 룸비니공원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통해 출생하는 모습을 그린 비람강생상, 태자가 성문 밖의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의 사문유관상, 부모의 반대를 무릎쓰고 출가하는 장면을 묘사한 유성출가상, 설산에서 신선들과 수행하는 모습을 그린 설산수도상, 태자가 수행 중 온갖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는 수하항마상, 부처가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낸 녹원전법상, 부처가 쌍림수 아래에서 죽음에 이르는 모습을 표현한 쌍림열반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팔상탱은 모두 8폭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폭의 장면은 건물과 구름·나무·산을 이용하여 구분짓고, 각 장면마다 이에 따른 내용을 적어 놓고 있어 그림을 이해하기에 쉽다는 특징이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각 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목의 표현은 도식적이지 않고, 일반회화 속의 나무와도 같아 매우 자연스럽고 사실적이다.

 

각 폭마다 동일하게 화면의 아랫부분에 그림에 대한 내력을 적어 놓았는데, 이 기록을 통해 옹정 6년, 즉 1728년에 일선·후경·명정·최우·원민·처영·신영·영호 등 8명의 승려화가들에 의해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패널형식의 각 폭 모두 주요 내용만을 중점적으로 나타낸 간단한 구도로, 전체적인 구성이 1725년에 그려진 순천송광사팔상도와 비교할 때 색채만 약간 다를 뿐 거의 같은 도상을 보여주고 있어 동일본을 사용하여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석가팔상도 가운데 예천용문사팔상탱(1709년)에 이어 비교적 제작시기가 빠른 편에 속하며 공간감과 색채의 조화 등 그에 상응하는 화풍상의 특징도 보여주고 있다. 여유로운 경물의 배치와 함께 일반회화에서 볼 수 있는 수목의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표현기법 또한 18세기 전반의 팔상도나 감로왕도 등에서 종종 보여지고 있어, 당시 또는 앞선 시기 일반회화와의 관계까지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는 데 자료적 가치가 있다. 

 

7.쌍계사 목조삼세불좌상 및 사보살입상

 

종 목  보물  제1378호  
지 정 일 2003.08.21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쌍계사 
시 대 조선시대


하동 쌍계사 대웅전에 모셔져 있는 나무로 만든 삼세불좌상 중 아미타불을 제외한 석가모니불과 약사불, 그리고 일광·월광·관음·세지보살로 추정되는 네 보살입상이다.

 

중앙에 모셔져 있는 석가모니불은 본존불로서 삼불상 중 가장 크고 건장한 신체에 넓은 무릎을 하여 안정되어 보인다. 육계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동그스럼해진 머리는 이마 위쪽과 머리 꼭대기에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표현되어 있으며, 둥글넓적한 얼굴에는 근엄한 듯 온화한 미소가 엿보인다. 옷은 양어깨를 모두 덮고 있는 통견형식으로 오른팔이 드러나도록 함으로써 17세기 전반 경 이후 불상들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옷 입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손 모양은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린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데, 실제 인물의 손처럼 표현되어 사실성이 돋보여 조성 화원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느끼게 한다.

 

정면을 향하여 본존불의 오른쪽에 모셔져 있는 약사불은 굽어보는 듯한 자세와 머리 모양, 얼굴 표정, 짧아진 목과 당당한 어깨, 넓은 무릎, 사실성 넘쳐나는 손의 표현, 밋밋한 듯 부피감이 있는 신체 등 본존불과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석가모니불에 비하여 크기가 다소 작아지고 아미타인의 손 모양을 하고 있으며, 얼굴과 귀가 약간 길어지고 변화된 옷 입는 방식과 보다 복잡해진 옷주름 등만이 다를 뿐이다.

 

사보살입상은 약사불과 아미타불 좌·우에 서 있는 네 구의 보살입상으로 일광·월광보살상과 관음·세지보살상으로 추정된다. 네 구의 상 모두 배를 앞으로 약간 내민 듯한 S자 모양의 늘씬한 체구에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귀걸이·목걸이·팔찌 등의 장식을 하였다. 약사불의 양 옆에 있는 일광·월광보살상은 보관 중앙에 해와 달 모양이 표현되어 있으며, 왼손을 어깨 위로 들고 오른손을 아래로 하여 연꽃가지를 들고 있다. 한편 아미타불의 양 옆에 있는 관음·세지보살상은 오른손을 어깨 위로 들고 왼손을 아래로 내렸는데, 각각 연꽃가지와 정병을 들고 있다. 양어깨를 모두 덮고 있는 천의 자락, 양 손·발 등의 조각 수법이 매우 자연스럽고 사실적이어서 석가모니불 및 약사불상과 함께 작품성이 뛰어나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조성기에 의하면, 조선 인조 17년(1639)에 청헌비구를 비롯한 11명의 화승들에 의해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쌍계사 목조삼세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은 조선시대 17세기 전반 경의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8.쌍계사 석등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28호

지 정 일 1972.02.12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시 대 통일신라


지리산의 남쪽기슭에 자리한 쌍계사의 경내에 서 있는 8각 석등이다. 원래는 3단으로 이루어진 받침 위에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을 올리고 지붕돌을 덮은 후 머리장식을 얹었을 모습이나, 지금은 화사석과 지붕돌이 없어진 상태이다.

 

아래받침돌에는 복련(엎어놓은 연꽃무늬)을 둘렀고 윗받침돌에는 아래와 대칭되는 앙련(솟은 연꽃무늬)을 조각하였다. 가운데기둥은 가늘고 길며 중간이 부러져 있던 것을 나중에 맞추어 놓았다. 화사석과 지붕돌이 없어진 자리에는 꼭대기에 있던 머리장식만 놓여 있어서 낮은 받침위로 복발(엎어놓은 그릇모양장식), 보주(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 등이 남아 있다.

 

석등의 화사석, 지붕돌이 없어 본래의 모습을 알 수 없으나, 가운데기둥의 단조로움과 위·아래받침돌에 새긴 세련된 연꽃무늬 조각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9.쌍계사 일주문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86호

지 정 일 1974.02.16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시 대 조선시대


지리산 기슭에 있는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3년(723)에 삼법이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1592)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인조 19년(1641)에 다시 지었다.

 

절의 입구에 세워져 있는 일주문은 속세를 떠나 부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번째 관문이며, 항상 한마음을 가지고 수도하고 교화하라는 의미의 상징물이기도 하다. 양쪽에 기둥을 하나씩 세워 지붕을 받치고 있는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배치되어 있는 다포식이다. 앞면에는 3구씩·옆면에는 2구씩 배치하여, 처마가 매우 화려하며 공포로 꽉 차 있는 듯하다. 기둥 앞뒤에는 보조 기둥을 두어 지붕을 안전하게 지탱하고 있는데, 보조 기둥 머리 부분에는 연꽃무늬를 장식하였다.

 

화려한 다포계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일주문이다.

 

10.쌍계사 팔상전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87호

지 정 일 1974.02.16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시 대 고려시대


쌍계사는 지리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 신라 성덕왕 23년(724)에 삼법이 처음 지었다.

 

석가모니의 생애를 그린 팔상도를 모신 팔상전은 고려 충렬왕 16년(1290) 진정국사가 처음 지었고, 조선 세조 12년(1466)과 숙종 4년(1678) 그리고 순조 6년(1806)에 수리가 있었다. 지금의 건물은 1978년 고산스님이 보수한 것이다.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여덟 팔(八)자 모양의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2구씩 포를 배치하였다. 전체적으로 건물높이에 비하여 처마의 길이는 짧다. 내부의 천장은 점차 높이 올라가는 층단형으로 높직하게 보이나 단순한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세부에서 일부 장식적인 조각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내부에는 영산회상도(보물 제925호)와 팔상도가 모셔져 있다. 

 

11.쌍계사 명부전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23호

지 정 일 1974.12.28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시 대 조선시대


쌍계사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 성덕왕 23년(723)에 삼법이 지었으며, 문성왕 2년(840)에 진감국사가 다시 지었다. 원래 이름은 옥천사였으나 정강왕(재위 886∼887) 때 쌍계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벽암이 조선 인조 10년(1632)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쌍계사 명부전은 숙종 13년(1687)에 성안대사가 지었고, 숙종 36년(1710)에 신민대사가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건물이다. 앞면 5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명부전은 지장전, 업경전이라고도 한다.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10대 제왕을 모시고 있다. 지장보살이 강조될 때는 지장전이라 하고, 10대 제왕이 강조될 때는 명부전이라 한다. 명부전은 칠성각, 산신각처럼 한국절의 특유한 법당으로 한국불교의 토착화 과정을 나타내는 좋은 증거가 된다. 

 

12.쌍계사 나한전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24호

지 정 일 1974.12.28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시 대 조선시대


쌍계사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 성덕왕 23년(723)에 삼법이 지었으며, 문성왕 2년(840)에 진감국사가 다시 지었다. 처음 이름은 옥천사였으나 정강왕(재위 886∼887) 때 쌍계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벽암이 조선 인조 10년(1632)에 다시 지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쌍계사 나한전은 석가여래와 16나한상을 모시는 법당으로 문성왕 2년에 진감국사가 지었으며, 인조 19년(1641)에 벽암대사가 고쳤다고 한다.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지붕 옆면에는 바람을 막아주는 널판이 있다. 내부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석가여래 위쪽의 장식은 휘장 모양의 단청으로 대신하고 있다.

 

쌍계사 나한전은 전체적으로 규모가 작은 건물이어서 사용된 재료의 크기도 작으며 장식도 생략되어 있어, 부속된 법당의 격에 맞춘 것 같은 소박한 느낌을 준다. 

 

13.육조정상탑전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25호

지 정 일 1974.12.28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시 대 통일신라


쌍계사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 성덕왕 23년(723)에 삼법이 지었다. 지었을 당시의 이름은 옥천사였으나 통일신라 정강왕(재위 886∼887) 때 이름을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벽암이 조선 인조 10년(1632)에 새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쌍계사의 육조정상탑전은 쌍계사 내에 있는 전각으로 중국 불교 선종의 6대조인 혜능대사의 정상, 즉 두개골을 모시고 있는 건물이다. 통일신라 경애왕(재위 924∼927) 때 진감선사가 건물을 세워 육조영당이라 하였으며, 후에 금당이라 불렀다고 한다. 건물 안에는 7층석탑이 있는데 이 탑은 1800년대에 목암사의 석탑을 용담스님이 옮겨 놓은 것으로 그 뒤부터 육조정상탑이 되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양식의 건물이다. 천장은 중앙부 쪽으로 높아지는 단계형이며, 탑의 중앙부는 닫집으로 장식하여 장엄한 느낌을 준다.

 

건물의 앞쪽에는 조선시대 명필인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이 걸려있다. 

 

14.쌍계사 천왕문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26호

지 정 일 1974.12.28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시 대 조선시대


쌍계사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 성덕왕 23년(723)에 삼법이 지었으며, 문성왕 2년(840)에 진감국사가 다시 지었다. 원래 이름은 옥천사였으나 정강왕(재위 886∼887) 때 쌍계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벽암이 조선 인조 10년(1632)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쌍계사 천왕문은 숙종 30년(1704)에 박봉스님이 지었고 순조 25년(1825)에 고쳤으며, 현재의 건물은 고산스님이 1978년에 다시 수리한 것이다.

 

사천왕을 모시는 문으로 사천왕은 부처님께 의지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하는 스님과 선량한 사람을 돕는 4명의 수호신이다. 동주를 다스리는 지국천왕, 서주의 광목천왕, 남주의 증장천왕, 북주를 다스리는 다문천왕이 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칸은 개방해서 통로로 사용하고 있고, 양 옆칸은 벽으로 막은 후 사천왕상을 모시고 있다. 사천왕상은 나무로 만든 것으로 조각 솜씨가 뛰어나다.

 

천왕문은 금강문보다 충실하고 튼튼하며, 다소 격이 높지만 금강문과 거의 비슷한 건축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15.쌍계사 금강문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27호

지 정 일 1974.12.28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시 대 조선시대


쌍계사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 성덕왕 23년(723)에 삼법이 지었으며, 문성왕 2년(840)에 진감국사가 다시 지었다. 원래 이름은 옥천사였으나 정강왕(재위 886∼887) 때 쌍계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벽암이 조선 인조 10년(1632)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강문은 일주문 다음에 통과하는 문으로 천왕문과 함께 절에 들어오는 공간으로 불법을 수호하고, 속세의 더러움을 씻어내는 의미있는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금강역사를 모시고 있는데 금강역사는 불교를 수호하고 악을 벌하는 천신으로 문의 왼쪽에는 부처님을 늘 모시는 ‘밀적금강’이 있고 오른쪽에는 ‘나라연금강’이 있다. 쌍계사 금강문은 신라 문성왕 2년에 진감국사가 지었고, 인조 19년(1641)에 벽암선사가 다시 지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9에 수리한 것이다.

 

건축양식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1층이다.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단순한 맞배지붕이다. 가운데 칸은 개방하여 통로로 사용하고, 양 끝 칸은 벽으로 막아서 금강역사를 모시고 있다. 문 앞에는 벽암스님이 쓴 ‘금강문’이란 현판이 있다.

 

쌍계사 금강문은 전체적으로 부재 크기가 다소 작아서 가냘프고, 약한 느낌을 주는 건물이다. 

 

16.탑리 삼층석탑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30호

지 정 일 1974.12.28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 
시 대 통일신라


마을에 무너져 흩어 있던 것을 1968년에 다시 쌓은 탑으로, 일명 ‘봉상사 탑’이라고도 한다.

 

탑은 1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을 새겼는데, 이는 목조건축의 기둥을 모방한 것이다. 탑신부의 몸돌은 2 ·3층에 비해 1층이 커보이며, 각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가지런히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직선을 이루고 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받치던 네모난 받침돌만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기단이 1층으로 줄어들고, 탑신의 1층 몸돌이 다른층에 비해 지나치게 큰 점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17.칠불사 아자방지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44호

지 정 일 1976.12.20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범왕리 1605 
시 대 통일신라


지리산 칠불사에 있는 신라시대의 아(亞)자 방터이다.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재위 AD42∼199)의 일곱 왕자가 외삼촌인 장유보옥선사를 따라 이곳에 와서 수도한지 2년만에 모두 부처가 되었으므로 칠불사라 이름지었다. 그 후 신라 효공왕(재위 897∼912) 때 담공선사가 이중 온돌방을 지었는데 그 방 모양이 亞자와 같아 아자방이라 하였다. 1951년 화재로 불에 타 초가로 복원하였다가 지금과 같이 새로 지었다.

 

아자방은 길이가 약 8m이고, 네 모서리의 높은 곳은 스님들이 좌선하는 곳이며 중앙의 낮은 곳은 불경을 읽는 곳으로 1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이 온돌은 만든 이래 1000년을 지내는 동안 한번도 고친 일이 없다고 하는데, 불만 넣으면 상하온돌과 벽면까지 한달 동안이나 따뜻하다고 한다. 100년마다 한번씩 아궁이를 막고 물로 청소를 한다. 

 

18.쌍계사 소장 불경책판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85호

지 정 일 1979.12.29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시 대 조선시대


이 불경책판들은 경남 하동군의 쌍계사에 소장된 것으로, 모두 33종 1743판이다. 쌍계사에는 해인사 다음으로 많은 경판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 목판들은 육조 현능대사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기록하여 만든 것으로 국내 유일본이며, 정확한 간행연도는 알 수 없지만 선조 36년(1603) 경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된다.

 

쌍계사의 말사인 능인암에서 간행하여 쌍계사로 옮겨온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쌍계사 본사에서 간행한 것과 승려문집도 있다. 

 

19.쌍계사 삼장보살탱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384호

지 정 일 2003.04.17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시 대 조선시대


쌍계사 삼장보살탱은 통일신라시대의 사찰인 쌍계사에 보관되어 있다. 이 탱화는 조선 정조 5년(1781) 5월에 제작되었는데, 금어 승윤, 만휘, 홍원, 지순 등을 비롯하여 평삼, 단해, 승문, 함식, 왕연, 유성, 출정, 왕인, 보신, 극찬, 찰삼, 두찬, 거봉, 계탁, 월현, 능치 등 편수에 16명이나 참여하였다. 가로가 긴 직사각형(243.7cm×373cm)인 1폭(11부 1포)으로 원래 쌍계사 대웅전 신중탱 옆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쌍계사 삼장보살탱은 중앙에 천장보살과 그의 권속들이 그려져 있고, 향우측에는 지지보살과 그의 권속들, 향좌측에는 지장보살과 그의 권속들로 배치되어 있다. 탱화의 전체적인 구도는 2단으로 상단에는 천장·지지·지장보살이 표현되고 하단에는 대좌와 그 양옆에 권속들이 표현되어 있다.

 

쌍계사 삼장보살탱은 주로 적색과 녹색을 위주로 채색되어 흰색과 황색, 청색 등이 사용되었다. 탱화의 가장자리에는 붉은 선으로 테두리를 두르고, 그 외곽에는 호분을 바르고 있다. 특히 양록색의 사용이 돋보이는데, 이 색은 18세기 지리산일대와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불화제작을 했던 의겸이 즐겨 사용하던 색으로 호남지역 불화의 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

 

쌍계사 삼장보살탱은 양식적 특징과 구도 및 도상이 선암사 삼장보살도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19세기 전라도지역 삼장보살도의 모본이 될 정도로 조선시대 불교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자료이다. 

 

20.쌍계사 팔상전 신중탱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385호

지 정 일 2003.04.17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시 대 조선시대


쌍계사 팔상전 신중탱은 쌍계사에 보관 중으로 ‘쌍계사 고법당 제석신중탱’이라 명명되기도 한다. 이 탱화는 1781년에 제작된 쌍계사 국사암 신중도를 모본으로 하여 조선 정조 14년(1790) 4월에 제작되었는데, 금어 평삼, 홍원, 지순, 극찬 등을 비롯하여 찰민,  등 여러 사람들이 편수에 참여하였다. 이 탱화는 세로가 긴 직사각형(181.4cm×128cm)으로 1폭(4부 1포)이다.

 

쌍계사 팔상전 신중탱은 화면 하단 향좌측과 향우측에 화기란이 각각 설정되어 있으며, 위태천 향좌측의 호법신의 착의는 주색과 녹청색으로 채색하였고 향우측 호법신의 착의 표현은 위태천의 모습에 표현된 것과 마찬가지로 호분을 두텁게 발라 금분을 도드라지게 표현하였다. 탱화에 그려진 인물은 거의 여백 없이 조밀하게 표현되었으며 그 주위는 황록의 채운과 화려한 문양이 장식되어 복잡한 느낌을 준다. 전통적인 도상을 계승하여 제작된 것으로서 차후 호남지역 신중도의 전형적인 도상이 된 불화이다.

 

이 탱화는 원래 쌍계사 팔상전에 봉안되었던 것이나 현재 쌍계사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21.쌍계사 국사암 아미타후불탱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386호

지 정 일 2003.04.17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시 대 조선시대


쌍계사 국사암 아미타후불탱은 주색 바탕의 화면에 황색선으로 도상을 묘사한 선묘불화이다.

 

1781년 제작된 이 탱화는 금어 함식이 그렸다. 화면 상단 중앙에는 아미타여래좌상이 높은 연화좌대에 결가좌하고 그 아래쪽 좌우에는 팔대보살상이 시립하고 있으며, 그 위쪽에는 십대제자상이 좌우측에 각각 5구씩 배치되어 있다. 화면 상단 천공에는 합장형의 분신불이 작게 묘사되어 있다.

 

견본채색의 재질인 이 탱화는 세로가 긴 직사각형(155.5cm×113.7cm)으로 1폭(3부 1포)이다. 당초 국사암 인법당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2.쌍계사 사천왕상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413호

지 정 일 2004.10.21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시 대 조선시대


쌍계사 천왕문에 안치된 목조 사천왕상 4구는 조선후기 1705년에 제작된 475cm 규모의 대형작품이다. 현재 국내에 존재하는 조선추기부터 17세기에 이르는 사천왕상은 전남 보림사 사천왕상(1539년)을 비롯한 10여점이 알려져 있다.

 

그 중에서도 현재 목조로 제작된 사천왕상은 보림사와 적천사 사천왕상(1690년) 다음으로 쌍계사 작품이 알려져 있으며, 더구나 쌍계사의 경우는 현존하는 사천왕상 불교조작 중에 그 규모가 상당히 돋보이는 작품일 뿐만 아니라 현존 상태가 비교적 양호하며, 신체의 당당함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따라서 본 작품은 조선시대 천왕문에 안치된 대형규모의 사천왕상은 물론 조선시대 대규모의 사천왕탱과 도상 비교연구에 중요함음 물론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하였다.

 

23.쌍계사 범종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479호

지 정 일 2009.03.05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시 대 조선시대


쌍계사 대웅전내에 있던 것을 박물관으로 옮겨 보관중이다. 음통상단에 장식된 연꽃의 가장자리 연판이 부서져 없어진 것을 제외하면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전체적으로 검은 빛을 띠고 있으며, 종견으로부터 차츰 벌어지면서 종복으로부터는 수직으로 내려오는 외형선을 가진 전통형 종이다.

 

쌍계사종은 조선후기 범종 연구의 범주인 17세기 전반의 경상도 지역의 범종의 유형은 물론 활동한 유파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자료이다. 

 

24.쌍계사 감로탱

 

종 목  시도유형문화재  제480호

지 정 일 2009.03.05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시 대 조선시대


쌍계사 감로도는 현재 쌍계사 성보박물관 2층 진열실에 전시되어 있다. 전체적인 상태는 양호한 편이며, 화면 향우측 하단에 쌍송, 위쪽으로 구름에 흰색의 보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쌍계사 감로도는 구름을 경계로 상단에 구름을 타고 강림하는 불·보살군이 있고, 하단에는 아귀와 제단, 召請儀式을 행하는 승려들 그리고 육도제상의 일들이 전개되어 있다.

 

색채는 황색의 바탕 위에 붉은색과 녹색, 청색으로 진채의 색감을 살리고, 군데군데 인물들은 황백의 옷을 입어 화면의 단순함을 피할 뿐 아니라 부드러운 느낌도 주고 있다. 한편 화면의 상단과 하단을 구분하는 기괴하게 솟은 산들은 준법을 사용하여 높고 험한 산을 나타내었으며, 암산에 걸린 엷은 비취색, 황색, 자주의 구름은 먹선으로 윤곽선을 긋고 그 선을 따라 흰색으로 선염하여 입체적인 느낌은 물론 서운의 분위기를 나타내었으며, 높은 천공의 이미지를 표현하기에도 손색이 없다.   

 

25.청학루

 

종 목  문화재자료  제45호

지 정 일 1983.07.20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시 대 일제강점기


쌍계사 내에 있는 누각으로 처음 스님이 되시는 분들의 수도장소로 사용되었다. 1930년에 쌍계사 주지 손민선사가 지었으며, 1985년에 지붕을 한차례 고쳤다.

 

2층 누각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26.쌍계사 적묵당

 

종 목  문화재자료  제46호

지 정 일 1983.07.20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시 대 조선시대


쌍계사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 성덕왕 23년(723) 의상대사의 제자인 삼법이 세운 절이다. 처음에는 옥천사라 하였다가 통일신라 정강왕 때 쌍계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적묵당은 불도를 닦는 스님 중 처음 배우는 자가 수행하던 곳으로, 통일신라시대 문성왕 2년(840)에 진감선사가 세웠다. 조선 인조 19년(1641)에는 벽암선사가 넓혀 짓고 1978년에는 고산 스님이 고쳐 지었다.

 

27.쌍계사 마애불

 

종 목  문화재자료  제48호

지 정 일 1983.07.20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시 대 고려시대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 대웅전의 동쪽에 있는 큰 암석의 한 면을 움푹 들어가게 파내고 그 안에 불상을 돋을새김 하였다.

 

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묶음이 높고 크게 표현되었으며, 옷은 두툼하여 옷주름이 무릎 부분 이외에는 뚜렷하지 않다. 왼손은 오른손 위에 올려 놓고 있어 무엇인가를 받들고 있는 듯하다.

 

스님으로 보일 만큼 매우 순박한 모습의 이 불상은 옷이나 손모양 등에서 특이한 점이 보이며, 고려시대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대웅전의 동쪽 절 경내에 있는 큰 암석의 한면을 움푹 들어가게 파내고 그 안에 여러형의 좌상을 두껍게 양각하였다. 그러므로 마치 감실안에 봉안한 불상같이 보이는 특수한 형식의 마애불상이다. 불상은 머리에 고대한 육계가 있어 두부가 과대한 편이고 법의도 두툼하여 옷주름 같은 것도 무릎부분 이외에는 뚜렷하지 않다.

 

양손은 앞에서 공수하여 무언가 받들고 있는 듯하다. 이 불상은 일견 승형으로 보일만큼 고박한 모습으로 착의나 수인 등에 특이한 점이 많으나 조성년대는 고려시대로 내려올 듯 하다.

 

 

28.팔영루

 

종 목  문화재자료  제74호

지 정 일 1983.07.20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시 대  통일신라시대


쌍계사는 통일신라 성덕왕 22년(723)에 삼법화상이 ‘옥천사’라 하여 세운 절로 그 뒤 정강왕 때 ‘쌍계사’라 바꾸었다. 절 경내에는 대웅전, 설선당, 팔영루, 고승당 등의 많은 건물들이 있다.

 

팔영루는 통일신라 문성왕 2년(840)에 진감선사가 세웠고 조선 인조 19년(1641)과 1978년에 보수를 하였다. 이곳은 우리 민족에 맞는 불교음악(범패)을 만든 곳으로 훌륭한 불교 음악의 명인을 많이 배출하였다. 또한 진감선사가 섬진강에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서 ‘어산’이란 불교 음악을 작곡하였다고 하여 팔영루라 한다

 

29.쌍계사 설선당

 

종 목  문화재자료  제153호

지 정 일 1985.11.14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시 대 통일신라시대


쌍계사는 통일신라 성덕왕 21년(722)에 삼법과 대비 두 화상이 절을 지어 ‘옥천사’라 하였다. 그 뒤 문성왕 2년(840)에 진감선사가 고쳐 세웠고, 정강왕 때 ‘쌍계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현재 절 경내에는 설선당을 비롯하여 대웅전(보물 제500호), 응진전, 명부전, 팔상전 등 건물이 많이 있고, 진감국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 쌍계사 부도(보물 제380호), 마애불 등 문화재가 있다. 설선당은 스님들의 교육장소로 불경을 공부하는 곳이다. 

 

30.악양정

 

종 목  문화재자료  제220호

지 정 일 1995.05.02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개면 덕은리 815 
시 대  조선시대


덕은사 경내에 있는 악양정은 일두 정여창(1450∼1504) 선생이 은거하면서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양성하던 정자이다.

 

조선 전기 문신이자 학자인 정여찬 선생은 김종직의 제자로, 경학과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며, 학식이 높고 행실이 단정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송받았다.

 

건물은 15세기 말경에 지은 것으로 추정하며 고종 38년(1901)에 군수의 지원과 후세의 참여로 다시 고쳐 지었다. 1920년에 3칸이던 건물을 4칸으로 덧붙여 지었고, 1994년에 도·군의 지원으로 크게 보수하였다.

 

규모는 앞면 4칸이며 방·대청 2칸·방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9.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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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처

    하동군청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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