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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마지막 황세손이 왜 일본에서 죽었나요?
bear**** 조회수 3,602 작성일2005.07.21

마지막 황세손이 왜 일본에서 죽었나요?

 

궁굼하네요... 갑자기 우리나라 황세손이 었던 사람이 왜

 

일본에서 죽어야 합니까... 그리고 몇몇 왕가 사람들이

 

해외에서 살고 있는대 그 이유는 무엇 입니까??

 

개인적인 이유에서?? 그런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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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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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분이 말씀하신대로

황세손의 부친되시는 영친왕은 우리나라 사람이지만

모친되시는 이방자 여사는 일본 왕족이십니다.

광복 전까지는 일본에서 왕족, 귀족들만이 다닐 수 있는

학습원에 다니며 부유하게 사셨던거 같은데

광복 후에는 신적강하(臣籍降下 : 황족에서 평민으로 신분격하)로

왕족에서 제외되어 재산을 몰수당하고 재일한인으로 살아가다가

박정희 정권 때에 귀국했더랍니다.

당시에도, 지금도 황족들은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이승만 정권 때 정부에서 황실 재산을 모두 가져갔거든요.

황족들은 궁궐에서 귀하게 자라다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된거죠.

박정희 때는 정부에서 황족들을 위한 장려 정책을 폈다는데

전두환 정권 때 황족들을 압박하기 시작해 (무슨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네요)

압박에 못 이겨 해외로 나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위에서 말씀드렸다시피 한국에 남아 있는 황족들은 모두 가난하게 살고 있구요.

황세손이 일본에 있게된건

미국에서 만난 줄리아 리 여사와 이혼한 후부터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편 사업도 계속 실패하셨다고 하구요.

종친들이 줄리아 여사가 아이를 낳지 못한다 하여 이혼을 강요했다네요.

그 후, 황세손께선 일본으로 건너가셨구요.

줄리아 여사는 한국에 남아 장애인들을 도우며 살다가

이 분 역시 생활고에 못 이겨 친정 가족들이 있는 하와이로 가셨습니다.

황세손은 일본에서 거주하시며 종묘제례와 같은 행사가 있을 때

한국에 오셔서 행사를 주관하셨습니다.

대한제국의 직계 후손으로써요.

 

그리고 윗분이 '친왕'이라는게 일본식 표기라고 하셨는데

그건 잘못된 겁니다.

아래 신문기사를 참고해주세요.

 

(상략)

<조선왕조실록>을 통틀어 일일이 그 용례들을 다 들이댈 수 없을 만큼 비교적 자주 등장하는 용어의 하나가 바로 '친왕'이었다.
더구나 "조선의 국왕은 그 품계가 친왕과 동일하다"는 구절에서도 드러나듯이 임금 자체가 겨우 중국의 '친왕'에 맞먹는 대우를 받던 서글픈 처지였으니 거듭하여 더 말할 나위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도대체 '친왕'은 어떠한 범주의 호칭이었을까?
마침 <효종실록>에는 이에 대한 개념을 명쾌하게 정리할 만한 기사가 하나 들어 있다.
청인(淸人)이 가로되, "대군은 어떤 품계이오니까?"하니, 상(上)께서 이르기를 "이는 대국에 비하면 친왕과 같소"라 하셨다. 청인이 가로되, "대군 아래에는 무슨 직급이 있습니까?"하니, 상께서 이르기를 "대군 아래에는 왕자가 있은 즉 서얼(庶孼)이라 단지 군이라고만 부르고 '대'자는 붙이지 않으니, 대국의 준왕(俊王)과 같소이다" 하셨다.
여기에서 보듯이, 쉽게 말하여 친왕은 조선 왕실로 치자면 '대군(大君)'에 상응하는 개념이었다. 물론 엄밀하게는 그 격이 똑같았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우리 나라에서 친왕이라는 호칭이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1900년 8월의 일이다. 바로 두어 해 전에 이미 '대한제국'이 성립한 시점이었다. 이제 황제의 나라가 되었으니 이와 더불어 친왕의 자리가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처음 친왕으로 책봉된 대상은 황2자 의화군(義和君)과 아직 이름이 없던 황3자 두 사람이었다. 친왕 책봉에 대해 여러 차례 논의가 있었고 그 결과 황2자에게는 '의친왕', 그리고 황3자에게는 '은(垠)'이라는 이름과 더불어 '영친왕'이라는 봉호가 주어졌다.

(중략)

엄밀하게 말하면 '영친왕'이라고 표기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하지만 대한제국 시절의 <관보>를 보면, 영왕이나 의왕, 그리고 완왕과 흥왕이라는 표현이 두루 등장하는 걸로 봐서 이러한 표기하는 것 또한 잘못이 아니라고 확인된다.

200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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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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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세손 저하(皇世孫 低下)께서 일본국(日本國)서 서거(逝去)하셨습니다.

비록 망국(亡國)이지만 대한제국(大韓帝國)의 황세손(皇世孫)이시고, 나라가 망하지 않았더라면 황제(皇帝)가 되셨을 분이었습니다. 그러한 분이 일본의 어느 호텔 누추한 화장실에서 급서(急逝)하셨습니다.

황세손께서는 1963년 일시 귀국(歸國)하셨으나, 사업부도 및 복합적인 사유로 인하여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셨습니다. 그 근본(根本)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이승만 정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승만 정부는 6 25전쟁 이후 황손들이 거처하시던 낙선제를 폐쇄하고, 황실 재산(皇室財産)을 국고(國庫)로 만들게 됩니다. 일순간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거처(居處) 또한 잃은 황손들은 거리로 나앉게 되며, 나라를 망(亡)하게 한 이씨라는 좋지 못한 시선을 받고 생활하셨습니다. 그리고  황세손께서는 2005년 7월 일본에서 급서하시게 됩니다.

현재 의친왕(義親王)계 왕손(王孫, 황세손 저하를 황손이라 칭하고 의친왕계 왕손을 황손이라 칭하지 아니한 이유는 영친왕 전하께오서 광무황제에 의하여 의민황태자에 봉해졌기 때문입니다.)들 중 많은 분들께서 미국에서 생활하고 계십니다. 그 이유로는 대부분 유학등을 사유로 하여 방미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 계신 왕손들 중에 가장 많이 알려진 분은 의친왕 5남 이해경 여사, 9남 이충길(이갑) 왕손이십니다.

 

 

*답변 추가

 

아랫분께서 친왕(親王)호칭에 관하여 추가 답변 하셨는데, 친왕 호칭이 옳습니다.

그 이유로 하자면, 대한제국 황실을 당나라의 제도를 기반으로 하였는데, 친왕이라 함은 왕의 자식 혹은 형제를 칭하는 말이거든요. 대한제국 황실에서 친왕을 봉할때 내린 문서에 따르면 의친왕을 예로 들자면 義(親)王 이라 명했습니다. 의왕이라 하여도 맞고 의친왕이라 하여도 맞는것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황실로부터 봉작받은 의친왕이라는 호칭이 옳겠지요.

 그리고 친왕이 일본 호칭이라고 한다면, 의친왕이라는 호칭이 나올 수 없습니다. 일본국의 친왕은 이름을 쓰거든요. 그럼 의친왕 이강은 의친왕이 아니라 강친왕이 되는것이며, 영친왕 이은은 은친왕이 되야 옳습니다.

 참고로 위 내용은 미국에 계시는 의친왕의 9남 이충길 어르신으로부터 들은 내용들입니다. 궁금한 내용 있으시다면 우리 황실 사랑회(http://cafe.daum.net/1392royal )로 찾아오세요.

2005.07.21.

  • 출처

    질문있으시면 쪽지주세요..^^ 성실히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추가 답변은 의친왕손 이충길 어르신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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