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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백제인들이 바둑을 좋아했다던데 사실입니까?
chld**** 조회수 1,110 작성일2005.06.15

 

신문 기사를 읽는데, 백제사람들이 특히 바둑을 좋아하고, 잘 두었다는데

바둑과 백제와의 관련된 일화나 기록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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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gh****
초수
학교생활, 바둑, 휴대전화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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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님 넘 짧으시네 -_-;;

 

백제사람들이 바둑을 좋아하고 잘 두었을거라고 추측합니다.<제 생각에.ㅎㅎ>

 

왜냐하면 예전에 도림하고 개로왕 아시죠? 그사람이 바둑두고 스님의 말만 듣고 해서 백

 

제를 말아 먹을뻔한 -_-;; 그게 일화라면 일화겠죠..

 

아.. 찾다보니 이 기사가 나오네요.. 아마 님이 봤던 그 기사일듯..

 

출처: 네이버 뉴스

 

조용헌 살롱] 백제출신 고수
[조선일보 2005-03-0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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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번에 농심배 세계바둑대회에서 우승한 이창호를 두고 한·중·일 삼국의 바둑팬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막판에 일본과 중국의 고수 5명을 연달아 격파한 그의 솜씨는 무협지의 주인공 곽정이 가끔 사용하는 ‘항룡십팔장(亢龍十八掌)’의 위력을 연상하게 한다. 절정고수의 내공을 눈으로 직접 보여준 셈이다. 그를 가리켜 중국 신문에서는 ‘일부당관 만부막개’(一夫當關 萬夫莫開: 한 사내가 관문을 지키니 만인도 어쩌지 못한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바둑은 ‘문(文)의 즐거움’과 ‘무(武)의 쾌감’을 모두 갖춘 문무겸전 게임이다. 문의 즐거움이란 철저한 두뇌게임이라는 점을 의미한다. 머릿속에서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지략을 바둑판에서 구사할 수 있다. 바둑은 천변만화하는 지략의 대결이라는 측면에서 문사들의 취향을 만족시켜 준다. 다른 스포츠와 같이 육체적인 힘 또는 물리력을 가지고 좌우하는 게임이 아니다. 바둑은 세계에서 가장 지적인 오락인 것이다.

무의 쾌감이란 무엇인가. 검술에서는 무승부가 없다. 승부가 반드시 가려진다. 바둑도 무승부가 없다. 반집 차이라도 반드시 승부가 나기 마련이다. 승부가 가려진다는 것은 곧 위계질서(hierarchy)가 명백해짐을 뜻한다. 승부가 한 번 정해지면 뒷다리를 걸거나 아니면 자구해석을 트집 잡아 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지면 승복해야 한다. 무의 쾌감이란 승부의 명백함, 즉 승부의 깔끔함에서 오는 쾌감이라고 생각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바둑 고수들 중에 옛 백제지역 출신이 많다는 점이다. 이창호는 전주 태생이다. 한국바둑의 개척자인 조남철 9단은 전북 부안이고, 이창호의 사부였던 조훈현은 전남 목포 출신이다. 요즘 욱일승천하는 이세돌의 고향도 전남 비금도이다. 왜 백제지역이 많은 것인가. 우연일 수도 있지만, ‘후한서(後漢書)’에 보면 백제는 유난히 바둑을 좋아했다고 나온다. ‘삼국사기’에도 백제 개로왕이 죽게 된 이유가 바둑 때문이라고 적혀 있다. 고구려의 바둑고수였던 승려 도림(道琳)을 기대조(棋待詔)로 두고 바둑에 몰두했던 탓이다. 세계 바둑계를 평정한 이창호는 혹시 백제의 바둑고수가 20세기에 환생한 것이 아닐까!

(조용헌 goat1356@hanmail.net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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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에 개로왕그거!!

 

?~475,재위기간:455~475

개로왕의 본명은 여경이다. 비유왕의 장남으로 근개루왕이라고도 한다.
개로왕은 한강유역을 놓고 장수왕과 여러번 싸웠다. 고려침입에 대비하여 북위와 친해지려 노력했다.

개로왕 때 도미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한성 근터인 벽촌에 거주하였다. 도미의 아내는 현숙하고 빼어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이소식 을 들은 개로왕은 도미의 아내를 유혹했지만 실패하였다. 화가난 개로왕은 도미의 눈을 빼버렸다.
그리고 도미를 다른곳에 거주하도록 하였다. 이소식을 들은 도미의 아내는 뱃길을 따라 다른곳으로 왔다. 그곳에서 우연히 도미를 만나고 그 둘은 고구려로 도망가 살았다고 한다.

개로왕은 북위에 사신을 보내 고구려를 토벌하라 하였다. 이렇게 되자 고구려에서는 바둑을 잘두는 승려 도림을 첩자로 보냈다. 마침 개로왕은 바둑을 좋아하여 개로왕고 승려 도림은 사이가 가까워졌다. 그리고 백제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고구려에 말하고 무리한 토목공사를 하게 하여 백제에 큰피해를 주었다. 그리고 고구려군이 한성으로 쳐들어오자 백제군은 어찌할수 없었다. 개로왕은 문주태자에게 신라에서 구원병을 얻어오라 하였다. 개로왕은 수십명의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탈출을 시도했으나 얼마후 옛 부하인 재증걸루와 고이만년에게 붙잡혔다. 이 장수들은 왕이 자신을 무지막지하게 대하자 고구려로 가서 장수가 됬던것이다. 두 장수는 일단 말에서 내려 옛 임금인 개로왕에게 절을 했다. 그 다음 옛 죄를 다그치며 침을 세 번 뱉었다.(개로왕에게)그리고 개로왕을 묶어 아단성(아차산성)끌고 가서 죽여 버렸다. 문주태자가 신라에서 1만명의 구원병을 끌고 왔으나 개로왕은 전사한 뒤였다. 궁전은 옛 모습을 찾기힘들어졌다.

 

윗내용이 개로왕의 업적입니다.. 제가 색깔바꾼것은 바둑에 관한 내용

2005.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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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
평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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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맞음니당

 

2005.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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