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늑약 이후 광복 전까지의 일제강점기 동안 일어난 사거들 중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건과 그것을 기억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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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무차별적 학살이고 천인 공로할 사건들입니다 인간이 해선 안될일들이 적색부분입니다
1910년 8월 22일 - 한일합방 조약 체결
1919년 1월 21일 - 고종 승하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919년 3월 1일 - 삼일 독립운동 시작
1919년 8월 12일 - 사이토 마코토, 제3대 총독으로 취임
1919년 8월 20일 - 헌병 경찰 제도 폐지
1920년 홍범도가 봉오동 전투에서 일본군을 격퇴, 김좌진이 청산리 대첩에서 일본군을 대파
1920 년 훈춘사건발생(일본군 조선인 3만명 학살)
1920년 간도참변(일본군 조선인 1만명 학살사건)
1921년 6월27일 자유시 참변(러시아 연해주일대 독립군 1800여명 사살사건)
1929년 11월 3일 - 광주학생사건 (- 1930년 3월)
1930년 5월 30일 - 간도 5.30 사건
1931년 1월 8일 - 애국단원 이봉창, 도쿄에서 천황 암살 미수 사건
1931년 4월 29일 - 애국단원 윤봉길 , 상하이 폭탄 테러 사건
1936년 8월 9일 - 손기정,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1944년 8월 23일 - 여자 정신대 근로령 공포(30만명 강제 차출)
1945년 9월 9일 - 총독부, 항복 문서에 조인
1945년 8월22일 우키시마호 폭침사고
일본 아오모리 현에 있는 시모키타 반도의 오미나토 항에는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한국인들이 해방을 맞아 귀국선 ‘우키시마’호를 타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1945년 8월 22일 오후 10시쯤 일본 해군 특별군함인 우키시마호가 부산으로 출항했다. 오미나토에 있는 일본해군경비부의 발표에 따르면 그 배에는 한국인 징용 노동자와 가족 3천735명이 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배는 부산항으로 향하지 않고 일본 해안선을 따라 남하했다.
2018.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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