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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군함도와 강제징용에 관해서
비공개 조회수 11,776 작성일2017.07.28

안녕하세요. 저는 정말 부끄럽지만 역사에 큰 관심이 없던 학생이었습니다..

좀 늦었지만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최근 군함도가 많은 관심을 받고 있잖아요..

제가 족팔리게도 군함도가 뭔지 공부를 이제 막 시작해서 잘 모르더라고요


 정확하게 군함도가 무엇인지

왜 문제가 되며 그 문제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가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 외에도 일본의 강제 징용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면 정말 정말 감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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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시마 섬(端島)

일본나가사키나가사키에 있는무인도

섬의 모습이 마치 군함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에 군칸지마(軍艦島, 군함도)라고도합니다

 


 

 

 

 

하시마 섬 위치

 

 

1960년대까지 탄광 도시로서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지만, 폐산 이후 주민들이 이주하였으며, 섬에는 당시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1930년경, 하시마 섬의 아파트 

 

1890부터미쓰비시재벌의 소유탄광지입니다   한국인과 중국인 징용자를 탄광 노동자로 사용 임검 한푼주지않고 부려먹은  악덕기업입니다

2011  한인 징용자에게  미츠비시 재벌이  보상금이라고1인당  990원을 지급하겠다고 해서 비난의 대상이   원인 제공지입니다

 

 20068월부터 세계문화유산에 등재신청중입니다

일본정부는 메이지 시대의 산업 시설을 지역 관광 자원으로 사용하기 위해 세계 유산 등록을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20089'규슈, 야마구치의 근대화 산업 유산군'의 일부로서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추가 기재가 확정되었고, 20091월 기재되었습니다   2012년 유네스코에사 심의중이며  2015년경 등재될예정입니다

  

이 광산은1974년 완전 패쇄되었습니다

 

 

 

 


 

 

 

 


 

 

 

 

 

한인 징용자들은 대부분1945  철수하였습니다  이 탄광노동자 일부가  고국으로돌아오면서 일본놈들이 현해탄에서 배를침몰시켜 익사시킨 유명한 우키시마호  사건입니다

 

우키시마호 폭발사건입니다

일본정부가 전쟁패전이후 귀환조선인이 조선에 귀국하여 조선에 잔류한 일본인을 해치려는것을 방지 하기위하여 불량선인(나쁜 조선인) 이라규정하여 이들을 귀환 목적 승선시켜 배를자폭시킨 사건입니다 이자료를 공개한 퇴역해군제독은3일뒤 의문의 교통사고사를당하였으며 우리정부는 아직 이문제 한번도 거론도 못해보고있습니다

이자료는 재일교포 진상조산단 자료에서 발췌한것입니다

  


  

귀국선 우키시마호의 비극
일본 아오모리 현에 있는 시모키타 반도의 오미나토 항에는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한국인들이 해방을 맞아 귀국선 우키시마호를 타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1945822일 오후 10시쯤 일본 해군 특별군함인 우키시마호가 부산으로 출항했다. 오미나토에 있는 일본해군경비부의 발표에 따르면 그 배에는 한국인 징용 노동자와 가족 3735명이 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배는 부산항으로 향하지 않고 일본 해안선을 따라 남하했다.
우키시마호는 824일 오후 520분쯤 마이스루 항에 도착하자마자 원인 모를 폭발과 함께 침몰하고 말았다. 일본정부는 미군이 매설한 지뢰에 부딪친 것이 원인이라고 발표했다. 지뢰로 인한 침몰이라면 구멍이 선체의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뚫려야 하지만 9년이 지난 뒤 인양해서 살펴본 결과 바깥 방향으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우키시마호에 승선한 한국인은 7500명이었고, 어떤 문서에는 12천 명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중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800명에서 1500명으로 집계된다.


우키시마호는 왜 부산으로 가지 않고 회항하다 마이스루 항에 들렀고, 폭발 원인은 무엇이며 일본해군이나 정부는 왜 즉각 구조작업에 나서지 않았는가? 이 사건은 지금껏 의혹에 싸여 있다. 이후 일본군에 의한 계획적이고 잔인한 폭침이라는 증언과 자료가 즐비하게 나왔다.

배의 폭발사고로 숨진 한국인의 유골이 아직도 해저에 있다는 사실이 재일교포에 의해20022월 밝혀졌다. 배가 쉽게 가라앉도록 선창에 수백 톤의 자갈을 실었던 것도 확인되었다.

1980년대 초 잠수부 가사하라(笠原)는 마이스루만 바다 밑을 조사하던 중 유골 무더기를 발견했다.1945년 우키시마호 인양 때 선체 윗부분은 건져냈으나 아래쪽은 너무 무거워 포기했는데, 바닥에 실린360톤의 자갈이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원을 훨씬 초과한7500명을 태운 배에 자갈을 실은 것은 배를 가라앉히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

 

70년대 중반부터 사건의 진상규명에 매달렸던우키시마호 희생자 진상규명위원회 대표 제일교포 리병만 씨가 일본에 건너간 것은3살 때다. 경남 함안에서 강제로 징용된 부친을 따라 일본으로 간 것이다.
오사카, 고베 등지에서 조총련 직원으로 일한 그는50년대 초반 우키시마호의 참상을 듣고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70년대 중반 은퇴 후 이 사건에 매달렸다. 관련자료를 찾기 위해 마이스루 시 당국과 후생성을 셀 수 없이 드나들었다. 이뿐만 아니라 생존자와 일본인 승무원을 만나기 위해 일본 전역을 돌아다녔다.
일본인들은꿈에도 생각하기 싫은 일이라며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또 생존자들로부터 사고 직후 일본 군인들끼리더 많이 죽여야 했는데, 왜 이것밖에 죽지 않았는가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는 증언도 확보했다.
리병만 씨는마이스루만(
)은 조수간만의 차가 크기로 유명한 곳이어서 사고 당시 시신 대부분이 떠내려갔을 텐데 아직도 그렇게 많은 유골이 남아 있다면 희생자가 얼마나 많았겠느냐면서 치를 떨었다.


1945비극의우키시마호

마이스루 항 앞바다에 침몰한 우키시마호

 

 

일본이 군함도(하시마 섬)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것에 대한 대안점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심정적으로 우리에겐 그런 지울수없는 거리이지만 일본 놈들은  그런 한국감정 아랑곳 하지 않고

설처대고있으니  중국이 난징 대학살  기념공원화하고 세계문화유산화 할려하자  발버둥치고  난리 법썩떨고있는것 이게 국제사회입니다  나는되어도 너들은 안된다  감히 한국너들이 우리일에 반대하다니 그게 현재 일본정부의 입장입니다

 

1992년 왜 신한일 어업협정을 체결한줄 아십니까

기존협정1963년 체결 했는데 불평등 하다고 파기한것이 아니라 일방적으로파기한 이유는

한국이 그당시IMF사태로  외환부족으로  곤란을 당할때 일본이  이때다  하고  협정을 일방 파기해버립니다

그리고 돈 빌려줄테니  어업협정 재협상 하자고 한것이  바로 신한일어업협정입니다 내용은 들은

일본 제맘대로 다 넣고  이게 독도가 우리땅이다라고 주장하는일본놈들에게  화근을 제공한 협정입니다

 

군함도는  군국주의산물이고 우리민족에게는  상처이지만  그들에게는 제국시대 산업전초기지란점만 조명하고있는 차이입니다 외교력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대항할 능력이 없어 안됩니다

가장 인접한  국가 정상이3년동안  만나지도 않는 우리 외교실력인데 무엇을 타결합니까

일본이2월에  통화스와프 협정을 일방 파기해버렸습니다  우리가 꼼짝없이 당한것인데

이말은  박대통령 나와라 한것인데  그래도 꿈쩍않는우리입니다  지조가있는것인지 아니면  뚝심인지

아니면 힘이있는것인지  허기사 메르스 증후군으로 나라가 온통 뒤죽박죽인데도  고아주에가서  창조경제 실천대회하는  나라님 이 무엇을 무슨  양국 친선을 이정부하에선  한일관계 남북관계 없습니다

 

얼마전 일본 미츠비시사는  미국 중국인에대한  피해를 보상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미쓰비시, 왜 한국엔 ‘강제노역 ’사과하지 않나

일본, 중국 여론 달래기…한국엔 선 긋기

일본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2차대전 당시 이 회사에서 강제노역을 한 중국인 피해자들에게 사과와 보상을 하기로 합의한 배경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 중인 아베 정권의 의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힌국에게는

“법적으로 달라” 한인 보상 거부 “한일협정으로 매듭” 입장 고수

 

아베 정권, 대중 관계 개선 추진에

우호 분위기 조성 차원 보상 합의

미쓰비시 머티리얼은 강제노역에 동원했던 미국•중국인들에겐 사과•보상의 뜻을 밝혔지만, 한국인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배상은 거부하고 있다. 미•중과 한국의 사례는 “법적으로 다르다”는 논리다.

 

일본은 옛 식민지배 시기 조선인에 대한 강제동원은1938년 도입된 국가총동원법에 의해 이뤄진 적법한 행위라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를 근거로 지난달 군함도 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도 조선인 강제노역의 ‘강제성’은 인정하면서도 국제노동기구(ILO) 조약상 불법인 ‘강제노동’은 아니었다고 강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견줘 중국인 강제노역 피해자는 당시 일본군에 포로로 붙잡혔던 국민당 병사 등이어서 차이가 있다는 게 일본의 주장이다.

2017.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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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신
군함도는 섬 자체가 군함처럼 생겨서
편의상 그렇게 부르는 것입니다.
일본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지정 의뢰하면서 석탄을 캐기위해
강제징용해서 대려간 조선인들의
역사를 감춘데서 문제가 불거진 것입니다.

http://m.kin.naver.com/mobile/qna/detail.nhn?d1id=11&dirId=111001&docId=271320420&qb=6rWw7ZWo64+EIOuFvOuegA==&enc=utf8&section=kin&rank=3&search_sort=0&spq=0

2017.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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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답변
일단 군함도는 1974년 폐광된 무인도였습니다.일본의 해상 군함을 닮아 군함도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습니다.정식명칭은 하시마 입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1810년에 석탄이 발견되서 1943~1945년 짧은 기간동안 약 800명의 조선인 광부가 강제 징용이 되었습니다.축약하자면, 당시 긷민지 백성이였던 조선인들을 끌고 가서 강제로 석탄체굴을 시킨 지옥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017.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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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
군함도는 일본에있는 군함보양의 섬이에요.

이게 문제가되는건 일본에서 섬의모양이이뻐서 유네스코에.등재하려고했죠. 근데 그 이면에는 일제강점기때.조선인들이.그곳에서 강제노동을하고 핍박받았었는데 일본에서는 그런사실이없다고 증거있냐 이런식으로얘기했죠.

2017.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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