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암산(508m)~수락산(638m)
        ○ 위치 : 서울 도봉구, 노원구, 경기 의정부, 남양주 별내면       ○ 코스 : 학도암-헬기장-불암산-덕능고개-수락산-기차바위-도정봉-동막굴다리        ○ 일자 : 2008. 11. 30(일)        ○ 시간 :  7시간 30분 /맑음

수락지맥에 대하여
    수락지맥이라는 지맥 이름이 기록 된 곳은 “월간山 신 산경표(박성태)”라고 하는 책자이다, 이 책자에 보면 수락지맥은 한북정맥의 죽엽산과 덕고개 사이에 있는 축석령에서 시작이 된다, 이후 능선은 용암산, 도정산(깃대봉), 수락산, 불암산, 구능산, 망우리고개, 아차산 용마봉에서 마지막 산봉우리를 일구고 나서 중랑천으로 능선의 긴여정을 마치는 지맥이다

1. 남양주 불암산(508m)

    주봉인 국기봉의 모양이 마치 송낙(소나무 겨우살이)으로 만든 모자를 쓴 부처의 모습과 같다 해서 산 이름을 '불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산에는 몇 개의 다른 이름이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별칭은 일명 필암산. 풍수지리학에서 먹골(묵동), 벼루말(연촌)등의 지명과 함께 이름 안에 필, 묵, 연을 붙이는 것은 지나친 땅의 기를 꺾기위한 방편이었다고 전해진다. 또 이전에는 하늘에서 내린 보배로운 산이라는 뜻으로 천보산이라 불리웠다고 한다.불암산은 서울시 경계에 위치한 5개 산 가운데 가장 낮은 산이지만 정상부분이 온통 바위산을 이루고 있어 규모를 뛰어넘는 기품을 자랑한다. 사암으로 이루어진 산이라 수목이 울창하지는 않지만 가파른 능선길 아래로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이어지는 암릉산행의 묘미를 즐길 수 있다.

    옛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로, 북한산이 살아계신 임금을 지키는 산이라면 불암산은 돌아가신 임금을 지키는 산이라 한다. 이 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산의 남쪽 아래에는 태릉과 강릉이, 그리고 주변에는 동구릉과 광릉이 있다.

2. 의정부 수락산(638m)

    한북 정맥의 운악산과 죽엽산에서 갈라져 축석고개를 넘어 도봉산과 마주 보고 서 있어 능선에서의 사방 조망이 좋고, 바위가 둥글고 모가 나지 않은 게 특징이다. 백두대간 종주에 이어 '불수도북 종주'란 말이 유행인데, 이는 불암산에서 출발,수락산을 거쳐 도봉산과 북한산을 종주하는 4개의 산을 종주하는 코스를 말한다.

        수락산이라는 명칭에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다. 수락산이라는 이름은 바위산의 물이 바로 떨어진다는 데에서 중국 북송 소식의 "적벽부"에 나오는 "수락석출"이라는 글귀에서 따왔다는 설과.산봉우리 형상이 마치 목이 떨어져 나간 모습(首落)과 같다하여 이름하였다 하고그밖에 옛날 사냥꾼이 호랑이에게 아들을 잃고 찾아 헤매다 수락산바위에서 떨어져 죽은 후 여름에 장마가 지면 "수락아!"수락아!" 소리가 들린다고 전해 내려온다. 구전에 의하면 태조가 서울을 등지고 있다 하여 '반역산'이라는 설과 서울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절을 한 형상이라 하여 서울의 '수호산'이란 정반대의 해석도 있다

      06:00 춘천 태백가든

        어둠속에서도 버스는 만원이다오랜만에 만나는 산우들이 반갑다

      08:05 노원동 현대아파트

        현대아파트 정문에서 학도암 입구를 찾아좁은 골목을 따라 우회하고학도암 오름길에 서울노원교회가 있다

      08:30 학도암

        주위의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학이 이곳에 날아와 노닐었다는 학도암작은 암자 뒤로 아담한 불당과 약사암이 있다. 고종7년 명성황후 민비의 불심으로 조성된 마애관음보살좌상은 10개의 이중 연꽃으로 만든 대좌 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있는 관음보살의 모습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바위 옆면에 50자로 된 조성명문이 남아 있는 걸작품이다.

      08:50 420봉

        들머리는 참나무가 많은 평범한 길이다다듬어진 돌로 계단도 어느 정도 정리되어 있는낙엽이 깔린 오솔길을 따라 쉬엄쉬엄 오른다

      09:00 약수터 갈림길

        차츰 돌산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가끔씩 넓적하게 드러누운 바위지대가 이어지며 경사는 급해진다. 도중에 산으로 오르는 여러 갈래의 길과 합쳐지며시야를 가리던 나무들은 사라지고 시원하게 조망이 트이며 멀리 불암산의 훤칠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최근에 천상병 시인을 기리는 산책로가 만들어졌다 /학도암1.25km,천병약수0.93km,헬기장0.3km,정상1.24km

      09:10 헬기장(420m)

        불암산 제2봉인 봉화대이며 너른 공터의 헬기장 불암산 산성지로 대동여지도(1864년 제작)에도 표시되어 있다옛날 봉화대 자리이고, 성터 자리라고 했지만그런 흔적은 찾을 수가 없다. 매점이 있을 뿐.. 아직 햇살이 약해 사방의 조망이 제로다. /학도암1.55km,정상0.94km

      09:15 정암사 갈림길

        우측으로 꺽이는 등산로를 따라깔딱고개를 만나며 다시 오르막 길이다.안부에서부터 정상까지 거대한 바위가 솟아 있고정상으로 오르는 암벽 중간 중간에 기이한 형상으로 움푹 파인것도 있고 두부 잘라놓은 것처럼 각지고 평면인 것도 있다.국기봉으로 향하며 무수히 많은 이름의 바위들을 지나쳤지만 금세 닿을 것 같던 정상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다. /헬기장0.48km,정상0.32km,정암사0.88km, 남양주불암동

      09:25 거북바위

        불암산 정상의 진면목인 암반이다. 어느 것이 거북바위인지 알 수가 없다수많은 절벽, 바위틈에 난 소나무와 괴목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하는 암릉을 올라거북바위 아래 좁은 바위틈`불암산을 사랑하는 육군 제 6915부대 장병들이 만들다. 1989, 7.1’라고조그만 동판을 붙여 놓았는데 홍보 만점이다. 발판 3개짜리 미니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읽지 않을 수 없게 돼 있다.

        넓은 바위 슬래브를 걷고 오르는 재미가 좋다. 특히 사람이 발 디디는 곳마다 약간씩 홈이 파져 있어 한결 쉽다. 위험스럽다 싶으면 쇠를 박아 밧줄을 매 놓았다네발로 오르내리는 암릉길, 커다란 바위 위에 또 하나의 바위가 얹혀있는 모양의 암릉을 넘어갈 땐 저 아래로 곤두박질 칠 것 같은 두려움에 손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정상으로 향한 슬랩 구간을 천천히 걸어 오른다. 우회로를 택하지 않더라도 슬랩 구간을 직등할 수 있을 정도의 경사다. 정상 바로 아래에서 다소 경사가 있는 구간에는 로프가 걸려 있다한 줄로 늘어서 서로 밀고 당기며 마지막 구간을 차례로 넘어간다.

      09:40 불암산 국기봉(507m)

        산의 형상이 마치 송낙(소나무 겨우살이로 만든 여승이 쓰는 모자)을 쓴 부처의 모습과 같다 하여 불암산이라 불린다고 하는데, 남면은 거대한 암반이 봉우리에 치마를 두른 듯하다 하여 치마바위라고 하고, 주봉을 삿갓봉이라도 한다고 한다.

        경사진 슬랩은 크랙이 있어 오르기 편하다. 태극기가 걸린 곳을 오르려면, 암봉을 하나 더 올라야 한다. 암봉 위에는 여러 사람들이 올라 조망을 즐기고 있는데하나 둘 모여들자 비좁은 정상은 금세 만원

        삼각점이 있는 정상은 비교적 넓은 편이다.1980년 12월 구맥회에서 붙여놓은 방향표지 동판이 눈에 뜨인다.

        사방이 막히는 것이 없이 확 트였다. 북으로 코앞의 석장봉과 수락산이 능선이 이어지고.서쪽으로 도봉산과 북한산. 발아래로는 거대한 아파트 군이 바닥을 메웠다.

        서울의 동북편에 위치한 불암산은 원래는 금강산에 속해있던 산이었다고 한다. 여기에는 전해 내려오는 설화가 하나 있다. 조선이 건국되고 나서 한양에 도읍을 정하려고 하는데 당시에 한양에는 남산이 없어서 도읍으로 정하지를 못하고 있었다. 이 소문이 금강산에까지 전해지자 그에 속해있던 불암산은 한양에 가서 남산이 되고 싶다는 마음을 품었고 그 즉시 길을 떠나 현재의 자리까지 내려왔다. 그러나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접한다. 그 자리엔 이미 다른 산이 들어와 앉아있었던 것. 불암산은 한탄하며 뒤돌아섰지만 산은 한 번 떠난 자리에는 되돌아 갈 수 없다는 이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금의 자리에 머물고 말았는데 그런 이유로 불암산의 모습은 서울을 등지고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불암산은 야간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유독 많은 산으로 알려져 있다. 산길은 비교적 수월하지 않지만 야경이 빼어나고 별이 가깝게 보이는 탓이다. 야간산행은 주중에서 주말까지 쉬지 않고 계속 된다.

      09:55 석장봉 /다람쥐 광장

        정상을 내려서서 기암을 바라보며 우측으로 돌아내리면평퍼짐한 모습을 보이는 석장봉과 그 한 옆에 간이매점이 있다넓은 바위에서 휴식

      10:15 절고개

        뚜렷하게 나 있는 등산로는 대간 길과 매우 흡사하다. 간간이 산행리본이 걸려있는 좌우로 샛길이 눈에 뜨이지만, 북쪽으로 이어진 뚜렷한 등산로를 걸으면 된다

        급경사 내리막으로 이어진다. 정면의 조그만 봉우리를 우회한 길은 다시 북으로 향하며 오른 쪽으로 커다란 봉우리가 보인다. /정상372m, 폭포약수609m

      10:25 406 연화사 삼거리

        능선을 이어주는 샛길이 희미하게 나 있다. 오른쪽 길로 들어선다. 암릉이 길을 막는다. 무리 없이 오를 수 있는 경사라 암릉을 타고 올라 봉우리 위에 선다. 너른 바위가 펼쳐있고, 왼쪽으로 불암산과 석장봉에서 떨어지는 암벽이 날카롭고. 북으로 달려 내린 능선이 힘차다. 시원한 전망이다.

      10:40 덕릉고개 /야생동물 이동 통로

        덕릉고개에는 터널과 예비군훈련장이 있다. 동물이동통로를 건너 잠시 휴식후 출발

      <덕릉 이야기>

        조선 중종의 막내이자 제9자인 덕흥대원군은 생전에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그의 아들인 선조가 즉위하였다. 선조는 아버지 덕흥대원군을 위하여 묘소만이라도 능으로 추존하고 싶어서 신하들에게 의견을 묻고 설득하여도 신하들이 이에 따르려 하지 않았다. 이에 선조는 하교하기를 「아버님되시는 중종께서도 등극하시었고 또 인군인 아들을 두셨는데 덕흥대원군이 설혹 왕위를 계승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능으로 시행하는 것이 그렇게 어긋나는 일이 아니다.」하며 신하들의 의견을 다시 물어도 역시 불가하다는 대답뿐이었다. 이에 선조는 능으로 승격시키는 것을 단념하고 한가지 방법을 꾀하였다. 즉 동문 밖에서 시탄상(柴炭商)을 하는 한 사람을 불러서 명하기를 「가게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무수레와 숯수레를 불러들여 어디를 지나서 이곳으로 왔느냐고 물어 덕흥대원군 묘소를 지나왔다고 하면 그대로 보내고 만일에 덕흥대원군의 능(덕릉)을 지나왔다고 하면 안으로 불러들여 술과 밥을 후하게 대접하고 그 장사꾼의 나무와 숯을 고가로 사들이라」고 하였다. 이 소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시탄상들이 너무 밀려오는 바람에 이 제도는 중단되었으나 이후부터 덕능은 정식 반포된 묘소보다더욱 우세를 점하게 되어 저절로 덕릉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양주군지》

        11:00 군부대 울타리삼거리 갈림길에서 우측 숲 속으로 또렷한 주능선길이 보이는데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한참 동안 계속되더니 드디어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수락산으로 들어서는 철조망 울타리를 따라 천천히 걸어 오른다.

        첫번째 철탑을 지나군부대 후문 철조망을 빠져나가면다시 시작되는 오르막

      11:20 305봉

        불타버린 능선에서 왼쪽으로 휘어지는바로 앞으로 도솔봉이 보인다

        두번째 철탑을 지나 밧줄이 걸린 암릉을 오른다. 암릉을 지나자 왼쪽으로 전망좋은 너른 바위가 펼쳐 있고, 등산객들이 한 무리 쉬고 있다. 바위 끝에 서니 지나온 석장봉과 불암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11:30 전망바위

        송림의 오솔길로 이어지지만 차츰 암릉길이 많아진다.멀리 도솔봉이 보이고, 꼭대기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인다. /중식 12:15출발

      12:20 540고개삼거리

        중식후에 만나는 오름길서두른 탓인지 발걸음이 거부를 한다도솔봉을 포기하고우측 지름길로/수락산정상1.3km,수락산역4.2km(수락골).수락산역(노원골)

      12:30 치마바위

        수락산이 가까워질수록등산로가 혼잡해진다오르내리는 사람들을 피해 바위벽으로 붙는다너른 바위벽올라서니 차마바위 끝이다바위틈마다 서있을 자리조차 없다

        왼쪽으로 돌아가는 암릉 도중에 동서로 뚫린 통천문이 있다

      12:35 하강바위/철모바위

        바위 아래에는 대형 남근바위가 멋지게 서 있다. 철모바위 좁은 암반위에도 사람이 가득하고올라선 사람은 내려올 줄 모르니포기하고 뒤돌아선다

        좁은 바위틈내려서기가 힘들어우측 협곡으로 돌아간다

      12:45 코끼리바위

        왼쪽 옆의 봉우리에 올라서 보지만여기도 암릉마다 사람들로 가득하다코끼리는 꼼짝도 안하고 집채보다 더 큰 바위상단에 완전히 엎드려 있다. 자연의 힘은 참으로 신비스럽다.

      통천문

        코끼리 바위 좌측 좁은 바위틈으로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줄지어서 지체된다

      13:05 고개 매점

        다시 이어지는 암릉고갯길은 사람들로 가득하고급한 마음에 좌측 암벽을 타고 지른다

        바로 앞봉이 철모바위우회하는 후미를 기다리며형제바위봉으로 올라서지만 역시 만원이다되돌아와 삼거리에서 휴식/수락산역4.7km(수락골).수락산역(노원골)5.2km,수락산정상0.3km

      13:15 내원암 갈림길

        좁은 암릉서로 비켜주는 일도 없이 부딪치고상계역에 올라오는 사람들로 시장을 이룬다/수락산정상51m, 청학리4.13km, 상계역방향

        로프가 매어진 바위옆을 지나늘어선 행렬을 따라 좁은 홈통길을 타고 오르면..

      13:20 수락산(638m)

        정상표지석이 있고 그 표지석에 바로 붙어서 더 올라 갈수 있는 바위길이 있다, 다시 한 단을 더 올라가면 삼각점이 있고 태극기가 힘차게 날린다,

        서쪽 아파트 숲 뒤로 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을 포함한 스카이라인이 선명하며, 그 오른쪽으로 사패산을 관통하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뒤로는 도봉산 선인봉, 만장봉, 자운봉, 신선대의 바위 군이 빛나고 있다.그리고 남쪽으로 코끼리바위 뒤로 불암산이 솟아있고, 북쪽 능선 너머 의정부 천보산과 불곡산의 두 봉우리가 우뚝하다. 큰 바위 밑에 자리한 정상석은 너무 작고오가는 사람들의 발길속에 사진조차 남기기 어렵다

        정상은 사람들로 오르내리기가 어려워뒤쪽으로 돌아가본다바위구멍을 통해 바라보는 정상의 모습도 이색적인 볼거리다. 수락산은 은둔의 산이다. 매월당 김시습이 숨어든 곳이 석림사 계곡이다서울에서 좀 떨어져 있어 조용히 숨어 지내기 좋은 곳이지만 이젠 옛말이 되고 말았다

      13:35 이정표

        청학동 마당바위 부근 계곡이 수락산의 절경중 백미라 할 수 있다. 산이 하얀 화강암 바위로 덮이고, 석벽과 암반으로 둘러싸인 수락폭포 계곡 은류, 금류폭포가 나온다. 도솔봉 5거리부터 홈통바위(기차바위) 근처까지는 수락산을 산행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거치는 코스로 휴일에는 아주 많이 붐비는 암릉길이다

        이 길을 지나면서 보면 앞으로 서울의 북부가 거의 다 조망이되고, 덕소를 지나 팔당대교, 남산, 관악산이 아스라이 보이고, 가까이로는 불암산, 의정부, 남양주시, 북한산, 도봉산, 사패산, 불국산 등이 조망되는 경치 좋은 능선길이다,

        거대한 바위가 가로막고 있는 갈림길에서우측으로 돌아나가면수락산장, 석림사, 산지정화감시초소로 내려가는 안내판이 있다 /기차바위0.3km,산지정화감시초소1.5km,정상0.15km

      13:45 기차바위

        홈통바위 위험구간 우회로... 직진하여 홈통바위를 타고 내려선다막상 기차바위 위에 서니 가파르기는 해도 홈통으로 된 바위 양쪽으로 두 개의 로프가 걸려 있어 위험하지는 않다.

        뒤로 돌아서서 로프를 다리 사이에 끼고 뒷걸음질로 내려가기 시작하지만이건 경치를 제대로 볼수가 없다 그냥 바위벽을 딛는다 밑에서는 오르려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그리고 사진촬영...

        아직 끝난게 아니다홈통바위를 쉽게 내려서면 다시 이어지는 로프길올라오는 단체등산객이 수시로 지나가 발걸음을 멈추고 이들을 통과시켜주느라 지체된다.

      13:55 장암역 갈림길

        석림사는 신라의 절터로 박세당이 중창, 6.25동란에 소실되어 다시 지은 것이다. 이 아래에 숙종 때 학자인 박세당의 묘소와 영정각,궤산정, 매월당 숭모비가 있다. 궤산정자 바위 밑에 새겨진 글씨, 서계유거(서계(박세당가 한가히 산다),취승대, 석천동이 암각되어 있고 박세당의 둘째아들인 박태보의 위패를 모신 노강서원도 근처에 있다. /동막골2.9km, 신설로

      14:05 이정표

        가파른 내리막 등산로선행하는 등산객들을 앞지르며 진행한다. 이곳부터는 오르며 내리는 등산객을 볼 수가 없는 한적함이 시작되고... /동막골2.7km,정상1.3km

      14:30 도정봉(524봉)

        뒤돌아보면 큰 암벽인 지나온 기차바위가 매우 가팔라 보인다바위 아래위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과두줄기 로프에는 개미처럼 매달렸다천막이 있는 매점 사방의 조망이 매우 좋다. 하산 길은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14:35 십자로

        급한 내리막길에 매여진 밧줄을 따라. 미끄러운 바닥을 조심스레 한참을 내려서며 갈림길 안내이정목을 지난다. 안부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만가대라는 곳으로 가게 된다./기차바위2.3km, 만가대1.1km, 도정봉,

        올라서는 길에 만나는 암릉에서 잠시 휴식건너로 도정봉의 모습과수락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뚜렸하다

      14:40 509삼거리

        매점이 있고 동막골로 내려가는 암릉길이 바로 밑에 펼쳐진다삼거리에서 용현동으로 내려가는 우측길을 버리고 동막골로 내려가는 좌측길로 내려선다.

      15:00 425암릉

        다시 내리막... 참호를 지나고 짧은 밧줄구간을 지나 장암주공아파트 방향으로 내려선다. 다시 밧줄이 길게 걸린 바위s작은 봉우리를 내려서서 한적한 넓은 등산로를 따르면멀리 차량들이 질주하며 울리는 굉음이 들려온다.후미를 기다리며 휴식

      15:40 동막골 굴다리

        날머리에서 굴다리를 통과한 후에 회룡역 쪽으로 내려가지 않고 우측에 보이는 계단으로 올라가서 보도를 따라 걸어가니 장암주공아파트 앞 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암릉을 오르내리는 힘든 산행길을 따라하루를 넘긴다

      * 수락산(638m)

        산행하기에 알맞은 높이로 인근 주민들이 쉽게 찾고 있는 산이다. 화강암의 암벽이 노출되어 있으나 산세는 험하지 않고, 남쪽에 있는 불암산으로 능선이 이어진다. 동쪽에 금류계곡이 있다. 서쪽 비탈면에 쌍암사,석림사, 남쪽 비탈면에 계림암,흥국사, 동쪽 비탈면에 내원암이 있고, 내원암의 법당 뒤에는 고려시대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2m의 석조미륵입상이 있다. 1996년 시민 휴식공간 확충을 위해 삼림욕장이 조성되었다. 불암산과 잇닿은 쪽의 능선에는 봄이면 철쭉이 만발해 산행이 더욱 즐겁다. 수락계곡과 노원골 일대 11km 산책로는 삼림욕하기에 좋은 곳이다. 산 전체가 화강암과 모래로 이루어져 있고 기암 괴석과 샘, 폭포가 많은 반면 나무는 매우 적다. 산의 분위기가 다소 삭막하기는 하나 바위의 경치가 뛰어나고 곳곳에 맑은 물이 흘러내린다. 수락 8경이라 불리는 금류폭, 은류폭, 옥류폭포와 신라 때의 흥국사, 조선 때의 내원암이 있다. 산길이 험하지 않고 비교적 교통이 편리해서 휴일이면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또한 산세가 웅장할 뿐만 아니라 산 전체가 석벽과 암반으로 되어 있어 도처에 기암괴석이 즐비하다. 서울 근교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수락산에 오르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은데 주저하는 이유는 산의 아름다운 경치 대부분이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이름난 유원지는 서울의 반대편에 있고, 부근에 있는 벽운동 유원지는 주변의 도봉산과 북한산에 눌리는 형편인 것이다.
      * 수락산의 전설
        수락산이라는 명칭에는 몇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위가 벽을 둘러치고 있어 물이 떨어지므로(水落) 이름하였다는 설과, 산봉우리 형상이 마치 목이 떨어져 나간 모습(首落)과 같다하여 이름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아들 `수락이를 찾는 사냥꾼의 애틋한 부정이 서려있기에 이름 지어졌다고 합니다. 수락산 갈울마을에 사냥꾼 부부가 살았습니다. 이들은 비록 가난했지만 마음은 항상 넉넉하여 서로를 아끼며 사랑했습니다. 남편이 뒷산으로 사냥을 가면 아내는 칡덩굴 우거진 언덕배기를 열심히 일구어 감자,고구마,콩을 심으며 잠시도 일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저녁이면 호롱불 아래서 그날 있었던 일을 정답게 주고받으며 하루의 피곤함을 잊곤 했습니다. 그런데 이들 부부에게는 근심거리가 하나 있었습니다. 결혼한 지 십여 년이 되어가지만 아이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새벽마다 정화수를 떠다 놓고 신령님께 간절히 빌었습니다. 사냥꾼 부부의 지극 정성에 하늘이 감동했던지 드디어 아내의 몸에 태기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고, 아내를 위한 남편의 보살핌은 대단했습니다. 사냥을 나가지 않는 날이면 집 주변을 말끔히 치워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물항아리에 물을 가득 길어다 주며 아내를 도왔습니다. 또한 밤이면 새로 태어날 아이 이야기를 하며 시간가는 줄 몰랐습니다. 날이 갈수록 배가 불러오는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은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했습니다. 드디어 온 산에 진달래가 사태를 이루던 어느 날, 사냥꾼의 아내는 심한 산기를 느꼈습니다. 사냥꾼은 처음 당하는 일이라 몹시 당황했지만 부리나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물을 끓이며, 아기 받을 준비를 했습니다. 아내의 진통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며 얼굴에서는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습니다. 사냥꾼은 더욱 초조해졌습니다. 으……으, 아이고……차츰 아내는 기진맥진 하고 남편의 말소리조차 알아듣지 못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아내는 감았던 눈을 한번씩 힘겹게 뜨곤 할 뿐이었습니다. 아…… 아……아내의 비명소리와 함께, 우렁찬 사내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사냥꾼은 기쁨에 들떠서 아기와 아내를 번갈아 보며 어쩔 줄 몰랐습니다. 그러나 심한 출혈 끝에 아기를 낳은 사냥꾼의 아내는 남편의 극진한 간호도 허사로, 삼일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사냥꾼은 세상을 다 잃은 듯 했지만, 그의 품에서 쌔근쌔근 잠든 아들의 모습을 보며 시름을 달랬습니다. 사냥꾼은 아들 이름을 수락이라고 지었습니다. 엄마는 없지만 수락산의 깊고 넓은 계곡이 엄마 품과 다름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락이는 무럭무럭 잘 자랐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의 품에서 젖을 얻어 먹고 자랐지만, 배가 고파서 우는 소리가 사립문 밖을 나오지 않았고, 사냥꾼 아버지를 닮아 체질적으로 건강했습니다. 수락이는 얼굴조차 모르는 어머니를 그리워하기 보다는 아버지를 한없이 따랐습니다. 사냥꾼의 아들답게 여섯 살 때는 집 근처를 뛰어다니는 토끼도 잡았고, 장에 간 아버지가 늦게 오는 날이면 동구 밖으로 마중도 나가곤 했습니다. 사냥꾼은 늠름하고 자상한 아들의 모습을 보며 아내에 대한 그리움도 차츰 잊을 수 있었습니다. 수락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갈울마을에 호랑이가 자주 나타나 사람들은 불안하게 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머리를 맞대고 호랑이를 잡을 궁리를 했지만 대책은 없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근심은 깊어만 갔습니다. 어떻게 하면 호환을 막지?누가 호랑이를 잡을 수 있다면…… 이제는 나다니는 것조차 겁이 나……동냥젖을 먹이며 어미 없는 수락이를 키운 사냥꾼으로서는 이 기회에 마을 사람들에게 진 마음의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냥꾼은 그가 돌아올 때까지 수락이를 맡아줄 집을 물색하며 호랑이 사냥을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을 알아차린 수락이는 아버지와 함께 사냥 길에 나서겠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수락아, 호랑이 사냥은 아주 위험한 일이란다.그러면 아버지는 왜 그렇게 위험한 일을 혼자서 하시려고 해요? 나는 이 마을 최고의 사냥꾼이 아니냐?저는 그 사냥꾼의 하나 뿐인 아들입니다.그래도 아직은 어린 나이다.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아버지가 그렇게 위험한 사냥을 나서는데, 하나 뿐인 아들이 어찌 편안하게 남의 집에서 지내겠습니까? 사냥꾼은 끈기있게 수락이를 설득했으나 그럴수록 그는 더욱 집요하게 아버지를 졸랐습니다. 결국 사냥꾼은 아들과 함께 호랑이 사냥을 나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냥을 나서던 날은 날씨마저 쾌청했습니다. 동네사람들은 사냥꾼 부자가 꼭 호랑이를 잡아오기를 바라며 그들을 떠나보냈습니다. 특히 갓난아이 적부터 수락이를 품에 안고 젖을 먹여주었던 버들이네는 수락이를 위해 미숫가루와 찰떡도 싸주었습니다. 며칠을 수락이와 함께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찾아다녔건만 호랑이의 흔적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그들은 호랑이 사냥에 대한 긴장감은 풀어지고 마치 소풍을 나온 사람들처럼 즐거웠습니다. 아버지, 저기……저 오리바위 아래가 어머니 산소지요?어디 보자. 으…… 음 그렇구나.벽운계곡을 내려다보는 사냥꾼의 얼굴에는 쓸쓸한 그림자가 드리웠습니다. 아침부터 상투봉 부근에서 호랑이의 발자국을 찾아낸 아버지와 아들은 바짝 긴장함과 동시에 몸은 분주해졌습니다. 바람결에 부스럭거리는 갈참나무잎 소리에도 머리끝이 쭈뼛쭈뼛했고 날개짓하며 날아가는 솔부엉이를 항해 활시위를 당기기도 했습니다. 점심 때가 지나자 삿갓봉,감투봉,고식봉에 길게 걸려 있던 구름이 모여들면서 사방은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나기가 올 기미가 분명했습니다. 숲 속의 산새들도 부산을 떨며 어디론가 날아가고 떡갈나무 잎사귀에는 이미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사냥꾼과 수락이는 재빨리 물개바위 쪽으로 향했습니다. 그 근방에는 비를 피하기 적합한 바위들이 여럿 있기 때문입니다. 차츰 빗방울은 굵어졌고 수시로 으르렁대는 천둥소리에 그들은 걸음을 더욱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물개바위를 눈앞에 두고 더 이상 비를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허겁지겁 비를 피해 들어간 바위 굴은 밖에서 보던 것과 달리 넓고 아늑했습니다. 사냥꾼과 수락이는 비에 젖은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며 한동안 웃음을 참지 못했습니다. 사냥꾼도 수락이가 아들이라기 보다는 사냥의 든든한 동반자로 느껴졌습니다. 아침도 변변히 먹지 못하고 한나절을 쫓아다닌 탓에 그들은 그제야 시장기를 느꼈습니다. 사냥을 떠날 때 버들이네가 싸준 미숫가루와 몇 덩이 남아 있는 찰떡으로 허기를 면하자 수락이는 눈꺼풀이 자꾸 무거워졌습니다. 바깥은 앞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고, 사냥꾼은 이미 요란하게 코를 골고 있었습니다. 얼마가 지났을까. 주변이 조용해서 보니 굴 속으로 한줄기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덩달아 향긋한 풀꽃향도 따라 들어왔습니다. 사냥꾼은 모처럼 즐긴 단잠에서 깨어나 행복에 겨운 목소리로 아들을 불렀습니다. 수……락아. 내 아들…………어이 장군, 그만 일어납시다.……수락아… 수락아…사냥꾼은 몇 번씩이나 아들의 이름을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었습니다. 놀라 바깥으로 뛰쳐나가 목청껏 아들을 불렀습니다. 온 산에 수락아 수락아 메아리만 쳤을 뿐 대답은 없었습니다. 비가 멎기를 기다리며 잠이 든 사이 호랑이가 수락이를 물고 가버린 뒤였습니다. 사냥꾼은 미친 듯이 산 속을 헤매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 바위 아래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 뒤로 비만 오면 산에서 `수락아` 수락아 하는 소리가 들리므로 산 이름을 수락산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노원구청 문화공보실>

      '산들이야기 > 산행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주 치악산  (0) 2010.02.06
      보은 속리산  (0) 2010.02.06
      강화 마니산  (0) 2010.02.06
      완주 대둔산  (0) 2010.02.06
      대구 팔공산  (0) 2010.02.06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