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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고사성어 100개
비공개 조회수 68,235 작성일2011.07.22

고사성어 100개와

속뜻과 겉뜻좀 써주세요

제발요~`

방학숙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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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해랑
우주신
전통 예절, 의식 13위, 음식, 식재료 23위, 세시풍속, 명절 3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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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입니다.

 

뜻(겉뜻, 속뜻)을 포함한 고사성어 100개를 알려달라고 하였는데.. 

 

음, 겉뜻, 속뜻은 물론 유래를 포함한 고사성어 133개를(사자성어 112개) 

올리겠으니 참고바랍니다.

 

고사성어들 유래까지 포함되기에 전체적으로 내용이 좀 긴데요.

유래라든지 100개 넘는 부분에 대해서는 질문자 학생이 편한대로 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망운지정 / 望雲之情  望 바랄 망 雲 구름 운 之 갈 지 情 뜻 정

 

겉뜻 : 구름을 바라보는 뜻
속뜻 : 자식이 객지에서 고향에 계신 어버이를 생각하는 마음

 

유래 : 당(唐)나라「적인걸(狄仁傑)이 병주 법조참군(幷州法曹參軍)에 있을 때 그 어버이는 하양(河陽) 땅 별업(別業)에 계신데, 인걸이 태행산(太行山)에 올라 반복하여 돌아보면서 흰 구름이 외롭게 나는 먼 곳을 좌우 사람에게 일러 말하되 "내 어버이가 저 구름이 나는 아래에 계신데, 멀리 바라만 보고 가서 뵙지 못하여 슬퍼함이 오래되었다." 하고 구름이 옮겨 간 뒤에 이에 산에서 내려왔다.

 

 

개과천선 / 改過遷善  改 고칠 개 過 지날 과 遷 옮길 천 善 착할 선

 

겉뜻 : 지난 허물을 고치고 착하게 됨.

속뜻 : 지난 허물을 고처서 착한 인품을 기름.
 
유래 : 진(晉) 혜제(惠帝) 때 주처(周處)라는 사람은 어릴 적에 방탕한 생활을 하다 철이 들어 새 사람이 되고자 하였으나 사람들이 믿지 않았다. 이에 동오(東吳)에 가서 학자 육기(陸機)를 만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자 육기는, “굳은 의지를 지니고 지난날의 과오를 고쳐서 새사람이 된다는 개과천선(改過遷善)이면 자네의 앞날은 무한하네”라고 하였다. 이후 10년간 학문에 정진한 주처는 마침내 학자로서 입신양명하였다.

 

 

관포지교 / 管鮑之交  管 대롱 관 鮑 절인 물고기 포 之 갈 지 交 사귈 교

 

겉뜻: 옛날 중국의 관중과 포숙처럼 친구 사이가 다정함을 이르는 말,

속뜻: 친구 사이의 매우 다정하고 허물없는 교제

유래 : 관중과 포숙은 죽마고우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어려서부터 포숙아는 관중의 범상치 않은 재능을 간파하고 있었으며, 관중은 포숙아를 이해하고 불평 한마디 없이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다. 두 사람은 벼슬길에 올라 관중은 공자(公子) 규(糾)를 섬기게 되고 포숙아는 규의 아우 소백(小白)을 섬기게 되었다. 그런데 얼마 안가서 두 공자는 왕위를 둘러싸고 격렬히 대립하게 되어 관중과 포숙아는 본의 아니게 적이 되었다. 이 싸움에서 소백이 승리했다. 그는 제나라의 새 군주가 되어 환공(桓公)이라 일컫고, 형 규를 죽이고 그 측근이었던 관중도 죽이려 했다. 그때 포숙아가 환공에게 진언했다. "관중의 재능은 신보다 몇 갑절 낫습니다. 제나라만 다스리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신으로도 충분합니다만 천하를 다스리고자 하신다면 관중을 기용하셔야 하옵니다." 환공은 포숙아의 진언을 받아들여 관중을 대부(大夫)로 중용하고 정사(政事)를 맡겼다. 재상(宰相)이 된 관중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마음껏 수완을 발휘해 환공으로 하여금 춘추(春秋)의 패자(覇者)로 군림하게 했다. 성공한 후 관중은 포숙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내가 젊고 가난했을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하면서 언제나 그보다 더 많은 이득을 취했다. 그러나 포숙은 나에게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또 몇 번씩 벼슬에 나갔으나 그때마다 쫓겨났다. 그래도 그는 나를 무능하다고 흉보지 않았다. 내게 아직 운이 안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싸움터에서 도망쳐 온 적도 있으나 그는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나에게 늙은 어머니가 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공자 규가 후계자 싸움에서 패하여 동료 소홀(召忽)은 싸움에서 죽고 나는 묶이는 치욕을 당했지만 그는 나를 염치없다고 비웃지 않았다. 내가 작은 일에 부끄러워하기 보다 공명을 천하에 알리지 못함을 부끄러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진정으로 알아준 사람을 포숙아다."

 

 

문경지교 / 刎頸之交  刎 목 벨 문 頸 목 경 之 갈 지 交 사귈 교

 

겉뜻 : 목을 벨 수 있는 벗이라는 뜻

속뜻 :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벗

 

유래 : 전국시대(戰國時代) 趙(조)의 혜문왕(惠文王) 때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가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큰공을 세웠지만 환관 무현(武賢)의 식객에 불과했던 인상여를 경대부(卿大夫)에 임명하자 염파는 불만이 대단하였다. 그래서 인상여를 만 나면 망신을 주리라 생각하였다. 그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염파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피하니 부하들이"왜 그렇게 염장군을 두려워합니까?"라고 물으니 인상여가"秦(진)나라가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 염장군이 있기 때문이다. 우 리 둘이 서로 헐뜯고 싸운다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염파는 그 이야기를 전해듣고「염파가 옷을 벗어 살을 드러내고 곤장을 지고 인상 여의 집에 이르러 사죄하며 말하기를"비천한 사람이 장군의 너그러움이 이와 같음을 알지 못했다"라고 하였다. 마침내 인상여와 염파가 문경지우가 되었다. 廉頗(염파)가 肉袒負荊(육단부형)하고 至門(지문)하여 謝罪曰(사죄왈) 鄙賤之人(비천지인)이 不知將軍寬之如此(부지장군관지여차)라. 卒(졸) 相與驩(상여환)이 爲刎頸之友(위문경지우)하다.

 

 

수어지교 / 水魚之交  水물 수 魚물고기 어 之어조사 지 交사귈 교

 

겉뜻 : 물과 물고기의 사귐.

속뜻 : 임금과 신하 사이의 두터운 교분. 부부의 친밀함. 아주 친밀하여 떨어질 수 없는 사이.

 

유래 : 유비에게는 관우와 장비와 같은 용장이 있었지만, 천하의 계교를 세울 만한 지략이 뛰어난 모사(謀士)가 없었다. 이러한 때에 제갈공명(諸葛孔明)과 같은 사람을 얻었으므로, 유비의 기쁨은 몹시 컸다. 그리고 제갈공명이 금후에 취해야 할 방침으로, 형주(荊州)와 익주(益州)를 눌러서 그 곳을 근거지로 할 것과 서쪽과 남쪽의 이민족을 어루만져 뒤의 근심을 끊을 것과 내정을 다스려 부국강병(富國强兵)의 실리를 올릴 것과, 손권과 결탁하여 조조를 고립시킨 후 시기를 보아 조조를 토벌할 것 등의 천하 평정의 계책을 말하자 유비는 그 계책에 전적으로 찬성하여 그 실현에 힘을 다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유비는 제갈공명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게 되어 두 사람의 교분은 날이 갈수록 친밀해졌다. 그러자 관우나 장비는 불만을 품게 되었다. 새로 들어온 젊은 제갈공명(이 때 공명의 나이는 28세)만 중하게 여기고 자기들은 가볍게 취급받는 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이 이리 되자 유비는 관우와 장비 등을 위로하여 이렇게 말했다. "내가 제갈공명을 얻은 것은 마치 물고기가 물을 얻은 것과 같다. 즉 나와 제갈공명은 물고기와 물과 같은 사이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이렇게 말하자, 관우와 장비 등은 더 이상 불만을 표시하지 않게 되었다.

 

 

금란지교 / 金蘭之交  金 쇠 금 蘭 난초 란(난) 之 갈 지 交 사귈 교

 

겉뜻 : 단단하기가 황금과 같고 아름답기가 난초 향기와 같은 사귐이라는 뜻

속뜻 : 두 사람간에 서로 마음이 맞고 교분이 두터워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해 나갈 만큼 우정이 깊은 사귐을 이르는 말

 

유래 : 사람들과 한가지로 하여 먼저는 울부짖고 뒤에는 웃는다." 공자는 말씀하셨다. "군자의 도는 혹은 나가 벼슬하고 혹은 물러나 집에 있으며 혹은 침묵을 지키지만 혹은 크게 말한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하나로 하면 그 날카로움이 쇠를 끊고 마음 을 하나로 하여 말하면 그 향기가 난초와 같다." 몹시 친밀한 사이를 금란지교(金蘭之交)라고 말하는 것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죽마고우 / 竹馬故友  竹 대 죽 馬 말 마 故 연고 고 友 벗 우

 

겉뜻 : 대나무 말을 타고 놀던 옛 친구라는 뜻

속뜻 : 어릴 때부터 가까이 지내며 자란 친구를 이르는 말

유래 : 진(秦)나라 12대 황제(皇帝)인 간문제 때의 일이다. 촉 땅을 평정하고 돌아온 환온의 세력이 날로 커지자 간문제는 환온을 견제하기 위해 은호라는 은사를 건무장군 양주지사에 임명했다. 그는 환온의 어릴 때 친구로서 학식과 재능이 뛰어난 인재였다. 은호가 벼슬길에 나아가는 그날부터 두 사람은 정적이 되어 반목했다. 왕희지가 화해시키려고 했으나 은호가 듣지 않았다. 그 무렵, 오호 십육국 중 하나인 후조의 왕석계룡이 죽고 호족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자 진(秦)나라에서는 이 기회에 중원 땅을 회복하기 위해 은호를 중원장군에 임명했다. 은호는 군사를 이끌고 출병했으나 도중에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제대로 싸우지도 못하고 결국 대패하고 돌아왔다. 환온은 기다렸다는 듯이 은호를 규탄하는 상소를 올려 그를 변방으로 귀양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환온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은호는 나와 '어릴 때 같이 죽마를 타고 놀던 친구' 였지만 내가 죽마를 버리면 은호가 늘 가져가곤 했지. 그러니 그가 내 밑에서 머리를 숙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환온이 끝까지 용서해 주지 않음으로 해서 은호는 결국 변방의 귀양지에서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막역지우 / 莫逆之友  莫 없을 막 逆 거스릴 역 之 갈 지 友 벗 우

 

겉뜻 : 서로 거스르지 않는 친구라는 뜻

속뜻 : 아무 허물없이 친한 친구를 가리키는 말

 

유래 :《장자(莊子)》 내편(內篇) 대종사(大宗師)에 보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내용의 우화가 나온다. 이 우화는 둘 다 바깥의 사물에 얽매이지 말고 천리(天理)를 좇아 마음을 비우라는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으로, 그 도입부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도 물론 가공 인물이다.

‘어느 날 자사(子祀)·자여(子輿)·자려(子) ·자래(子來) 네 사람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가 능히 없는 것으로써 머리를 삼고, 삶으로써 척추를 삼고, 죽음으로써 엉덩이를 삼겠는가. 누가 생사존망(生死存亡)이 일체임을 알겠는가. 내 이런 사람과 벗이 되리라.” 네 사람이 서로 보며 웃고 마음에 거슬리는 게 없어서 마침내 서로 벗이 되었다(四人 相視而笑 莫逆於心 遂相與爲友).’ 그 뒤로 이들이 병이 들고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초연한 모습이 이어진다.

또다른 이야기를 보면, ‘어느 날 자상호(子桑戶)·맹자반(孟子反)·자금장(子琴張) 세 사람이 서로 더불어 말하였다. “누가 능히 서로 사귀는 게 아니면서도 서로 사귀고, 서로 돕는 것이 아니면서도 서로 도울 수 있을까. 누가 능히 하늘에 올라 안개 속에서 놀고 끝이 없는 곳(無極)에서 자유롭게 다니며, 서로 삶도 잊은 채 다함이 없을 수 있겠는가” 세 사람이 서로 보며 웃고 마음에 거슬리는 데가 없어 마침내 서로 벗이 되었다.’ 그 뒤는 자상호의 장례에 공자와 자공을 내세워 예로써 마음을 가두려는 것을 비웃고 있다.

이와 같이 막역지우란 본래 천지의 참된 도를 깨달아 사물에 얽매이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 간의 교류를 뜻하는 것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서로 허물없는 친구 사이를 모두 가리키게 되었다.

 

 

가인박명 / 佳人薄命  아름다울 가 사람 인 엷을 박 목숨 명

 

겉뜻 : 아름다운 사람은 명이 짧다.

속뜻 : 여자의 용모가 너무 아름다우면 운명이 기박하고 명이 짧다.
 
유래 : 미인은 불행한 일이 따르기 쉽고 요절(夭折)하기 쉽다는 말이다. 이 말은 소식이 양주 지방의 장관으로 있을 때 30세가 넘은 아름다운 여승의 파란만장한 삶을 유추하여 지은 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자고로 아름다운 여인은 명이 짧은 경우가 많도다[自古佳人多薄命]”에서 유래한다. 양귀비가 안록산의 난 중 군인들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것이 그 예라고 하겠다. 그 이외에도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요절했을 때도 이런 말을 사용하고는 한다.
 
 
경국지색 / 傾國之色  傾 기울 경 國 나라 국 之 갈 지 色 빛 색
 
겉뜻 : 나라를 기울일 만한 여자
속뜻 : 첫눈에 반할 만큼 매우 아름다운 여자
 
유럐 : 중국 한무제(漢武帝) 때 협률도위(協律都尉)로 있던 이연년(李延年)은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북쪽에 어여쁜 사람이 있어 세상에서 떨어져 홀로 서 있네. 한 번 돌아보면 성을 위태롭게 하고 두 번 돌아보면 나라를 위태롭게 한다. 어찌 경성이 위태로워지고 나라가 위태로워지는 것을 모르리요만 어여쁜 사람은 다시 얻기 어렵도다” 이는 절세가인인 자기 여동생을 자랑하려는 것이었고, 이에 입궁한 여동생은 한무제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명경지수 / 明鏡止水  明 밝을 명 鏡 거울 경 止 그칠 지 水 물 수
 
겉뜻 : 맑은 거울과 고요한 물이라는 뜻
속뜻 : 사념이 전혀 없는 깨끗한 마음을 비유(比喩)해 이르는 말
 
유래 : 형벌로 다리가 잘린 왕태(王駘)는 문하생(門下生)이 공자(孔子)의 문하생에 필적할 만큼 많았는 데, 상계(商季)가 그것을 불만스럽게 여겨 공자(孔子)에게 물었다. "왕태는 자기 몸을 닦고 자신의 지혜로 마음의 본체를 깨달은 것뿐이어서 자기를 위한 수행이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닌데 어찌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듭니까?"공자(孔子) 왈(曰) "사람은 흐르는 물을 거울로 삼지 않고 고요한 물을 거울 삼는다."
 
 

새옹지마 / 塞翁之馬  塞 변방 새 翁 늙은이 옹 之 갈 지 馬 말 마

 

겉뜻 : 변방에 사는 노인의 말이라는 뜻

속뜻 : ①세상만사는 변화가 많아 어느 것이 화가 되고, 어느 것이 복이 될지 예측하기 어려워 재앙도 슬퍼할 게 못되고 복도 기뻐할 것이 아님을 이르는 말

②인생의 길흉화복은 늘 바뀌어 변화가 많음을 이르는 말

 

유래 : 옛날 중국의 북쪽 변방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이 노인이 기르던 말이 멀리 달아나 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인은 "오히려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라고 말했다.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그 말이 한 필의 준마(駿馬)를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축하하자 노인은 "도리어 화가 될는지 누가 알겠소." 라며 불안해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말타기를 좋아하는 노인의 아들이 그 준마를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걱정하며 위로하자 노인은 "이것이 또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라며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마을 젊은이들은 싸움터로 불려 나가 대부분 죽었으나, 노인의 아들은 말에서 떨어진 후 절름발이였기 때문에 전쟁에 나가지 않아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계란유골 / 鷄卵有骨  鷄 닭 계 卵 알 란(난) 有 있을 유 骨 뼈 골

 

겉뜻 : 계란에도 뼈가 있다는 속담

속뜻 : 복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기회를 만나도 덕을 못 본다는 말

 

유래 : 조선(朝鮮) 초기에 대신 黃喜(황희)가 집이 가난하므로 임금의 명령으로 하루 동안 남대문으로 들어오는 상품은 모두 황희의 집으로 보내라 했으나, 이 날은 종일 비가 와서 아무 것도 들어오는 물건이 없다가 저녁 때 달걀 한 꾸러미가 들어왔는데, 달걀을 삶아 놓고 보니 모두 곯아서 먹을 수가 없었다는 데서 나온 말. 곯았다는 '곯'음과 骨(골)의 음이 비슷하므로 와전되어 계란유골이란 말로 바뀜

 
 

함흥차사 / 咸興差使  咸 다 함 興 일 흥 差 다를 차 使 하여금 사

 

겉뜻 : 함흥으로 간 심부름꾼

속뜻 : 심부름꾼이 가서 소식이 없거나, 또는 회답(回答)이 더딜 때의 비유

 

유래 : 이조 초 함흥으로 간 태조를 모셔 오기 위해서 보낸 使臣(사신). 1398년 (태조 7) 세자 芳碩(방석)이 왕자의 亂(난)으로 죽은 뒤 태조는 정치에 뜻이 없어 王位(왕위)를 定宗(정종)에게 물려주고 고향인 함흥으로 갔다. 태종이 즉위하여 성석린(成石璘)을 보내어 일단 서울로 돌아왔으나, 1402년(태종 2)에 다시 北東(북동) 방면으로 간 채 돌아오지 않으므로 왕이 差使(차사)를 보냈으나 차사도 돌아오지 않아 이 때부터 갔다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함흥차사'라 부르게 되었다. 일설에는 차사를 모두 태조가 죽인 것이라 하나 문헌에는 朴淳(박순)의 희생만이 알려져 있고 그 후 여러 차례의 간청에도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다가 師父(사부) 無學大師(무학대사)가 가서 겨우 서울로 오게 하였다.

 

 

타산지석 / 他山之石  他 다를 타 山 뫼 산 之 갈 지 石 돌 석

 

겉뜻 : 다른 산의 돌이라는 뜻

속뜻 : 다른 산에서 나는 거칠고 나쁜 돌이라도 숫돌로 쓰면 자기의 옥을 갈 수가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이라도 자기(自己)의 지덕을 닦는 데 도움이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

 

유래 : 이 말은 '『시경(詩經)』, 소아편 학명(鶴鳴)'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시의 한 구절이다. 즐거운 저 동산에는 (樂彼之園 낙피지원)) 박달나무 심겨 있고(爰有樹檀 원유수단) 그 밑에는 닥나무 있네 (其下維穀 기하유곡) 다른 산의 돌이라도 (他山之石 타산지석) 이로써 옥을 갈 수 있네 (可以攻玉 가이공옥) 돌을 소인에 비유하고 옥을 군자에 비유하여 군자도 소인에 의해 수양과 학덕을 쌓아 나갈 수 있음을 이르는 말.

 
 

다다익선 / 多多益善  多 많을 다 多 많을 다 益 더할 익 善 착할 선

 

겉뜻 :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

속뜻 : 많이 보태지면 힘이 더 난다.

 

유래 : 漢(한)나라 유방(劉邦)이 천하통일 후 한신(韓信)을 楚(초)왕으로 임명하고, 한신에게「임금이 묻기를 "나는 얼마쯤의 군사를 거느릴 수 있느냐? " 한신이 대 답하기를 "폐하께서는 10만의 군사를 거느리는 데에 불과합니다." 임금이 가로되 "그대는 얼마쯤인가?" 한신이 대답하기를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습니다." <上問曰(상문왈) 如我能將幾何(여아능장기하)오하니 信曰(신왈) 陛下不過能將十萬(폐하불과능장십만)이니다. 上曰(상왈) 於君何如(어군하여)오 曰(왈) 臣多多益善耳(신다다익선이)니이다.>」 유방이 웃으면서"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하는 사람이 어째서 10만의 장군에 불과한 나에게 포로가 되었느냐?"하니 한신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는 장군의 능력은 없지만 장군을 통솔하는 폐하의 능력은 하늘이 주신 것이므로 도저히 사람의 능력으로는 논할 수 없는 것입니다,

  

 
문정성시 / 門前成市  門 문 문 前 앞 전 成 이룰 성 市 저자 시

 

겉뜻 : 대문(大門) 앞이 저자를 이룬다는 뜻

속뜻 : 세도가(勢道家)나 부잣집 문 앞이 방문객(訪問客)으로 저자(市)를 이루다시피 함을 이르는 말

 

유래 : 漢(한)나라 애제(哀帝)는 약관(弱冠)의 나이로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외척이 정권을 쥐고 있어 꼭두각시에 불과했지만 그에게는 정숭(鄭崇)이라는 어진 신하(臣下)가 있었다. 처음엔 정숭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나 외척들의 저항이 점점 거세 지자 귀찮아하면서 만나주지 않았다. 그 틈에 간신들이 기회를 잡고 그를 모함 하니,「임금이 정숭을 꾸짖기를 그대의 집은 시장과 같다고 하니 어찌하여 짐(朕)과의 관계(關係)를 금하여 깨려 하는가? 하니 정숭이 대답(對答)하여 말하기를 신의 집은 시장과 같으나 신의 마음은 물과 같습니다.<上責崇曰(상책숭왈) 君門如市(군문여시)이라하니 何(하) 以欲禁切主上(이욕금절주상)이리오하니 崇對曰(숭대왈) 臣門如市(신문여시)이나 臣心如水(신심여수)이니다.>」라고 대답(對答)했 다. 그러나 애제는 정숭의 말을 믿지 않고 감옥에 가두어 결국 옥사하고 말았다.

 

 

괄목상대 / 刮目相對  刮 긁을 괄 目 눈 목 相 서로 상 對 대할 대

 

겉뜻 : 눈을 비비고 다시 보며 상대를 대(對)한다는 뜻

속뜻 : 다른 사람의 학식이나 업적이 크게 진보한 것을 말함

 

유래 : 삼국(三國)이 서로 대립하고 있을 당시 오(吳)나라 손권(孫權)의 부하 중에 여몽(呂蒙)이라는 장수가 있었다. 졸병에서 전쟁의 공으로 장군까지 된 여몽이었으나 무식했다. 그러나 손권은 그가 이론적인 병법까지 알기를 원해서 학문(學問)을 깨우치도록 충고를 했다. 이때부터 그는 전장(戰場)에서도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공부했다. 얼마 후 뛰어난 학식을 가진 노숙이 여몽과 의논할 일이 있어 찾아갔다. 노숙은 여몽과 막역한 친구(親舊)여서 여몽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그의 박식함에 깜짝 놀라면서 "이 사람 언제 그렇게 공부했나? 이제 오나라 있을 때 여몽이 아닐세..." 그러자 여몽은 이렇게 대꾸했다. "선비가 헤어진 지 사흘이 지나면 눈을 비비고 다시 대해야 할 정도로 달라져 있어야 하는 법이라네."라고 했다.

  

 

군계일학 / 群鷄一鶴  君 무리 군 鷄 닭 계  一 한 일 鶴 학 학

 

겉뜻 : 닭의 무리 속에 한 마리의 학이라는 뜻

속뜻 : 여러 평범 한 사람들 가운데 뛰어난 한 사람이 섞여 있음의 비유.

 

유래 : 위진(魏晉)시대, 완적(阮籍), 완함(阮咸), 혜강(瑞康), 산도(山濤), 왕융(王戎) , 유령(劉伶), 상수(尙秀) 곧 죽림 칠현(竹林七賢)으로 불리는 일곱 명의 선비 가 있었다. 이들은 종종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북동부에 있는 죽림에 모여 노장(老莊)의 허무 사상을 바탕으로 한 청담(淸談)을 즐겨 담론했다. 그런데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위(魏)의 중산대부(中散大夫)로 있던 혜강(瑞康) 이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처형당했다. 그때 혜강에게는 나이 열 살 밖에 안되는 아들 혜소(瑞紹:? ∼304)가 있었다. 혜소가 성장하자 당시 죽림칠현의 한 사람으로 이부(吏部)에서 벼슬하던 산도(山濤)가 무제(武帝:256∼290, 위나라를 멸하고 진나라를 세운 사마염 司馬炎)에게 상주(常住)하였다. "폐하, 서경(書經)의 강고편(康誥篇)에는 아비의 죄는 아들에게 미치지 않으며 아들의 죄는 그 아비에게 미치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혜강은 도륙 당했음).

 

비록 혜소는 혜강의 아들이나 그 슬기나 지혜는 춘추시대 진(晉) 나라의 대부 극결에게 결코 뒤지지 않사오니 그를 비서랑(비書郞)으로 기용 하시오소서."  "그대가 추천할 만한 사람이라면 승(丞)을 시켜도 좋을 듯하오."  이렇게 말하면서 무제는 비서랑보다 한 단계 높은 벼슬인 비서승(秘書丞)으로 혜소를 등용했다. 혜소가 처음으로 낙양(洛陽)에 들어갔을 때 어떤 사람이 칠현의 한 사람인 왕융 (王戎)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저께 많은 혼잡한 군중 속에서 혜소를 처음 보았습니다. 그의 드높은 혈기와 기개는 마치 '닭의 무리 속에 있는 한 마리의 학[群鷄一鶴]'과 같더군요." 이 말을 듣고 왕융은 대답했다. "그대는 혜소의 아버지를 본 적이 없지만 그는 혜소보다 훨씬 더 늠름했다네."

 

 

대기만성 / 大器晩成  大 큰 대 器 그릇 기 晩 늦을 만 成 이룰 성

 

겉뜻 ; 큰 그릇은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말

속뜻 ;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

 

유래 ;《노자(老子)》 41장에서 나온 말이다.

노자는 이 장에서 옛글을 인용하여 도(道)를 설명하였는데 "매우 밝은 도는 어둡게 보이고,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도는 뒤로 물러나는 것 같다. 가장 평탄한 도는 굽은 것 같고, 가장 높은 덕은 낮은 것 같다. 몹시 흰 빛은 검은 것 같고, 매우 넓은 덕은 한쪽이 이지러진 것 같다. 아주 건실한 도는 빈약한 것 같고, 매우 질박한 도는 어리석은 것 같다.”라고 말하였다.

또 "그러므로 아주 큰 사각형은 귀가 없고(大方無隅),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大器晩成). 아주 큰 소리는 들을 수 없고(大音希聲), 아주 큰 형상은 모양이 없다(大象無形). 왜냐하면 도는 항상 사물의 배후에 숨어 있는 것이므로 무엇이라고 긍정할 수도, 또 부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여기에서 보듯 만성(晩成)이란 본래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로, 거의 이루어질 수 없다는 뜻이 강하다. 그런데 후일 이 말이 늦게 이룬다는 뜻으로 쓰이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일화에서 비롯된 듯하다. 삼국시대 위(魏)나라에 최염(崔琰)이라는 이름난 장군이 있었다. 그에게는 최림(崔林)이라는 사촌동생이 있었는데, 외모도 빈약하고 출세가 늦어 친척들로부터 멸시를 당하였다. 하지만 최염만은 그의 재능을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큰 종이나 큰 솥은 그렇게 쉽사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큰 인물도 성공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내가 보기에 너도 그처럼 대기만성형이다. 좌절하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라. 그러면 틀림없이 네가 큰 인물이 될 것이다." 과연 그의 말대로 최림은 후일 천자를 보좌하는 삼공(三公)에 이르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나이 들어 성공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사용되고 있다.

 

 

백전백승 / 百戰百勝  百 일백 백 戰 싸울 전 百 일백 백 勝 이길 승

 

겉뜻 :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는 뜻

속뜻 : 싸울 때마다 반드시 이긴다는 말.

 

유래 : 춘추 시대, 제(齊)나라 사람으로서 오왕(吳王) 합려(闔閭:B.C. 514∼ 496)를 섬긴 병법가 손자(孫子:孫武)가 쓴 "손자"〈모공편(謀攻篇)〉에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승리에는 두 종류가 있다. 적을 공격하지 않고서 얻는 승리와 적을 공격한 끝에 얻는 승리인데 전자는 최상책(最上策)이고 후자는 차선책(次善策)이다. '백 번 싸워 백 번 이겼다[百戰百勝]'해도 그것은 최상의 승리가 아니다. 싸우지 않고 상대방을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승리인 것이다. 곧, 최상책은 적이 꾀하는 바를 간파하고 이를 봉쇄하는 것이다. 그 다음 상책은 적의 동맹 관계를 끊고 적을 고립시키는 것이고, 세 번째로 적과 싸우는 것이며, 최하책은 모든 수단을 다 쓴 끝에 강행하는 공성(攻城)이다. 

 

 

계명구도 / 鷄鳴狗盜  鷄 닭 계 鳴 울 명 狗 개 구 盜 도둑 도

 

겉뜻 : 닭의 소리를 내고 개 모양을 하여 도적질하다.

속뜻 : 잔재주를 자랑함.  비굴한 꾀로 남을 속이는 천박한 짓
 
유래 : 제(齊)나라의 맹상군(孟嘗君)은 갖가지 재주 있는 식객이 많았다. 어느 날 진(秦)나라 소왕(昭王)의 부름을 받아 호백구(狐白裘)를 선물했다. 소왕은 맹상군(孟嘗君)을 임명하려 했지만 많은 신하(臣下)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한편 맹상군(孟嘗君)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음모를 알아차리고 소왕의 애첩 총희(寵嬉)를 달래 나가게 해달라고 부탁하니 호백구(狐白裘)를 요구했다. 개 흉내로 도둑질에 능한 사람이 "신이 능히 호백구(狐白裘)를 얻어 오겠습니다." 하고 밤에 개 흉내를 내어 진(秦)나라 궁의 창고로 들어가서, 바쳤던 호백구(狐白裘)를 취해서 그녀에게 주니 그녀의 간청으로 석방되었다. 그 곳을 빠져 나와 밤중에 함곡관에 이르니 닭이 울어야 객을 내보낸다는 관법으로 객 중에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자가 '꼬끼오' 하니 모든 닭이 따라 울어 관문이 열렸고 무사히 통과하여 제나라로 올 수 있었다. 나중에 소왕은 맹상군(孟嘗君)의 귀국을 허락한 것을 뉘우치고 병사들로 하여금 뒤쫓게 했으나, 이미 관문을 통과한 뒤였다.

 

 

양상군자 / 梁上君子  梁 대들보 양 上 위 상 君 임금 군 子 아들 자

 

겉뜻 ; 들보 위의 군자라는 뜻

속뜻 ; 도둑을 가리키는 말.

 

유래 ;《후한서(後漢書)》〈진식전(陳寔傳)〉에 나오는 말이다. 진식은 학식이 뛰어나고 성질이 온화하며 청렴결백하여 모든 사람의 존경을 받았다. 그가 태구현(太丘縣)의 현감으로 있을 때 어느날 밤 도둑이 그의 방으로 들어와 천장 들보 위에 웅크리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진식은 곧 의관을 정제하고 아들과 손자들을 불러들여 훈계를 시작하였다. "사람이란 누구나 자기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착하지 못한 짓을 하는 사람도 반드시 처음부터 악한 사람은 아니다. 평소의 잘못된 버릇이 성격으로 변하여 나쁜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저 들보 위의 군자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도둑은 이 말에 깜짝 놀라 얼른 들보 위에서 뛰어내려와 이마를 조아리며 죽여 주십사하고 사죄하였다. 진식은 그를 조용히 타이르고 비단 두 필을 주어 돌려보냈다. 이 일이 알려지자 고을 안에 도둑질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한다.

 

 

내우외환 / 內憂外患  內 안 내 憂 근심 우 外 바깥 외 患 근심 환

 

겉뜻 : 안의 근심과 밖의 재난.

속뜻 ; 근심·걱정 속에 사는 것을 뜻함

 

유래 : 송(宋)나라에 환원이라는 대부(大夫)가 있었다. 그는 지성을 다해 진(晉)과 초(楚)를 설득하여 기원전 579년에 송나라의 서문 밖에서 양국의 대표자가 맹약을 조인케 하였다. 그 맹약의 주된 내용은 서로 침범하지 않을 것을 기본 골격으로 하고, 환란이 있을 때엔 서로 도우며 복종하지 않은 나라가 있을 때에는 두 나라가 연합하여 공벌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것은 남북을 대표하는 두 나라가 평화를 유지함으로써 천하의 소란을 가라앉히려는 데 목적이 있었다. 맹약이 깨어진 것은 3년이 지나서였다. 초나라가 정나라를 침략함으로써 맹약은 깨어지고 이듬해인 575년에는 진의 영공과 초의 공왕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언릉이라는 곳에서 대치했다. 이 싸움에서 초나라의 공왕은 눈에 화살을 맞고 패주하여 초나라의 기세가 크게 꺾이는 비운을 맞이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낙서(樂書)라는 이는 진나라에 항거하는 정나라를 치기 위해 동원령을 내렸었다. 이때 초나라와 싸울 것을 주장하자 범문자가 반대했다. "제후로 있는 자가 반란하면 이를 토벌하여야 함이 마땅한 것이지 그를 돕게 되면 나라가 혼란해지는 것이요." 낙서가 말했다. "성인이라면 밖으로의 재난을 견딜 수 있겠지만, 우리는 밖으로의 재난이 없으면 반드시 안으로 우환이 있을 것이요. 그러니 그것을 어찌 견디겠소."

 

 

과유불급 / 過猶不及  過 지날 과 猶 오히려 유 不 아닐 불 及 미칠 급

 

겉뜻 : 지나침은 모자람과 같다.

속뜻 : 중용을 가리키는 말

 

유래 : 子貢(자공)이 공자(孔子)에게 "子張(자장)과 子夏(자하) 중, 누가 현명합니까?" 하고 물은 적이 있다. 어느 날, 자장이 공자(孔子)에게 "士(사)로서 어떻게 하면 達(달)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孔子)는 도리어 자장에게 반문하기를 "그대가 말하는 達(달)이란 무엇인가?" "제후를 섬겨도 반드시 그 이름이 높아지고, 경대부(卿大夫)의 신하(臣下)가 되어도 또한 그 이름이 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聞(문)이지 達(달)이 아니다. 본성이 곧아 의를 좋아하고, 말과 얼굴빛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알며, 신중히 생각하여 남에게 겸손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제후를 섬기거나, 경대부의 신하(臣下)가 되어도 그릇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達(달)이라 할 수 있다." 하고 공자(孔子)는 자장의 허영심을 은근히 나무랐다. 한편 자하에게는 이렇게 타이른 적이 있다. "군자유(君子儒)가 되고, 소인유(小人儒)가 되지 말라."(군자유란 자신의 수양을 본의로 하는 구도자, 소인유란 지식을 얻는 일에만 급급한 학자) 이 두 사람을 비교해 달라는 자공의 말에 "자장은 지나쳤고, 자하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면 자장이 나은 것입니까?" "지나침은 못 미침과 같으니라(過猶不及;과유불급)."

 

 

어부지리 / 漁夫之利  漁 고기 잡을 어 夫 지아비 부 之 갈 지 利 이할 리

 

겉뜻 : 어부의 이익이라는 뜻

속뜻 : 둘이 다투는 틈을 타서 엉뚱한 제3자가 이익을 가로챔을 이르는 말

 

유래 : 전국시대(戰國時代), 진(秦)나라는 여러 나라를 병탐하여 천하를 제압하려고 하였다. 이때 조(趙)나라와 연(燕)나라 사이에 마찰이 생겨 조나라는 연나라를 침략하고자 준비를 서둘렀다. 그래서 연나라 소왕은 소대(蘇代)를 조나라에 보내어 혜왕을 설득하도록 했다. 조나라에 도착한 소대는 한 가지 예를 들어 혜왕(惠王)을 설득했다. "제가 이 나라에 들어올 때, 역수(易水)를 지나다가 우연히 냇가를 보니 조개가 입을 벌리고 볕을 쬐고 있었는데, 황새 한 마리가 날아와 조개를 쪼자, 조개는 급히 입을 꽉다물어 버렸습니다. 다급해진 황새가 '오늘도 내일도 비가 오지 않으면 목이 말라죽을 것이다.'라고 하자, 조개도 '내가 오늘도 내일도 놓지 않고 꽉 물고 있으면 너야말로 굶어 죽고 말걸.'하였습니다. 이렇게 한참 다투고 있는데, 지나가던 어부가 이를 보고 힘들이지 않고 둘 다 잡아가고 말았습니다. 왕은 지금 연나라를 치려 하십니다만, 연나라가 조개라면 조나라는 황새입니다. 지금 연나라와 조나라가 공연히 싸워 국력을 소모하면 저 강대한 진(秦)나라가 어부가 되어 맛있는 국물을 마시게 될 것입니다."하고 말했다. 조나라 혜문왕(惠王)도 현명한 까닭에 소대의 말을 알아듣고 연나라를 치려던 계획을 중단하였다고 한다.

 

 

목불식정 / 目不識丁  目 눈 목 不 아닐 불 識 알 식 丁 고무래 정

 

겉뜻 : 고무래를 보고도 그것이 고무래 정(丁)자인 줄 모른다는 뜻

속뜻 : 글자를 전혀 모름, 또는 그러한 사람을 비유해 이르는 말


유래 : 唐나라 때 장홍정(張弘靖)이란 사람은 못나고 무식하며 행동 또한 오만 불손(傲慢不遜)하였다. 그러나 부친인 장연상(張延賞)이 조정에 끼친 공적이 많아 그 덕분으로 그의 벼슬길은 매우 순탄하였다. 그가 노룡(盧龍)의 절도사(節度使)로 부임하게 되었는데 부하들과 어려운 병영생활을 하려 않고 가마를 타고 즐기며 군사들을 괴롭히고 교만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부하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니 오히려「천하가 무사한데 무리들이 포와 활을 당기는 것은 '丁'자 하 나를 아는 것만 같지 못하다. <天下(천하)가 無事(무사)한대 而輩挽石弓(이배만석궁)은 不如識一丁字(불여식일정자)라.>」라고 꾸짖었다.

 

 

조삼모사 / 朝三暮四  朝 아침 조 三 석 삼 暮 저물 모 四 넉 사

 

겉뜻 :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라는 뜻

속뜻 : ①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차별만을 알고 그 결과가 같음을 모름의 비유

②간사한 꾀를 써서 남을 속임을 이르는 말


유래 : 宋나라 때 저공(猪公)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원숭이를 사랑하여 이를 길러 여러 마리가 되었다. 그러기 때문에 저공이 능히 원숭이의 뜻을 알고 원숭이도 또한 저공의 마음을 알았다. 저공이 집안 식구들의 먹을 것을 줄여서 원숭이의 배를 채워 주더니 마침 먹을 것이 떨어졌다. 앞으로 그 먹이를 줄이고자 하나 여러 원숭이가 앞으로 말을 잘 듣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여, 먼저 이를 속이어 말했다. "너희들에게 먹이를 주되 아침에 세 개를 주고 저녁에 네 개를 주겠으니 좋으냐?"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러 원숭이가 다 일어나서 화를 냈다. 저공이 다시 말하기를 "너희들에게 먹이를 아침에 네 개를 주고 저녁에 세 개를 주겠으니 좋으냐?"하니 여러 원숭이가 다 엎드려 절하고 기뻐했다.

 

 

조변석개 / 朝變夕改  朝 아침 조 變 변할 변 夕 저녁 석 改 고칠 개

 

겉뜻 : 아침, 저녁으로 뜯어고친다는 뜻

속뜻 : 계획이나 결정 따위를 자주 바꾸는 것을 이름

 

유래 : 한번 세운 계획이나 정해진 결정 따위를 일관성이 없이 자주 고치는 것을 말하는 고사성어로 조석변개, 조개모변이라고도 한다. 아침에 바꾼 것을 저녁에 다시 또 고친다는 뜻으로 규칙이나 계획이 너무 자주 바뀔 때 쓰는 말이다. 이익집단이나 개인의 이해 관계에 따라 나라의 정책(政策) 또는 법령(法令)이 자주 바뀌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변덕스러운 성질이나 태도뿐만 아니라 어떤 명령이나 계획 및 결정을 이렇게 했다가 저렇게 했다가 일정하게 정해놓은 때 없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자주 변경하는 것을 말한다. 아침에 내린 명령을 저녁에 또다시 고친다는 뜻으로 쓰여 법률이나 명령이 자주 뒤바뀌어 일관성이 없는 것을 나타내는 조령모개(朝令暮改)와 비슷한 말이다.

 

 

조령모개 / 朝令暮改  朝 아침 조 令 하여금 령 暮 저물 모 改 고칠 개

 

겉뜻 : 아침에 명령을 내리고서 저녁에 다시 바꾼다는 뜻

속뜻 : ①법령의 개정이 너무 빈번하여 믿을 수가 없음을 이르는 말

②아침에 조세를 부과하고 저녁에 걷어들임을 이르는 말

 

유래 : 《사기(史記)》〈평준서(平準書)〉 재정경제사장(財政經濟史章)에는, 전한(前漢) 문제(文帝) 때의 일로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흉노(匈奴)가 자주 변방을 침략하여 약탈을 자행하니, 경작하면서 수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자연히 변방에서 수확하는 곡식만으로 충당하기에 식량이 부족하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곡식을 헌납받는 사람들과, 그 곡식을 변방까지 수송할 사람들을 모집하여 벼슬을 주기로 하였다. 그 벼슬의 지위는 대서장(大庶長)까지였다. 이 조치는, 문제와 경제(景帝) 때의 어사대부(御史大夫)였던 조조(晁錯)의 헌책(獻策)을 취한 것이었음을 《한서(漢書)》〈식화지(食貨志)〉에서 밝히고 있다. 조조가 상소한 이 헌책은 후세에 〈논귀속소(論貴粟疏)〉라 불리게 되는데, 여기에 조령모개라는 말이 있다. 조조는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지금 다섯 가족의 농가에서는 부역이 과중하여, 노역(勞役)에 복종하는 사람이 두 사람을 내려가지 않는다. 따라서 경작하여 수확하는 것은 백 묘(畝)가 고작인데, 이 백 묘는 많아야 백 석에 지나지 않는다. 봄에 경작하고 여름철에 풀 뽑고, 가을에 수확하여 겨울에 저장하는 외에, 관청을 수리하고 부역에 불려나가는 등 춘하추동 쉴 날이 없다. 또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을 보내고 맞이하며, 죽은 자를 조문하고 고아들을 받고, 어린이를 기른다. 또한 홍수와 한발의 재해를 당하는 위에 갑자기 세금이나 부역을 당한다. 이것은 일정한 때도 정해져 있지 않아, 아침에 영을 내리고 저녁에 고친다(朝令而暮改). 전답이 있는 사람은 반값으로 팔고, 없는 사람은 빚을 내어 10할의 이자를 낸다. 이리하여 농지나 집을 방매(放買)하고, 아들과 손자를 팔아 부채를 갚는 자가 나오게 된다.
여기서 '조령모개'는 '법령에 일관성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청(淸)나라 때의 학자 왕염손(王念孫)은 후한(後漢) 때의 순열(荀悅)이 《한기(漢紀)》에 기록한 대로, '조령이모득(朝令而暮得)’으로 고쳐 써야 한다고 하였다. '조령모득'은 '아침에 법령을 내리고 저녁에 거둔다'는 뜻이다.

 

 

오합지졸 / 烏合之卒  烏 까마귀 오 合 합할 합 之 갈 지 卒 마칠 졸

 

겉뜻 : 까마귀가 모인 것 같은 무리라는 뜻

속뜻 : 질서 없이 어중이떠중이가 모인 군중 또는 제각기 보잘것없는 수많은 사람

 

유래 : 전한(前漢) 말, 대사마(大司馬)인 왕망(王莽)은 평제(平帝)를 시해(弑害)하고 나이 어린 영(?)을 세워 새 황제로 삼았으나 3년 후 영(?)을 폐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라 국호를 신(新)이라 일컬었다. 그러나 잦은 정변과 실정(失政)으로 말미암아 각지에 도둑떼가 들끓었다.이처럼 천하가 혼란에 빠지자 유수(劉秀) 후한(後漢)의 시조(始祖).는 즉시 군사를 일으켜 왕망(王莽) 일당을 주? 벌(誅伐)하고 경제(景帝)의 후손인 유현(劉玄)을 황제로 옹립(擁立)했다. 이에 천하는 다시 한나라로 돌아갔다.대사마가 된 유수가 이듬해 성제(成帝)의 아들 유자여(劉子輿)를 자처하며 황제를 참칭(?稱)하는 왕랑(王郞)을 토벌하러 나서자, 상곡(上谷) 태수 경황(耿況)은 즉시 아들인 경감(耿龕)에게 군사를 주어 평소부터 흠모하던 유수의 토벌군에 들어 갔다. 그때 손창(孫倉)과 위포(衛包)가 갑자기 행군을 거부하는 바람에 잠시 동요가 있었다.“유자여는 한왕조(漢王朝)의 정통인 성제의 아들이라고 하오. 그런 사람을 두고 대체 어디로 간단 말이오?” 격노한 경감(耿龕)은 두 사람을 끌어낸 뒤 칼을 빼들고 말했다. 왕랑은 도둑일 뿐이다. 그런 놈이 황자(皇子)를 사칭하며 난을 일으키고 있지만, 내가 장안(長安:陝西省 西安)의 정예군과 합세해서 들이치면 그까짓 ‘오합지졸(烏合之卒)’은 마른 나뭇가지보다 쉽게 꺾일 것이다. 지금 너희가 사리(事理)를 모르고 도둑과 한패가 됐다간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면치 못하리라.” 그날 밤, 그들은 왕랑에게로 도망치고 말았지만 경감(耿龕)은 뒤쫓지 않았다. 서둘러 유수의 토벌군에 합류한 경감(耿龕)은 많은 무공을 세우고 마침내 건위대장군(建威大將軍)이 되었다. 우리가 돌격 기병대를 일으켜 써 오합지중(烏合之衆)을 치는 것은 썩은 고목을 꺾고 썩은 것을 깎음과 같을 뿐이다.

 

 

노마지지 / 老馬之智  老 늙을 노(로) 馬 말 마 之 갈 지 智 슬기 지

 

겉뜻 : 늙은 말의 지혜라는 뜻

속뜻 : ①연륜이 깊으면 나름의 장점과 특기가 있음

②저마다 한가지 재주는 지녔다는 말

 

유럐 :「관중과 습붕이 환공을 따라 고죽국을 칠 때 봄에 가서 겨울에 돌아오다가 미혹되어 길을 잃었다. 관중이 가로되"늙은 말의 지혜를 이용할 만하다" 하고 곧 늙은 말을 풀어 그 말을 따랐다. <管中濕朋(관중습붕)이 從於桓公(종어환공)하여 而伐孤竹(이벌고죽)할 새 春往冬反(춘왕동반)이라가 迷惑失道(미혹실도)하다. 管中曰(관중왈) 老馬之智(노마지지)를 可用也(가용야)라하고 乃放老馬(내방노마)하여 而隨之(이수지)하다.>」 또한 산중을 진군하고 있을 때 물이 없어 갈증이 나자 습붕이"개미는 겨울이면 남쪽에 살고 여름이면 산의 북쪽에 사는 것이므로 개미집의 높이가 한 치라면 그 지하 여덟 자를 파면 물이 있다."고 말하여 파보니 과연 물을 얻을 수 있었다. 이처럼 미물도 뛰어난 장점이 있듯이 하찮은 사람일지라도 반드시 뛰어난 점이 있어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배치하여 할 일을 부여한다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연목구어 / 緣木求魚  緣 인연 연 木 나무 목 求 구할 구 魚 고기 어

 

겉뜻 : 나무에 인연하여 물고기를 구한다라는 뜻

속뜻 : 목적이나 수단이 일치하지 않아 성공이 불가능함,

또는 허술한 계책(計策)으로 큰 일을 도모함

유래 : 齊(제)나라 선왕(宣王)이 천하를 통일하겠다는 욕심을 품고 있어 맹자한테 춘추시대 패자였던 제나라 환공과 진(秦)나라 문공의 사적을 물었다. 맹자는 패도(覇道)에 대하여 잘 모른다고 한 다음 "폐하는 전쟁을 일으켜 백성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고 이웃 나라와 원한을 맺고 싶습니까?" 라고 물었다. 왕은 빙그레 웃으며 그렇지 않으나 장차 큰 뜻을 실행하고 싶다고 말했다. 맹자가 큰 뜻이 무엇인지를 물었으나 왕이 우물우물 대답을 않자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폐하께서 말씀하시는 큰 뜻이란 영통를 확장하여 진(秦)나라나 초(楚)나라 같은 나라로부터 문안을 받고 사방의 오랑캐를 어루만지고 싶은 것이겠죠. 하지만 그것은 나무에 올라가 고기를 구하는(緣木求魚) 것과 같습니다. 나무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은 실패해도 탈이 없지만 폐하처럼 무력으로 뜻을 이루려면 백성을 잃고 나라를 망치는 재난이 따라 올 것입니다. 고기를 잡으려면 바다로 가야 하듯이 통일천하를 하고 싶으면 왕천하(王天下)의 대도를 가십시오."
 

 

풍전등화 / 風前燈火  風 바람 풍 前 앞 전 燈 등 등 火 불 화

 

겉뜻 : '바람 앞의 등불'이란 뜻

속뜻 : ①사물이 오래 견디지 못하고 매우 위급한 자리에 놓여 있음을 가리키는 말

②사물이 덧없음을 가리키는 말

 

유래 : 풍전등촉(風前燈燭)·풍전지등(風前之燈)으로도 쓴다. 사람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를 정도로 매우 급박한 처지에 있음을 등잔불이나 촛불이 바람 앞에서 언제 꺼질지 모르게 껌벅거리며 나부끼는 모습에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국가의 운명이 풍전등화에 처했다.', '풍전등화에 처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원 입대하였다.' 등이 쓰임의 예이다.

이처럼 존망이 달린 매우 위급한 처지를 비유하는 한자성어는 풍전등화 외에도 여럿이 있다. 포개 놓은 달걀처럼 몹시 위태로운 형세를 일컫는 누란지세(累卵之勢)·누란지위(累卵之危)·위여누란(危如累卵),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끝에 있는 것처럼 매우 위태로움을 일컫는 백척간두(百尺竿頭)·간두지세(竿頭之勢)도 같은 뜻이다.

그 밖에 일촉즉발(一觸卽發:금방이라도 일이 크게 터질 듯한 아슬아슬한 상태), 초미지급(焦眉之急:눈썹이 타들어 갈 정도로 매우 위급함), 진퇴양난(進退兩難:이러기도 어렵고 저러기도 어려운 매우 난처한 처지)·진퇴유곡(進退維谷), 사면초가(四面楚歌:사면이 모두 적으로 둘러싸여 매우 위급한 처지), 위기일발(危機一髮:눈앞에 닥친 위기)·위여일발(危如一髮), 여리박빙(如履薄氷:살얼음을 밟는 것처럼 아슬아슬한 형세), 명재경각(命在頃刻:거의 죽게 되어 숨이 곧 넘어갈 지경), 절체절명(絶切絶命:몸도 목숨도 다 되어 살아날 길이 없게 된 막다른 처지), 낭패불감(狼狽不堪: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처지) 등도 모두 같은 뜻이다.

 

 

위기일발 / 危機一髮  危 위태할 위 機 틀 기 一 한 일 髮 터럭 발

 

겉뜻 : 머리털 하나로 천균이나 되는 물건을 끌어당긴다는 뜻

속뜻 : 당장에라도 끊어질 듯한 위험한 순간을 비유해 이르는 말

 

유래 : 당(唐)의 한유(韓愈)가 살았던 때에는 불교가 성행했다. 동시대에 해당하는 우리의 [유래] 당나라의 한유(韓愈)는 유학의 도를 세우기 위해 당시 성했던 불노(佛老 ; 불교와 도교)를 배척하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았던 사람이다. 헌종(憲宗)이 사리(舍利)를 궁중으로 들여오려 하자 표문(表文)을 올려 사리를 물과 불 속에 던질 것을 청하였다가 조주(潮州)로 귀향을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곳에서 한 노승과 친하게 지내어 한동안 불교를 신봉한다는 오해를 받게 되었다. 한유로서는 답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때마침 상서(尙書 ; 육부의 으뜸 벼슬)벼슬을 지낸 맹간(孟簡)이 이 일에 대하여 한유에게 어찌 된 일인지를 묻는 편지를 보냈다. 이에 한유는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편지로 써 보냈다. 자신이 불교를 신봉할 리가 없다는 것을 조목조목 적어 보낸 글이었다. 다음은 그 편지의 일부분이다.

"한(漢)나라 이래로 여러 유자(儒者)들이 일어나 보수하였으나 변변치 못하여 백 개의 구멍과 천 군데의 상처가 생겼으니, 그 위기(危機)가 마치 한 올의 머리털(一髮)로 천균(千鈞)의 무게를 끌어당기는 것과 같습니다. 유학의 명맥은 겨우 이어지다가 점점 미약해지고 끝내 없어졌습니다. <중략> 천지귀신(天地鬼神)이 위에서 내려다보시고 옆에서 바로잡아 주시니 어찌 한 번의 좌절로 인하여 스스로 그 도를 훼손하고 불도(佛道)를 따르겠습니까?"

균(鈞)이란 약 30근(斤)으로 천 균은 18톤에 해당되는 엄청난 무게다. 한 올의 머리카락으로 천균의 무게를 끌어당기는 것은 당장이라도 머리카락이 끊어질 듯한 위태로운 상황이다.
한유는 한대 이래로 유학의 도가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 매우 위태로와 마치 위기일발(危機一髮)과 같다고 표현했다. 이처럼 위기일발은 매우 위태로운 상황을 뜻한다.

 

 

결초보은 / 結草報恩  結 맺을 결 草 풀 초 報 갚을 보 恩 은혜 은

 

겉뜻 : 풀을 묶어서 은혜를 갚는다라는 뜻

속뜻 : ①죽어 혼이 되더라도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갚음

②무슨 짓을 하여서든지 잊지 않고 은혜에 보답함

③남의 은혜를 받고도 배은망덕한 사람에게 개만도 못하다고 하는 말

 

유래 : 「진(晉)나라의 大夫(대부) 魏武(위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그에게는 妾(첩)이 한 명 있었다.어느날 위무자가 병으로 몸져눕게 되었다. 아직 제정신일 때 그는 아들 魏顆(위과)에게 일러 말하였다. "내가 죽으면 이 첩을 다른 사람에게 개가를 시켜라." 하더니, 그 뒤 병이 심하여 죽게 되거늘 또 말하되 "내가 죽으면 저 여인은 순장을 시켜라."고 유언을 하였다. 죽음에 이르러 이과가 말하되 "차라리 정신이 있을 때의 명령을 좇아서 이를 개가를 시키리라." 그리하여 서모(庶母)를 개가시켜 순사(殉死)를 면하게 하였다. 후에 진(晉)나라와 진(秦)나라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서 위과(魏顆)가 전쟁에 나갔다. 진(秦)나라의 두회(杜回)와 싸우다가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두회가 풀에 걸려 넘어져 위과가 두회를 사로잡아 뜻밖에도 큰 전공을 세울 수가 있었다. 그날밤, 위과의 꿈 속에 한 노인이 나타나서 말을 하는데 그는 서모의 아버지의 망혼이었다. "나는 그대가 출가시켜 준 여인의 아비요. 그대는 아버님이 옳은 정신일 때의 유언에 따라 내 딸을 출가시켜 주었소. 그 때 이후로 나는 그대에게 보답할 길을 찾았는데 이제야 그 은혜를 갚은 것이오."하였다.

 

 

각주구검 / 刻舟求劍  刻 새길 각 舟 배 주 求 구할 구 劍 칼 검

 

겉뜻 :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자 뱃전에 그 자리를 표시했다가 나중에 그 칼을 찾으려 한다는 뜻

속뜻 : 판단력이 둔하여 융통성이 없고 세상일(世上-)에 어둡고 어리석다는 뜻

유래 :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초(楚)나라의 한 젊은이가 매우 소중히 여기는 칼을 가지고 양자강을 건너기 위하여 배를 타고 가다가 강 한복판에서 그만 실수로 쥐고 있던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놀란 이 사람은 얼른 주머니칼을 꺼내서 칼을 빠뜨린 부분의 뱃전에 자국을 내어 표시를 해 놓았다. 그는 '칼이 떨어진 자리에 표시를 해놓았으니 찾을 수 있겠지.'라고 생각하고 배가 언덕에 닿자 뱃전에서 표시를 해 놓은 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 칼을 찾았으나 칼은 없었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그의 어리석은 행동을 비웃었다. 어리석고 융통성이 없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사면초가 / 四面楚歌  四 넉 사 面 낯 면 楚 초나라 초 歌 노래 가

 

겉뜻 : 사방에서 들리는 초나라의 노래라는 뜻

속뜻 : 적에게 둘러싸인 상태(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 상태에 빠짐을 이르는 말

유래 : 초(楚)나라의 패왕(覇王) 항우(項羽)와 한(漢)나라의 유방(劉邦)이 천하를 다투던 때, 항우에게 마지막 운명의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끼던 슬기로운 장수 범증(范增)마저 떠나 버리고, 결국 유방에게 눌려 한나라와 강화하고 동쪽으로 돌아가던 도중 해하(垓下)에서 한나라의 명장 한신(韓信)에게 포위당하고 말았다. 빠져나갈 길은 좀체로 보이지 않고, 병졸은 줄어들며 군량미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한군과 제후의 군사는 포위망을 점점 좁혀 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왔다. 가뜩이나 고달픈 초나라 병사로 하여금 고향을 그리게 하는 구슬픈 노래였다. 한나라가 항복한 초나라 병사들로 하여금 고향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다. 항우는 깜짝 놀라면서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빼앗았단 말인가? 어찌 초나라 사람이 저렇게 많은고?"하고 탄식했다. 그는 진중에서 마지막 주연을 베풀었다. 그리고 유명한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시를 지어 자신의 운명을 탄식했고, 총애받던 우미인(虞美人)도 그의 시에 화답하고 자결하였다. 항우는 800기(騎)의 잔병을 이끌고 오강(烏江)까지 갔다가 결국 건너지 못하고 그 곳에서 자결하고 마니, 그의 나이 31세였다 한다.

 

 

갑남을녀 / 甲男乙女  甲 갑옷 갑 男 사내 남 乙 새 을 女 계집 녀

 

겉뜻 : 甲(갑)이라는 남자와 乙(을)이라는 여자라는 뜻

속뜻 : 신분이나 이름이 알려지지 아니한 그저 평범한 사람들을 이르는 말, 보통 평범한 사람들

 

유래 : 갑이라는 남자와 을이라는 여자라는 뜻으로, 특별히 이름이나 신분이 알려지지 않은 평범한 보통사람을 말한다. 대수롭지 않은 평범한 남녀를 뜻하는 필부필부(匹夫匹婦), 장씨의 셋째 아들과 이씨의 넷째 아들이라는 뜻으로 보통의 평범한 사람을 가리키는 장삼이사(張三李四)와 비슷한 말이다. 갑과 을이라는 글자는 천간(天干)에서 따온 말이다.

천간으로는 갑(甲)·을(乙)·병(丙)·정(丁)·무(戊)·기(己)·경(庚)·신(辛)·임(壬)·계(癸) 등의 십간(十干)이 있는데 갑은 양(陽), 을은 음(陰)으로 음양의 순서대로 배열되어 있다. 성별(性別)을 나누어 보면 양은 남자, 음은 여자로 구분되므로 갑남(甲男)은 불특정한 남자를 말하고 을녀(乙女)는 불특정한 여자를 가리킨다. 갑과 을은 불특정한 인물이나 사물을 가리키는 대명사로 쓰이기도 한다. 음양오행(陰陽五行)의 갑·을에서 유래한 갑남을녀는 불특정한 남자와 여자를 의미한다.

 

 

삼고초려 / 三顧草廬  三 석 삼 顧 돌아볼 고 草 풀 초 廬 농막집 려

 

겉뜻 : 세 번 초가집에 가보다

속뜻 : 인재를 맞이하기 위해 참을성있게 힘쓴다는 말

 

유래 : 후한 말엽, 유비는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고 한실 부흥을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그러나 군기를 잡고 계책을 세워 전군을 통솔할 군사가 없어 늘 조조군에게 고전을 면치 못했다. 어느 날 유비가 은사인 사마 휘에게 군사를 천거(薦擧)해 달라고 청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복룡이나 봉추 중 한 사람만 얻으시오." "대체 복룡은 누구고, 봉추는 누구입니까?" 그러나 사마휘는 말을 흐린 채 대답(對答)하지 않았다. 그 후 제갈 량의 별명이 복룡이란 것을 안 유비는 즉시 수레에 예물을 싣고 양양 땅에 있는 제갈량의 초가집을 찾아 갔다. 그러나 제갈량은 집에 없었다. 며칠 후 또 찾아갔으나 역시 출타하고 없었다. "전번에 다시 오겠다고 했는데. 이거, 너무 무례하지 않습니까? 듣자니 그 자는 아직 나이도 젊다던데..." "그까짓 제갈 공명이 뭔데. 형님, 이젠 다시 찾아오지 마십시오." 마침내 동행했던 관우와 장비의 불평이 터지고 말았다. "다음엔 너희들은 따라오지 말아라." 관우와 장비가 극구 만류하는데도 유비는 단념하지 않고 세 번째 방문길에 나섰다. 그 열의에 감동한 제갈량은 마침내 유비의 군사가 되어 적벽대전에서 조조의 100만 대군을 격파하는 등 많은 전공을 세웠다. 그 후 제갈량의 헌책에 따라 위(魏)나라의 조조, 오나라의 손권과 더불어 천하(天下)를 삼분하고 한실의 맥을 잇는 촉한을 세워 황제(皇帝)를 일컬었으며, 지략과 식견이 뛰어나고 충의심이 강한 제갈량은 재상(宰相)이 되었다.


 

도원결의 / 桃園結義  桃 복숭아 도 園 동산 원 結 맺을 결 義 옳을 의

 

겉뜻 : 복숭아 밭에서 결의를 맺는다는 말

속뜻 : 뜻이 맞는 사람끼리 한 목적을 위해 행동을 같이 할 것을 약속한다는 뜻

 

유래 : 원(元)나라 때 나관중(羅貫中)이 지은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 나오는 말이다. 후한(後漢) 말 환관의 발호로 정치가 어지럽자 생할고에 시달리던 농민들은 새로운 살길을 찾게 되었다. 신흥 종교인 태평도(太平道)의 교주 장각(張角)은 이러한 틈을 이용해 세력을 넓히고 난을 일으켰다. 이것이 후한을 멸망시킨 황건적의 난이다. 조정에서는 하진을 대장군으로 삼아 이를 진압하려 했으나 미치지 못하자 각 지방에 병사를 모집하는 방을 붙이게 되었다. 유주(幽州) 탁현(縣)에 살던 유비(劉備)는 이 방문을 보자 가슴이 뛰었다. 그는 평소에 큰 일을 하고 싶어했으며, 일찍이 뤄양에 차를 사러 갔다가 황건적 무리의 횡포를 직접 체험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의욕만 앞설 뿐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한숨만 쉬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거한이 유비 곁으로 다가와 한숨만 쉬는 것을 꾸짖었다. 장비(張飛)였다. 둘은 뜻이 같음을 알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가까운 주막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는 또 범상치 않은 얼굴의 거한이 있어 서로 마음이 통하였다. 그가 관우(關羽)였다. 서로 의기가 투합하자, 장비의 제안으로 다음날 장비의 집 후원 복숭아 밭에서 의형제 결의를 맺고 피를 나누었다.

 

 

온고지신 / 溫故知新  溫 따뜻할 온 故 연고 고 知 알 지 新 새 신

 

겉뜻 :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앎

속뜻 : 옛 학문을 되풀이하여 연구하고, 현실을 처리할 수 있는 새로운 학문을 이해하여야 비로소 남의 스승이 될 자격이 있다는 뜻임

 

유래 :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옛 것을 복습하여 새 것을 아는 이라면 남의 스승이 될 만하다. <子曰(공자)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이면 可以爲師矣(가이위사의)니라.> "주(注)에 보면 온 (溫)은 심(尋)이라 했다. 곧 찾는다는 말이다. 무엇을 찾았는가? 다시 주를 보면 심(尋)은 석고(釋故)라 하여 옛 것을 읽고 풀이하는 것이라 했다. 다시 말하면 온고지신이란 옛 학문(學問)을 되풀이하여 연구(硏究)하고, 현실을 처리할 수 있는 새로운 학문(學問)을 이해하여야 비로소 남의 스승이 될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 

 

 

동병상련 / 同病相憐  同 한가지 동 病 병 병 相 서로 상 憐 불쌍히 여길 련

 

겉뜻 : 같은 병자끼리 가엾게 여긴다는 뜻

속뜻 :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끼리 서로 불쌍히 여겨 동정하고 서로 도움

 

유래 : 합려(闔閭)는 자객(刺客)인 전저(專諸)를 시켜 吳(오)나라의 왕 요(僚)를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오자서(伍子胥)는 전저를 천거(薦擧)한 공로로 대부(大夫)가 되었고 또한 楚(초)나라에서 망명한 백비를 천거(薦擧)하여 함께 정치(政治)를 하게 되었다. 그 때 같은 대부 피리(被離)가"백비를 한 번 보고 왜 그렇게 신용합니까?"라 고 물으니"그것은 그와 내가 같은 원한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상가(河上歌)에「같은 병에는 서로 불쌍히 여겨 한 가지로 걱정하고 서로 구하네.<同病相憐(동병상련) 同憂相救(동우상구)> 놀라서 나는 새는 서로 따르며 날아가고,<驚翔之鳥(경상지조) 相隨而飛(상수이비)> 여 울로 흐르는 물은 그로 인하여 다시 함께 흐르네.<瀨下之水(뢰하지수) 因復俱流(인부구류)>」라고 대답(對答)했다. 결국 오자서는 백비를 경계하는 피리의 충고를 듣지 않다가 越(월)나라에 매수된 백비의 참언으로 분사(焚死)했다.

 

 

살신성인 / 殺身成仁  殺 죽일 살 身 몸 신 成 이룰 성 仁 어질 인

 

겉뜻 : 자신의 몸을 죽여 인(仁)을 이룬다는 뜻

속뜻 :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 옳은 도리를 행함

 

유래 : 공자(孔子)가 말씀하시기를 "뜻있는 선비와 어진 사람은 삶을 구하여 인을 해치는 일이 없고 몸을 죽여서 인을 이룬다"라고 했다. 지사(志士)란 도의(道義)에 뜻을 둔 사람을 일컫고 인인(仁人)이란 어진 덕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지사(志士)와 인인(仁人)은 삶이 소중하다고 하여 그것 때문에 지(志)나 인(仁)을 잃는 일은 절대로 없다. 오히려 때로는 자기의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인(仁)을 달성하려 한다.

 

 

용두사미 / 龍頭蛇尾  龍 용 용(룡) 頭 머리 두 蛇 긴 뱀 사 尾 꼬리 미

 

겉뜻 : 머리는 용이고 꼬리는 뱀이라는 뜻

속뜻 : ①시작은 좋았다가 갈수록 나빠짐의 비유

②처음 출발은 야단스러운데, 끝장은 보잘것없이 흐지부지되는 것

 

유래 : 송(宋)나라 시대에 진존자(陳尊者)라 불리는 스님이 있었다. 용흥사(龍興寺)라는 절에 살고 있었는데 그 후 훌쩍 여행을 떠나 각지에서 나그네들을 위해 짚신을 삼아서 길에 버려 두었다고 한다. 이 진존자가 나이가 많았을 때의 일이다. 선문답(禪問答)이라는 말이 있듯이 선종의 스님은 곧잘 찾아간 상대방 스님을 상대로 종교상의 깨달음에 대해 의론을 한다. 진존자도 여행지에서 흔히 이 선문답을 했다. 어느 날 언제나처럼 앞에 앉은 스님에게 문답을 시작했더니, 갑자기 상대방이 큰소리를 치고 나왔다. "거참 일갈(一喝) 당했는 걸."진존자가 투덜댔더니 또 큰소리를 치고 나왔다. 꽤 호흡이 근사한 걸 보니 상당한 수양을 쌓은 스님인 듯 싶다. 그러나 자세히 살피니 어쩐지 수상쩍었다. "거 참, 이 중은 자신을 용과 같은 기품으로 보이려고 하지만, 아무래도 진짜는 아닌 것 같다. 아마도 용두사미에 불과할 것이다."이렇게 간파한 진존자가 상대에게 말했다. "이봐요, 큰소리만 쳐대고 위세는 있지만 정작 문답을 어떻게 마무리할 셈이요?"상대 스님은 입을 다물어 버려 결국 뱀 꼬리를 내미는 것이었다.

 

 

파죽지세 / 破竹之勢  破 깨뜨릴 파 竹 대 죽 之 갈 지 勢 형세 세

 

겉뜻 ;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라는 뜻

속뜻 ; ①곧 세력이 강대하여 대적을 거침없이 물리치고 쳐들어가는 기세

②세력이 강하여 걷잡을 수 없이 나아가는 모양

 

유래 : 위(魏)나라의 권신 사마염은 원제를 폐한 뒤, 스스로 제위에 올라 무제라 일컫고, 국호를 진이라고 했다. 이리하여 천하는 3국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오나라와 진(秦)나라로 나뉘어 대립하게 되었다. 이윽고 무제는 진남대장군 두예에게 출병을 명했다. 이듬해 2월, 무창을 점령한 두예는 휘하 장수들과 오나라를 일격에 공략할 마지막 작전 회의를 열었다. 이 때 한 장수가 이렇게 건의했다. "지금 당장 오나라의 도읍을 치기는 어렵습니다. 이제 곧 잦은 봄비로 강물은 범람할 것이고, 또 언제 전염병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일단 철군했다가 겨울에 다시 공격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찬성하는 장수들도 많았으나 두예는 단호히 말했다. "그건 안 될 말이오. 지금 아군의 사기는 마치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요. 대나무란 처음 두세 마디만 쪼개면 그 다음부터는 칼날이 닿기만 해도 저절로 쪼개지는 법인데, 어찌 이런 절호의 기회를 버린단 말이오." 두예는 곧바로 휘하의 전군을 휘몰아 오나라의 도읍 건업으로 진격(進擊)하여 단숨에 공략했다. 이어 오왕 손호가 항복함에 따라 마침내 진(秦)나라는 삼국 시대의 종지부를 찍고 천하를 통일했다.

 

     

청출어람 / 靑出於藍  靑 푸를 청 出 날 출 於 어조사 어 藍 쪽 람(남)

 

겉뜻 : 쪽 풀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뜻

속뜻 : 스승보다 제자가 더 뛰어나거나 훌륭함을 이르는 말

 

유래 : '학문(學問)은 그쳐서는 안 된다(學不可以已). 푸른색은 쪽에서 취했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靑取之於藍而靑於藍) 얼음은 물이 이루었지만 물보다도 더 차다(氷水爲之而寒於水).' 학문(學問)이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므로 중도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푸른색이 쪽빛보다 푸르듯이, 얼음이 물보다 차듯이 면학을 계속하면 스승을 능가하는 학문(學問)의 깊이를 가진 제자도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뜻인 '청출어람'이 나왔으며, '출람(出藍)'이란 말도 여기서 비롯된 말이다. 또 이러한 재주 있는 사람을 '출람지재(出藍之才)'라고 한다. 비록 제자일지라도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스승을 능가할 수 있음을 강조한 순자의 주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다. 북조(北朝) 북위(北魏)의 이밀(李謐)은 어려서 공번을 스승으로 삼아 학문(學問)을 했다. 그는 학문(學問)의 발전(發展) 속도가 매우 빨라 열심히 노력한 결과 몇 년이 지나자 스승의 학문(學問)을 능가하게 되었다. 공번은 이제 그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도리어 그를 스승으로 삼기를 청했다. 그러자, 친구(親舊)들은 그의 용기를 높이 사고 또 훌륭한 제자를 두었다는 뜻에서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칭찬(稱讚)했다. 우리 속담에 '나중 난 뿔이 우뚝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출람지재' '출람지예(出藍之譽)' 등과 함께 '청출어람'과 같은 뜻으로 사용(使用)되는 말이다.

 

       

우공이산 / 愚公移山  愚 어리석을 우 公 공평할 공 移 옮길 이 山 뫼 산

 

겉뜻 : 우공이 산을 옮긴다는 말

속뜻 : 남이 보기엔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지만 한 가지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뜻

 

유래 : 옛날, 중국의 북산(北山)에 우공이라는 90세 된 노인이 있었는데, 태행산(太行山)과 왕옥산(王屋山) 사이에 살고 있었다. 이 산은 사방이 700리, 높이가 만 길이나 되는 큰 산으로, 북쪽이 가로막혀 교통이 불편했다. 우공이 어느 날 가족을 모아 놓고 말했다. "저 험한 산을 평평하게 하여 예주(豫州)의 남쪽까지 곧장 길을 내는 동시에 한수(漢水)의 남쪽까지 갈 수 있도록 하겠다. 너희들 생각은 어떠하냐?" 모두 찬성했으나 그의 아내만이 반대하며 말했다. "당신 힘으로는 조그만 언덕 하나 파헤치기도 어려운데, 어찌 이 큰 산을 깎아 내려는 겁니까? 또, 파낸 흙은 어찌하시렵니까?" 우공은 흙은 발해(渤海)에다 버리겠다며 세 아들은 물론 손자들까지 데리고 돌을 깨고 흙을 파서 삼태기와 광주리 등으로 나르기 시작했다. 황해 근처의 지수라는 사람이 그를 비웃었지만 우공은 "내 비록 앞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나 내가 죽으면 아들이 남을 테고, 아들은 손자를 낳고……. 이렇게 자자손손 이어 가면 언젠가는 반드시 저 산이 평평해 질 날이 오겠지."하고 태연히 말했다. 한편 두 산을 지키는 사신(蛇神)이 자신들의 거처가 없어질 형편이라 천제에게 호소했더니, 천제는 우공의 우직함에 감동하여 역신(力神) 과아씨(夸蛾氏)의 두 아들에게 명하여 두 산을 하나는 삭동(朔東)에, 또 하나는 옹남(雍南)에 옮겨 놓게 했다고 한다.

 

 

순망치한 / 脣亡齒寒  脣 입술 순 亡 망할 망 齒 이 치 寒 찰 한

 

겉뜻 : 입술을 잃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

속뜻 : ①가까운 사이의 한쪽이 망하면 다른 한쪽도 그 영향을 받아 온전하기 어려움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②서로 도우며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 또는 서로 도움으로써 성립되는 관계를 비유하여 이르는 말

 

유래 : 춘추시대(春秋時代) 말엽, 오패의 한 사람인 진(秦)나라 문공의 아버지 헌공이 괵, 우, 두 나라를 공략할 때의 일이다. 괵나라를 치기로 결심한 헌공은 통과국인 우나라의 우공에게 길을 빌려주면 많은 재보를 주겠다고 제의했다. 우공이 이 제의를 수락하려 하자 중신 궁지기가 극구 간했다. "전하, 괵나라와 우나라는 한몸이나 다름없는 사이오라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망할 것이옵니다. 옛 속담에도 덧방나무와 수레는 서로 의지하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란 말이 있사온데, 이는 곧 괵나라와 우나라를 두고 한 말이라고 생각되옵니다. 그런 가까운 사이인 괵나라를 치려는 진(秦)나라에 길을 빌려 준다는 것은 언어도단 이옵니다." "경은 진(秦)나라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소. 진(秦)나라와 우나라는 모두 주 황실에서 갈라져 나온 동종의 나라가 아니오? 그러니 해를 줄 리가 있겠소?""괵나라 역시 동종이옵니다. 하오나 진(秦)나라는 동종의 정리를 잃은 지 오래이옵니다. 예컨대 지난날 진(秦)나라는 종친인 제나라 환공과 초나라 장공의 겨레붙이까지 죽인 일도 있지 않사옵니까? 전하께서 그런 무도한 진(秦)나라를 믿어선 아니되옵니다." 그러나 재보에 눈이 먼 우공은 결국 진(秦)나라에 길을 내주고 말았다. 그러자 궁지기는 화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일가권속을 이끌고 우나라를 떠났다. 그 해 12월, 괵나라를 멸하고 돌아가던 진(秦)나라 군사는 궁지기의 예언대로 단숨에 우나라를 공략하고 우공을 포로로 잡아갔다.

 

 

화룡점정 / 畵龍點睛  畵 그림 화 龍 용 룡(용) 點 점 점 睛 눈동자 정

겉뜻 : 장승요가 벽에 그린 용에 눈동자를 그려 넣은 즉시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라는 뜻

속뜻 : 가장 요긴한 부분을 마치어 완성시키다라는 뜻

 

유래 : 남북조(南北朝) 시대, 남조인 양(梁)나라에 장승요(張僧繇)라는 사람이 있었다. 우군장군(右軍將軍)과 오흥태수(吳興太守)를 지냈다고 하니 벼슬길에서도 입신(立身)한 편이지만 그는 붓 하나로 모든 사물(事物)을 실물과 똑같이 그리는 화가로 유명했다.어느 날, 장승요는 금릉(金陵:남경(南京))에 있는 안락사(安樂寺)의 주지로부터 용을 그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는 절의 벽에다 검을 구름을 헤치고 이제라도 곧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두 마리의 용을 그렸다. 물결처럼 꿈틀대는 몸통, 갑옷의 비늘처럼 단단해 보이는 비늘, 날카롭게 뻗은 발톱에도 생동감이 넘치는 용을 보고 찬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용의 눈에 눈동자가 그려져 있지 않는 점이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장승요는 이렇게 대답(對答)했다."눈동자를 그려 넣으면 용은 당장 벽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가 버릴 것이오."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당장 눈동자를 그려 넣으라는 성화독촉(星火督促)에 견디다 못한 장승요는 한 마리의 용에 눈동자를 그려 넣기로 했다. 그는 붓을 들어 용의 눈에 '획'하니 점을 찍었다. 그러자 돌연 벽 속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더니 한 마리의 용이 튀어나와 비늘을 번뜩이며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은 용은 벽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지록위마 / 指鹿爲馬   指 가리킬 지 鹿 사슴 록(녹) 爲 하 위 馬 말 마

 

겉뜻 :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라는 뜻

속뜻 : ①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됨

②웃사람을 농락하여 권세를 마음대로 함

 

유래 :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가 죽자 측근 환관인 조고(趙高:?∼B.C. 208)는 거짓 조서(詔書)를 꾸며 태자 부소(扶蘇)를 죽이고 어린 호해(胡亥)를 세워 2세 황제(皇帝)로 삼았다. 현명한 부소보다 용렬한 호해가 다루기 쉬웠기 때문이다. 호해는 천하(天下)의 모든 쾌락을 마음껏 즐기며 살겠다고 말했을 정도로 어리석었다고 한다.어쨌든 조고는 이 어리석은 호해를 교묘히 조종하여 경쟁자인 승상 이사(李斯)를 비롯, 그밖에 많은 구신(舊臣)들을 죽이고 승상이 되어 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다. 그러자 역심이 생긴 조고는 중신들 가운데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을 가려내기 위해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면서 이렇게 말했다."폐하, 말(馬)을 바치오니 거두어 주시오소서.""승상은 농담도 잘 하시오. '사슴을 가지고 말이라고 하다니(指鹿爲馬)'…‥. 어떻소? 그대들 눈에도 말로 보이오?"말을 마치자 호해는 웃으며 좌우의 신하(臣下)들을 둘러보았다. 잠자코 있는 사람보다 '그렇다'고 긍정하는 사람이 많았으나 '아니다'라고 부정하는 사람도 있었다. 조고는 부정한 사람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죄를 씌워 죽여 버렸다. 그 후 궁중에는 조고의 말에 반대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고 한다.그러나 천하(天下)는 오히려 혼란(混亂)에 빠졌다. 각처에서 진(秦)나라 타도의 반란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중 항우와 유방의 군사가 도읍 함양(咸陽)을 향해 진격(進擊)해 오자 조고는 호해를 죽이고 부소의 아들 자영(子孀)을 세워 3세 황제(皇帝)로 삼았다(B.C. 207). 그러나 이번에는 조고 자신이 자영에게 주살 당하고 말았다.

 

 

건곤일척 / 乾坤一擲  乾 하늘 건 坤 땅 곤 一 한 일 擲 던질 척

 

겉뜻 : 하늘이냐 땅이냐를 한 번 던져서 결정한다는 뜻

속뜻 : 운명과 흥망을 걸고 단판으로 승부나 성패를 겨룸.

또는 오직 이 한번에 흥망성쇠가 걸려 있는 일

 

유래 : 당(唐)ㆍ송(宋)팔대가의 한 사람인 韓愈(한유768∼824, 字 :退之, 號 : 昌黎)의 '過鴻溝(과홍구)'의 詩(시)에, 龍疲虎困割川原(용피호곤내천)하니, 용과 범이 지쳐 이 강의 언덕으로 분할하니, 億萬蒼生性命存(억만창생성명존)이라. 억만창생의 생명이 살아있도다. 誰勸君王回馬首(수권군왕회마수)라, 누가 임금에게 권해 말머리를 돌릴 것인가? 眞成一擲賭乾坤(진성일척도건곤)이라. 진정 한번 던져 하늘이냐 땅이냐로 도전한다. 홍구는 하남성에 있는데, 옛날 秦(진)이 망하고 천하(天下)가 아직 통일되지 않았을 때 楚(초)의 項羽(항우)와 漢(한)의 劉邦(유방)이 세력 다툼을 하다가 이곳을 경계로 하여 동쪽은 초가 서쪽은 한이 차지하기로 협약했던 곳이다. 그러나, 그때 張良(장량)과 陣平(진평)이 유방에게 진언하기를,"漢(한)은 천하(天下)의 태반을 차지하고 제후도 따르고 있지만, 楚(초)는 군사가 피로하고 시량도 없습니다. 이때야말로 하늘이 초를 멸하려 하는 것이며, 굶주리고 있을 때 쳐부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호랑이를 길러 후환을 남기는 것과 같사옵니다."했다. 유방은 마침내 초를 해하(垓下)에서 승리했다. 한유는 이때의 싸움을 천하(天下)를 건 일대 도박으로 보고 회고시를 쓴 것.

 

 

읍참마속 / 泣斬馬謖  泣 울 읍 斬 벨 참 馬 말 마 謖 일어날 속

 

겉뜻 : 눈물을 머금고 마속의 목을 벤다는 뜻

속뜻 : 사랑하는 신하를 법대로 처단하여 질서를 바로잡음을 이르는 말 

 

제 1차 북벌(北伐)때 가정(街亭)의 전투 책임자로 임명한 마속(馬謖)이 제갈량의 지시를 어기고 자기의 얕은 생각으로 전투를 하다 참패를 가져왔다. 마속은 우수한 장수요, 제갈량과는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은 마량(馬良)의 아우였지만 제갈량은 한중으로 돌아오자 눈물을 머금고 마속의 목을 벤 뒤(泣斬馬謖) 장병들에게 사과를 한 것이다. 장관이 제갈량을 보고 "앞으로 천하(天下)를 평정(平定)하려 하는 이때에 마속 같은 유능한 인재를 없앴다는 것은 참으로 아까운 일입니다."하고 말하자 제갈량이 눈물을 흘리며 "손무가 싸워 항상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군율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이같이 어지러운 세상(世上)에 전쟁을 시작한 처음부터 군율을 무시하게 되면 어떻게 적을 평정(平定)할 수 있겠는가?"라고 대답(對答)했다는 것이다

 

 

와신상담 / 臥薪嘗膽  臥 누울 와 薪 섶 신 嘗 맛볼 상 膽 쓸개 담

 

겉뜻 : 섶에 누워 쓸개를 씹는다는 뜻

속뜻 : 원수를 갚으려고 온갖 괴로움을 참고 견딤을 이르는 말

 

유래 : 춘추시대(春秋時代), 월왕 구천과 싸워 크게 패한 오왕 합려는 적의 화살에 부상한 손가락의 상처가 악화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 임종 때 합려는 태자인 부차에게 반드시 구천을 쳐서 원수를 갚으라고 유명했다. 오왕이 된 부차는 부왕의 유명을 잊지 않으려고 '섶 위에서 잠을 자고' 자기 방을 드나드는 신하(臣下)들에게는 방문 앞에서 부왕의 유명을 외치게 했다. "부차야, 월왕 구천이 너의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이처럼 밤낮 없이 복수를 맹세한 부차는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면서 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 사실을 안 월왕 구천은 참모인 범려가 간했으나 듣지 않고 선제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월나라 군사는 복수심에 불타는 오나라 군사에 대패하여 회계산(會稽山)으로 도망갔다. 오나라 군사가 포위하자 진퇴양난에 빠진 구천은 범려의 헌책에 따라 우선 오나라의 재상(宰相) 백비에게 많은 뇌물을 준 뒤 부차에게 신하(臣下)가 되겠다며 항복을 청원했다. 이때 오나라의 중신 오자서가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 구천을 쳐야 한다'고 간했으나 부차는 백비의 진언에 따라 구천의 청원을 받아들이고 귀국까지 허락했다. 구천은 오나라의 속령이 된 고국으로 돌아오자 항상 곁에다 쓸개를 놔 두고 앉으나 서나 그 쓴맛을 맛보며 회계의 치욕을 상기했다. 그리고 부부가 함께 밭 갈고 길쌈하는 농군이 되어 은밀히 군사를 훈련하며 복수의 기회를 노렸다. 이로부터 20년이 흐른 뒷날 월나라 왕 구천이 오를 쳐 이겨 오왕 부차를 굴복시키고 마침내 회계의 굴욕을 씻었다. 부차는 용동에서 여생을 보내라는 구천의 호의를 사양하고 자결했다. 그 후 구천은 부차를 대신하여 천하(天下)의 패자가 되었다.

 

 

오월동주 / 吳越同舟  吳 성씨 오 越 넘을 월 同 한가지 동 舟 배 주

 

겉뜻 : 오(吳)나라 사람과 월(越)나라 사람이 한 배에 타고 있다라는 뜻
속뜻 : ①어려운 상황에서는 원수라도 협력하게 됨
②뜻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한자리에 있게 됨

 

유래 : 吳(오)의 합려(闔閭)와 越(월)의 윤상(允常)이 서로 원한이 있었고 윤상이 죽자 그의 아들 구천(句踐)이 오나라를 침략하여 합려를 죽이고 합려의 아들 부차(夫差)에게 구천이 회계산에서 항복 당하여 서로 물리고 무는 관계(關係)로 오나라와 월나라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이 되었다. 손자(孫子)가 말하기를 "오나라와 월나라는 원수처럼 미워하는 사이지만 그들이 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가 풍랑을 만났다고 가정한다면 원수처럼 맞붙어 싸우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양쪽 어깨에 붙은 오른손과 왼손의 관계(關係)처럼 도울 것이다.<夫吳人與越人(부오이여월)은 相惡也(상오야)나 當其同舟而濟(당기동주이제)라가 遇風(우풍)이면 其相救也(기상구야)는 如左右手(여좌우수)니라.>

 

 

우도할계 / 牛刀割鷄  牛 소 우 刀 칼 도 割 벨 할 鷄 닭 계

 

겉뜻 :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다는 뜻

속뜻 : 큰 일을 처리(處理)할 기능(技能)을 작은 일을 처리(處理)하는 데 씀을 이르는 말

 

유래 : 禮樂(예악)을 강조하던 공자(孔子)가 한번은 제자 子遊(자유)가 다스리는 武城(무성)을 지나게 되었다. 거리에선 거문고와 비파소리가 들려오고, 그 소리에 맞추어 詩書(시서)를 읊는 노랫소리가 들려 오고 있었다. 이에 공자(孔子)는 제자가 長(장)이 되어 다스리는 이 고을에서 絃歌(현가) 소리를 듣고는 평소의 가르침이 실현되는 것을 기쁘게 여기면서 "자유 자네, 무성 같은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데 허풍스럽게 현가 따위를 가르칠 필요(必要)가 뭐 있는가? 닭을 잡는 데 소를 잡는 큰칼을 쓰지 않아도 될 텐데?"하고 한마디했다. 그러자 자유는 "저는 선생님으로부터 백성(百姓)을 다스리는 자는 예악의 도를 배움으로써 백성(百姓)을 사랑하게 되고, 백성(百姓) 또한 예악의 도를 배움으로써 溫容(온용)하게 되어 잘 다스려지며, 예악의 도는 상하간에 중요(重要)하다고 배워 오직 이 가르침을 따랐을 뿐이옵니다."하고 말했다고 함

 

 

공자천주 / 孔子穿珠  孔 구멍 공 子 아들 자 穿 뚫을 천 珠 구슬 주

 

겉뜻 : 공자가 구슬을 꿴다는 말.

속뜻 : 자기보다 못한 사람에게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일깨우는 말
 
유래 : 공자(孔子)가 구멍이 아홉 구비나 되는 구슬을 얻었는데, 그것을 어떻게 꿴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에 아낙에게 물으니, “찬찬히 꿀[蜜]을 두고 생각해 보세요.”라고 하였다. 공자는 잠시 후 그 의미를 깨닫고는 나무 아래에 왔다갔다하는 개미를 한 마리 붙잡아 그 허리에 실을 묶고는 개미를 구슬의 한쪽 구멍에 밀어 넣고, 반대편 구멍에는 꿀을 발라, 구슬을 실에 꿸 수 있게 되었다.
 
 

득롱망촉 / 得隴望蜀  得 얻을 득 隴 고개 이름 롱(농) 望 바랄 망 蜀 나라 이름 촉

 

겉뜻 : 농(隴)나라를 얻고 나니 촉(觸)나라를 갖고 싶다는 뜻

속뜻 : 인간의 욕심은 한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

 

유래 : 삼국시대, 위(魏)나라 조조(曹操)와 촉나라의 유비(劉備)가 한참 싸울 때의 일이다. 조조는 촉나라 북쪽에 연결되는 섬서성 남쪽 농 땅까지 쳐들어가 그 일대를 수중에 넣었다. 이때 조조의 부하 사마의가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촉나라의 본거지를 뺏을 수 있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조조는 "인간(人間)이 만족하기란 쉽지 않아. 이미 농 땅을 얻었으니 촉까지 바랄 것이야 없지 그것은 지나친 욕심(欲心ㆍ慾心)이야."하고 말했다. 조조는 그것이 너무 무리인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후한(後漢)의 광무제에게도 그가 농서(隴西)를 평정(平定)한 뒤에 다시 촉을 친 데서 유래(由來)한 이와 비슷한 고사가 있음

 

 

비육지탄 /  髀肉之嘆  髀 넓적다리 비 肉 고기 육 之 갈 지 嘆 탄식할 탄

 

겉뜻 : 장수가 전쟁에 나가지 못하여 넓적다리에 살이 피둥피둥 찌는 것을 한탄한다는 뜻

속뜻 : 뜻을 펴보지 못하고 허송세월을 보낸다는 의미

 

유래 : 유비(劉備)가 아직 뜻을 이루지 못하고 차차 주위의 주목(注目)을 끌기 시작하던 때의 어느 날, 자신의 넓적다리에 살이 올라 있는 것을 보고는 "이제 말을 다시 탈 수 없게 넓적다리에 살만 올랐구나. 세월은 헛되이 흘러 내 이미 늙고, 아직도 나라에 공도 세우지 못했으니……."하고 혼자서 탄식했다 함

 

 

발본색원 / 拔本塞源  拔 뽑을 발 本 근본 본 塞 막힐 색 源 근원 원

 

겉뜻 : 근본을 빼내고 원천을 막아 버린다는 뜻

속뜻 : 사물의 폐단(弊端)을 없애기 위해서 그 뿌리째 뽑아 버림을 이르는 말

 

유래 : 나에게 큰아버지가 계심은 마치 의복에다 갓이나 면류관을 갖춘 것과 같고, 나무의 뿌리와 물의 수원이 있는 것과 같고 백성(百姓)들에게 지혜로운 임금이 계신 것과 같다. 「백부께서 만약 갓을 찢고 면류관을 부수고 근본을 뽑고 근원 을 막으며 오로지 지혜로운 임금을 버리신다면 비록 오랑캐일지라도 그 어찌 나 한 사람뿐이리오. <伯父(백부)가 若裂冠毁冕(약렬관훼면)하고 拔本塞源(발본색원)하며 專棄謀主(전기모주)하면 雖戎(수융) 狄(적)이라도 其何有余一人(기하유여일인)이리오.>」

 

 

간뇌도지 / 肝腦塗地  肝 간 간 腦 골 뇌 塗 칠할 도 地 땅 지

 

겉뜻 : 간과 뇌장을 땅에 쏟아낸다는 뜻

속뜻 : 나라를 위하여 목숨을 돌보지 않고 힘을 다함

 

유래 : 사지에서 아두를 구해온 조운에게 유비가 도리어 아두를 땅바닥에 집어던지며, '이 아이 하나 때문에 명장을 잃을 뻔 했구나!'고 탄식하자 조운이 감복하여 '간과 뇌장을 쏟아내도 주공의 은공을 갚을수 없겠습니다'고 말하였다.

 

 

거재두량 / 車載斗量  車 수레 거, 수레 차 載 실을 재 斗 말 두 量 헤아릴 량

 

겉뜻 : 수레에 싣고 말(斗)로 될 수 있을 정도라는 뜻

속뜻 : 인재(人材)나 물건이 아주 많음을 비유함 

 

유래 : 삼국시대 촉(蜀)나라가 오(吳)나라를 침공하려 하자 오왕(吳王) 손권(孫權)은 위(魏)나라에 도움을 요청하러 조자(趙咨)를 보냈다. 위와(魏王) 조비(曺丕)가 그를 맞아 손권(孫權)에 대하여 묻자 조자는, "그는 총명과 지혜와 어짐을 겸비했으며 뛰어난 계략을 가진 분입니다." 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조비가 비웃자 조자는, "오나라에는 백만의 군대(軍隊)와 천연의 험악한 지형을 가지고 있어 두려움이 없으나 남의 나라를 침략하려 드는 촉을 혼내 주기 위해 구원병을 청하러 온 것뿐입니다."하고 대답(對答)했다. 조비가 다시 "그대와 같은 인물(人物)이 오나라에는 얼마나 있는가?"하고 묻자, 조자는 답했다. "저와 같은 인물(人物)은 수레에 싣고 말로 될 정도(車載斗量)로 많이 있습니다."조비는 이 말을 듣고 매우 감탄(感歎ㆍ感嘆)하여 두 나라는 군사 동맹을 맺게 되었다.

 

 

망매해갈 / 望梅解渴  望 바랄 망 梅 매화 매 解 풀 해 渴 목마를 갈

 

겉뜻 : 매실은 시기 때문에 이야기만 나와도 침이 돌아 해갈(이 된다는 뜻

속뜻 : ①매실의 맛이 아주 심 ②공상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음


유래 : 목이 마른 병졸(兵卒)이 신 매실 이야기를 듣고 침이 고여 목마름을 풀었다는 故事(고사)에서 유래(由來) 어느 초여름 하루였다. 위(魏)나라의 조조(曹操)는 군대(軍隊)를 이끌고 작전에 나섰다. 대단히 무더운 날씨로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었다. 군사들은 타는 듯한 무더위 속을 질서정연하게 진군했다.해가 중천에 뜨자 더위는 점점 더해, 군복은 땀으로 흠뻑 젖고, 행군의 발걸음도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더위에 지쳐 쓰러지는 자도 나왔다. 이것을 본 조조는 몹시 초조했다. 그래서 사람을 시켜 길라잡이를 찾아 내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 근처에 샘은 없느냐?"길라잡이는 머리를 저었다. "샘물은 북쪽의 골짜기에 있을 뿐입니다." "거기까지 얼마나 걸리느냐?" "두 시간은 걸릴 것입니다?" "그건 곤란(困難)한데. 그 밖에는 없는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찾고 있는 사이에 모두 쓰러지고 말 것입니다" "알았다. 내게 좋은 생각이 있다."조조는 군의 선두로 말을 몰아 전방을 가리키며 큰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저 산에는 매화나무 숲이 있고, 달콤새콤한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고 한다. 힘을 내어라, 힘든 것도 잠시다."이 소리를 들은 장병은 저도 모르게 입에 침이 흥건해졌다. 그리고 기운을 되찾아, 말에 채찍을 가한 조조의 뒤를 따랐다. 마치 피로와 갈증은 잊은 듯 했다.그러나 매화나무 숲은 아무 데도 없었다. 장병들은 낙담했으며, 갈증은 한층 심해졌다. 조조는 전군을 휴식(休息)시키고, 길라잡이에게 건강한 병사를 딸려 물을 찾아 나서게 했다. 길라잡이와 병사들이 꼬불꼬불한 좁은 길을 지나 산을 넘고 평지로 나서자, 홀연 그다지 멀지 않은 전방으로부터 좔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 왔다. "물이다. 물이 있다."환성이 아래에 있는 부대까지 들렸다. 장병들은 분발했다. 조조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물을 길어 오라고 명령(命令)했다.장병들은 마음껏 물을 마셨다.갈증과 피로가 가신 군대(軍隊)는 잠시 휴식(休息)을 취하고 나서 다시 전진을 계속했다.

 

 

군맹무상 / 群盲撫象  群 무리 군 盲 소경 맹 撫 어루만질 무 象 코끼리 상 

 

겉뜻 : 여러 소경이 코끼리를 어루만진다는 뜻

속뜻 : 곧 범인(凡人)은 모든 사물을 그릇 판단하거나 그 일부밖에 파악하지 못함의 비유
 
유래 : 어느 날, 임금이 대신들에게 명하여 코끼리를 끌어다가 소경들에게 보여주라 했다. 소경들은 코끼리라는 짐승이 앞에 있다는 말을 듣고서 신기해 제각기 어루만져 보았다. 그러자 임금님이 소경들을 불러 코끼리의 생김새를 물어 보았다. 이에 상아를 만져 본 소경이 "코끼리는 큰 무처럼 생겼사옵니다."하고 말했다. 다음에는 귀를 만져 본 소경이 "아니옵니다. 코끼리는 곡식을 까부르는 키처럼 생겼사옵니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머리를 만진 소경이 "아니옵니다. 코끼리는 돌처럼 생겼사옵니다."하고 말했다. 다음에는 코를 만진 소경이 "코끼리는 틀림없이 절구공이처럼 생겼습니다."하고 말했다. 그러자 다리를 어루만진 소경이 "코끼리는 틀림없이 절구통처럼 둥그렇게 생겼사옵니다."하고 말했다. 또 등을 만졌던 소경이 "아니옵니다. 코끼리는 평상(平床)처럼 생겼사옵니다."하고 말했다. 배를 만진 소경이 "코끼리는 꼭 밧줄처럼 생겼사옵니다."하고 말했다. 이글을 소개한 불경에는 " 선남자들이여, 이 소경들은 코끼리를 제대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잘못 말한 것도 아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이 코끼리의 전부는 아니지만 이것을 떠나서 또 달리 코끼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여기 나오는 코끼리는 불성(佛性)을, 소경은 어리석은 중생을 비유한 말인데, 중생은 불성을 부분적으로만 이해하고 있고, 또 모든 중생에게는 다 불성이 있다는 것을 함시해 주고 있음.

 

 

삼인성호 / 三人成虎  三 석 삼 人 사람 인 成 이룰 성 虎 범 호

 

겉뜻 :세 사람이 짜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도 할 수 있다는 뜻

속뜻 :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하면 곧이듣는다는 말.

 

유래 : 전국 시대, 위(魏:梁)나라 혜왕(惠王) 때의 일이다. 태자와 중신 방총이 볼모[人質]로서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邯鄲)으로 가게 되었다. 출발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방총이 심각한 얼굴로 혜왕에게 이렇게 물었다. "전하, 지금 누가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전하께서는 믿으시겠나이까?" "누가 그런 말을 믿겠소." "하오면, 두 사람이 똑같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났다고 한다면 어찌하시겠나이까?" "역시 믿지 않을 것이오." "만약,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그땐 믿으시겠나이까? " "그땐 믿을 것이오." "전하,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날 수 없다는 것은 불을 보듯 명백한 사실이옵니다.

 

하오나 세 사람이 똑같이 아뢴다면 저잣거리에 호랑이가 나타난 것이 되옵니다. 신은 이제 한단으로 가게 되었사온데, 한단은 위나라에서 저잣거리보다 억만 배나 멀리 떨어져 있사옵니다. 게다가 신이 떠난 뒤 신에 대해서 참언(讒言)을 하는 자가 세 사람만은 아닐 것이옵니다. 전하, 바라옵건대 그들의 헛된 말을 귀담아 듣지 마시오소서." "염려 마오.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과인은 두 눈으로 본 것이 아니면 믿지 않을 것이오." 그런데 방총이 한단으로 떠나자마자 혜왕에게 참언을 하는 자가 있었다. 수년 후 볼모에서 풀려난 태자는 귀국했으나 혜왕에게 의심을 받은 방총은 끝내 귀국할 수 없었다고 한다.

 

 

구밀복검 / 口蜜腹劍   입 구 蜜 꿀 밀 腹 배 복 劍 칼 검

 

겉뜻 : 입으로는 달콤함을 말하나 뱃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다는 뜻

속뜻 : 겉으로는 친절하나 마음속은 음흉한 것

 

유래 : 당나라 현종은 재위 초기에는 정치를 잘하여 칭송을 받았으나 점점 주색에 빠져들면서 정사를 멀리하였다. 당시 이임보라는 간신이 있었는데 임금의 총애를 받는 후궁(에게 환심을 사 재상에 올랐다. 그는 황제의 비위를 맞추면서 충신들의 간언이나 백성들의 탄원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고 환관과 후궁들의 환심을 사며 조정을 떡 주무르듯 했다. 질투심도 강하여 자기보다 더 나은 사람을 보면, 자기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이나 아닌지 두려워하여 가차없이 제거하였다. 그것도 자신의 권위를 이용한 강인한 수법으로는 절대로 하지 않고, 황제 앞에서 충성스러운 얼굴로 상대를 한껏 추켜 천거하여 자리에 앉혀 놓은 다음 음모를 꾸며 떨어뜨리는 수법을 썼다. 이임보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다음날은 쥐도 새도 모르게 주살되는 자가 반드시 생겼다. 따라서 꿈에라도 황제께 직언할 생각을 갖고 있는 선비들은 몸을 잔뜩 사릴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행태를 보고 그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이임보는 입으로는 달콤한 말을 하지만 뱃속에는 칼을 가지고 있으니 매우 위험한 인물이다."

 

 

구우일모 / 九牛一毛  九 아홉 구 牛 소 우 一 한 일 毛 터럭 모

 

겉뜻 : 아홉 마리 소에 털 한가닥이 빠진 정도라는 뜻

속뜻 : ①아주 큰 물건 속에 있는 아주 작은 물건

②여러 마리의 소의 털 중에서 한 가닥의 털 ③대단히 많은 것 중의 아주 적은 것의 비유

 

유래: 한나라 7대 황제인 무제 때, 흉노를 정벌하러 5,000의 군사를 이끌고 이릉이 출전하여 10여일간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말았다. 난전중에 죽은 줄 알았던 이릉이 흉노에 투항하여 후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안 무제는 이릉 일족을 참형하라 하였으나 중신들은 이릉을 변호할 인재가 없었다. 이에 분개한 사마천이 무제에게 아뢰기를 "소수의 보병으로 수만의 오랑캐와 싸우다 흉노에게 투항한 것은 훗날 황은에 보답할 기회를 얻기 위함일 것입니다." 라고 했다. 이에 진노한 무제는 사마천을 옥에 가두고 궁형(생식기를 잘라 없애는 형벌)을 내렸다. 세인들은 이때의 일을 '이릉의 화'라고 말한다. 이를 사마천은 친구인 임안에게 참담한 심경을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내가 법에 의하여 사형을 받아도 아홉마리의 소 중, 터럭 하나 없어지는 것을 뿐이니, 나와 같은 자가 땅강아지나 개미 같은 미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내가 이런 수치스런 일을 당하고도 죽지 않았으니 졸장부라고 여길걸세." 사마천이 이러한 자신의 처지를 가슴 아파하면서도 치욕을 무릅쓰고 살아가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당시 태사령(조정의 기록사서)이었던 아버지 사마담이 임종시 '통사'를 기록하라고 한 유언에 따라 『사기』를 집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2년 후 중국 최초의 역사서로서 불후의 명저로 손꼽히는 『사기』 130권이 완성되어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다.

 

 

부화뇌동 / 附和雷同  附 붙을 부 和 화할 화 雷 우레 뇌 同 한가지 동

 

겉뜻 : 우레 소리에 맞춰 함께 한다는 뜻

속뜻 : 자신의 뚜렷한 소신 없이 그저 남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을 의미함

 

유럐 :『예기(禮記)』 <곡례(曲禮)> 상(上)에 이런 말이 있다. "다른 사람의 말을 자기 말처럼 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지 마라. 옛 성현을 모범으로 삼고 선왕의 가르침에 따라 이야기하라." 이것은 손윗사람에게 아랫사람이 지켜야 할 예절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또 논어 <자로(子路)>편에는 이런 말이 있다.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는 화합하되 부화뇌동하지 않고 소인은 부화뇌동하되 화합하지 않는다(子曰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군자는 남을 자기 자신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남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을 열심히 수행하므로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반대로 소인은 이익을 좇으므로 이익을 같이하는 사람끼리는 함께 행동하지만 남과는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우레가 한번 쳤다 하면 천지 만물은 이에 호응하듯이 연달아 덜컥 거린다. 이처럼 자신의 줏대와 기준을 망각한 채 이해관계에 따라서 혹은 무조건 남의 주장에 따르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방약무인 / 傍若無人  傍 곁 방 若 같을 약 無 없을 무 人 사람 인

 

겉뜻 :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여긴다는 뜻

속뜻 : 주위에 있는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이르는 말

 

유래 : 위(衛)나라 사람인 형가(荊軻)는 성격이 침착하고 생각이 깊으며, 문학과 무예에 능하였고, 애주가였다. 그는 정치에 관심이 많아 청운을 품고 위(魏)나라의 원군(元君)에게 국정에 대한 자신의 포부와 건의를 피력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연(燕)나라 및 여러 나라를 떠돌아 다니며 현인과 호걸과 사귀기를 즐겼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연나라에서 사귄, 비파(琵琶)의 명수인 고점리(高漸離)인데 이 두 사람은 호흡이 잘 맞아 금방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나 술판을 일단 벌여 취기가 돌면, 고점리는 비파를 켜고, 형가는 이에 맞추어 춤을 추며 고성 방가하였다. 그러다가 신세가 처량함을 서로 느껴 감정이 복받치면 둘이 얼싸안고 울기도 웃기도 하였다. 이때 이 모습은 마치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傍若無人> 보였다. 원래 방약무인은 아무 거리낌없이 당당한 태도를 말하였는데 변해서 천방지축으로 날뛰고, 무례하거나 교만한 태도를 표현할 때 인용된다. 이후 진(秦)나라의 정(政:훗날 시황제)에게 원한을 품고 있던 연나라의 태자 단(丹)이 형가의 재주를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 진시황제(秦始皇帝) 암살을 부탁하였다. 형가는 단의 부탁으로 진시황제(秦始皇帝) 암살을 기도하였지만 진시황제(秦始皇帝)의 관복만 뚫었을 뿐 암살은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그는 진시황제(秦始皇帝)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암살하기 위해 진(秦)나라로 떠나기 전 그가 읊은 노래 "바람은 쓸쓸하고 역수는 찬데 장사 한 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風蕭蕭兮易水寒 壯士一去不還>"라는 귀절은 유명하다. 이 노래를 들은 이는 모두 눈을 부라리고 머리카락이 하늘로 솟았다고 한다.

 

 

백아절현 / 伯牙絶絃  伯 맏 백 牙 어금니 아 絶 끊을 절 絃 줄 현

 

겉뜻 : 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어 버렸다는 뜻

속뜻 : 자기를 알아주는 절친한 벗, 즉 지기지우(知己之友)의 죽음을 슬퍼함을 이르는 말

 

유래 : 춘추(春秋)시대에 거문고의 명인(名人)인 백아(伯牙)와 그의 거문고를 잘 알아 주었던 친구(親舊) 종자기(鍾子期)의 이야기다. 「백아가 거문고를 타면 종자기는 그것을 들었다. 거문고를 타는 뜻이 큰산에 있으면 산이 우뚝하구나 하고 뜻이 흐르는 물에 있으면 출렁출렁하도다 라고 말했다. 종자기가 죽자 백아는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세상(世上)에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음을 슬퍼했다. <伯牙鼓(백아고) 琴(금)이면 鍾子期聽之(종자기청지)하다. 知在太山(지재태산)이면 則巍巍(칙외외)로다하고 志在流水(지재유수)면 則曰湯湯(칙왈탕탕)하도 다하다. 子期(자기)가 死(사)하니 伯牙絶鉉(백아절현)하고 痛世無知音者(통세무지음자)하다.>」  

 

 

속수지례 / 束脩之禮  束 묶을 속 脩 육포 수 之 어조사 지 禮 예절 례

 

겉뜻 ; 묶은 육포의 예절이라는 말

속뜻 ; 스승을 처음 만나 가르침을 청할 때 작은 선물을 함으로써 예절을 갖춘다는 뜻.

 

유래 ;《논어》술이(述而)편에 나오는 말이다. 자왈(子曰;공자가 말하기를) 자행속수지이상 오미상무회언(自行束修之以上, 吾未嘗無誨焉;속수 이상의 예를 행한 자에게 내 일찍이 가르쳐주지 않은 바가 없었다.) 속수(束修)는 열 조각의 마른 고기로, 예물 가운데 가장 약소한 것이다. 공자는 모든 가르침은 예(禮)에서 시작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제자들에게 가장 작은 선물인 속수 이상의 예물을 가지고 오도록 함으로써 제자의 예를 지키도록 하였다. 여기에서 속수지례란 제자가 되기 위하여 스승을 처음 뵈올 때에 드리는 예물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여도지죄 / 餘桃之罪  餘 남을 여 桃 복숭아 도 之 어조사 지 罪 허물 죄

 

겉뜻 : '먹다 남은 복숭아를 먹인 죄'란 뜻

속뜻 : 애정과 증오의 변화가 심함의 비유.

 

유래 : 전국 시대, 위(衛)나라에 왕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彌子瑕)란 미동(美童)이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병이 났다는 전갈을 받은 미자하는 허락 없이 임금의 수레를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 당시 허락 없이 임금의 수레를 타는 사람은 월형 (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이라는 중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미자하의 이야기를 들은 왕은 오히려 효심을 칭찬하고 용서했다.

"실로 효자로다. 어미를 위해 월형도 두려워하지 않다니 …‥.

" 또 한 번은 미자하가 왕과 과수원을 거닐다가 복숭아를 따서 한 입 먹어 보더니 아주 달고 맛이 있었다. 그래서 왕에게 바쳤다. 왕은 기뻐하며 말했다."제가 먹을 것도 잊고 '과인에게 먹이다'니…‥. "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미자하의 자태는 점점 빛을 잃었고 왕의 총애도 엷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하가 처벌을 받게 되자 왕은 지난 일을 상기하고 이렇게 말했다. "이놈은 언젠가 몰래 과인의 수레를 탔고, 게다가 '먹다 남은 복숭아 [餘桃]'를 과인에게 먹인 일도 있다. " 이처럼 한 번 애정을 잃으면 이전에 칭찬을 받았던 일도 오히려 화가 되어 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수즉다욕 / 壽卽多辱  壽 목숨 수 卽 곧 즉 多 많을 다 辱 욕될 욕

 

겉뜻 : 오래 살면 욕됨이 많다는 뜻

속뜻 : 오래 살수록 고생이나 망신이 많음을 이르는 말

 

유래 : 堯(요)임금이 화주(華州)에 갔을 때 변방을 지키던 사람이 "성인이시여! 오래오래 사시고 부자가 되시옵고 아드님도 많이 두기를 비옵니다."하니 요임금이 대답하시기를 "아들을 많이 두면 걱정 근신이 많고 부유하면 일이 많고 오래 살면 욕됨이 많으니라. 세 가지는 덕을 길러 주는 까닭이 못되느니라. <多男子則多懼(다남자칙다구)요 富則多事(부칙다사)요 壽則多辱(수칙다욕)이라. 是三者(시삼자)는 非所以養德也(비소이양덕야)라.>"고 하였다. 그 사람이 "자식이 많다 해도 각각 제 할 일을 맡겨 주면 되고 부자가 되더라도 남에게 재물을 나누어주면 됩니다. 또한 삼환(三患 : 병ㆍ늙음ㆍ죽음)과 재앙이 없다면 오래 산다 해도 무슨 욕됨이 많단 말입니까?"라고 말하고 떠나려 하자 그 말에 감탄하여 요임금이 물을 것이 있다고 청했으나 돌아간다는 말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백척간두 / 百尺竿頭  百 일백 백 尺 자 척 竿 낚싯대 간 頭 머리 두 

 

겉뜻 :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

속뜻 : 위태로움이 극도에 달함  


매우 위태롭고 어려운 지경임을 말한다. 막다른 위험에 놓이게 됨을 뜻하는 말로 '백척간두에 서다'로 쓰이며 줄여서 '간두'라고도 한다. 또, 노력한 위에 한층 더 노력하는 상태 또는 마음가짐을 뜻하기도 한다.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 하여, 어떤 목적이나 경지(境地)에 도달하였어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욱 노력함을 뜻하거나, 충분히 언사(言辭)를 다하였어도 더 나아가서 정묘(精妙)한 말을 추가함을 말한다.

1004년(경덕1) 송나라의 도원이 저술한 불교서적인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쓰여 있으며, 자신의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스스로 극한상태에 올려놓고 정신의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뜻이다.

 

 

백년하청 / 百年河淸  百 일백 백 年 해 년(연) 河 물 하 淸 맑을 청

 

겉뜻 : 백 년을 기다린다 해도 황하(黃河)의 흐린 물은 맑아지지 않는다는 뜻

속뜻 : ①오랫동안 기다려도 바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이르는 말

②아무리 세월이 가도 일을 해결할 희망이 없음

③아무리 기다려도 가망 없어, 사태가 바로 잡히기 어려움

 

유래 : 초(楚)나라의 영윤(令尹) 자양(子襄)이 정(鄭)나라를 공격했을 때, 정(鄭)나라의 경대부 여섯 명이 회의를 열어, 자사(子駟)ㆍ자국(子國)ㆍ자이(子耳)는 항복하자 하고, 자공(子孔)ㆍ자교(子교)ㆍ자전(子展)은 진(晉)나라에 구원을 청하자고 주장했다. 자사가「주나라의 시에 이것이 있어 말하기를 황하의 물이 맑아지기를 기다린다면 사람의 수명이 얼마나 되겠는가? 점을 쳐 일하는 사람이 많으면 어수선해지고 그물에 걸려 움직일 수가 없게 된다.」라는 시를 인용하고, "대책을 세우는 사람이 많으면 일을 이루지 못하니 예물을 갖추어 초나라와 진(秦)나라 국경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강한 쪽에 붙어 백성(百姓)을 지키는 것이 좋지 아니한가?"라고 말했다. 그 후에 결국 초나라와 화친했다.

  

 

수주대토 / 守株待兎  守 지킬 수 株 그루 주 待 기다릴 대 兎 토끼 토

 

겉뜻 : 그루터기를 지켜 토끼를 기다린다는 뜻

속뜻 : 고지식하고 융통성이 없어 구습과 전례만 고집함

유래 : 송(宋)나라 사람 중에 밭을 가는 사람이 있었다. 밭 가운데 나무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풀숲에서 갑자기 한 마리의 토끼가 뛰어나오다가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었다. 농부가 이것을 보고 그 후부터 일도 하지 않으며 매일같이 그루터기 옆에 앉아서 토끼가 뛰어나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토끼는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며, 그 사이에 밭은 황폐해져서 쑥대밭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농부는 온 나라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한비(韓非子)는 이 이야기로 언제까지나 낡은 습관에 묶여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꼬고 있다. 한비가 살았던 시기는 전국 시대 말기인데 이 때는 전 시대에 비해 기술도 진보하고 생산도 높아졌으며, 사회의 성격도 변해 있었다. 그런데도 정치가 중에는 옛날의 정치가 이상적이라 하여 낡은 제도로 돌아갈 것만을 주장하는 사람이 많았다. 옛날에 훌륭한 것이었다고 해서 그것을 오늘날에 적응시키려는 것은 그루터기 옆에서 토끼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나 다를 것이 없다고 한비는 주장하였다.

 

 

미생지신 / 尾生之信  尾 꼬리 미 生 날 생 之 갈 지 信 믿을 신

 

겉뜻 : 미생의 믿음이란 뜻

속뜻 : ①우직(愚直)하게 약속(約束)만을 굳게 지킴

②또는 융통성(融通性)이 없이 약속(約束)만을 굳게 지킴을 비유(比喩)

 

유래: 魯(노)나라에 미생(尾生)이라는 사람은 일단 남과 약속을 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지키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어느 날, 여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는데, 여자는 그 시간에 나타나질 않았다. '조금 더 조금 더'하고 기다리고 있던 중 소나기가 쏟아져 큰 개울물이 갑자기 불어났다. 그러나 미생은 '이 다리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으니, 이 자리를 떠날 수는 없다.'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교각(橋脚)을 붙잡고 버텼으나 급류에 휘말려 떠내려가고 말았다. 장자(莊子)는 도척편에서 "이런 자는 책형(기둥에 결박하여 세우고 창으로 찔러 죽이는 형벌)된 개, 물에 쓸린 돼지, 깨어진 사발을 한 손에 들고 걸식하는 거지와 같으며, 사소한 명목에 끌려 진짜 귀중한 목숨을 소홀히 하는 자이며, 참다운 삶의 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놈이니라." 하고, 그 어리석음을 규탄하면서 이는 신의에 얽매인데서 오는 비극이라 하였다.

  

 

낭중지추 / 囊中之錐  囊 주머니 낭 中 가운데 중 之 갈 지 錐 송곳 추

 

겉뜻 :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

속뜻 :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 비유적 의미

 

유래: 전국시대 말엽, 진나라의 공격을 받은 조나라 혜문왕은 동생이자 재상인 평원군을 초나라에 보내어 구원군을 청하기로 했다. 20명의 수행원이 필요한 평원군은 그의 3000여 식객중에서 19명은 쉽게 뽑았으나, 나머지 한 명을 뽑지못한 채 고심했다. 이 때에 모수라는 식객이 "나리, 저를 데려가 주십시오."하고 나섰다. 평원군은 어이없어 하며 "그대는 내집에 온 지 얼마나 되었소?"하고 물었다. 그가 "이제 3년이 됩니다."하고 대답하자 "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 끝이 밖으로 나오듯이 남의 눈에 드러나는 법이오. 그런데 내 집에 온 지 3년이나 되었다는 그대는 단 한 번도 이름이 드러난 일이 없지 않소?"하고 반문하였다. 모수는 "나리께서 이제까지 저를 단 한번도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주머니 속에 넣어 주신다면 끝뿐이 아니라 자루까지 드러내 보이겠습니다."하고 재치있는 답변을 하였다. 만족한 평원군은 모수를 수행원으로 뽑았고, 초나라에 도착한 평원군은 모수가 활약한 덕분에 국빈으로 환대받고, 구원군도 얻을수 있었다고 함

  

 

형설지공 / 螢雪之功  螢 반딧불 형 雪 눈 설 之 갈 지 功 공 공

 

겉뜻 : 반딧불과 눈빛으로 이룬 공이라는 뜻

속뜻 : 가난을 이겨내며 반딧불과 눈빛으로 글을 읽어가며 고생 속에서 공부(工夫)하여 이룬 공을 일컫는 말

 

유래 : 진(晉)나라의 차윤(車胤)이라는 소년이 있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전한 노력가로 공부를 열심히 했으나 집안이 가난해 등불을 켜는 데 사용하는 기름조차 없었다. 소년은 밤에도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한 끝에 엷은 명주 주머니를 벌레통처럼 만들어 그 속에 반디를 수십 마리 집어넣어 거기서 나오는 빛으로 책을 비추어 읽었다. 이렇게 열심히 노력한 끝에 상서랑(尙書郞)이라는 중앙 정부의 고급 관리로 출세했다. 또 같은 시대에 손강(孫康)이라는 소년은 어릴 때부터 악한 무리들과 사귀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으나 역시 집안이 가난해 등불을 켤 기름을 살 수가 없었다. 소년은 궁리 끝에, 겨울날 추위를 견디며 창으로 몸을 내밀고 쌓인 눈에 반사되는 달빛을 의지해 책을 읽었다. 그 결과 어사대부(御史大夫)라는 관원을 단속하는 관청의 장관이 되었다.

 

 

배반낭자 / 杯盤狼藉  杯 잔 배 盤 쟁반 반 狼 어지러울 낭 藉 어지러울 자

 

겉뜻 ; 술잔과 그릇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는 뜻

속뜻 ; 한창 술을 흥겹게 마시고 노는 모양 또는 술자리가 끝난 이후의 난잡한 모습을 나타내는 말.

 

유래 ;《사기(史記)》의 〈골계열전(滑稽列傳)〉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춘추전국시대 제(齊)나라의 유명한 해학가 순우곤은 언변이 뛰어나 여러 차례 사신으로 파견되었지만 비굴한 모습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초(楚)나라의 침략을 불시에 받은 제나라 위왕(威王)은 조(趙)나라에게 구원군을 요청하기 위해 순우곤을 파견하였다. 순우곤이 조나라 병사 10만 명과 전차 1,000승(乘)을 이끌고 제나라로 돌아오자 이를 본 초나라 병사는 밤에 철수해 버렸다. 위기를 모면한 위왕은 매우 기뻐하여 순우곤을 위해 축하연을 베풀었다. 이 술자리에서 위왕과 순우곤의 대화 가운데 순우곤이 “날이 저물어 술도 거의 떨어지게 되어 취흥이 돌면 남녀가 무릎을 맞대고 서로의 신발이 뒤섞이며 술잔과 그릇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으며[杯盤狼藉]”라고 대답한 데서 배반낭자가 나왔다.

 

또한 지혜롭고 상대편의 마음을 잘 읽는 순우곤은 주색을 겸비한 위왕에게 간접적으로 다음과 같이 간(諫)하였다. “술이 극에 달하면 어지러워지고, 즐거움이 극에 달하면 슬퍼지는데 만사가 모두 그와 같습니다[酒極則亂 樂極則悲 萬事盡然].” 이 말은 곧 달도 차면 기울고 모든 사물이 그와 같으므로 나라의 운세도 같다는 뜻이다. 이후 위왕은 순우곤의 진솔하고 충직함을 깨닫고 철야로 주연을 베푸는 것을 삼갔다고 하며, 순우곤을 제후의 주객(主客:외국사신을 접대하는 관리의 우두머리)으로 삼아 왕실의 주연이 있을 때는 꼭 곁에 두고 술을 마셨다고 한다. 배반낭자는 구양수(歐陽脩)의 〈취옹정기(醉翁亭記)〉에도 나온다. 오늘날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과도하게 술을 마셔 몸과 마음을 해치는, 나아가 사회 분위기가 혼탁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경계하는 의미에서 배반낭자라는 고사성어가 주는 의미는 크다.

 

 

만사일생 / 萬死一生  萬 일만 만 死 죽을 사 一 한 일 生 살 생

 

겉뜻 ; 만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난다는 말

속뜻 ; 요행히 살아나거나 겨우 죽음을 모면하는 것을 뜻한다.

 

유래 : 수나라 말, 정국이 어수선해지자 두건덕, 두복위, 맹해공, 곽자화 등을 필두로 하는 반란군이 전국 각지에서 일어났다. 황제는 이연에게 이들을 진압하도록 명령을 내렸고, 이때 18세의 나이였던 이세민도 참가하였다. 그런데 황제는 이연이 출정한 뒤, 사람을 시켜 그가 반란군에 동조하지 않는지 감시하도록 했다. 이세민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반란군의 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늘어만 가고 있습니다. 아버님께서 이들을 전부 토벌할 수 있습니까? 만약 이들을 토벌하지 못한다면, 황제는 아버님께 벌을 내릴 것입니다." 그리고는 직접 군대를 일으켜 자립할 것을 권하였다. 그래서 이연은 태원을 거점으로 하여 병사를 일으키고 다른 곳에서 일어난 반란군들을 회유하여 하나하나 자신의 세력 밑으로 끌어들였다. 이 과정에서 수양제는 우문화에게 시해되고, 수나라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중국 통일의 염원을 이세민이 이룬 것이다. 이세민이 천하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생사고락을 같이한 수많은 인재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가령 진숙보, 장량, 이정, 이훈, 방현령, 두여회 등이다. 이세민이 재능 있는 인사를 아꼇다는 것은 이정과의 인연에서 엿볼 수 있다. 일찌기 이연이 병사를 일으키려고 했을 때, 이 사실을 눈치 챈 관리가 있었는데, 그가 바로 이정이다. 이정은 장안으로 가서 보고하려고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때 이연은 자신의 거사를 망치려고한 이정을 죽이려고 했지만, 이세민은 아버지를 만류하고 훗날 재상으로 삼았다. 이정은 평상시 자신보다 지혜와 능력이 월등한 사람을 보면 자기 자리를 서슴없이 내놓는 그런 사람이다. 이세민은 그의 이러한 면을 아꼈던 것이다. 이세민은 정관황제가 된 이후에도 사람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방현령은 나를 따라 천하를 평정하느라 고생을 하고, 만번의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오기도 하였다."

 

 

득어망전 / 得魚忘筌  得 얻을 득 魚 고기 어 忘 잊을 망 筌 가리 전

 

겉뜻 :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린다는 뜻

속뜻 : 목적을 이루면 그 때까지 수단으로 삼았던 사물은 무용지물이 됨을 이르는 말.

 

유래 :"전(筌)은 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나 고기를 잡고 나면 전은 잊어버리게 된다. 제(蹄 : 덫)는 짐승 을 잡기 위한 것이나 짐승을 잡고 나면 제는 잊어버린다. 말(言)은 뜻을 나타내는 것이나 뜻을 다 알게되면 그 말은 잊어버린다." (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 여기서 망전(忘筌), 망제(忘蹄), 망언(忘言)은 어느 것이나 시비와 선악 같은 것을 초월한 절대의 경지를 말하고 있다.

상대를 초월하여 이 세상의 만물은 한몸이라 고 생각하는 절대적인 경지에 서면,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으며, 선한 것도 악함도 없으며, 아름다운 것도 추한 것도 없다는 것이 장자의 주장인 것이다. 그러나 장자가 보는 그 당연한 일 면을 보통 사람들은 인간의 기회주의적인 모순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갈택이어 /竭澤而漁  竭 다할 갈 澤 못 택 而 말이을 이 漁 고기잡을 어

 

겉뜻 ; 연못의 물을 모두 퍼내 고기를 잡는다는 뜻

속뜻 ;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여 먼 장래를 생각하지 않는 것을 말함.

 

유래 ;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 춘추시대 진(晉)나라 문공(文公)은 성복(城)이라는 곳에서 초(楚)나라와 일대 접전을 벌이게 되었다. 그러나 초나라 군사의 수가 진나라 군사보다 훨씬 많을 뿐만 아니라, 병력 또한 막강하였으므로 승리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방법이 없을까 궁리하다 호언(狐偃)에게 물었다. "초나라의 병력은 많고 우리 병력은 적으니 이 싸움에서 승리할 방법이 없겠소"라고 하자 호언은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예절을 중시하는 자는 번거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고, 싸움에 능한 자는 속임수를 쓰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속임수를 써 보십시오." 문공은 다시 이옹(李雍)의 생각을 물었다. 이옹은 호언의 속임수 작전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별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다만 이렇게 말했다. "못의 물을 모두 퍼내어 물고기를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그 훗날에는 잡을 물고기가 없게 될 것이고, 산의 나무를 모두 불태워서 짐승들을 잡으면 잡지 못할 리 없지만 뒷날에는 잡을 짐승이 없을 것입니다(竭澤而漁 豈不獲得 而明年無魚 焚藪而田 豈不獲得 而明年無獸). 지금 속임수를 써서 위기를 모면한다 해도 영원한 해결책이 아닌 이상 임시 방편의 방법일 뿐입니다." 이옹의 비유는 눈앞의 이익만을 위하는 것은 화를 초래한다고 본 것이다.

 

 

남가일몽 /南柯一夢  南 남녘 남 柯 가지 가  一 한 일 夢 꿈 몽

 

겉뜻 : 남쪽 나뭇가지의 꿈이란 뜻.

속뜻 : ① 덧없는 한때의 꿈.

② 인생의 덧없음의 비유.

③ 꿈과 같이 헛된 한 때의 부귀 영화.

유래 : 당(唐)나라 9대 황제인 덕종(德宗 : 780-804) 때 광릉(廣陵) 땅에 순우분 (淳于분)이란 사람이 있었다. 어느날, 순우분이 술에 취해 집 앞의 큰 홰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다. 그러자 어디서 남색 관복을 입은 두 사나이가 나타나더니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괴안국왕(槐安國王)의 명을 받고 대인(大人)을 모시러 온 사신 이옵니다." 순우분이 사신을 따라 홰나무 구멍 속으로 들어가자 국왕이 성문 앞에서 반가이 맞이했다. 순우분은 부마(駙馬)가 되어 궁궐에서 영화를 누리다가 남가(南柯) 태수를 제수(除授) 받고 부임했다. 남가군을 다스린 지 20년, 그는 그 간의 치적을 인정받아 재상(宰相)이 되었다. 그러나 때마침 침공해 온 단라국군(檀羅國軍)에게 참패하고 말았다. 설상가상 (雪上加霜)으로 아내까지 병으로 죽자 관직을 버리고 상경했다. 얼마 후 국왕은 '천도(遷都)해야 할 조짐이 보인다'며 순우분을 고향으로 돌려 보냈다.

 

잠에서 깨어난 순우분은 꿈이 하도 이상해서 홰나무 뿌리 부분을 살펴보았다. 과연 구 멍이 있었다. 그 구멍을 더듬어 나가자 넓은 공간에 수많은 개미의 무리가 두 마리의 왕 개미를 둘러싸고 있었다. 여기가 괴안국이었고, 왕개미는 국왕 내외였던 것이다. 또 거기서 '남쪽으로 뻗은 가지 [南柯]'에 나 있는 구멍에도 개미떼가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남가군이었다. 순우분은 개미 구멍을 원상태로 고쳐 놓았지만 그날 밤에 큰 비가 내렸다. 이튿날 구멍 을 살펴보았으나 개미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천도(遷都)해야 할 조짐'이란 바로 이 일이었던 것이다.

 

 

남귤북지 / 南橘北枳  南 남녘 남 橘 귤 귤 北 북녘 북 枳 탱자 지

 

겉뜻 : 남쪽 땅의 귤나무를 북쪽에 옮겨 심으면 탱자 나무로 변한다는 뜻

속뜻 : 사람도 그 처해 있는 곳에 따라 선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됨을 이르는 말 

 

유래 : 옛날 제(齊)나라에 안영이란 유명한 재상(宰相)이 있었다. 안영의 이름을 들은 초(楚)나라의 임금은 자기 나라에 그를 초청했다. 온 천하(天下) 사람이 칭찬(稱讚)하는 안영을 놀려 주겠다는 타고난 심술 때문이었다. 초나라의 임금은 간단한 인사말을 나누기가 바쁘게 한 죄인을 불러 놓고 말했다. "너는 어느 나라 사람이냐?""제나라 사람입니다""무슨 죄를 지었느냐?""절도죄를 지었습니다"임금은 안영을 보고 말했다."제나라 사람은 원래 도둑질을 잘 하는 모양이군요"그러자, 안영은 태연하게 다음과 같이 대답(對答)했다."강 남쪽의 귤을 강 북쪽으로 옮기면 탱자가 되고 마는 것은 토질 때문입니다. 저 제나라 사람이 제나라에 있을 때는 도둑질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초나라로 와서 도둑질을 한 것을 보면 초나라의 풍토가 좋지 않은가 하옵니다"

 

 

전거후공 / 前倨後恭  前 앞 전 倨 오만할 거 後 뒤 후 恭 공손할 공

 

겉뜻 ; 이전에는 거만하다가 나중에는 공손하다는 뜻

속뜻 ; 상대편의 입지에 따라 대하는 태도가 상반되는 것을 비유한다.

 

유래 ; 춘추전국시대에 종횡가(縱橫家)로 손꼽히는 소진(蘇秦)이 있었다. 그는 본래 낙양(洛陽) 사람으로 귀곡자(鬼谷子)를 스승으로 섬겼고, 수년 동안 제후들에게 유세하러 다니기도 했으나 모두 실패하여 결국 실의에 빠진 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의 낙향에 아내와 형제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형수는 노골적으로 경멸하며 비웃었다. 소진은 두문불출하고는 마침내 종횡의 이론을 생각했다. 소진은 연(燕)나라와 조(趙)나라로 가서 제(齊), 초(楚), 위(魏), 한(韓)등 6개 나라가 연합하여 막강한 진(秦)나라에 대항하자는 건의를 했다. 결국 그의 견해는 받아들여져 6국은 소진을 승상의 지위까지 맡겨 진나라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소진은 어느 날 북방에 있는 조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옛날 생각이 나서 고향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그가 집에 도착하자, 그의 형제와 아내는 감히 그를 쳐다보지도 못하고 곁눈질하며 시중을 들었다. 특히 형수의 태도는 더욱 공손하였다. 소진은 그 모습을 보고 형수에게 물었다.

 

“옛날에는 무척 거만했는데, 지금은 이다지도 공손해지셨습니까?” “이제는 서방님의 지위가 높아 감히........”

 이 말을 듣고 난 소진은 한탄하며 이렇게 되뇌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은 소진인데, 부귀할 때는 남들이 두려워하고 빈천할 때는 멸시하니, 부와 명예가 이렇게도 대단하던가!”

 

우리 주변에도 소진의 형수 같은 무리들이 적지 않음을 자주 보게 된다. 특히 권력을 장악하고 있을 때와 그렇지 못할 때 추종자들의 그들에 대한 상반된 태도는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는 면이 많다.

 

 

이관규천 / 以管窺天  以 써 이 管 대롱 관 窺 엿볼 규 天 하늘 천

 

겉뜻 : 대롱 구멍으로 하늘을 엿보다.

속뜻 : 좁은 소견으로 사물을 살펴 보았자 그 전체의 모습을 파악할 수 없다.

 

유래 : 춘추시대 말기의 일이다. 뒷날 동양 의학의 원조(元祖)이자 의성(醫聖)으로도 일컬어지는 편작(扁鵲)이 괵이라는 나라에 갔을 때였다. 마침 병을 앓던 이 나라의 태자가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편작은 궁정의 의사를 찾아 갔다. 태자의 병이 무슨 병인가를 물어보고 현재의 상태를 알아낸 편작은 말했다. "그럼 내가 태자를 소생시켜 보겠습니다." 편작이 팔을 걷고 나서자 궁정의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무책임한 말씀은 삼가시오. 어린애도 그런 말은 곧이듣지 않을게요." 그러자 편작은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하듯 말했다. "당신의 의술 따위는 '대롱으로 하늘을 엿보며(以管窺天)' 좁은 틈새로 무늬를 보는 것과 같소." 잠시 뜸을 들였다가 편작은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내 말을 정 믿지 못하겠다면 다시 한번 태자를 살펴보시오. 그의 귀가 울고 코가 벌름거리는 소리가 들려올게요. 그리고 양쪽 사타구니를 쓰다듬다가 음부에 손이 닿으면 그곳은 아직 따뜻할 것이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진찰해보니 편작이 말한 그대로이자, 궁정의사는 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괵나라 임금은 편작에게 매달렸다. 편작이 침을 놓자 태자는 소생했고 치료를 더하자 20일 후에는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사람들은 편작이 죽은 사람도 소생시킬 수 있다고 말하자 편작은 이렇게 말했다. "죽은 사람을 소생시킨 게 아니오.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고친 것뿐이오'" 

 

 

마부작침 / 磨斧作針  磨 갈 마 斧 도끼 부 作 만들 작 針 바늘 침

 

겉뜻 ;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말

속뜻 ;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뜻.

 

유래 ; 남송(南宋) 때 축목(祝穆)이 지은 지리서 《방여승람(方與勝覽)》과 《당서(唐書)》 문예전(文藝傳)에 보이는 말이다. 당(唐)나라 때 시선(詩仙)으로 불린 이백(李白)은 서역의 무역상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촉(蜀)에서 보냈다. 젊은 시절 도교(道敎)에 심취했던 이백은 유협(遊俠)의 무리들과 어울려 쓰촨성[泗川省] 각지의 산을 떠돌기도 하였다. 이때 학문을 위해 상의산(象宜山)에 들어갔던 이백이 공부에 싫증이 나 산에서 내려와 돌아오는 길에 한 노파가 냇가에서 바위에 도끼를 갈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상하게 생각한 이백이 물었다.

 

 "할머니,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신 것입니까?" "바늘을 만들려고 한단다. " 노파의 대답을 들은 이백이 기가 막혀서"도끼로 바늘을 만든단 말씀입니까?" 하고 큰 소리로 웃자, 노파는 가만히 이백을 쳐다보며 꾸짖듯 말하였다. "얘야, 비웃을 일이 아니다. 중도에 그만두지만 않는다면 언젠가는 이 도끼로 바늘을 만들 수가 있단다."

 

이 말을 들은 이백은 크게 깨달은 바 있어 그 후로는 한눈 팔지 않고 글공부를 열심히 하였다고 한다. 그가 고금을 통하여 대시인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러한 경험이 계기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철저이성침(磨鐵杵而成針), 마철저(磨鐵杵), 철저성침(鐵杵成針), 우공이산(愚公移山)이나 수적석천(水滴石穿)과 같은 의미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끈기를 가지고 계속 노력하면 마침내 이룰 수 있다는 뜻이다.

 

 

이포역포 / 以暴易暴  以 써 이 暴 사나울 포 易 바꿀 역 暴 사나울 포

 

겉뜻 ; 폭력을 폭력으로 다스린다는 뜻

속뜻 ; 정치를 하는데 있어 힘에 의지하는 것을 비유한 말.

 

유래 ; 이포여포란 위정자가 정치를 함에 있어, 힘에 의지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관련한 고사가 《사기(史記)》 〈백이숙제열전편(伯夷叔齊列傳篇)〉에 실려 있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孤竹國)의 왕자이다. 왕은 아우 숙제로 하여금 자신의 뒤를 잇게 하였다. 그러나 왕이 죽자 숙제는 백이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백이는 아버지의 명을 따라야 한다고 나라를 떠났으며, 숙제 또한 그 뒤를 따라갔다. 나라에서는 할 수 없이 둘째를 왕으로 삼았다. 이때 백이와 숙제는 서백(西伯) 창(昌)이 노인을 잘 봉양한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가 의지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서백은 이미 죽어 문왕(文王)에 추존되었으며, 그의 아들 무왕(武王)이 아버지의 위패를 수레에 싣고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을 정벌하려 하였다.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잡고 이렇게 간(諫)하였다.

 

“부친의 장례도 치르지 않고 바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을 효라 할 수 있는가? 신하된 자로서 군주를 시해하려는 것을 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무왕의 호위 무사들이 그들을 죽이려 하였으나, 태공이 이들을 의인이라고 하며 돌려보내게 하였다. 무왕이 은을 평정하여 천하가 주(周) 왕실을 종주로 섬겼으나, 백이와 숙제는 그 백성이 되는 것을 치욕으로 여겼다. 지조를 지켜 주나라의 양식을 먹으려 하지 않고, 수양산(首陽山)에 들어가 고비[薇]를 꺾어 배를 채웠다. 그들은 굶주려 죽기 전에 이런 노래를 지었다. 저 서산에 올라 산중의 고비나 꺾자구나. 포악한 것으로 포악한 것을 다스렸으니, 그 잘못을 알지 못하는구나. 신농(神農), 우(禹), 하(夏)의 시대는 홀연히 지나가고 우리는 장차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아! 이제는 죽음뿐이로다, 쇠잔한 우리의 운명이여! 역사 이전부터 백이와 숙제가 힘의 정치에 대한 부당성을 비판하였지만, 지금도 이런 정치 형태는 여전히 그 힘을 발한다.

 

 

독서망양 / 讀書亡羊  讀 읽을 독 書 책 서 亡 잊을 망 羊양 양

 

겉뜻 ; 책을 읽다가 양을 잃어버린다는 뜻

속뜻 : 다른 일에 정신이 뺏겨 중요한 일을 소홀히 하게 된다는 비유.

 

유래 : 장(臧)과 곡(穀) 두 사람은 한 집에 살면서 서로 함께 양을 돌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양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장에서 어떤 일을 하다가 양을 돌보지 못하고 잃어버리게 되었느냐고 추궁하자 장은 "댓가지를 옆에 끼고 책을 읽고 있다 양을 잃었다(讀書亡羊)." 고 대답했다. 그리고 곡은 "주사위 놀이를 하느라 양을 돌보지 못하고 잃어버렸노라." 고 대답했다. 두 사람은 양을 돌보는 일을 하는 중 한 일은 서로 달랐지만 그 양을 잃어버림에 있어서는 똑같다는 것이다.

 

 

낙양지귀 / 洛陽紙貴  洛 물 이름 낙 陽 볕 양 紙 종이 지 貴 귀할 귀

 

겉뜻 : 낙양의 종이가 귀해졌다는 뜻

속뜻 : 저서(著書)가 호평(好評)을 받아 잘 팔리는 것을 비유한 말

 

유래 : 제(齊)나라의 좌사(左思)는 어려서는 글을 그리 잘하지 못하고, 또 인물(人物)도 변변치 못했으나 일단 붓을 들면 구구절절이 명문이었다. '제도부(齊都賦)'를 1년 만에 완성한 그는, 상(想)이 떠올라서 '삼도부(三都賦)'를 쓰고 다듬기를 거듭해 10년 만에 끝마쳤으나 아무도 알아주는 이가 없었는데, 어느날 장화(張華)라는 시인이 읽어 보고 "이는 반고(班固)와 장형(張衡)의 유(流)다."라고 칭찬(稱讚)했다. 이런 대문장가에게 비겼으니 '삼도부'는 하루 아침에 유명해져 당대의 고관대작들은 물론 낙양 사람들이 다투어 배껴 가는 바람에 낙양의 종이 값이 뛰어 오르게 되었다 함.

 

 

문전작라 / 門前雀羅  門 문 문 前 앞 전 雀 참새 작 羅 벌일 라

 

겉뜻 : 문 앞에 새그물을 친다는 뜻으로,

속뜻 : 권세를 잃거나 빈천(貧賤)해지면 문 앞 (밖)에 새그물을 쳐 놓을 수 있을 정도로 방문객의 발길이 끊어진다는 말.

 

유래 : 전한 7대 황제인 무제(武帝) 때 급암과 정당시(鄭當詩)라는 두 현신(賢臣)이 있었다. 그들은 한때 각기 구경(九卿:9개 부처의 각 으뜸 벼슬)의 지위에까지 오른 적도 있었지만 둘 다 개성이 강한 탓에 좌천 면직 재등용을 되풀이하다가 급암은 회양 태수 (淮陽太守)를 끝으로 벼슬을 마쳤다. 이들이 각기 현직에 있을 때에는 방문객이 늘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나 면직되자 방문객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고 한다. 이어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급정열전(汲鄭列傳)〉에서 이렇게 덧붙여 쓰고 있다. '급암과 정당시 정도의 현인이라도 세력이 있으면 빈객(賓客)이 열 배로 늘어나지만 세력이 없으면 당장 모두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보통 사람의 경우는 더 말 할 나위도 없다.'

 

또 적공(翟公)의 경우는 이렇다. 적공이 정위(廷尉)가 되자 빈객이 문 전성시를 이룰 정도로 붐볐다. 그러나 그가 면직되자 빈객은 금새 발길을 끊었다. 집 안팎이 어찌나 한산한지 '문 앞(밖)에 새그물을 쳐 놓을 수 있을 정도[門外可設雀羅]'였다. 얼마 후 적공은 다시 정위가 되었다. 빈객들이 몰려들자 적공은 대문에 이렇게 써 붙였다.

 

한 번 죽고 한 번 삶에,

곧 사귐의 정을 알고 한 번 가난하고 한 번 부함에,

곧 사귐의 태도를 알며 한 번 귀하고 한 번 천함에, 곧 사귐의 정은 나타나네

 

 

남원북철 / 南轅北轍  南 남녘 남 轅 끌채 원 北 북녘 북 轍 바퀴자국 철

 

겉뜻 ; 수레의 끌채는 남을 향하고 바퀴는 북으로 감.

속뜻 ; 마음과 행위가 모순되고 있음을 비유

 

유래 ; 당(唐)나라의 백거이(白居而:자는 樂天)의 《신악부(新樂府)》〈입부기시(立部伎詩)〉 편에 실려 있는 이야기이다. 전국시대 위(魏)나라 왕이 조(趙)나라의 도읍 한단(鄲)을 공격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때마침 여행을 하고 있던 신하 계량(季梁)이 이 소식을 듣고 급히 돌아왔다. 그는 왕에게, “저는 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남방의 초나라를 향해 가고 있다고 하면서 북쪽을 향해 마차를 몰아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초나라로 간다면서 북쪽으로 가는 까닭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그는‘이 말은 아주 잘 달립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이 잘 달려도 이쪽은 초나라로 가는 길이 아닙니다’라고 하자, 그 사람은 ‘나는 돈을 넉넉히 가지고 있고, 마부가 마차를 모는 기술은 훌륭합니다’라고 엉뚱한 대답을 하였습니다. 왕께서도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의 행동은 초나라와 더욱 멀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하고 말하였다. 계랑은 말을 잠시 머추었다가 다시 말하였다.

 

 “왕께서는 항상 패왕(覇王)이 되어 천하가 복속하도록 하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왕께서는 나라가 조금 큰 것만을 믿고 한단을 공격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하면 왕의 영토와 명성은 떨칠 수 있을지라도 왕의 목표로부터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만난 사람처럼 마음은 초나라로 간다고 하면서 몸은 마차를 북쪽으로 몰고 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남원북철’은 위 글의 대의를 나타낸 말이며, 또한 ‘북원적초(北轅適楚:수레의 끌채는 북을 향하고 수레는 남의 초로 가려 함)’이라고도 한다. 계량은 무력이 아니고, 덕(德)으로 천하를 제패할 것을 진언(進言)한 것이다.

 

 

견토지쟁 / 犬兎之爭  犬 개 견 兎 토끼 토 之 갈 지 爭 다툴 쟁

 

겉뜻 : 개와 토끼의 다툼이라는 뜻

속뜻 : 양자(兩者)의 싸움에서 제3자(第三者)가 이익(利益)을 봄

 

유래 : 전국책(戰國策)의 제책(齊策)에 나오는 말로,

개가 토끼를 쫓다가 둘 다 지쳐서 죽자 농부가 이것을 얻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함.

 

 

간어제초 / 間於齊楚  間 사이 간 於 어조사 어 齊 가지런할 제 楚 초나라 초

 

겉뜻 : 제(齊)나라와 초(楚)나라 사이라는 뜻

속뜻 : 약한 자가 강(强)한 자들 사이에 끼여 괴로움을 받음을 이르는 말

 

유래 : 고대 중국의 주(周)나라 말기에 등(藤)나라가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끼여 곤란을 당했다는 데서 온 말임.

 

 

당랑거철 / 螳螂拒轍  螳 버마재비 당 螂 사마귀 랑 拒 막을 거 轍 바퀴 자국 철

 

겉뜻 :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다는 뜻

속뜻 : 자기의 힘은 헤아리지 않고 강자에게 함부로 덤빔

 

유래 :《장자》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장여면(將閭勉)이 계철(季徹)을 만나 말했다. "노나라 왕이 내게 가르침을 받고 싶다고 하길래 몇 번 사양하다가 '반드시 공손히 행동(行動)하고 공정하며 곧은 사람을 발탁하여 사심이 없게 하면 백성(百姓)은 자연히 유순해질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과연 맞는 말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계철은 껄껄 웃으며 이렇게 대답(對答)했다. "당신이 한 말은 제왕의 덕과 비교하면 마치 사마귀가 팔뚝을 휘둘러 수레에 맞서는 것 같아서(螳螂當車轍) 도저히 감당해 내지 못할 것입니다. 또 그런 짓을 하다가는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게 되고 집안에 번거로운 일이 많아지며, 장차 모여드는 자가 많아질 것입니다." 이것은 세속적인 충고는 제왕의 도를 오히려 그르칠 수 있다는 말이다. 《회남자》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래와 같다. 齊(제)나라의 장공(莊公)이 어느 날 사냥을 갔는데 사마귀 한 마리가 다리를 들고 수레바퀴로 달려들었다. 그 광경을 본 장공이 부하에게 "용감(勇敢)한 벌레로구나. 저놈의 이름이 무엇이냐?" "예. 저것은 사마귀라는 벌레인데 저 벌레는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설 줄 모르며 제 힘은 생각지 않고 한결같이 적에 대항하는 놈입니다." 장공이 이 말을 듣고 "이 벌레가 만약 사람이었다면 반드시 천하(天下)에 비길 데 없는 용사였을 것이다."하고는 그 용기에 감탄(感歎ㆍ感嘆)하여 수레를 돌려 사마귀를 피해서 가게 했다

 

 

곡학아세 / 曲學阿世  曲 굽을 곡 學 배울 학 阿 언덕 아 世 인간 세

 

겉뜻 : 학문을 굽히어 세상에 아첨한다는 뜻

속뜻 :  정도를 벗어난 학문으로 세상사람에게 아첨함을 이르는 말

 

유럐 : 중국 한나라 황제(皇帝)인 경제(景帝)가 즉위하여 천하(天下)의 선비를 찾다가 산동에 사는 원고생이란 90세의 노 시인을 등용(登用ㆍ登庸)하기로 했다. 중신들은 그의 등용(登用ㆍ登庸)을 반대했으나, 끝내 경제(景帝) 임금은 그를 등용(登用ㆍ登庸)한다. 같이 등용(登用ㆍ登庸)된 소장 학자가 있었는데, 그는 역시 산동 사람으로 공손홍이라고 했다. 공손홍은 원고생을 깔보고 무시했으나, 개의치 아니하고 공손홍에게 이렇게 말했다 한다. "지금은 학문(學問)의 정도(正道)가 어지러워져 속설이 유행하여 전통적 학문(學問)이 결국은 사설로 인하여 본연의 모습이 사라지고 말 것이야. 자네는 학문(學問)을 좋아하고 젊으니 선비로써 올바른 학문(學問)을 세상(世上)에 널리 펼쳐주기 바라네. 자신이 믿는 학설을 굽혀(曲學), 이 세상(世上) 속물들에게 아첨하는 일이 있어서는 아니되네." 이 말을 들은 공손홍은 고매한 학식과 인격을 갖춘 원고생에게 지난 잘못을 사죄하고 제자가 되었다는 설화가 있다. 이로 인하여 전해지는 말이 바로 곡학아세이다.

 

 

삼마태수 / 三馬太守  三 석 삼 馬 말 마 太 클 태 守 지킬 수

 

겉뜻 : 세마리의 말을 타고 오는 수령(守令)이라는 뜻

속뜻 : 재물에 욕심이 없는 깨끗한 관리, 청백리를 이르는 말

 

유래 : 조선 중종 때 송흠(宋欽)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수령으로 부임할 적에 거창한 행차 대신 자신이 타는 말 1필과 어머니와 아내가 탈 말을 각각 1필씩 전체 말 세 필만 거느렸다. 이후 검소한 행차를 한 송흠은 삼마태수라고 불림

 

 

포류지자 / 蒲柳之姿  蒲 부들 포 柳 버들 류(유) 之 갈 지 姿 모양 자

 

겉뜻 : 갯버들 같은 모습이라는 뜻

속뜻 : 허약(虛弱)한 몸을 이르는 말

유래 : 고열(顧悅)은 동진 사람으로 인품이 솔직하고 신의를 중히 여겼다. 343년에 은호(殷浩)가 건무장군(建武將軍)으로 양주자사(揚州刺使)가 되자 그를 차관으로 삼았다. 은호는 문학적이고 고상한 사람으로 평판은 좋았지만 10여 년이나 공무에서 떠나 있었기 때문에 실무에 익숙하지 못해 고열의 재간을 기대하고 양주 안의 모든 일을 그에게 맡겨 처리하게 했다. 고열은 오랫동안 무리한 탓에  건강을 해쳐 30대에 벌써 등이 굽고 흰머리가 나고 뼈만 앙상했다. 은호는 휴식하도록 충고했지만, 고열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은호가 당시의 간문제(簡文帝)와  그 즉위 전부터 친밀했었기 때문에 고열도 황제와 친밀해져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용무를 보러 간 길에 간문제를 배알했다. 황제는 고열과 같이 30대였는데 아주 젊고 건강했다. 그가 고열의 흰머리를 보고 물었다. "그대는 나와 나이가 비슷한데, 왜 벌써 머리가 희었느냐?" 고열이 웃으며 대답했다. "폐하는 송백(松栢)이므로, 서리가 내렸어도 푸르르며, 저는 포류(蒲柳)이므로 가을이 되면 제일 먼저 잎이 지고 마는 겁니다. 할 수 없습니다." 황제는 그의 일하는 태도가 성실한데다 이 멋있는 대답에 아주 탄복하고, 그 후 고열을 상서좌승(尙書左丞)으로 발탁해 그 근면과 직무 충실에 보답했다.

 

 

필부지용 / 匹夫之勇  匹 짝 필 夫 지아비 부 之 갈 지 勇 날랠 용

 

겉뜻 : 하찮은 남자의 용기라는 뜻

속뜻 : 소인이 깊은 생각 없이 혈기만 믿고 함부로 부리는 용기를 이름

 

유래 : 맹자(孟子)는 왕도정치(政治)의 실현을 위해 여러나라를 돌며 유세(遊說)하기로 하고 먼저 양(梁)나라로 갔다. 혜왕(惠王)은 맹자(孟子)를 정중히 맞이하고서 이웃 나라와는 어떻게 국교를 맺는 게 좋겠는가를 물었다. 이에 맹자(孟子)가 "대국은 소국에게 받드는 마음으로, 겸허한 태도로 사귀지 않으면 아니 되옵니다. 이는 인자(仁者)라야 할 수 있는 어려운 일이지만, 은(殷)나라의 탕왕(蕩王)이나 주나라의 문왕(文王)은 이미 이것을 행했습니다. 또한, 소(小)가 대(大)를 받는다는 것은 하늘의 도리(道理)이옵니다. 그러나, 무왕의 할아버지 대왕이 그것을 행했기 때문에 주나라는 뒤에 대국을 이루게 되었고, 월나라 왕 구천(勾踐)은 숙적 오나라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하늘을 즐기는 자는 천하를 보존할 수 있고, 하늘을 두려워하는 자는 자라를 보존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자, 혜왕은 매우 훌륭한 도리(道理)라고 탄복(坦腹)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 보니 양나라는 어느 나라에 대하여나 받들기만 해야 할 형편이 아닌가. 그래서, 혜왕은 맹자(孟子)에게 "나에게는 해가 된다고 하시겠지만, 용(勇)을 즐기는 성품이 있으니 어찌 해야 하오?"라고 물었다. 이 말을 듣고 맹자(孟子)는 "소용(小勇)을 즐겨서는 아니 되옵니다. 칼을 매만지고 눈을 부라리며 너 같은 자는 나의 적수가 아니라고 하는 다위는 필부의 용(勇)으로, 겨우 한 사람이나 상대할 따름이옵니다. 더 큰 용기를 지니십시오."하고 정중히 대답했다고 함.

 

 

망국지음 / 亡國之音  亡 망할 망 國 나라 국 之 갈 지 音 소리 음

 

겉뜻 : 나라를 망치는 음악이란 뜻

속뜻 : 저속하고 난잡한 음악을 일컫는 말

 

유래 : 춘추시대(春秋時代) 위(衛)나라의 영공(靈公)이 진(晉)나라로 가는 도중 복수( 水) 근방에 이르렀을 때였다.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현묘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음률이 너무나 절묘하여 마치 천상의 소리인 듯했다. 한참을 넋을 잃고 듣던 영공은 수행하던 악사(樂師)에게 그 가사를 베끼고 악보까지도 채록하라 명했다. 진(秦)나라에 도착하자 영공은 그 신묘한 음악을 진(秦)나라의 평공(平公)에게 손수 연주하여 들려주었다. 평공은 다시 진(秦)나라에서 유명한 음악가였던 사광(師曠)을 불러들여 함께 듣도록 했는데, 영공의 음악을 듣고 있던 사광은 깜짝 놀라 영공의 손을 잡으며, "그것은 망국의 음악입니다."라고 말했다. 놀란 영공과 평공에게 사광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옛날 사연(師延)이라는 유명한 음악가 '신성백리(新聲百里)'라는 음탕한 음악을 지어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에게 바쳤다. 주왕은 이 음악을 즐기며 주지육림(酒池肉林)에 빠져 무왕에게 망했고, 사연은 복수에 빠져 죽었다. 이에 사람들은 이 노래를 망국의 음악이라 했다고 함.

 

 

월조대포 / 越俎代庖  越 넘을 월 俎 제기 조 代 대신할 대 庖 부엌 포

 

겉뜻 : 제사를 담당하는 사람이 음식 만드는 일을 하다는 뜻

속뜻 : 자신의 직분을 벗어나 남의 영역에 뛰어드는 것. 즉 주제넘은 참견을 말함 

유래 : 《장자()》의 소요유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아주 요()나라의 임금은 다음과 같은 비유를 이야기 하며 허유에게 천하를 맡아줄 것을 권유한다. 일월(日月)이 밝은데 횃불을 계속 태우면, 그 빛이 헛되지 않겠습니까? 때 맞추어 비가 내리는데 여전히 물을 대고 있으니 그 물은 소용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부족하오니, 부디 천하를 맡아 주십시오. 이러한 요임금의 권유에 허유는 뱁새와 두더지를 비유로 들며 다음과 같이 거절의 뜻를 표한다. "임금께서 잘 다스리고 계시는데 제가 대신할 필요는 없습니다. 제겐 천하가 아무 쓸모도 없고 흥미도 없습니다. 요리가 서툴다고 제사를 주재하는 사람이 그 직분을 넘어서 부엌일에 뛰어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폐하의 직무를 제가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설사 대신하더라도 잘될 리가 없습니다." 허유는 이렇게 말하고 곧바로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버린 후에 다시는 나오려고 하지 않았다.

 

 

계구우후 / 鷄口牛後  鷄 닭 계 口 입 구 牛 소 우 後 뒤 후

 

겉뜻 : 닭의 부리와 소의 꼬리라는 뜻

속뜻 : 큰 단체의 말석보다는 작은 단체의 우두머리가 되라는 말

유래 : 사기(史記) 소진열전(蘇秦列傳)에는 전국(戰國)시대의 모사(謀士) 소진의 일화가 실려 있다. 소진은 합종책(合從策)으로 입신(立身)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진(秦)나라 혜왕, 조(趙)나라의 재상인 봉양군 등을 만나 보았으나 환영 받지 못하였다. 그는 다시 연(燕)나라로 가서 문후(文侯)를 만나, 연나라가 조(趙)나라와 맹약을 맺어 진나라에 대항해야한다는 합종의 계획을 말하였다. 문후의 후한 사례에 고무된 소진은 얼마 후 한(韓)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그는 한나라의 선혜왕(宣惠王)을 만나 진나라를 섬기지 말 것을 권고하며 다음과 같이 유세하였다. 이번 기회에 남북으로 연합하는 합종책으로써 진나라의 동진(東進)을 막아보십시오. 옛말에 차라리 닭의 입이 될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말라(寧爲鷄口無爲牛後). 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선혜왕은 소진의 권유를 받아 들였다. 나머지 다섯 나라들도 그에게 설복되었으며, 결국 소진은 6국의 재상을 겸임하게 되었다.

 

 

여호모피 / 與虎謀皮  與 더불 여 虎 범 호 謀 꾀 모 皮 가죽 피

 

겉뜻 : 여우하고 여우의 모피를 벗길 모의를 한다는 뜻

속뜻 : 이해가 상충하는 사람하고 의논하면 결코 이루어지지 않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 
 
유래 : 태평어람(太平御覽) 권208에는 마치 이솝 우화(寓話)와도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주(周)나라 때, 어떤 사나이가 천금(千金)의 가치가 있는 따뜻한 가죽 이불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는 여우 가죽으로 이불을 만들면 가볍고 따뜻하다는 말을 듣고, 곧장 들판으로 나가 여우들과 이 가죽 문제를 상의하였다(與狐謀其皮). 자신들의 가죽을 빌려달라는 말을 듣자마자 여우들은 깜짝 놀라서 모두 깊은 산속으로 도망쳐 버렸다.얼마 후, 그는 맛좋은 제물(祭物)을 만들어 귀신의 보살핌을 받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에 그는 곧 양들을 찾아가 이 문제를 상의하며, 그들에게 고기를 요구하였다.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양들은 모두 숲속으로 들어가 숨어 버렸다.與狐謀皮 라는 말은 후에 與虎謀皮 로 바뀌었으며, 與虎謀皮 는 호랑이에게 가죽을 요구하다 라는 뜻이다. 여우나 호랑이에게 가죽을 벗어 내라하고, 양에게 고기를 썰어 내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與虎謀皮 란 근본적으로 이룰 수 없는 일 을 비유한 말이다.

 

 

사석위호 / 射石爲虎  射 쏠 사 石 돌 석 爲 하 위 虎 범 호

 

겉뜻 : 돌을 범인 줄 알고 쏘았더니 돌에 화살이 꽂혔다는 뜻

속뜻 : 성심을 다하면 아니 될 일도 이룰 수 있음 

 

유래 : -李廣(이광)은 弓術(궁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는데 적이 가까이 있어도 명중시킬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쏘지를 않았지만 일단 쏘았다 하면 활시의 소리와 동시에 적이 쓰러졌다.그런 그가 하루는 사냥하러 갔다가 호랑이를 보고 화살을 쏘아 명중 시켰는데 화살촉이 깊숙히 박혔지만 가까이 가 자세히 보니 돌이었다고 한다

 

 

사불급설 / 駟不及舌  駟 사마 사 不 아닐 불 及 미칠 급 舌 혀 설

 

겉뜻 : 네 마리 말이 끄는 빠른 수레도 사람의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뜻

속뜻 : 소문은 빨리 퍼지므로 말조심하라는 말 

 

유래 : -衛(위)나라 大夫(대부) 棘子成(극자성)과 子貢(자공)과의 대화에서 유래한다. 극자성이 자공에게 군자는 바탕만 있으면 됐지 무슨 까닭으로 문(文)체가 필요한지 물었다. 이에 자공은 "당신의 말은 군자답지만, 네마리가 끄는 수레도 혀에 미치지 못합니다. 이 質(질-바탕)같고 질이 文과 같으면 그 것은 마치 호랑이 가죽과 표범 가죽을 개 가죽이나 양 가죽과 같다고 보는 이치와 같읍니다"라고 대답했다.

 

 

방휼지쟁 / 蚌鷸之爭  蚌 방합 방 鷸 도요새 휼 之 갈 지 爭 다툴 쟁

 

겉뜻 : 방합과 도요새의 다툼이라는 뜻

속뜻 : 제3자만 이롭게 하는 다툼을 이르는 말

 

유래 : 「趙(조)나라가 燕(연)나라를 치고자 하거늘 소대(蘇代)라는 사람이 연나라를 위하여 조 혜왕(惠王)에게 일러 말하기를 "오늘 신이 역수를 건너다가 보니, 조개 가 마침 물가에 올라와 햇볕을 쬐려고 입을 딱 벌리고 있거늘, 황새가 그것을 보고 조개의 고기를 먹으려고 찍으니 조개가 놀라서 꼭 오므리고 그 황새의 입 부리를 물거늘,"황새가 말하되,"오늘 비가 안 오고 내일도 비가 안 오면 곧 너는 죽을 뿐이다."하니, 조개도 또한 황새에게 일러 말하되"오늘 물고서 벌리지 않고, 내일 물고서 벌리지 않으면 곧 너는 죽을 뿐이다."하여 둘이 서로 놓지 않고 싸우거늘 어부가 잡아서 둘을 얻었습니다. 지금 조나라가 연나라를 쳐서 趙(조)와 燕(연)이 오랫동안 서로 싸워서 백성(百姓)을 괴롭게 하면, 臣(신)은 강한 秦(진)나라에 먹히어 어부의 이익을 주게 될까 두렵습니다. 원컨대 왕은 깊이 생각하소서." 조나라 혜왕이 말하되 "옳은 말이다."하더라.趙且伐燕(조차벌연)이어늘 蘇代(소대)가 爲燕(위연)하여 謂惠王曰(위혜왕왈) "今日(금일)에 臣(신)이 過易水(과역수)할새 蚌(방)이 方出曝而鷸(방출폭이휼)이 啄其肉(탁기육)하니 蚌(방)이 合而箝(합이겸) 其喙(기훼)라 鷸曰(휼왈) "今日不雨(금일불우)하고 明日不雨(명일불우)면 卽有死蚌(즉유사방)이라"蚌(방)이 亦謂鷸曰(역위휼왈) "今日不出(금일불출)하고 明日不出(명일불출)이면 卽有死鷸(즉유사휼)이라"하고 兩者(양자)가 不肯相舍(불긍상사)하니 漁者(어자)가 得而幷(득이병) 擒之(금지)라 今趙且伐燕(금조차벌연)하여 燕趙(연조)가 久相攻(구상공)하여 以大衆(이대중)이면 臣(신)은 恐强秦之爲漁夫(공강진지위어부) 也(야)라 願大王(원대왕)은 熟計之也(숙계지야)니이다." 惠王(혜왕)이 曰(왈) "善(선)하다"하니라.

 

 

배중사영 / 杯中蛇影  杯 잔 배 中 가운데 중 蛇 긴 뱀 사 影 그림자 영

 

겉뜻 : 술잔 속의 뱀 그림자라는 뜻

속뜻 :  ①자기 스스로 의혹된 마음이 생겨 고민하는 일

②아무 것도 아닌 일에 의심을 품고 지나치게 근심을 함


유래 : 후한 말 학자 응소(應邵)의 조부 응빈(應彬)이 급현(汲縣)의 장관으로 있을 때 주부(主簿)인 두선(杜宣)과 술을 마셨다. 그런데 두선은 그의 술잔에 비친 활 그림자를 뱀으로 오인하여 마시기 싫었으나 마지못해 마셨다. 그 후로 몸이 아파 백방으로 치료해 보았으나 병세는 오히려 악화될 뿐이었다. 응침이「 그 변고를 물으니 이르되 "두려운 것은 이 뱀이 배속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응침이 돌아와 그 일을 듣고 생각하다가 한참 후에 활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옛 그 자리에 두선을 실어오게 하여 술자리를 마련하고 잔 속에 옛날 같이 뱀을 뜨게 한 다음 두선에게 이르기를 "이 벽 위에 있는 활 그림자 일 뿐 다른 이상한 것이 있지 않다." 두선이 마침내 고민을 풀고 이로 말미암아 병이 나았다.

 

 

옥석혼효 / 玉石混淆  玉 구슬 옥 石 돌 석 混 섞을 혼 淆 뒤섞일 효

 

겉뜻 : 옥과 돌이 함께 뒤섞여 있다는 뜻

속뜻 : 선과 악, 좋은 것과 나쁜 것이 함께 섞여 있음

 

유래 : 진(晉)나라 사람 갈홍(葛洪)의 저서(著書)『포박자(抱朴子)』는 내편(신선의 도를 기술)과 외편(정치와 도덕)으로 되어 있다. 외편 상박(尙博)에 "세상(世上) 사람들이 천박한 시부(詩賦)를 즐기는가 하면 제자백가(諸子百家)의 글을 가볍게 여기며 이로운 말을 어리석은 말로 여기고 헛되고 달콤한 말에는 기뻐한다. 그러므로 참과 거짓이 바뀌고 옥과 돌이 한 데 뒤섞여 있으며 상동을 광악과 마찬가지로 여기고 풀로 엮은 옷을 용무늬의 옷과 같은 것으로 여긴다. 모두가 태연한 것은 진실로 한탄할 일이다."라고 했다.

 

 

의문지망 / 倚門之望  倚 의지할 의 門 문 문 之 갈 지 望 바랄 망

 

겉뜻 : 어머니가 아들이 돌아오기를 문에 의지하고서 기다린다는 뜻

속뜻 :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르는 말

 

유래 : 齊(제)나라 때 왕손가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말하기를 "네가 아침에 나가서 늦게 오면 나는 곧 집문에 의지하여 네가 오는가 바라보고, 저물어서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나는 동구 밖 문에 의지하여 네가 오는가 바라보고 서 있다."고 했다.<王孫賈之母(왕손가지모)가 謂賈曰(위가왈) "汝朝出而晩來(여조출만래)면 吾則倚門而望(오즉의문이망)이요 暮出而不還(모출이불환)이면 吾則倚閭之望(오즉의려지망)이라.">

 

 

호중천지 / 壺中天地  壺 병 호 中 가운데 중 天 하늘 천 地 땅 지

 

겉뜻 : 병안에 세상이 다 있다는 뜻
속뜻 : 별천지, 별세계를 뜻함

 

유래 : 호공(壺公)이란 사람이 항아리에서 살았는데 비장방(費長房)이 그 속을 보니 화려하고 술안주가 가득했다는 이야기

 

 

양두구육 / 羊頭狗肉  羊 양 양 頭 머리 두 狗 개 구 肉 고기 육

 

겉뜻 : 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

속뜻 : ①겉은 훌륭해 보이나 속은 그렇지 못한 것

②겉과 속이 서로 다름③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음

 

유래 : 춘추(春秋)시대 제(齊)나라 영공(靈公)은 궁중의 여인들은 남장을 시켜 놓고 즐기는 괴벽이 있었다. 곧 이 습성은 일반 민간에도 펴져 남장 여인이 나라 안 도처에 퍼져 나갔다. 이 소문을 듣고 영공은 궁중 밖에서 여자들이 남장하는 것을 왕명으로 금지시켰는데 이 영이 시행이 잘 안 되었다. 그래서 왕은 왕명이 시행 안 되는 이유를 물었다. 안자는 "폐하께서 궁중 안에서는 남장 여인을 허용하시면서 궁 밖에서는 금하시는 것은 마치 소의 머리를 문에 걸어놓고 안에서는 개고기를 파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궁중 안에서 여자의 남장을 금하소서."라고 했다. 영공은 안자의 말대로 궁중에서도 여자가 남장하는 것을 금했더니 한 달이 못 되어 온 나라 안에 남장 여인은 없어졌다.

 

 

맹모삼천지교 / 孟母三遷之敎  맏 맹 어머니 모 석 삼 옮길 천
갈 지 가르칠 교

 

겉뜻 : 맹자(孟子)의 어머니가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한 가르침이라는 뜻

속뜻 : 교육에는 주위 환경이 중요하다는 가르침을 이르는 말

 

유래 : 전국시대(戰國時代) 유학자의 중심 인물로서 성인 공자에 버금가는 아성 맹자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손에 자랐다. 맹자의 어머니는 당초 묘지 근처에 살았는데 어린 맹자는 묘지 파는 흉내만 내며 놀았다. 그래서 교육상 좋지 않다고 생각한 맹자의 어머니는 시장 근처로 이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건을 팔고 사는 장사꾼 흉내만 내는 것이었다. 이곳 역시 안 되겠다고 생각한 맹자의 어머니는 서당 근처로 이사했다. 그러자 맹자는 제구를 늘어놓고 제사 지내는 흉내를 냈다. 서당에서는 유교에서 가장 중히 여기는 예절을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런 곳이야말로 자식을 기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오십보백보 / 五十步百步 五 다섯 오 十 열 십 步 걸음 보 百 일백 백 步 걸음 보

 

겉뜻 : 오십보 도망한 자가 백보 도망한 자를 비웃는다라는 뜻

속뜻 : 조금 낫고 못한 차이는 있지만 본질은 같은 것

 

유래 : 춘추시대 위나라 혜왕(惠王)은 나름대로 국민 수 증가로 부국강병을 위해 노력했으나 별 효과가 없자 맹자한테 자기 자랑 겸 묻게 되었다. "나는 마음을 다해 백성을 다스려 하내(河內) 지방이 흉년이 들면 하동(河東)의 곡식을 옮겨 하내 지방 백성을 먹이고 하동 지방이 흉년이 들면 또한 그같이 하는데, 이웃 나라의 정치를 보면 나와 같이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내 백성이 더 많아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이 말을 듣고 맹자는 비유를 들어 말했다. "왕이 전쟁을 좋아하시니 그것으로 말을 하지요. 전쟁터에서 전쟁이 한창일 때 한 병사가 갑옷과 투구를 던져 버리고 도망을 쳐서 백보쯤 가서 멈추었습니다. 또 다른 병사도 도망치다가 오십보쯤 가서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백보 도망친 사람을 겁쟁이라고 비웃었습니다. 왕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오십보나 백보나 도망친 것은 마찬가지가 아니요?"이 말을 듣고 맹자는"그것을 아신다면 이웃 나라보다 백성이 많아지지 않는다고 한탄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결국 혜왕이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을 도운 것은 전쟁을 위한 목적이었기 때문에 혜왕 밑으로 모이는 백성은 더 늘지는 않았던 것이다.

 

 

빙탄불상용 / 氷炭不相容  氷 얼음 빙 炭 숯 탄 不 아닐 불 相 서로 상 容 얼굴 용

 

겉뜻 : 얼음과 불은 성질이 반대여서 만나면 서로 없어진다는 뜻

속뜻 : ①군자와 소인은 서로 화합하지 못함 ②또는 상반되는 사물

 

유래 : 漢(한)나라 무제의 신하(臣下) 중에 동방삭(東方朔)이 있다. 그는 박학다식하여 무제의 좋은 이야기 상대가 되었다. 언제나 어전에서 먹고 지냈는데 남은 음식 이 있으면 품에 넣어 집으로 가지고 갔으며 하사 받은 의복은 어깨에 걸머메고 퇴거하는 묘한 행동(行動)을 했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미친놈이라 했으나 본인 은 태연했다. 동방삭의 글에 칠갑전(七諫傳)이 있는데 여기에, "얼음과 불은 서로 나란히 할 수가 없다(氷炭不可以相竝兮;빙탄불가이상병혜)."란 말이 보인다. 곧 충성스러움과 아첨함은 같이 있을 수 없다는 뜻의 비유이다.

 

 

가정맹어호 / 苛政猛於虎  苛 가혹할 가 政 정사 정 猛 사나울 맹 於 어조사 어 虎 범 호

 

겉뜻 : 가혹한 정치는 호랑이 보다 더 사납다는 뜻

속뜻 : 가혹한 정치의 폐해를 비유하는 말


유래 : 중국의 춘추시대(春秋時代) 말엽, 나라마다 기강이 어지러워져 하극상(下剋上)하는 자들이 많았다. 노(魯)나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대부(大夫)인 계손자(季孫子) 같은 자는 백성(百姓)들에게서 세금(稅金)을 가혹(苛酷)하게 거둬들여 엄청난 부(富)를 누리고 있었다. 그래서 공자(孔子)는 계손자가 주(周)나라의 경공(卿公)보다 더 부자라고 점잖게 나무랐다. 어느 날, 공자(孔子)는 제자들과 더불어 수레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태산(泰山) 근처에 이르렀을 때, 깊은 산 속어디선가 여인의 울음소리가 들려와 이상히 여겨 살펴보니 울음소리는 앞쪽무덤 가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공자(孔子) 일행은 수레를 급히 몰아 제자인 자로 (子路)로 하여금 사연을 알아보게 했던바, 그녀는 "이곳은 참으로 무서운 곳이 랍니다. 옛날 시아버님이 호랑이에게 물려 가셨고, 이어 제 남편과 자식이 모두 물려 죽었어요."하고 대답(對答)했다. 그렇게 무서운 이 곳을 왜 떠나지 않느냐고 묻자, 그녀는 "까닭인즉 여기는 그래도 가혹(苛酷)한 세금(稅金)에 시달릴 걱정이 없기 때문이어요."하고 대답(對答)했다. 이 말을 들은 공자(孔子)는 "가혹(苛酷)한 정치(政治)는 호랑이보다 더 사나운 것이니라."하고 제자들에게 말했다고 함.

 

 

능서불택필 / 能書不擇筆  能 능할 능 書 글 서 不 아닐 불 擇 가릴 택 筆 붓 필

 

겉뜻 : 글씨를 잘 쓰는 이는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

속뜻 : 일에 능한 사람은 도구를 탓하지 않음을 이르는 말

 

유래 : 당나라 때 書道(서도)의 대가 遂良(저수량)은 평소 좋은 붓과 먹이 없으면 글씨를 쓰려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저수량이 서도의 대가 虞世南(우세남)에게 "내 글씨와 歐陽詢(구양순)의 글씨를 비교하면 누가 더 나은가?"하고 물었다. 이에 우세남은 "순은 종이와 붓에 대하여는 전혀 말이 없고, 아무 종이에나 글씨를 썼다. 紙筆不擇(지필불택)고 하며 어떤 붓으로도 마음먹은 대로 쓸 수 있었다 한다. 그대는 아직 종이와 붓에 구애받고 있으니 순을 따를 수는 없다."하고 말했다고 함

 

 

백발삼천장 / 白髮三千丈  白 흰 백 髮 터럭 발 三 석 삼 千 일천 천 丈 어른 장

 

겉뜻 : 머리가 몹시 세었다는 것을 과장한 말

속뜻 : ①즉 늙은 몸의 서글픔을 표현한 것 ②근심이나 비탄이 쌓여 가는 모양을 비유한 말

 

유래 : 이태백의 추포가에 나오는 구절로서 만년에 귀양에서 풀려난 당나라 시인 이백이 추포(秋浦:안휘성 내)에 와서 거울을 보고 이미 늙어버린 자기 모습에 놀라서 지은 연작(連作) 중 한 수이다. 이 유명한 '백발의 길이가 삼천 길'이란 표현은 중국 문항의 과장적 표현으로 널리 인용되 는 문구인데 요즈음에는 '과장된 것을 비웃는 말'로 흔히 쓰이고 있다.

 

 

이도살삼사 / 二桃殺三士  二 두 이 桃 복숭아 도 殺 죽일 살 三 석 삼 士 선비 사

 

겉뜻 : 복숭아 두 개로 무사 세 명을 죽인다는 뜻

속뜻 : 교묘한 책략으로 상대를 자멸하게 하는 것을 비유한 말

 

유래 : 齊(제)나라 景公(경공)은 공은 많으나 그 공을 믿고 방자한 세 장수, 公孫接(공손접)ㆍ田開疆(전개강)ㆍ古冶子(고야자)를 안자의 꾀를 빌어 두 개의 복숭아를 주며 공로가 많은 사람이 먼저 먹으라고 하여 서로 다투게 함으로써 모두 죽게 했다 함

 

 

배수진 / 背水陣  背 등 배 水 물 수 陣 진 칠 진

 

겉뜻 : 물을 등지고 진을 친다는 뜻

속뜻 : ①물러설 곳이 없으니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없는 지경을 이르는 말

②물을 등지고 적과 싸울 진을 치는 진법

 

유래 : 한(漢)나라 고조(高祖)가 제위에 오르기 2년 전, 한군을 이끌고 있던 한신(韓信)은 위(魏)를 격파한 여세를 몰아 조(趙)로 진격했다. 일 만의 군대는 강을 등지고 진을 쳤고 주력부대는 성문 가까이 공격해 들어갔다. 한신은 적이 성에서 나오자 패배를 가장하여 배수진까지 퇴각을 하게 했고 한편으로는 조나라 군대가 성을 비우고 추격해 올 때 매복병을 시켜 성 안으로 잠입, 조나라 기를 뽑고 한나라 깃발을 세우게 했다. 물을 등지고 진을 친(背水之陣) 한신의 군대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결사 항전을 하니 초나라 군대는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미 한나라 기가 꽂힌 성을 보고 당황한 조나라 군대에게 한신의 부대가 맹공격을 퍼부어 간단히 승리를 거두었다. 한신은 군대를 사지에 몰아 넣음으로써 결사 항전하게 하여 승리를 거둔 것이다. 싸움이 끝나고 축연이 벌어졌을 때 부장들은 한신에게 물었다. "병법에는 산을 등지고 물을 앞에 두고서 싸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을 등지고 싸워 마침내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것은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이것도 병법의 한 수로 병서에 자신을 사지(死地)에 몰아넣음으로써 살 길을 찾을 수가 있다고 적혀 있지 않소. 그것을 잠시 응용한 것이 이번의 배수진(背水陣)이오. 원래 우리 군은 원정을 계속하여 보강한 군사들이 대부분이니 이들을 생지에 두었다면 그냥 흩어져 달아나 버렸을 것이오. 그래서 사지에다 몰아 넣은 것 뿐이오. 이를 들은 모든 장수들이 탄복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배수진을 쳤다'라는 말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막다른 곳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맞서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등용문 / 登龍門  登 오를 등 龍 용 용(룡) 門 문 문

 

겉뜻 : 용문에 오른다는 뜻

속뜻 : ①입신 출세의 관문을 이르는 말

②또는 뜻을 펴서 크게 영달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

 

유래 : 후한 말 환제 때는 환관이 권세를 좌지우지하여 그 횡포가 심했다. 이러한 환관들에게 저항하는 정의파 관료 중 지도자격으로 이응(李膺)이라는 자가 있었다. 이응은 혼탁한 궁정 안에 있으면서 항시 몸가짐이 고결했기 때문에 세상 사삼들은 "천하의 모범은 이원례(이응의 자)"라며 칭송했다. 특히 젊은 관료들은 이응을 경모하여 그의 추천을 받은 것을 최고의 명예로 알고 "등용문"이라 일컬었다. 용문(龍門)은 황하 상류의 협곡 이름이다. 이 근처는 매우 급히 흐르는 여울이 있어 급류를 차 오르는 큰 고기도 여간해서는 여기에 오르지 못한다. 그러나, 한 번 오르기만 하면 물고기는 용으로 화한다는 전설이 있다. 이에 연유하여 모든 난관을 돌파하고 입신출세의 가도에 오르게 되는 것을 '용문에 오르다'고 하였다. 중국에서는 진사(進士)시험에 합격하는 것이 출세의 제일보라 하여 「登龍門」이라 하였다.

 

 

천리안 / 千里眼  千 일천 천 里 마을 리(이) 眼 눈 안

 

겉뜻 : 천 리 밖을 보는 눈이란 뜻

속뜻 : ①먼 곳의 것을 볼 수 있는 안력(眼力)

②사물을 꿰뚫어 보는 힘

③먼 데서 일어난 일을 직감적으로 감지하는 능력

 

유래 : 기원 6세기경 북위(北魏)에 양일(楊逸)이라는 정치가(政治家)가 있었다. 그는 29세의 젊은 나이로 광주(光州) 자사가 되었다. 그런데 그 무렵, 흉작이 계속되어 심한 기근이 들고, 굶어죽는 자가 속출하자 양일은 곡물 창고를 열어 사람들에게 식량을 배급하려고 했다. 그러나 관원(官員)들은 멋대로 창고를 열면 틀림없이 문책 당할 것이라 생각하고 반대했다. 그러자 양일이 단호히 잘라 말했다. "백성(百姓)은 먹을 것이 없어 고통받고 있는데, 군주가 배불리 먹을 수 있겠는가. 창고를 여는 것이 안 된다면 내가 기꺼이 벌을 받겠다." 그리고는 창고를 열어 사람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황제에게 그 사실을 보고했다. 조정에서는 이를 비난하는 의견도 있었으나 황제는 그 조치를 칭찬(稱讚)했다. 그는 이와 같이 백성(百姓)을 진심으로 생각했으며, 혹시 백성(百姓)을 괴롭히는 관리(官吏)가 있으면 엄중히 문책했다. 또 관원(官員)이나 병사가 지방으로 나갈 때는 민폐를 끼치지 않도록 식량을 가지고 가게 했다. 혹시 관원(官員)이나 병사에게 음식을 대접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은 굳이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장관의 눈은 천리안이라, 무엇이든 환히 내다보신다. 도저히 속일 수가 없다."이렇게 사람의 눈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도 결코 양일의 명령(命令)을 어기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 양일은 황제위를 노리는 반대파 일당에게 미움을 사 아깝게도 목숨을 잃었다. 광주 사람들은 상하를 불문하고 모두가 슬퍼했으며, 시골 구석구석까지 그의 명복을 비는 제단이 몇 달씩 설치되었다고 한다.

 

 

백안시 / 白眼視  白 흰 백 眼 눈 안 視 볼 시

 

겉뜻 : 흰 자위가 많은 눈으로 봄

속뜻 : 남을 업신여겨 깔봄


유래 : 위(魏)나라 때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인 완적(阮籍)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학문(學問)에 뛰어났으나, 위(魏)나라가 진(秦)나라로 바뀌면서 세상(世上)이 어지럽자 속세를 등지고 자연을 벗하며 노장 사상(思想)에 심취하면서 술 속에서 살았다.어느 날 그는 모친상을 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는 상주로서 예를 갖추거나 어머니를 잃은 슬픔은 팽개치고,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평소 품어오던 자신의 감정을 까만 눈동자와 흰 눈동자로 표시했다. 통속적인 예절(禮節)을 지키는 선비를 만나면 흰 눈으로 흘겨보았다.역시 죽림칠현의 한 사람이었던 혜강의 형인 혜희가 오자 완적은 흰 눈으로 그를 흘겨보았다. 혜희는 속물 취급을 당하고 돌아왔다. 이 소식을 듣고 혜강이 술과 거문고를 들고 찾아갔다. 그러자 완적은 크게 기뻐하며 검은 눈동자를 보이면서 환영했다. 완적이 흰 눈으로 흘겨보았던 선비들은 마치 원수처럼 완적을 미워했다고 한다.

 

 

백미 / 白眉  白 흰 백 眉 눈썹 미

 

겉뜻 : 중국 촉나라 마량의 5형제중 흰 눈썹이 섞인 良(양)의 재주가 가장 뛰어나다는 데서 온 말

속뜻 : 여럿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물건을 이르는 말

 

유래 : 위ㆍ촉 ㆍ오가 서로 패권을 다툴 무렵, 촉나라에 마량(馬良)이라는 자가 있었다. 마량은 양양(襄陽)의 의성(宜城) 출신으로 자(字)는 계상(季常)이다. 그는 제갈량과 문경지교(刎頸之交)를 맺은 사이로, 뛰어난 덕성과 지모로 남쪽 변방의 오랑캐들을 평정하는 데 큰 활약을 했다. 마속을 포함하여 마량의 형제는 다섯이었고 그중 맏이인 마량은 태어날 때부터 눈썹에 흰 털이 섞여 있어 '백미(흰 눈썹)'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들은 모두 재주가 비범하여 명성이 자자했는데, 그 중에서 마량이 가장 뛰어났다. 이로부터 '백미'는 여럿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이나 사물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사족 / 蛇足  蛇 긴 뱀 사 足 발 족

 

겉뜻 : 뱀의 발을 그린다는 뜻

속뜻 : ①쓸데없는 군일을 하다가 도리어 실패함을 이르는 말

②쓸데없는 일을 함

 

유래 : 전국 시대인 초나라 회왕 때의 이야기이다. 어떤 인색한 사람이 제사를 지낸 뒤 여러 하인들 앞에 술 한 잔을 내놓으면서 나누어 마시라고 했다. 그러자 한 하인이 제안하기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 마신다면 간에 기별도 안 갈테니, 땅바닥에 뱀을 제일 먼저 그리는 사람이 혼자 다 마시기로 하는게 어떻겠나?" "그렇게 하세" 하인들은 모두 찬성하고 제각기 땅바닥에 뱀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뱀을 다 그린 한 하인이 술잔을 집어들고 말했다. "이 술은 내가 마시게 됐네. 어떤가, 멋진 뱀이지? 발도 있고." 그때 막 뱀을 그린 다른 하인이 재빨리 그 술잔을 빼앗아 단숨에 마셔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발 달린 뱀이 어디 있나!" 술잔을 빼앗긴 하인은 공연히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후회했지만 소용이 없었다.'畵蛇添足(화사첨족)'의 준말

 

 

모순 / 矛盾  矛 창 모 盾 방패 순

 

겉뜻 : '창과 방패'라는 뜻

속뜻 : 말이나 행동의 앞뒤가 서로 일치되지 아니함

 

유래 : 전국시대 초(楚)나라에 무기 상인이 있었다. 그는 시장으로 창과 방패를 팔러 나갔다. 상인은 가지고 온 방패를 들고 큰소리로 외쳤다. "이 방패를 보십시오. 아주 견고하여 어떤 창이라도 막아낼 수 있습니다."그리고 그는 계속해서 창을 들어올리며 외쳤다. "여기 이 창을 보십시오. 이것의 예리함은 천하 일품, 어떤 방패라도 단번에 뚫어 버립니다."그러자 구경꾼 중에 어떤 사람이 말했다. "그 예리하기 짝이 없는 창으로 그 견고하기 짝이 없는 방패를 찌르면 도대체 어찌 되는 거요?"상인은 말문이 막혀 눈을 희번덕거리고 있다가 서둘러 달아나고 말았다.

 

 

기우 / 杞憂  杞 구기자 기 憂 근심 우

 

겉뜻 : 중국의 기나라 사람이 하늘이 무너질까봐 침식을 잊고 근심 걱정하였다는 뜻

속뜻 : 쓸데없는 걱정을 나타냄

 

유래 : 옛날 중국의 기국(杞國)에 하늘이 무너지면 몸둘 바가 없을 것이라 걱정하여 침식을 전폐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소리를 들은 어떤 사람이 이를 딱 하게 여겨 일부러 그 사람에게 가서 깨우쳐 말하되 "하늘은 기운이 가득 차서 이루어진 것이니 어찌 무너져서 떨어지리요?" 그 사람이 말하되 "하늘이 과연 기운이 쌓여 이루어졌다면 해와 달과 별은 마땅히 떨어지지 않으리요." 일깨워 주는 사람이 말하되 "해와 달과 별도 또한 기운이 쌓여 있는 가운데 빛이 있는 것이라. 비록 떨어지더라도 또한 능히 맞아서 상하는 바가 없느니라." 그 사람이 말하되 "어찌 땅은 무너지지 않으리요?" 일깨워 주는 사람이 말하되 "땅은 기운이 뭉쳐서 이루어진 것이니 어찌 그 무너지는 것을 근심하리요?" 그 사람이 근심을 풀고서 크게 기뻐하고 일깨워 준 사람도 걱정을 풀고서 크게 기뻐하더라.

 

 

지음 / 知音  知 알 지 音 소리 음

 

겉뜻 :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안다는 뜻

속뜻 : 자기(自己)의 속마음까지 알아주는 친구

 

유래 : 춘추 시대에 伯牙(백아)라는 거문고의 명인이 있었다. 그에게는 그의 거문고 소리를 듣고 악상(樂想)을 잘 이해해 준 鍾子期(종자기)라는 친구가 있었다. 어느 날 백아가 높은 산에 오르는 장면을 생각하면서 거문고를 켜자 종자기가 그 소리를 듣고 이렇게 말했다. "정말 굉장하네. 태산이 눈앞에 우뚝 솟아 있는 느낌일세."또 한번은 백아가 도도히 흐르는 강을 떠올리면서 거문고를 켜자 종자기가 말했다. "정말 대단해. 양양한 큰 강이 눈앞에 흐르고 있는 것 같군 그래"이처럼 종자기는 백아의 생각을 거문고 소리를 통해 척척 알아 맞혔다.어느 날 두 사람은 북쪽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도중에 폭풍우를 만나 바위 그늘에 머물렀다. 백아는 자신의 우울한 기분을 거문고에 담았다. 한곡 한곡마다 종자기는 척척 그 기분을 알아맞혔다. 이에 백아가 거문고를 내려놓고 감탄했다. "정말 대단하네. 그대의 가슴에 떠오르는 것은, 곧 내 마음 그대롤세. 그대 앞에서 거문고를 켜면, 도저히 내 기분을 숨길 수가 없네."그 후 불행히도 종자기가 병으로 죽었다. 그러자 백아는 거문고를 때려부수고, 줄을 끊어 버리고는 두 번 다시 거문고에 손을 대지 않았다. 이 세상에 자기 거문고 소리를 알아 주는 사람은 이제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백아가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伯牙絶絃(백아절현)'은 바로 이 고사에서 유래된 것이다.

 

 

사지 / 四知  四 넉 사 知 알 지

 

겉뜻 : 두 사람만의 사이일지라도 하늘과 땅, 나와 상대편이 다 알고 있다는 뜻

속뜻 : 비밀은 언젠가는 반드시 탄로나게 마련임을 이르는 말


유럐 : 십팔사략(十八史略)의 양진전(楊震傳)에는 후한(後漢) 때의 관리인 양진의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평소 학문을 좋아하여 유학(儒學)에 정통했던 양진은 한 고을의 군수(郡守)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군의 하급 관청인 현(縣)의 현령(縣令)이 몰래 많은 금품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양진에게 건네 주려고 하며 지금은 밤이 깊으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양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그대가 알고 내가 알고 있는데 하며 받지 않았다는 데에서 유래. 훗날 양진은 삼공(三公)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지만, 환관과 황제의 유모인 왕성의 청탁을 거절했다가 모함을 받게 되자 스스로 독약을 마시고 자살하였다.

 

 

조장 / 助長  助 도울 조 長 길 장

 

겉뜻 : 도와서 자라나게 한다는 뜻

속뜻 : 좋지 못한 행위나 습관을 조급히 키우려다 오히려 망친다는 경계의 뜻을 지닌 말

 

유래 : 맹자(孟子)가 제자인 공손추와 정치(政治)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호연지기(浩然之氣)란 말이 나왔다. 맹자(孟子)는 호연지기에 대해 설명하고 기를 기르는 방법을 일러 주었다."호연지기를 기르는데 있어서 첫째 유념해야 할 것은 그 행하는 것이 모두 道義에 맞아야 한다. 氣만을 목적으로 해서 길러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해서 養氣의 방법을 전혀 잊어버리는 것도 좋지 않다. 宋나라의 어떤 사람처럼 너무 서둘러 무리하게 조장하려고 해서는 안된다."맹자(孟子)는 여기서 재미있는 예를 들어 설명했다.송(宋)나라의 어떤 농부가 모를 심었는데 그 모가 좀처럼 잘 자라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빨리 자랄까 하고 궁리한 끝에 손으로 뻗게 해주기로 했다. 그래서 모를 하나씩 뽑아서 늘여주었다. 그 많은 모를 하나 하나 뽑아 늘이자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는가. 녹초가 된 농부는 집으로 돌아와 말했다."아, 피곤해. 모가 하도 작아서 잘 자라도록 도와주고(助長) 왔지" 집안 사람들이 놀라 논으로 뛰어 가봤더니 모가 전부 말라 죽어 있었다."처음부터 기를 기르는 것은 쓸데 없는 것이라고 내버려두는 것도, 그렇다고 기는 길러야 하는 것이라 믿고 그 성장을 조장하는 것도 모두 좋지 않다." 이것이 맹자(孟子)의 결론이었다.

 

 

식언 / 食言  食 밥 식 言 말씀 언

 

겉뜻 :한번 입 밖으로 냈던 말을 다시 입속에 넣는다는 뜻

속뜻 : ①앞서 한 말을 번복하거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

②약속한 말을 지키지 않는 것

유래 : 서경(書經) 탕서(湯誓)에는 하(夏)나라의 폭군 걸왕(桀王)을 정벌하려는 은(殷)나라 탕왕(湯王)의 맹서가 기록되어 있다.탕왕은 박( )땅에서 출전에 앞 둔 전군(全軍)에 다음과 같이 훈시한다. 나는 감히 난을 일으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오. 하나라의 임금이 죄가 많아 하늘이 명하시니 그를 치려는 것이오. 나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니 감히 바로잡지 않을 수 없소. 하나라 임금은 백성들의 힘을 빠지게 하고, 하나라 고을을 해치게만 하였소. 탕왕은 하나라 걸왕의 죄상을 설명하며, 계속하여 정벌의 불가피함을 외친다. 바라건대 나를 도와 하늘의 법이 이루어지도록 하시오. 나는 여러분에게 큰 상을 내릴 것이니, 여러분들은 믿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하시오(爾無不信). 나는 약속을 지킬 것이오(朕不食言). 그리고 그는 자신의 처자식의 목숨을 담보로 제시한다.食言 이란 밥이 뱃속에서 소화되어 버리듯 약속을 슬그머니 넘겨 버리는 것 이니, 이는 곧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거짓을 말함 을 뜻한다.

 

 

단장 / 斷腸  斷 끊을 단 腸 창자 장

 

겉뜻 : 창자가 끊어진다는 뜻

속뜻 :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게 견딜 수 없는 심한 슬픔이나 괴로움

 

유래 : 진(晉)나라의 환온(桓溫)이라는 사람이 蜀(촉)나라로 가던 도중, 환온의 종자(種子)가 양자강의 삼협(三峽)에서 원숭이 새끼를 싣고 가자 그 어미가 새끼를 그리워하여 울부짖으며 백여리나 달려와 배에 뛰어 들더니 죽고 말았다. 죽은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너무나도 슬퍼했던 나머지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고 한다.

 

 

계륵 / 鷄肋   鷄 닭 계 肋 갈빗대 륵(늑)

 

겉뜻 : 닭의 갈빗대라는 뜻

속뜻 : 먹기에는 너무 맛이 없고 버리기에는 아까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형편

 

유래 : 삼국시대 1년 전, 유비가 익주(益州)를 점령하고 한중(漢中)을 평정(平定)한 다음 위(魏)나라 조조(曹操)의 군대(軍隊)를 맞아 한중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싸움은 여러 달에 걸쳐 장기간 양상을 띠고 있었는데 유비의 병참은 제갈량(諸葛亮)의 용의주도한 확보(確保)로 넉넉했지만 조조는 병참을 소홀히 하여 내부 질서가 문란하고 탈영병도 많아서 공격도 수비도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다. 병사 한 사람이 후퇴 여부를 묻자 닭고기를 뜯고 있던 조조는 닭갈비(鷄肋)을 들었다 놓았다만 했다. 그가 어리둥절해서 나오는데 주부(主簿)인 양수(楊脩)가 그 이야기를 듣고 장안으로 귀환할 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다른 참모들이 놀라 그 까닭을 묻자 양수는"닭의 갈비는 먹으려 하면 먹을 것이 없고 그렇다고 내버리기도 아까운 것이오. 한중(漢中)을 여기에 비유한 것은 승상께서 군대(軍隊)를 철수하기로 결정하신 것이오."라고 대답(對答)했다. 과연 양수의 예상대로 조조는 그 이튿날 철수 명령(命令)을 내렸다.

2011.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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