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 겸 캐스팅 디렉터 하용수, 영화배우·작가 도전 나서


  • 선선한 바람이 불던 6월의 마지막 날, 이태원의 패션파이브를 찾았다. 2층 라뜰리에로 올라와 주위를 두리번 거리던 찰나, 위아래 의상을 온통 분홍빛으로 물들인 한 남성이 다가와 인사를 건넨다.

    조기자님이시죠? 반갑습니다.


    하용수. 말이 필요없는 대한민국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가 바로 눈 앞에 서 있었다. 좌우 색상이 교차된 남방셔츠에 분홍색 면바지. 한 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옷차림이다. 큼지막한 녹색테 선글라스 너머로 번뜩이는 눈매가 느껴진다.

    식사는 하고 오셨습니까? 이 집은 오므라이스가 맛있거든요. 원하시는대로 주문하세요.


    풍겨지는 인상과는 다르게 첫 마디부터 소탈함이 묻어났다. 선글라스를 벗자 사슴처럼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드러났다. 그 안에서 선하디 선한 눈빛이 찰랑거렸다. 불과 몇마디 대화를 나누기도 전에 그를 둘러싸고 있던 위화감은 어느새 친근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먼저 내안의 틀을 깨야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어요. 나이가 있다고 대접 받으려고만 하면 안되죠.


    하용수는 "젊은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어떤 에너지를 받을 수 있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열정이 생겨날 수도 있다"며 "지금은 텅 빈 내 자신 속에 무언가를 계속 채워넣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완전히 탈진 상태였어요. 대한민국 최고의 사기꾼 3명을 만나서 내 인생 10년이 날아가 버렸어요. 이 사람들한테 당하고 나니까, 완전히 거지가 돼서 이태원에 주저 앉았지.


  • 97년 의류업체 '베이직'이 부도를 맞으면서 최정상의 자리에 있던 하용수는 한 순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페인트타운' '닉스' 'GV2' 등 손대는 것마다 빅히트를 치며 막대한 부를 거머쥐었던 하용수는 졸지에 수백억대 채무를 진 알거지가 됐다. 도망치듯 미국으로 떠난 하용수는 15년간 철저히 잊혀진 존재가 됐다.

    쉬는 동안 뭐했냐고요? 그냥 빚 갚았어요. 당시 저에겐 빚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별로 고생한 사람처럼 안보이죠? 그래서 인정을 못받아요. 그게 굉장히 큰 문제예요. 좀 슬퍼보여야 되는데….


    하용수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중 한 후배가 찾아와 책을 써보라고 권유를 했다"며 "처음엔 거절을 했지만, 생각해보니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것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 펜대를 잡게 됐다"고 밝혔다.

    죽을 용기가 없으니 살긴 살아야겠는데 할 수 있는게 없잖아? 자연스럽게 책을 쓰게 된 거지. 역시 사람은 갈때까지 가야 정신을 차리나봐요.


    "죽을 용기가 없어 억지로 버티던 중 살기 위해 글을 쓰게 됐다"고 밝힌 그는 "남에게 대필을 맡기는 게 싫어 탈고할 때까지 장장 2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일상을 보내면서 하용수가 바라보고 느낀 것들을 그냥 풀어냈어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선생님은 질서정연하지 않은 배열로 글을 쓰신다고. 완전히 새로운 화법이라나? 하하.


    책 제목은 '네 멋대로 해라'. 평소 좋아하는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 감독의 동명 영화 제목에서 따왔다고. 헤드카피로 적은 '이 미친세상 내가 정상이다'라는 문구는 "이 시대를 바라보는 지극히 하용수적인 시각을 담아낸 말"이라고 설명했다.

    저희 때에는 단세포였어요. 지금은 완전히 종합적이죠. 그야말로 카오스 시대 아닙니까? 내 잣대에서 이 카오스적인 세상을 바라보는 코멘트를 한 겁니다.


    하용수는 "자신이 펴낸 책은 패션학도나 연예인지망생들에게는 일종의 '머스트 해브(must have) 아이템'일 수 있다"며 "그들에게는 '바이블'이자 '교과서'와 같은 책이 될 것"이라고 자평했다.

    그러나 "딱딱한 교훈적인 얘기들이 아니라 말랑말랑한 일상의 얘기들이 주를 이룬다"며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주변의 소소한 단면들을 하용수만의 시각으로 풀어헤쳐, 누군가에게는 가벼운 읽을거리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힘이 될 수 있는 그런 메시지를 녹여냈다"고 밝혔다.



  • 오랜 만에 팬들 곁으로 돌아온 하용수는 '자전적 에세이' 외에도 근사한 영화 2편을 들고 나왔다. 영화배우 양동근과 이일화, '설국열차'의 최민영 편집감독 등이 힘을 보탰다.

    옛날에 정말 잘나갔다는 식의 네임벨류만 보여주는 늙은이는 되기가 싫었어요. 과거의 것을 다시 풀어내는 게 아니라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서, 대중에게 새로운 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디자이너' 이전에 잘 나가던 '영화배우'였던 하용수는 쉬는 동안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한 편의 상업영화와 한 편의 논픽션 영화를 찍었다.

    제가 TBC 공채탤런트 출신입니다. 영화도 18편이나 찍었고요. 디자이너 진태옥 선생님의 패션쇼를 연출하면서 패션계로 발을 들여놓게 됐는데요. 이번에 정말 오랜만에 주연배우로 두 작품이나 찍게 됐습니다. 둘 다 작품성이 아주 뛰어난 영화들이에요.


    하용수는 정요숙 감독의 제안을 받아 다큐멘터리 '놀자'를 장장 2년 반 동안 찍었고, 창세기 2장 7절을 테마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 관한 이야기'를 담아낸 '천화(遷化·A Living Being)'를 근 한 달 동안 촬영했다.

    민병국 감독이 연출한 '천화'는 치매에 걸린 한 노인이 3일간 정신이 회복되면서 벌어지는 환타지 영화. 죽음을 앞둔 인간이 뿌리 깊은 원죄를 털어버리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심오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제 73회 베니스영화제 필름마켓(Venice Film Market)에 출품돼 영화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다.

    최근 편집이 마무리된 정요숙 감독의 다큐, '놀자'도 '선댄스영화제(Sundance Film Festival)' 주최 측으로부터 초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용수가 컴백작으로 택한 2편의 작품이 모두 세계 유수 영화제에 출품되는 영예를 안게 된 것.

    '아티스트' 하용수의 공식적인 컴백일은 출판기념회가 열리는 오는 8일이 될 전망이다. 이날 행사에는 하용수와 친분이 두터운 다방면의 예술인들이 총출동할 예정. 팝페라 가수 정세훈, 바이올리니스트 콘, 가수 임병수, 장미화, 모델 노충량 등이 하용수의 컴백을 축하하는 기념비적인 퍼포먼스를 벌일 계획이다.

    그냥 편히 '갤러리 더 스페이스'로 오셔서 와인도 마시고 음식도 드시고, 자유롭게 즐기시면 됩니다. 제 오랜 지기인 경희대 김중섭 교수님의 스페셜한 토크쇼도 진행될 예정이니 기대 많이 해주세요.


  • 다음은 하용수와의 일문일답 전문.

  • - 이번에 '네 멋대로 해라'라는 에세이를 펴내셨죠?

    ▲제 책 속에는 그동안 제가 살아온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다 들어있어요.

    책 제목도 수없이 바뀌었어요. 처음엔 단순하게 '아프다'로 지었어요.

    그런데 '봉선화'라는, 정신대 할머니들을 주제로 한 연극 제목으로 제가 '아프다'라는 타이틀을 드리면서 이름을 바꾸게 됐죠.

    고심 끝에 '...ing 하용수'라는 제목을 떠올렸는데 좀 약하다는 느낌이 있었죠.

    제가 프랑스의 장 뤽 고다르(Jean Luc Godard) 감독을 좋아하는데, 어느날 갑자기 '네 멋대로 해라'라는 제목이 머리를 스쳐가는 거예요. 그래서 "OK! 내 제목이다" 하고 바로 확정을 지었죠.

    - "이 미친세상 내가 정상이다"라는 헤드카피가 눈에 쏙 들어오던데요.

    ▲그게 무슨 얘기냐 하면, 우리가 각자 살아가는데 시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죠.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수도 있고. 세대별로도 다를 수 있겠죠. 저희 때에는 단세포였어요. 지금은 완전히 종합적이죠. 그야말로 카오스 시대 아닙니까?

    모든 것이 혼재 돼 있는 세상. "이 미친 세상, 내가 정상이다"라는 카피는 내 잣대에서 이 카오스적인 세상을 바라보는 코멘트를 한 겁니다.

    - 그동안 왜 이렇게 오래 쉬셨나요?

    ▲빚 갚았어요. 그냥. (웃음)  완전 개털되고, 저에겐 그야말로 빚만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별로 고생한 사람처럼 안보이죠? 그래서 인정을 못받아요. (웃음) 그게 굉장히 큰 문제예요. 하하. 좀 슬퍼보여야 되는데….

    - 그러한 고생담이 책 속에 담겨 있겠군요?

    ▲신파(新派)는 안했어요. 책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얻어내는 거잖아요? 잠시 잘난 척을 하다가도 다시 아무 것도 아닌 나로 돌아오는…. 젊은이들에게 귀감이 될 수는 있겠지만, 교훈적이거나 마냥 딱딱한 얘기들이 아니라, 일상을 보내면서 하용수가 바라보고 느낀 것들을 그냥 담담히 풀어냈어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선생님은 질서정연하지 않은 배열로 글을 쓰신다고. 완전히 새로운 화법이라나? 하하.



  • - 어떠한 한 연유로 책을 쓰시게 됐나요?

    ▲어느날 후배가 형처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은 책을 써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내가 나를 돌아보는 것도 짜증나는데 무슨 책이냐고 핀잔을 줬죠.

    죽을 용기가 없으니 살긴 살아야겠는데 할 수 있는게 아무 것도 없잖아요? 자연스럽게 책을 쓰게 된 거지. 역시 사람은 갈때까지 가야 정신을 차리나봐요.

    그냥 자술서 쓰듯이 쓰다가 다시 고치기도 하고, 몇 번 반복을 하니까 좀 늘더라고요. 제가 대필을 하지 않아 글이 좀 거칠 거예요.

    나를 만나 본 사람이 책을 보면 이게 대필인지 아닌지 금세 알거 아냐? 그런게 난 용납이 안되는 거지. 그래서 2년이나 걸렸어요.

    사실 오랫동안 완전히 탈진 상태였지. 대한민국 최고의 사기꾼 3명을 만나서 내 인생 10년이 날아가버렸어요.

    대한민국 최고의 주가 조작사건을 일으킨 박OO와 '이OO 게이트'의 기업사냥꾼 이OO, 그 친구 때문에 천문학적인 금액의 투자금을 날렸고. 또 대한민국 최고의 차명계좌 사건을 일으킨 고양터미널의 이XX. 이 사람들한테 당하고 나니까, 완전히 거지가 돼서 이태원에 주저 앉았지.

    - 제일 힘들고, 그야말로 밑바닥에 있을 때 펜대를 잡으신 거군요.

    ▲쓰레기 더미가 훑고 지나간 광란의 이태원 거리를 아침에 보면 저절로 글이 써져요. 저절로 누구나 시인이 돼. (웃음)

    - 후련하세요?

    ▲잘했다 싶어요. 물론 아직 좀 미련은 있지. 못다한 얘기들이 많으니까. 앞으로 또 책을 쓴다면 파트를 쪼개서 여러 장르의 무크지를 내고 싶어요. 하용수가 얘기하는 음식 이야기, 하용수가 얘기하는 영화나 인테리어 이야기 등등.



  • - 책 내용 중에서 재미난 에피소드가 있으면 좀 소개해 주세요.

    ▲뭘, 몇 개만 말해. 하려면 다 소개해야지. (웃음) 제가 이태원을 몇십년 동안 왔다갔다 한 사람인데요. 무심코 흘려봤던 사람들을 어느 날부터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는데요. 점차 눈에 익으면서 저 사람이 여기 터줏대감이구나 하는 걸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들의 퍼스널리티에 대해서, 마치 어떤 사건을 추적하듯이 알아봤더니…. 아주 드라마틱하더라고요. 그냥 우리 주위를 지나치는 사람들에게서 발견하는 애환이랄까? 평범한 일생에서 뭔가를 재발견하는 재미가 제 책 속에 담겨 있을 겁니다.

    이태원 아무 커피숍이나 한 시간만 앉아 있으면 머리를 포니테일 스타일로 묶고 고무 장화를 신은 어떤 여자 분을 만나 볼 수 있을 거예요. 이 여자분을 두고 이런 저런 얘기가 많은데요. 항간에는 이대를 나왔다는 사람도 있고, 숙대를 나왔다는 사람들도 있어요. 4개 국어에 능통하고 한때는 정말 어마어마하게 잘 나갔다는 그런 얘기들이 나돌더라고요.

    지금도 기자님이 이태원 주변을 돌아다니다보면 만날 수 있을 거예요. 길거리에 우산을 펼치고 그 아래에서 잠을 청하는 모습이라든지….

    이런저런 사람들을 보면서 느껴지는 하용수적 생각을 담아봤어요. 그네들의 과거는 어땠을까? 그네들은 왜 이렇게 답습된 행동을 할까?

    저에게 아주 친한 여인이 있는데요. 햇빛이 쨍쨍한 대낮에 어느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먹다가 한 영감님이 우산을 들고 가는 모습을 보더니 "내일 틀림없이 비가 온다"고 하더군요. 저 영감님이 우산을 들고 가면 반드시 다음날 비가 온다나 어쩐다나.

    그 다음날 점심을 먹고 있는데, 아침까지는 정말 해가 쨍쨍했거든요? 비가 마구 쏟아지는 거예요. 세상에…. 그 글의 제목이 일기예보예요. 책이 이런 식이야. (웃음)

    - 옴니버스 식으로 여러 이야기들을 묶은 거군요.

    ▲그렇죠. 그냥 하용수가 바라본 일상의 단면들을 술술 풀어냈어요. 남들은 우울하게 여길 수 있는 이야기들도 우울하게 안썼어요. 피식 웃으면서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 책 속에는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유명인사 분들이 많이 등장하겠군요.

    ▲제 책을 보면, 나이든 사람들보다도 젊은 실력파 아티스트들이 많이 나옵니다. 각계에서…. 웅산 같은 경우는 재즈싱어로 유명하죠. 적우랑, 바이올리니스트 콘 같은 친구들도 나오고…. 아이고 하도 많아서 잘 기억이 안나요. 일단 읽어 보세요.

    - 저로선 선생님의 직업을 한 마디로 정의 내리기가 좀 힘든데요. 어떻게 불려지길 원하십니까?

    ▲출발은 배우인데, 좀 헷갈립니다. 나도…. 하하. 물론 '메인 잡'은 패션디자이너가 됐는데요. 그냥 아티스트라고 불러주세요.



  • - 사진 작가분들하고도 작업을 많이 하셨죠?

    ▲조세현, 김중만, 조선희…. 다 저하고 작품을 같이 하면서 스타가 됐어요. 저는 한 번 화보를 찍으면 최하 10페이지씩 작업했거든요. 보통 에디터들이 저한테는 콘셉트를 다 맡겼어요. 함께 토의를 하면서 항상 다양한 시도를 해왔죠. 제가 작가들의 성향과 캐릭터를 잘 아니까, 그때그때마다 변화를 주려는 노력을 기울였어요.

    잠깐 옛날 얘기를 좀 하자면‥. '마스크'라는 영화 있죠? 그때 내가 피카디리 극장에 한 20명의 톱스타들을 깔아줬어요. 시사회 행사장에서 최초로 레드카펫 포맷을 내가 던져준거야. 그 전에는 그런 게 없었어요.

    요즘 친구들은 매스미디어의 보고(寶庫)를 한꺼번에 누리고 있는 거지. 지금은 물자가 풍부하고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이 있잖아?

    그리고 '코카콜라'하고 '오란씨' 1호 광고 모델이 바로 접니다. 대학은 행정학과를 나왔는데, 인생이 아주 이상하게 돌아간거지. (웃음)

    진짜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내일 박카스 광고 모델 오디션이 있는데 한 번 나가보지 않겠느냐"고 누가 제안을 해왔어요. 김한용(金漢鏞) 선생님이 운영하는 충무로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진행했는데, 한 100명 정도 왔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덜커덕 캐스팅 된 겁니다. 운이 좋았죠. 당시 보성고 재학 시절이었는데요. 머리도 길렀고, 돈도 받고, 용평가서 스키도 타고…. 어린 나이에 정말 좋았어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막 일어나니까 좀 건방졌지. 그때는 제가 왕자가 된 줄 알았어요.

    - 오는 8일 출판기념회도 여시죠?

    ▲이번 출판기념회, 아주 볼 만할 거예요. 장미화하고 정세훈도 노래를 부르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들도 많이 올 겁니다. 요즘 활동하는 아이돌 스타들도 오기로 했는데, 참석 못하는 아이돌 중에 포미닛 같은 친구들은 따로 영상 메시지를 보내주기로 했어요.

    - 아니 걸그룹 포미닛이요? 잘 아십니까?

    ▲어휴, 저 그냥 할아버지 아니에요. 하하. 다들 제가 예뻐하는 후배들이죠. 함께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된 사이에요.

    - 장기간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주변에서 많이들 도와 주셨죠?

    ▲고마운 사람들이 많죠. 하지만 이름을 밝히길 원하지 않는 분들이 많아서…. 묵묵히 마음으로 응원해주신 분들도 많이 계시고요. 다들 감사하죠.



  • - 요즘 TV를 보면 선생님처럼 과거 향수를 자극하는 추억의 스타들이 많이 등장하더라고요.

    ▲저는요, 옛날에 정말 잘나갔다는 식의 네임벨류만 보여주는 늙은이는 되기가 싫었어요. 과거의 것을 다시 풀어내는 게 아니라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서, 대중에게 새로운 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지난 십여년간 매스컴을 거의 안만났어요. 할 말이 없으니까.

    그런데 이번에 영화 작업을 두 편이나 해서 오랫만에 인터뷰를 하게 됐습니다. 한 편은 이미 '베니스영화제'에 출품됐고, 다른 한 편은 드디어 편집이 다 완료됐는데 '선댄스영화제'에 나갈 예정입니다.

    둘 다 주연이고, 제가 타이틀 롤을 맡았어요. 전부 조기자처럼 젊은피들하고 작업을 했어요.

    '천화(遷化)'라는 작품은 평범한 멜로나 다큐가 아니에요. 치매에 걸린 한 노인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제주도에서 요양을 하게 되는데, 사흘 동안 정신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일종의 환타지 영화예요. 굉장히 잘 만들었어요. 베니스영화제 필름마켓에 출품했는데, 좋은 결과가 안나와도, 그 자체로 만족합니다.

    '놀자'라는 다큐멘터리는 정하연 선생님의 따님인 정요숙 감독에게 콜을 받아서 시작하게 된 작품이에요. 어느날 저를 보더니 "선생님 같은 시니어하고 젊은이들이 서로 소통하는 소통의 이야기를 다큐로 찍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2년 반 정도 찍었어요. '웰컴 투 동막골' '최종병기 활' '설국열차' '연평해전' 등의 편집을 맡았던 최민영 감독이 공동 감독을 맡았고요.

    - 한창 영화배우로 활동하시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정말 많은 세월이 흘렀는데요. 오랜만에 촬영 현장에 나가보니 어떠시던가요? 불편하거나 어려운 점은 없으셨어요?

    ▲모든 게 많이 좋아졌어요. 크게 달라진 건, 예전에는 내가 막내로 참여했다면, 지금은 왕고참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하하. 현장에서 저를 잘 대접해 주시니 별로 불편한 점은 없어요. 항상 5분 전에 스탠바이 하고 연기에 들어가는데요.

    다행스러운 점은 이 영화가 단 사흘 동안 벌어지는 얘기라는 점이에요. 만약 아주 긴 시간을 그리는 영화라면 힘들었을지 몰라요. 기간이 짧았기 때문에 감정을 몰입하기가 쉬웠죠.

    애당초 연기를 잘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감독한테 이렇게 얘기했죠. "나한테 연기 기술 부리라고 하지마. 나는 당신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그저 당신이 원하는 연기를 할 수 있도록 최면을 걸거야" 제가 매소드 연기는 하지 못하지만, 감독이 나를 그냥 놓여져 있는 '오브제'로 잘 써먹기를 바랐어요.

    아주 행복하게 찍었어요. 무엇보다 양동근과 이일화가 저예산 영화임에도 불구, 기꺼이 참여해 줘서 감사했죠.

    특히 이일화는 요즘에 응팔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새로운 영화에서 또 다른 느낌의 히로인이 됐으니,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멋진 필모그래피가 될 거에요.

    영화에선 제 간병인으로 출연하는데요. 제가 모든 걸 털어놓고 완전히 의지하는 그런 사이죠.

    - 촬영 기간은 얼마나 됐나요?

    ▲한 달 정도 찍었어요. 제주도에서 거의 90% 이상을 찍었는데, 날씨가 아주 변화무쌍하더라고. 하루가 4계절 같아….

    두 달 전에 촬영을 마쳤고요. '놀자' 같은 경우도 올해까지 추가 촬영을 진행했어요.


  • 취재 = 조광형 기자
    사진 = 정재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