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과 부대찌개

[김웅의 덧뵈기]핼러윈과 부대찌개

10월의 마지막 밤. 나 같은 꼰대세대에게는 가수 이용의 노래가 떠오르겠지만, 젊은 세대는 핼러윈이라고 부른다. 젊은 남녀가 가면 하나씩 쓰고 클럽에 몰려가 ‘부비부비’로 온밤을 불사르는 날이다. 어떤 이는 우리 고유의 명절인 한식, 단오, 백중, 유두는 사라지고 정체불명의 양키 축제가 횡행한다고 불만이다. 나라 잃은 것처럼 통탄하기도 한다. 사실 나도 좀 마뜩잖지만, 따지고 보면 한식, 단오, 백중도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라 그리 텃세 부릴 일은 아니다.

[김웅의 덧뵈기]핼러윈과 부대찌개

불청객 신세이나, 핼러윈은 배타적인 사회에서 출발하여 포용적인 사회를 지향하는 미국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축제이다. 워낙 복잡하게 섞였기 때문에 그 뿌리를 찾는 것은 잠실구장에서 홈런왕을 배출하는 것만큼 어렵다. 대략 켈트족의 사아윈(Samhain) 축제와 기독교의 만성절(All Saints Day)이 결합된 것이라고 한다.

사아윈은 고대 켈트족의 수확제인데 우리로 치면 추석 같은 것이겠다. 이날은 켈트력(曆)으로 한 해의 마지막이자 여름이 끝나고 겨울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한다. 켈트족은 이날 수확에 감사하고 겨울 먹거리를 위해 가축들을 도살했다. 또한 이날은 이승과 저승의 간격이 좁아져 악령들이 출몰하는 날이기도 하단다. 악령들도 장거리 여행은 어려운가 보다. 아무튼 악령의 해코지를 막기 위해 켈트족의 무당들은 마당에 큰 화톳불을 켜놓고 짐승 가죽을 입고 춤을 추며 곡식과 가축을 제물로 바쳤다. 그게 사아윈 축제가 되었다고 한다. 기원(紀元)경 로마제국은 잉글랜드 북부에까지 이르러 켈트족의 영토에 도달한다. 그러자 사아윈 축제는 로마의 영향을 받는다. 죽은 영혼을 위한 페랄리아 축제와 과일의 여신을 위한 11월 포모나 축제 등 로마의 축제 의식들이 대거 사아윈 축제에 도입되었다.

수백년이 흘러 로마의 축제들은 사라졌다. 하지만 사아윈 축제는 계속 살아남았고, 9세기 봉건 성립기에 이르러서는 교황청의 골칫거리가 될 정도로 번성한다. 다분히 이교도적인 이 축제를 두고 당시 교황청은 이를 탄압하는 것보다 발전시키는 현명함을 보인다. 사아윈을 성인(聖人)을 기리는 만성절(All Saints Day)로 유도한 것이다. 관제데모 같은 것이다. “All saints”가 “All Hallows”로 바뀌면서 “All Hallows Eve”를 줄여 “Hallowe’en”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억지스럽게 느껴지나, 서라벌이 서울로도 변하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자.

켈트족의 축제였던 핼러윈은 1800년대 중반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이민자들을 통해 미국에도 소개되었다. 축제의 성격상 물건 팔아먹기 쉽고, 또 마땅한 명절이 없는 신생국가의 요구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에 핼러윈은 급속히 국가대표급 명절로 자리 잡았다. 빈 땅에는 말뚝만 박아도 이정표가 된다, 뱅뱅사거리같이.

미국에 들어와서도 핼러윈은 변화를 멈추지 않는다. ‘잭의 랜턴(Jack-O-Lanterns)’이나 ‘사탕얻기(Trick-or-Treat)’들이 핼러윈 의식에 첨가되었다. 잭의 랜턴은 속을 파내고 그 안에 촛불을 켠 채 집 앞에 두는 호박 등불이다. 이것의 유래는 원래 악마를 속인 죗값으로 순무 속의 촛불 하나만을 들고 이승을 떠돌아야 하는 구두쇠 잭의 등불이라고 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죽은 사람의 얼굴을 조각하고 그 안에 촛불을 켜놓는 아일랜드의 전통과 고대 켈트족의 머리사냥(Brazen Head)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원래는 순무로 만들었는데 호박 주산지인 일리노이를 거치면서 호박이 일반화되었다.

아이들이 집마다 돌아다니며 사탕을 뜯어내는 사탕얻기 놀이도 원래 핼러윈하고는 관련이 없었다. 중세 영국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빵을 구걸하고 대신 부자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주던 행사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린애들로 하여금 어른들을 상대로 갈취하는 재미를 깨닫게 해주는 이 교육적인 행사는 1930년대에 슬쩍 핼러윈에 끼어들었다. 이제는 온갖 괴기영화의 캐릭터에 대한 코스프레와 합세하여 부모들의 등골을 빼는 주역으로 활약하고 있다.

이렇게 배경이나 이념, 종교 따위는 상관치 않고 무엇이든 집어삼킨 결과가 핼러윈이다. 대중적이고 말초적인 요구와 반짝하는 재치가 마구 뒤섞여 어느덧 새로운 전통으로 재탄생했다. 핼러윈을 보면 잡다하게 섞여 새로운 맛으로 탄생한 비빔밥이나 부대찌개가 떠오른다. 다른 축제들은 거의 사라졌으나 부대찌개 같은 핼러윈은 천년 넘게 살아남았다. 섞이는 것이 불순하다고 생각되나 대부분 강한 생명력을 지닌다. 다소 이질적이고 무분별해 보이더라도 유연하게 받아들이면 새로운 풍습과 규범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는 예전에도 중국의 명절을 받아들여 우리 명절로 만들어왔다. 이번 핼러윈에는 호랑나비 춤을 추는 조커들이 많이 나타날 거라고 한다. 다른 눈으로 보면 다양한 문화와 포용의 가치를 생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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