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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마골피가 왜 인기검색어에 올랐나요?
soul**** 조회수 14,731 작성일2007.01.29

아까 보니까 마골피가 인기검색어에 떴더라고요.

 

마골피가 왜 인기검색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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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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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마골피 는 우리나라 전래의 성이 아니라 북방유목민족-몽골,여진등-의 성씨입니다

이 성들이 역사에 대거 등장하게 된 시기는 고려말기의 원지배기입니다

원나라가 몽고족이 세운 나라라는건 아시겠져?

고려가 원의 속국이 되있었기에 물적교류만큼 인적교류도 크게 늘어났고 그 과정에서 천방지축마골피 라는 성씨도 같이 들어왔던 겁니다 혼혈로 인한 성씨승계도 있었을것이고 원에서 고려로 이주,정착했던 사람들도 있었겠져

그런데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건국-원의 멸망과 명의건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속에서 우리나라는 피지배국에서 벗어나게 되었져

우리가 1910년부터 35년동안 우리를 다스렸던 일본을 싫어하는 것만큼 옛날의 고려(조선)사람들도 원나라를 무지 싫어했겠지여?

그런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가 바로 성씨에 대한 차별(상놈의성씨)로 변환되었던 것입니다

또 혼혈들은 양인취급을 해주지 않거나 높은 관직에 오를수 없었던 당시의 사회적 상황으로도 그들의 처지가 낮게 자리잡을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희귀 성씨에는 잘못된 통설도 적지 않다. 흔히 ‘천방지축마골피’를 천계(賤系)의 대표인 것처럼 말하지만 근거가 없다. 먼저 ‘축씨’와 ‘골씨’는 1985년 조사 때의 275개 성씨 중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천씨는 ‘하늘 천(天)’자와 ‘일천 천(千)’자를 쓰는 두 경우가 있다. 천(天)씨는 조사에 따르면 밀양 등 5개 본관에 1351명이 있는데, 조선 정조 때 천명익이 진사시에 합격한 것으로 봐서 천계는 아니다. 영양 천씨(潁陽 千氏)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구원군으로 온 귀화 성씨로서 중시조 천만리가 자헌대부와 화산군에 책봉 받았으니 이 또한 천계가 아니다.

방씨도 대표격인 온양 방씨(溫陽 方氏)의 경우 중간 시조로 알려진 방운이 고려 성종 때 온수(온양)군(君)에 봉해지자 온양을 본관으로 삼은 것이다. 남양 방씨(南陽 房氏)는 고려 때 벽상공신 삼중대광보국을 역임한 방계홍을 1세 조상으로 하고 있으며, 개성 방씨(開城 龐氏)도 고려 때 원나라 노국대장 공주를 따라 온 원나라 벼슬아치 방두현을 시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천계는 아니다.

지씨의 대표격인 충주 지씨(忠州 池氏)는 지용수(池龍壽)가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일등 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조선 시대 때는 문과 급제자 10명을 배출했다는 점에서 역시 천계가 아니다. 호사가들이 악의적으로 만든 것이 통설이 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사례에 불과하다영양 천씨는 중국에서 건너온 성씨로 명나라때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운 천암의 후손들입니다. 천수경이라는 훌륭한 시인도 계셨고 통훈대부, 광주부윤, 영월군수등의 벼슬을 대대로 해온 집안입니다.

방씨는 온양 방씨의 경우 당나라때 중국에서 신라로 건너온 성씨로 조선조에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분이 계셨습니다. 남양 방씨의 경우 당나라 양공 방현령이라는 분을 시조로 사간원 정언벼슬한 분이 계셨지요. 개성방씨는 한성좌윤을, 태원 방씨는 오위장 벼슬을 지낸 분이 계셨습니다.

지씨 - 충주지씨(병조참판) 추씨 - 전주추씨(한성부윤) 마씨 - 목천마씨(장흥부원군)
고씨 - 제주고씨(많음) 피씨 - 괴산피씨(병조판서) 홍천피씨(한림학사)

 

 

 

 

 

 

 

 

 

 

●‘천방지축마골피’는 잘못된 통설

그런데 희귀 성씨에는 잘못된 통설도 적지 않다. 흔히 ‘천방지축마골피’를 천계(賤系)의 대표인 것처럼 말하지만 근거가 없다. 먼저 ‘축씨’와 ‘골씨’는 1985년 조사 때의 275개 성씨 중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천씨는 ‘하늘 천(天)’자와 ‘일천 천(千)’자를 쓰는 두 경우가 있다. 천(天)씨는 조사에 따르면 밀양 등 5개 본관에 1351명이 있는데, 조선 정조 때 천명익이 진사시에 합격한 것으로 봐서 천계는 아니다. 영양 천씨(潁陽 千氏)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구원군으로 온 귀화 성씨로서 중시조 천만리가 자헌대부와 화산군에 책봉 받았으니 이 또한 천계가 아니다.

방씨도 대표격인 온양 방씨(溫陽 方氏)의 경우 중간 시조로 알려진 방운이 고려 성종 때 온수(온양)군(君)에 봉해지자 온양을 본관으로 삼은 것이다. 남양 방씨(南陽 房氏)는 고려 때 벽상공신 삼중대광보국을 역임한 방계홍을 1세 조상으로 하고 있으며, 개성 방씨(開城 龐氏)도 고려 때 원나라 노국대장 공주를 따라 온 원나라 벼슬아치 방두현을 시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천계는 아니다.

지씨의 대표격인 충주 지씨(忠州 池氏)는 지용수(池龍壽)가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일등 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조선 시대 때는 문과 급제자 10명을 배출했다는 점에서 역시 천계가 아니다. 호사가들이 악의적으로 만든 것이 통설이 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사례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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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 千 )씨 - 정유재란때 귀화한 중국계성씨
우리 나라 족보를 보면 70%가 자신의 시조를 중국인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중국에서 귀화한 중국계는 많지 않습니다. 대개 원나라가 망하고 명나라가 들어서기 직전 혼란한 시기( 이 시기가 무협지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강호의 세계입니다. ), 명나라가 망하는 시기에 주로 많이 조선으로 들어왔는데 " 충장공 천만리 "라는 분은 바로 정유재란후 조선에 귀화하여 오늘날 한국의 천씨의 시조가 되신 분입니다.

[2] 방( 房 )씨 - 고구려에 귀화한 중국인의 후손 or 고구려인의 후예(?)
시조 방준( 房俊 )이 당나라에서 고구려( 말기 )에 귀하하였다고 전해지며, 실제 시조( 중시조 )는 고려시대 벽상공신의 작위를 받은 방계홍부터라고 합니다. 실제 중국계인지, 아니면 망국( 고구려 )의 백성임을 숨기기위해서 그런 것인지는 저도 의문이 생깁니다. 저는 고구려인의 후예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 외 통일신라시대 중국에서 귀화하였다는 방( 方 )씨가 있으나 이도 신라인으로서 중국의 성을 빌린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극소수이지만 방( 龐 )씨와 방( 邦 )씨도 있는데 모두 각각 명나라 건국기와 멸망기에 귀화한 중국계라고 합니다.

[3] 지( 池 )씨 - 천년 무인( 武人 ) 명문세족인 이중( 二重 )성씨
태조왕건시대에 시조 지중익이 어( 魚 )씨성을 하사받아 지씨와 어씨 두 개성씨로 고려, 조선을 이어온 성씨입니다. 지씨와 어씨는 문반보다는 무관쪽으로 고려와 조선을 이어 천년세도를 누린 성씨입니다. 특히 세조시대 만주의 호랑이로 불린 어유소장군이 유명하지요.

[4] 마( 馬 )씨 - 고구려 동명성왕의 후손
물론 동명성왕의 직계손이 아니라 동명성왕과 같이 남하한 신하 마려( 馬黎 )의 직계손입니다. 마려는 후에 온조왕과 함께 서울로 남하하여 백제를 건국하기에 이릅니다. 아마 고구려, 백제의 실질적인 건국자이며, 이 두나라의 " 정도전 "인 셈이지요.
물론 중국 한대( 漢代 ) 전설적인 명장인 복파장군 마원( 馬援 )의 후손임을 자체하는 성씨도 소수이지만 있다고 합니다.

[5] 피( 皮 )씨 - 춘추시대 유명한 협객 번중피의 후손
협객하면 무협지의 섬뜩한 무사를 연상하는데 실제 협객의 시조는 " 공자 "나 손자병법의 " 손자 "처럼 춘추각국을 돌아다니며 사상과 지혜를 파는 국가를 초월한 전략가들입니다. "번중피"도 당시 " 손자 "만큼이나 유명한 전략가였습니다. 그 분의 이름 맨 뒷글자를 따서 성을 만들었는데 족보에는 송나라 시대 고려에 귀화하였다고 전해지나 아마 " 번중피 "가 워낙 유명한 분이기에 고려의 호족( 귀족 )이 그분의 이름을 빌려와 성을 만들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축씨와 골씨는 현재 한국에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6] " 천방지축마골피 "가 천한 성으로 오인받는 이유
아마 중국에서부터 이런 말이 생기지 않았나 사료됩니다. 한자도 우리나라 성씨와는 다릅니다. 우리나라 성씨의 " 千-房-池-馬-皮 "가 아니라 " 天邦支竺馬骨皮 "로서, 천( 天 )씨와 축( 竺 )씨는 과거 천축국( 天竺國:인도 )에서 온 승려들이나 귀화한 인도인이 쓴 성씨입니다. 지( 支 )씨는 과거 월지족( 月支族 )의 후예이지요. 삼국지의 손권도 " 월지족 "이라고 합니다. 오늘 날 " 타슈켄트( 우즈베키스탄 ) "와 " 키르키즈키스탄 " 등 중앙아시아 투르케스탄 민족과 같은 계열의 서역인이지요. 골( 骨 )씨도 위구르인을 한자로 음역한 " 회홀 "또는 " 회골  "의 그 " 골 "입니다. 바로 서역인의 후예이지요.
마( 馬 )씨는 중국에 귀화한 아랍계 후예가 마호멧의 후손임을 주장하여 스스로를 마( 馬 )씨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중국에는 마원의 후손 마씨와 아랍계 마씨가 있지요. 한국에서도 아랍계 " 덕수장( 張 )씨 "와 회홀계 설( 卨 )씨가 있지요. 피씨와 방씨는 저도 그 근원을 잘 모르겠는데 아마도 오랭캐성씨인 것 같습니다.
아마 " 천방지축마골피 "가 오랑캐성씨로 중국에서 멸시를 받다가 조선에 와서도 천한 성씨로 여겨진 것 같습니다.

 

 

 

 

흔히 천씨, 방씨, 지씨, 축(추)씨, 마씨, 골(고)씨, 피씨 등을 가르켜 천한 성씨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너무나도 잘못된 통설임을 현대인이 알고 개선해나가야합니다.

먼저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간단한 설명을 하겠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글을 읽고 난 뒤에도 대충읽으셨는지 증거를 대라시길래 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글은 각각의 성씨들이 언제, 어떻게 생겼으며 어떤 벼슬을 하였는지를 위주로 적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벼슬이라 하였는데 여러분도 알다싶이 천민은 절대로 벼슬을 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조선말에는 돈으로 관직을 샀다하지만 '천방지축마골피' 대부분의 성씨는 고려시대 때 생겼으므로 절대 그렇게 생각하시면 안되겠습니다.

밑에서 더욱 자세한 설명이 있겠지만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지씨의 경우
고려 초, 4대 임금인 광종에게 성을 하사받아(약 951년) 그 후로 고려 때에만
무려 36번의 최상급 벼슬(문하시랑 평장사)를 역임하게됩니다.

천민이 과연 그런 최고의 벼슬을 그렇게 많이 할 수 있습니까?

그럼 이런 점들을 생각하시며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우선 천민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보겠습니다.

천민이란 양인 밑의 신분, 즉 노비 등의 사람을 말했으며 실제로 천민은 성씨 자체가 없었으며 과거(문과)에 응시마저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위의 성씨를 가진 사람들이 천민이 아니였다는 것을 증명해드리겠습니다.

우선 지씨를 보겠습니다.

지가(池家)는 고려 때에  平章事(수상급) 36명을 배출한 명문 거족이었으며,
조선시대에는 10명 이상의 문과급제자를 배출해 내었습니다.
여기서 '고려 때에 수상급 36명을 배출한 가문이 왜 조선시대에는 10명 대의
급제자만 나왔을까' 하시는 분이 계실텝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지가(池家)는 고려 때 번영했던 가문이었던 만큼,
이성계가 반란을 일으켜(이조혁명)왕조가 바뀌고나서도 충심으로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모두 정권에 손도 대지 않고 다만 무신의 길로 나아가 나라를 지키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 예로 17代 池 湧奇 공은 고려왕조에서 보기 드문 훌륭한 지도자였으며  

이성계와 지극히 가까운 사이시면서도, 지조와 절개를 지키시다가 밀려나게 되셨으며,

포은 정몽주 선생이 참살됨을 통분하게 생각하시고, 말도 않고, 먹지도 않고, 눕지도 않고, 잠자지 않으시고, 13일 만에 앉아서 절명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에는 무과에서도 매우 훌륭한 공신들이 대거 나오게되었습니다. 

다음으로 천씨를 보겠습니다.

천씨는 ‘하늘 천(天)’자와 ‘일천 천(千)’자를 쓰는 두 경우가 있습니다.
천(天)씨는 5개의 본관에있는데, 조선 정조 때 천명익이 진사시에 합격한 것으로 봐서 천계는 아닙니다.
영양 천씨(潁陽 千氏)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구원군으로 온 귀화 성씨로서 중시조 천만리자헌대부화산군에 책봉 받았으니 이 또한 천계가 아닙니다.

다음으로 방씨를 보겠습니다.

방씨도 대표격인 온양 방씨(溫陽 方氏)의 경우 중간 시조로 알려진 방운이
고려 성종 때 온수(온양)군(君)에 봉해지자 온양을 본관으로 삼은 것입니다.
남양 방씨(南陽 房氏)는 고려 때 벽상공신 삼중대광보국을 역임한 방계홍을 1세 조상으로 하고 있으며, 개성 방씨(開城 龐氏)도 고려 때 원나라 노국대장 공주를 따라 온 원나라 벼슬아치

방두현을 시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천계는 아닙니다.

이상으로 대표적인 성씨 3개를 예로 보여드렸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통설이 생겨났을까?' 하는 의문이 생겨납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간 일제하에서 일제 고등경찰이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근거없이 지어내 주민들에게 퍼트린 말들이 그럴듯하게 들리자 일부 유식한듯한 몰지각한 식자층에서 인용한 말이 천방지축 마골피 등등입니다.

다시말해 이런 말은 듣고 말할 가치조차 없으며 일본인들이 한민족 이간책으로 지어낸 말임을 다시한번 되새기면서 민족의 단결을 해치려는 술책에 현대에 와서까지 넘어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천방지축마골피 성씨가 상민이었다는 것은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

희귀 성씨에는 잘못된 통설도 적지 않다. 흔히 ‘천방지축마골피’를 천계(賤系)의 대표인 것처럼 말하지만 근거가 없다. 먼저 ‘축씨’와 ‘골씨’는 1985년 조사 때의 275개 성씨 중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천씨는 ‘하늘 천(天)’자와 ‘일천 천(千)’자를 쓰는 두 경우가 있다. 천(天)씨는 조사에 따르면 밀양 등 5개 본관에 1351명이 있는데, 조선 정조 때 천명익이 진사시에 합격한 것으로 봐서 천계는 아니다. 영양 천씨(潁陽 千氏)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구원군으로 온 귀화 성씨로서 중시조 천만리가 자헌대부와 화산군에 책봉 받았으니 이 또한 천계가 아니다.

방씨도 대표격인 온양 방씨(溫陽 方氏)의 경우 중간 시조로 알려진 방운이 고려 성종 때 온수(온양)군(君)에 봉해지자 온양을 본관으로 삼은 것이다. 남양 방씨(南陽 房氏)는 고려 때 벽상공신 삼중대광보국을 역임한 방계홍을 1세 조상으로 하고 있으며, 개성 방씨(開城 龐氏)도 고려 때 원나라 노국대장 공주를 따라 온 원나라 벼슬아치 방두현을 시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천계는 아니다.

지씨의 대표격인 충주 지씨(忠州 池氏)는 지용수(池龍壽)가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일등 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조선 시대 때는 문과 급제자 10명을 배출했다는 점에서 역시 천계가 아니다. 호사가들이 악의적으로 만든 것이 통설이 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사례에 불과하다.

 

 

 

 

 

흔히 사람들이 양반이 아닌 상씨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잘못된 지식입니다.
아마도 천방지축으로 날뛴다라는 말때문에 생긴 말같은데 잘못된 어원이라고 할 수 있지요.
참고로 우리나라 성의 열람을 보면 축씨와 골씨는 없더군요.
우리나라는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성이라는게 자리잡고 있지 않았습니다.
일례로 최근의 역사드라마 왕건에서도 그렇듯이 궁예 견훤 애수리 하는 식으로 성이 없었던 거지요.
소수의 사람들만 성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서 (그것도 조선초기에는 성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15%에 불과했
었고), 조선 중기 이후 유교가 본격적으로 받아들여진 후에 성씨가 자리잡게 된 것입니다.
임난이후 성이 있는 사람이 60%이상이 되었지요.물론 전공을 세운다거나 족보를 사서 되는 사람도 많았고 말입니다. 지배층이 60%이상이 되었는데 지배층 피지배층을 운운하기에는 어폐가 있겠지요?

어떤 어원에서 생긴 말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확실히 잘못된 지식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예를 들어 충주 지씨와 영양천씨를 살펴보겠습니다.

충주지씨(忠州池氏)

[유래]
시조 지경(池鏡, 903~1003, 시호는 선의, 자는 자운, 호는 암곡)은 중국 송나라 중원 홍농 사람으로 960년(고려 광종 11년)에 귀화했다. 당시 태학사로서 고려에 사신으로 왔다가 정착하여 벼슬이 금자광록대부 태보, 평장사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경의 6세손인 지종해(池宗海)가 충주에 살았으며 고려 때 문하시랑평장사로 충주백에 봉해졌다. 그래서 후손들이 충주를 본관으로 하였다.
또 본래는 충주 지씨였다가 고려 태조에게 충주 어씨로 성을 하사 받은 어중익(魚重翼)도 충주 지씨 6세이다. '충주지씨대동보'는 시조 지경의 아들에 지해관(海貫, 찬성사), 지도관(道貫, 평장사) 형제가 있고, 지해관의 아들에 지윤(胤, 안렴사), 지영(瀛, 부원수) 형제가 있으며, 지영의 아들에 지득상(得尙, 평장사), 지응상(應尙, 찬성사)이 있어 지득상의 손자가 지종해(평장사)이고 지응상의 손자가 지중익, 즉 어중익(평장사)으로 기록되어 있다.
- 시조 지경의 묘는 평안도 중화 당악산 화산정에 있다.

[ 대표적 인물 ]
- 지용수(龍壽) : 고려 공민왕 때 서북면지병마사로 홍건적을 물리쳐 1등공신에 책록되었다.
- 지윤(奫) : 우왕 때 서북면도원수가 되고 다시 문하찬성사에 올랐다.
- 지용기(湧奇) : 고려 우왕 때 이성계 휘하에서 위화도 회군에 참가하여 충원부원군에 봉해졌다.
- 지여해(汝海) : 조선시대에 병조참판에 추증되었다.
- 지계최 : 도원수 장만(張晩)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 지덕해(德海) : 병자호란 때 활약하였다.
- 지석영(錫永) : 우두법을 처음으로 보급한 의학자이다.
- 지운영(運英) : 지석영의 형. 서화가(書畵家)로 유명하다.
그밖에 독립운동가로 지청천(靑天:일명 李靑天), 지하영(霞榮) 및 의병장 지홍문(弘文)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문과급제자 10명을 배출했다.


영양천씨(潁陽千氏)
[유래]
시조 천암은 명나라초에 조신을 지냈고 그 후손이 영양에서 살았다고 하며 원래 중국 성씨이다.
중시조 천만리(시호는 충장)는 명나라 말기에 문과에 장원하고 태청전수위사 겸 총독 오군수를 역임하고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때 영량사겸 총독장으로 아들 천상, 천희 형제와 함께 우리나라에 와서 군량수송을 담당 하였고 평양, 곽산, 동래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다.
그후 정유재란때에도 직산, 울산 등지에서 전공을 세우고 우리나라에 귀화 하자 조정에서 가상히 여겨 자헌대부에 봉하고 화산군에 봉했다.
- 천만리의 묘소는 전북 남원군 금지면 방촌리에 있다.
- 경남 고성군 동해면 장좌리 호암서원에서 음력 8월 1일에 향사한다.

훌륭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죠?
우리나라에 드문 희성일 뿐입니다.
지금와서 상놈성씨 귀족성씨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인습일 뿐이랍니다.
역사시간에 배우시겠지만 양반성씨를 가지고 있었다고 해서 다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역신들과 간신들도 많았고 관리들중에서 우리나라를 일본에 팔아버린 사람들도 있었지 않습니까?
현재의 자신의 모습이 중요한 것이며 성에 대해 진정 뿌리의식을 가지고 있다면 그에 걸맞게
자랑스럽게 행동하여야 함이 옳은 줄로 알고 있습니다.

 

 

 

 

 

千方池秋葛皮자체는 양반 성입니다.천한 성은 天方地丑馬骨皮이며 이성들이 천한 성인 것은 갑오경장이후 그간 30%밖에 성이 없던 국민이 신분차별이 없어져 모두 성을 갖게 되면서 천민은 자기의 집업을 성으로 갖게 되었는데 天씨는 무당 ,方씨는 목수나 미장이 ,地씨는 지관등 요즘의 장의사 ,丑씨는 소백정 ,馬씨는 말백정 ,骨씨는 뼈(고리)백정, 皮씨는 가죽백정(갓받치) 이었습니다. 일제시대에 호적이 재정리되면서 이들성이 발음이 비슷한 성으로 옮아가게 되는데 天씨는 기존의 양반성인 千씨로 ,方씨는 기존의 양반성이 잇어 그대로 ,地씨도 池씨로 ,丑씨도 秋씨로, 馬씨도 기존 중국성과 국내양반성이 있어 그대로 ,骨씨는 葛 또는 高씨로,皮씨는 기존 중국성과 국내양반성이 있어 그대로 바뀐 것입니다. 성을 갖지 못했던 70%국민이 자기 직업을 성으로 가진 것은 소수일 뿐이며 나머지는 종은 주인의 성이나 유명한 성을 자기 성으로 쓴 경우가 많았습니다.그렇기 때문에 일제시대 족보는 본보와 별보로 구분하여 갑오경장이전족보에서 가계가 확인 불가능한 것을 별보라 했는데 별보의 분량이 본보의 몇배가 되었다고 합니다.6.25이후인 1955년부터 57년사이에 각성의 족보가 대량으로 다시 만들어졌는데 이과정에서 본보와 별보의 구분이 없어졌습니다.따라서,따지자면 전국민의 70%가 천출이 되는 셈인데 지금 그런 것을 따진 들 무슨 소용이 있나요.유명성씨의 족보도 갑오경장전후로 갑자기 숫자가 급팽창한 것을 볼수 있습니다.즉,전까지 1인당 평균 2명의 아들을 두다가 이때까 되면 갑자기 아들이 평균5명이상으로 늘어납니다.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千方池秋馬葛皮 뿐만 아니라 모든 성에 기존의 성이 없는 사람들이 포함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현대에 사는 우리는 선진국들이 출신보다는 자수성가를 존중하듯이현재 자기 성도 중요하지만 신종추원의 논리로 가까운 조상위주로 효도를 다하는 것이 바람직 한 것 같습니다.

 

 

 

 

 

 

 

 

 

 

출처 지식인

2007.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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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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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
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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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이름 이예요. 밑에글은 퍼온글 입니다. 많이들 퍼뜨려 주세요. 우리가 잘못알고 있군요;  사실 저도 첨에 욕했습니다만...........千方池秋馬高皮성씨를 가진 분들께 죄송하네요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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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천방지추마골피가 천민성씨라고 잘못 알고 계시는데 그 분들이 알고계시는 천방지추마골피는 성씨가 아닌 직업의 이름입니다.

천민들의 직업을 한자로 나타낸 것이 천방지추마골피인데 그것이 잘못알려져 성씨가 천하다 라고 된거죠. 千方池秋馬高皮이 성씨들은 아주 귀한 성씨입니다. 예를 들어 일천천씨의 시조인 천만리 장군은 임진왜란때 이순신 장군옆에서 우리나라를 크게 도왔죠.

일천천은 원래 중국성씨입니다만 이때 천만리장군이 우리나라에 공을세웠다하여 우리나라에서 살도록 해 준 것입니다. 

 

무식한 답변이 하나있네요!! "천방지추마골피가 천민의 성씨였다라고 하는 것은--> 한글만 알고 한자를 모르는 무식함에서 퍼진 속설입니다." 이씨도 이(李) 씨가 있고 희귀하지만 이(異)씨가 있는데 한글 발음이 비슷하다고 같은 성씨라고 하면 무식한 소리이겠지요...天方地丑馬骨皮는 직업 이름과 단어조합에서 유래되었고,,, 성씨 千方池秋馬高皮는 고려때부터 있던 귀한성씨 입니다.원래 천민은 성씨가 없이 개똥이, 돌쇠, 삼돌이, 마당쇠 등으로 이름만 불리웠는데 조선후기 족보를 사거나, 1909년 일제의 민적법 시행시 주로 유명성이면서도 흔한성을 호적으로 만들어 가겼죠..위장하기 편하니까요...일제가 성이 없던 밑바닥 천민계층에게 그들이 신청하는 대로 유명성씨의 호적을 준것은 조선의 양반성씨들이 씨족별로 단결하는 것을 방해하고, 노비를 양민화 시켜서 수탈의 대상을 늘이기 위한 식민통치정책의 일환이였다고 합니다... 일례로 연못지(池)자를 쓰는 충주지씨는 고려때부터 역사서에 기록된 명문가로써 36명 문화평장사 전공판서 지용수, 예의판서 지용기장군,조선조는 병조참판 지여해, 도승지 지덕해, 광복군총사령관 지청천장군 등 천년을 이어온 무인 명문가로 유명하구요..태조대왕의 사돈(진안대군 장인)은 찬성사 지윤, 인조대왕의 사돈(여동생 남편)은 한성판윤 지계최 로 연못지씨이며, 이성계 왕가중 덕천군파, 선성군파, 의평군파, 임성군파 등등 어머니 역시 충주지씨였군요---> 지池씨가 천민이면 천민하고 사돈을 맺은 이성계왕가도 천민이 되고 그 밑에서 신하노릇하던 다른 성씨들은 천천민이 되는 논리적 모순이 발생하네요.

2007.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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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k****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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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방지축마골피’는 잘못된 통설

그런데 희귀 성씨에는 잘못된 통설도 적지 않다. 흔히 ‘천방지축마골피’를 천계(賤系)의 대표인 것처럼 말하지만 근거가 없다. 먼저 ‘축씨’와 ‘골씨’는 1985년 조사 때의 275개 성씨 중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천씨는 ‘하늘 천(天)’자와 ‘일천 천(千)’자를 쓰는 두 경우가 있다. 천(天)씨는 조사에 따르면 밀양 등 5개 본관에 1351명이 있는데, 조선 정조 때 천명익이 진사시에 합격한 것으로 봐서 천계는 아니다. 영양 천씨(潁陽 千氏)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구원군으로 온 귀화 성씨로서 중시조 천만리가 자헌대부와 화산군에 책봉 받았으니 이 또한 천계가 아니다.

방씨도 대표격인 온양 방씨(溫陽 方氏)의 경우 중간 시조로 알려진 방운이 고려 성종 때 온수(온양)군(君)에 봉해지자 온양을 본관으로 삼은 것이다. 남양 방씨(南陽 房氏)는 고려 때 벽상공신 삼중대광보국을 역임한 방계홍을 1세 조상으로 하고 있으며, 개성 방씨(開城 龐氏)도 고려 때 원나라 노국대장 공주를 따라 온 원나라 벼슬아치 방두현을 시조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천계는 아니다.

지씨의 대표격인 충주 지씨(忠州 池氏)는 지용수(池龍壽)가 고려 공민왕 때 홍건적을 물리친 공으로 일등 공신에 책록되었으며, 조선 시대 때는 문과 급제자 10명을 배출했다는 점에서 역시 천계가 아니다. 호사가들이 악의적으로 만든 것이 통설이 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힌 사례에 불과하다.

2007.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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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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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답변

마골피라는 20대 초반 여성 솔로 가수가 있는데

장윤정의 '어머나', 이승철의 '서쪽 하늘' 등을 작사·작곡한

 

윤명선 프로듀서가 '마골피'의 음반 제작과 매니지먼트를 맡

 

았다는 것과 '동방신기'의 믹키유천, '슈퍼쥬니어' 김희철·

 

강인·신동이 마골피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한다고 해서

 

2007.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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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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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
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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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골피라는 새로운 신인 가수가 대뷔한다고 하네요^^

그리고 데뷔곡인 `물고기`에 동방신기의 믹키유천과 슈퍼주니어의 신동 희철 강인 그리고 다른 톱가수들 출연한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인기검색어에 오른것 같은데>.<

2007.01.29.

  • 출처

    나 그리고 아까 읽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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