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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드라마 동이와 장옥정 에 대하여
비공개 조회수 763 작성일2013.10.09

 제가 요즘 장옥정 드라마에 푹 빠져서 질문드립니다.

 

장옥정 드라마가 숙종때 이야기, 장옥정은 장희빈이잖아요?

찾아보니까 동이도 숙종때 이야기이고, 숙빈최씨 이야기더라구요,

 

그렇다면 그 두 드라마을 합쳐 정리하자면

 

 

숙종의 아내(?)는  인경왕후-인현왕후-장희빈-숙빈최씨 란 말이죠.

 

 

 

실제로도 장희빈의 실제이름은 장옥정 이었나요?

 

또, 숙빈최씨의 이름은 동이였나요?

장옥정 드라마에선 숙빈최씨의 이름이 최무수리로 나오던데... 직위였나?

 

 

숙종때 이야기좀 자세히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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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종의 아내(?)는  인경왕후-인현왕후-장희빈-숙빈최씨 란 말이죠

-> 이외에도 김영빈, 박명빈, 유소의, 김귀인이 있습니다.

김영빈에 빨간글씨를 해놓은건 김영빈도 중요한 인물이라 그렇습니다. 

박명빈, 유소의, 김귀인은 정치적으로 전혀상관이없구요.

깅영빈은 중요인물이라 그동안방영되었던 모든 장희빈드라마에서 매번나왔고 숙빈최씨보다 비중도컸는데

어찌된영문인지 동이랑, 장옥정에선 빠졌더라구요 ㅋㅋ



실제로도 장희빈의 실제이름은 장옥정 이었나요?

 -> 네



또, 숙빈최씨의 이름은 동이였나요

-> 아니요. 이름을 알수없지만 드라마상 재미를위해 이름을 넣은 것입니다.


장옥정 드라마에선 숙빈최씨의 이름이 최무수리로 나오던데... 직위였나?

 -> 무수리는 직첩입니다. 중전, 상궁, 나인, 이것처럼요. 최무수리는 무수리의 직업을 가진 최씨사람이란뜻이죠.

장희빈도 희빈이라는게 후궁의 첩지거든요. 지금으로따지면 김부장, 이부장 이렇게 성과 직급을 쓴것과 같다고 보시면됩니다.



 



숙종때 이야기좀 자세히 알려주세요^^!


생각보다 드라마가 허구가많습니다. 

95년  sbs에서 방영된 장희빈이 가장 사실에 입각했다고 보시면됩니다.

특히 2013년에 방영된 장옥정은 거의다 허구입니다. 재미로 보는것



실제스토리를 알려드립니다.



숙종의 첫부인인 인경왕후김씨가 사망합니다.

그러자 숙종은 나인 장옥정을 가까이하는데, 이 나인은 대왕대비인 장렬왕후조씨(드라마상 이효춘)의 측근입니다.

때문에 정반대의 정치세력을 가진 대비 명성왕후김씨(드라마상 박정수, 김선경)가 대궐에서 내쫒습니다.

그당시는 대비의 정치세력인 서인의 힘이 강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후 대비의 정치세력인 서인에서 인현왕후민씨가 선발되죠.

그리고 얼마안가 명성왕후김씨가 42세의 나이로 죽게됩니다. 그러자 숙종의 증조할머니이자 대왕대비인 장렬왕후가 장옥정을 재입궐시키려합니다. (드라마랑 참다르죠? 장옥정에선 대비가 희빈과 대립하는데 대비는 아예 희빈과 일면식은 없고 내쫒은적이있어 존재만아는정도)



그것을 안 인현왕후 민씨는 같은 서인가 최고의 규수로 중전으로 선발되어도 전혀손색이없는 김씨를 후궁으로 들입니다. 

그 후궁의 집안은 2대연속 영의정(조선시대 최고높은 벼슬) 을지내며 서인의 주축으로  활동했기에 김씨가 중전도아닌 후궁으로 들어가는것에 대해 반대를 했다고 합니다.


결국 김씨는 숙의(후궁의 8품계중 4번째에 해당하는)로 입궐하게되죠. 그리고 장옥정은 숙원(후궁의 8품계중 8번째에 해당되는) 으로 책봉됩니다.


인현왕후민씨는 자신의 친정과 같은편인 숙의김씨를 계속해서 승급시켜 귀인(후궁의 8품계중 2번째) 로 승진시킵니다. 




인현왕후, 김귀인 vs 장숙원 의 전쟁이 시작된것이죠.


그러나 인현왕후와 김귀인이 전혀 아이를 낳지 못하고 오히려 장숙원이 아들을 생산합니다.

덕분에 장숙원은 소의((후궁의 8품계중 3번째)가 되죠. 

그리고 계속해서 인현과 귀인의 아들출산이 안되자 장소의의 아들이 원자가 됩니다.

법도상 후궁의 아들이 원자가 되면 그 후궁은 후궁의 맨윗자리인 "빈" 에 올라야 하기에 희빈이됩니다.

(빈의 경우 앞에 특정글자를 넣을수있었음)







이후 싸움에서 밀린 김귀인이 사가로 폐출되어 돌아가고, 1달뒤 인현왕후가 폐위됩니다.

이후 장희빈이 중전이되었죠.

김귀인은 끝없이 인현왕후 복위운동을 위해 재물제공와 여론조성을 담당했고, 

최무수리가 새롭게 등장합니다.

숙종의 승은을 입은 최무수리는 일편단심으로 인현왕후와 김귀인의 편에 스는데요.

이는 최무수리가 어릴때 인현왕후의 은혜를 입었단 설도 있습니다.



결국 최무수리는 숙원에 봉해지고, 인현왕후는 폐출 5년만에 복위됩니다. 장중전은 희빈으로 강등됩니다.

그날밤 숙종은 인현과 재회했지만 인현은 이를 거부합니다.

소원이 있는데 이를 들어줄시에만 합방을 하겠다했죠. 

그소원은 바로 폐출된 김귀인을 복위하란것이었습니다. 숙종은 어차피 김귀인은 복위될사람인데 

뜬금없이 소원으로 말하는 이유를 물었고 인현왕후는 그 시기가 내일아침이어야 한단 것이었습니다.



결국 김귀인은 그다음날 아침 복위되었고 최숙원은 인현과 김귀인을 복위시킨 공로인정으로 숙의로 승진합니다.







이후 대궐은 인현왕후, 김귀인, 최숙의 vs 장희빈 구도가 펼쳐집니다.


그때 정치적으론 전혀 무관한 두명의 후궁이 탄생합니다.

이미 귀인김씨와 인현이 폐출되기전부터 승은상궁으로 있었던 박씨와 새롭게승은을 입은 나인 유씨가

숙원이 됩니다.




그러나 6년이 지납니다.

귀인김씨는 여전히 귀인으로 자식없이 인현왕후의 편에 있었고

최숙의는 아들을 새롭게 낳으며 파란을 연출했고 모든후궁의 품계를 올리는 행사덕분에 "빈"이 되어 숙빈이됩니다.

박숙원역씨 아들을 낳았고, 모든후궁의 품계를 올리는 행사 거친덕분에 "귀인"이됩니다.

유숙원은 자식없이 모든후궁의품계를 올리는 행사 거쳐 "숙의"가 됩니다.



 인현왕후는 병이들고마는데요.

죽으면서도 장희빈이 새롭게 중전이 되는걸 매우 경계했다고합니다.

때문에 인현왕후는 숙종에게 유언으로 귀인김씨를 중전으로 올리라고 했습니다.

귀인김씨는 다른후궁들과는 달이 명문 양반가출신인데다, 숙빈최씨의 아들인 연잉군의 양어머니였습니다.


당시 숙빈최씨가 워낙 출신이 천한 무수리이다보니 왕자훈육자격이 안된다 판단해 숙종과 인현왕후가 귀인김씨에게 양자로 입적시켰지요.




결국 인현왕후는 죽게됩니다.

이후 대궐은 장희빈이 중전이 되냐 김귀인이 중전이 되냐로 대립되었는데

둘중 누가 중전이 되든 안된사람은 죽은목숨이었습니다.

숙빈최씨역시 같은편인 김귀인을 도왔죠. 결국 장희빈은 인현왕후 저주로인한 사약을 마시게됩니다.



그러나 김귀인이 중전이 되지않고 새롭게 인원왕후김씨가 책봉됩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김귀인은 1단계 승진 빈이 되어 영빈김씨로,
박귀인은 역시 빈이되어 명빈박씨로,
유숙의는 역시 한단계상승해 소의가 되어 유소의로 봉해집니다.


그러나 숙빈최씨는 이유는 알수없지만 대궐밖으로 쫒겨납니다.
이후 숙빈최씨는 17년간 숙종을 비롯해 영빈김씨등과 만나지 못했고,
죽기 2-3년전에야 겨우 친아들 연잉군과 함께 살것이 허락됩니다.
숙빈이 죽고도 숙종은 무심했습니다.





결국 궐안은 인원왕후와 영빈김씨가 주도하게되었죠.
새로운후궁 김씨가 숙원이 되었다 숙의, 귀인으로 진봉됩니다.
이후 박명빈과 유소의가 차례로 죽게 됩니다.

이후 숙종이 죽죠.

그리고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왕이됩니다.

사실 경종은 자신의 어머니의 원수인 인현.영빈.숙빈에 대해 복수를 안했습니다.
인현.숙빈은 이미 죽었고 영빈이 살아있었지만 별다른 복수를 안하죠.

하지만 은근히 기대는 했나봅니다. 대신들사이에서 영빈김씨에 대한 탄핵이 일고
옛날에 귀인시절 인현과 같이 폐출되던때의 죄목을 다시들어 사약을 내릴것을 주장하죠.
그러나 대비가된 인원왕후의 만류로 겨우 덮어집니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장희빈의 정치세력이 김영빈을 공격했는데,
뜻하지않게 4년만에 경종이 죽습니다.

그리고 최숙빈의 친아들이자 김영빈의 양아들인 연잉군이 영조로 즉위하죠.
자신의 친어머니와 가장친했고 자신의 양어머니인 김영빈을 영조는 그냥두지 않았습니다.
김영빈에 대한 모든 혐의를 무혐의로 돌리고 깍듯하게 예우했습니다.



이후 김영빈이 영조시절 14년간을 더산후 사망.
숙종시절 모든 세대들이 삶을 마감합니다 ㅎㅎㅎㅎ,

잘읽으셨나요?



뒷이야기로는

영조가 영빈김씨를 회상하는것밖에 없습니다.
영조는 영빈김씨가 사망하자, 깊이 애도하며 장례를 아주 성대하게 치뤘고
영빈김씨는 숙종이 후궁을 대할때와 달리 중전을대하듯 예우했다고 말하며 
영빈김씨를 친어머니로 생각했다는 식의 말을 합니다.


이후에도 영조는 인현성모(인현왕후를 지칭)와 함께 고생을한 영빈김씨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힘들때마다 영빈김씨가 자신의 재위시절 살던 사가에 나가서 마음을 달래거나
어디를 갔다오다가 숙빈,영빈의 묘소는 반드시 들렸습니다.


또한 영조는 숙빈최씨를 왕후로 삼으려다 실패했고
영빈김씨에 대해 어릴때 날 업어주고 먹을것을 먹여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이리 흘렀다며 영빈김씨가 보고싶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영조또한죽죠.

정조시절엔 할아버지인 영조의 말을 떠올리며
영빈김씨에 대해 보통의 후궁들과는 처지가 다르니(양반가 출신) 내 할아버지가 무척이나 따랐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공적인일이 아니고선 더이상 숙종시절의 이야기는 없게되죠.

201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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