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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페르마의 어린 시절 일화가 궁금합니다.
kidl**** 조회수 4,665 작성일2007.12.31

페르마에 대해 공부중인 사람입니다.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말고,

페르마의 어린 시절이나, 수학자들 사이에 있었던 일화가 있으면 알려주세요.

꾸벅, 부탁드립니다.

좀 급합니다.  빨리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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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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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드 페르마(Pierre de Ferma : 1601~1665년)

1993년 6월 24일, 영국의 뉴턴 연구소에서 세계의 수학계를 충격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사건이 일어났다. 영국 출신의 수학자로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수학과 교수인 앤드류 와일스의 폭탄 같은 발표 때문이었다. 발표 내용은 350년이라는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수학자들의 은근과 끈기를 시험하며 비웃어 오던, 악명 높은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정복했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을 세계의 언론들은 다음과 같이 알렸다.
와일스가 뉴턴 연구소에 도착했을 때, 그는 평소와 같이 조용했다. 그러나 다른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무엇인가 획기적인 발견이 이루어졌다는 소문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강연을 하겠다고 자청하지 않던 와일스가 한 시간이 아닌 세 시간까지 강연을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 중반, 한때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와일스의 논문을 지도했던 존 코트 교수는 와일스의 강연 일정을 6월 21일에서 23일까지로 잡아 놓았다. <사이언스 Science>
와일스가 해답을 찾아냈다는 것을 사람들이 눈치챈 것은 수많은 수학적 추론을 적어 내려가는 강연의 끝부분에서였다고 연구소의 부소장인 피터 그다르드 박사는 전했다. 그가 마지막 식을 적었는데, 그 식은 자신이 최종적으로 도달한 결론에 따른 정리로, 다름아닌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였다. 그리고 나서 그는 청중들에게 돌아서서 미소를 지으며, “이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전화벨이 울리고, 팩시밀리가 복사본을 토해 놓고 전자 우편이 전세계에 퍼져 있는 컴퓨터를 못살게 굴기 시작했다.정말로 그것이 사실이란 말인가? 수학자들은 처음에는 놀라워했고, 곧이어 흥분했다.
게다가 수학 세계에서 일어나 사건들 가운데서 이렇게 언론의 각광을 받은 사건은 처음이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이름이 붙은 이 놀라운 사건의 장본인인 피에르 드 페르마는 이미 3백 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페르마의 생애
페르마는 1601년 8월 프랑스의 보몽 드 로마뉴에서, 보몽의 부영사이며 피혁상을 하던 도미니크 페르마와 법의학자 가문의 딸이었던 클레르 드 롱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애는 어떤 어려움이나 굴곡도 없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나날이었기에 다른 천재들처럼 어릴 때의 일화가 전해 내려오지는 않는다. 다만 그가 나이 들어서 이룬 행적으로 보아 학교 다닐 때 공부를 무척 잘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의 수학 실력은 학교 교육과는 무관한 것으로 보여진다. 왜냐하면 그가 이룩한 업적의 영역은 그때까지 개발된 것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학교 교육에서 암시를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로 보통의 수학자들과는 달리 수학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생활을 하였다. 그래서 그는 아마추어 수학자라고 일컫는다.
페르마는 서른 살인 1631년에 툴루즈 지방의 청원위원으로 취임하였으며 그 해에 외사촌 누이인 루이즈 드 롱과 결혼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얻었다.
그가 남긴 유일한 일화는 바로 3백년 동안 수학자들을 곤혹스럽게 하다가 20세기가 저물기 직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는 사실 정도일 것이다.
그는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을 그때그때 그 책의 여백에 적어 놓는 습관이 있었는데 디오판토스의 <<산학>> 가운데 X²+ Y²= Z²이라는 방정식의 유리수 해를 구하라는 부분을 읽으며 페르마는 다음과 같이 썼다.
“반대로 어떤 세제곱수를 두 개의 세제곱수의 합으로, 네제곱수를 두 개의 네제곱수의 합으로, 또는 일반적으로 n이 3이상일 때 하나의 n제곱수를 두 개의 n제곱수의 합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이에 대한 참으로 놀랄 만한 증명을 발견하였지만 아쉽게도 여백이 너무 좁아서 쓸 수가 없다.”
이것이 그의 유명한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다.
과연 그는 자신의 정리를 증명하였을까? 혹시 착각했던 것은 아닐까?
많은 수학자들이 페르마를 의심하고 있지만, 그리고 설혹 페르마가 증명했다 하더라도 그의 증명은 오늘날의 와일스가 한 증명과는 전혀 달랐겠지만 그 사실은 영원히 수수께끼로 남을 것이다. 다만 그의 직책과 성품으로 보아 그가 증명했을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
그는 자신의 직무에 엄격하였으며 신중한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1648년에 툴루즈 지방 의회의 의원이 되어 17년 동안 근무했다는 사실은 그의 위엄과 공정성을 대변해 준다. 그가 담당한 직무는 군인과는 달리 직권남용을 피하기 위해 시민들에게서 떨어져 불필요한 사회활동을 단절하도록 요구받는 일이었다.
어쩌면 이 직책 때문에 그는 아마추어 수학자로서 수학을 즐길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생애의 34년 동안을 국가를 위해 봉사하다가 1665년 1월 12일, 카스트로에서 어떤 사건을 처리한 뒤 이틀 뒤에 예순다섯 살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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