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황교안…전·현직 국무총리와 대망론

정환보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왼쪽)와 황교안 전 국무총리

이낙연 국무총리(왼쪽)와 황교안 전 국무총리

이낙연 국무총리와 황교안 전 국무총리가 여야의 차기 참룡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 총리는 문재인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맡아 안정감 있는 국정운영을 뒷받침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황 전 총리는 일단 자유한국당 당권 경쟁에 뛰어들며 대권 출발선에 섰다.

두 전·현직 총리가 2022년 대선가도의 선두권을 형성하면서 역대 총리 출신들의 ‘대통령 도전사(史)’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초대 이승만부터 19대 문재인 대통령까지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은 모두 12명이다. 이중 국무총리를 지낸 인물은 10대 대통령 최규하가 유일하다. 최규하 전 총리는 1979년 10·26 당시 총리로서 대통령 권한대행에 올랐다. 그해 12월 6일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8개월 동안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하지만 ‘체육관 선거’로 뽑힌 간선 대통령인 데다 전두환과 신군부가 실권을 쥐고 있던 시기여서 명실상부한 존재감을 부여하기는 어려운 인물이다.

1993년 12월 국무총리로 임명된 뒤 김영삼 대통령과 악수하는 이회창 전 총리

1993년 12월 국무총리로 임명된 뒤 김영삼 대통령과 악수하는 이회창 전 총리

역대 총리 중 대통령직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인물은 이회창 전 총리다.

이 전 총리는 김영삼 정부 때인 1993년 12월부터 1994년 4월까지 불과 125일 정도만 재임했다. 하지만 ‘대쪽 총리’ 이미지를 강렬하게 남긴 뒤1996년 15대 총선에서 여당인 신한국당의 러브콜을 받고 선대위원장이자 전국구 1번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신한국당 9룡 중 하나였던 그는 1997년 3월 노동법 날치기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이홍구 대표를 이어 신한국당 대표로 지명됐고, 이후 여당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그러나 대선에서는 1997년에는 김대중 후보에, 2002년에는 노무현 후보에 근소하게 패하며 정계를 은퇴했다. 2007년 세번째 대선 도전에 나섰지만 3위에 그쳤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잦은 충돌 끝에 사실상 경질됐지만, 오히려 ‘대쪽 총리’라는 강한 이미지는 대선주자로 도약하는 데 밑바탕이 됐다.

2007년 1월 고건 전 총리가 대선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려다 지지자들의 반발로 무산된 이후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2007년 1월 고건 전 총리가 대선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을 하려다 지지자들의 반발로 무산된 이후 기자회견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김영삼 정부 마지막 총리(1997.3~1998.3)에 이어 노무현 정부 초대 총리로 발탁된 고건 전 총리도 빼놓을 수 없다. 고 전 총리는 민선 서울시장(1998~2002) 경력에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 탄핵소추안 의결로 직무정지 상태일 때 대통령 권한대행을 지냈다. 두 차례 총리 역임, 민선 서울시장에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이력으로만 보면 이회창 전 총리보다 대통령직에 더 가까웠다는 평가가 나올 법도 하다. 대행 시절 안정적인 국정운영 등으로 호평 받으며 한때 여권의 유력 주자로 떠올랐지만 총리 퇴임 이후 노 대통령과의 대립, 여당 지지율 답보 등 여러 상황이 얽히면서 스스로 대선 출마를 포기했다.

2007년 8월 후보 단일화를 두고 논의 중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운데)와 한명숙 전 총리(오른쪽)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2007년 8월 후보 단일화를 두고 논의 중인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운데)와 한명숙 전 총리(오른쪽)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정부의 한명숙·이해찬 총리도 2007년 대선 경선에 뛰어들었지만 열린우리당 의장과 통일부 장관 출신의 정동영 후보에게 밀렸다.

이명박 정부 당시 정운찬 총리도 서울대 총장 출신, ‘중도 포지셔닝’으로 여야의 러브콜을 받았다. 이 전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 견제를 위해 총리로 임명했지만 세종시 수정안 폐기와 함께 완패했다.

2010년 2월 국회에서 당시 정운찬 국무총리가 본회의장을 빠져나오던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만나 인사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0년 2월 국회에서 당시 정운찬 국무총리가 본회의장을 빠져나오던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를 만나 인사하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한민국 총리는 대통령 다음이라는 의미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는 위상과 함께 방탄총리·대독총리라는 오명도 동시에 받아 왔다. 총리라는 정치적 무게의 명암이다. 총리 이력이 정치적 자산이 되기도 하지만, 강력한 대통령제 국가에서 애매한 위상에 그치기도 한다.

이회창 전 총리는 대쪽 이미지를 당을 장악하는 리더십으로 확대 발전시켰다. 두 차례 대선 후보로 선출될 수 있는 요인이기도 했다. 그러나 고건 전 총리는 애매한 노선, 권력의지 부재로 결국 중도 포기에 그쳤다.

70년이 넘은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총리 출신 직선 대통령이 단 한명도 없었다는 것은 대통령과 총리의 정치적 차이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통령이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는 총리직은 ‘주어지는 자리’지만, 대통령은 권력의지의 산물이자 정치적 쟁취의 결과물이다.

이낙연 총리나 황교안 전 총리는 어떤 길을 걷게 될 것인가. 과거를 답습하든, 새길을 열든 총리 이력 자체가 대선 지름길이 되긴 어렵다는 것이다. 잠룡은 될 지언정, ‘저절로 나오는 용은 없다’는 게 과거 총리 출신들이 남긴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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