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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어제 밤에 헬프미 남자친구 고민 올렸던 사람이에요..
비공개 조회수 1,241 작성일2020.04.14
이미 헤어진 사람이고 블과 2년전 이야기에요.
그렇지만 과거형보단 현재형인거처럼 이야기를 했어요.
덕분에 많은 지식인님들이 위로해주시고 같이 욕해주셔서 너무 기쁘고 좋았어요.
이젠 제 이야기를 해볼까해요. 이번엔 엄마 이야기에요.
그리고 어제 주제인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잘 들어주세요!

저는 97년생이에요. 현 나이는 24살이고요.
저희 집안 가정은 매우 가난했어요. 제가 태어난해에는 모두가 다 경제적으로 힘든 년도이긴하지만 성인이 돼어도 제자리걸음이더군요.
엄마와 아빠는 맞선으로 만나 결혼하신거같아요.
엄마는 5남매중 셋째로 어쩜 외할머니한테는 아픈손가락일지도 몰라요.
아빠도 5남매중 넷째에요. 아빠는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친할아버지밑에서 자라고 친할머니는 남편이 하도 속썩여서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간걸로 알아요.

암튼 아빠와 엄만 맞선으로 만나 교회에서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제주도로 가며 97년해에 제가 태어난걸거에요.
제가 태어나고 기억하는건 엄마와 아빠 사이는 별로 좋지않아보였어요.
엄마는 그래도 내가 딸아이 낳고 해서 출산때도 임신중독증에 걸려서 3일만에 깨어나자마자 물어본게 딸인가 아들인가를 물어봤었대요. 참 어렵게 낳아서 힘들게 깨어나시고 감사하네요.
엄마는 그래도 모성애가 있긴있었는지, 아직도 제가 애기때 분유마신다고 젖병들고있는데 아빠가 그걸 쳐서 던졌다는말만 하면 서럽다는듯이 울어요.
반지하집에서 작은방 같은 큰방 하나와 작은방엔 세탁기와 건조대, 그리고 부얶앞에 문도 없이 씻는데가 있는 세면실.
그리고 곰팡이와 먼지가 가득 한 집에서 저는 자랐어요.

저는 아직도 기억하는게 엄마와 아빠가 줄곧 싸우는데 엄마는 장롱같은 장에 있는 식칼을 꺼내서 아빠에게 들이댔어요. 그리고는 찔러서 손인가 피가 났었구요. 그땐 아빠가 잘못했다며 무릎 싹싹 빌고 울면서 있었구요.
어린저는 나때문에 싸우는줄알고 구석진곳에 몸을 웅크리고 귀를 막으며 잘못했어 잘못했어 하며 엉엉 울었어요.
사실은 엄마가 옛날부터 일을 안해서 아빠는 열심히 살자며 그렇게 애원한거고 엄마는 고집이 쎄서 완강히 싫다하고 그런 엄마가 화가나니 아빠는 욕이 나왔는데 거기에 격분한 엄마가 왜 나한테 욕하냐며 칼을 든거였어요.

차라리 이혼을 하지. 아니 차라리 애도 낳지말고 결혼도 하지말지.
아빠는 별 다른 능력이 없어요. 그리고 회사원도 아니고 노가다 건설일을 했었는데 외할머니가 떨어지면 큰일난다며 외할머니랑 같이 일하게 됐어요.
외할머니가 하는일은 룸살롱에서 주방에서 직원들 저녁 만들고 안주 만드는거에요. 아빠는 거기서 카운터일을 하고요.
술은 조금은 마셔도 담배를 피지않고 전혀 그런일에 안어울리는 사람이 룸살롱에서 일한지 10년 이상이 됍니다.
그리고 별거한지도 10년이 돼구요. 원래는 아빠가 퇴근하면 집으로 오고, 주말에도 집으로 오고그랬는데 엄마랑 같이 있기만 하면 싸워서 아빠는 가게 룸쇼파에서 자고 화장실세면대에서 씻고 살구요.
저는 졸지에 아빠 없고 엄마만 있는 아이가 돼버린겁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게 나에게 큰 문제가 안됐어요.

제 성격은 여자아이였지만 씩씩하고 남자같은 성격이였어요.
그리고 친구들과 잘 놀고요.
어린이집겸유치원을 태권도에 다녔는데 저는 애들을 잘 꼬집고다녔어요. 그래서 한번은 다 모여놓고 저한테 꼬집힌사람 손들라 했고 항상 선생님은 저의 손톱을 짧게 깎았어요.

어릴때부터 문제아였던 저는 초등학교 3학년까지가 문제아 졸업을 했죠.
학교에선 공부 못하는 문제아였어요. 다른 아이는 분명 집에서 공부시키려고 학교하교후 학원을 등록해서 학원을 가는 아이도 있을테고 집에서 공부학습지같은걸 해서 하는 아이도 있을테고 저처럼 하교후 친구들과 노는 자유로운시간을 보낼 아이도 있을테죠.

본격적으로 성격이 어둡고 얌전해진게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였어요.
왠지 몰라도 그때부터 공부라는게 만만치않다 여겨서 기가 죽은거같아요. 그렇지만 그렇다고 우등생이 돼지않았어요. 모범생은 됐어두요. 책읽기를 좋아하며 착하고 숙제나 과제를 잘 해오기만 하는 저는 딱히 공부에 흥미가 없었거든요.

저때는 얼짱시절이 유명해서 이쁘면 이쁜애들만 끼어 다니고, 일진이라는게 지금은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 정말 심했던때였어요.
저는 그런 날라리들 무리속에서 끼기도 했고 은따를 당하기도 했어요.
학교반에서 왕따를 당하고있는 친구가 있으면 손내밀어주기도 하고 나의 일진 친구들은 그런 저를 보고 똑같이 왕따시키거나 하지않고 어쩌다 왕따랑 체육활동때나 단체활동때 엮이게돼면 저랑 체인지해달라고 하구요.

그렇게 고학년을 들어서고 초등학교땐 일기를 매일 썼는데 일기엔 오늘은 엄마가 때렸다는 글들이 많았고 오늘의 반성쓰는곳엔 울기 였어요.
엄마도 없는애도 아니고 꼭 엄마도 없는 애처럼 학교에서 글짓기상이나 모범상 혹은 회장상을 받아서 어린맘에 자랑하고싶어 막 달려왔는데 엄마는 집을 잠궈놓고 동네아줌마랑 놀러다녔어요. 그럼 열쇠라도 복사해주지 학원도 안보내는 엄마가 도대체 딸을 어디다 방황하고다니라고; 꼭 상받고 잘한날에만 없더군요. 그래서 옆집동네아줌마네 가있기도 하고 동네 끝에 할머니네에 가있기도 했어요.

초등학교를 졸업하던날, 부모님이 오셔서 축하해주는날 그날은 엄마가 심통이 나서 아빠랑만 가고 후딱 왔어요.

저는 사춘기가 좀 일찍 왔었어서 아마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많이 불안정했을거에요.
그렇게 양아치많고 소문 안좋은 중학교를 입학한후 동네 초등학교 중국인 친구와 혹은 다른 동창 친구들과 등교하며 학교를 다녔었죠.

처음 중국인 친구는 같은 동네이지만 엄마때문에 알았고 같은 초등학교인것도 알았고 자신은 친구가 없다, 애들이 같이 안놀아준다 이래서 친구가 돼었습니다.
중학교1학년땐 중국인친구와 같은 반이라 처음엔 단짝처럼 다녔습니다. 그리고 저는 1반부터 10반까지 있는 1학년 교실들 친한친구 아는친구있다하면 그반에 친구의 친구들까지 모조리 친해졌습니다. 마찬가지로 내 반이였던 중국인친구부터 여학생들은 먹이사슬처럼 줄곧 친해지다가 중국인친구랑 약간의 트러블이 크게 번져서 저는 반 왕따가 돼고 그때부터 다른 반 친구랑 다니다가 왕따라고 놀지말라고 했는지 그 친구에게 잘못한게 없는데 피하기시작하더라구요.

그렇게 저는 혼자 다니며 그만 우울증에 빠지고말았습니다
집에선 엄마가 때리고 학교에선 친구들이 멸시하는데 나는 어디 갈곳도 없이 가는곳마다 다 지옥같아 자ㅅ하고싶어했고 살고싶었는지 보건실에 가서 선생님한테 도움을 요청했어요.
"선생님, 제가 자ㅅ하고싶은데요 어떡해 해야돼요?"
보건선생님은 너 용기가 대단하다며 나를 학교내에 있는 위클래스라는곳을 소개해줬어요.

저는 매주 날을 잡아서 상담을 했어요. 심리상담부터 대면상담 미술치료까지 하고 어느 날은 수업 도중에 가봐야했어요. 왜냐하면 학교에서 엄마를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신고를 했기때문이에요. 참 저는 그때 담배피고 다니는 꼴초학생보다 더 한 문제아였을지도 몰라요.

증거물로 몸 여기저기 멍든 부위를 사진으로 찍고 집에 간 그 분들은 자꾸 때리시면 분리할수도있다하니까 엄마는 제가 얘가 너무 말 안들어서 때린거다 훈계한거다 핑계를 대고 분리하기싫다해서 그냥 돌아갔어요.
나는 엄마한테 그렇게 두팔에 피멍이 들고 다리에 피멍이 들정도로 나쁜짓도 안하고 말을 안듣지도 않았어요.
그 후로 안전하겠거니 이젠 엄마가 안하겠거니 했는데 여전히 나를 때렸어요. 손이 잡히든 모든게 옷걸이, 머리빗, 효자손, 그리고 테이프로 던져서 때리고요. 내가 볼땐 엄마는 아빠에게 받은 스트레스를 저한테 푼다라는거밖에 안느껴져요. 때려도 분노가 조절이 안돼보이는거만큼요.

저는 학교를 겨우 다니다 나중엔 학교도 안다니게 됐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학교가는게 싫고 그냥 더 잤어요. 몇일을 무난결석을 하니 위클래스 선생님한테도 연락이왔지만 무시했고 집에 오더니 학교가자며 데리러오셨어요.

몇일 학교를 안다니던 중학교 3학년을 나를 욕하고 왕따시키고 방관자를 비롯해서 나를 힘들게 만들던 반 친구들은 내가 학교에 나오니 놀래고 욕하거나 괴롭히지않았고 학교에서 에버랜드를 조를 만들어 가는날 학교에 꼭 나오자며 같이 가자는 친구의 문자를 보고 어쩔수없이 갔지만, 별로 반분위기가 그런데 수학여행도 안간다하니까 반회장은 왜 같이 가자는식이고 담임도 따로 불러들여 같이 가자고 설득을 했습니다. 가난한집에 가려면 회비가 몇만원 들어가고 나는 친한애들 없는데 가서 뭐할까, 갔긴 갔지만 간걸 아무 의미없다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중학교를 무단조퇴와 무단결석인 중학교3학년의 나날들을 겨우 졸업했습니다. 출석일 너무 빠지면 고등학교 입학못하니까요. 솔직히 고등학교 입학 생각없었습니다.
보통 이쯤돼면 어느학교를 갈지 내 내신이 몇점인지 다 상담하고 알아보는데 저는 그럴시기에 학교를 안갔고 대충 담임이 산업고로 넣은거같더라구요.
중학교 졸업일날, 또 그때도 엄마가 심통이 나서 졸업식 시작한지 한참 뒤에야 강단에 잠깜 와보다가 졸업장이랑 졸업앨범만 받고 쫒기듯 후딱 집에 갔습니다.
지금은 초등학교 고등학교 상장들 졸업앨범들 다 버려서 없어진지 오래 입니다. 기억하기도 싫은 인간들이 싫어서요.

고등학교는 집에서 버스를 타고 20분~30분정도 걸리는곳이였어요. 그 학교도 소문이 안좋았어요. 공부못하는 애들 많이 가고 양아치천국이라는걸요.
중학교보다 훨씬 더 넓고 거창하고 내겐 무섭도록 무서운 학교뿐이라, 오리엔테이션, 입학식, 첫등교 이렇게 교과서를 다 배부까지만 하고 자퇴를 했어요. 처음 본 친구들은 나를 모를테고 처음봤기에 나를 미워하지않을거지만.
그냥 겁이 났었어요. 그리고 고등학교는 더한 압박감이 있을테니.

자퇴후, 저는 평상시에 집에서 보냈어요. 결코 안전할리없는 집에서 엄마는 나를 때려서 수술도 하게 만들고 목을 조른적도 많았어요. 하지만 그땐 이젠 제가 힘이 세져서 엄마를 제압할수있었지만 그런 저를 이번엔 엄마가 저를 무서워하더라구요..
전혀 죽일생각이 없었지만 어려서 옆집아줌마가 너 그러다 나증에 애한테 맞고산다는말이 곧이 곧대로 돼서 무서웠나봐요.

내 인생 첫번재로 폐인이 돼고 최악이던 18살 무렵, 저는 아주 종합병원이였어요. 한번은 산부인과(하혈), 한번은 외과(유방염), 한번은 혈액종양내과(빈혈), 한번은 정신과(조울증), 한번은 소아당뇨, 한번은 내과(간염) 등 아주 아팠었죠. 입원치료도 하고 수술도 한과목당 두세번씩 하고 더하기도 하고 지금도 유방에 수술자국이 있어요. 이 것만 보면 너무 속상해요.
그렇게 아프게 거의 요양급으로 살던 그 어느날, 엄마는 아빠친구와 바람났다, 아빠친구랑 모텔을 갔다는 괴상한 소문이 동네에 돌기시작하고 엄마는 집을 나가 외할머니네에 갔어요.
아빠는 원래 집을 안들어오고 미성년자인데다 아픈 저는 그 집에서 진짜 죽을날을 맞이하며 밥도 안먹고 밥을 과자로 먹고 완전 폐인으로 살고 동네아줌마들은 그런 저를 보며 얘가 죽어간다고 했어요. 그때의 저는 얼굴에 생기 핏기하나 없고 꼭 암에 걸려 말기로 시한부인생을 사는 사람처럼 덧없이 초라하고 위태로워보였거든요.

외할머니는 내가 엄마를 괴롭힌다고 내 탓으로 돌리고, 동네아줌마들은 엄마를 잡년이라며 욕을 했어요. 그리고 저는 멘탈이 다 나갈때였고 1년을 정신병원에서 입원하고 굳이 1년까진아니여도 됐었는데 엄마는 나를 팔아먹어서 돈까지 얻어먹을려했고
병원에선 엄마도 치료가 필요하다 했지만 나만 치료하니 답이 없어

21살이 돼던 해 저는 가출을 결심했고 여전히 독립생활을 하며 혼자 좋지않은일을 하며 올바른길을 가려해도 짐이 커서 실행할엄두조차 못내고 일을하며 학원을 다녀서 배우고 좀 더 나은 삶을 살려해도 돈이 문제에요. 항상 먹고 사느라 바빠요. 차라리 부모님이랑 같이 살아서 부모님이 지원해주고 나는 집으로 오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요, 둘다 가난한 부모님은 둘다 검정고시에 대해서도 모르고 생각하려하지도않고 얘기해봐도 모른다고만 하고 그래도 그런 가정에서 살아온거에 비해 주위 사람들은 제가 너무 밝고 주위까지 밝고 넌 어디가서도 됄 애라고 칭찬하고 예뻐해요. 저 역시도 같이 일하는 사람이든 대화하는 상대방이든 막나가지않고 기본적인 인성은 갖추고 좋게하려고 노력하구요.

이 세상을 살면서 이 땅은 믿을게 없어요. 이미 18살때 하나님께 기도도 해봤지만 신조차 날 버린거같고 그래서 하나님도 안믿고 짭새들도 아빠가 내 목을 졸라서 죽이려할때 직접 신고도 했는데 엄마아빠가 내 뒤에서 쟤가 이상한애라고 다 거짓말이라고 짜고쳐서 나만 이상한애가 됀게 우리나라는 피해자들을 보호해주지못하고 가해자들을 보호해주는게 우리나라에요.

아빠와 엄마는 어른으로서, 부모로서 미성숙한 내면으로 둘다 이성을 잃고 자식까지 다치게 한 거고 서로 이해하고 좀더 배려하고 존중해주면 됄것을 가족이고 부부임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의 욕망과 욕심, 이기적인 마음이 결국 아이까지 병들게 하고만거에요.

어제밤 썼던 헬프미글에 나온 그 남자도 나를 소유욕으로 하고 엄마조차도 나를 소유욕으로 밖에 안봤는데 정말 나는 미움받기위해 태어난건가? 싶어서 울었어요.

친엄마조차 친부모조차 그랬어도, 나의 부모가 모진거라고 나는 나를 사랑하고 나를 미워하는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훨 많은걸, 하고 다짐하며 그래도 긍정적으로 자수성가하며 혼자 살아왔는데

헬프미 데이트폭력인 남자랑 헤어지고나서 평범하게 살고싶어서 평범한 연애도 해보고싶었는데 걔 후로 다 섹스충인데다가 일하는 사람도 저를 강간했었어서 이제는 남자도 못믿겠어요. 그리고 싫고 징그럽고 아무리 키크고 잘생겨도 결국 남자니까 싫어요. 막 들이대면 나한테 왜그래 ㅠ 너무 징그러워서 귀찮기만 하구요.

나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했던 부모들부터 남자들, 그리고 그 외 상관없는 어른들 내가 힘이 없어서 벌을 못준다면, 죽어서 지옥에 가서 벌받기를 바래요. 영원히 고통받고 사지가 찢기고 심장이 멈출듯이 아픈 느낌 영원히 받길 바래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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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인터 01024159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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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이상 남성 서비스업 #자동차판금도색 자동차관리 35위, 자동차 수리,정비 25위, 광주광역시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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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온 얘기들이 보통 아이들 같이 지내지

못한거 같아서 안탑깝네요...

이젠 독립된 성인이 돼었으니 과거들은

잊도록 노력 하시구요 ...

일을 하시면서 밤에는

미용 학원이나 나를 더 발전시킬수 있는걸

찾았으면 합니다.

내가 잘돼면 옆에서 쉽게 건들지 않으니

항상 화이팅 하시길 바랍니다.

광주에서 ~

2020.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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