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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화제의 당선자와 화제의 낙선자~!!
sk**** 조회수 21,295 작성일2004.05.11
17대 총선 에서 화제가 되었던 당선자와 낙선자좀

알려 주세요~

아~! 그리고 제목과는 상관이 없지만....

근소 표차 선거구 라고 해서

( xx선거구,xx표자 )

이런식으로 알려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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쏭현잭슨
수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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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당선·낙선자들]

▲ '후단협'의 몰락 = 대의명분과 원칙을 저버리고 그때그때 정치적 실리만 생각했던 정치철새들은 유권자들의 가혹한 심판을 받았다. 2002년 대선당시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를 결성해 '노무현 흔들기'에 나섰던 의원들은 소속당을 떠나 줄줄이 낙선했다.


후단협 이후에도 정통모임을 결성해 분당사태를 악화시켰던 박상천(전남 고흥·보성), 정균환(전북 고창·부안) 의원은 김대중 정부 당시 국정홍보처장과 주치의를 지낸 열린우리당 신중식, 김춘진 후보에게 각각 패했다. 후단협 및 정통모임 소속으로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유용태 의원(서울 동작을)도 현대자동차 CEO출신 이계안 우리당 후보에게 무릎을 꿇었다.


후단협 출신으로 자민련에 갔다가 복당한 안동선(경기 부천원미갑)을 비롯해 이윤수(경기 성남수정)·이희규(경기 이천·여주)·유재규(강원 홍천·횡성) 의원 등 후단협 출신들도 마찬가지 운명이었다.


민주당을 탈당해 한나라당에 둥지를 튼 김원길(서울 강북갑), 강성구(경기 화성), 원유철(경기 평택갑), 전용학(충남 천안갑) 의원도 모두 낙선했다. 대선 직전 정몽준 캠프로 옮겨 민주당 지지자들을 분노케 했던 김민석 전 의원도 분당국면에서 슬그머니 복당했지만, '철새 정치인'의 이미지를 씻지 못했다.


후단협 출신은 우리당에 합류했다고 해도 정치적 생존을 보장받지 못했다. 영등포갑에 출마한 김명섭 의원은 한나라당 고진화 후보에 맞서 초접전을 벌였으나 2000여표 차이로 석패했다.


▲ '바꿔' 열풍에 중진들 줄줄이 낙선 = 4.15 총선은 '지역구도 타파'와 '세대교체'라는 두 가지 과제중 한 가지를 해결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특히 야당의 중진들은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 열린우리당의 소장파 후보들에게 패하는 수모를 겪었다.


지난 가을부터 지역구 청소로 표를 다져온 6선의 민주당 김상현(광주 북갑) 의원은 열린우리당 강기정 후보에게 참패해 7선고지 등정에 실패했다. 85년 전남대 삼민투위원장 출신의 강 후보는 공천을 받을 때만 해도 승리가 불투명했으나 40세의 젊음을 무기로 칠순을 바라보는 김 의원을 물리쳤다.


5선의 한나라당 강창희(대전 중구), 민주당 김태식(경기 성남.중원) 후보도 열린우리당 후보들에게 고배를 마셨다. 특히 지역구(김제)에서 밀려나 수도권에서 승부를 던진 김 후보는 11,073(10.2%)표를 얻는 데 그쳐 치욕의 4위를 기록했다.


4선의 한나라당 목요상(경기 동두천·양주), 이해구(경기 안성), 민주당 박상천(전남 고흥.보성) 정균환(전북 고창.부안) 김충조 (전남 여수갑), 한나라당 출신 무소속 김기배(서울 구로갑) 후보도 열린우리당 후보들을 물리치지 못했다.


한나라당에서 탈당한 뒤 우리당에 입당한 이부영(서울 강동갑), 김홍신 후보(서울 종로)도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한나라당에 몸 담고 있을 때 '공업용 미싱' 발언 등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맹공격한 전력 때문에 우리당 지지층의 마음을 완전히 잡지 못한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 우리당 '운동권' 출신 대거 입성 = 열린우리당은 민주노동당과 함께 '탄핵열풍'과 '바꿔' 열풍의 최대 수혜자들이다. 막판까지 아슬아슬한 접전을 벌였지만, 정치 초년생 상당수가 17대 국회에 진입했다.
민주노동당과 함께 학생운동, 노동운동에 헌신한 운동권 출신들이 많은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80년대 후반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전대협의 1∼3기 의장이 모두 당선돼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서울 구로갑의 이인영(1기 의장, 고려대 총학생회장), 강북갑의 오영식(2기 의장, 고대 총학생회장), 성동을의 임종석(3기 의장, 한양대 총학생회장)이 그들이다.


성남 수정에서 당선된 김태년 후보는 87년 경희대 총학생회장을 지냈다. 2002년 그는 김원웅, 유시민이 몸 담았던 개혁적 국민정당에서 전국운영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진보색채가 강해질 17대 국회에서 유 의원이 어떤 행보를 할 지도 주목된다. 2년전의 '교회 모독' 발언으로 일부 개신교도들의 공격을 받았지만, 여유있게 재선에 성공했다.


조선일보 기자를 상대로 수성에 성공한 그는 언론개혁에도 관심이 많아 17대 국회에서 어떠한 전략을 내놓을 지도 관심거리다. 연초 민주노동당과의 연합공천을 주장했던 유 의원은 선거 막판에는 민노당 지지층에게 우리당에 대한 지지를 호소해 민노당 지도부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법조계에서 목소리가 높아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하 민변)' 출신들도 대거 의회에 진출했다. 광명갑의 이원영 후보(전 의문사진상규명회 위원)와 안산 상록을의 임종인 후보가 각각 민변 부회장을 맡고 있고, 성동갑의 최재천 후보도 민변의 열렬 회원이다.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1번으로 일찌감치 당선이 확정된 장향숙 후보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 태어난 지 1년 반만에 소아마비를 앓은 그는 22세때 휠체어를 처음 가질 때까지 바깥 나들이를 제대로 해보지 못했다.


바깥 세상으로 나온 장 후보는 98년 부산여성장애인연대를 창립했고, 이듬해 한국여성장애인연합 공동대표에 올라 '마이너리티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한 몸을 던졌다. 장 후보의 국회 진출이 확실시되자 국회 사무처는 의원전용 시설물들의 개보수 작업에 나섰다. 장 후보는 국회에 입성하기도 전에 세상을 바꾸고 있는 셈이다.


▲ 노무현 측근그룹 희비 교차 = 노무현 정부의 장관이나 청와대 참모로 활약한 인물들의 당락은 부침이 있었다. 당선률만 따져보면 '반타작'에는 성공한 셈이다.


노 대통령의 386 최측근으로 꼽혀온 이광재 전 청와대 국정상황실장(강원 태백·영월·평창·정선)은 측근비리에 연루돼 정치적 시련을 겪었으나 탄핵정국 속에서 '대통령 측근'이라는 것이 거꾸로 메리트로 작용해 17대 국회 입성에 성공했다.


뒤늦게 총선에 뛰어든 문희상 전 청와대 비서실장(경기 의정부갑)과 유인태 전 정무수석(서울 도봉을)도 당초 예상과 달리 여유있는 승리를 거뒀다. 의전비서관과 정무1비서관으로서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서갑원 전 비서관과 백원우 민정수석실 행정관도 전남 순천과 경기 시흥갑에서 각각 승리했다. 국내언론비서관과 정무2비서관을 맡은 김현미씨도 일찌감치 금배지를 예약했다.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박혁규 의원에게 불과 3표차 패배를 맛 본 문학진 전 정무비서관도 하남에서 승리해 가슴속 응어리를 풀게 됐다.


청와대 출신이지만 측근그룹도 아니었고, 징계까지 받았지만 총선 출마로 돌파구를 연 사람도 있다. 지난 연말 장관 직무평가 내용을 기자들에게 유출해 '행자부 복귀' 명령을 받았던 권선택 전 인사비서관은 대전의 정치1번지 중구에서 5선의 한나라당 강창희 의원을 눌렀다.


반면, 김만수 전 춘추관장(부천 소사)은 김문수의 벽을 넘지 못했고, 이해성 전 홍보수석(부산 중·동)과 배기찬 전 정책수석실 행정관(대구 북을)은 지역의 벽을 넘지 못했다.


청와대 참모들에 비해 참여정부 1기 각료들은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표를 받았다. 김진표 전 경제부총리(경기 수원 영통)와 변재일 전 정보통신부 차관(충북 청원)이 '인물론'으로 지역구의 벽을 넘어섰다면 영남 지역에 출마한 윤덕홍 전 교육부총리(대구 수성을), 권기홍 전 노동부 장관(경북 경산·청도), 이영탁 전 국무조정실장(경북 영주)실장, 조영동 전 국정홍보처장(부산진갑)은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청와대나 장관 출신은 아니지만, 호남과 TK를 대표하는 참모들의 희비도 엇갈렸다. 염동연 우리당 정무조정위원장은 광주 서갑에서 당선됐지만, 이강철 영입추진단장은 또 다시 분루를 삼켜야 했다.


참여정부 초기 청와대로 가지 않고 총선에 올인했던 노 대통령의 PK참모그룹 정윤재(부산 사상), 최인호(부산 해운대. 기장갑), 송인배(경남 양산) 후보도 줄줄이 낙선했다. 반면, 노 후보의 정책보좌역이었던 조경태(부산 사하을) 후보는 구여권의 표 분산(한나라당 최거훈, 무소속 박종웅)과 96년부터 다진 조직력에 힘입어 부산 유일의 우리당 당선자로 우뚝 섰다. 대통령의 PK참모 그룹은 다수의 당선자를 내지는 못했지만, 각자의 지역구에서 40%대의 득표율을 올려 '지역주의 균열'의 가능성을 심어줬다.


▲ 원내 3당으로 약진한 민주노동당 = 강기갑·현애자 당선자는 현역 농사꾼들이다. 강씨는 경남 사천에서 축산업을 하고 있으며 사천농고를 나와 1976년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하면서 농민운동에 뛰어 들었다. 수염과 개량한복을 즐겨입는 그는 국회에도 그대로 차림을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현애자씨도 남편인 전농 제주도연맹 이태권 의장과 함께 제주도 서귀포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민족농업과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농림해양수산위원회를 희망하고 있다.


비례대표 1순위인 심상정 당선자는 서울대 출신으로 80년대 초 구로공단 미싱사로 노동현장에 투신한 이후 25년간 노동운동을 하면서 10년간 수배생활을 했다. 수배중인 85년에는 우리노동운동사의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되는 '구로동맹파업'을 주도했다.


대선에 두 번, 국회에 한 번 도전해 실패했던 권영길 대표도 원내진출에 성공했다. 권 대표의 국회 입성은 연초까지의 여야 대표를 통틀어 유일한 당선자이기 때문에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퇴진 후 백의종군했고, 민주당 조순형 대표는 3위 낙선이 확실시 된다. 비례대표 1번으로 나선 김종필 총재는 자민련이 지지율 3%확보에 실패하면서 10선의 꿈을 접었고,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총선 직전 비례대표직을 사퇴했다.


▲ 역대 최악의 무소속 고갈 현상 = 탄핵정국이 빚어낸 유례없는 양강구도는 무소속 후보들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92년 21명에 달했던 무소속 당선자는 96년 16명, 2000년 6명으로 줄어들더니 이번 총선에서는 224명의 출마자중 최인기(전남 나주·화순), 신국환(경북 문경·예천) 두 명에 불과했다.


두 사람은 각각 두 차례 장관을 역임한 관료라는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신국환씨는 2000∼1년과 2002∼3년 산업자원부 장관을, 최인기씨는 94∼95년 농림수산부 장관, 2000∼1년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했다.


특히 최씨는 민주당이 공천심사과정에서 배기운 의원에게 공천을 주자 무소속으로 당선된 케이스. 민주당이 현역의원들 위주의 공천에 집착하다가 개혁공천을 외면한 결과이기 때문에 지지자들의 입맛을 더욱 씁쓸하게 한다


그리고 최소 차이 득표자는 충남 당진에서 자민련 김낙성 후보가 우리당 박기영후보에25표차로 승리했다고 하네요.

200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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