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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뉴에이지 음악가..?
ar**** 조회수 14,166 작성일2003.07.29
뉴에이지 음악가들 중 유명한 분들이 어떤 분들인지 알고시퍼요.

우리에게 친숙한 음악을 연주한 분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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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pi****
지존
인체건강상식, 사람과 그룹, 정신건강의학과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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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변입니다.


지금은 우리에게 알려진 뉴에지음악가들은 정말 많죠.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알려져있고 인정받는 음악가들은,

조지 윈스턴, 케빈컨, 류이치 사카모토, 유키구라모토, 앙드레 가뇽, 이사오 사사키를
들 수 있겠네요. 음.. 국내 음악가로는 김광민이 있죠. 그 밖에 그룹 S.E.N.S 나,
야니, 에냐, 이루마등.. 도 많이 알려지고 친숙한 뉴에이지 음악가라 할 수 있겠네요.



음악가들의 자세한 설명을 하면..


▶ 조지 윈스턴

조지 윈스턴은 1949년에 태어나 몬타나, 미시시피, 플로리다 등지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어린시절 팝 연주곡들에 심취하여 Floyd Cramer, The Ventures, Booker T & the MG's, King Curtis등의 연주를 들었다. 또한 Ray Charles, Sam Cooke등의 리듬 앤 블루스 음악과도 친숙했는데 라디오 뉴스 방송 직전 불과 30초 동안 흘러 나오는 짧은 연주곡들을 듣기 위해 하루종일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블루스와 록, R&B, 그리고 재즈에서 감명을 받은 조지 윈스턴은 1967년 일렉트릭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71년, 전설적인 스트라이드(Stride) 피아노의 대가 토마스 "팻츠" 월러(Thomas 'Fats' Waller)와 테디 윌슨(Teddy Wilson)의 음반을 들은 후 매료되어 어쿠스틱 피아노로 전향하였는데, 그 시기에는 작곡과 편곡을 통해 팝 연주곡들을 자신만의 색채를 입혀 솔로 피아노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하여 1972년 그의 첫 피아노 솔로 앨범 "발라드와 블루스 - Ballads and Blues - 1972"를 내놓았다.

현재 그가 작업하는 작품들의 2/3 정도가 리듬 앤 블루스 스탠다드 곡들이며 1/3은 멜로디 성향의 음악이 그 주를 이루는데, 전원적 포크 음악(Rural Folk Piano)으로 불리워지는 이 멜로디 음악들은 구체적인 테마를 갖고 있으며 그가 이제까지 선보인 앨범들의 주된 성향을 이루고 있다.

1980년부터 조지 윈스턴은 Autumn(1980), Winter into Spring(1982), December(1982), Summer(1991), Forest(1994), Linus & Lucy - The Music of Vince Guaraldi(1996) 등으로 연결되는 솔로 피아노 음반을 발매했다. Linus & Lucy 앨범에는 Cast Your Fate to the Wind와 Peanuts TV 시리즈의 삽입곡들이 담겨 있어 고인이 된 Vince Guaraldi를 추모하고 있으며, 최근작 Plains (1999)는 그가 자란 몬타나의 대초원을 주제로 하고 있다. 또한 Sadako and the Thousand Paper Cranes에서는 솔로 기타 사운드트랙을, Pumpkin Circle에서는 피아노, 기타, 하모니카 사운드트랙을 맡기도 했다. 최근 조지 윈스턴은 리듬 앤 블루스, 스탠다드, 느린 춤곡들이 포함된 DANCE(Vol. 1) 등의 피아노 솔로 앨범들을 계속 준비하고 있으며, 위대한 뉴올리언즈 피아니스트 Henry Butler, 고인이 된 James Booker와 Professor Longhair의 음악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또한, 솔로 기타 연주에도 심취하여 현재 Dancing Cat Records 레이블로 Hawaiian slack key guitar 대가들의 음반을 지속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슬랙 키는 손가락으로 뜯는 하와이의 독특하며 아름다운 기타 연주 주법으로, 1800년경에 시작된 이 연주전통은 스틸기타보다 60여년 앞섰다.



▶ 캐빈 컨

미국의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난 케빈은 18개월 때에 이미 Silent night을 연주하였고 불과 두 살 때 20곡의 캐롤송을 양손을 이용해서 칠 수 있는 음악 신동이었다. 케빈은 네 살 때부터 가정 교사와 함께 음악 공부를 시작했고 열네 살에 자신이 창설 멤버였던 청소년 연주 모임인 Well Tempered Clavichord와 함께 정식 데뷔 무대를 가졌다. 그는 십대 때의 장래 희망이 무엇이었는지 질문받게 되면 시인이 되고도 싶었지만 음악을 만드는 즐거움이 그것을 이겨냈다고 말한다.





▶ 류이치 사카모토

사카모토(Ryuichi Sakamoto)일본식으로는 사카모토 류이치(坂本龍一)는 1952년 1월 17일 일본의 나가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비틀즈 에서부터 베토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이러한 취향은 현재의 그의 음악을 규정짓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열한 살 되던 해인 1963년 동경 예술대학의 마츠모토 교수에게서 클래식 작곡을 배우기 시작한다. 그 후 1971년 그는 동경예대에 입학해 작곡을 전공해 학사 학위를 받고 이어 전자 음악과 민속 음악 작곡으로 석사 학위까지 따내게 된다.

1977년, 그는 마침내 일본 정상의 뮤지션들-록에서 재즈, 클래식까지 망라한-과 함께 작곡가, 편곡자, 스튜디오세션 등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고 체계적으로 쌓은 음악 지식을 바탕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제작자 겸 편곡자, 키보드 주자로 뛰어난 활동을 보여주게 된다. 1978년에는 첫 솔로 앨범인 Thousand knives를 발표하고 이어 하루오미 호소노, 유키히로 다카하시 등과 함께 3인조 테크노 그룹 옐로 매직 오케스트라(YMO:Yellow Magic Orchestra)를 결성하는데 이들의 2집 앨범은 밀리언 셀러를 기록하는 성공을 거두고 이어 월드 투어까지 하는 등 인기를 누렸고 크라프트베르크와 함께 테크노 팝의 선구자로 인정받게 된다.

그 당시 사카모토의 관심사는 재즈, 보사노바, 모던 클래식 등 실로 다양한 분야에 닿아 있었는데 이러한 그의 취향은 그 후의 음악 세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5년여 동안 수많은 앨범을 내놓으며 왕성한 활동을 펼친 YMO는 팝 음악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는데 사카모토는 솔로 활동을 위해 1983년 그룹을 탈퇴하고 - 이 그룹은 1993년에 재결성 앨범 Technodon을 발매한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를 시작으로 영화 음악 작곡가와 월드 뮤직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선보이기 시작한다. 이 당시 그는 월드 뮤직 아티스트인 유수 운두르(Youssou N'dour)를 비롯해 이기 팝, 데이빗 보위, 데이빗 번등과 함께 음악을 하기도 했으며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개막식 음악을 만들고 직접 지휘까지 하는 영광을 안았다.

그가 명성을 날리게 된 계기는 거장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마지막 황제>에 가담한 것이었다. 배우로도 참여한 이 작품에서 영화 음악을 맡은 그는 1988년에 오스카상, 그래미 상, 골든 글로브 상 등을 석권하며 기염을 토한다. 영화 음악가로서의 그의 위치는 매우 확고하다. 이미 위에 언급한 베르톨루치 감독과 <마지막 황제>와 <리틀 부다>에서 호흡을 맞췄는가 하면 올리버스톤(Oliver stone)과는 에서, 페드로 알모도바 (Pedro Almodovar)와는 에서 각각 함께 작업을 하는 등 유명 영화 감독들이 그를 초빙해 음악을 맡길 정도로 지명도를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영화 음악 작곡가로서 확고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사카모토이지만 그의 욕심은 한이 없어 보인다. 흔히 '작곡가'들, 특히 클래식이나 인스트루멘틀 작곡가들이 지닌 이미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 분야에서도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영화 음악 작곡가 이외에 편곡, 프로듀서 등 음악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는 영화 에서 역시 뮤지션인 데이빗 보위와 함께 출연했고, <마지막 황제>에도 얼굴을 내미는 등 영화 배우로서의 활동을 펼쳤다. 또한 마돈나의 뮤직 비디오 에도 출연했다. 그리고 1982년엔 철학자인 쇼조 오모리와 함께 란 책을 펴내기도 했다.

또한 유명 디자이너의 패션 쇼에 모델로 나서는가 하면 유명 잡지의 남성복 모델로 지면을 장식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 멀티 엔터테이너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1985년엔 스쿠바 과학 박람회에서 멀티 미디어 쇼를 선보이는 실험적 시도도 해 보이고 있다. 작품으로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마지막 황제>,<끝없는 사랑>,<리틀 부다>,<하이힐> <폭풍의 언덕>, <스네이크 아이>,<철도원>등이 있다.






▶ 유키구라모토

1951년 사이타마현 우라와시에서 태어난 유키 구라모토는 어린 시절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였다. 학창시절에는 라흐마니노프와 그리그 등의 피아노 협주곡에 심취하여, 아마추어 교향악단에서 독주자로 활동하는 등 피아니스트로서 발군의 솜씨를 보였다.

학업에도 열중하여 일본의 명문 도쿄공업대학교 이공대에 진학, 응용물리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음악가와 학자의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프로뮤지션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고 피아노 연주는 물론 클래식 작곡과 편곡 그리고 팝음악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와 학습을 하였다. 이후 프로 뮤지션으로서 클래식에서 대중음악, 가요분야에 이르기까지 많은 유명음악가, 탤런트와의 공연, 레코딩 활동을 통해 경력을 쌓아 오늘에 이르렀다.

구라모토는 피아노 솔로는 물론, 오케스트라 또는 스트링 앙상블과 협연할 때도 화법이나 대위법이 완벽에 가깝다. 지난 1991년 8월에 발매된 제 7집 앨범 '리파인먼트(Refinement)'에서는 영국의 세계적인 교향악단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와도 조인트 레코딩을 하였다. 당시 그가 작곡한 곡들이 매우 뛰어나서 명 지휘자들도 그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지고 있다.

구라모토의 이름은 홍콩을 경유하여 동남아시아에도 파급되고 있으며, 타입은 다르지만 많은 이들이 '일본의 리차드 클라이더만'이라 부르고 있다. 최근에는 케이블 텔레비전이나 레이저 디스크 등에서의 영상음악, 나아가서는 일본항공 등 항공회사의 '인 플라이트 뮤직(In-Flight Music)'으로서도 각광받는 등, 그의 명성은 갈수록 빛을 발하고 있다. 특히 내한 공연 및 한국 뮤지션과의 조인트 레코딩 등이 기획단계에 있다는 소식도 들려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다.




▶ 앙드레 가뇽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려도 좋을 만큼 진한 서정성을 표출해내고 있는 앙드레 가뇽은 1942년 캐나다 퀘벡주 선파콤 태생으로 4살 때부터 천재성을 드러냈고 이를 발견한 어머니의 교육열에 따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여섯 살 때 작곡을 시작하고 열살 때 리사이틀을 열기도 하며 천재성을 발휘하던 그는 몬트리올 음악원(Montreal Conservatoir de Music)에서 공부한 후 퀘벡주 장학금을 받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는데 이 때 유명한 조르주 무스타키와 공연을 하기도 했고 섹스 심벌 BB(브리지트 바르도)가 주연한 로제 바딤 감독 영화에서 처음 영화 음악을 담당하는 등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이 당시부터 팝과의 크로스오버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향후의 그의 음악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게 된다.

1967년 캐나다로 돌아온 그는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데뷔를 하게 되며 1970년 오사카 박람회 참석차 일본 땅을 밟으며 그의 오랜 일본과의 인연을 시작하게 된다. 그는 캐나다의 그래미로 불리는 주노상을 비롯해 펠릭스 어워즈(Felix Awards)에서도 수상을 하는 등 인기 피아니스트로 자리하고 있지만 일본에서의 인기도 대단하다. 이미 1989년에 일본 투어를 가진 바도 있고 일본 감독의 영화에 영화음악을 제공해 주기도 했으며 1996년에는 후지 TV의 AGE란 프로그램에서 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또 다시 일본 콘서트를 가졌고 1997년 여름엔 하코네의 미술관에서 야외 콘서트를 이틀간에 걸쳐 성황리에 개최했다. 또한 1998년엔 후지 TV 드라마 <달콤한 결혼>의 음악을 담당했으며 가을에 일본 내 10개 도시 콘서트 투어를 개최했다. 날로 높아가는 인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MONOLOGUE 앨범의 성공 이후 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데 이에 따라 당연한 수순으로 그의 이전 앨범이 발매된다. 바로 1989년 발매되었던 앨범 PRESQUE BLUE다. 이 앨범은 그의 첫 솔로 피아노 레코딩으로 앨범의 전 수록곡이 다른 악기의 도움 없이 피아노만으로 연주되고 있다.





▶ 이사오 사사키

최근에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뮤지션들이 늘어나면서 특정 장르에 속하지 않은 음악들이 우리 주변에 늘어나고 있다.이번에 새 음반을 발표한 피아니스트 '이사오 사사키'의 음악은 클래식과 재즈에 대한 경력을 가지고 두 장르의 요소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어쿠스틱 피아노 또는 뉴에이지 뮤직이라 불리우는 그의 음악은 한 장르에 고정된 것이 아니다. 그는 피아노와 바이올린 또는 얼후(二胡, 중국악기)에 베이스, 드럼, 퍼커션을 적절히 섞어서 이 앨범을 완성하였다.

'이사오 사사키'의 피아노는 우선 음색 그 자체가 아름답다.

클래식 음악을 본업으로 하고 있는 필자의 견해일지 모르나 그의 피아노는 강약에 대한 뉘앙스의 섬세한 표현에 신경 쓴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는 무모하게 건반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섬세한 터치로 각 곡을 연주하였다. 여기에서는 서정미의 강조와 더불어 인간적인 깊은 따스함이 느껴진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현악기, 관악기처럼 자신이 음을 만들 필요가 없이 건반을 두드리면 누구나 음을 낼 수 있으므로 피아노 터치의 아름다움 그 자체가 연주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이사오 사사키'처럼 피아노의 터치가 섬세하게 표현되면 음악의 매력이 증가함과 동시에 피아노를 노래하게 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한편, 이번 앨범은 거의 전부가 '이사오 사사키'의 오리지널 곡으로서 그의 작곡에 대한 재능이 발휘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멜로디컬한 매력이 느껴짐과 동시에 각 곡의 특징이 잘 정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스마트한 무드를 표현하고 있지만 곡에 따라서는 도회적인 세련된 분위기가 강조되기도 하면서 적절한 변화를 이루고 있다. 편곡 역시 '이사오 사사키'가 담당하고 있는 데, 그의 센스 있는 편곡에는 세련된 감성과 피아노의 음 그 자체에 대한 미적 감각이 충분히 표현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 앨범에서는 '이사오 사사키'의 음악을 돋보이게 하는 바이올린의 연주가 일품이다.

바이올린, 일렉트릭 바이올린, 얼후을 담당하고 있는 '시노자키'는 클래식의 명문으로 알려져 있는 동명학원을 거쳐서 스튜디오 뮤지션으로 전향한 연주자로서 사사키와는 이 앨범 이전부터 함께 많은 활동을 해 왔다. '이사오 사사키' 자신도 세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한 경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작곡에 있어 바이올린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잘 살리고 있으며, 연주 또한 '시노자키'의 바이올린에 호흡과 발란스를 맞출 수 있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클래식의 실내악적인 감각이 플러스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 '이사오 사사키'의 앨범을 듣고 받은 신선한 인상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았지만,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들어도 그의 음악에는 좋은 의미로서의 BGM으로 자연에 몰입하는 분위기가 있다.

예를 들면 이 앨범 중 "Princess of flowers"는 楠田枝里子가 출연한 花王의 TV-CM에 사용되어 BGM으로서의 효과를 발휘하였다. 몰입하지 않고 들어도 잊지 못할 인상을 남기는 매력은 그가 지닌 독특한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이사오 사사키'의 음악은 자연적인 분위기에 더하여 듣는 사람에 따라 - 예를 들면 도시의 조용한 카페든지, 넓은 바다의 어떤 장면 - 곡에 따라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기쁨을 준다. 장르에 상관없이 광범위한 포용력과 듣는 사람의 감성에 부드럽게 깊게 호소하는 매력을 겸비하고 있는 '이사오 사사키'의 음악은 피아노를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폭 넓게 팬 층을 개척하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이사오 사사키'의 약력을 소개해 보겠다.

1953년 북해도에서 태어나서 세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으로 기타, 플룻, 오르간 등의 악기를 연주하였으며, 19세가 되어 재즈 피아니스트로 전향하였다.

그 후 안스쿨을 거쳐 프리랜서 피아니스트로서 활동을 하던 중 1978년 뉴욕으로 가서 '스즈키', '밥 모제스' 의 레코딩에 참여했다. 귀국 후 오리지날 작품을 중심으로 피아노 솔로 앨범 『Muy Bien』을 발표하였다.

이를 시작으로 두 번째 앨범 『Wind Drive』를 비롯하여 『Serenade』, 『Stone』, 『Moon & Wave』, 『Star & Wave』, 『MALLORCA』 등을 꾸준히 발표함과 동시에 여러 도시에서 Concert를 가져 호평을 받았다. 재즈 피아니스트이면서 한 때는 Classic을 지향한 그의 피아노는 아주 섬세한 터치로 부드러움과 따스함이 느껴져 일본의 죠지 윈스턴이라고 불리워지고 있다.

"SUZUKI BAND", "YAS-KAZ", "야마모토", "시노자키" 등의 라이브 콘서트와 레코딩에 피아니스트로서 참가하였고 TV 드라마, 영화, 광고 음악 제작 등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 김 광 민

960년 서울에서 출생한 김광민은 한때 스튜디오 뮤지션 키보디스트로 활동하였으며, 김민기, 양희은, 조동진등 의식있는 가수들의 연주 활동에도 많은 참여를 하였다. 그러던 중 음악적인 번뇌와 고통 속에서 삶의 한계를 느끼던 그는 1986년 1월 도미를 결심하고, 고교시절 이미 피아노 협주곡집을 작곡한 실력과 끈질긴 음악에의 집념으로 명문 버클리 음대를 졸업했다.

보스톤의 뉴 잉글랜드 음악원 (New England Conservatory)에서 재즈와 클래식을 배우며 음악의 철학에 깊이 빠진다. N.E.C 재학시절 데뷔앨범 를 발표한 그는 세계 시장에서도 공감할 수 있는 고급 수준의 연주곡이라는 찬사 속 , , 등으로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특히 는 평소 가깝게 지내던 가수 유재하의 죽음을 애도하며 만든 곡으로 그의 순수한 음악적 감성을 느낄 수 있으며, 피아노가 가지고 있는 효과를 최대한 살린 연주 앨범으로 평가받았다.

또한 94년 2월 김광민은 , , 등이 수록된 두 번째 앨범 을 발표, 더욱 성숙해진 그의 변화무쌍한 스케일과 화려한 리듬을 들을 수 있었다. MBC 일요예술무대 재즈 교실 코너를 통해 일반 대중들에게 처음으로 소개된 그는 고급 대중문화에 목말라있던 시청자들에게 시원한 청량제가 되었으며, 전도 유망한 젊은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좋은 반응을 계기로 MBC일요예술무대 프로그램 진행을 맡게 되었다.(현재 수요예술무대를 이현우와 함께 공동 진행 중이며,간간히 그의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지난 99년 9월에는 '보내지 못한 편지'라는 이름으로 6년만의 새 앨범이 발표되었다. 타이틀 '보내지 못한 편지'와 '지금은 우리가 멀리 있을지라도', '날 수만 있다면' 등, 피아노 소품들과, 3인조 밴드곡들이 수록된 이번 앨범을 통해 김광민에게서만 느낄수 있는 따뜻한 서정과 기분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쟝르에 구애받지 않고 여러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고 있는 김광민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의 음악애호가에게는 특별한 선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 좋은 하루 되세여 ~

200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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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s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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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리나라의 이루마 님

지금 공연중이십니다.

이루마 님은 뉴에이지 대신 세미클래식이라고 하셨는데

우리나라에선 뉴에이지라고 하죠-_-

CF에도 이루마의 음악이 많이 나오고있고

지큐브 광고에도 출연하셨죠.

영화 오아시스 에도 참여하셨고

애니메이션 강아지똥의 음악을 맡아서

노래도 부르시고 하셨죠.

그리고 겨울연가에도

편곡하신 'When the love fall' 이라는 음악이 나옵니다.

들으면 아실거에요.

그리고 조지윈스턴,앙드레가뇽,S.E.N.S,시크릿가든,

유키구라모토,김광민,류이치사카모토(맞나;;) 등이 있습니다ㅠ

이루마님만 많이 설명했네요ㅠ

200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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