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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위안부 이용수 거짓말 할머니라고 하는...
비공개 조회수 17,182 작성일2019.07.05
위안부 이용수 거짓말 할머니라고 하는데
왜 그렇게 불리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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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ee천사
수호신 열심답변자
2016 사회, 정치 분야 지식인 국민기초생활보장 6위, MS엑셀 76위, 운영체제(OS) 20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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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개또라이 들이 헛소리 지껄이는 겁니다.

웬 거짓말 ...

201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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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고려
식물신
한국사, 외교관계 27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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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할머니 이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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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링크는 강제징용

https://kin.naver.com/qna/detail.nhn?d1id=6&dirId=60501&docId=327861765&qb=7JyE7JWI67aA&enc=utf8&section=kin&rank=4&search_sort=2&spq=0

한일관계 최근 쟁점 3가지

요즘 한일 관계에 있어서 가장 쟁점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내공 최고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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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문재인 위한 ‘거짓말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 (1)

이용수와 정대협에 의해 국제사기극으로 전락할 위험에 직면한 우리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이용수(李容洙)는 일본군 위안부들 중에서도 가히 ‘아이콘’으로 통하는 인사다.

일본군 위안부들 중 생존자는 수십 여명이지만 주류 언론들이 조명해줬던 일본군 위안부들은 주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하 ‘정대협’, 최근에 ‘정의기억연대’로 개칭하였음)와 함께하는 너댓 명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 씨는 그런 일본군 위안부들 중에서도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의 파트너로서 가장 활발하게 대외활동을 펼쳐온 ‘대표’ 격이다.

하지만, 이용수가 과연 우리 국민들이 일반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바로 그 ‘일본군 위안부’가 맞는지에 대해서, 사정을 잘 아는 네티즌들은 오래전부터 비판적 의문을 제기해 왔었던 실정이다. 좌익 백과사전인 ‘나무위키’ 유저들을 비롯해 네티즌들의 거듭된 합리적 비판에도 주류 언론들은 지난 십수년 동안 이 씨의 문제를 모른 체 하기에만 급급했다.

무엇보다도 이 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핵심인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 문제와 관련한 증언이 여러 차례 바뀌었던 전력이 있다. 이 씨가 다른 단체도 아닌 ‘종북(從北)’ 단체인 정대협과 함께 각종 이념활동, 정치활동을 이어왔던 문제도 간단하게 볼 수 없는 문제다.

미디어워치의 취재 결과, 이용수의 나이, 결혼, 직업 등 아예 기본 정체가 의심스러운 정황도 한두 가지가 아님이 확인됐다.

일본군 위안부 증언은 절대 의심하지 말지어다?

이용수의 1993년도 본인 증언과 1997년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이 씨는 1944년 10월에 일본군 위안부로 모집되어 1945년 1월부터 대만의 신죽((新竹) 공군기지 옆 위안소에서 종전 시까지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 대략 7-10개월 정도 위안부 생활을 한 셈이다.

초기 증언에 따르면 이용수는 하루 5~6명의 일본 군인을 상대하였다고 한다. 초기 증언에서는 가미가제 특공대였다는 '하세가와'라는 일본군 장교가 그녀를 도와주어 둘이서 낭만적 사랑을 나누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이 씨는 대략 1990년대 후반부터 자신이 1942년에 14세의 나이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대만에서 3년간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하였다는 식으로 증언 내용이 오락가락하기 시작했다. 또한 나중에는 하루에 상대한 일본군의 숫자 또한 처음 이야기하였던 5~6명에서 최소 20명, 최대 70명으로 폭증하기 시작했다.

1993년도에 이용수를 다룬 ‘한겨레’ 기사를 보면 해방 후 술집종업원, 가정부 등을 하다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부각되기 이전인 87년에 60세의 나이로 75세 노인의 후처로 들어갔다는 이야기가 분명히 나온다. 혼인신고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2007년도 EBS ‘시대의 초상’ 증언에서는 이용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부각되기까지 결혼도 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저런 엇갈리는 증언들은 모두 이용수 본인 ‘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 증언들이며 100% 서증(書證)으로도 모순이 확인된다.

▲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와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파트너로서 여러 정치활동, 사회활동을 같이 해왔다. ⓒ뉴시스

▲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의 허위증언, 증언모순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보니 나무위키는 좌익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https://namu.wiki/w/%EC%9D%B4%EC%9A%A9%EC%88%98 ). 그밖에도 구글과 네이버에서 “이용수”, “증언”, “모순”을 검색어로 지정해 살펴보면 숱한 이용수의 허위증언, 증언모순 관련 콘텐츠가 확인된다.

▲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의 증언 변화는 상식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위 도표의 증언들은 모두가 주요 언론 인터뷰나 미국 의회, 프랑스 의회에서 나온 것들만 모은 것인데, 이런 중요한 증언들도 도대체 아귀가 맞는게 없다. 이 증언들에 대해서는 이 기사 본문에서도 더 깊게 다뤄보기로 한다.

1993년도 증언에서는 취업사기로 일본군 위안부가 됐다고 증언

먼저 이용수의 1993년 증언부터 살펴보자. 아래 내용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 : 증언집’(한울)에 수록(해당 책 123~124쪽)되어 있다. 이 내용은 또한 지금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없어진, 여성가족부의 ‘일본위안부 피해자 E역사관’에도 채록된 내용으로, 인터넷에서도 그 내용이 쉽게 검색 가능하다.

이것이 과연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인가? 이 증언만으로는 친구 “김분순”의 유혹에다가 본인의 자발성도 있는 가출행위(家出行爲)인데다가, 술장사를 하던 “김분순”의 어머니가 “김분순”과 이 씨를 인신매매(人身賣買) 대상으로 삼았다고 밖에 볼 수 없는 내용이다. 관련 업자들에 의한 유인사기(誘引詐欺)의 혐의도 엿보인다.

특히 이 씨의 저 1993년도 증언은 매우 구체적인 내용임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자신의 복장이 “검은 통치마”, “단추 달린 긴 면적삼”이라는 내용, 그리고 자기를 데려간 일본인 남자가 “마흔”이 좀 안 되어보였다는 내용, 그 일본인 남자가 “국민복”에 “전투모”를 착용했다는 내용, 그리고 자기를 유인하기 위해서 “원피스”와 “가죽구두”를 줬다는 내용까지.

이는 이용수가 가장 젊은 시절에 한 공식 증언이기도 하고, 누가 봐도 이 증언이 가장 신빙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용수는 저렇게 업자들에 의해 유인되어 대만 일본공군 기지에서 위안부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한겨레’ 1997년 9월 6일자 기사 ‘위안부 할머니 울지 마세요! - 대만 신죽기지앞/치욕의 현장 찾은 할머니들 눈물 … 통곡’ 제하 기사를 보자.

총 기간으로 보자면 1944년 가을에 “국민복”에 “전투모”를 착용한 어느 일본인 남자를 만나, 이후 일본 패전 일까지 총 10개월을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던 것이다. 이 총 기간도 일단 기억해두라.

1990년대 후반부터 오락가락하는 이용수의 일본군 위안부 모집 관련 증언

하지만 이 씨의 위와 같은 증언은 공교롭게도 좌파 정권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1998년도부터 확연하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일단 ‘한겨레’ 1998년 5월 6일자 ‘위안부 할머니 정부지원금 거부 이용수 씨 등 3명’ 제하 기사를 보자.

1993년도에는 분명 1944년에 16세라는 내용이, 1998년부터 갑자기 1942년에 14세라는 내용으로 바뀐다. 이런 것은 기자가 자의적으로 바꿀만한 내용이 절대 아니다.

‘한겨레’의 1999년 3월 6일자 ‘군위안부 할머니 대학원생 된다’ 제하 기사도 보자. 만 14세라고는 표기했지만 역시 1942년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연도이다.

다음은 일본공산당의 기관지인 ‘신문아카하타(しんぶん赤旗)’ 2002년 6월 26일자에 나오는 내용이다. (관련기사 : 전 ‘위안부’에게 보상을 ... 참의원 의장들에게 법안 성립을 요청(元「慰安婦」へ補償を ... 参院議長らに法案成立要請))

14세 내용에 추가로 총검으로 협박을 당해 ‘연행’이 되었다는 내용까지 나온다. 총검을 들이댔다는 주체가 누군지는 안 나온다.

1944년부터 3년간 일본군 위안부생활을 했다?

다음은 2004년 12월 4일에 있었던 교토실행위원회(京都実行委員会) 주최 ‘12 · 4 전국동시증언집회 ’지울 수없는 기억‘ -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을 불러( 「消せない記憶」 -日本軍「慰安婦」被害女性を招いて)의 이용수 증언을 기초로 한 프로필 내용이다.

3년간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는 부분을 주목하라. 일본군은 다들 알다시피 1945년에 패전하고 대만에서 물러났다. 그렇다면 1944년에 일본군 위안부가 됐다면서 어떻게 동시에 3년 동안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하나의 증언에서도 명백한 모순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다음은 2006년 7월 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이제는 집에서 자고 있는데 일본군에 의해 끌려갔다고 한다. (관련기사 : “정부, 日에 외교적 노력 안해” 위안부 할머니 109명 헌법소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경위만 바뀐 게 아니다. 그때가 1942년에 15세였다면서,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연도와 나이에 대한 내용도 다 바뀌었다.

▲ 이용수의 최초 일본군 위안부 관련 증언이 실린 책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 : 증언집’(한울). 이 책의 초판은 1993년도에 출판됐다.

▲ 1997년도 이전의 기사는 이용수가 '일본군'에 의해 바로 납치되어 일본군 위안부가 됐다는 내용은 나오지 않고, 1993년도 증언집의 내용과 큰 차이없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14세? 15세? 16세? 1942년인가, 1943년인가, 1944년인가

2007년도 2월 15일 미국 의회 증언 관련 보도를 보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연도가 다시 1944년으로 바뀐다.(관련기사 : <'위안부 할머니' 미하원 증언록>)

원래는 면사공장에 다녔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런데 여기서는 “끌려갔다”(연행)는 표현은 나오지만 강제연행인지 인신매매인지 취업사기인지, 또 동원주체가 일본군인지 위안소 업자인지가 불분명하다. 어쨌든 일본군에 의한 것이라고 증언하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그런 증언을 했는데도 한국인 기자가 그 사실을 누락하고 보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주목할 부분은, 해당 기사에서 소제목을 보면 ‘이용수 할머니 “구타와 고문, 강간으로 점철된 3년"’이라고 나온다는 것이다. 미디어워치가 중앙일보 2007년 2월 17일자 ‘미국의 마음 흔든 한국·네덜란드 할머니 '위안부' 증언’ 기사로써 크로스체크를 해본 결과, 이용수 씨의 미국 의회 증언 워딩은 "1944년 16세 때 대만에 위안부로 끌려가 3년간 일본군의 성 노리개가 됐다”가 맞는 것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거듭 지적하거니와 1944년부터 어떻게 3년 동안 일본군 위안부가 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 2004년 교토실행위원회 증언에 이어 역시 하나의 증언에서도 명백한 모순이 나오고 만 것이다.

2007년도 6월 12일에 방영된 EBS ‘시대의 초상 - 위안부라 하지마라'에서의 인터뷰를 보자. 집 밖에 나갔다가 일본군한테 끌려갔다는 내용이다. (관련기사 : "내가 왜 위안부냐,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지")

2009년도 3월에 일본의 성문제 관련 평론가 다카야나기 미치코(高柳美知子)의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わたしは日本軍「慰安婦」だった)’(신닛폰출판사(新日本出版社))라는 증언집에 수록된 내용(해당 책 29~30쪽)도 보자. 여기서 나오는 친구는 척 봐도 “김분순”이다.(관련기사 : 트럼프에게 껴안긴 前위안부 '이용수'의 정체 (トランプに抱き着いた「元慰安婦」李容洙の正体))

“조센진(チョウセンジン)”, “조센피-!(チョウセンピー!)” 얘기는 이번 증언에서 처음 나오는 얘기다. 이용수는 저 증언집에서 “15살에 나에게 일어난 일(15歳の私に起こったこと)”이라고 밝히고 있다고 한다.

다음은 2014년 7월 4일에 있었던 한양대에서의 증언이다. 언제는 자다가 바로 끌려갔다더니 이제는 자신을 유인하는 일본군이 있어서 도망을 가다가 다른 일본군에게 붙잡혀 끌려갔다는 내용이다.(관련기사 : 위안부 할머니들, 한양대서 역사 증언…"돼지 보다 못한 삶이었어")

1993년도 증언에서는 기차를 타고 대구를 갈 때까지는 일본군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하지만 2009년도 ‘나는 일본군 '위안부'였다’ 증언집에서부터 일본군에게 붙잡혀서 기차를 타고 위안소로 갔다고 증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안부 업자에 의한 ‘취업사기’인가,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인가

다음은 2014년도에 ‘아시아경제’가 기획한 ‘위안부 보고서 55’의 이용수 프로필 내용이다. 여기서 55라는 숫자는 당시 생존 일본군 위안부들 명수를 뜻한다.

다시 1993년도 원 증언 내용으로 돌아왔음을 알 수 있다. 강제연행 내용도 다시 취업사기 내용으로 바뀌었다. 나이도 16세이다

‘위안부 보고서 55’은 ‘‘제288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상’을 받은 바 있는데, 일단 ‘아시아경제’ 측은 3개월 동안 일본군 위안부들을 만나 인터뷰를 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관련기사 : 위안부 보고서 55 - 제288회 이달의 기자상 기획보도 신문·통신 / 아시아경제 주상돈 기자)

다음은 2015년도 3월 12일, 인문학 모임인 '두:목회'가 주최한 '이용수 할머니의 역사의 증언'에서의 이용수 증언이다. 16세였던 1943년 ‘여름’에 일본군에 의해 위안부로 끌려갔다고 증언하고 있다.(관련기사 : "난 가미카제 성노예, 생각만 해도...나쁜놈들")

1943년부터라면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2년을 했다는 말인가. 앞서는 3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용수는 2015년도 4월에 일본 아베 총리가 미국 의회 합동연설을 했을 때 이를 비판하기 위해 미국 워싱턴으로 갔었다. 이용수는 당시 세계적인 유력언론인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와 인터뷰를 했는데, 이 내용을 한번 보도록 하자.(관련기사 : 70년후, 한 한국인 '위안부'가 일본에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70 years later, a Korean ‘comfort woman’ demands apology from Japan))

14세에 끌려갔다고 한다. 1943년도 ‘10월’이다. 바로 앞에서는 ‘여름’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1943년 10월부터 1945년 8월까지면 일본군 위안부 생활 기간은 역시 2년이 된다.

일본군에 의해 기차, 트럭, 배로 연행됐다고 한다. 1993년도 증언에서도 기차를 타고 경주와 대구를 가는 내용이 나오는데 거기에는 일본군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 이용수에 관한 보도는 대략 1998년도부터 이상해지기 시작하는 것 같다. 한겨레는 이용수가 14살 때인 1942년에 위안부로 끌려갔다는 보도를 하기 시작한다.

▲ 이 보도는 그냥 14살도 아니고 만14살에 위안부로 끌려갔다고 보도하고 있다.

‘가미가제’ 일본 공군 기지라면 1943년과 1942년은 말이 안돼

다음날인 2015년 4월 23일, 웹진 ‘뉴스로’(‘뉴시스’가 재수록)와의 인터뷰를 보자. 이 증언 내용은 초장부터 어쩐지 이상하다.

일본 아베 총리는 일본군에 의한 강제연행을 부정하고 민간의 위안부 업자에 의한 인신매매를 주장하고 있다. 이경우에는 당연히 반박을 하려면 “강제연행이 확실히 맞다, ‘일본군’이 끌고 갔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이용수는 끌고 간 주체를 ‘일제 정부’라고 하면서 어딘지 모호한 답을 한다.(관련기사 : "아베, 워싱턴에서 나부터 봐라“ 위안부피해 이용수 할머니 일갈)

이 인터뷰를 자세히 읽어보면 이용수가 하여간 일본군의 패전 시점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인터뷰에는 이용수가 애초 대만 일본공군 기지 위안소로 가게 됐던 시점을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바로 ‘가미가제(자살공격) 공군부대’다.

이용수는 다른 곳에서 한 증언들에서도 자기를 돌봐주던 일본군 장교도 ‘가미가제’로 죽게 됐다고 밝힌 바도 있다.

분명히 해두자. 역사책 살펴보면 알겠지만 일본군의 ‘가미가제’는 1944년 10월경부터 시작됐다. 이용수가 위안부 생활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곳이 ‘가미가제’ 공격을 하는 대만 일본공군 기지 위안소인데, 1943년과 1942년에는 ‘가미가제’같은 것은 있지도 않았다.

이용수는 과연 무슨 근거로 1943년과 1942년을 주장하고 있는 것일까.

첫 증언에서는 “김분순”와 같이 일본군 위안부가 됐다고 증언한 이용수

한편, 저 인터뷰 중에는 아무리 생각해봐도 “김분순”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의 이야기도 나온다.

이용수는 1993년도 증언에서 분명 친구 “김분순”이 일본 남자와 같이 왔다고 증언했던 바 있다. 그리고 그 “김분순”과 같이 일본군 위안부가 됐다고 증언했다.

2015년 6월 24일, 격주간지 ‘미래한국’과의 인터뷰를 보자. 일본군이 여자아이를 이용해 자신을 폭행 납치했다고 한다. 이제 다시 1943년 ‘가을’이고 16세로 바뀐다.(관련기사 : 이용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내 소원은 한국과 일본이 원수 지지 않는 것”)

이 증언은 자다가 끌려갔다는 내용, 또 집 밖에 나갔다가 영문도 모른 채 끌려갔다는 내용이 합쳐진 형태로 일종의 종합상세설명일 수 있다. 그러나 일본군을 언급하는 등 어쨌건 1993년도 증언과는 현저하게 다르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저기서 “여자아이”가 바로 친구 “김분순”이 아닐까? 이용수는 1993년도 증언에서 “김분순”이 자기집 “봉창”을 두드리며 “가만히 나오너라”고 하길래 그길로 집을 나왔고 나중에 같이 일본군 위안소로 가게 됐다고 증언한 바 있다.

이용수가 초기에 했던 “김분순” 관련 증언에다가 그간에 했던 증언을 논리적으로 어긋나지 않게 모아서 억지로 각색 창작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아시아경제의 2014년도 기획 기사 '위안부 보고서 55'에서의 이용수 프로필

▲ 이용수의 2007년도 미국 의회 증언을 다룬 중앙일보 기사

이용수, 자칫하면 모해위증죄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상황

이용수의 이런 오락가락하는 증언은 결국 본인의 법적 신변조차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용수는 2016년 12월 20일, ‘제국의 위안부’를 저술한 박유하 세종대 교수에 대한 1심 구형 현장에 나타나 법정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관련기사 : 검찰, ‘제국의 위안부’ 저자 박유하 교수에 3년 구형)

1946년에 나왔다는 얘기는 대만에서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로 보인다. 어쨌든 이용수는 다시 자다가 군인에게 붙들려갔다고 증언하고 있다.

참고로, 이용수의 위 증언은 일반 증언도 아니고 명예훼손 관련 피해자로서 형사피고를 대상으로 한 법정 증언이다. 저런 법정 증언이 허위 내용이면 모해위증죄(謀害僞證罪)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법정 허위 증언을 정대협이 사주했다면 정대협도 물론 교사범(敎唆犯)이 될 수 있다.

놀랍게도 이용수는 2017년 1월 25일, 박유하 세종대 교수 1심 선고 현장에서는 또 다른 내용을 얘기하고 있다. 본인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도대체 누구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가.(관련기사 : '제국의 위안부' 무죄에 할머니 '격노' vs 박교수 '만족')

2007년 2월 미국 의회 증언 때 이용수가 면사공장에 다녔다고 증언한 바 있음을 다시 상기시켜드리고자 한다. 이용수는 혹시 다시 취업사기를 주장하려는 것인가.

아래 2018년 3월 10일, 프랑스 의회에서의 이용수 증언을 보자. 일본군이 여자아이를 이용해 자신을 폭행 납치했다고 한다. 나이는 다시 15세로 바뀐다. 2015년도의 ‘미래한국’ 인터뷰 내용으로 돌아온 것이다.(관련기사 : 佛 의사당 흔든 위안부 할머니 증언)

“여자아이”에 이어 이번에는 “친구”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다시 한번 “김분순”이 떠오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의회 증언에서는 그 중요한 ‘일본군’은 언급도 안하다가, 11년이 지나서야 프랑스 의회 증언에서야 ‘일본군’이 더구나 폭행·납치를 했다고 말한다. 차후 미국이나 프랑스 쪽 어느 의회 관계자가 이 차이를 물고 늘어진다면?

▲ 이용수의 2007년 미국 의회 증언 관련 내용을 다룬 SBS 뉴스 보도. 사진출처=SBS

▲ 이용수의 2018년도 프랑스 의회 증언 내용을 다룬 채널A 보도. 사진출처=채널A

국제사기극으로 전락할 위험에 직면한 우리의 일본군 위안부 문제

결국, 이용수는 아무 검증도 받지 않고 지난 25년 간 이런 식의 일본군 위안부 증언을 해왔다.

이용수의 증언 중에는 자주 나온 얘기(강제연행)도 있고, 덜 자주 나온 얘기(취업사기)도 있다. 문제는 두 개 얘기가 특히 일본 정부에 관련 책임을 물으려 할 경우, 아예 본질이 전혀 다른 얘기로 취급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이용수가 지금껏 해왔던 증언들 중에서 비교적 자주 나온 얘기가 더 진실에 가깝지 않겠냐고? 그럴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식이라면 이용수가 앞으로 10년간 하게 될 증언에서 혹 전혀 다른 새로운 얘기가 나오고 그 새로운 얘기가 더 잦아진다면 그 새로운 얘기가 진실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이용수의 갈지자 증언 변천사 문제, 아니 정확히는 허위증언 문제와 관련해서 나이 든 노인이 기억이 오락가락할 수 있는 것 아니냐, 또 학대 등에 의한 트라우마를 감안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감상적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양보해서도 안 될 문제이지만 연도, 나이야 헷갈릴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위안부가 된 구체적인 경위에 대한 진술이 저렇듯 널을 뛴다는 건 제3자가 봤을 때 기억력만의 문제로 도저히 봐주기가 어렵다. 애초 기억력 문제가 있는 사람의 증언을 듣는다는 것부터가 무슨 진지함이 있는 일이라고 보기도 어렵지만 말이다.

지금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일본군에 의한 조선의 어린 소녀 강제연행의 진실성 여부는 국제사회가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핵심 중에 핵심이다. 더구나 이용수는 정대협에 의해서 그간 언론, 정부로부터 일본군 위안부의 ‘대표’와 같은 대우를 받아왔다.

국제사회가 예의상 얼렁뚱땅 넘어가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다. 당장 2007년 미국 의회 증언과 2018년 프랑스 의원 증언부터가 다르지 않나. 일본이야 그렇다 치고, 가령 미국 의회, 프랑스 의회에서 뭐 좀 이상하지 않느냐는 식으로 뒤늦게라도 재청문 요구가 들어온다 치자. 국제사회에 공개한 최고 공적 증언의 문제인데, 사람이 살다보면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변명이 과연 먹힐까?

지금 이용수에게 다시 위안부가 된 구체적인 경위, 시점을 물어본다고 한들 국제사회도, 국내외 언론도, 정대협도, 어쩌면 이용수 본인조차 무슨 증언이 나올 것인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일본군에 의한 조선인 처녀 강제연행은 안 그래도 지난 수십 여년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객관적 물증이 나오지 않았던 문제다. 일본군 위안부의 증언을 제외하고는 친지도 이웃의 ‘제3자 증언’(물론 학계가 널리 인정하는 믿을만한 것)도 단 한건이 나오지 않았던 문제라는 말이다. (관련기사 : 영화 ‘귀향’의 역사왜곡과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7가지 오해)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유일한 증거인 ‘일본군 위안부 대표’의 ‘강제연행 핵심증언’이 이렇게 수없이 흔들렸었다는 것이 해외에도 알려질 경우, 차후 국제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어떤 취급을 받게 될 것인가. 무엇보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의 국격은 어떻게 될 것인가.

늦었지만 누가 이 위기상황 경고하고 빨리 출구전략 세우자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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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문재인 위한 ‘거짓말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 (2)

일본군 장교를 위해서 영혼결혼식까지 치러준 이용수, 심지어 나이, 결혼, 직업까지 전부 허위 혐의

이용수의 경우는 단지 일본군 위안부가 된 경위와 관련 증언만 모호한 것이 아니다.

대만에서 일본군 위안부로서의 생활과 관련한 증언, 그리고 본인의 현재 나이와 결혼, 과거 직업과 관련된 내용도 역시 전부 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하루 4~5명의 군인 상대했다더니 하루 최소 20명, 많을 때는 70명?

이용수는 1993년도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 : 증언집’(한울)에서의 최초 증언에서는 일본군 위안부로서 하루 평균 4~5명의 군인을 상대했다는 내용(해당 책 129쪽)을 전하고 있다.

앞서 인용했던 ‘한겨레’ 1997년 9월 6일자 기사 ‘위안부 할머니 울지 마세요! - 대만 신죽기지앞/치욕의 현장 찾은 할머니들 눈물 … 통곡’ 제하 기사에서도 이 내용은 반복된다.

하지만, 이용수가 2007년도 6월 12일에 방영된 EBS ‘시대의 초상 - 위안부라 하지마라'에서는 또 무엇이라고 증언했는지 보자.(관련기사 : "내가 왜 위안부냐,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지“)

하루에 적게 상대한 일본군이 20명이라고 한다. 갑자기 4배나 수치가 늘어난 것이다. 무엇이 진실인 것인가.

5명이건, 20명이건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든 그게 ‘강간’ 성격, ‘학대’ 성격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따지지 말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단, 그런 항변은 어떻든 ‘강제연행’이라는 성격이 중요하지 1940년이건 1945년이건 중요치 않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우리가 지금 일본이라는 한 국가에 공식사죄를 요구하고 있는 문제다. 그 누가 봐도 내용이 엄정해야 하는데, 국제사회가 봤을 때 장난을 넘어서 중상모략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면, 자칫 역으로 공식선전포고를 당해도 싸다는 지탄을 안 받는다고 보장할 수 있을까.

▲ 2007년도 6월 12일의 EBS ‘시대의 초상 - 위안부라 하지마라'에는 쇼킹한 내용이 많다. 같은 연도의 미국 의회 증언에서는 왜 그런 내용을 증언하지 않았는지 의아한 대목이다. 증언에 국내용과 국제용이 따로 있는 것일까.

▲ 이용수가 술집종업원, 가정부 등 밑바닥 생활에다가 60살에 75살 노인의 후처로 들어갔으며 혼인신고까지 했다는 내용이 기록된 한겨레 1993년도 기사.

혼인신고까지 했다더니 결혼도 안하고 그냥 독신으로 생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이 끝난 이후의 이용수의 생활상도 어딘지 이상하게 들리기는 마찬가지다. ‘한겨레’의 1993년 1월 20일자 ‘’참담한 기억‘ 치떨며 자학과 눈물’ 제하 기사를 보자.

술집종원, 가정부 등 밑바닥 생활에다가 60살에 75살 노인의 후처로 들어갔고 그나마도 이혼을 당했다는 내용이다.

헌데, 저 내용은 1999년도 ‘연합뉴스’ 기사에서는 갑자기 지금껏 결혼을 하지 않고 보험회사 등에 다녔다는 내용으로 바뀐다. (관련기사 : <화제>정신대 할머니 명예대학생 과정 수료)

2007년도 6월 12일에 방영된 EBS ‘시대의 초상 - 위안부라 하지마라'에서도 이용수는 역시 결혼한 적이 없다고 그런다.(관련기사 : "내가 왜 위안부냐,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지“)

분명 그냥 결혼도 아니고 혼인신고까지 했던 결혼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결혼 관련 내용이 두 번 부정된 것이다.

어느 쪽이 진실인가. 매사 증언이 언론에 노출될 때마다 뒤집어진다면 그런 증언을 하는 사람이 하는 얘기를 제3자가 믿어줄 수는 없다.

▲ 이용수와 같은 경우는 너무 극단적이어서 현실에서는 유사 사례를 찾기도 어렵다. 드라마 중에서도 ‘미스 리플리’나 ‘화차’같은 극단적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사례이다.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는 도대체 정확한 나이가 어떻게 되는가

이용수는 애초 1993년도 증언에서 1928년생이라고 밝힌 바 있지만 언론도 이용수의 정확한 나이를 도대체 짐작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뉴욕중앙일보’의 다음 기사를 보자. 이용수의 나이를 2011년도에 86세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용수는 1925년생(2011-86=1925)이 맞다. 1944년에는 그렇다면 19세다.(관련기사 : 역사의 증인 만났다, 위안부 할머니들 뉴욕 방문…홀로코스트 생존자와 해후)

‘프레시안’에서는 2005년도에 이용수의 나이를 78세라고 표기했다. 그렇다면 1927년생(2005-78=1927)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1944년에는 17세다.(관련기사 : "일본은 지금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다")

‘중앙일보’에서는 1998년도에 이용수의 나이를 69세로 표기했다. 그렇다면 1929년생(1998-69=1929)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1944년에는 15세다.(관련기사 : 위안부 출신 할머니 일본군 장교와 '영혼결혼식')

‘통일뉴스’라는 정대협에 우호적인 극좌 민족주의 계열의 매체를 보자. 이용수의 나이를 2004년도에 70세로 표기했다. 그렇다면 1934년생(2004-70=1934)이라는 얘기다. 1944년이면 10세에 불과하다.(관련기사 : 김희선의원, "정부 부끄럽다")

이렇게 이용수의 나이가 언론매체마다 다 다른 것은 이용수 본인의 오락가락하는 증언도 한 몫 하겠지만, 위안부 문제로 어떻든 국민적 감정을 쥐어짜내야 하는 정대협과 주류 언론들의 탓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즉 현재 위안부 할머니들 나이는 좌우간 많게 보여야 하고, 그 위안부 할머니들이 젊은 시절에 위안부로 끌려간 나이는 최대한 적게 보여야 한다는 유인을 정대협과 주류 언론들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더 불쌍해 보일테니 말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저런 초자연적인 일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의 증언으로 반박되고 있는 ‘14세 위안부 소녀설’

물론 이용수의 증언이 모두 믿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이용수의 증언 중에서 믿을만한 것들 중에는 우리 국민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을 크게 교정하게 하는 것도 있다.

이하는 그런 문제를 따져보고 한편으로는 그런 교정이 또 어떻게 정대협이 내세우고 있는 이용수의 일본군 위안부로서의 대표성을 완전히 갉아먹고 있는지도 살펴보기로 한다.

다음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 : 증언집’(한울)에 실린 이용수의 1993년도 증언 내용(해당 책 12쪽) 중 일부다.

처음에는 “김분순”이 동갑내기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자기보다 한 살이 더 많다고 한다. 그건 그냥 동갑내기로 지냈다는 얘기로 이해한다 치고서, 이 증언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만16세인 자신이 위안소에서 가장 어렸다는 내용이다. 다른 위안부들은 다 18세 이상, 당시 기준으로 모두 성인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용수의 이런 증언 내용은 정대협의 입장과 배치된다. 정대협은 현재 외교공관 보호와 관련 빈 협약을 무시하고 일본 대사관 앞에 ‘소녀상(少女像)’을 세우고서, 초경(初經)도 멀어 보이는 13~14세 소녀를 일본군이 대거 끌고 간 것처럼 연일 큰 소리를 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내세운 일본군 위안부의 ‘대표’라고 할 만한 사람이 위안소에는 자기보다 어린 여성은 없었다고 하는데 정대협은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인가. 정대협이 응당 관련 무슨 입장을 내놓아야 하는 것 아닌가.

▲ '소녀상'은 정대협이 내세우고 있는 '14세 소녀 위안부설'을 대표하는 이미지다. 하지만 정대협이 내세운 생존 일본군 위안부의 대표격인 이용수는 그게 사실이 아니라고 증언하고 있다. 이 괴리를 빨리 정리해야 하는 것 아닐까?

이용수에게 전기고문을 가한 주체는 ‘일본군’이 아니라 ‘위안부 업자’

한편, 이용수는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하면서 전기고문을 당했다는 증언을 1993년도부터 하고 있다. 이는 한 번도 번복된 적 없는 일관된 증언이므로 역시 믿어볼만한 내용이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건 전기고문의 사실 여부가 아니다. 문제는 전기고문의 주체가 누구였냐는 것이다.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 : 증언집’(한울)에서 이용수의 1993년도 증언 내용(해당 책 127~128쪽)을 들어보면 전기고문의 주체는 ‘일본군’이 아니라 분명 ‘위안소 업자’(속칭 ‘포주’)다.

전기고문의 주체가 위안부 업자였다는 내용은 앞서 거론한 2014년도 ‘아시아경제’가 기획한 ‘위안부 보고서 55’에도 거듭 확인되는 내용이기도 하다.

정대협은 지금껏 위안소에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학대의 주체도 ‘일본군’이었다는 식으로 주장해왔다. 하지만 이용수는 그 주체가 저렇게 ‘위안부 업자’라고 증언한다.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도 정대협이 당연히 무슨 입장을 내놔야 하는 것 아닐까. 이용수가 과연 정대협의 위안부 운동 취지에 맞는 일본군 위안부인가.

자신을 구해준 일본군 장교 '하야까와 기꾸쇼니'를 위해 위령제까지 지내줘

놀랍게도 이용수는 ‘일본군’으로부터는 학대가 아니라 오히려 은혜를 입었다고 증언을 하기까지 한다.

‘한겨레’ 1998년 8월 27일자 ‘군 위안부할머니의 일본군 장교 위령 “생명의 은인 … 증오하는건 일본인 아닌 일본”’의 기사 내용을 보자.

자신이 누구한테 두들겨 맞아서 초주검이 됐는지 얘기는 안하고, 좌우간 한 21살 짜리 일본군 장교가 당시에 자기 목숨을 구해줬다고 한다. 이에 “생명의 은인”인 그를 위해서 나중에 ‘영혼결혼식’도 올려줬다고 한다.

관련해 2015년도 3월 12일, 인문학 모임인 '두:목회'가 주최한 '이용수 할머니의 역사의 증언'에서의 이용수 증언도 들어보자.(관련기사 : "난 가미카제 성노예, 생각만 해도...나쁜놈들")

이용수가 영혼결혼식때 새로이 ‘하세가와’라고 불러줬다는 21살 일본군 장교가 저 ‘하야까와 기꾸쇼니’로 짐작된다. 일본군 장교는 이용수를 ‘도시꼬(年子)’라고 불러줬다고 한다.

이번에도 누구한테 맞고 고문을 당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앞서 이용수가 위안부 업자에게 전기고문을 당한 사실을 고백한 만큼 이는 일본군이 아니라 결국 위안부 업자의 소행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정황이다.

▲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가 1998년도에 일본군 장교를 위해 영혼결혼식(위령제)까지 지내줬다는 내용의 한겨레 기사

여기서 이용수는 오히려 일본군 장교, 물론 한 특정한 개인의 경우이겠지만 그로부터 큰 배려를 받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이 내용은 일관된 증언인 만큼 진실로 들린다. 수십 여년이 지나고도 잊혀 지지 않을 정도라니 어쨌든 진정성 있는 배려였었던 모양이고 군인 본인은 오히려 죽고 말았다니 그 군인이 태평양 전쟁 시기에 사실 미군을 살해하고 다닌 일본군 장교였다는 요소만 배제한다면 어쩐지 숙연해지기 까지 한다.

문제는, 이용수의 위와 같은 증언이 현재 정대협의 일본군 위안부 운동 관련 근본 취지를 흔들리게 한다는 것이다.

정대협은 위안부를 강제연행을 하고 가혹행위를 일삼은 주체가 ‘일본군’이라고 주장한다. 이용수는 비록 오락가락하는 증언일망정 강제연행을 한 것도 가혹행위를 일삼은 것도 그 주체가 ‘위안부 업자’라고 한다. 그냥 한 사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일본군’은 오히려 자기 생명을 구해줬다고 한다.

‘일본군’에 의한 위안부 학대는 없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관련해 정대협의 입장과 이용수의 입장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대협이 다른 생존 일본군 위안부가 아니라 이용수를 ‘대표’로 내세우고서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사과와 배상을 받아낼 수가 있나.

이용수의 증언 중에서 그나마 일관성이 있고 정황상 믿어볼만한 증언 내용은 정대협 주도 위안부 운동의 취지를 기저부터 무너뜨리고 있다는 점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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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 문재인 위한 ‘거짓말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 (3)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국회의원까지 신청하며 ‘종북’ 문재인, ‘종북’ 정대협과 함께 반미활동에 여념없는 이용수

이른바 ‘위안부 할머니’로서 이용수의 정치적, 사회적 지위는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일본군 위안부들의 증언 신뢰성 문제를 시비하려고 나서면, 대다수는 통상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종북세력이 퍼뜨려놓은 기존의 왜곡된 인식으로써 반박을 하고 나선다.

하지만 일부 소수 중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사회 대다수의 인식이 분명 잘못됐다는 것을 다 알면서도, 그래도 정대협을 비판해야지 생존 일본군 위안부들, 이용만 당하는 ‘불쌍한 할머니’를 비판하면 안 된다는 식 반박을 역시 하고 나선다.

하지만 이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생존 일본군 위안부들이 사실상 다 그렇지만 이용수는 그 생존 일본군 위안부들 중에서도 특별한 지위이고 명백한 ‘공인 중의 공인’이다. 정치적,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고 그것으로 사회에 큰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말이다.

영향력을 미치고 권력을 누리는 이는, 그 영향력과 그 권력의 행사가 적절한지와 관련해 반드시 언론(지식인)의 비판적 평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공적 존재를 검증하겠다는데 갑자기 ‘불쌍한 할머니’ 운운 성역을 치겠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우상’을 만들겠다는 소리에 다름 아니다.

▲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의 민주통합 비례대표 신청 당시 여러 시민단체와 좌파 쪽 인사들이 지지 선언을 했었다. 구글 검색만 해봐도 많은 자료가 나온다.

▲ '아이캔스피크'는 이용수의 미국 의회 증언 스토리를 영화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용수의 미국 의회 증언 스토리보다는 이용수의 증언 변천사 스토리가 훨씬 드라마틱해보이지만, 감독은 후자는 검토해본 적이 없는 듯 하다.

비례대표 국회의원 신청, 노벨평화상 후보 제안, 심지어 상업영화 모델이 된 이용수

이용수의 정치적, 사회적 중량감이 잘 짐작이 가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 기회에 그것을 짐작할 수 있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기로 하겠다.

먼저 이용수는 2012년도에 4·11 총선에서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출마 선언을 했다. 기자회견을 했고, 실제로 출마 신청서도 제출했다.(관련기사 : 日위안부 피해자 84세 이용수 할머니 "민주 비례대표 출마")

비록 순번을 받지는 못했지만 비례대표 국회의원 출마가 해당 정당 및 세력과 교감이 없이, 또 정치적, 사회적 중량감이 없이 아무나 가능한 일인가. 당시 이용수의 출마 선언에 여러 시민단체들이 또한 지지선언에 나서기도 했다.

이용수는 2015년도에 노벨평화상 후보로도 추천 제안을 받았다. 물론 이용수 개인만을 위해서는 아니었지만, 여성평화외교포럼과 한국여성변호사회는 당시 일본군 위안부 53명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기 위한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관련기사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게 노벨평화상을!”)

‘한겨레’의 관련 기사를 보면 “생존해 있는 이용수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53명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이라는 대목이 나옴을 알 수 있는데, 일본군 위안부들 중에서도 이용수라는 이름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

한편, 이 씨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인 2017년도 개봉 상업영화인 ‘아이캔스피크’의 모델도 됐다. 이 영화는 이용수의 예의 미국 의회 증언 스토리를 각색했다고 한다.(관련기사 : ‘아이캔스피크’ 실제모델 이용수 할머니, 김현석 감독과 뉴스 출연)

생존 개인을 모델로 하여서 상업영화까지 만들어지는 일은 그렇게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나라 구한 사람이나 혹시 받는 대접 아닌가.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많지만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포옹하고 문재인 대통령도 쩔쩔매는 이용수

현 정권의 이용수에 대한 대접은 어떠했는가. 가장 잘 알려진 것이 트럼프 대통령 방한 시에 청와대 만찬에 생존 일본군 위안부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초청받은 일이다. 이거 절대 아무나 받을 수 있는 대접이 아니다.

이용수를 초청하는 일은 대일관계에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전부터 이용수를 단독으로 여러 차례 만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약속해온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결단했다.

그 보답일까.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과 관련해 나중에 일본 측에서 항의가 나오자 이용수는 직접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귀빈이 오고 대통령이 와서 인사하는데 그것까지 상관하고···대한민국을 왜 자기들이 이래라저래라 (하는지)···참 어처구니가 없다”고 큰소리를 치고 나오기도 했다.

이용수의 위상은 문재인 대통령보다도 어떤 면에서는 더 높다. 문재인 정권은 한일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뒤집었지만, 공식적으로 확실하게 뒤집지는 못해서 이에 이용수 등 일본군 위안부들과 이용수의 파트너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를 일부러 청와대 오찬에 초청을 해서 그 점에 대해서 대통령 자격으로 공식 사죄를 하기 까지 했다.(관련기사 : 文-위안부 피해 할머니 오찬…"뜻에 어긋난 합의 사과")

놀랍게도 그 자리에서도 이용수는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당당하게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법적인 배상하도록 좀 해결해주십시오”라고 요구했다. 대기업 회장들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민주노총 위원장이나 여당 대표라도 일부러 공식 사죄를 하고 있는 대통령 앞에서 그것으로는 부족하니 더 하라고 할 말 다 할 수 있는 일일까.

물론 이용수보다는 대통령의 처신이 더 문제일 것이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 이미 대통령이 되기 이전부터 일본군 위안부들 중에서도 이용수를 가장 빈번하게 활용해온 정치인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용수를 트럼프 대통령에 소개시킨 데 이어 이제는 김정은도 역시 트럼프 대통령에 소개시키려고 한다. 이러니 ‘인권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의 인권 문제와 관련 비선 자문 서열 1위가 김정은이고, 서열 2위가 바로 이용수라는 지적까지도 일각에서는 나온다.

어쩌면 대통령 본인만의 독특한 교우(交友) 취향이 최우방 지도자의 곤란한 입장도 무시되고 거듭 강요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편으로는 고도의 반미활동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 트럼프 대통령의 표정이 거짓말로라도 좋아보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문재인 대통령과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의 전력을 생각해본다면 그래서 정말 불길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사진출처=JTBC

▲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인으로서 이용수와 만남을 가진 것은 사진으로 찍힌 것만 최소한 8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계속 대선 후보급의 파워를 갖고 있을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은 이용수가 만나고 싶다면 언제라도 만나는 깊은 수준의 교우 관계로 보인다. 이용수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과연 어떤 정치적 고언을 해왔을까.

‘애국우파 역사교과서’인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을 막은 이용수

국내에서 이용수의 정체를 가장 먼저 파악하고서 이전부터 계속 경고음을 내왔던 사람들은 늘상 ‘극우’로나 폄하되어왔던 자유통일 애국세력이다.

자유통일 애국세력이 이용수의 정체를 빨리 눈치채게 된 것은, 자유통일 애국세력이 이용수 때문에 큰 정치적 좌절을 겪었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듯이 이용수는 정치적, 사회적 우상으로 우뚝 서있는 존재다. 이런 존재가 이념적 스턴트를 벌이는데 반대 이념세력이 타격이 받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자유통일 애국세력이 이용수로부터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정치적 사건 중에 하나가 바로 ‘애국우파 역사교과서’로 알려진 교학사 역사교과서 보이콧 사건이다.

이용수는 2014년 1월 3일, 대구 포산고를 직접 항의방문해서 당일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 철회를 이끌어냈다. 또한 이용수는 2014년 1월 8일, 경북 청송여고도 항의방문해서 역시 다음날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 철회도 이끌어냈다.

교학사 역사교과서 채택 의사를 밝힌 학교가 고작 저 두 학교 정도였으니 이용수의 확인사살로 교학사 역사교과서는 결국 시중에서 완전히 사리지게 된 셈이다. 이는 결국 박근혜 정권이 할 수 없이 ‘역사교과서 국정화’까지 시도하는 동인이 된다.

하지만 이용수가 도대체 굳이 그렇게까지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보이콧할 명분이 무엇이 있었나. 교학사 역사교과서는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서는 “조선인 위안부는 전선의 변경으로 일본군 부대가 이동할 때마다 따라다니는 경우가 많았다”고 서술한 것이 전부인데 말이다.

관련해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는 어디까지나 일본군에 의해 “끌려다닌 것”이고, 일본군을 “따라다닌 것”은 왜곡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런 입장은 일본군 장교를 위해 영혼결혼식까지 치러준 이용수가 내세울 입장은 적어도 아니다. 더구나 ‘역사적 사실’로 봤을 때는 교학사 역사교과서의 서술은 틀린 얘기도 아니다. (관련기사 : 영화 ‘귀향’의 역사왜곡과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7가지 오해)

한편, 당시 변희재 미디어워치 고문은 이용수의 민주당 비례대표 신청 전력 문제를 거론하며 이용수의 교학사 역사교과서 보이콧 선동에 특정 정파세력이 개입하고 있다는 의혹을 앞장서 제기하기도 했다.

▲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는 사실상 교학사 역사교과서가 폐기처분되게 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가 바람직한지 안한지 논란의 여지는 있겠지만,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문제를 평가하는데 있어 이용수와 좌파 세력의 기만적 교학사 역사교과서 보이콧 사태까지 발생한 이후 정부의 선택지가 넓지도 않았던 점은 반드시 고려되어야할 것이다. 사진=MBC

▲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는 탄핵 정국 당시 서울과 대구를 오가며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강하게 선동했다. 사진출처=‘민중의 소리’(MediaVOP)

박 대통령 탄핵, 사드 배치 반대, ‘간첩’ 김삼석 위해서 탄원까지... 역시나 반미활동가였나

문재인 대통령보다는 눈치가 빠른 것으로 보이는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12월, 한일위안부합의를 결단했다. 이용수 등에 의해 난항을 겪게 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과 관련된 일종의 출구전략을 썼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한국에 자신만의 정부를 만들어놓은 천하의 이용수가 그것을 그냥 보고 있을 리가 없겠다. 이용수는 한일위안부합의가 부당하다고 지적하면서 탄핵 정국 당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가장 앞장 서서 선동하고 다녔다.

극좌 민족주의 매체인 ‘민중의 소리’(MediaVOP)는 2016년 11월 26일에 대구에서의 이용수의 연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나쁜 년”을 꼭 끄집어 내리자고 한다.(관련영상 : 위안부피해자 이용수 할머니 "박근혜를 끄잡아 내립시다")

극좌 매체인 ‘프레시안’은 2017년 3월 1일,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의 18차 탄핵 촉구 집회에서 이용수의 연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박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구속시키고 역사를 바로 잡자고 한다.(관련기사 : 3.1절 광장서 '탄핵' 외친 日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이용수는 난데없이 사드(THAAD) 배치 반대 활동도 하고 나섰다. ‘뉴스민’은 2017년 5월 3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사드 반대 평화캠프촌에서 이용수의 연설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미국년놈”이 “주인”(한국) 허락없이 사드 배치하면 안 된다면서 사드 배치 안 된다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야 된다고 한다.(관련영상 : 성주 소성리 온 이용수 할머니 “주인이 안 된다는 사드, 택도 없다”)

박 대통령 탄핵 문제야 그렇다 치자. 일본군 위안부 출신이 도대체 왜 난데없이 미국을 비난하고 나설까. 태평양전쟁을 통해 미군이 해방시켜주지 않았다면 이용수의 일본군 위안부 생활은 더 길어졌고, 더 지독해졌을지 알 수 없었던 것 아닌가?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을 몇 명을 살해했을지 모를 일본군 장교를 위해 영혼결혼식까지 치러 준 전력이 있는 이용수의 이러한 반미활동을 평범한 미국인들(이용수의 표현에 따르면 “미국년놈들”)이 목격한다면, 이용수는 물론이거니와 이용수를 무슨 영웅이라도 되는 듯 떠받들고 있는 한국인들에 대해서 그들이 앞으로 어떤 생각을 갖게 될까?

이 문제는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사안으로, 비단 이용수만의 문제가 아니라 특히 ‘종북’ 정대협과 함께 하는 생존 일본군 위안부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전부 역사적 맥락상으로도 평범한 미국인들에게는 예사로운 반미활동이 아닌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일본군 위안부는 냉정하게 얘기하면 ‘(일본)제국의 위안부’로 태평양 전쟁 시기에 미군(이는 당시 한국인 입장에서는 명백한 해방군이다)과 적대세력인 일본군을 위한 활동을 했다. 물론 그건 자의가 아니었겠지만, 어떻든 그런 그들이 인생 말년에 ‘종북’ 정대협과 함께 하면서 미국의 또 다른 적대세력인 북한, 그리고 그 하부 세력인 조총련과 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존 일본군 위안부 중에서 김복동(金福童)은 정대협과 함께 일본의 조총련 학교를 돌아다니며 ‘미국은 철천지 원수’라고 교육받고 있는 학생들을 격려하고 다녔다. 길원옥(吉元玉)도 역시 정대협과 함께 북한 조선민주여성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이 나온 자리에서 증언 활동을 하며 결과적으로 미국에 핵폭탄도 떨어뜨리겠다는 북한 측에 힘을 실어주는 활동을 했다.

이용수, 김복동, 길원옥이 한국군/미군/유엔군 위안부를 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바 없다. 이렇게 되면 누가 봐도 일관된 반미활동 아닌가. 한국인 위주의 감상으로만 이 문제를 바라볼 수가 없는 것이다.

특히 이용수는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의 반미활동을 하고 있는가. 이용수는 (물론 자신은 무조건적인 ‘반일’이나 ‘비전향 장기수’는 좋지 않다며 사설은 달았지만) ’남매간첩단 사건‘으로 유명한 ‘간첩’ 김삼석을 위해 탄원서도 넣고 면회도 갔다고 밝히고 있다. ‘간첩’ 김삼석은 이른바 ‘남매간첩단’ 사건의 당사자로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의 남편이다.(관련기사 : 이용수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내 소원은 한국과 일본이 원수 지지 않는 것”)

저것이 ‘종북’인 문재인 대통령 같은 사람에게는 별로 이상하게 보이는 일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미국 대통령인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세상 사람들이 다 북한, 아니 한국 사람처럼 볼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김삼석이 누군가. 그는 북한 핵개발 지지와 관련한 회합·동조 혐의, 그러한 간첩 혐의로 감옥에 간 사람이다. 이용수는 이전에 태평양전쟁 시기에 미군과 맞선 일본군 장교를 위해서 영혼결혼식을 치루어준 전력도 있다.여기에다 또 얼마전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사건이 벌어졌던 것도 생각해본다면, 국빈만찬 당시 이용수와 트럼프 대통령과의 포용 장면은 도저히 간단하게 볼 수가 없는 장면이다.(관련기사 : “정대협 윤미향 상임대표 남편 김삼석은 ‘간첩전력자’ 맞다”)

혹시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은 다 알면서도 일단은 대충 속아 넘어가주고 있는 것이라면, 지금 대한민국 사람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로 인해 정말 외교안보 문제에 있어서 벼랑 끝에 서있는 상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일본군 위안부 이용수는 사드 배치 반대 활동에도 적극 나섰다. ‘일본군 위안부’와 ‘사드 배치 반대’가 도대체 맥락상 연결이 되는 것일까. 혹자는 그것이 전쟁반대라는 맥락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둘 다 반미활동이라는 맥락이 있다는 해석도 역시 가능하다. 이용수가 전쟁반대를 위해 혹시 북한이나 중국을 비판해온 적이 없다면 후자의 해석에 무게가 실릴 수 밖에 없다. 사진출처=뉴스민

▲ 불과 2년전에 벌어졌던 김기종에 의한 마크 리퍼트 대사에 대한 피습 사건을 생각해본다면,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장교를 위해서 영혼결혼식을 치루어주고, 북핵 개발 지지 등의 혐의로 감옥에 간 간첩을 위해 탄원서를 써주고 면회를 간 일관된 ‘반미’ 성향 인사를 미국 대통량에게 포옹시킨 문제는 결코 간단하게 봐주고 넘길 수는 없다. 사진=KBS

▲ 거짓말 있는 곳에 '조작의 황제' 손석희가 빠질 수는 없다. 손석희는 문재인 대통령의 한일위안부합의 파기를 사실상 예찬하며 당시 윤미향 정대협 대표와 인터뷰를 했다. 사진=JTBC

허위증언 문제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법 위에 서게 된 ‘살아있는 우상’ 이용수

반공우파 군사평론가 지만원 박사는 이미 이런 상황을 13년 전에 경고했다. 정대협 주최 수요집회에 나오는 일부 일본군 위안부들은 가짜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당시 언론들은 지 박사의 용기있는 지적을 ‘망언’으로 치부하기 바빴다. (관련기사 : 지만원씨 “수요집회 위안부할머니 가짜일수도”)

하지만 지 박사의 예언적 경고를 듣지 않은 대한민국 사회는 이제 상습적으로 허위증언을 일삼아온, 더구나 반미·종북 인사인 이용수를 ‘살아있는 우상’으로 모시게 됐고, 이에 이용수는 이제 심지어 법 위에조차 서게 된 존재가 됐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이용수는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교수 재판 당시 ‘1심 최종 변론일’, ‘1심 선고일’, ‘2심 최초 변론일’, 무려 세 차레나 법정에서 판사들과 방청객들이 다 보는 앞에서 박 교수에게 거침없이 최고 수위의 욕설을 해댔다. 기자가 당시 현장을 직접 목격한 바, 차마 누가 바로 말리지도 못하는 분위기였다.

법정에서의 폭언·소란은 설사 범죄피해자라고 하더라도 용납되는 것이 아니다. 일반인이었다면 당연히 감치(監置) 대상일 것이다. 이용수의 경우는 더구나 상습범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2심의 김문석 재판장은 감치는커녕, 꾸짖기는커녕, 노골적으로 이용수를 달래기에 바빴다.

이런 상황이 과연 법치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인가. 누가 봐도 여론추수, 법리무시로 점철된 박 교수에 대한 2심 유죄 판결 결과는 이미 첫 변론기일에 예고됐던 것이나 다름없다.(관련기사 : 눈을 의심케 하는 박유하 2심 유죄 판결)

최근 본지는 정대협이 걸어온 민사소송 재판 과정에서 이용수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본지는 이전에 정대협 측이 자신들의 ‘종북’ 활동에 일본군 위안부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던 바 있다. 정대협이 거듭 이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인 만큼, 그렇다면 이용수의 이념활동, 정치활동이 정대협의 배후조종인지, 아니면 정말 본인소신인지 직접 확인을 해봐야 하니 당사자를 부르자고 한 것이다.

물론 해당 소송에서 정대협 측은 이용수 증인 선정에 완고히 반대하고 있다. 식자(識者)라면 그 이유는 능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 본다.

시대의 바른눈을 기르시길 바라고 바랍니다

목록에 가시면 시대별 잘정리되어있습니다

거짓말정치 https://youtu.be/M8fDYHfDiiE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ZZEZygYteL4j4_DxNqAAiz10XOeZoUv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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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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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