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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훈아 - 사랑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보고 또 보고 또 쳐다봐도 싫지 않은 내 사랑아
비 내리는 여름날엔 내 가슴은 우산이 되고
눈 내리는 겨울날엔 내 가슴은 불이 되리라
온 세상을 다 준대도 바꿀 수 없는 내 여인아
잠시라도 떨어져선 못 살 것 같은 내 사랑아
행여 당신 외로울 땐 내가 당신 친구가 되고
행여 당신 우울할 땐 내가 당신 웃음주리라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보고 또 보고 또 쳐다봐도 싫지 않은 내 사랑아
201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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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의 TV조선 기자의 동분서주
"7년만에 남편 25분 만났지만 변한게 없어…
이제 그만 도망다니고 가족 앞에 나왔으면"
- 유선의
- TV조선 기자
- E-mail : sunnyyu@chosun.com
- 19살에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생도생활 4년 포함 9년을 군에서..
나훈아 부인 정수경이 31년 만에 털어놓은 그들의 결혼과 이혼 소송 이야기
나훈아는 1973년 배우 고은아의 사촌인 이숙희씨와 결혼 후 2년 만에 이혼했다.
결혼 초반 부부는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 지난 21일 만난 정수경씨. 그가 현재 모습이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아 뒷모습만 촬영했다.
―당시 결혼을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저는 가수를 오래할 생각도 없었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기 때문에 처음엔 청혼을 거절했습니다.
- 나훈아, 정수경씨 부부의 단란했던 한 때.
―결혼 10년 만인 1993년 자녀들과 함께 미국 하와이로 떠났는데,
왜 그랬나.
"아이들을 미국에서 교육시키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남편과 상의해 내린 결정이었습니다.
떨어져 살긴 했지만 남편이 매년 10번도 넘게 우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왔기 때문에
부부 사이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가족이 다 같이 해외여행을 가기도 했습니다.
제가 한국으로 들어가 만난 적도 있고요. 남편은 아이들한테도 아주 잘했습니다.
그래요,
싸움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2006년까지는 남들보다 살갑게 잘 살았던 것 같습니다.
남편은 알려진 대로 호탕한 사람이었고,
아주 낭만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로맨틱한 행동을 잘했는데 너무나 뛰어난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결혼하던 그 해 직접 작사·작곡해 발표한 '
사랑'도 저에게 불러준 거라 믿고 있습니다."
사랑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보고 또 보고 또 쳐다봐도 싫지 않은 내 사랑아
비 내리는 여름날엔 내 가슴은 우산이 되고
눈 내리는 겨울날엔 내 가슴은 불이 되리라
온 세상을 다 준대도 바꿀 수 없는 내 여인아
잠시라도 떨어져선 못 살 것 같은 내 사랑아
행여 당신 외로울 땐 내가 당신 친구가 되고
행여 당신 우울할 땐 내가 당신 웃음주리라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보고 또 보고 또 쳐다봐도 싫지 않은 내 사랑아
“남편은 호탕하고 낭만적이고 뛰어난 감수성을 가진 사람”
“2007년 ‘힘들고 루머 생기는 것도 피곤하다’며 해외여행 떠난 뒤 연락 끊겨”
―그런 나훈아씨가 왜 2007년부터 갑자기 태도를 바꿨나.
"가수 생활을 오래해서 힘들다,
자신을 둘러싼 루머들이 자꾸 생기는 것도 피곤하다면서 아무 생각 없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해외여행을 떠난 게 2007년 초였는데,
사실상 그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단 한 번도 남편과 같이 살았던 적이 없습니다.
아니,
그냥 따로 살았던 게 아니라 연락조차 할 수 없었으니까 남보다도 못했던 거죠.
남편한테 할 말이 있으면 남편의 여동생한테 연락을 해야 했고,
여동생을 통해서 이야기가 제대로 전해졌는지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편지도 쓰고 그랬습니다."
- 나훈아, 정수경씨 가족 사진. 결혼 초만 해도 남편은 무척 다정했다고 정씨는 말했다.
- 나훈아씨가 2008년 1월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자신과 관련한 의혹에 대해 해명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후에도 2년을 더 기다린 아내는 미국 메사추세츠주 가정법원에 이혼을 신청했다.
남편이 떠난 그 날부터 생활비 지원은 끊긴 상태였다고 했다.
하지만 서류상으로 두 사람은 엄연히 부부였기 때문에
미국 영주권자인 아내는 미국 정부로부터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었다.
아내는 ‘
살기 위해’ 이혼을 신청했다고 했다.
또 당시 나훈아도 이혼 결정에 동의했기 때문에 이혼이 성립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2011년 1월 6일,
미국 법원은 정수경과 나훈아의 이혼을 허가했다.
“살기 위해 미국과 한국에서 이혼 소송”
―왜 이혼을 결심했나.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저에게는 현실적인 문제가 우선이었습니다.
혼자 살면서 부부로 돼있는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고,
연락조차 되지 않는 현실이 억울했습니다.
아이 둘을 키워야 하는데 정부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혼을 해서 싱글맘이 되면 세금 감면 같은 여려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생각해낸 게 이혼이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되겠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당시 저는 작은 지원이라도 꼭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한국으로 들어가 저와 같이 살고 싶다는 마음만 있다면
미국에서의 이혼은 한국에서 아무런 영향력이 없기 때문에
미국에서의 이혼이 ‘
돌아올 수 없는 강’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 나훈아씨 가족이 외국 여행을 떠났을 때의 모습.
"제가 한국에서 이혼 소송을 제기한 게 2011년 8월입니다.
미국 법원에선 이혼 인정
우리 대법원은 “나훈아 부정행위 등을 인정할 근거 없다”며 이혼 청구 기각
나훈아의 반대로 한국에서는 두 사람의 이혼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혼은 안 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지만 정씨는 지금도 남편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
“며칠 전 7년 만에 만났는데 아이들 얘기 묻지 않아 마음 아팠다”
“한국서 같이 살려면 미국에서의 이혼 되돌려 놓고 오라는 조건 걸어”
―며칠 전 7년여 만에 처음으로 남편을 만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 나훈아씨가 자녀들과 여행을 가 말을 타는 모습.
―이후에는 다시 못만났나요.
"다음날 다시 만나려고 찾아갔는데 바람 쐬러 여행 갔다며 문도 열어주지 않더라고요.
결국 남편이 남긴 이야기는 이거 하나뿐입니다.
미국에서 이혼 물리고 와라.
그러면 받아줄지 생각해 보겠다.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이혼을 물리려면 남편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걸 도와주지 않으면서 이혼만 되돌려놓으라고 하니 막막할 따름이죠.
또 남편이 법정에서 자신 있게 말한 대로 국내에서 저와 함께 살 마음이 있다면,
미국 이혼을 문제 삼을 이유는 없습니다.
조강지처라면서 왜 불가능한 조건을 거나요?
남편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사실은 부부 아닌데 법적인 부부로 살아야 하는 상황 해결됐으면”
대법원 판결이 나버려 정씨로서는 딱히 방법이 없는 상황.
부부가 같이 살거나 협의이혼 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생계는 몇 년 전부터 미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첫째 아들이 책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인지.
"밉다,
뭐 그런 마음은 벌써 몇 년 전에 다 초월했습니다.
지금은 어떤 식으로든 정리가 됐으면 하는 바람,
그거 하나뿐입니다.
사실은 부부가 아닌데 법적인 부부로 살아야 하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이혼이든 결합이든 결론이 났으면 좋겠습니다.
남편이 대스타고 남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았던 공인이고
그 때문에 어려운 일도 많았겠지만,
이제는 그만 도망 다니고 가족 앞으로 나와서
이 상황에 같이 마주했으면 좋겠습니다."
- 유선의 기자 ☞ [유선의 TV조선 기자의 동분서주] 전체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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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보고 또 보고 또 쳐다봐도 싫지 않은 내 사랑아
비 내리는 여름날엔 내 가슴은 우산이 되고 눈 내리는 겨울날엔 내 가슴은 불이 되리라
온 세상을 다 준대도 바꿀 수 없는 내 여인아 잠시라도 떨어져선 못 살 것 같은 내 사랑아
행여 당신 외로울 땐 내가 당신 친구가 되고 행여 당신 우울할 땐 내가 당신 웃음주리라
이 세상에 하나밖에 둘도 없는 내 여인아 보고 또 보고 또 쳐다봐도 싫지 않은 내 사랑아
2014.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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