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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대백과

메이플스토리

한국 온라인게임 흥행작

[ MapleStory ]

메이플스토리2. 단순한 캐주얼게임처럼 보이지만 한국 온라인게임 시장을 변화시킨 역동적인 작품이다.

넥슨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게임회사다. 지난 20년간, 수많은 히트작을 남기며 온라인게임 흥행사를 썼다. 한편에선 ‘돈슨’이라는 비난도 받았지만, 그래도 한국의 대표 게임사라는 점은 틀림없다. 넥슨의 성장 동력은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넥슨은 3가지 DNA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DNA는 [바람의 나라]다. 김정주, 송재경 등 1세대 창업멤버들이 만든 게임이다. 척박한 게임시장에서 한국형 MMORPG를 뿌리내리고, 성장시킨 리더 역할을 해왔다. 두 번째 DNA는 [마비노기] 시리즈를 만든 ‘데브캣 스튜디오’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사랑 받아온 넥슨의 얼굴이다. 세 번째는 DNA는 [메이플스토리] 시리즈다. 넥슨의 모든 혁신과 실험이 이 작품 안에 다 들어있다.

필자는 지난 게임대백과에서 [바람의 나라]와 [마비노기]를 소개한 바 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작품, [메이플스토리]를 꺼내놓을 차례다. 메이플스토리를 통해 한국형 온라인게임의 어제와 오늘을 짚어보자.

넥슨, 세대교체에 나서다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펙이 아니라 10년이 지나도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 그 자체입니다.” - 넥슨 창업자 김정주 대표, 넥슨 채용설명회에서

[바람의 나라]는 김정주, 송재경, 정상원 등 넥슨 1세대가 만든 작품이다. 이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근성 하나로 온라인게임의 토양을 만든 인물들이다. [바람의 나라]를 성공시키면서 넥슨은 시장의 선두로 올라섰다. 이후 [어둠의 전설], [일렌시아]를 내놓으며 MMORPG 메이커의 입지를 쌓았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복병을 만났다. [바람의 나라]를 만든 송재경 씨가 회사를 떠난 것이다. 엔씨소프트로 옮긴 그는 [리니지]를 내놓으면서 넥슨의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당시 [리니지]의 인기는 엄청났다. [스타크래프트], [포트리스]와 함께 PC방 최고인기 게임으로 꼽혔다. 구매력 있는 아저씨들이 [리니지]에 몰리면서 짭짤한 매출을 올렸다. [바람의 나라]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바람의 나라. 김정주, 송재경을 비롯한 넥슨 창업 1세대 개발자들이 만든 MMORPG. 넥슨 2세대로 세대교체 되면서 캐주얼게임 시대가 열렸다.

넥슨은 세대교체부터 진행했다. 창업멤버 중심의 1세대 개발자들은 독립하거나 회사경영을 맡는 등 후방으로 빠졌다. 그리고 참신한 2세대 인재들을 개발전선 전면에 배치했다.

넥슨이 세대교체를 진행하던 1990년 말, 당시 한국 게임시장도 세대교체가 한창이었다. IMF 이후 벤처 열풍이 불면서, 온라인게임은 IT산업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우수한 인재들이 게임시장으로 몰렸다. 시장도 커지고, 해외수출도 활발했다. 병역특례 같은 정부의 지원사업도 늘었다.

1세대 개발자들은 “게임으로 밥 먹고 수 있냐”는 소리를 들었지만, 이제는 게임갑부가 나오는 시대가 됐다. 그러다 보니 개발자들의 마인드도 변했다. 지하 단칸방에서 라면 먹고 게임 만들던 시절은 옛말이 됐다. 1세대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게임’이라는 하나의 목표만으로 버텼다면, 2세대는 좋은 환경 속에서 게임 자체를 즐기면서 시작했다. [비엔비], [메이플스토리]를 만든 이승찬씨도 병역특례로 입사한 2세대 개발자였다.

넥슨 2세대, 캐주얼게임 시대를 열다

“우리는 넥슨에서 정보통신부 일을 맡아 하고 있었죠. 그 와중에 취미로 게임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회사 컴퓨터도 좋으니 주말에 나와 만들었죠. 어느 날 김정주 사장이 사무실에 불쑥 찾아와 뭐하냐고 묻더군요. 게임을 보더니 바로 서비스하자는 겁니다. 그게 바로 퀴즈퀴즈였죠.” - 넥슨 김진만 디렉터 (메이플스토리 디자인 담당)

[메이플스토리]의 전신은 이승찬, 김진만 콤비가 만든 [퀴즈퀴즈]다. 두 명은 회사에서 정부기관 홈페이지 제작 같은 일을 맡았다. 아직 정식 프로젝트에 합류하기엔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둘은 취미 삼아 게임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한 명은 프로그래밍을 하고 한 명은 디자인을 맡았다. 아바타로 퀴즈를 푸는 게임인데, 게임을 보고 한눈에 반한 김정주 사장은 바로 서비스를 결정했다고 한다. 이 작품이 넥슨 세대교체의 기폭제가 된 퀴즈퀴즈(현 큐플레이)다.

[퀴즈퀴즈]는 이전 넥슨 게임들과는 달랐다. 무거운 MMORPG에서 가벼운 캐주얼게임으로 분위기 전환에 성공했다. [퀴즈퀴즈]는 넥슨이 오래 전부터 기획해 왔던 부분유료화 모델을 도입한 최초의 게임이다. 가벼운 게임성에 접근성까지 높다 보니 당연히 사람들이 몰렸다.

이승찬 본부장. 병역특례로 넥슨에 입사해 ‘퀴즈퀴즈’와 ‘비엔비’를 개발했다. 이후 위젯을 창업하고 ‘메이플스토리’를 만들었다.

이승찬은 [크레이지아케이드: 비엔비]를 만들어 또 한 번 대박을 쳤다. 비엔비는 다오, 배찌 등 귀여운 캐릭터와 쉬운 조작으로 캐주얼게임의 붐을 일으킨 작품이다. 넥슨은 캐주얼게임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승찬은 병역특례기간이 끝나고 회사를 그만뒀다. 계속 남아 함께 일해보자는 권유도 있었다. 회사에서 탄탄대로가 보장되어 있는데도, 이들은 넥슨을 나와 작은 벤처기업을 설립했다. 1세대 창업자들이 대기업을 뿌리치고 넥슨이라는 벤처기업을 키운 것 것처럼, 2세대 개발자들도 선배들의 뒤를 이어 벤처의 격랑 속으로 뛰어들었다. [메이플스토리]는 이런 벤처정신이 빚어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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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퀴즈’(좌)와 ‘크레이지아케이드: 비엔비’(우). 두 게임의 성공으로 넥슨은 캐주얼게임 메이커로써 입지를 굳혔다.

솥뚜껑을 방패로 삼는다면? RPG의 반전

“메이플스토리를 만들 당시 빚이 4억 원 정도 있었습니다. 그땐 내 인생이 이걸로 맛이 가는구나 싶었죠. 하지만 운이 좋았는지 게임서비스 2달 만에 모든 빚을 갚을 정도로 성공했습니다. 이때 평생 게임만 만들며 살 수 있겠다는 신념이 생겼죠.” - 넥슨 이승찬 전 본부장(NDC 2010 강의 중, 디스이즈게임)

이승찬, 김진만, 장문성 3명은 위젯이라는 게임사를 차렸다. 넥슨과 파트너 관계는 계속 유지됐다. 김정주 사장이 위젯 사무실에 냉장고 등 여러 가지 용품들을 사줄 만큼 두 회사의 사이는 돈독했다.

그러나 회사를 차렸다고 해서 당장 게임을 만들 순 없었다. 무엇보다 돈이 필요했다. 이들은 개발비를 마련하기 위해 대출을 받고, 각종 용역을 도맡아 했다. 이들 또한 초창기 넥슨과 똑같은 역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회사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서 파산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이런 어려움 끝에 세상에 나온 게임이 온라인게임 최대 흥행작 [메이플스토리]다.

2003년 가벼운 RPG를 표방하고 출시된 메이플스토리. 12년 동안 온라인게임 최고 흥행작으로 성장했다.

처음엔 가볍게 시작됐다. ‘냄비뚜껑을 방패로 삼으면 어떨까?’라는 엉뚱한 아이디어로 출발했다. 초창기에는 RPG성향도 거의 없었다. 아바타들이 맵을 돌아다니면서 몬스터와 전투를 하는 단순한 방식의 게임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몬스터들을 치다보면 레벨이 조금씩 올랐다. 거창한 스토리와 심오한 세계관을 내세운 기존 RPG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리니지]는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했고, [바람의 나라]도 고구려 역사가 배경이다. 그런 RPG에 비하면 솥뚜껑을 방패로 삼고, 냄비를 투구대신 쓰는 엉뚱한 설정은 유저들에게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넥슨 김진만 디렉터는 “다른 대작 RPG처럼 무슨 대단한 사명감을 가지고 만든 게임은 아니다. 어깨에 힘을 빼고 캐주얼한 분위기의 디아블로를 만들려 했다.”고 당시 개발배경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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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출시당시 메이플스토리. 3D시대에 2D게임으로 나와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메이플스토리]는 출시되자마자 무시당했다. 게임이 나온 2003년 당시는 3D 그래픽이 대세였다. 특히 엔씨소프트가 3D MMORPG [리니지2]를 내놓으면서 2D게임은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 그렇다고 거창한 세계관이나 감동적인 스토리도 없었다. 채팅 사이트에서나 나올 법한 아바타 캐릭터에 조악한 타격감, 그리고 가벼운 게임성. 무엇 하나 진지한 구석이 없었다.

2D만의 아기자기한 매력이 유저들의 눈을 잡았다. 슬라임, 버섯, 돼지 등의 캐릭터들은 여성유저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이런 ‘가벼움’이야말로 [메이플스토리]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스토리, 세계관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에 자유로운 기획이 가능했다. 기사의 갑옷대신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품들로 자신의 캐릭터를 더 개성 있게 꾸밀 수 있었다. 복잡한 시점전환도 없고, 골치 아픈 스킬시스템도 배제했다. 점프하거나 사다리를 오르고 밧줄을 타는 등 1980년대 오락실 게임의 재미를 그대로 살렸다. 제목도 그냥 부르기 좋게 ‘메이플스토리’라고 지었다. 무슨 심오한 뜻이 있는 건 아니다.

[메이플스토리]의 흥행은 의외의 곳에서 터졌다. 아기자기한 2D캐릭터에 반한 여성들과 쉬운 게임을 선호하는 저연령층 게이머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높은 레벨업 난이도와 낮은 아이템 드랍율로 ‘노가다 게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지만 게임 속 커뮤니티는 늘 사람들로 붐볐다.

[메이플스토리]는 3D게임 시대에 2D게임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이 의외의 성공에 시장도 놀랐다. 앞서 이승찬 씨의 말처럼 서비스 2달 만에 회사의 모든 빚을 갚을 정도로 돈을 벌었다. 가볍다고 무시당했던 이 게임은 이후 한국 온라인게임 시장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태풍의 눈’으로 성장했다.

최초의 퍼블리싱 게임, 산업의 구조를 바꾸다

[메이플스토리]는 시장의 구조부터 바꾸었다. ‘퍼블리싱’이라는 개념을 적용한 첫 사례다. 넥슨은 [메이플스토리]의 가능성을 진작 알아봤다. 게임이 안정적으로 서비스 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사실 규모가 작은 위젯은 게임을 단독으로 서비스할 능력이 없었다. 게임이 인기를 얻을수록 고민은 깊어졌다. 몰려드는 접속자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서버가 다운될게 뻔했다.

넥슨은 음반이나 영화산업처럼 제작과 배급을 분리시키는 방법을 제안했다. 넥슨은 이미 [바람의 나라], [비엔비] 같은 굵직한 작품을 서비스해온 회사다. 그 인프라를 이용해 [메이플스토리] 퍼블리싱을 제안했다. 위젯은 개발에만 몰두하고 넥슨은 마케팅과 홍보, 운영부분을 맡았다. 두 회사가 힘을 합치니 효율이 훨씬 높아졌다.

메이플스토리 초기버전 캐릭터들. 궁수, 도적, 마법사, 전사

그때까지 온라인게임 회사는 게임개발과 서비스를 병행했다. 개발과 서비스를 함께 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도 컸다. 게임은 잘 만들어도 서비스를 못해 무너지는 게임들이 수두룩했다. [메이플스토리] 성공 후 업계는 퍼블리싱과 개발사로 분리되어, 서로 돕는 구조로 바뀌었다.

자본과 인프라를 갖춘 회사와 아이디어와 개발력을 갖춘 회사가 힘을 합치면서, 전체 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위젯과 넥슨은 1년 동안 [메이플스토리]를 함께 키웠다. 2004년, 넥슨이 위젯을 인수하면서 개발과 서비스를 함께 하게 됐다.

위젯 이승찬 대표는 회사를 매각하고 미국유학을 떠났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넥슨에 복귀하고, 다시 1년 만에 ‘시메트릭 스페이스’란 회사를 차려 독립했다. 그곳에서 [텐비]란 게임을 만들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그리고 다시 넥슨 본부장으로 복귀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만두었다. 그의 손을 떠난 [메이플스토리]는 보다 큰물에서 새롭게 업그레이드 됐다. 넥슨은 게임 업데이트 및 서비스를 전담하는 ‘라이브팀’을 신설하고, [메이플스토리]를 본격적으로 키웠다.

부분유료화 모델과 ‘돈슨’의 추억

“위젯에서 메이플을 서비스 할 때는 부분유료 아이템을 안 넣겠다고 약속했었죠. 하지만 메이플이 넥슨에 넘어가고 난 다음부터 바로 적용됐더군요. 그런 점에서 빠져나갈 구멍은 생긴 것 같습니다(웃음).” - 넥슨 김진만 디렉터 인터뷰 중

넥슨은 [메이플스토리]의 새로운 수익모델을 구상했다. MMORPG에 부분유료화 모델을 적용한 것이다. 부분유료화는 [퀴즈퀴즈]부터 선보였지만, 시장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메이플스토리]부터다. 이전까지 MMORPG의 수익모델은 정액제가 기본이었다. [리니지]나 [뮤 온라인] 같은 인기 MMORPG들은 대부분 정액제를 고수했다. 돈을 거둬들이기가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액제 모델은 레드오션이 되고 말았다.

2008년 업데이트 된 ‘시그너스 기사단’. 이때부터 MMORPG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게임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정액제로 살아남는 타이틀은 손에 꼽힐 정도. 넥슨은 캐주얼게임에 어울렸던 부분유료 모델을 MMORPG에 적용했다. 다른 게임사들은 제품을 만들고 수익모델을 생각했는데, 넥슨은 수익모델을 염두에 두고 제품을 만든 것이다. 그야말로 발상의 전환이다.

[메이플스토리]의 부분유료화 적용은 ‘신의 한수’였다. 기본 무료기 때문에 누구나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였다. 필요하면 캐시 아이템을 구입해 장착하면 된다. 특히 주머니사정이 어려운 청소년들은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하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부분유료화는 이용자의 소비욕구를 자극했다. 유저들은 옷, 장신구, 신발 등 다양한 유료 아이템을 구입해 캐릭터를 꾸몄다. 아이템 샵에 신상 아이템이 나오면 어김없이 지갑을 열었다. 명품 아이템을 모으고 싶어 하는 인간의 수집욕을 교묘히 자극했다. 말이 무료게임이지 웬만한 정액제 게임보다 더 많은 돈을 들여야 했다.

[메이플스토리]가 성공하자 [바람의 나라], [어둠의 전설], [마비노기] 등 넥슨 간판게임들이 차례로 정액제를 폐지하고 부분유료화로 돌아섰다. [마비노기]의 부분유료화 이후 유저수가 5배 이상 증가했다.

메이플스토리 아이템샵. 간혹 과도한 확율형 캐시아이템을 판매해 비난을 사기도 했다.

부분유료화에 대해 유저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지나친 아이템 과열경쟁과 이에 따른 부작용이 지적됐다. ‘미라클 큐브’나 ‘프로텍트 쉴드’ 같은 확율형 뽑기 아이템들은 사행심을 부추겼다. 회사의 매출은 증가했지만, 반대로 유저들의 반감과 ‘돈슨’이라는 불명예에 시달리는 반작용을 낳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수익모델에만 집중하다보니, 콘텐츠에 소홀했다는 점이다. 7년 동안 서비스 되면서 게임은 매너리즘에 빠졌다. 게임 속 콘텐츠는 더 이상 유저들에게 신선함을 주지 못했다. 신상 아이템은 쏟아지는데 정작 게임은 철지난 막노동 플레이에 머물렀다. 유저들도 반복된 레벨업노동에 지쳐가고 있었다. 접속자는 점점 떨어졌고, 시대에 뒤쳐진 낡은 게임이 되어 가고 있었다. 또 한 번의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변화 아니면 죽음! 빅뱅의 승부수

“게임의 나이가 들면서 한번쯤은 큰 변화, 큰 결정의 시기가 반드시 찾아옵니다. 그러한 선택의 시점에 서면 어중간한 태도보다는 좀 더 공격적으로 부딪혀야 하죠.” - 넥슨 오한별 실장(NDC11 강연내용 중. 인벤)

넥슨은 본격적으로 게임에 매스를 들이댔다. 새로운 게임이 되기 위한 대수술의 진행됐다. 재활(?)을 담당한 오한별 실장은 유저들의 의견을 꼼꼼히 분석했다. 준비과정은 마치 군사작전과도 같았다. 유저들의 반응에 대비해 ‘플랜A’, ‘플랜B’ 등 다양한 시나리오를 준비했다.

가장 큰 문제는 게임과 유저가 따로 놀고 있다는 것. 주요 콘텐츠가 밀집된 영역은 70레벨 이후인데, 실제 유저들의 레벨은 50 이하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리 콘텐츠를 쏟아내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보니 유저들의 불만도 극에 달했다.

메이플스토리의 전성기를 가져온 빅뱅 업데이트. 제목 그대로 완벽한 변신에 성공했다.

일단 쉽게 레벨을 올리도록 하는 게 급선무였다. 최대 레벨을 100으로 올리고, 스킬, 몬스터, 맵, 스킨, 해상도 추가 등 전면적인 개편에 들어갔다. 서버폭주를 대비해 추가서버도 준비했다. 이때부터 [메이플스토리]는 단순한 캐주얼게임이 아닌, 정교한 RPG의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다.

관건은 유저들이 이질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면서 새로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 혹시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콘텐츠를 3개로 나누어 순차적으로 업데이트 했다. 업데이트 시기도 학생들이 게임하기 편한 여름방학 기간을 골랐다.

2010년 7월, 빅뱅 업데이트가 진행됐다. 첫 번째 업데이트 ‘변화의 시작’, ‘레지스탕스’, ‘새로운 지원군’ 순으로 차례로 선보였다. 유저들은 완전히 달라진 게임에 열광했다. 역대 최대 동시접속자 40만 명을 넘겼다. 넥슨은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같은 해 겨울 카오스 업데이트를 선보여 최고 동접자 38만 명을 돌파했다. 2011년 레전드 업데이트에선 마의 고지 60만 명을 넘겼다.

그런데도 서버에 전혀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만큼 준비를 철저히 한 것이다. 동시접속자 10만 명도 ‘대박’인 국내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60만 명은 경이적인 기록이다. 수익모델을 개선하고 콘텐츠 변화에 성공하면서, [메이플스토리]는 서비스 9년 만에 자타공인 ‘국민게임’으로 등극했다. 이때가 최고의 전성기였다.

서비스 10주년 기념으로 출시된 레전드 업데이트에선 사상 최대 동접자 60만 명을 넘겼다.

60만 제국의 그늘

“보안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었음에도 이런 지경에 이른 것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 넥슨 서민 전대표(메이플스토리 개인정보 유출사태 기자간담회 중)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아마 한국 온라인게임 중 [메이플스토리]만큼 굴곡 많은 게임은 드물 것이다. 2011년, 빅뱅 업데이트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린지 1년 후, 넥슨 서민 대표를 비롯해 임원진 전원이 유저들에게 사과하는 일이 벌어졌다. [메이플스토리] 개인정보 유출사태가 터진 것이다. 해킹으로 인해 게임 내 1,322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이다. 서버에 이상 징후를 포착했지만, 이미 개인정보가 유출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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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스토리 개인정보 유출사태. 당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넥슨은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리고, 사장 및 임원진이 모두 나와 고개 숙여 사과했다. <사진출처: 게임동아>

넥슨은 사건 발생 하루 만에 해당 사실을 고지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천 만 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한 대형 게임이 해킹에 무방비로 노출됐다는 사실 만으로도 충격이었다. 넥슨 사장 및 임원들이 모두 나와 유저들에게 사과하고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 보안을 강화하기 위해 자체 보안 관제센터를 구축했다. 비밀번호 변경 이벤트를 펼치는 등 유저들이 스스로 보안에 신경 쓰도록 장치를 마련했다. [메이플스토리] 개인정보 유출사태는 시장에 교훈을 주었다. 이때부터 온라인게임에서 보안이 가장 큰 이슈로 떠올랐다.

유저들의 신뢰는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레전드 이후 동시접속자 60만 명을 찍더니, 해킹사태를 맞고 다시 기울었다. 지난 10년간, 수익모델을 개선하고 콘텐츠를 혁신하는 등 온갖 노력을 했지만, ‘아차’ 방심하는 사이에 곤두박질 친 것이다. 온라인게임 서비스는 그만큼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하지만 위기는 또 다른 기회라고 했던가. 넥슨은 또 한 번의 승부수를 띄웠던. 후속작 [메이플스토리2]를 공개한 것이다. 넥슨은 2013년부터 [메이플스토리2] 개발을 착수했다. 이승찬 대표와 함께 전작을 만들었던 김진만 디렉터가 지휘봉을 맡았다. ‘프로젝트 MS’라는 팀에서 극비리에 제작됐다.

새로운 민주주의 실험, 메이플스토리2

“새롭고 재미있는 콘텐츠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저희 팀은 외부의 터치가 없습니다.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내놓고, 모든 결정을 유저들과 함께하죠. 그렇게 놀면서 만든 게임이 메이플스토리2 입니다.” - 넥슨 김진만 디렉터

[메이플스토리2]는 전작이 전혀 연상되지 않을 정도로 새로운 게임이다. 보통 후속작은 전작의 골격을 따라가기 마련인데, 이것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메이플2는 개발 프로세스부터 파격적이다. 게임의 아이디어를 유저의 투표로 결정하는 민주적 개발방식을 처음 도입했다.

먼저 개발, 사업, 운영 파트의 모든 직원들이 직급고하를 막론하고 평등하게 아이디어를 낸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들은 논의과정을 거쳐 몇 개로 추려진다. 이렇게 나온 몇몇 아이디어를 실제 반영하기도 하고, 유저 투표를 통해 의견을 받기도 한다.

메이플스토리2 제작을 총괄하는 김진만 디렉터. 이승찬 본부장과 함께 퀴즈퀴즈와 메이플스토리를 만든 그는 혁신적인 개발방식을 도입해 메이플2를 만들었다.

캐릭터 헤어스타일부터 게임의 큰 방향까지, 총 5번의 투표에서 20만 명 이상의 유저들이 참여했다. 이는 온라인게임 개발에 파격적인 실험이다. 먼저 개발자들 간의 서열구조를 파괴했다. 보통 온라인게임은 핵심 개발자가 몇 명이 게임을 기획하고 나머지 직원은 따르는 구조였다. 그냥 시키는 대로 하면 그만이다. 개발자와 유저간의 관계도 변화시켰다. 이제껏 게임들은 개발자가 유저들에게 일방적으로 콘텐츠를 제공하는 구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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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스토리2는 전작과는 달리 풀 3D 그래픽으로 개발됐다. 블록으로 구성된 맵을 이용해 게임세상을 다양하게 확장시킬 수 있다.

개발자는 공급자, 유저는 소비자 역할만 했다. 그러다 보니 같은 게임을 놓고 개발자와 유저간의 동상이몽이 심했다. 개발자는 콘텐츠 만들어내느라 바쁜데, 유저들은 즐길 만한 콘텐츠가 없다고 아우성이다. [메이플스토리2]는 개발과정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결정들을 투표에 맡기면서, 개발자와 유저가 함께 만들어간다는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개발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사소한 변수들, 심지어 운영자들의 소소한 일상까지 유저들에게 공개하면서 소통하는 게임의 이미지를 심었다.

메이플스토리2 TV광고. 인기 연예인 대신 유저들의 캐릭터를 광고모델로 쓴 독특한 발상으로 인기를 끌었다.

콘텐츠, 유저들에게 내려놓다

“밸런스에 영향을 미치는 아이템은 넣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이야기 했습니다. 개발자와 유저들 모두 돈으로 강해지는 게임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부정적이었죠. 그렇다고 유료화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닙니다. 과도한 캐시아이템은 지양할 생각입니다.” - 넥슨 김진만 디렉터

게임은 개방적인 구조로 설계됐다. 그래픽부터 독특하다. 게임의 배경은 레고처럼 여러 개의 블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블록 조합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의 게임세상이 만들어질 수 있다. 유저들은 레고 블록을 맞추듯 게임 내에 자신만의 독특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

실제로 게임 개발을 총괄한 김진만 디렉터는 어릴 적부터 레고 마니아라고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나왔던 정형화된 콘텐츠가 아닌 레고처럼 다양한 개성과 아이디어가 녹아있는 게임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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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2는 유저들에게 많은 부분을 넘겼다. 캐릭터의 옷을 직접 디자인해 입힐 수 있고, 자신의 집을 짓고 정원을 가꿀 수 있다.

유저 참여 콘텐츠들도 많다. 예를 들어 캐릭터의 외형을 직접 꾸미고, 캐릭터의 의상을 만들어서 입혀볼 수도 있다. 이밖에 마을 내 벽보에 자신이 그린 그림을 공유할 수 있고, 캐릭터가 살 집을 직접 건축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유저들의 다양한 개성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전작의 시행착오도 개선했다. 1편에서 악명을 떨쳤던 사행성 캐시아이템들은 과감히 삭제했다. 단순히 아이템에 의지하기보다, 유저들이 함께 놀 수 있는 소통의 공간을 제공하는 게 게임의 목표다. 이렇듯 민주적 개발과정과 개방형 콘텐츠는 [메이플스토리] 시리즈가 게임계에 제시한 또 다른 실험이다.

오리를 타고 이동하는 캐릭터. 기발한 반전의 아이디어는 2편에도 여전하다.

메이플의 실험에서 ‘답’을 찾다

필자는 [메이플스토리]를 ‘좋은 게임’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깊이 있는 스토리도 없고, 게임 시스템도 엉성하다. 지독한 노가다와 캐시아이템은 유저들을 질리게 한다. 그러나 돌아서면 왠지 끌리는 매력이 있다. 외모보다 내면이 매력적인 이성을 대하는 것 같다.

사실 [메이플스토리] 만큼 굴곡진 게임은 없을 것이다. ‘캐주얼한 RPG를 만들어보자’는 발상으로 시작된 이 게임은 한국 온라인게임 시장에 수많은 답을 제시했다. 3D 시대에 2D의 매력을 내세워 성공했다. 온라인게임 시장구조를 바꾸었고, 비즈니스 모델을 혁신했다. 공격적인 업데이트로 서비스 10년 만에 최고 전성기를 누렸고, 해킹사태를 맞아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람으로 따지면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본 경우다.

그런데도 이 노련한 게임은 지치지도 않는 모양이다. 메이플스토리는 또 다른 도전 위에 서있다. 다들 온라인게임의 위기라고 말하는 이때, [메이플스토리2]를 내놓은 것이다. 이번에는 개발자의 권위마저 내려놓고, 유저와 함께 온라인게임 세상을 만들려고 손을 내밀었다.

유저들은 [메이플스토리2]에서 새로운 혁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개발자가 일방적으로 만든 세상이 아닌,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게임세상. 결과가 어쨌든, 이번에도 한국 온라인게임들은 메이플의 실험에서 답을 찾을 것이다. 위기의 온라인게임 시장을 돌파하는 방법을 말이다. 그것이 메이플스토리의 매력이다.

참고자료

· 한국게임의 역사, 북코리아
· 크리에이티브 어택, 넥슨
· 디스이즈게임, 넥슨 이승찬 본부장 인터뷰 중 ‘평생 게임만 만들고 살기’
· 인벤, 넥슨 오한별 실장 인터뷰 중 ‘메이플 빅뱅, 이렇게 성공했다’
· 게임어바웃, 김진만 디렉터 인터뷰

발행일

발행일 : 2015. 06. 29.

출처

제공처 정보

  • 이덕규 게임어바웃 편집장

    게임잡지 피시파워진 취재부 기자를 시작으로 게임메카 팀장, 베타뉴스 편집장을 거쳐 현재 게임어바웃 편집장으로 근무. 게임을 단순한 재미가 아닌, 문화적 가치를 살리고자 하는데 관심이 많다. 고전부터 최신 게임까지 게임의 역사를 집필하면서 게임을 통해 사회를 보는 창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메일: gabriel@gameabou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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