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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 2049> 리플리컨트와 함께하는 미래

존재의 경계가 무너지고 그다음 세상을 기약하는 풍경을 담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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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 2049>는 그 주체가 데커드에서 K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인간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가치에 관한 혼란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201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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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 2049>에 관해서는 이 지면에 자세히 설명하는 게 좀 곤란한 상황이다. 이 영화의 주인공 K(라이언 고슬링)의 정체와 <블레이드 러너>(1982)의 주인공이었던 데커드(해리슨 포드)와의 관계가 일종의 반전 역할을 하는 까닭이다. 알고 보는 것보다 모르고 관람하는 것이 영화의 재미는 물론 생각지 못한 이야기 전개의 충격이 주는 사고(思考)의 확장을 만끽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블레이드 러너 2049>의 드라마투르기는 충분히 이해해 줄 만하다. <블레이드 러너>가 이 장르의 기념비적인 작품인 것과 별개로 지금도 회자되는 이유 중 하나는 데커드가 인간인지, 복제 인간 ‘리플리컨트’인지 극 중에서 모호하게 처리한 이야기의 방식이 주효한 결과다. 정체성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것이지만, 깨닫는 것이기도 하다. 이를 핵심으로 삼는 <블레이드 러너>의 속편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정체성의 문제를 반전(反轉])의 도구로 가져간 건 당연한 순서다.

 

전편의 2018년에서 31년이 훌쩍 지난 2049년의 LA는 겉으로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건물 외부가 광고 패널 역할을 하는 고층빌딩이 숲을 이뤄 지상으로 내려가는 빛이 차단된 도시 구조하며, 다양한 인간군상과 더불어 리플리컨트가 섞인 인구 구성은 여전한 듯하다. 결정적으로 변한 게 있다면 리플리컨트의 자각 능력이다.

 

<블레이드 러너>의 계급 피라미드 최상위를 차지하던 타이렐 사(社)는 자사 제조의 리플리컨트가 반란을 일으킨 결과로 파산했다. 그 뒤를 이어 월레스 사가 급부상하면서 타이렐의 실패를 반면교사 삼아 인간에 절대 복종하는 리플리컨트를 제조, 도시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렇더라도 통제에서 벗어난 리플리컨트, 특히 유효 기간이 없는 타이렐의 리플리컨트가 정체를 숨긴 채 여전히 암약 중이다. LA 경찰국 소속의 K는 그런 리플리컨트를 찾아 좋은 말로 ‘퇴직’, 실제로는 ‘제거’하는 블레이드 러너다. 오늘도 불량(?) 리플리컨트를 색출하느라 여념이 없는 K는 새퍼 모튼(데이브 바티스타)을 처리하던 중 자신과 관련한 엄청난 단서 하나를 발견하고 혼란에 빠진다.  

 

그 비밀이 무엇이냐, 밝히고 싶어 자판 위의 손가락이 근질근질한데, 그러지 않기로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연출한 드뇌 빌뇌브 감독과 약속했다. 언론시사회 전 드뇌 빌뇌브는 타이핑 편지로 ‘여러분들이 이 영화의 스토리나 디테일에 대해 알지 못한 채 관람하셨듯 관객들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도 이에 동의하는 차원에서 이미 비밀 유지 동의서에 사인을 한 상태라 자세한 언급은 피하기로 하고, 다만 정체성 문제에 대한 변화한 세간의 인식이<블레이드 러너 2049>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라는 사실 정도만 두루뭉술하게 언급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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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이 연출한 <블레이드 러너>는 인간과 리플리컨트를 구별하는 문제가 꽤 중요하게 보였다. 실은 반란군의 두목격인 리플리컨트 로이 베티(룻거 하우어)의 서사와 타이렐이 리플리컨트를 제조해 자본주의 구조의 최정점에 군림하는 이미지 사이에서 더 인간적인 가치를 지닌 쪽은 어디인지 유의미한 문제 제기가 돋보였던 작품이다. 그사이에 꼈던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는 극 중반까지만 해도 인간 무리에 섞여 견고한 자본주의 신분 피라미드 질서를 무너뜨리는 리플리컨트를 구별하는 임무가 중요했다. 뒤로 갈수록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자신의 처지와 반란으로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리플리컨트의 행동이 비교되면서 인간의 진짜/ 가짜 유무가 아니라 인간 가치의 진실/ 거짓 쪽을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혼란스러워했다.

 

<블레이드 러너 2049>는 그 주체가 데커드에서 K로 바뀐 것을 제외하면 인간이라면 응당 가져야 할 가치에 관한 혼란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블레이드 러너>와 비견할 만한 성취 혹은 이를 넘어선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면 전편에서처럼 정체성을 따져 묻는 상황의 차원이 달라졌다는 데 있다. 이게 <블레이드 러너 2049>가 지닌 ‘오리지널리티’이면서 소위 말하는 ‘진화’라는 것일 텐데 드니 빌뇌브는 그와 같은 성취를 위해 정체성을 바라보는 변화한 태도를 요구한다. 

 

<블레이드 러너>가 개봉했던 1982년 당시 리플리컨트, 즉 복제 인간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라는 것은 극 중 2019년의 배경처럼 아직은 먼 미래에 맞닥뜨릴 막연한 그 무엇이었다. 그 이후 수많은 영화가 복제 인간 혹은 인공지능 A.I.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를 선보였고 실제 생활에서도 이들의 존재는 더는 현실과 동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일찍이 데커드가 직면했던, 인간의 형태를 한 ‘인간’과 그의 가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단계를 넘어 다른 차원을 생각해야 할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나는 <블레이드 러너 2049>가 그 시기에 관해 다루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존재 인정 여부에서 관계로의 인식의 전환이라고 할까. 영화를 비롯해 미디어가 흔히 인공지능에 관해서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내용의 하나가 그들의 존재로 위협받게 된 인간 삶의 살풍경이다. 일자리를 뺏기고 급기야 노예로 전락해 인공지능에 지배받는 디스토피아의 미래 말이다.

 

이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친 진단과 전망이고 그보다는 좀 더 생산적으로 이들의 존재를 인정했다면 이제 인간과 어떻게 어울릴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인간의 가족으로, 친구로, 이웃으로, 연인으로 존재하는 인공지능과 함께 하는 미래는 어쩌면 우리 생각보다 더 빨리 와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풍경을 대중이 인식하기에 앞서 제시하는 게 영화와 같은 예술의 의무이기도 하다. <블레이드 러너 2049>가 묘사하는 미래의 전경이 반드시 오리라고 장담할 수 없어도 가능성 중 하나라고 본다면 꽤 유의미한 질문을 던지는 셈이다.

 

<블레이드 러너 2049><블레이드 러너>와 다르게 계급 피라미드 구조를 형상화한 어두운 도시 외에 또 하나의 주요 공간이 등장한다. 공식 스틸컷에도 나와 있는 바, 자신과 관련 있는 비밀을 풀기 위해 데커드를 찾아가는 K가 서 있는 황량한 풍경은 어딘가 모르게 삭막한 서부를 연상시킨다. 뿌연 모래바람이 주인인 양 구는 불모지는 불안한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가꿔나가야 할 개척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 위에 자연을 뿌리내리고 도시 문명을 건설할 주체는 오직 인간뿐 만은 아닐 테다. 존재의 경계가 무너지고 그다음 세상을 기약하는 풍경을 담은 작품이 <블레이드 러너 2049>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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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허남웅(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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