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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11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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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황룡사지에 서 있던 목탑. 고려시대 몽골 침입 때 불에 소실돼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삼국 중 가장 힘이 약했던 신라. 하지만 결국 삼국통일을 이룬 신라. 열세를 극복하고 대역전극의 서사를 지닌 신라인데도 사람들은 신라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아쉬움을 떨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 그 때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고구려 때 갖고 있던 그 광활한 영토를 잃어버린 건 왠지 신라 탓인 것만 같다. 황룡사 9층 목탑은 ‘신라’에 대한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불가능해 보였던 꿈을 이룬 신라, 그 꿈을 이뤄낸 선덕여왕의 집념. 그 위대한 여정이 황룡사 9층 목탑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고려시대 몽골 침입 때 불에 타 모습은 사라졌지만, 지금까지 남아 있는 황룡사지 터의 ‘심초석’들은 엄청났던 황룡사 9층 목탑의 규모를 짐작케 한다. 가운데 심초석을 중심으로 해서 64개의 거대한 받침석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다. 저...

  • 들고양이 한 마리가 병아리를 훔쳐 달아나자 그 고양이를 잡으려는 어미닭과 부부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그린 긍재 김득신의 작품. 크기 22.4 x 27cm이며 현재 간송미술관에서 소장 중이다. 김득신 필 풍속도 화첩 (金得臣 筆 風俗圖 畵帖) 중 대표작, 보물. 야묘도추(野猫盜雛) | 보물 | 김득신(金得臣) | 22.4 x 27cm | 간송미술관 소장 김득신만의 개성을 보여주는 작품, <야묘도추> 병아리를 훔쳐 가는 길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평화롭던 공간이 한순간에 야단스럽게 변했다. 병아리를 입에 물고 도망가는 바쁜 와중에도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는 고양이, 병아리를 구하기 위해 고양이에게로 달려드는 어미닭과 부부, 이들의 모습은 마치 눈앞에서 일어나는 상황 같은 생생함을 느끼게 한다. <야묘도추>는 김득신만의 개성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김득신은 그만의 예리한 관찰력을 통해 영상을 보는 것 같은 생생함을 그림 속에 표현해 냈다. 그림 속 어미닭의 화가 난 빨간 눈과 잔뜩...

  • 태조 왕건을 형상화 한 동상으로 현재 북한의 ‘평양 조선중앙역사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태조 왕건 동상 상단부분 / 청동 / 평양 조선중앙역사박물관 전시 우리나라 역대 왕들 중에 어진이 남아 있는 왕은 있어도 동상이 남아 있는 왕은 없다. 하지만 동상이 남아 있는 왕이 딱 한 명 있다. 바로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 1992년. 왕건의 왕릉 주변 보수 공사가 진행됐다. 그런데 포클레인 삽에 뭔가 딱딱한 물체가 걸렸다. 삽으로 그 물체를 끌어올리려 하는데 이게 어찌나 부피가 큰지 땅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그 공사를 하던 인부들이 모두 달라붙어 그 큰 물체를 끌어올렸는데, 놀랍게도 키가 140cm에 달하는 큰 동상이었다. 처음엔 북측에서도 이 동상의 정체를 잘 몰랐다. 그래서 ‘청동불상’이란 단순한 이름을 붙여 전시했다. 하지만 각종 사료를 검토하고, 이 동상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끝에 이 청동불상은 ‘왕건 동상’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세종실록엔 기록도 남아...

  • 국보로, 기생들의 검무 공연을 즐기는 양반들의 모습을 그린 혜원 신윤복의 작품. 크기 28.2 x 35.6cm. 간송미술관 소장 중이다. 쌍검대무(雙劍對舞) I 신윤복 (申潤福) I 18세기 I 국보 I 28.2 x 35.6cm I 간송미술관 소장 <쌍검대무>는 조선 후기 양반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신윤복은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과장도, 생략도 없이 그 당시의 복장과 춤, 음악을 그대로 <쌍검대무> 속에 담아냈다. 검무를 추는 기녀들에게서는 묘한 긴장감이 느껴지고, 검무를 보는 관객들에게선 각기 다른 심리가 느껴지는 흥미로운 작품이다. 조선 후기 기녀들의 춤, 검무 조선 시대 검무는 기녀들의 기본 종목이자 필수 종목이었다. 심지어 검무를 잘 추는 기녀들은 지방에서 한양으로 스카우트되어 가기도 했다. 기녀들의 검무는 무예의 한 종류로 높이 평가되었다. <쌍검대무> 속 검무 동작은 조선 후기의 무예 교본인 <무예도보통지>의 ‘쌍검총도’라는 동작과 흡사하다. 조선 후기, 검무의...

  • 소나무 아래 용맹한 호랑이 모습을 그린 조선시대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의 작품 사라진 한반도의 호랑이 예로부터 한반도는 ‘호랑이의 나라’로 불렸다. 호랑이가 등장하는 민화나 설화가 다수 존재하며 이 땅의 가장 오래된 그림, 반구대 암각화에도 호랑이가 새겨져 있다. 또한 호랑이는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져 1988년 서울 올림픽의 마스코트 ‘호돌이’,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의 마스코트 ‘수호랑’ 등 친근한 모습으로 존재하기도 했다.  과거 한반도에는 호랑이가 많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야생에 존재하는 호랑이는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아직 우리에게 한반도의 호랑이를 느낄 기회가 남아 있다. 바로 김홍도의 <송하맹호도>를 통해서다. 김홍도, <송하맹호도>, 90.4 x 43.8 cm, 호암미술관 살아있는 호랑이를 체험할 수 있는 그림, <송하맹호도> <송하맹호도>는 소나무 아래 호랑이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은 호랑이 털의 촉감이...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의 월정사에 소장되어 있는 고려대장경의 판본. 1976년 6월 17일 강원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865년(고종 2) 국보로 지정되어 있는 해인사 고려대장경의 경판을 인쇄한 2부 가운데 하나로 도내 유일본이다. 원래 상원사에 보관되어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왔다. 평범한 사람들이 새긴 간절함, 기적이 되다. 팔만대장경 [八萬大藏經] / 세로 24cm, 가로 84.6cm, 두께 3.2cm /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 월정사(月精寺) 소재 고려인들의 간절한 염원이 모여 탄생한 걸작 몽골의 침략을 받아 쑥대밭이 되어버린 13세기 고려에 ‘몽골군이 고려백성을 잡아다 사람 기름을 만든다’는 잔인한 소문 하나가 떠돌기 시작한다. 포악한 몽골군과 맞서기 위해 싸울 수 있는 고려인들은 모두 전쟁터로 나간 상황이었다. 남아있는 사람들의 마음도 편하지만은 않았다. 몽골군이 언제 쳐들어올까 불안했고, 전쟁터에 나가있는 가족들의 안위가 걱정돼 애가 탔을 것이다. 그때...

  • 1796년 정조가 그의 아버지의 묘를 수원으로 옮기면서 축조한 성으로 거중기, 녹로 등 신기재를 사용해 만들어졌다. 화성은 군사적 방어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어 동양 성곽의 백미로 평가 받는다.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었다. 220년 전, 조선시대에 나타난 신의 직장?!. 수원 화성 [水原 華城] │ 사적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사진제공:문화재청) 우리 역사상 가장 독보적인 건축물, 수원 화성 18세기 르네상스 건축의 정점이자 한국 디자인 역사상 불가사의한 돌연변이, 동서양을 망라한 근대 군사 건축물의 모범으로 불리는 건축물이 있다. 세계의 찬사를 한 몸에 받았고, 국내외 건축학자들이 입이 마르고 닳도록 칭송하는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성. 바로 지난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 화성이다. 조선 제22대 임금인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이장하며 건설한 성으로...

  • 김준근은 19세기 말 개항장에서 활동했던 풍속화가이다. 의식주와 관련된 일상생활부터, 관혼상제, 민속놀이, 종교행사 등, 조선 후기의 일상을 매우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당대 조선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인기를 끌어 세계 각지로 그의 그림이 퍼져나갔다. 현재 전 세계 19곳의 유수 박물관에 풍속화 1500여 점이 소장되어 있다. 제목이 붙은 조선시대 풍속화. 갓을 쓴 남자가 천장에 매달린 북을 치고 있다. 북 뒤에 차려진 상 위에는 숟가락이 꽂힌 밥그릇이 놓여 있고, 여자는 남자의 행동을 주시하는 중이다. 조선시대로 짐작되는 풍속화인데 정확히 무엇을 그렸는지 그림만 봐서는 알기 어렵다. 그런데 그림의 위쪽을 보면 제목이 쓰여 있다. <판수경닉고> 판수(判數), 즉 점복(占卜)을 보는 소경이 경을 외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는 뜻이다. 이 그림을 보면 조선시대에는 점을 보는 맹인이 있었고, 판수는 북과 꽹과리를 두들기며 신령과 만났다는 사실이 매우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제목이 붙은...

  • 파사석탑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경상남도 김해시 구산동에 있는 가야시대의 석탑이다.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이 인도에서 올 때 배에 실어 왔다는 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석질로 이루어져 있다.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190번길 1(구산동 119-3) 파사석탑 [婆娑石塔] | 경남문화재자료 > 하늘이 맺어준 인연 수 천 년 전,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던 소녀가 있었다. 어느 날 부모님 꿈에 하늘의 상제가 나타나 배를 타고 동쪽 끝까지 올라가 닿는 나라에 딸의 배필이 있다고 알려준다. 그 말을 들은 딸은 부모의 말에 따라 배를 타고 고국을 떠났다. 하지만 거친 파도가 문제였다. 몇 번이나 항해에 실패하자 소녀의 아버지는 파도를 잠재우는 신령스러운 탑 ‘파사석탑’을 배에 실었다. 진풍탑인 파사석탑의 보호 아래, 소녀는 무사히 가락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 이야기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나오는 설화이다. 소녀의 이름은 허황옥. 가야 김수로왕의 황후로 알려진 인물이다....

  • 아내가 먼저 세상을 뜬 남편을 그리워하며 쓴 한글편지. 원이엄마 편지, 58.5x34cm, 안동대학교 박물관 소장 1998년 4월, 안동시 정상동 택지 조성을 위해 묘를 이장하던 중 발굴된 고성 이씨 이응태의 묘에서 출토됐다. 400여 년 동안 썩지 않은 시신 그리고 한 장의 편지 1998년, 안동시 정상동의 택지조성 과정 중에 무연고 분묘가 발견된다. 주인 없는 무덤이었기에 발굴 대상으로 선정되었으나, 발굴을 위해 무덤의 외관 뚜껑을 연 순간 ‘철성이씨鐵城李氏‘라고 쓰인 명정이 나왔다. 따라서 묘는 다시 유연고 분묘가 되었고, 무덤의 주인을 찾기 위한 작업이 시작됐다. 그리고 무덤 속 시신의 가슴 위에서 무덤의 주인을 알려주는 한 통의 편지가 발견된다. 바로 <원이엄마 편지>다. 이응태의 시신은 미라 상태였다. 머리카락, 수염까지 썩지 않고 그대로 남아있었을 정도로 보존이 잘 되어 있었다. 시신의 주변에서 총 18통이 편지가 발견되었는데 시간이 흘러 대부분의 편지는 형태를...

  • 7세기 초 백제의 금동향로. 전체높이 64cm, 지름 20cm이다. 1993년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서 출토되었으며 당시 백제금동용봉봉래산향로 또는 부여 능산리 출토 백제금동대향로라고 불렀으나 문화재청에서 백제금동대향로로 등록하면서 정식명칭이 되었다. 잃어버린 왕국, 백제의 비밀을 풀다. 백제금동대향로 [百濟金銅大香爐] / 전체높이 64cm, 지름 20cm / 7세기 초 /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우연히 발견된 동아시아 최대 크기의 향로, 백제금동대향로 동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가장 아름다운 향로, 세계 각국 유수한 박물관과 미술관의 수많은 초청에도 단 한 번도 응하지 않은 귀한 몸, 돈으로도 그 가치를 매길 수 없어 해외 반출 금지 문화재로 '모시고' 있는 보물 중의 보물 바로 국보 백제금동대향로 [百濟金銅大香爐] 이다. 무려 1,400년이나 땅에 묻혀 있었다는 사실이 무색하리 만큼 화려한 자태를 뽐내는 이 국가대표 유물은 아주 우연히 발견된다. 1993년 겨울, 부여 능산리 고분의...

  • 삼국 시대에 만들어진 불상 중 하나이다. 반가부좌 자세를 한 미륵보살을 구리에 금을 입혀 표현한 불상이기 때문에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이라고 부른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93.5cm이다. 시공을 초월한 절대자의 위로.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金銅彌勒菩薩半跏思惟像] / 국보 / 높이 93.5cm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불상, 반가사유상 세상에 대한 깊은 통찰을 담았다. 세계적 수준의 세련미, 십 만금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진품.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아름다우며 강력한 고요함을 풍기고 있다. 끝없는 서방 언론의 찬사를 받는 보물이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도 방 하나를 독차지하고 있는 보물. 큐레이터가 해설하는 ‘큐레이터와의 대화’ 시간에 관람객이 가장 많이 몰리고, 심지어 힘들 때마다 보러 온다는 열성 팬까지 생겨났다는 보물의 정체는 바로 국보 금동반가사유상이다. 오른쪽 다리를 왼쪽 무릎 위에...

  • <동궐도>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부감 구도로 그린 그림으로, 순조시절인 1826년에서 1830년 사이에 도화서 화원들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16권의 책으로 나뉘어져 있으나 하나로 합하면 가로 576cm, 세로 273cm의 상당한 대형 그림이 된다.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고려대학교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다.

  • 높이 약 42cm, 밑지름 약 16.5cm. 입지름 약 6cm 크기의 고려청자로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으며 간송미술관에서 소장중이다. 42개의 원 안팎으로 69마리 학과 구름이 상감기법으로 새겨져 있으며, 청자를 감상하다보면 마치 천 마리의 학이 오르내리는 것과 같다고 해서 천학매병이라고도 불린다.

  • <미륵사지 사리장엄구>는 지난 2009년 미륵사지 석탑 해체 과정 중 발견된 유물 일괄로, 사리 외호, 내호, 사리병의 삼중구조로 되어있다. 가장 바깥쪽의 외호는 가로 7.7cm, 높이 13cm의 금동으로 되어있으며, 내호는 순금으로, 사리병은 유리로 만들어져 있다. 현재 국립미륵사지유물전시관이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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