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질문 펠레가 있기 전부터 브라질은 축구 강...
dang**** 조회수 848 작성일2020.10.12
펠레가 있기 전부터 브라질은 축구 강국 이였는지 궁금합니다.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1 개 답변
1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Der Spreewald
절대신
2019 스포츠, 레저 분야 지식인 남성 건설/건축업 #재난지도사 #건축기술자 #조류애조가 새, 조류 3위, 재난재해 1위, 월드컵, 국가대항전 4위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아닙니다. 축구 왕국 브라질의 시작은 미약했습니다.

다만, 펠레 부상으로 1962년 칠레월드컵에 출전을 못했는데도 우승컵을 안았습니다.

아래 긴 글 참조바랍니다.

남미에서도 최강자가 아니었고,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에 밀리기 십상이었습니다. 때문에 첫 월드컵인 ‘1930 우루과이 월드컵’ 때는 약체로 분류됐습니다.

첫 월드컵에서 유고슬라비아에 1 : 2로 패했고, 탈락이 결정된 상황에서 치른 볼리비아와의 경기에서는 4 : 0으로 이겼다. ‘1934 이탈리아 월드컵’ 첫 경기에서는 스페인에 1 : 3으로 져서 바로 귀국해야 했는데, 이탈리아까지 가는 길이 너무도 멀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브라질 대표팀은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갔다. ‘1938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남미 국가들이 이동 거리가 길다는 이유로 대회에 불참한 가운데 3위를 차지했다. 이후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브라질은 10년 넘게 세계 축구계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전쟁이 끝난 후, 브라질은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1950 브라질 월드컵’을 맞았다. 브라질은 이 대회 우승 후보로 거론됐다. 1년 전에 자신들의 홈에서 벌어진 ‘1949 코파 아메리카’에서 우승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적이 있었다. 우승 가능성이 높아진 다른 이유도 있었다.

아르헨티나가 브라질의 코파 아메리카와 월드컵 개최를 문제 삼아 두 대회 모두 불참했고, 월드컵 초대 우승팀인 우루과이는 전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강호 이탈리아는 수페르가 참사(1949년 5월 4일 이탈리아의 토리노 FC팀 선수들과 스태프들이 탄 비행기가 추락한 사고)때문에 대부분의 선수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대회에 나섰다.

브라질은 결승 라운드에서 스웨덴과 스페인을 각각 7 : 1, 6 : 1로 누르고 우루과이와의 최종전에 나섰다. 모두 브라질의 우승을 점쳤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를 배반했다. 브라질은 자신들의 상징과도 같은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우루과이에 1 : 2로 역전패당하고 만다. 이 패배는 브라질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고, 훗날 마라카낭의 비극으로 불렸다. 브라질 축구는 이 사건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흰색 유니폼을 입었던 브라질이 노란색 상의와 파란색 하의를 입기 시작한 것도 이 사건 이후였다. 브라질은 ‘1954 스위스 월드컵’ 준결승전에서도 난투극 끝에 헝가리에 2 : 4로 패해 탈락했다.

‘1958 스웨덴 월드컵’을 앞두고 나타난 한 소년은 브라질 축구와 세계 축구 역사를 바꿔놓았다. 17세 소년의 이름은 펠레. 브라질에는 자갈루, 디디, 가린샤 등의 스타들도 있었다. 브라질은 초반에 명성에 못 미치는 성적을 냈다. 하지만 펠레가 경기에 나서기 시작한 8강전부터는 달랐다. 펠레는 웨일스와의 8강전에서 결승골을 넣었고, 프랑스와의 준결승전에서는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역대 월드컵 최연소 해트트릭이었다. 펠레는 결승전에서도 2골을 넣으면서 브라질의 사상 첫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브라질은 펠레가 부상으로 대회 도중 경기에 나설 수 없게 된 ‘1962 칠레 월드컵’에서도 우승했다. 가린샤가 펠레의 공백을 메우면서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가린샤는 소아마비를 앓아 양쪽 다리 길이가 달랐고, 지능도 10세 소년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운 드리블을 구사해 상대 선수들을 괴롭혔다. 칠레 월드컵은 가린샤의 월드컵이었다.

펠레와 가린샤를 보유한 브라질은 ‘1966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예상 밖으로 빨리 탈락했다. 당시에는 거친 태클이 난무했고 선수를 교체할 수도 없었는데, 펠레가 불가리아와의 경기에서 거친 태클을 받고 부상을 당한 것이다. 이때부터 브라질은 휘청거렸다. 포르투갈과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부상당한 펠레를 투입하고도 패배하고 말았다.

펠레는 대회가 끝난 뒤 선수 생활에 회의를 느껴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브라질은 ‘1970 멕시코 월드컵’에서 다시 한 번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은퇴를 번복하고 나선 펠레와 감독이 된 자갈루가 우승을 합작했다. 준결승에서 우루과이를 3 : 1로 이겼고, 결승에서는 이탈리아를 4 : 1로 눌렀다. 월드컵을 세 번 우승한 브라질은 쥘리메컵을 영구 소장할 수 있는 영예를 처음으로 누렸다.

1971년 펠레가 은퇴하면서 브라질은 쇠퇴기를 맞았다.

2020.10.12.

  • 채택

    질문자가 채택한 답변입니다.

이 답변의 추가 Q&A
질문자와 답변자가 추가로 묻고 답하며 지식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