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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황보씨의 유래는?
soon**** 조회수 5,207 작성일2003.01.11
샤크라의 황보도 본명이 황보혜정이라는데..

또 어디서 황보래용이라는 이름도 들어본적 잇거든여?

도대체 황보씨의 유래는 뭔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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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이름이 황보 진 권입니다.

지난번에 황보氏중에 누가 한번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는데...

답변은 아래와 같습니다.

요즘 티비에 샤크라 때문에 황보라는 성이 많이 알려졌죠?

제국의 아침이라는 대하드라마에도 나오듯이 황보라는 성은 신라말기

중국에서 귀화한 성입니다

(그리고 얼마전에 태조왕건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죠?)

고려의 태조가 고려를 건국할 당시 호족출신으로 저의 시조가 되시는 황보능장

할아버지께서 금강장군(金剛將軍)으로 공을 세워 영천부원군에 봉해짐으로써

영천을 본으로 삼았습니다. (참고로 영천에는 금강성이라는 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영천에 육군 3사관학교가 있고, 그곳에 시조 할아버지의 묘가 있습니다.(군부대에서 관리)

음력 10월 첫째주에 묘제가 있습니다.

영천황보씨는 고려 및 조선 전기에 많은 명신을 배출했고, 드라마에서 보듯이

잘 알려지지 않은 왕비가 많았습니다. (고려시대)

그리고 여러분이 알고계신 김종서 장군과 함께 육진을 개척한 황보인(仁) 할아버지는

자 사겸(四兼) ·춘경(春卿). 호 지봉(芝峰). 시호 충정(忠定). 1414년(태종 14) 친시문과(親試文科)에 급제, 세종 때 장령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병조판서가 되었으며, 1440년 평안 ·함길도 체찰사(體察使)가 된 후 10년 동안 절제사 김종서(金宗瑞)와 함께 육진(六鎭)을 개척하였습니다.

(국사책엔 김종서 밖에 거론되지 않고 있죠...)

그리고 최근에 알려진 사람을 또 들자면 무궁화 위성 1/2호를 관할 하신분도

미국 NASA에서 오신 황보 한씨라고 한국 통신본부장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활약했던 황보 관씨도 황보가 성입니다.

현재 전국에 10000명 안팎입니다.


http://www.poori.net<=== 고교윤리 상식이나 조상에 대해 알고 싶으면

한번 찾아가 봄이 좋을 듯 합니다.

특히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중에 윤리쪽에 도움이 필요하시면 가보시길...

(운영자 : 황보근영 <=== 경기도 일산 주엽고 윤리교사)

2003.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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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보씨는 중국 안정(安定)에서 시작된 성씨로서, 신라 말에 당나라로부터 건너온 황보경(皇甫鏡)이 우리나라 황보씨의 시원을 이루었다.

《영천황보씨세보(永川皇甫氏世譜)》에 의하면 황보경의 증손 능장(能長)이 고려 태조 때 공을 세워 영천부원군(永川府院君)에 봉해졌으므로, 관향을 영천으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황보씨는 1985년 인구 및 주택 센서스에서 전국에 2,105가구 8,541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엠파스에서 퍼왔슴다

2003.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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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 황보씨 (永川 皇甫氏)



1> 시조 : 황보 경[皇甫 鏡]

2> 본관 및 시조의 유래

영천은 경상북도 남동쪽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원래 고대 골벌국이었던 것을,
신라 초기에 영천군 일원은 절야화군, 신녕지방은 사정화군이라 하였다.
경덕왕 이후에는 임고군, 면백현, 이지현 등으로 여러차례 이름이 바뀌었다.
1414년 영천군으로 개칭되고 1497년(연산군 3) 신녕현이 영천군에 귀속되었다.
그후 1981년에는 영천읍이 시로 분리승격하였다.

황보씨는 중국 안정에서 계출된 성씨로서 신라 말에 당나라로 부터 귀화한 황보 경(皇甫 鏡)이
우리나라 황보씨의 시원을 이룬 것으로 전한다.
[영천황보씨세보]에 의하면 황보 경(皇甫 鏡)의 증손 능장(能長)이 고려 태조때 금강성 장군으로 나라에 공을세워 영천부원군에 봉해졌으므로, 관향을 영천으로 하게 되었다고 한다.

영천 황보씨는 특히 고려조와 조선 초기에 걸쳐 많은 명신을 배출하여 세도가문으로서의
지위를 굳혔는데, 그중 대표적인 인물로는 고려 명종때 <강좌칠현(江左七賢)>의 한 사람으로
명성을 떨친 항(抗)과 대사성을 지낸 탁(倬)이 유명했으며, 정종 때 참지정사·평장사를 지낸
영(穎)과 고종때 좌복야, 문하시랑 평장사에 이른 기(琦) 등이 뛰어난 인물이다.

한편 유의(兪義)는 고려 현종이 즉위하는데 공헌했으며, 1031년(현종 22) 중추사를 거쳐
이부상서와 참지정사를 지냈고 덕종때는 문하평장사에 올랐다.
공민왕 때 홍건적의 난을 토평하고 일등공신에 오른 임은 1388년 요동정벌때 부원수로서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가담하여 일등공신에 오르고 삼도 도체찰사가 되었으며,
조선이 개국된 후 지중추원사에 올랐다.

임의 아들 인(仁)은 세종때 장령과 병조판서를 거쳐 평안, 함길도 체찰사가 되어 10년 동안
김종서 장군과 함께 육진을 개척하였다.
그는 태종, 세종, 문종 3대에 걸쳐 도승지를 비롯하여 관찰사, 좌찬성,우,좌의정 등 주요관직을 두루 역임하여 조정의 중신이 되었으며, 1452년 영의정이 되어 어린 단종을 보필하다가
계유정난 때 김종서, 정분 등과 함께 수양대군에게 살해당했다.

이때 그의 두아들 참판을 지낸 석(錫), 직장(直長)을 지낸 흠(欽)과 손자 원(源), 문(汶)등
다섯 사람이 화를 당하니 영천 황보씨에게 큰 타격이 되었다. 그후로 나머지 일족들은 뿔뿔히
흩어지거나 붙잡혀 섬이나 먼 변방의 관리나 천민이 되기도 하였으며, 성을 바꾸며 숨어
살기도 하였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영천 황보씨는 남한에 총 2,071가구,
8,376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3> 집성촌

경북 영천군 화북면 구전동
경북 영일군 구룡포읍 성동리, 구룡포리

황해도 황주군 인교면 인제리

2003.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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