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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경기도체육회 이원성 회장

경기도체육회 내부 혁신... 관계기관과의 협력 강화해 나갈 것

지난해 초, 경기도체육회는 참 떠들썩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방자치단체장이 맡고 있던 지방체육회장을 민간인으로 바꾸는, 민선 회장 선거가 역대 처음으로 실시됐기 때문이다. 흔히 처음이 어렵지, 두 번째 부턴 쉽다는 얘기가 있다. 그 만큼 첫 번째 단추를 끼는 일이 녹록하지 않다는 의미일 것이다.

 

경기도체육회 또한 여러가지 일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게다가 코로나19 상황까지 겹치면서 뭐 하나 제대로 해보지 못한 듯해 아쉬움은 더욱 크기만 했다.

 

 

하지만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일. 신축년 새해에는 보다 역동적인 모습으로 거듭나고 새롭게 발돋움하는 경기도체육회의 비상을 기대해본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원성 경기도체육회 회장이 있다.

 

2021년 새해, 첫 인터뷰에서 만난 이 회장은 한마디로 뚝심이 깊은 사람이었다. 올곧은 원칙과 굳은 신념, 소신이나 가치관이 매우 뚜렷하다는 것이 그냥 눈에 보일 정도였다.

 

이 회장의 이러한 인성은 한 일화에서 잘 드러난다. 그러니까 그의 나이 28세쯤, 그가 군대를 제대하고 실업팀에 복귀했지만 일방적으로 해산 통보를 받으면서 생전 해보지도 않았던 건축 현장에 가서 일을 했을 때의 일이다.

 

갈 곳도 마땅치 않은 그가 선택한 행선지가 대전 대덕연구단지에서 주택 공사를 하고 있는 선배가 마련해준 현장 대리 일이었던 것이다.

 

"군대에 다녀와서 복직(삼보증권)을 했는데, 대우하고 합병이 되면서 운동부가 없어진 거예요. 갈 데가 없었죠. 밤에 짐을 싸서 무작정 내려갔어요. 뭐라도 해야 했으니까요. 그때 어르신들이 그러더라고요. '이봐 젊은이, 여긴 마지막에 오는 거지'라고요. 근데 저는 생각이 달랐어요. 일단 열심히 배워보자. 아무 것도 모르지만 열심히 하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거야 했죠."

 

잠자리부터 모든 게 열악했지만 2년여를 그렇게 열심히 일했다. 그렇지만 시련은 또다시 닥쳤다.

 

 

선배가 부도를 내고 연락두절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 회장은 신뢰를 저버릴 수 없었다. 끝까지 공사를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책임감은 그를 그곳에 계속 머무르게 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공사를 하고 있으니, 공사 의뢰인이 자재도 사다주고 밀린 월급까지 챙겨주더란다. 그러던 어느날 그에게 잊지 못할 기회가 찾아온다.

 

"그분이 어느날 설계 도면을 하나 주는 거예요. 후배가 집을 짓는데 저보고 맡으라는 거였죠. '너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거다' 라면서요. 현장 대리에서 갑자기 회사 사장이 된 거예요. 당연히 너무 감사했죠. 그 감사한 마음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어요. 진짜 이 집을 나의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 생각하고 지어야겠다고요."

 

그의 결심은 우선 공사 현장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분야별 기술자들이 떠나 어수선한 자리는 밤새 말끔히 정리돼 있었고, 쓰레기 하나 없이 깨끗한 상태로 탈바꿈 돼 있었다.

 

공사를 하러 오는 기술자들은 물론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새 기술자들도 저마다 각자 사용한 자재들과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고, 그들만의 문화로 자리잡기에 이른다.

 

이러한 그의 노력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빛을 발한다. 입소문이 무섭다고, 그의 성실함이나 책임감을 인정한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건축을 의뢰하게 된 것이다. 갓 30이라는 나이에 주택 16채를 지으면서 그의 사업가로서의 인생이 본격적으로 출발된 셈이다.

 

숯불바베큐 프렌차이즈 사업을 하는 이 회장은 이런 말로도 유명하다. "A란 사람이 코리안바베큐로 1위를 한다면, 그 사람은 어떤 브랜드를 해도 1위를 한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재질이 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결국 고객들의 발길은 친절한데를 찾게 되고, 청결하고 깨끗한 업장을 찾는다는 얘기의 일부다. 특히 재료를 가지고 장난질치면 무조건 망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결국 기본을 충실히 지키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게 그의 소신이다.

 

 

경기도체육회를 이끄는 마음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 육상선수로 활동한 이 회장은 선수들의 고충을 누구보다 이해하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선수생활을 회상하며 “체육인들이 걱정없이 체육만 집중할 수 있는 무대가 적었다”고 말했다.

 

"제가 당시만 해도 고등학교에서 최고의 기록을 내고 있었는데, 작은 아버지는 그런 조카에게 그만 두라고 할 정도였어요. 비전이 없으니까 그랬던 거지요. 먹고 살기 힘들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선배들은 운동하다가 취업이 안되면 거의 대부분 택시기사를 했다고도 했다. 특별한 기술 없이 바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게 운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86년 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을 거치며 우리나라 스포츠계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태동의 시기에 육상선수 생활을 몸소 체험한, 한국 스포츠의 산증인과도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그 열정과 애정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오히려 커졌으면 커졌다고 해야 맞을 듯하다.

 

2008년 한국중·고육상경기연맹의 회장직을 맡으며 다시금 스포츠계로 돌아온 이 회장은 후배 선수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대선배들에겐 미안하지만 대회 기간 무상으로 제공해왔던 것들을 모두 없애고, 대신 장학 혜택을 늘리고 심판비를 올리는데 사용하도록 했다.  

 

경기인 출신으로는 처음 회장을 맡은 그였기에 이러한 행보는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부임 당시 27만 원이 든 통장을 받았던 것을, 물러날 때 4억7천만 원이 든 통장으로 만들어낸 사실은 가히 놀라울 수밖에 없다. 특히 연간 5천만 원이라는 거액을 기꺼이 내놓고도, 사적으로 쓰는 비용은 스스로 감당했다는 사실도 존경스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일면 그는 자나깨나 체육회 걱정만 하는 사람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특별히 강조한 건 소통이다. 해서 대회 현장은 절대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체육인들과 함께 호흡하며 스포츠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과시해 왔다. 

 

특히나 올해는 지금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민석 체육회장으로서 경기도민을 위한 체육과 스포츠를 큰 틀에서 더욱 활성화시킬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각오를 밝힌 그다. 그래서 도내 체육인으로서 존경받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한다.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체육의 가치를 제대로 전달해 종목단체 등을 대상으로 하는 재원 확보의 가교 역할을 하는데도 주력할 계획이다.

 

이 회장은 취약계층에 대한 생활체육 환경을 제공, 체육분야에서의 복지를 넓혀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뿐만 아니라 엘리트 체육의 건실함을 다져 국가대표를 다수 배출하고, 생활체육의 범위를 넓혀 선진적인 체육 모델을 구축해 건강한 경기도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전했다.

 

"경기도체육회는 경기도를 빛내고 있는 선수들과 경기도민들을 위한 단체입니다. 선수들에 대한 지원은 아끼지 않고, 직원들의 부정에는 엄중처벌을 하는 등 경기도체육회의 혁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다. 특히 경기도와 경기도의회, 관계 기관과 협력하기 위해 더욱더 노력하겠습니다. 신축년 새해, 심기일전해서 기대해 부응할 것을 다시 한 번 약속드립니다."

 

[ 경기신문 = 강경묵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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