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VER

질문 고려 안시성 전투 장군의 이름???
미국의치약대 전문가 조회수 16,075 작성일2018.09.16
프로필 사진

답변자님,

정보를 공유해 주세요.

1 개 답변
1번째 답변
프로필 사진
성공참됨
우주신
국어 어원, 어휘 7위, 신화, 전설 2위, 신조어, 유행어 3위 분야에서 활동
본인 입력 포함 정보

1. 고구려 안시성 전투 장군의 이름은?

    '양만춘'입니다.


    안시성 싸움(645년 6월~9월)은 645년(고구려 보장왕 4) 안시성에서 고구려와 당나라 군대 사이에 벌어졌던 치열한 싸움으로 고구려인들이 당나라의 침략을 맞아 커다란 타격을 입히고 결정적으로 승리를 거둔 전투입니다.   


     645년(고구려 보장왕 때)에, 당나라 당태종(이세민)이 지휘하는 군대가 대규모로 고구려를 침공하여, 3개월 가량 안시성을 포위 공격하였으나 끈질긴 고구려의 항전으로 당태종이 끝내는 실패하고 철군하면서 안시성 성주에게 '그를(양만춘) 높이 칭송하여 비단 100필을 남기고 떠났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당시 안시성 전투에서, 당태종은 안시성의 성주 양만춘의 화살을 맞아 한쪽 눈을 잃었다는 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바로 이에 대한 기록으로 고려말(후기)의 학자 '이색(1328-1396)'이 지은 시 <<정관음>>과, 고려 후기 학자인 '이곡(1298-1351)'의 문집(시나 문장을 엮은 책)인 <<가정집>>에서 '당태종이 그 당시 양만춘의 화살에 한쪽 눈을 잃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안시성 싸움(안시성 전투)에서 당태종은 안시성이 만만치 않음을 깨닫고, 60여 일 만에 총인원 50만 명을 동원하여 토산을 완성했습니다. 그러나 최총공격을 준비하는 순간에 토산 일부가 무너지며 성벽을 덮친 사고가 발생하자 이 기회를 이용, 고구려군은 도리어 토산을 점령하고 그것을 수비진지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안시성과 건안성을 남겨둔 채 최종목표인 평양성 공격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모험이었습니다. 더구나 요동지방에서는 이미 찬바람이 부는데도 동계작전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였으니, 결국 당 태종은 실패를 인정하고 9월 중순 철군명령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2. 그 당시 안시성의 성주가 '양만춘'이 맞는가?

    안시성의 성주에 대한 기록으로서,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송준길(1606-1672)'의 <<동춘당선생별집(同春堂先生別集)>>과 조선 후기 학자인 '박지원(1737-1805)'의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는 그 당시 안시성의 성주가 '양만춘'이라고 밝혀주고 있으며, 야사에서도 그 이름이 나옵니다.

2018.09.16.

  • 채택

    질문자가 채택한 답변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면 UP 눌러주세요!
UP이 많은 답변일수록 사용자들에게 더 많이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