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기업 사태의 재구성

오창민·이영경 기자

노조 파업권 무시… 직장폐쇄… “고임금” 거짓선전… 공권력

지난 18일 오후 6시. 자동차 엔진 부품업체 유성기업 아산공장에 사측이 고용한 용역업체 직원들이 갑자기 몰려와 정문을 가로막았다. 노사 쟁의 때 사용자가 노조에 취할 수 있는 최대 강경책인 ‘직장폐쇄’였다.

전날 주간연속 2교대제 협상이 결렬되자 노조는 쟁의행위 찬반투표에 돌입했고, 78%의 찬성률로 파업을 가결했다. 노조는 18일 낮 파업 돌입을 위한 간담회를 진행했다. 하지만 노조가 정식 파업 선언도 하기 전 사측의 직장폐쇄가 먼저 이뤄졌다.

사측은 용역업체 직원 30명을 투입해 야간조 노동자들의 공장 출입을 막았다. ‘노조의 불법행위로 인한 생산차질’을 이유로 노조원들에 대해서만 직장폐쇄를 하고 관리자 50여명이 공장을 돌렸다. 노조와 용역업체 직원들의 몸싸움이 벌어졌고 조합원들은 사측의 공격적 직장폐쇄를 비판하며 공장 안에 모여 집회를 열었다.

유성기업 사태의 재구성

사태는 갈수록 악화됐다. 19일 새벽 1시 공장 정문을 향해 걸어가던 김모씨(39) 등 노조원 2명이 의문의 교통사고로 중상을 당했다.

노조에 따르면 차량 운전자는 사측이 고용한 용역직원이었다. 이 용역직원은 라이트를 끈 상태에서 인도로 차를 몰아 김씨 등 2명 외에 11명을 연이어 치고 달렸다.

노조원들은 전면파업과 공장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같은 회사 소속인 영동공장 노동자들도 합세했다. 22일 사측은 유성기업 영동공장도 폐쇄했다.

지방 중소기업 공장 2곳의 노사분규는 다음날인 23일부터 한국 사회의 핫이슈로 부상했다.

이 업체가 만들어내던 1000원짜리 피스톤링 생산 중단으로 국내 자동차업계 조업이 중단될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고속질주하던 국내 자동차업계가 작은 엔진 부품 제조회사의 파업에 급제동이 걸렸다는 것이다. 유성기업의 파업이 계속될 경우 6월에는 20만~30만대 생산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업계 전망도 나왔다.

정부는 일방적으로 사측을 거들었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연봉) 7000만원 받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겠느냐”며 노조를 압박했다. 고용노동부도 “유성기업 노조가 생산시설을 점거하고 관리직 사원의 공장 출입을 원천봉쇄한 것은 명백한 불법”이라고 했다.

경찰은 사측이 업무방해 혐의 등으로 노조 집행부를 고소함에 따라 노조원 9명에 대한 체포에 나섰다. 현장배치 경찰력도 3개 중대에서 5개 중대 400여명으로 늘렸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23일 오후 헬기를 타고 아산으로 향해 유성기업 공장 상공에서 10여분간 머물며 상황을 점검했다. 불법 점거로 국내 완성차 업체의 생산차질이 빚어지고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는 만큼, 공권력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논리였다.

24일 공권력 투입설이 나오는 가운데 유성기업 노사가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나 당국을 등에 업은 사측은 무성의하게 나왔다. 협상이 결렬되자 기다렸다는 듯 경찰 2500명이 투입됐다. 노조원 500여명보다 5배나 많은 수였다.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당시 후보자)은 2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파업의 주체·목적은 노조법상 요건을 갖췄지만 공장시설을 점거해 정당한 행위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측의 직장폐쇄에 대해선 “법 요건에 정한 바에 따른 사후적·소극적 직장폐쇄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옹호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30일 정례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통해 이번 사태를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귀족노동자들의 파업으로 규정했다.

그는 “연봉 7000만원을 받는다는 근로자들이 불법파업을 벌이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평균 2000만원도 채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아직도 많다.이번 경우는 단순히 그 기업만의 파업이 아니라 전체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국민들을 불안하게 했다. 기업 한 곳의 파업으로 전체 산업을 뒤흔들려는 시도는 이젠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측의 직장폐쇄부터 이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기까지 10여일간 노조는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연봉 7000만원이 사실이 아니고, 노동자들의 파업권은 연봉과 무관하게 존중돼야 하며, 사측의 직장폐쇄가 공격적으로 이뤄져 불법성이 있으며, 배후에 현대차가 개입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지만 정부는 외면했다.

공권력 투입 후 1주일이 지난 31일 42명의 조합원이 복귀했고 나머지 450여 조합원은 회사 정문에서 200m 떨어진 비닐하우스에서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용역 경비가 모는 차량에 치인 13명 중 6명은 입원 치료 중이며, 일부는 중태에 빠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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