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주제분류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세계문학의 고전

마담 보바리

귀스타브 플로베르

작품을 읽고

귀스타브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를 일컬어 같은 해인 1857년에 출판된 보들레르의 [악의 꽃]과 함께 ‘현대’를 연 소설이라고 말할 때, 이는 단순한 문학적 수사가 아니다. 이 말은 그전의 소설이 2D 평면 화면이었다면, [마담 보바리]는 최초의 3D 입체 화면이라는 기술적 진보를 이끌어 냈다는 뜻이다.

이 기술적 진보의 토대는 두 가지다. 플로베르는 인물의 내부 공간을 발견했으며, 모든 걸 묘사할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시점 대신 한 시간에 한 공간에만 존재하는 제한된 시점을 사용했다. 이로써 당대 사람들은 마치 우리가 3D 안경을 쓰고 입체영화를 관람하듯이 엠마 보바리의 애정 행각을 손에 잡힐 듯 선명한 영상으로 읽을 수 있었던 것이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장면이다.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

그러고는 아찔해진 그녀는 온통 눈물에 젖은 채 긴 전율과 함께 얼굴을 가리면서 몸을 내맡겼다. 저녁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옆으로 비낀 햇빛이 나뭇가지 사이로 비쳐들어 그녀는 눈이 부셨다. 그녀 주위의 여기저기, 나뭇잎들 속에, 혹은 땅 위에, 마치 벌새 떼가 날아오르면서 깃털을 흩뿌려놓은 것처럼 빛의 반점들이 떨리고 있었다. 사방이 고요했다. 감미로운 그 무엇이 나무들에서 새어나오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하고 피가 몸속에서 젖의 강물처럼 순환하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때 아주 멀리, 숲 저 너머, 다른 언덕 위에서, 분간하기 어려운 긴 외침 소리가, 꼬리를 길게 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말없이 귀를 기울였다. 그 소리는 마치 무슨 음악처럼 그녀의 흥분한 신경의 마지막 진동에 한데 뒤섞였다. 로돌프는 이 사이에 여송연을 물고 두 개의 고삐 중 부러진 것을 주머니칼로 다듬고 있었다.

이 장면에서 처음에 엠마의 외부에 있던 소설 시점은 그녀가 로돌프에게 몸을 내맡기면서 엠마의 내부로 들어갔다가, 이윽고 모든 일이 끝난 뒤 다시 그녀의 외부로 빠져나온다. 소설 시점이 엠마의 내부에 머물면서 매우 주관적이고도 문학적으로 그녀의 심리를 서술하는 동안 독자들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을 스스로 상상해야만 한다.

일어나는 일을 그대로 묘사하는 소설에 비해서는 확실히 불친절하다. 하지만 이 불친절함 때문에 이 장면은 입체적으로 읽힌다. 독자들의 시점이 자연스럽게 엠마의 외부로 나가기 때문이다. 시점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그들이 그 장면을 생생하게 보게 만드는 플로베르의 서술 능력은 가히 그 시대의 스티븐 스필버그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다음 장면 역시 비슷하다. 이 경우에는 시점이 철저하게 외부에만 머문다. 눈 씻고 찾아봐야 외설적인 부분은 한 군데도 없건만, 이 장면 때문에 플로베르는 도덕과 풍속을 해쳤다는 이유로 기소까지 됐다.

마차는 다시 길을 되짚어 왔다. 그러자 이때부터는 목적도 방향도 없이 닥치는 대로 헤매고 다녔다. 그 마차의 모습은 생폴, 레스퀴르, 가르강 산, 라루우쥬 마르에서도 보였고 가이야르브와 광장에서도, 말라드르리 거리, 디낭드리 거리, 생 로멩, 생 마클루, 생니케즈 성당 앞에서도―세관 앞에서도―바스 비에이유 투르나 트롸 피프에서도, 모뉘망탈 공동묘지에서도 볼 수 있었다. (……) 대체 무슨 미치광이 같은 격정에 사로잡혔기에 이 손님들은 도무지 멈출 줄을 모른 채 내쳐 달리고만 싶어 하는 것인지 그로서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 그래서 그는 땀에 흠뻑 젖은 두 마리의 야윈 말을 한층 거칠게 채찍질하면서 마차가 흔들리든 말든 여기저기 무엇에 걸리든 말든 조금도 상관하지 않은 채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목마름과 피로와 근심으로 거의 울상이 되어 마차를 몰았다.

[마담 보바리]는 세계문학 코너에 꽂혀 있지만, 사실은 미성년자 독서 불가 등급이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공상에 젖어 스스로 파멸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성실한 남편과 착한 아이의 삶까지 망쳐 버리는 불륜녀가 등장하는 이야기여서가 아니다. 바로 그 이유로 많은 미성년자들이 이 소설에 도전하겠지만, 결국 그들은 이 소설이 지닌 가장 순수한 진수를 맛볼 수는 없으리라. 누군가 예술을 두고 아는 만큼 보고, 보는 만큼 사랑하게 된다고 말한 바 있는데 현대 소설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일도 그와 마찬가지다. 소설을 읽다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면, 혹시 자기가 샤를르 보바리처럼 책을 읽는 건 아닌지 의심해 볼 일이다. 예컨대 같은 오페라를 보러 간 샤를르 보바리와 엠마 보바리는 이런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저 귀족은 왜 여자를 괴롭히는 거지?” 하고 보바리가 물었다.
“그게 아녜요.” 하고 그녀는 대답했다. “그는 저 여자의 애인이에요.”

그리하여 [마담 보바리]가 이룬 최고의 문학적 성취는 엠마 보바리처럼 현대 소설의 스타일을 감상하고 그 속에 숨은 속뜻을 이해할 줄 아는 현대 독자를 탄생시킨 점이다. 로돌프와 함께 도망치기로 한 뒤, 보바리 부인에게 일어난 심리 변화를 외면 묘사로만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부분은 그들 현대 독자를 위한 최고의 선물이랄 수 있다.

그녀의 눈꺼풀은, 사랑에 빠진 나머지 눈동자가 꺼져 들어간 기나긴 시선을 위해서 일부러 새겨 놓은 것 같았고 한편 뜨거운 숨결로 인하여 그녀의 작은 콧구멍이 벌름거렸고 약간 거뭇한 솜털에 빛이 닿아 그늘진 두터운 입술 끝이 위로 당겼다. 목덜미를 덮은 머리칼은 마치 음탕한 분위기의 표현에 능란한 화가가 손질해 놓은 것 같았다. 그 머리털은 간통의 몸부림으로 매일같이 풀어졌다가 묵직한 다발을 이룬 채 되는 대로 아무렇게나 말려 있는 것이었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는 한층 더 나긋나긋한 억양을 띠었고 몸매도 그러했다. 그녀의 주름지는 옷자락이나 발을 굽히는 태도에서 마음을 파고드는 야릇한 그 무엇이 발산되고 있었다.

줄거리

샤를르 보바리는 루앙 근처의 작은 마을 용빌에서 개업한 시골 의사다. 그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고 돈푼이나 있어 보이는 과부와 결혼했다가 첫 부인이 죽자 엠마 루오라는 처녀와 재혼한다. 엠마는 농가의 딸로 루앙에 있는 기숙학교에서 얼마간 교육을 받은 여자다. 결혼에 대한 지극히 낭만적인 공상으로 가득 차 있던 엠마는 막상 결혼하자 남편이 매우 몰취미한 바보라고 느끼기 시작해, 점점 더 현실 생활에 대한 권태가 심해지고 좀 더 꿈 같은 다른 삶은 갈구하게 된다. 이런 사정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남편은 아내를 귀중히 여기고 사랑할 뿐이다. 따분한 남편과 권태로운 시골 생활 속에 갇힌 엠마는 차례로 다른 남자들의 정부가 된다. 그러면서 엠마의 생활은 무질서해지고 가산은 탕진된다. 엄청난 빚을 지고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며 몸을 바쳤던 정부들에게 버림 받은 엠마는 절망에 빠진 나머지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작가 소개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 1821.12.12~1880.5.8)

1821년 프랑스 북부 도시 루앙 에서 태어났다. 의사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고통과 질병, 죽음의 분위기를 체득하며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인다. 소년 시절 읽은 [ 돈키호테 ]에 매료되어 글쓰기에 관심을 갖고 몇몇 단편 소설들을 습작한다. 파리 법과대학에 등록하나 적성에 맞지 않아 낙제한다. 간질 로 추정되는 신경발작을 계기로 학업을 그만두고 루앙으로 돌아와 집필에 전념한다. [ 감정 교육 ]의 첫 원고와 [ 성 앙투안의 유혹 ]이 이즈음 쓰인다. 1856년 [마담 보바리]를 완성해 <르뷔 드 파리 Revue de Paris>에 연재한다. 그러나 작품의 몇몇 대목이 선정적이고 음란하다는 이유로 작가와 잡지 책임자, 인쇄업자가 기소당한다. 쥘 세나르의 명쾌한 변론으로 무죄 판결을 받는다. 이후 작가는 문학적 명성과 대중적 인기를 함께 얻으며 [ 살람보 ], [ 감정 교육 ], [순박한 마음 Un coeur simple] 등을 발표한다. 1880년 5월 미완의 작품 [ 부바르와 페퀴셰 ] 원고를 책상 위에 남긴 채 뇌일혈로 사망한다.

주요작품


통합검색 통합검색 결과 보기 관련링크 다른 작품 보기



'세계문학의 고전'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과 함께합니다.

관련이미지 2

보바리 부인의 모델이 된 것으로 알려진 그림

보바리 부인의 모델이 된 것으로 알려진 그림

이미지 갤러리

출처: 세계문학사 작은사전

1/2

위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출처사이트 게시자에게 있으며, 이를 무단 사용할 경우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발행일

발행일 : 2010. 08. 16.

출처

제공처 정보

  • 김연수 소설가, 시인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성균관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93년 [작가세계] 여름호에 시 ‘강화에 대하여’를 발표하고, 이듬해 장편소설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제3회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꾿빠이, 이상]으로 2001년 동서문학상을,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로 2003년 동인문학상을,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2005년 대산문학상을, 단편 ‘달로 간 코미디언’으로 2007년 황순원문학상을, 단편 ‘산책하는 이들의 다섯 가지 즐거움’으로 2009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 장편소설 [7번 국도], [원더 보이], [사랑이라니, 선영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밤은 노래한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소설집 [스무 살], [세계의 끝 여자친구], 산문집 [청춘의 문장들], [여행할 권리], [우리가 보낸 순간], [대책없이 해피엔딩](공저) 등이 있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외부 저작권자가 제공한 콘텐츠는 네이버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