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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년(현종1) 거란[契丹]이 침입하여 통주(通州)에서 크게 패하자, 정예군을 완항령(緩項嶺)에 매복시켜 거란군을 기습하여 그 기세를 꺾은 공으로 상장군이 되었다. 1014년(현종5) 중추원 일직원(日直員) 황보 유의(皇甫兪義)와 중추원사(中樞院使) 장연우(張延祐)가 조정에 건의하여 경군(京軍)의 영업전(永業田)을 빼앗아 녹봉의 부족을 충당하려 하자 무관들은 크게 불만을 품게 되었고, 상장군 최질(崔質)도 벼슬이 오르지 않은 불만이 있던 중이라, 김훈 ·박성(朴成) 등 여러 장수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들어가 황보 유의와 장연우 등을 포박하고 이들을 귀양보내게 하였다.
또, 무관으로 상참(常參:常任) 이상은 모두 문관을 겸할 수 있도록 윤허를 받는 한편, 어사대(御史臺)를 없애고 금오대(金吾臺)를 두었으며 삼사(三司)를 없애고 도정서(都正署)를 두었다. 이로부터 무관이 문관을 겸하여 정사를 함부로 하게 되자 국가의 기강이 문란하게 되었다. 이에 전 화주방어사(和州防禦使) 이자림(李子琳)이 왕에게 올린 계교에 따라 서경(西京) 장락궁(長樂宮)에서 잔치가 마련되고, 술에 취한 김훈은 다른 19명과 함께 주살(誅殺)되었다.
2008.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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