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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로빈후드에 대해 알려주세요
susi**** 조회수 8,848 작성일2006.02.08
로빈후드가 어떤일을 한사람인지,일생 등을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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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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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답변이 제대로 되었을련지)

 

1160∼1247년경의 인물이라고도 하고 헌팅던 백작 R.피츠스(또는 체스터 백작 랜들)의 별명이라는 설도 있으나 확증은 없다. 문학상으로는 14세기 후반 랭글랜드의 장편시 《농부 피어스의 환상》에 나타난 것이 가장 오래되었고, 스코틀랜드의 역사가(歷史家)인 윈턴의 《스코틀랜드 연대기》(1420)에서도 그 이름을 볼 수 있다. 14세기 초반부터 유명해져서 15세기 후반 이후 널리 서민의 사랑을 받아온 문학상의 인물이 되었다.

줄거리는 11세기 잉글랜드의 셔우드의 숲을 근거지로 하여 로빈후드가 리틀 존과 태크 수도사 등을 비롯한 의적들과 함께 포악한 관리와 욕심 많은 귀족이나 성직자들의 재산을 빼앗고 그들의 횡포를 응징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이야기이다. 아동문학에서는 18세기 영국의 행상인이 팔고 다닌 값싼 책이 최초인 듯하며, 그 이래 거듭 출판되었다.


로빈후드의 시대적 배경??

"로빈 후드"는 약 800년전, 제 3차 십자군 원정을 배경으로 한 영국의 사회상을 풍자한 작품.

제 3차 십자군 원정

12세기 후반, 이슬람쪽에서 위대한 장군 살라딘(Saladin)이 이집트와 시리아의 지배자가 되어(1174) 크게 위세를 떨치게 되었다. 살라딘은 수중의 전병력을 동원하여 예루살렘 왕국을 공격하여 하틴(Hattin) 전투에서 대승리를 거두고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1187) 예루살렘의 함락은 유럽에 큰 충격을 주어 영국왕 리차드 1세, 프랑스왕 필립 존엄왕, 독일황제 프리드리히 1세 등 당대의 대표적인 국왕들이 참가한 제3차 십자군이 조직되었다.(1189~1192) 그러나 영국과 프랑스왕의 대립으로 양국의 출발이 늦어지자 독일황제는 단독으로 먼저 출발하였으나 소아시아의 하천에서 익사하고 말았다. 1190년 여름, 리차드와 필립은 같이 출발하였으나, 두 국왕의 대립은 계속되고 리차드는 도중에 키프로스를 점령하는 등 딴 짓을 하였으나 다음 해에 시리아에서 힘을 합쳐 아크레(Acre)를 점령하였다(1191). 아크레의 점령 후 필립은 곧 귀국해 버렸고, 리차드만이 예루살렘으로 향하려고 했으나 무력함을 깨닫고 살라딘과 협상하여 순례자들의 자유로운 출입을 보장받고 돌아갔다.

로빈후드가 살았던 집??

로빈후드의 무대로 유명한 도시는 영국의 Nottingham.
주요 관광지는 시 서쪽에 있고, 시 북쪽 30km쯤에 로빈후드가 활약한 셔우드 숲이 있다.

Nottingham Castle
로빈후드이야기에서 영주가 살던 성의 배경이 된곳. 현재는 노팅엄을 소개하는 박물관 겸 미술관으로 공개되고 있다.

Tale of Robin Hood
노팅엄 역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있으며, 중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배경에 인형과 음악을 이용하여 로빈후드의 전설을 재현하고 있다.

Sherwood Forrest Center
소요 셔우드 숲 한쪽에 자리하여 로빈후드 관련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숲에는 로빈후드가 결혼식을 올렸다는 교회도 있다.

Newstead Abbey
셔우드 숲 변두리에 있는 바이런의 저택. 그림이나 조각, 친필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정원과 호수를 산책하는것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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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영국 발라드에 나오는 전설적 인물.

그 발라드 가운데 몇몇은 적어도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반역자였으며, 그에 관한 이야기에 나오는 여러 놀라운 사건을 통해 그와 그의 동료들이 관리를 죽이거나 약탈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노획물을 나누어주는 것을 보여준다. 초기 시들의 내용을 보면 사건은 노팅엄이 아닌 요크셔 남부지역에서 일어나는 것이 분명하지만, 가장 빈번히 등장하는 적(敵)은 중앙정부의 지방관인 노팅엄 지역의 주장관이다. 또다른 발라드에서는 부유한 교직(敎職) 지주들도 적으로 나온다. 로빈 후드는 여자, 가난한 사람, 천민을 공손히 대했다. 정부에 대한 반발은 주로 사냥권 제한 때문에 일어났다. 특히 초기 발라드에는 중세 생활의 불가피한 부분이었던 잔인성이 잘 드러나 있다.

이 전설을 쓴 중세작가들이 이미 그의 존재에 대한 유일한 증빙자료가 발라드뿐임을 명백히 했는데도 실재 인물이었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다. 현대의 유력한 견해는 18세기 고고학자 리처드 스터켈리가 만든 족보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가 리처드 1세 때 사람이라는 것이다. 또는 좀더 진지한 견해에 의하면, 로빈 후드는 1265년 패배한 시몽 드 몽포르의 상속권을 박탈당한 추종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도 한다.

실제의 로빈 후드에 대한 담시들은 1381년 농노반란의 시초가 된 남작들의 반란과 농부들의 불만이 겹친 격동의 시대에 영국 북부지방 민중의 열망을 시로 표현한 것이다. 아서 왕이 귀족의 영웅이었다면 로빈 후드는 민중의 영웅이었다.

가장 잘 알려진 로빈 후드 발라드의 대부분은 중세 이후에 나왔지만, 그 핵심적인 내용은 중세에까지 소급될 수 있는 것으로, 〈로빈 후드와 수도사 Robin Hood and the Monk〉·〈로빈 후드와 기스본의 가이 Robin Hood and Guy of Gisborne〉·〈로빈 후드와 옹기장이 Robin Hood and the Potter〉·〈로빈 후드의 소(小)무훈시 Lytyll Geste of Robin Hode〉 등이 그에 해당한다.

16세기 이후로는 로빈 후드가 몰락한 귀족이라는 의견이 나와 전설의 본질적 성격이 왜곡되었다. 이 새로운 얘기를 기꺼이 받아들인 극작가들은 이야기에 낭만적 호소력을 더하기는 했으나 날카로운 사회비판을 없애버리고 말았다. 그의 반려자로 마리안이 등장하는 중세 이후의 시들에서 생명력과 시적 가치의 대부분이 사라진 것은 로빈 후드 이야기가 나온 본래의 사회적 요구를 상실한 결과이다.

200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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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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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훗이야기는 왜 필요하신지 모르겠지만..적어드릴게요

용맹스런 사자왕 리차드가 십자군 전쟁에 나간 사이, 교활한 존 왕자가 왕위를 차지한다. 지독한 마마보이 존 왕자는 간사한 히스 경을 오른팔로 삼아 백성들로부터 무리하게 세금을 걷어들였기때문에 원성이 자자했다. 선량하고 힘없는 백성들에게 유일한 희망은 로빈 훗이었다. 셔우드 숲속에 사는 의적 로빈 훗과 그의 부하 리틀 존은 부자들의 금을 훔쳐다가 몰래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곤 했다. 어느날,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돈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존 왕자가 탄 황실 마차가 근처를 지나는 것이었다. 집시 점쟁이 여인으로 분장한 로빈과 리틀 존은 한껏 왕자를 치켜올려주며 정신을 빼놓고는 반지와 황금, 의복 등을 모두 빼앗아 달아났다. 수치심과 분노에 치를 떤 존 왕자는 홧김에 백성들에게 더 높은 세금을 매기고, 로빈 훗을 잡기위한 덫으로 무술 대회를 개최한다. 더욱이, 로빈의 옛 연인 마리안의 키스를 부상으로 내걸어서 로빈을 끌어들였다. 로빈 훗과 리틀 존도 무술 대회가 함정인줄 알고 있었지만, 마리안을 잊지 못하는 로빈은 위험을 무릅쓰고 출전할 것을 고집한다.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로빈은 황새로 변장을 한 다음 대회에 참가하고, 리틀 존은 공작인 척하면서 왕자의 옆자리에 앉았다.

 놀라운 활솜씨를 보이며 승승장구하는 황새에게 왕자는 슬슬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그러다가 그가 마침내 호위대장 노팅검마저 꺽고 우승을 차지하자, 존 왕자는 황새가 로빈 훗임을 확신하고 그를 체포한다. 마리안이 놓아달라고 호소해도 소용없었다. 그제서야 가면을 벗어던진 리틀 존은 로빈 훗을 구하기 위해 존 왕자를 위협한다. 그러나, 몰래 리틀 존의 뒤로 다가온 호위대장이 다시 리틀 존을 위협하고, 궁궐 안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왕자의 군대와 로빈 훗의 무리 사이에 쫓고 쫓기는 대소동이 벌어지고, 마리안이 모시고 있던 클럭 공주도 한 몫하여 로빈과 친구들은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 이번엔 마리안과 클럭 공주도 함께였다. 다 잡았던 로빈 훗을 놓친대다가 자신을 조롱하는 노래까지 떠돌자, 약이 오를대로 오른 존 왕자는 이제 세금을 4배로 올리고 세금을 내지 못한 농부들은 모두 감옥에 가두었다. 그 중에는 로빈을 도와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주던 턱 신부님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직도 로빈 훗을 포기하지 못한 존은 그를 유인하기위해 새로운 함정을 판다. 선량한 턱 신부를 교수형에 처하기로 한 것이다. 장님으로 변장하여 성안의 동정을 살피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된 로빈 훗과 리틀 존은 신부님을 구하기 위해 깊은 밤을 틈타서 몰래 성으로 숨어든다. 호위대장에게서 열쇠를 훔쳐서 감옥 안의 모든 백성들을 풀어준 것은 물론, 존 왕자의 침실에 들어가서 쌓아놓은 모든 금은 보화도 훔쳤다.

 거의 성을 빠져나올 무렵, 아뿔사, 꼬마 토끼가 한 마리가 뒤로 쳐졌다. 곧 로빈 훗이 달려간 덕분에 꼬마 토끼는 목숨을 건졌지만, 로빈은 성안에 홀로 남아서 군사들의 화살을 피해야 했다. 성에 불이 붙고, 위로, 위로, 피하여 달아나던 로빈은 마지막 수단으로 성의 둘레에 파여있던 연못에 뛰어든다. 군사들의 화살은 그곳에까지 날아왔고, 마침내 화살이 관통한 로빈 훗의 모자가 수면위로 떠오르자, 존 왕자와 히스 경은 쾌재를 부른다. 하지만, 그것은 왕자의 군대를 따돌리기 위한 로빈의 속임수였을 뿐, 로빈은 갈대로 숨을 쉬며 친구들이 기다리는 저편 기슭으로 올라와서 멍청한 왕자를 놀려준다. 그리고 얼마 후, 용맹한 사자왕 리차드가 드디어 십자군 전쟁에서 돌아온다. 교활한 왕자 존과 히스 경은 감옥으로 보내지고, 아리따운 마리안과 로빈 훗은 성당에서 행복한 결혼식을 올린다.

2008.01.03.

  • 출처

    pw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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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l****
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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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서 보는게 가장 정확합니다

200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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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n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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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후드의 본명은 한틴튼의 백작 로버트 피츠스이며 (책에서 읽은것)  셔우드 숲에서 동지를 모으며 활약 하다가 최후의 활을 쏘고 죽는다 홍길동쳐럼 활약하는 거죠

2008.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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