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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로켓맨에 대해서좀......
정보가 없는 사용자 조회수 5,580 작성일2003.08.01
삼진을 잘잡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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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
프로야구, 야구 기술, 규칙 16위, 야구 선수, 감독 23위 분야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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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ger Clemens


사진을 누르시면 프로필과 성적을 보실 수 있습니다.

2003년 8월 1일 현재까지 통산 성적..

303승 158패 방어율 3.17

탈삼진 4053

올해 은퇴 예정.. 현역 선수중 명예의 전당 가입 1순위 선수..

주요구질 포심(최고 구속 100마일), 슬라이더, 스플리터(최고 구속 92마일)


제가 쓴 칼럼 글입니다..

제목 : The Greatest Pitcher Roger Clemens 2003년 01월 02일

난 그의 투구를 보았다. 불같은 강속구와 그에 동반되는 SF볼 그리고 끝까지 한 타자에게
(물론 TV로 보았다.--;;)
직구만을 고집하는 그의 승부근성까지, 그리고 투구시 피니시 동작에서의 그의

오른발을 지면과 수평이 되도록 드는 그의 특유의 우아한 투구모습까지 난 그의 투구폼과

그의 공, 그리고 그의 승부근성에 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를 처음 본것이 토론토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하던 97년 경이었을 것이다. 사실 그때에는 MLB에대한 정보를 접하는 일이

쉬운것이 아니었기에, 누구인지도 몰랐다. 아는 선수들이라고는 양키즈의 몇몇 선수들과

다저스의 선수들 그리고 몇몇 스타플레이어가 전부였다. 화려한 타자들의 모습에 비해

투수의 자료들은 구하기가 힘들었으나, 유독 나의 관심을 끝 두 투수가 있었으니

그들의 이름은 그랙 매덕스와 로저 클레멘스이다. 서로 상반되는 투구 스타일이지만,

야구팬들의 사랑을 한몸으로 받고있는 대표적인 살아있는 HOF의 멤버인 두 우완 투수에게

난 모든 야구에 대한 마음을 빼앗겼고, 대부분의 속물들과 같이 매덕스의 아기자기한 투구

모습은 단지 경외와 호기심의 대상이었을 뿐, 로저 클레멘스의 투구는 그야말로 느려터진

한국야구의 투수들에 비견하면 그야말로 나에겐 센세이션 이었다. 사실 매덕스의 투구 스피드만

보면 우리 나라 투수들과 별반 다를바 없지 않은가?

다시한번 언급하지만 그의 투구 피니시 동작은 그 어느 투수의 그것보다 훨씬 우아하고 아름답

다. 사진을 첨부하려면 전체에 태그를 다 달아야 하기에 귀찮아 하지는 않지만,

유심히 살펴볼 기회가 있으면 살펴보기 바란다. 다른 우투수(좌투수의 투구모습은 근본적으로

약간 다르다)의 투구시 피니시 동작(특히 오른다리의 처리를..)을 말이다.

뭐, 그게 좋아서 뭐하겠냐만은 왜 사랑을 하면 그의 곰보까지 이뻐보인다고 하지 않는가?
(사실 이 말에 대해선 겪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

1. NEWYORK Yankees and Roger Clemens

2002년 舊(구)해의 마지막날 한국의 팬들은 뉴욕 양키즈와 로저 크레멘스(이하 로켓이라 칭함)가

좀 복잡한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접할 수가 있었다. 악마의 제국(evil's empire)이란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양키즈는 넘쳐나는 선발투수 한명을 또 잡았으며,

로켓은 초유의 연봉 10년분할 지급이란 타이틀과 함께 한해 더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왜 양키는 로켓을 선택한 것이며, 로켓은 왜 양키즈를 선택한

것일까? 거두절미하고 로켓은 현재 293승과 3909개의 탈삼진으로 은퇴후 5년째가 되는 해쯤에

거의 100%의 가능성으로 HOF에 입성을 할것이다. 그의 이뤄놓은 화려한 성적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으며,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그 어떤 투수의 기록에도 전혀 손색이 없고 어떤 선수들

보다는 오히려 더 뛰어난 성적을 올린 투수이다. 그런 그가 왜 공식석상에서 난 양키즈의 유니

폼을 입고 HOF에 들어갈 것이라다란 말을 하고 다녔을까? 그가 84년에 대뷔한 이래

단 세팀이 그를 소유(?)할 수 있었고, 그 중 가장 오랜기간을 차지하는 것이 전통의 명가중

하나인 보스턴 레드삭스이다. 데뷔는 물론 13년이나 보삭스에서 뛰면서 그는 3번의 사이영상과

1번의 리그MVP(1986년 24승 4패 2.48)를 차지했으며, 수많은 타이틀을 차지했다. 하지만 결정적

으로 보삭스는 그에게 WS의 반지를 선물로 주지 못하고, 결국은 토론토로 그를 떠나버리게

만들었다. 단 2년동안의 토론토에서의 생활에서 그는 진정 리그를 지배하는 투수의 모습이

무엇인지 ML의 팬들에게 보여주었었다. 97년과 98년 초유의 2년연속 트리플 크라운은 물론

당연히 사이영상도 그의 것이었다. 그러나, 토론토와의 FA 3년 계약을 다 채우지 못하고,

현재의 양키즈의 뚱뚱이 할아범 D.웰스+@패키지로 양키로 트레이드 된다.

하지만, 99년 시즌부터 양지에서의 그의 모습은 과거의 리그를 지배하는 투수가 더이상

아니었다. 어거지로(?) 2001년 20승과 3.51의 방어율로 사이영상을 타기는 했지만, 모든면에서

다른 경쟁자들을 크게 압도하지는 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그가 왜 굳이 올해까지가

선수 생활의 마지막으로 생각되는 해에 양키즈를 선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는 어쩌면 간단하다. 양키즈이기 때문이다. 24차례 월드 시리즈 우승과 일일히

열거하기도 힘든 스타들, 그리고 미국야구의 상징인 뉴욕 양키즈이기 때문인것이다.

그도 그 수많은 베이브 루스, 루 게릭, 요기베라 등의 양키즈 아니 미국의 스타들과

동등한 위치로 올라서기 위해서 이다. 그는 항상 양키스타디움에서 등판하기전 하는 세레모니가

있다. 바로, HOF 멤버의 흉상이 모셔져있는 외야 우측펜스 뒤, 특히 베이브 루스의 흉상

앞에서 성호를 그리고 등판을 한다. 그 모습을 볼때 난 저 선수는 절대로 양키를 떠날 선수가

아니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은퇴를 한다면 모를까 말이다.

그리고 양키로써도 85년 명예의 전당 멤버인 Phil Niekro의 300승 이후의 두번째의

300승 투수를 양키즈의 선수로 만들수 있기 때문이다. Phil Niekro도 HOF의 멤버이긴 하지만

양키 유니폼을 입고 HOF에 입성했는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대로도 HOF의 자격이 되는 로켓이 자신의 팀에서 또 300승과 4000K를 선물한다면

팀으로써도 더할나위 없는 명예이기 때문이다.


2. The Greatest Picher Roger clemens

이 위대한 투수도 소위 말하는 소시적이란게 있었다. 그도 드래프트에 의해 픽되었으며,

마이너에서 눈물젖은 햄버거를 먹었다. 그러나, 그의 재능이 그 기간을 짧게 해줬을 뿐이다.

1983년 보삭스는 1번픽으로 로켓을 뽑게되었다. 그러나, 그 위에 18명이나 1번 픽을 얻은

선수들이 있었으니 보삭스의 혜안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본래 아마때부터 큰키와 산만한 덩치 그리고 불같은 강속구로 유망주로 분류되어었는데,

솔직히 19번까지 그가 밀리게된것은 보삭스의 혜안이라기 보다는 다른 팀들의 멍청함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여간, 그 해 그는 A와 AA를 우습다듯이 바로 통과해

버리고 84년의 시작을 AAA에서 맞게된다. 그도 그럴것이 A와 AA에서의 그의 성적은

각각 6번과 8번의 등판에서 1.65 / 1.37의 방어율에 4승씩을 거두었고, A에서는

38이닝동안 단 4개의 BB를 내주면서 49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잡았으니, 더 이상의

A와 AA에서의 피치은 그의 재능을 진흙속에 묻어두는 행위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84년 우리 나라 사람들이 가장 잘아는 마이너팀인 포투켓에서 1점대의 방어율을 찍은 그는

운명의 5월 15일 ML의 첫등판을 갖게된다. 그해 20번의 선발과 1번의 구원등판에서

4점대의 방어율에 9승을 기록하여, 유망주로써 비교적 수월한 첫해를 보내게 된다.

하지만, 20번의 선발중 5번의 CG를 기록하여, 그의 뛰어난 체력에 좋은 싹수를 보여주게 된다.

그리고 85년에는 부상으로 15번밖에 등판하지 못하지만, 3.29의 좋은 방어율을 보여주며,

86년의 활약을 위한 준비기간이었음을 암시해 주는 해였다.

그리고 운명의 1986년 그는 33번의 선발등판에서 무려 24승을 올려 자신의 단일시즌 최다승을

기록했으며, 254이닝의 투구이닝동안 단 179개의 안타와 21개의 홈런, 67개의 BB를 내주고

탈삼진 238개와 2.48의 방어율을 찍음으로써 장차 10년동안 리그 아니 ML을 지배할 선발투수가

누구인지를 똑똑히 그의 팀과 팬 그리고 그의 적들에게 보여주게 된다.

그의 활약에 걸맞게 그는 사이영상과 MVP를 2위와의 앞도적인 점수차로 동시에 수상했다.

그리고 2번의 사이영상을 보삭스에서 더 수상한 후. 그는 한물갔다는 평가와 함께

96시즌이 끝난 후 그는 두번째 FA가 된다. 첫번째 FA는 보삭스에게 돌아갔지만

94년 단 9승, 95년 4.18의 방어율, 96년 10승 13패의 성적에 과감히 보삭스는 그를 포기한다.

그러나, 같은 지구의 토론토는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우연이었을까? 아님 태업이었을까? 혹은 뛰어난 토론토 투수코치의 재생능력이었을까?

그는 기존의 강속구와 강력한 슬라이더에 SF볼을 장착하고, 97년 시즌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해 보삭스의 눈앞에서 그는 34번의 SG와 264이닝의 투구수에 단 204개의 안타와

엽기적인 9개의 피홈런 수, 그리고 292개의 캐리어 하이 탈삼진과 2.05의 방어율을

차지함으로써, 다시 리그의 지배자로 나서게 된다. MVP투표에서는 10위로 예년에비해

뛰어난 타자들의 활약으로 고배를 마셨지만(그해 1위는 켄 그리피 주니어였다.)

사이영상에서 2위 랜디존슨을 한참이나 따돌리고 1위표 25개를 차지함으로써 1위를 하게되었다.

86년 탈삼진에서 2위를 차지함으로 놓쳤던 트리플크라운을 2위 랜디존슨에 1승과 0.23점

그리고 탈삼진 1개를 앞서 생애첫 트리플 크라운을 차지하게 된다. 그해 그는 34살이었다.

그리고 완연한 30대 중반인 35세인 98년의 그는 전년도 보다는 못한 성적이었지만 보삭스의

페드로 마르티네즈는 당시의 로켓에 비해 애송이라 비웃듯이 또다시 트리플크라운

(2.65 20승 271K)을 달성으로써 당연히 사이영상에서의 만장일치 1위를 차지하게 된다.

하지만, 21살부터 35살까지 뛰어덧 AL의 동부지구의 그 어느팀도 그에게 WS반지를 가져다

주지는 못했다. 좀 과격하게 말하자면 그의 활약에 비해 팀의 성적은 허접스러웠다는 뜻이된다.

그리고 99년 2월 18일 퍼펙트게임 뚱땡이 좌완 투수와 호머 부시, 그레이엄 로이드 패키지와

로켓은 역시 동부지구의 또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어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처음으로 입게 된다.

그러고보니, 로켓은 AL 동부지구에서만 선수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99년과 2000시즌

그의 성적은 이전의 사이영상 위너의 모습이 더이상 아니였다. 그러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의 팀은 WS를 제패하고 그의 손에는 첫째 그리고 두째 WS링이 끼워지게 된다.

다시 2001시즌 생해통산 6번째 20승의 달성과 동시에 6번째 사이영상을 수상하게 된다.

그리고 또 운명의 장난이었을까 그의 뛰어난 정규시즌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팀은

WS를 우승하지 못하는 징크스를 갖게되었다.

그리고 2002년 부상으로 A와 AA등판까지 사서하면서 겨우겨우 시즌을 마친끝에

커리어 로우 두번째인 4.35의 방어율에 13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180이닝의 투구에

불과 63개의 BB과 192개의 탈삼진은 그가 부상이 아니었다면 얼마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을지

조심스럽게 예상을 할수있게 하며, 40살이되는 올해에도 변함없는 그의 모습을 기대할 수

있게하기도 한다. 그 모습에 옵션의 픽을 두려워하던 양키즈는 다시 FA로 그를 만든뒤

초유의 연봉 10년 분할이란 옵션으로 그를 다시 양키즈의 ACE로써 만들었다. 한해 더 말이다.


1) 그의 신체

1962년생으로 6피트3인치, 230파운드의 그야말로 전형적인 백인 떡대의 모습을 소유하고

있다. 그리고 95mph+의 강속구를 구사한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전형적인 모습의

투수이다.

2) 그의 공

40세인 지금도 충분히 95mph+의 공을 구사할 수 있으며, 공또한 체중을 실어서 던지는 스타일로

피홈런도 적은편이다. 구사하는 구종으로는 맘먹으면 직구만으로 구사하며, 이외 간간히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던지며 97년부터 SF를 장착 새로운 로켓의 전성기를 열였다.

3) 그의 장점

무엇보다 강한 어깨와 체력 그리고 절대로 굽히지 않는 승부욕이다.

그는 큰 게임에서도 강한 모습을 보여, 그 극도로 긴장감이 증대되는 월드시리즈에서

6번의 등판에 40.3이닝의 투구수에 단 25피안타와 12개의 BB에 탈삼진 43개를 잡아냈으며

1.56의 방어율을 기록하였다. 이는 통산 방어율 3.15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뛰어난 수치다.

그리고, 몸쪽 승부를 가장잘하는 투수로 정평이 나있으며, 그 때문에 헤드헌터란 오명도

갖고있는 투수이기도 하다.

그러나, 전형적으로 자식을 사랑하고 가정적인 백인남성의 모습으로 그는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4) 그의 단점

기록에서의 단점은 94년도 9승으로 연속 10+승 기록이 단절 되었다.

그 자신이 이 부문에 대해서 언급한것은 한번도 보지는 못했지만 언론에서는 항상 그의

기록에서 이 부분을 떠들어 댈 것이다.

그는 탈삼진에 약간 편집증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자식의 이름에 첫자를 모두 탈삼진을

의미하는 K로 했을정도이며, 그가 투구이닝보다 많은 탈삼진을 잡은해는

88년 264이닝, 291K / 96년 242.2 이닝 257K, 그리고 97년 264이닝 292K 98년 234.2 이닝

271K / 2002년 180이닝 192K 이다. 통산 탈삼진 부문에서 그위 위에는 단 2명인

스티브 칼튼과 놀란라이언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지나치게 직구에 과신을 하기도 하며, 안타를 맞느니 차리리 BB를 내주려는 모습도

가끔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단점이 오히려 그의 장점이 될 수가 있으니

그에겐 단점이 거의 없는 투수인것 같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서인지 예전같지 않은 그의 신체가 그의 약점이 될것이다.

5) 그의 성적

아래는 퍼온 수상내역및 올스타 선발된 내역이다.

2001 Cy Young Award (American League) (Best pitcher)
2001 Players Choice Awards (American League) (Outstanding Pitcher)
2001 Played in the All-Star Game
1998 Cy Young Award (American League) (Best pitcher)
1998 Triple Crown Winner
1998 Players Choice Awards (American League) (Outstanding Pitcher) (shared with Pedro

Martinez)
1998 Played in the All-Star Game
1997 Cy Young Award (American League) (Best pitcher)
1997 Triple Crown Winner
1997 Players Choice Awards (American League) (Outstanding Pitcher)
1997 Played in the All-Star Game
1992 Played in the All-Star Game
1991 Cy Young Award (American League) (Best pitcher)
1991 Played in the All-Star Game
1990 Played in the All-Star Game (Did not play)
1988 Played in the All-Star Game
1987 Cy Young Award (American League) (Best pitcher)
1986 Cy Young Award (American League) (Best pitcher)
1986 Most Valuable Player Award (American League)
1986 All-Star Game - Most Valuable Player
1986 Played in the All-Star Game

6번의 사이영상(역대 최다), 2번의 트리플 크라운, 8번의 올스타 선발

2번의 WS우승, 1번의 리그 MVP, 6번의 방어율 1위, 4번의 다승1위

5번의 탈삼진 1위

통산성적 부문

*현역투수 통산방어율(1000이닝 이상투수) 6위 3.15
-- 참고 (1위 외계인, 2위 존플랑코, 3위 매덕스, 4위 오로스코, 5위 빅유닛)
*다승 통산 22위 293승
*9이닝당 안타허용수 통산 47위 7.7개
*승/패 비율 통산 17위 .660
*9이닝당 출루허용수(BB+안타) 93위 10.62개
*9이닝당 BB갯수 28위 2.92
*9이닝당 탈삼진수 통산 10위 8.65
*투구이닝 통산 36위 4067이닝
*탈삼진 통산 3위 3909개
*선발등판 통산 20위 573회
*완투 현역(1000이닝이상 투구) 통산 1위 116회
*완봉 통산 28위 45회

2003시즌 예상달성 통산부문 기록

4000탈삼진 -91개
300승 -7승


이변이 없는한 그는 2003시즌을 마치면 300승과 4000탈삼진을 달성하게 된다.

300승을 달성하게 되면, 그는 통산 공동 19위로 상승하게 되며, 그 위에는 줄줄이 HOF멤버

밖에는 없다.(사이영, 월터존슨, 피트 알렉산더, 크리스티 매튜슨, 퍼드 갤빈, 워랜 스판

키드 니콜스, 팀 키퍼, 스티브 칼튼, 존 크락슨, 에디 플랭크, 놀란 라이언, 돈 셔튼,

필 니크로, 게일로드 페리, 탐 시버, 찰리 래드본, 미키 웰치 등이 307승 이상이며, 300승에

레프티 글로브, 얼리 윈니가 있다.)

그러나, 탈삼진 부문에는 스티브 칼튼이 227개나 앞서있어 2위에 등극이 올시즌이

그에게 마지막 시즌이라면 약간은 버거운 기분이 들기도 한다. 현재 그의 뒤에 163개 차이로

랜디존슨이 딱 버티고 있기에 그가 은퇴하면 그를 추월할것이 불보듯 뻔하기에 적어도

통산 2위에는 올려놓아야 당분간 통산 3위에서 유지할 수 있기때문이다.

이는 2003시즌을 끝으로 은퇴한다면 달성할 수 있는 기록이지만.

놀란 라이언처럼 40대중반까지 던져댄다면 아마 그는 HOF멤버의 성적중 전 부분에 걸쳐

그의 이름을 상위권에 올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가 40대의 기점인

올해의 이후를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는 조금은 예측을 하기가 힘이든다. 왜?

난 그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의 머리속을 들어가 볼수는 없지 않은가?

분명한건 그도 놀란 라이언의 체력을 지녔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직도 완투가 가능한 체력과 95mph+의 강한 직구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2003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한다면, 그것도 양키즈에서 은퇴 경기를 갖는다면,

올해의 올스타전에서 우리는 칼립켄 주니어처럼 상징적인 그의 등판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등번호 22번 또 다른 양키즈의 영구결번이 될것이며, 2009년의

중 후반엔 HOF에 뉴욕 양키즈의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고 헌핵되는 모습과

양키스타다디움 우측 펜스 뒷편에 마련된 HOF의 흉상중 그의 흉상이 추가될 것이다.





제가 보는 야구 칼럼글 입니다.. 두편이고요..

전편은 roger clemens why?

후편은 왜 Rocket인가 입니다..



1. Roger Clemens, Why?



타자를 두려워 하지 않는 포심의 사나이
이전이나 지금이나 메이저리그에는 항상 'Headhunter'라 불리는 녀석들이 끊임없이 존재해 왔다. 헤드 헌터란 무엇인가. 쉽게 말하자면 돈 드라이스데일로 대표되는 과격파 투수들을 통칭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몸쪽 공을 워낙 과감하게 던져서 타자의 머리를 맞추는 일도 서슴지 않는, 그런 싸움닭 스타일의 투수들을 두고 하는 말이 바로 'Headhunter'이다.

물론 이들의 스타일은 'Bad Boys' 스타일과는 구분되어야 한다(여기서의 배드 보이스는 90년 신시내티 레즈의 중간계투 3인방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배드 보이스가 단순히 악행만을 일삼는 녀석들을 두고, 그러니까 의미 없는 일탈만을 하는 선수들을 두고 하는 말이라면, 헤드 헌터는 그와는 다르게 워낙 투구를 과감하고 열심히 하다 보니까 의도와는 다르게 그런 '사고'를 발생시키는 선수들을 이르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말은 듣기에 상당히 섬뜩한 표현처럼 느껴지기 쉽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악의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박찬호가 요즘 헤드 헌터로의 변신을 꾀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렇다면 현역 투수들 중에서 가장 헤드 헌터로서 악명을 떨치는 선수는 누구일까? 아마도 이 장면을 상기시킨다면 그 선수가 쉽게 떠오르지 않을까. 지난 2000년 뉴욕 라이벌 전에서, 양 팀의 에이스 선수들이 투타 대결로서 맞붙은 상황에서 생겼던 그 끔찍한 일. 투수가 타자의 머리에 정통으로 엄청 빠른 포심을 날려버렸던 그 사건 말이다. 그것도 그 투수는 'Rocketman'이라 불릴 정도로 역사적인 포심을 지닌 선수였으니... 타자가 곧바로 실려나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로저 클레멘스. 현재 이 선수만큼 헤드 헌터로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선수는 없을 것이다.

아마도 'Headhunter'라는 표현은 클레멘스의 스타일을 가장 잘 말해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타자에게 안타를 맞느니 차라리 과감히 승부하다가 몸에 맞춰서 내보내겠다는 그 정신. 자신의 결정구 포심이 안 통한다 싶으면 더 빠른 포심을 집어넣어 결국 우격다짐으로서 타자를 돌려세우는 그 정신. 전 타석에서 홈런을 맞으면 일단 다음 타석에서 위협구부터 던지고 보는 그 정신... 로저 클레멘스의 그 화려한 야구 인생을 대표하는 '위압감'을 가장 잘 표현해주는 것으로서 말이다.

클레멘스는 커리어 내내 마운드에서 엄청난 위압감으로 타자를 압도해나갔다. 물론 이런 외면적인 부분 외에도 워낙 뛰어난 실력이 작용을 했기에 그런 엄청난 기록들이 생겼겠지만, 분명 이런 위압감도 무시할 수 없는 그의 능력이기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대단한 존재로 부각될 수 있었던 것도, 대다수 이런 강인한 정신력에서 시작되었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클레멘스의 많은 기록들은 현대야구에서 다시 보기 힘들 정도로 화려하기 그지없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다인 통산 6번의 사이영상 수상. 더불어 역대 한 게임 최다 탈삼진 20개를 두 번이나 기록. 통산 293승으로 역대 랭킹 22위. 통산 3909 탈삼진으로 역대 랭킹 3위. 통산 573번의 선발 등판으로 역대 랭킹 20위. 통산 45완봉승으로 역대 랭킹 28위... 실상 초창기 야구에서는 에이스 투수의 혹사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시점이란 것을 감안한다면, 현대 야구에서 그가 세운 이 기록들은 정말이지 경악에 가까운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오로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그렉 매덕스 만이 어느 정도 따라오는 모습을 보이고 있을 뿐이니 말이다.

어찌 현역 최고의 선수들에 대해 언급하는 자리에서 뉴욕 양키스의 슈퍼 에이스, 로저 클레멘스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의 강인한 정신력과 놀라운 기량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단 말인가. 비록 클레멘스에 대한 찬사들이 이 한 번의 칼럼으로 충분하지는 못하겠지만, 개인적으로 쏟아내고 싶었던 많은 분석과 이야기들을 펼쳐 보고자한다. '어떻게 그는 역사적인 투수로 자리 매김 할 수 있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서 말이다.


1. 투구 폼 분석

로저 클레멘스의 투구 폼 또한 이전 칼럼에서 분석한 케빈 브라운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과격한 면을 보이고 있다. 그 역시 투구 폼으로부터 최대한의 힘을 뽑아내는 유형의 스타일이며, 제구력에는 문제가 보일 지 모르지만 구질의 위력이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으로 나타나는 선수라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인 선수가 되려면 인간을 뛰어넘는 어떤 능력을 지녀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에 빗나가지 않게, 클레멘스 또한 그런 폼에서 생성되는 수준 이상의 로케이션 능력과 엄청난 구질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클레멘스의 투구 폼은 그다지 다이내믹한 편은 아니다. 케빈 브라운처럼 토네이도라 불릴 만큼의 어떤 특이성을 지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페드로 마르티네즈나 마리아노 리베라처럼 유체 같은 유연성을 보이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청난 보폭과 극단적인 팔의 상향 각도, 그리고 강력한 팔의 스윙은 그의 엄청난 구질 파생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일단 클레멘스는 와인드업에서 킥킹을 상당히 높이 하는 편이다. 이는 당연히 신체의 활동을 최대한 증폭시켜 구질의 위력 배가를 노리는 의도에서 생성된 부분. 허나 클레멘스는 자신의 최대 킥킹이 이루어진 뒤 한번 동작을 멈추는 특이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이 동작에서 어떠한 큰 힘을 얻어낸다고는 생각하기 힘들다. 그저 보폭을 넓게 잡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할까.

아마 그의 강력한 구질들은 다음 동작에서 파생될 것이다. 킥킹이 이루어진 뒤 이루어지는 그의 넓은 보폭에서 말이다. 최근 들어서 나이가 드는 만큼 체력적인 면을 생각해 많이 보폭을 줄이고 상체를 세우는 경향이 있기는 하나, 이전 보스턴 시절만 하더라도 하체를 거의 땅에 붙일 정도로 넓은 보폭을 보였었다. 보폭이 넓은 것은 자연히 팔의 스윙 크기 증가를 불러일으키기에 구질의 위력 배가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유를 살펴볼까.

일단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팔의 스윙 크기가 커야지 더 많은 힘이 파생된다는 것. 극단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손목을 중점으로 해서 일으키는 조그마한 스윙과, 어깨를 중점으로 해서 팔을 반지름으로서 해서 일으키는 큰 스윙의 비교를 살펴보면 되겠다. 후자가 더 많은 힘을 파생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 반지름이 크게 이루어지는 만큼 원주가 길어지기 때문이다. 그 순간 동안에 생기는 가속도와 원심력 탓에 힘은 그 반지름의 크기만큼 더 커지게 된다.

그렇다면 왜 보폭을 넓히면 팔의 스윙 크기가 증가하는 것일까. 이것 또한 간단하다. 보폭을 넓히면 자연히 팔이 더 많이 앞으로 나가기에, 그려내는 원이 작은 보폭에 의해서 생긴 그것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큰 보폭은 더 많은 힘을 파생시키는 것이고, 투수가 마운드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최대의 힘을 끌어올리는 한가지 방법이 되는 것이다. 이 투구 폼의 단점은 마찬가지로 중심이 흔들려 컨트롤에 위험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클레멘스는 그런 부분을 잘 커버해 내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그 다음 동작은 클레멘스의 팔각도. 일반적인 투수들이 쓰리 쿼터에 가까운 폼을 사용하는 것에 반해, 그는 극단적으로 힘을 끌어올리기 위해 팔을 최대한 상향 각도로 올려버린다. 이런 폼이 많은 힘을 끌어내는 것은 당연한 원리. 팔을 극단적으로 들어올린다고 하면 자연히 허리의 사용이 증가되게 되고, 그만큼 팔이 만들어내는 스윙의 크기가 커지기에 많은 힘이 생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이드암 투수와 한번 비교를 해볼까? 팔이 만약 옆으로 많이 누워서 낮은 각도로서 나온다고 생각해 보자. 그렇다면 허리의 힘은 거의 사용하지 않은 채 상반신의 힘만이 사용될 것이다. 허리를 원의 중심으로 하고 상반신과 팔의 길이 모두를 반지름으로 사용해서 그려내는 큰 원(극단적 오버핸드)과, 어깨 죽지를 중점으로 해서 단지 팔 만을 반지름으로 만들어 그려내는 작은 원(사이드암)이 힘의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당연한 원리. 따라서 클레멘스의 폼은, 투구의 위력을 극단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한 방편이 되는 것이다.

물론 사이드암의 장점도 있다. 비록 힘은 떨어지지만 제구력에 용이한 점이 생긴다는 것. 단순히 중심이 잘 잡힌다는 것 외에, 릴리스하는 손이 눈높이 가까이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투수에게 있어서는 팔과 시각의 거리에서 생기는 차이를 커버해 준다는 장점을 얻어내게 되는 것이다. 더불어서 사이드암의 경우에는 팔이 지면과 평행하다 할 정도의 스윙 궤적을 만들어 내기에, 스트라익 존에서 상하 컨트롤에 대한 부담 없이 좌우 컨트롤에만 신경 쓰면 된다는 이유로서 더욱 컨트롤에 유리한 점을 제공하게 된다.

그렇기에 당연히 오버 스로우로 갈수록, 더군다나 로저 클레멘스 같은 극단적인 오버 스로우로 갈수록 신체에 힘이 많이 들어가 중심이 흔들리고, 시각과 릴리스 포인트가 멀어져 감각적으로 문제를 만들어내며, 상하의 제구와 좌우의 제구를 모두 신경 써야 한다는 문제점 또한 만들어 내기에 제구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렇게 구질의 위력을 증폭시키는 것과, 컨트롤의 능력을 유지하는 것에는 반비례 관계가 성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클레멘스의 투구 폼이 어디 보폭과 스윙 각도만으로 한정지어질 수 있는 것인가.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이 스윙해 내는 강력한 릴리스 또한 그의 투구 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묘미로 더할 수 있으니 말이다. 결국 클레멘스는 제구력에 불안이 생길만한 요소를 감수하면서도, 그 'Headhunter'의 대표주자라 불릴만한 그 무대포 정신 속에서 일단 구질의 위력을 최대로 증폭시켜내고 있는 것이다.

허나 그가 이렇게 제구력에 불안을 줄만큼 무리한 힘의 증폭을 유도하면서도 역사적인 투수 대열에 합류할 만큼의 업적을 세운 것은, 역시나 그가 인간을 뛰어넘는 능력을 지닌 만큼 좋은 컨트롤을 지닌 선수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부분. 즉 클레멘스는 힘과 컨트롤의 반비례 관계를 뛰어넘었기에 지금 자신의 위압감을 생성해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그가 볼넷이 비교적 많은 투수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제구력이 문제될 만큼의 선수는 아니기 때문이다. 어떻게 컨트롤 해내는 것인지 참 의구스럽지만, 여하튼 그는 이해하기 힘든 그 만의 감각으로 최대의 힘 속에서 필요한 컨트롤을 유지해내고 있다. 역사적인 선수는 역시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그의 위력적인 구질들을 찾아나가 볼까.


2. 최전성기의 클레멘스, '포심, 그리고 더 빠른 포심'.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체력

23살부터 29살까지 로저 클레멘스의 성적이 어떠했는지 아는가. 7년 동안 1번은 1점대 방어율, 5번은 2점대 방어율, 1번은 3점대 방어율을 기록했으며, 더불어서 20승 이상 3번에 최소 승수는 무려 17승이었을 정도였다. 220이닝 이하의 투구는 단 한번도 없이 250이닝 이상의 투구가 5번. 완투는 10차례 이상이 5번이었고 한 번은 무려 18완투를 기록했었으며, 더불어서 한 시즌에 8번의 완봉도 기록한 적이 있었다.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탈삼진은 어떠했겠는가. 모두 200탈삼진 이상을 기록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중에서 한 번은 무려 291탈삼진이었다. 정말이지 이 당시 보스턴 시절에서의 로저 클레멘스는 아무도 넘보지 못하는 최고의 아성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젊었을 때 로저 클레멘스의 최고 무기는 무엇이었을까. 지금까지도 많은 팬의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슬라이더가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역시 클레멘스 하면 포심 패스트볼, 당시 그는 이 구질만으로 타자들을 완벽히 압도했었다.

클레멘스의 포심은 정말이지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 수준이라 불릴만한 위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포심의 위력은 단순히 구속만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단순히 하나의 측정 단위에 불과할 뿐. 그 외에 로케이션과 종속, 무브먼트와 다른 구질과의 배합 또한 함께 계산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부분을 감안할 때, 클레멘스의 포심은 정말이지 대단한 위력을 지닌 것이라는 것을 판단할 수 있다. 전성기에도 클레멘스의 포심이 100마일을 넘나든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의 '최고 구속이자 평균 구속'은 98마일 수준. 이 표현을 통해서 알 수 있겠지만, 클레멘스 포심의 최대 위력이자 질릴 만한 부분은, 그런 엄청난 구속을 지침 없고 끊임없이 뿌려댄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먼저 클레멘스의 포심은 그 위력적인 투구 폼에서 파생되는 만큼 강력한 종속을 자랑한다. 백스핀이 최대한 먹어서 공이 비행하는 막판 순간에서도 강한 추진력을 내는 것. 자연히 이 탓에 공의 종속은 초속과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묵직함을 자랑했고, 타자들은 속수무책으로 이 볼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더불어 그의 포심은 정말 스트레이트 성이 기가 막힌 수준이었다. 타자의 시각차를 완전히 뛰어넘을 만큼의 추진력을 자랑했고, 그랬기에 타자들은 이 포심에 속수무책으로 뱃을 헛방망이질 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아무리 종속이 강한 위력적인 포심이라고 해도 타자들이 눈에 익으면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하기에, 클레멘스의 포심이 그 하나만으로 완전 난공불락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포심 투수답지 않게 분명 홈런을 많이 허용하지는 않았지만, 눈에 그 구속을 익힌 뛰어난 감각의 타자들은 간간이 그의 포심을 때려내기도 했었다. 그런 상황에서 클레멘스의 대처는 당시 상당히 재미있었다. 그는 만약 타자들이 자신의 포심을 때려 진루해 나가면 다음 타석에서 맞았을 때, 정면 승부를 피하거나 슬라이더를 던지지 않고 '더 빠른 포심'을 뿌리는 무대포 정신을 보였던 것이다.

클레멘스의 체력과 그 꾸준함은 누구나 다 알아주는 것. 언제나 이닝 이터로서 많은 투구를 유지해주면서도, 게임 막판에 가서도 지치지 않고 뿌려줄 수 있는 그 강력한 'Durability'는 클레멘스의 최대 특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그렇기에 그는 매번 100%의 구질을 타자들에게 뿌려댈 수 있었고, 타자들 또한 끊임없이 당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였으리라. 정말 그렇게 던져댔으면서 큰 부상 없이 지금까지도 이렇게 던지는 것을 보면, 클레멘스란 선수가 정말 괴물 같기는 괴물 같다고 종종 생각하곤 한다. (물론 당연히 어깨 부상으로 몇 년 고생하기는 했지만, 이런 폼에서 그 정도 공백은 별 것 아니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 그런 체력과 꾸준함이 그를 최고 명성에 오르게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실로 클레멘스의 괴력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그는 그렇게 종속이 엄청난 포심을 뿌리면서도, 항상 그 이상의 구속이 될 수 있는 더 강력한 포심을 지녔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의 포심은 여전히 전문가들의 혀를 내두르게 하는 것이고, 더불어서 많은 팬들의 기억 속에서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왜 그의 별명이 'Rocketman'이겠는가. 바로 그 포심의 엄청난 위력에 사람들이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는 이런 모습을 보기 힘들다. 확실히 90마일 중반을 넘는 포심을 여전히 뿌려대고는 있지만, 이전 클레멘스 포심의 종속과 무브먼트(스트레이트성)에는 비할 바가 되지 못하고, 더불어서 자신도 지친 듯 조금은 '얌전해진' 투구 폼 속에서 컨트롤을 더 중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최근 국내 메이저리그 팬들이 클레멘스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지 못하는 것은 아마도 이 포심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분명 스플리터로 타자를 속여내는 지금 모습과 포심으로 타자를 때려잡는 예전의 모습은 그 위압감에서 많은 차이를 드러낸다. 그렇기에 진정 로켓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자면, '포심과 더 빠른 포심'을 던져댔던 예전의 모습을 들춰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포심, 더 빠른 포심'이라는 표현은, 자타가 공인하는 국내 최고의 로켓 매니아이자 개인적인 친분이 상당히 짙은 어떤 분의 표현을 그대로 도용했음을 이 자리에서 밝힙니다.)


3. 부활의 클레멘스, 역사적인 스플리터

아무리 클레멘스라고 해도 커리어 내내 부진이라는 것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93년 심각한 투구 폼의 부담 속에서 어깨 부상을 당하며 급작스러운 부진에 빠져 이상 징후를 나타냈었고, 94년 부활의 모습을 보이는 듯 했으나 단축 시즌 탓에 그 위력을 보이지 못한 뒤, 95년과 96년에서 연달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 '이제 이전의 클레멘스는 보기 힘든 것이 아니냐'라는 주위의 평가를 듣기도 했었다.

그를 13년이나 보유한 보스턴 레드삭스가, 프리 에이전트가 된 클레멘스를 잡지 않고 내보낸다는 결정을 내린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 확실히 그는 당시 가장 잔혹하다 싶을 수준의 혹사를 단지 에이스라는 이유만으로 받았었으며. 혹사 탓에 고생했던 여타 투수들과 같이 이제는 급격한 하향세를 그리리라는 평을 피하지 못하고 있었다.

보스턴 레드 삭스가 땅을 치고 후회할 결정을 내린 것도 바로 이 순간. 팀을 가장 많이 망쳐놓은 사람으로 평가받는 당시의 단장 댄 듀켓은, 97년 프리 에이전트 시장에서 과감히 클레멘스를 버리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물론 듀켓은 후에 페드로 마르티네즈를 얻어오면서 그 공백을 메웠고 또 그것 때문에 어느 정도 비난을 면할 수는 있었지만, 97년과 98년에 보인 그의 부활투는 페드로의 당시 모습에 비교할 때 워낙 엄청난 것이었기에 여전히 듀켓은 이 일로 비난을 받고 있다.

97년 토론토로 이적한 클레멘스는 34선발 264이닝에서 21승 7패 292탈삼진 9완투 3완봉승 방어율 2.05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었다. 이는 어느 누구도 예견하지 못했던 34살 투수의 부활 서곡. 당시 그는 다승-방어율-탈삼진 왕을 챙겨내면서 동시에 52년만의 트리플 크라운을 이루어냈고, 당연히 4번째 사이영상 수상도 이루었었다. 그러나 만약 그의 이런 활약이 97년 한 해에 그쳤다면 그리도 많은 비난의 화살이 듀켓에게 쏟아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98년 클레멘스는 다시 33선발 234.2이닝을 통해 20승 6패 271탈삼진 5완투 3완봉승 방어율 2.65를 기록했고, 당연히 2년 연속 사이영상 수상을 결정함과 동시에 역대 4번째 2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을 기록한 것이었다. 의문의 여지가 없는 듀켓의 판단미스를 입증했던 순간. 만약 그가 클레멘스를 보유했었다면 아마 당시에 밤비노의 저주는 깨졌을 지도 모른다.

허나 이 부분에서 의문이 생긴다. 클레멘스는 대체 어떻게 부활을 한 것인가. 엄청난 투구 폼에서 비롯된 어깨 부상 탓에 망가졌었고, 그 탓에 재활이 거의 힘들다고 생각한 듀켓 단장이 그를 버렸던 것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예상을 뛰어넘고 어깨를 제대로 고치며 포심을 더 강력히 뿌려서 이런 영광 재현을 이루었단 말인가. 아니다. 클레멘스는 이전에 비해 포심의 위력이 떨어져 있었고 폼도 많이 약해진 상태였다. 다만 그는 자신의 능력에서 최고의 구질을 발견해 냈기에 이런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역사적인 그 스플리터. 바로 이 구질이 클레멘스의 부활을 만들어낸 것이다.

저번 케빈 브라운 칼럼을 통해서도 간단히 소개했지만, 스플리터는 패스트볼의 변종 중에서도 떨어지는 각과 속도가 모두 중간 정도에 머무는 구질. 즉 속도는 포크볼에 비해 조금 더 빠르고 브레이킹은 싱커에 비해 더 많은 것이다. 대체적으로 볼 때 많은 투수들이 부담 없이 한 번 구사해볼 수 있는 구질. 실제로도 메이저리그의 많은 투수들은 대체적으로 싱킹 패스트볼 중에서 스플리터를 가장 흔하게 구사하는 편이며, 박찬호 또한 몇 번의 게임에서 이 구질을 구사하기도 했었다.

허나 스플리터는 선수의 능력에 따라 많은 차이를 드러낸다. 별다른 특징이 없는 투수가 이 공을 던졌을 때에는 그야말로 밋밋함 그 자체. 구속은 싱커에 비해 느리니까 더 눈에 잘 들어오고, 떨어지는 각은 포크볼보다 적어 타자의 눈에 명확히 보이니까 걸러내기 더 없이 좋은 구질에 불과해질 뿐이다. 그렇기에 실제로 스플리터를 제대로 구사해 자신의 주무기로 삼는 투수는 메이저리그에도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다. 그러나 클레멘스가 누구인가. 이 역사적인 스플리터의 주인공이 아닌가.

그의 스플리터는 정말 기적이다. 일단 그 속도에 혀를 내두르는데, 일반적으로 85마일 이하가 나와야 할 스플리터가, 클레멘스가 구사할 경우 90마일까지 나오는 것이다. 검지와 중지가 많이 벌어진 상황에서 이 정도 구속이 나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신체의 힘을 효율적이고 강력하게 이용하는지를 나타내는 부분. 그렇기에 타자들은 싱커보다 한 층 빠른 시속에 더 많은 각을 보이는 이 구질에 그렇게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로켓의 스플리터는 거의 포크볼만큼 떨어진다. 실제로 클레멘스는 여전히 자신의 이 구질이 포크볼이라고 주장한다. 허나 그의 손가락이 벌어진 크기는 포크볼과 거리가 먼 것. 단지 특이하게 스플리터를 포심 그립으로 잡고 던지기에 이런 형상이 나타나는 것인데, 여타 투수들이 던질 경우에는 속도도 속도대로 안 나오고 각도 안 나올 수 있는 이 그립이, 클레멘스에게서는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위력으로 나오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그의 스플리터는 싱커의 구속과 포크볼의 각이 혼합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이 것이 바로 클레멘스의 부활을 조장한 것이다. 당시 여전히 위력적인 포심을 들고 있었던 그는, 이 상방성 포심에 하향성 스플리터를 마구 뿌려 타자들에게 엄청난 현혹을 안겨줬고, 그 탓에 당시 이 구질은 타자들에게 '마구'로 불리면서 난공불락의 무기로서 취급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2001년에는 변화한 스트라익 존 탓에 다시 한번 그는 날개를 달아 통산 6번째 사이영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클레멘스의 스플리터는 이렇게 역사적이라 할 만큼의 엄청난 위력을 지닌 것이다. 비록 올드 팬들에게 있어서는 그의 이전 포심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남기에 그다지 인상적인 구질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분명 이 역사적인 스플리터는 그의 97, 98년의 2년 연속 사이영상 수상, 트리플 크라운이라는 엄청난 부활을 책임진 마구이며, 그렇기에 역사 속에서 기억될 수밖에 없는 구질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어쩌면 이전 포심보다 더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었던 구질로 말이다.


클레멘스란 존재는 참 매력이 있다. 어떻게 보자면 상당한 배드 보이 측에 속하는 녀석인데, 이상하게도 많은 팬들이 자신의 팀으로 영입을 원하며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올 시즌 그가 프리 에이전트가 되었을 때, 마이크 피아자와의 그 최악의 관계에도 불구하고 뉴욕 메츠 행을 상당히 기대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루머가 시장에서 나돌았을 때에는, 많은 팬들과 함께 같이 메츠 행을 점쳐보며 기뻐하기도 했었다. 그런 존재가, 누구도 싫어할 수 없는 역사적인 존재가 바로 로저 클레멘스인 것이다.

이제는 많이 늙었다. 엄청난 투구 폼은 40줄에 접어든 지금에서 계속되는 부상으로 이어지고 있고, 그런 탓에 포심의 위력은 점점 줄어들며 유인성 구질인 스플리터의 구사만 점점 늘어가, 팬들에게 이전의 매력적인 무대포 정신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상당히 아쉬운 것은 비단 나만의 입장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역시 클레멘스는 클레멘스. 작년 부상이 있었지만 다시 1000만 달러가 넘는 고액으로서 팀과 재계약을 맺었고, 올해도 변함 없이 '페이롤 1억 6400만 달러' 최강 뉴욕 양키스 부동의 에이스로서 마운드에 오르리라 예상되고 있다. 이제 40살에 들어가는 황혼기인데도 말이다. 단순히 기량적인 측면 외에, 팀에서 보이는 그 카리스마와 타자들을 압도하는 위압감은 여전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사실상 선발 투수의 투구 이닝과 등판이 제한되는 현대 야구에서, 통산 300승과 4000탈삼진을 동시에 달성하는 일이란 정말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20살 애송이부터 40살 늙은이까지 되는 동안 꼬박 15승을 기록해야 가능한 승수이고, 꼬박 200탈삼진을 기록해야 가능한 탈삼진 개수이기 때문이다. 한 시즌에 이 정도 기록을 해주는 선수도 손으로 꼽는 실정인데, 이 어찌 대단하다 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것만으로도 그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이제 7승과 91탈삼진만이 남았다. 정상적인 컨디션이라면 전반기 내에도 달성할 수 있는 수치. 올 시즌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이 'speed king' 로저 클레멘스가, 통산 300승 4000탈삼진이라는 대기록을 동시에 세우고 마운드에서 모두의 기립 박수를 받는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런데 아마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 헤드헌터의 타자 머리 사냥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타고난 사냥꾼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를 지켜보는 것은, 메이저리그 팬들에게 있어서 크나큰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2. 클레멘스가 ROCKET인 이유 [ 2001/11/26 ]


ROCKET의 첫글자로 본 클레멘스의 위대함
1962년 8월 4일 생으로 우리 나이면 40살인 로저 클레멘스는 이미 통산 280승과 6번의 사이영상을 거머쥐며, 명예의 전당 티켓을 예약해 두었다. 클레멘스는 스스로 위대한 선수의 일원으로 기억될 준비를 끝낸 것이다. 클레멘스의 별명이 rocket라는 것은 mlb팬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그가 왜 ROCKET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ROCKET

R : Ring - 챔피언 반지는 스포츠 선수에게 가장 커다란 선물이자 결실이다. 실제로 nba스타 찰스 바클리는 부와 명성 등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챔피언 반지에 대한 강한 미련을 남긴 체 씁쓸하게 퇴장하였고, 2001시즌 우승한 디백스의 마크 그래이스와 매트 윌리엄스, 랜디 존슨 등은 챔피언 반지를 갖기 위해 노장의 불꽃을 태웠다. 로켓도 예외는 아니다. 챔피언에 오르기를 무척이나 갈망했던 로켓은 거의 40살에 이르러서야 챔피언 반지를 얻었다(1999, 2000시즌).보스턴과 토론토를 거치면서 이루지 못한 꿈을 챔피언 팀인 양키즈에서 실현시킨 것이다. 그가 선발등판 시 베이브 루스의 기념비를 만지는 장면은 챔피언에 대한 강한 열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지금 그는 2개의 챔피언 반지를 갖고 있다. 어쩌면, 이제는 300승에 더 애착을 갖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다익선 아니겠는가...

O : Outstanding spliter - 클레멘스의 불같은 포심 패스트볼은 그의 상징이다. 포심 패스트볼은 그를 리그 최고의 파워피처로 만들었고, 로켓 역시 포심에 대해 강한 자부심과 믿음을 가지고, 공격적이며 과감하게 뿌려댄다. 하지만 클레멘스를 보다 세련되고 완벽하게 만든 건 그의 스플리터이다. 그의 스플리터는 뛰어난 스피들를 유지하면서 커다란 각을 긋기 때문에 타자들이 때려내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이번 월드시리즈에서도 그의 스플리터는 그 위력을 유감 없이 드러냈다.

C : Cy Young - 2001시즌 경이로운 승률 행진을 펼친 로켓은 결국 그의 6번째 사이영상을 얻었다. 1986, 1987, 1991, 1997, 1998, 2001시즌에 걸쳐 수상을 하게 되었다. 사이영상은 투수에게 있어 가장 영예로운 상으로써 7번의 노히트노런과 통산 5714개의 삼진을 기록한 전설적인 투수 놀란 라이언도 수상하지 못했던 상이다. 이런 사이영상을 6차례나 차지했으니 그가 얼마나 위대한 투수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역으로 랜디 존슨과 그렉 매덕스가 4차례 수상하고 있지만, 그의 6번의 기록을 갈아치우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3번을 수상한 페드로 마르티네스 만이 그의 기록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로켓에게 사이영상과 관련하여 아쉬웠던 시즌이 있었다면 1990시즌일 것이다. 당시 그는 경이적인 ERA 1.93 에 21승 6패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밥 웰치에게 사이영상을 내준 적이 있다.

K : KKKKKKKKKKKKKKKKKKKK....strucK out - 랜디 존슨에 의해 그의 탈삼진 능력이 상대적으로 가려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로켓의 능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는 이미 5차례나 리그 삼진 왕을 차지했다. 그것뿐인가? 한 경기 최다 탈삼진인 20K를 두 차례나 기록하였다(86년 4월 29일 VS 시애틀, 96년 9월 18일 VS 디트로이트). 이 기록은 캐리 우드(98년 VS 휴스턴)와 랜디 존슨(2001 VS 신시내티)만이 기록한 대기록이다. 게다가 로켓은 2001시즌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웠다. 탐 시버(3640)와 버트 블라일리븐(3701)을 넘어서며 통산 탈삼진 부분 3위(3717)에 올라섰다. 이제 그의 위에는 놀란 라이언(5714)과 스티브 칼튼(4136)만이 있을 뿐이다.

E : Estern division -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18년의 메이저경력을 모두 AL 동부지구에서 보냈다. 보스턴(13시즌), 토론토(2시즌),뉴욕Y(3시즌) 세 팀이다. 물론 많은 시즌을 보스턴에서 보내긴 했지만, 팀을 옮기는 과정에서 지구 라이벌 팀으로 향했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응원하던 입장에서 적으로 돌변해 버린 선수에게로의 팬들의 입장은 정말 난처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가 양키즈에서 은퇴할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그가 동에 번쩍했다는 것이다.

T : Triple crown - 현대 야구에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기는 정말 쉽지 않다. 그러나 로켓은 1997년 21승, 292삼진, ERA 2.05를 기록하며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물론, 사이영상도 수상했다. 이는 투수로서 1985년 드와잇 구든에 이어 처음이며, AL에서는 Hal Newhouser(45년, 타이거즈)에 이어 50년을 넘어서야 이루어진 기록이다. 그의 위대함을 다시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조금이나마 로켓에 대해 알아보았다. 2001시즌 로켓은 실력이었는지, 약간의 행운이었는지 모르겠지만 6번째 사이영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6번째 사이영상이 없더라도 그는 명예의 전당에 무혈입성 할 것이며, 팬들의 머리 속엔 최고의 투수로 기억될 것이다.

2003.08.01.

  • 출처

    직접 작성, 엠팍, esp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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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놀란 라이언을 닮고 싶어했던 '로켓' 로저 클레멘스(40·뉴욕 양키스)에게 삼진은 단순한 '아웃카운트 하나' 그 이상의 의미다. 그는 4명의 아들에게 모두 삼진(struck out)의 이니셜인 'K'로 시작되는 이름(코비, 코리, 카시, 코디)을 지어줬다.

그는 마흔이 넘은 지금도 96마일대의 강속구를 던진다. 스플리터는 몇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으며, 커브 또한 일품이다.

하지만 클레멘스의 최대무기는 자신감 있게 뿌리는 몸쪽공이다. 요즘 투수들이 홈런과 빈볼을 두려워해 몸쪽공 승부를 피하는 반면, 클레멘스는 '할머니라도 맞춰버리겠다'는 돈 드라이스데일의 정신으로 빈볼도 서슴치않는 이 시대의 마지막 헤드헌터(Headhunter)다.

클레멘스는 1986년 올스타전에서 직접 타석에 들어서서 당대 최고의 강속구투수였던 드와이트 구든(당시 뉴욕 메츠)의 직구를 경험하고 나서는 강속구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

자기 공에 대한 강한 믿음과 함께 남다른 승부욕 또한 오늘날의 클레멘스를 있게 했다. 그는 '선수들의 축제'인 올스타전에 나가더라도 다른 팀 타자들과는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타자들이 자신과 친해지면 자신의 공도 편하게 느낄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클레멘스는 올시즌까지 풀타임 19시즌을 뛰며, 293승151패 방어율 3.15 탈삼진 3,909개를 기록했다. 293승은 현역 최다승이며 3.15의 방어율은 시대와 구장의 차이를 감안한 조정방어율(ERA+)로 환산하면 145로 역대 7위에 해당된다. 2위 레프티 그로브와는 불과 3점차.

클레멘스는 역대 최다 사이영상 수상자(6회)이며, 한경기 최다탈삼진기록인 20K를 두차례에 걸쳐 달성한 유일한 선수다. 그는 역대 21번째 300승과 3번째 4,000탈삼진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클레멘스는 1962년 오하이오주 데이턴에서 태어났지만, 휴스턴에서 학교를 다녀 라이언으로부터 시작되는 '텍사스 파워피처'의 계보를 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클레멘스는 야구팀에서 투수 겸 1루수였고, 풋볼팀에서는 오펜시브엔드 겸 디펜시브엔드, 농구팀에서는 센터 겸 포워드였다.

클레멘스는 고등학교 졸업 당시 뉴욕 메츠의 지명을 받았지만, 주니어칼리지로 진학한 다음 텍사스대학에 편입했다. 당시 클레멘스가 메츠에 입단했더라면, 구든-클레멘스의 최강 영건 원투펀치가 탄생될 뻔했다. 클레멘스는 텍사스대학을 '칼리지 월드시리즈'에 올려 놓았고, 최종전에서 승리투수가 됐다. 1993년 텍사스대학은 클레멘스에게 대학 역사상 최초의 영구결번을 수여했다.

1983년 보스턴 레드삭스에 1라운드 전체 19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한 클레멘스는 초고속 승격으로 이듬해 5월 메이저리그에 데뷔했다. 8월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는 삼진 15개를 곁들인 무사사구 완봉승을 따내며 주목을 받았지만, 어깨가 탈이 나면서 이듬해 시즌까지 망쳤다.

1986년 4월30일(이하 한국시간)은 클레멘스가 야구의 새 역사를 쓴 날이었다. 시애틀 매리너스전에 등판한 클레멘스는 아메리칸리그 최고기록인 8타자 연속 삼진을 곁들이며 20개의 탈삼진을 기록, 라이언-스티브 칼튼-톰 시버가 공동으로 갖고 있던 1경기 최다탈삼진 기록 19개를 경신했다. 올스타전에서도 3이닝 퍼펙트로 MVP를 따낸 클레멘스는 결국 24승4패 방어율 2.48의 눈부신 성적으로 사이영상과 리그 MVP를 석권했다.

행크 애런이 '투수의 MVP 수상'을 비난하자, 클레멘스는 "애런이 지금도 선수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그의 머리통을 날려 내 가치를 증명했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24세의 3년차 투수가 대선수인 애런과 메이저리그를 상대로 한 거침없는 선전포고였다.

하지만 클레멘스는 포스트시즌에서 부진, 1986년을 완벽한 자신의 해로 만드는 데 실패했다. 보스턴은 빌 버크너의 믿을 수 없는 '알까기' 실책 끝에 월드시리즈 7차전 패배의 악몽을 되풀이했다.

이듬해 클레멘스는 재계약 문제로 스프링캠프를 불참한 후유증 탓에 시즌을 4승6패로 시작했지만, 끝내 20승9패 방어율 2.97의 성적으로 사이영상을 2연패했다.

1988년 18승, 89년 19승으로 꾸준한 활약을 했던 클레멘스는 1990년, 21승(6패)에 1.93의 방어율로 또 한번의 놀라운 시즌을 보냈다. 특히 228⅓이닝을 던지는 동안 단 7개의 홈런을 맞았는데, 6월9일 이후로는 아예 홈런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우타자 상대 피홈런은 제로였다. 하지만 사이영상은 27승의 밥 웰치(오클랜드)에게 돌아갔다.

오히려 18승10패 방어율 2.62로 전년도 보다 못했던 1991년에는 3번째 사이영상을 가져올 수 있었다. 클레멘스는 이듬해에도 18승11패 방어율 2.41로 좋은 성적을 냈다.

1993년. 그동안 위태위태했던 어깨가 다시 고장났다. 그 해 클레멘스는 11승으로 8년만에 18승 이상에 실패했으며, 데뷔후 최악인 4.46의 방어율을 기록했다. 94년에는 파업으로 인한 시즌 단축에 득점지원까지 부실하며 9승, 95년에는 부상자명단을 들락거리며 10승, 96년에는 다시 최악의 득점지원으로 10승. 클레멘스 시대의 종말이 오는 듯 했다. 하지만 클레멘스는 96시즌 마지막 10차례의 선발등판에서 6승2패 방어율 2.09를 기록, 부활의 조짐을 보였다.

96시즌을 끝으로 보스턴과의 계약이 끝났다. 클레멘스는 남고 싶었지만, 댄 두켓 단장은 과감히 그를 버렸다. 두켓은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페드로 마르티네스를 데려와 클레멘스의 빈자리를 성공적으로 메웠다.

보스턴을 떠난 클레멘스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계약했다. 사이닝보너스까지 포함하면 4년간 4,000만달러로, 투수 최초의 1,000만달러 계약이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전문가들은 '퇴물'을 데려오는 데 너무 많은 돈을 쓴 토론토 구단을 비난했다.

1997년 클레멘스는 다승(21승) 방어율(2.05) 탈삼진(292)에서 모두 1위에 오르는 '트리플 크라운'으로 재기에 성공, 자신을 비난했던 사람들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1945년 할 뉴하우저 이후 무려 52년 만에 나온 '트리플 크라운'이었다. 통산 200승 돌파와 함께 4번째 사이영상의 기쁨도 더해졌다.

클레멘스는 1998년 다시 '트리플 크라운'을 따내, 피트 알렉산더-레프티 그로브-샌디 쿠펙스 이후 역대 4번째로 2년 연속 '트리플 크라운'에 성공한 투수가 됐다. 만장일치로 5번째 사이영상 수상에 성공, 칼튼과 그레그 매덕스(애틀랜타)를 제치고 역대 최다수상자에 나섰으며, 역대 8번째로 3,000탈삼진을 돌파했다.

98시즌 중, 클레멘스는 마지막 목표인 '월드시리즈 우승반지'를 위해 계약서상에 명시된 '트레이드 요청 옵션'을 발동, 고향팀인 휴스턴으로의 트레이드를 요구했다. 그러나 토론토는 당시 절정에 올라있던 데이빗 웰스와 왼손셋업맨 그램 로이드, 2루수 호머 부시의 종합선물세트를 준비한 뉴욕 양키스로 클레멘스를 넘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클레멘스를 응원했던 보스턴 팬들은 그의 양키스 이적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

1999년 클레멘스는 전년도부터 시작된 연승기록을 20연승으로 늘리며 아메리칸리그 신기록을 세웠지만, 14승10패 방어율 4.60으로 만족스런 활약을 하지 못했다. 월드시리즈에서도 그토록 바라던 우승반지를 얻긴 했지만, 무임승차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이듬해 클레멘스는 정규시즌에서 13승에 그쳤지만, 시애틀 매리너스와의 챔피언십시리즈에서 1안타 15K 완봉승, 뉴욕 메츠와의 월드시리즈에서 8이닝 무실점의 역투로 마침내 자신의 힘으로 따낸 우승반지를 얻었다. 하지만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는 전부터 빈볼시비가 있었던 마이크 피아자에게 부러진 방망이 조각을 던져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지난해 클레멘스는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부상으로 떨어져나가는 행운 속에 '39세 20승'이 높은 평가를 받아 6번째 사이영상을 따냈다.

클레멘스는 내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300승을 따낼 장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케리 우드를 비롯한 많은 영건들이 도전하고 있지만, 삼진과 승리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제2의 클레멘스'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한때는 좋아했지만 보스턴을 배신한 인간으로 밖에 안보입니다.

2003.08.01.

  • 출처

    굿데이 참조,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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