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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 위의 씨름돌 : 박정우, 손희찬, 허선행

어느 스포츠에나 드라마 같은 역전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야구가 9회말 2아웃부터 시작되듯, 씨름은 뒤집기라는 화끈한 반전이 있다. 지금 씨름의 운명은 한판 뒤집기 그 자체다. 텅 빈 관객석이 익숙했던 비인기 종목의 경기 영상이 돌연 유튜브 조회수 200만을 넘어서더니, 이제는 씨름 예능까지 방송된다. 박정우와 손희찬 그리고 허선행. 올해 말, 듣게 될 세 이름, 그들을 먼저 만나봤다.

프로필 by COSMOPOLITAN 2019.11.30

모래 위의 남자들 

(박정우)데님 재킷 19만9천원 캘빈클라인 진. 데님 팬츠 15만9천원 데님벌츄. 벨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손희찬)데님 재킷 26만9천원 캘빈클라인 진. 데님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허선행)데님 셔츠 14만8천원 데님벌츄. 데님 팬츠 14만9천원 플랙. 벨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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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서 씨름 경기 영상이 화제를 모은 것을 계기로 씨름이 다시 부흥하고 있어요. 11월 말에는 ‘씨름듀스 101’이라 불리는 씨름 예능 <씨름의 희열(가제)>도 방영하죠.
손희찬(이하 ‘손’) 유튜브에서 씨름 영상이 화제가 될 때쯤, 마침 9월에 추석 장사 대회가 열렸어요. 이때 유독 선수들의 경기력이 좋았는데 씨름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진 상태에서 시너지가 난 거예요. 곧 방영할 예능에서 홍보까지 되면서 관심을 받았죠..
박정우(이하 ‘박’) 사실 유튜브 영상이나 예능보다 2017년에 선행이와 제가 출연한 씨름 홍보 영상이 먼저 화제를 모았어요. 비인기 종목인 씨름을 알리려고 찍은 영상이 알려지면서 현재 ‘씨름듀스 101’ 담당 PD님도 씨름을 접하게 된 거죠.
허선행(이하 ‘허’) ‘씨름 선수 중에도 이렇게 날렵한 몸매를 가진 사람들이 있구나’ 싶어서 프로그램을 기획하셨대요. 그런데 때마침 거짓말처럼 유튜브 영상이 뜨면서 흐름을 타게 됐어요.
 
<씨름의 희열>은 어떤 프로그램이에요?

올해 최고의 성적을 낸 태백급 선수 8명과 금강급 선수 8명이 출연해요. 선수들을 태극장사라고 칭하고, 천하장사를 가리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에요.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데, 출연진은 얼굴이나 외모를 기준으로 뽑은 게 아니에요. 2019년 시즌 성적을 기준으로 상위권 선수들을 캐스팅했죠. 물론 저희는 외모로 캐스팅됐다는 오해에 대해 굳이 부정이나 정정은 안 하지만요. 하하.
 
유튜브 씨름 영상에 달린 댓글들이 정말 웃겨요. 베댓이 “이 좋은 걸 할배들만 보고 있었네”예요. 그 밖에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어요?

“마님이 왜 돌쇠에게 쌀을 줬을까” 이런 댓글도 있었죠.
“조상님들이 왜 씨름을 만든 줄 알겠다”도 있어요. 신기한 게, 웃기고 좋은 댓글이 대부분이고 악플은 거의 없어서 감사했어요.
 
요즘 씨름의 인기가 많아진 걸 체감해요?

팬들이 정말 많이 생겼어요. 우선 인스타 팔로어 수가 급격하게 늘어났고, 시합장에 오는 분도 많아졌어요. 선물을 챙겨주시는 팬들도 있어서 깜짝 놀랐다니까요.
왜냐하면 예전에는 경기장에 사람이 없었거든요. 선수들의 부모, 지인, 지도자, 관계자들이 대부분이었어요. 보통 대회가 지방에서 열리다 보니, 관객 연령대도 높아요. 평소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스무 분 정도 계실까 말까예요. 관객석이 텅 빈 게 방송에 나갈까 봐 오히려 선수들이 걱정할 정도였어요.
경기의 경품 유무에 따라 관객 수가 달라져요. 차나 송아지, TV, 냉장고 같은 경품을 거는 지역에서 열리는 경기에는 사람이 엄청 오는데, 경품을 안 거는 경기는 그야말로 저희 선수들끼리 시합하는 거예요. 그런데 최근에 했던 시합은 선수들이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붐볐어요.
 
데님 팬츠 13만9천원 플랙.

데님 팬츠 13만9천원 플랙.

손희찬 선수도 그동안 SNS를 전혀 하지 않다가 최근에 인스타그램을 시작했죠?
원래 인스타 아이디도 없었는데, 주위에서 SNS를 하라고 많이 권했어요. SNS로 팬들과 소통하면 좋다고 해서요. 저는 게시물 올리는 법도 몰라서 첫 게시물도 선배님들이 올려주셨어요. 천천히 SNS 하는 법을 배워나가고 있는데 아직까지 익숙하지가 않네요. 사진 찍는 것도 쑥스럽고 올리는 것도 부끄러워요. 그래도 팬들이 댓글을 달면 웬만하면 저도 답글을 달아주고 있어요.
 
씨름에 대한 관심이 급등하는 가운데 외모나 몸에만 주목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런 관심이 부담스럽지는 않나요?

우선 저희가 씨름을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것 자체가 기뻐요.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건 좋은 거니까요. 저희의 근육은 애써서 보여주기 위해 만든 게 아니에요. 씨름은 순간적인 힘을 내야 하는 운동이라 웨이트가 꼭 필요하거든요. 몸매에만 주목해 씨름의 인기가 잠깐 반짝하고 말까 봐 걱정이죠.
이런 관심이 아예 없다가 갑자기 생기니까 신기해요. 더 좋은 경기력으로 씨름 보는 재미를 선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오늘처럼 잡지 화보나 광고 촬영 등 다른 분야의 일을 할 기회가 있으면 최선을 다해요. 씨름 선수에게도 색다른 이미지가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유튜브에도 꾸준히 노출되고 있어요. 씨름 선수 출신 크리에이터가 만든 씨름 채널 ‘ASSA DOIT’에서 저희를 많이 다루고 있거든요. 저희가 궁금하신 분들은 그 채널을 챙겨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다들 관심받는 걸 즐겨서 그런지 촬영할 때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옷을 알아서 벗더라고요.

몇백 명, 몇천 명 앞에서 팬티만 입고 운동하는 사람들인데 당연히 벗는 것에 거침이 없죠.
저희는 벗는 게 더 자연스러워서, 숙소 생활을 할 때는 거의 안 입고 있어요. 운동할 때, 씨름할 때, 시합 나갈 때, 잘 때 할 것 없이 벗고 있어요.
사실 이런 옷을 입고 있는 게 더 어색해요, 하하.
 
박정우 선수는 올해 유부남이 됐어요. 오늘 아내분도 촬영장에 동행했는데, 벗는 것은 물론 “제 얘기만 빼면 전 여친 얘기를 해도 돼요” 하실 정도로 쿨하시더라고요.

연애를 2년 정도 하고 결혼했어요. 결혼하고 싶을 만큼 좋은 사람이었고, 어렸을 때부터 일찍 가정을 꾸리는 게 꿈이라 빨리 결혼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유부남이어도 저를 좋아해주시는 팬이 많아서 감사한 마음이에요.
 
경량급만 주목받는 것이 우려되지 않나요?
몸매나 얼굴만 보고 씨름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그러면 나중에 인기가 식을 때 정말 급격하게 사그라들지는 않을까 걱정이에요. 또다시 씨름의 침체기가 올 테니까요. 그러니 외모보다는 씨름의 기술이나 각 체급의 매력을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씨름은 체급마다 색깔과 매력이 달라요. 저희 태백급 매력은 일단 다른 체급보다 빠르다는 거예요. 기술이나 박진감이 넘치고 상대 선수와 주고받는 기술이 많아요.
 
(허선행)데님 재킷 13만9천원, 데님 팬츠 13만9천원 모두 플랙. 벨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박정우)데님 팬츠 5만9천원 어커버. 벨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허선행)데님 재킷 13만9천원, 데님 팬츠 13만9천원 모두 플랙. 벨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박정우)데님 팬츠 5만9천원 어커버. 벨트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씨름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수많은 스포츠 중 굳이 비인기 종목을 선택한 이유가 뭐예요?
워낙 어렸을 때 시작해서 씨름이 비인기 종목이라는 생각 자체가 없었어요. 하하. 저는 초등학생 때 교내 씨름 대회에서 1등을 했는데 체육 선생님이 팔씨름을 하자고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선생님이 일부러 져주신 것 같은데, “너 힘 세다! 씨름 한번 하자”라고 권하셔서 시작하게 됐어요.
씨름부에 가면 체육 선생님이 빵 주고 우유 주고 이러니까 시작했죠 뭐, 하하. 마치 교회에 문화상품권 받으러 가는 것처럼요. 씨름은 입문하기도 쉬운데 한번 해보니까 재밌어서 쭉 했어요.
저는 제 발로 씨름부에 찾아갔어요. 교내 씨름 대회에서 우승했는데 우리 반에 씨름부원이 있다는 거예요. 그 씨름부 친구랑 겨뤘는데 당연히 제가 졌죠. 승부욕 때문에 억울해서 3일 연속으로 감독님을 찾아가 씨름하게 해달라고 졸랐어요.
 
씨름 선수들만의 독특한 문화나 버릇은 없어요?
선수라면 누구나 반삭은 한 번씩 다 해봤을 거예요. 왜냐하면 승패를 가릴 때 머리카락도 신체의 일부분으로 간주하거든요. 바닥에 머리카락만 닿아도 지는 거예요.
선수들의 악력이 세다 보니 경기 중에 상대편 샅바를 찢거나 터트리는 경우가 있어요. 경기 날 상대 선수의 샅바를 터트린 사람이랑 시합하면 큰일 나는 거죠. 하하. 그만큼 힘이 좋고 컨디션이 좋다는 뜻이니까요.
씨름 선수들도 승리하면 세리머니를 해요. 종교가 있는 선수도 많은데, 한번은 모래를 던지더니 “할렐루야! 하느님 아버지!”라며 주님을 찬양하는 사람도 있었죠. 팬티만 입고요, 하하.
 
선수들이 꼽는 씨름 경기의 관전 포인트는 뭐예요?

경기 규정부터 알아야겠죠? 씨름은 무릎 위 신체 부위가 땅에 닿으면 지는 거예요. 누가 먼저 닿느냐가 중요한데, 내가 먼저 떨어지는 상황에서도 상대방의 손이 먼저 땅에 닿아 상대가 지는 경우도 있고, 머리카락이 땅에 닿아서 지는 경우도 있어요. 넘어지는 것만 잘 봐도 재밌게 보실 수 있어요.
뭐니 뭐니 해도 씨름의 꽃은 뒤집기예요. 이겼다 싶은 순간에 지거나, 졌다 싶은 순간에 이기기 때문에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에요. 사람들은 늘 역전을 좋아하잖아요.
뒤집기는 내가 넘어지는 순간 몸을 틀어서 상대방을 뒤집는 기술이에요. 고난도 기술 중 하나인 데다가 시도할 수 있는 타이밍이 잘 오지도 않아요. 어려운 만큼 멋있는 기술이에요.
 
선수들 중에서 셋이 유독 친하다고 들었어요. 특히 허선행 선수는 실업팀의 막내죠. 아이돌 그룹에서도 막내 포지션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데, 씨름계의 막내라는 타이틀은 어떤가요?

형들이랑 시합해서 져도 잃을 게 없어요. 왜냐하면 저는 어리니까요. 그런데 형들은 이룬 것도 많고 잃을 것도 많죠. 그래서 형들이 긴장을 더 많이 할 수밖에 없어요. 자기보다 어린 동생이랑 맞붙는다는 게 무척 긴장되고 부담될 거예요. 저는 그걸 무기로 잘 쓰고 있어요. 제 강점은 패기니까요!
 
곧 있으면 ‘2019 천하장사 씨름축제’가 열리죠? 세 선수가 맞붙을 텐데, 우승하면 코스모 독자들을 위한 세리머니를 해주실 건가요?

옆돌기를 하겠습니다.
남들과 다르게 앞구르기를 할게요.
저는 래퍼처럼 양손으로 ‘러브 사인’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하하.

Credit

  • Feature Editor Ha Ye JeneKim Ye Rin
  • Photographer Park Ja Wook
  • stylist 전진오
  • hair&makeup 김환
  • assistant 김상혁
  • Design 조예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