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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

소설

[ 小說 ]

요약

소설은 현실의 인생 내용을 중심으로 한 사건을 허구적으로 서술한 산문체의 문학양식으로 서사문예에 속한다. 있음직한 허구의 세계를 그리되, 인물·사건·공간이라는 3요소를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김시습이 쓴 한문단편집 『금오신화』가 소설의 장을 열었다. 뒤이어 우리 소설문학의 원형과 두 개의 기둥이라는 평가를 받는 「홍길동전」과 「구운몽」이 나오면서 본격적인 단계로 접어들어 현대에 이르렀다. 우리 소설은 주인공의 전기적인 서술구조, 교훈주의적인 가치 강조, 웃음의 해학성, 수동적인 운명론적 세계 인식 등의 특징을 보인다.

정의

현실의 인생 내용을 중심으로 한 사건을 허구적으로 서술한 산문체의 문학양식. 서사문예.

소설의 개념

소설이라는 명칭은 원래 동양의 경우, 오늘날의 서사학적 개념과는 다소 다른 뜻을 가지고 있었다. 소설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동양 기록에 나타난 것은 『장자(莊子)』 「외물편(外物篇)」과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 등에서였다. 이들 기록을 보면, 소설이라는 말은 본래 대도(大道)와 거리가 먼 꾸민 말로서, 명예를 구하는 속된 말 나부랭이 또는 패(稗), 즉 세미(細米)와 같은 가담항어(街談巷語)의 뜻을 가지고 있었다. 즉, 패관(稗官)들에 의하여 채집되어 제왕이나 통치자의 참고자료가 되는 시정이나 길거리에서 얻어들은 말이나 이야기와 같은 소도(小道) 및 잔총소어(殘叢小語)의 뜻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도 소설이라는 명칭은 이규보(李奎報)의 『백운소설(白雲小說)』에서 처음 비롯되지만, 대개 패관문학(稗官文學) · 패설(稗說) · 패사(稗史) · 야승(野乘) · 수필 등의 포괄적이고 보잘것없는 속설로 인식되어 왔으며, 유학자들에 의해서 그 존재의미 자체가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다가 개화기에 이르면서부터 량치차오(梁啓超)의 「논소설여군치지관계(論小說與群治之關係)」 등의 근대적 소설이론을 수용하면서 이러한 소설관에 변화가 두드러지게 일어나게 되고, 소설의 사회적인 효용성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 평가가 부정적이기는 했지만 「외물편」이나 「예문지」에 나타나고 있는 설명은 소설의 원형으로서의 의미를 적지않게 암시하고 있다. 그것은 첫째, 소설에는 곧 허구(虛構)라는 개념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꾸민다[飾]’나 ‘만든다[所造]’라는 말에 이미 허구의 가능성이 내재된 것도 사실이며 의사(擬似) 역사담론의 의미를 지닌다. 소설가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른바 ‘패관’은 역사를 엄정한 사실에 근거하여 기록하는 사가(史家)인 태사공(太史公)에 비해서는 허구의 인간(Homofictor)이며, 사가라기보다는 일종의 작가인 것이다.

이는 우리의 기록인 서거정(徐居正)의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에 밝힌 양성지(梁誠之)의 서문에, “패관소설은 유자(儒者)들이 문장을 가지고 우스개소리를 만들되, 넓은 지식을 펴기 위해서나 혹은 심심풀이를 하기 위하여 만든 것”이라는 설명에서도 볼 수 있다. 사가인 태사공은 사실의 주물숭배를 중시할 수밖에 없지만, 작가에 가까운 ‘패사씨’나 ‘외사씨’는 사실을 토대로 하면서도, 서사적으로 꾸미고 변형하고 윤색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실제로 일어난 것과 일어날 수 있는 것을 이용하는 역사와 소설의 상동성과 상이성이 연유된다. 역사는 역사성(historicity)과 사실성에 근거한 서사체(narrative)이며, 소설은 허구성(fictionality)에 근거한 서사체인 것이다. 요컨대, 사가인 사씨(史氏)나 태사씨(太史氏)와는 달리 패관은 소설가의 원형이다.

둘째, 가담항어 또는 도청도설 및 잔총소어라는 의미는 경서(經書)나 사기(史記) 등에 비하여, 비록 세속적이고 천박하기는 할지라도 그것이 오히려 인간의 삶의 현장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현실성을 그만큼 존중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의 소설과 맥락이 이어져 있다. 소설이란 현실적인 삶을 재현하는 서사문학인 것이다.

또한, 우리는 전통적으로 소설을 ‘이야기’라 일컫고 또 소설책을 ‘이야기책’이라고 일컫는다. 이런 인식 속에도 역시 두 개의 뜻이 내재되어 있는데, 서사성과 허구성이 곧 그것이다. 서사성이란 사건의 서술이라는 뜻이며, 허구성이란 사실의 전달과는 달리 상상력에 의하여 사실처럼 꾸민 것임을 뜻한다. 이야기란 사실의 재현일 수도 있지만, 흔히 ‘옛날 어느 곳에’라든가 ‘호랑이 담배필 적에’라는 허구적인 시간의 원점을 그 발단 부분에서 내세우고 있다. 이는 이야기 발단의 시간적 정식성인 동시에 허구화인 서사적 기본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제장치를 전제로 한 이야기의 내용은 케테 함부르거(Hamburger, K.)가 일컫는 발언 주체의 자아원점(自我原點)과는 거리가 먼 꾸며진 말, 이른바 ‘비현실적 발언’이다. 또는 이른바 ‘미메시스(Mimesis, 모사)의 각도’가 넓은 서사양식이다.

한편, 오늘날에 있어서 소설이라고 하면 흔히 영어의 ‘노블(novel)’을 연상한다. 이는 바로 중세의 서사문학인 ‘로맨스(romance)’에 대한 대립개념어이다. 중세문학인 로맨스는 보통 황당무계한 모험과 연대를 다루는 전기적(傳奇的) 이야기로서, 현실과 유리된 환상적인 귀족문학이다. 그리고 순결과 미덕을 보존하는 것에 가치를 두며 규범의 법칙을 존중한다. 이에 비하여 그에 대항하는 상업시민계층의 문학인 노블은 사회적인 탈을 쓴 현실적 인간의 성격과 사회적 현실과 사건을 냉철하게 관찰하고 이 양자를 결합하고 거기에서 하나의 세계상을 형성하려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의 소설이라는 말의 개념 속에는 패관문학 · 이야기책 · 근대적인 노블 등을 포괄하기도 하지만, 다소 협의적으로 보면 현실의 삶을 대신하는 인물과 행동 및 인간관계가 약간의 복잡성을 띤 구성 속에서 극적으로 제시된 산문서술의 허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 개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소설은 서사문학, 즉 이야기의 문학이기 때문에 극적으로 전개되는 구성적인 이야기이다.

둘째, 소설의 이야기는 허구다. 작가는 실제의 인생에 대한 관찰에서 그 소재를 끌어 오지만, 그의 의도와 상상력에 따라 새롭게 선택하고 창조, 형성하기 때문에, 가공된 이야기이다.

셋째, 소설의 이야기는 삶에 관련된 현실성을 가진다. 흔히 소설을 인간의 서사시라고 일컫는다.

넷째, 소설은 서술의 문학이므로 서술자를 필수적으로 가진다.

다섯째, 소설은 작가의 사상 · 인생관 · 사회관이 나타나는 문학양식이다.

여섯째, 소설의 기원에 대해서 혹자는 서사체의 진보적 둥지에서 생겨난 한 가지로 보는 견해도 있고, 전대 서사문학과 단절시켜 보는 견해도 있다.

소설의 장르

이야기의 예술 또는 문학으로서의 소설은 앞에서 지적하였듯이 그 장르적인 본질에서 인물 · 사건 · 공간을 불가결의 3요소로 하는 서사문학 또는 서술의 문학이다. 즉, 어떤 일정한 제시적 사건의 전개를 서술적으로 표현하는 문학의 하나이다. 서사문학이란 주관적인 감정의 상태를 표출하는 서정문학과는 달리, 또한 사건을 객관적인 대상으로 서술하면서도 작중인물의 대화를 통하여 사건을 제시하는 극문학의 경우와도 달리, 한 사람의 서술자를 통하여 제시하는 문학이다.

따라서 서사문학의 원형이란 서사적인 내용인 사건, 서술자 및 청중이라는 삼위일체의 관계를 반드시 요하는 문학이다. 이야기의 발화(發話)를 위한 이러한 삼위일체 관계를 흔히 ‘서사적 근본상황’, 또는 ‘서술의 근원상황(카이저)’이라고 일컫는다. 『천일야화』 · 『데카메론』, 박지원(朴趾源)의 「옥갑야화(玉匣夜話)」, 김동인(金東仁)의 「배따라기」 등과 같은 이른바 액자소설은 이러한 이야기의 근원상황을 그대로 제시한 작품이다.

사건의 서술방법은 주로 말하기, 즉 보고적인 요약 및 보여 주기, 즉 장면 묘사 등으로 이루어지며, 서술시제는 보통 과거형이 된다. 이는 과거시제이긴 하나 서사문학에서는 특유한 관조적 체험형식으로서 현재성을 지닌다. 이를 ‘서사적 과거(Episches Präteritum)’(함부르거)라 일컫는다. 또한, 서술자의 중개를 요하고 서술은 일인칭 형식과 삼인칭 형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전자의 형식은 서정문학에 더 접근한 것으로서, 사건이 원칙적으로 작가 자신에 의하여 견문, 체험된 것처럼 제시된다. 이에 비하여, 후자의 형식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관찰되고 제시된다. 특히, 후자의 경우에 서사작가는 전지성(全知性)과 제한성의 양면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유형론은 슈탄젤, 돌레첼, 코온 등의 분류로 대표된다.

서사문학의 종류에는 일반적으로 신화 · 전설 · 민담 · 서사시 · 소설 등이 포함되며, 그 밖에 일화(逸話) · 희학(戱謔) · 우화(寓話) 등이 있다. 소설은 인물의 행위를 객관적으로 전개하여 대상성을 중시하는 서사문학이면서도 서사시나 신화와는 일단 구별된다. 서사시와 대비하여 볼 경우, 물론 인물 · 사건 및 장소라는 세 가지 요소로 이루어진 형태라는 점에 있어서는 동질적이기는 하나, 산문과 운문이라는 외형상의 차이 이외에도 내용면에서 개인이 꾸민 이야기 대 집단적 세계의 이야기라는 차이가 있다. 이러한 차이는 소설이 전설이나 민담과 다른 점이기도 하다. 또, 신화는 근본적으로 신에 관한 이야기인 데 비하여 소설은 인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따라서, 소설이란 작가의 개체화된 경험이 만들어낸 허구의 세계인 것이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밝혔듯이 역사는 특정한 시간 · 장소 ·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의 사실적인 기록임에 비하여 문학작품은 충분히 있음직한 사건의 기록이다. 즉 있음직한 허구의 세계가 소설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허구의 세계도 현실세계의 경험이나 사실을 토대로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오히려 사실의 재현이기 때문에 사실을 정리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소설은 그 특성으로 보아 주관적 감동의 표출인 시의 경우처럼 순수감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일종의 건축과 같이 인물 · 사건 · 장소를 구조적 기본요소로 하는 허구적인 서사문예이다. 즉,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 의하여 사건이 전개되고 완결되는 허구적인 한 세계의 계획인 것이다.

소설의 분류와 유형적 범주

소설의 유형을 분류하고 또 이를 범주화하려면 일정하고 일관된 분류의 체계와 기준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많은 소설을 객관적으로 타당한 몇 개의 제한된 유형으로 구분한다는 사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한 시대의 것이 아니고 생성과 소멸 또는 변이를 되풀이하는 역사적인 변천의 추이를 전제로 할 경우, 고전소설과 현대소설을 함께 포괄하는 유형화는 거의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러한 점에서 어떤 소설의 유형론도 상대적인 틀일 뿐이다.

소설을 분류하는 기준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길이 · 제재 · 주제 · 형식 · 사조와 경향 등이 그 기준이 되는가 하면, 소설의 각 구성요소, 자아와 세계의 관계, 사회적 신분계층 등이 준거가 되기도 한다. 우리 소설의 장르 분류도 일반적 분류에 의하여 나눌 수 있지만, 기존 연구의 분류, 특히 고전소설의 분류양상은 상당히 다양하다. 고전소설은 주로 소재와 내용을 유형분류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러한 방법은 소설의 유형을 가르는 타당한 방법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때로 분류기준의 난조로 인한 중복이나 의식적인 열거의 느낌이 없지 않고, 또 서술형태론적 고려가 도외시되고 있다는 점이 없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 소설의 장르체계에서는 고전과 현대소설의 유기적인 맥락과 변이의 추이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분류의 세분화 못지않게 고전과 현대의 소설을 상호 유기적으로 체계화하는 작업 및 보다 체계를 갖춘 포괄적인 방법이 요망된다. 여기서는 소설의 독자성을 감안, 주로 분류의 근거나 기준을 소설의 서사세계를 이루는 구성요소인 인물 · 사건 · 공간 및 서술자의 기능 등 작품내재적 현실성과 경향, 기타에 두고, 주요 구분과 각 항의 범주화를 계획하여 보고자 한다. 다만, 분류 이전에 전제되는 사실은 하나의 작품이 절대적으로 어느 한 유형에 해당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즉, 하나의 작품이 하나의 유형에만 엄격하게 해당하고 다른 유형에는 전혀 관계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을 만큼 상호중복적이라는 점이다. 어느 구성요소도 배제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물(성격) 및 형상의 소설

소설은 어떤 의미에서는 서사적인 인간학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을 ‘인간의 서사시’라고 일컫는 것도 그만큼 인간인식과 인간성 탐구에 역점을 두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표적인 한 인물의 성격제시 및 그 인물이 지닌 비범하고 특수한 행위나 현저한 형태를 주로 제시하고 있는 소설을 포괄적으로 일러서 인물소설 또는 형상소설이라고 알 수 있다. 이 경우 인물이 행동하는 사건이 중요하기 때문에, 특히 소설의 구성요소로서 사건과 긴밀한 관계에 있음은 물론이다. 비범하게 강한 성격이든, 해학적이고 익살스럽든, 또는 위장적이든간에 인물의 현저한 입상화에 주력하거나 그 특수한 성격이 서사내용을 주도해 가는 유형의 소설을 일컫는다.

우리 나라의 고대소설은 그 표제나 성격에서 전기적인 일대기 성격을 가진 까닭에, 크게는 인물형상소설과 사건소설의 복합적 속성을 지닌 점이 많다고 하겠으나, 이러한 유형의 포괄형태로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영웅소설 · 희학소설(戱謔小說) 및 의인소설(擬人小說) · 우화소설이다.

영웅소설이란 비범한 인물의 영웅적인 삶을 제시하고 있는 소설이다. 즉, 그 존재양식으로 보아 자아와 세계의 갈등과 대립을 해소시킬 뿐 아니라, 자아의 이념으로 세계를 조정하게 된다. 이러한 소설 속의 인물들은 흔들리는 기존의 가치체제를 복원하려는 유형과 개신하려는 유형으로 나뉜다. 「조웅전(趙雄傳)」이나 「유충렬전(劉忠列傳)」이 전자라면, 의적의 삶을 그린 「홍길동전」은 후자에 속한다. 현대소설에 이르러 인물의 입상화나 성격 또는 유형(전형) 제시의 인물소설은 지속되고 있으나, 사회와 생의 범속성에 대한 인식 때문에 영웅소설은 소멸되어 버린다. 물론, 개화기의 역사전기문학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영웅소설로는 「홍길동전」 · 「조웅전」 · 「유충렬전」을 비롯해서 「소대성전(蘇大成傳)」 · 「유문성전(柳文星傳)」 · 「이순신전」 · 「곽재우전」 · 「임경업전」 등이 있다. 여기에서도 허구적인 것과 경험적인 것이 양분된다.

희학소설은 영웅소설과는 달리 인간의 정중성보다는 문자 그대로 웃음과 풍자의 대상이 되는 인물의 제시를 주로 하는 소설이다. 인물의 입상이 평면적이고 또 인물설정이 해학적인 희화(戱畫)의 성격을 지니거나 정상적인 상태보다는 열등하고 우둔하며 불합리한 면모를 지니고 있다. 인간의 우둔함과 우행을 비탄한다는 점에서 풍자소설도 인물소설이다. 박지원의 「호질」 · 「양반전」 등 일련의 한문소설과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성격이 내재하는 판소리계 소설이 이러한 유형에 속한다.

의인 · 우화소설은 동물 또는 비인격적인 대상에 인격을 부여하여 교육, 풍자하려는 소설이다. 따라서, 인물소설로서는 매우 변칙적인 형태의 소설이다. 이러한 인격적 대치의 형태는 고려의 가전체에서 비롯하여 안국선(安國善)의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으로까지 이어진다. 그밖에 신분계층을 근거하여 양반소설 · 평민소설로도 분화된다. 한편, 현대소설로 접어들면서 나타난 포괄적인 인물현상화의 소설유형으로는 농민소설 · 지식인소설 · 심리소설, 성장소설(成長小說) · 예술가소설 등이 있다.

사건소설과 그 갈래

사건소설이란 주로 소설의 원초적 형태로서 이야기와 이야기 줄거리 또는 사건과 그 구성을 중심으로 한 소설이다. 즉, 시간의 연대기적인 진행구성 속에서 사건의 기복과 운명의 시간적 추이를 주로 서술하는 소설이다. 따라서 달리는 행동소설이라고도 일컬을 수 있다. 성격이나 심리의 창조 및 극적인 구성보다는 주인공의 일대기적 전기의 단궤적(單軌的)인 직선구조로 이루어지는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소설은 대부분 사건소설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사건이 거듭되고 이러한 사건의 행복한 종말이 존중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건소설의 범주에 포함되는 것으로는 주로 애정소설 · 역사소설, 가문사(家門史) 또는 가족사소설을 들 수 있다. 그 밖에 현대적 형태로서는 추리소설이 이에 해당된다. 이른바 기봉소설(奇逢小說) 또는 기봉기연류(奇逢奇緣類)도 사건소설에 해당한다.

애정소설이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염정소설(艶情小說) 또는 연애소설이다. 인간 삶 가운데 가장 원초적이며 근본적인 문제의 하나인 남녀간의 애정 및 결혼을 제재로 한 것으로서, 시간의 진행에 따라 서사적 경과는 주로 만남-이별-재회와 같은 단위로써 이루어진다. 남녀간의 사랑이 지상에서 삶의 최고가치의 하나로서 받아들여진 관념을 근거로 하는 이 애정소설은 그 시대나 사회의 애정행위의 이상적인 모범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애정소설로서 김시습(金時習)의 「이생규장전(李生窺牆傳)」, 김만중(金萬重)의 「구운몽」, 권필(權鞸)의 「주생전(周生傳)」, 「춘향전」 · 「숙향전」 · 「숙영낭자전」 · 「백학선전(白鶴仙傳)」 · 「채봉감별곡(彩鳳感別曲)」 등이 있다. 이 가운데에는 양반 귀족부인의 여가를 충족시켜 주는 궁정 · 귀족적 감상과 결부된 유형도 있으며, 또 더러는 신분계층을 초월하는 서민적인 유형도 있다. 이러한 애정소설은 신소설을 거쳐 이광수(李光洙)의 「무정」에 이르면서, 연애와 결혼은 개인이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하는 결과이어야 한다는 데까지 진전된다.

역사소설이란 역사상의 사건과 인물을 소재로 하면서 역사의 겉옷을 입고 있는 소설이다. 그러나 그 본질에 있어서 역사소설은 역사가 아니라 소설이다. 그것은 비록 사실이나 역사적인 소재에 불가피하게 매이기는 할지라도 역사에 대한 강사(講史)보다는 역사의 미학적 기능화, 즉 문학적인 진실을 구현함에 그 의도가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우의(寓意)의 방법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소설의 원초적 내지는 고전적 형태는 사전(史傳)의 한 형태인 사실적이고 경험적인 서사체인 열전(列傳)이다. 열전은 원래 중국의 히스토리오그래피의 시학에 근거한 역사전기이며, 역사의 서술이다. 그러나 소설과 연계되면서 과도한 경험주의 요소보다는 허구적이거나 민담적인 요소가 개재되었던 것이다.

조선시대의 역사소설은 실록적이고 전기적인 성격을 지니고 나타난 것으로, 전쟁소설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임진록(壬辰錄)」을 비롯하여 「임경업전」 · 「박씨부인전(朴氏夫人傳)」 등이 있다. 개화기에는 장지연(張志淵)의 「애국부인전(愛國夫人傳)」 등이 있으며, 역사소설이 성행하던 1930년대에 이르러서는 전통적인 야사(野史)의 소설화와 함께 역사소설의 주제가 현대화하는 성향까지도 나타나게 되었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역사소설로는 이광수의 「마의태자」 · 「단종애사」 · 「이순신」 · 「이차돈의 사」, 김동인의 「젊은그들」 · 「운현궁의봄」, 박종화(朴鍾和)의 「금삼의 피」 · 「대춘부(待春賦)」, 홍명희의 「임꺽정」, 윤백남(尹白南)의 「흑두건」 · 「대도전」, 현진건(玄鎭健)의 「무영탑」 · 「선화공주」 등이다. 이들은 앞 항에 말한 인물소설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가문사소설 또는 가족사소설이란 가문 또는 가족의 생활을 세대적인 순차에 따라 연대기적으로 서술하는 소설로서, 쉽게 말하여 가족의 운명과 역사를 소설로 서술한 것이다. 즉, 세대의 지속을 통하여 한 가족의 융성과 쇠퇴의 반복적인 순환과정을 서술함으로써, 변천하는 사회와 역사와 인간 간의 밀접한 상호관계를 보여 주는 소설이다. 따라서, 변화의 연대기에 어울리게 가족의 계보, 시간의 변천적인 선로, 사고의 구획과 차이, 세대의 교차 등이 그 구성문법으로 제시되어야만 한다.

독자적인 개인보다는 가문적인 단위로 존재하는 개인을 더 문제삼는 전통적인 우리 소설은 그 자체가 이미 가족소설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가족소설은 「조씨삼대록(曺氏三代錄)」 · 「임씨삼대록(林氏三代錄)」 · 「소씨삼대록(蘇氏三代錄)」 · 「유씨삼대록(劉氏三代錄)」 등이다. 이들은 모두 가문의 역사를 세대적인 가계사의 지속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족사소설의 원천을 이루고 있는 작품들이다. 근대에 이르러 서구소설의 영향과 함께 인간과 사회 및 역사의 관계를 해명하는 새로운 형태의 가족사소설로 출현하게 되었다. 이인직(李人稙)의 「은세계」를 비롯하여 염상섭(廉想涉)의 「삼대」, 채만식(蔡萬植)의 「태평천하」, 안수길(安壽吉)의 「북간도」 등이 가족사소설에 해당하는 작품들이다.

추리소설은 탐정소설이라고 일컬어지기도 하지만, 주어진 결론에 의하여 주어지지 않은 원인을 판단한다는 추리라는 형용사가 붙어 있는 것으로서, 살인과 같은 이야기 서술 및 범죄의 추적과 관계가 깊은 소설이다. 즉, ‘누가 범인인가?’, ‘왜 죽였는가?’와 같은 사건해명의 완결성이 수반되어야 하는 소설이다. 우리 소설의 경우, 이른바 공안소설(公案小說), 즉 재판소설이 이와 비슷하거나 근접한 형태겠으나, 사건의 발생과 범인추적 및 사건 해결의 흥미를 지니게 하는 근대적 추리소설은 신소설 「구의산(九擬山)」을 거쳐 당대에 이르러서야 출현하게 되었다. 근자의 소설들 가운데 이런 미스터리성을 근거로 하는 작품도 눈에 띈다.

공간소설과 그 갈래

서사세계의 제3구성요소로서의 공간이란 장소나 배경 또는 환경을 뜻한다. 따라서, 공간소설이란 인간생활의 장소나 공간 또는 환경이 더 중시되는 유형의 소설을 일컫는다. 즉, 공간이나 장소의 제시가 강조되는 이러한 공간소설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 가정소설과 사회소설, 지역적 성격을 띤 농촌소설, 세태소설과 기타 환상적 공간이 개재하는 몽유록소설(夢遊錄小說) 등이다.

가정소설이란 일반인들의 가정생활을 다루는 소설이다. 즉, 서사공간을 주로 가정 내에 두고 그 구성원의 관계나 갈등 등을 사건으로 서술하는 소설이다. 가족사소설이 주로 가족의 세대적인 융성과 소멸의 연대기라고 한다면, 가정소설은 서민문학이 등장한 이래 활발하게 출현한 것으로서, 결혼 · 부부애 · 친지관계 및 고부의 갈등 등 가정생활의 갈등, 융합의 양상과 단면을 제시한다. 우리의 가족제도는 전통적 대가족제도일 뿐 아니라 부권적이어서 가정문제가 상당히 복잡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가정문제를 다룬 소설이 비교적 많은 편이었으나 이들은 대개의 경우 서민들의 감상적인 취향과 영합된 경향을 띠고 있다.

대표적인 가정소설로 「장화홍련전」을 비롯하여 「정을선전(鄭乙善傳)」 · 「김인향전(金仁香傳)」 · 「사씨남정기」 · 「옥린몽(玉麟夢)」 · 「어룡전(魚龍傳)」 · 「조생원전(趙生員傳)」 · 「신유복전(申遺腹傳)」 등이 있다. 이들 소설들은 모두가 가족 구성원 사이의 관계가 삼각형적인 갈등관계 내지는 계모로 인한 전실자녀의 수난과 비극, 처첩의 갈등과 가족원의 불화 등을 다룸에 있어 일정한 도식성을 지닌다.

「홍길동전」은 이러한 가정소설적인 양상에서 사회소설적인 성격으로 확대된 경우라 하겠으며, 개화기의 「치악산」을 비롯한 많은 신소설 작품은 비록 가정 외적인 영역을 소설 속에 많이 수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본질의 하나로서 이러한 가정소설의 양상을 구체적으로 지니고 있기도 하다. 왜냐하면, 봉건적인 도덕의 굴레에 매인 여성의 비극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소설에 이르게 되면 사회의 구조나 위력이 개인이나 가족에 미치는 영향을 다루게 된다.

사회소설은 소집단 사회인 가정의 영역을 넘어서서 사회의 본성 · 기능 · 제도 등에 주요 관심을 두고 사회조건이나 사회문제의 해결을 주장하는 소설이다. 허균의 「홍길동전」은 우리 소설사에서 사회소설의 출발이 되는 작품이다. 그 밖에도 「전우치전(田禹治傳)」이 있으며, 박지원의 「옥갑야화」에 나오는 「허생 이야기」 및 「양반전」이 이에 해당한다. 또한 민담적인 공간의식의 불명확성과 초기 소설의 회상적인 시공시점을 거쳐 현실의 세계에 대한 경험적인 인식이 증대되면서부터 소설의 사회성은 더 확대되었다. 신소설의 정론성(政論性)은 다분히 신소설을 사회소설적인 연설로 바꾸었으며, 1920년대 이후의 우리 소설은 이데올로기 소설 및 로망 아 테즈(roman ā thése)로서, 사회소설 양상이 현저하다.

농촌소설은 다르게는 농민소설이라고도 일컫는 것으로, 지지적(地誌的)인 공간으로 보아 농촌을 배경으로 할 뿐만 아니라, 흙과 밀착되어 있는 농민의 삶을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전통적인 소설에서는 이러한 유형이 드물지만, 특히 현대소설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출현한 유형이다. 현대소설 가운데에서 주요한 농촌소설 또는 농민소설은 이무영(李無影)의 「흙을 그리는 마을」 · 「제1과 제1장」 · 「흙의 노예」, 박영준(朴榮濬)의 「목화씨 뿌릴 때」, 이광수의 「흙」, 심훈(沈熏)의 「상록수」, 그 밖에 김유정(金裕貞)의 「만무방」, 김정한(金廷漢)의 「사하촌(寺下村)」 등이 있다.

도시소설은 농촌소설과는 다르게 그 배경공간을 도시에 두고 있는 소설로서, 도시의 삶이 지니고 있는 특유한 조건과 양식, 즉 도시성을 반영하고 있는 소설이다. 따라서 이는 현대소설의 유형적인 양식에 해당한다. 우리의 현대소설사에서는 모더니즘의 경향이 성행하던 1930년대에 이와 같은 양상이 적지 않게 나타났지만, 좀더 본격적인 도시소설 형태가 정립된 것은 1970년대 이후의 일이다.

세태소설은 일명 풍속소설이라고도 일컫는 것으로, 한 시대 한 사회의 유행 · 취미 · 풍속 · 기호 · 사회적 관습 · 생활양식을 묘사하는 소설이다. 이 소설 역시 근대적인 사실주의 이래 나타난 것으로 우리 문학의 경우 1930년대에 모더니즘계 문학인 박태원(朴泰遠)의 「천변풍경(川邊風景)」 등이 해당된다. 물론, 그 원류를 따지면 20세기 초는 물론 소설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패사에까지 소급할 수 있다. 패사, 즉 가담항어가 곧 풍속의 묘사이기 때문이다.

몽유록소설은 앞에 든 다른 공간적인 소설과는 달리, 장소나 환경 · 지역 등의 지지적인 공간이 아닌 비현실적인 꿈의 환상적 세계를 소설에서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특이한 형태의 공간소설 유형이다. 말하자면 현실세계 속에 꿈의 세계를 포함시킴으로써 액자소설과 우의의 성격을 지닌 것이다. 『삼국유사』 「조신(調信)의 꿈」에서 그 내재적 원형을 찾을 수 있거니와 김만중의 「구운몽」, 원호(元昊)의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및 김시습의 『금오신화』, 그리고 「대관재몽유록(大觀齋夢遊錄)」 · 「운영전(雲英傳)」, 유원표(劉元杓)의 「몽견제갈량(夢見諸葛亮)」이 모두 이 유형에 해당된다. 이런 유형은 소설시학적 측면에서 보면 ‘꿈의 시학’에 속한다.

서술상황으로 본 소설의 갈래

소설은 서술의 문학이다. 따라서, 다른 장르의 문학과는 달리 서술자의 역할과 기능을 필요로 하는 문학이다. 서술자의 기능과 역할, 즉 서술의 시점을 근거로 할 경우, 소설이 크게 일인칭소설과 삼인칭소설로 구분되는 것은 하나의 일반론이다.

일인칭소설은 서술자가 체험의 재생 · 고백 · 변증을 하거나 관찰의 목격자적 기능을 한다. 자전소설(自傳小說) · 서간체소설(書簡體小說) · 일기체소설(日記體小說)이 이에 해당한다.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옛 소설에서 이러한 일인칭소설의 형태로 일관된 작품은 많지 않다. 내부 이야기가 일인칭으로 서술된 「운영전」이나 「한중록(恨中錄)」 등에서 그와 같은 요소가 나타나 있기는 하다. 또, 서간과 일기도 부분적으로 소설 속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단독형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현대소설의 단계로 넘어 오면서부터, 구체적으로 1920년대 이후 많은 일인칭소설이 활발하게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전통적 잠재력과 일본의 이른바 ‘와다구시소세스(私小說)’의 영향이었을 것이다.

삼인칭소설은 서술자가 쉽게 인지할 수 있는 전지적(全知的)인 기능을 하는 경우와 서술자가 완전히 물러서 버린 경우가 있다. 고전소설은 그 서술태도에서 대개가 전자에 해당한다. 서(序) · 발(跋)의 첨가와 함께 논평의 개입이 그것이다. 한편, 현대소설의 서술태도는 전자보다는 후자가 훨씬 우세한 편이다. 이는 객관묘사의 미적 처리가 중시된 결과일 것이다.

하나의 소설이 일인칭으로 서술되든 또는 삼인칭으로 서술되든 작품 전편이 일관된 어느 하나의 시점을 택하면 그것은 구성유형으로 보아서 단일소설이다. 이와 다른 유형의 하나로서 액자소설이라는 형태가 있다. 즉, 외부 이야기 틀 속에 하나 또는 여러 개의 내부 이야기를 내포하는 서술유형의 소설로서, 여기서는 서술자의 이동과 변이가 이루어진다. 액자의 틀은 작품의 앞뒤에 붙기가 보통이지만, 내부 이야기 속에 단속적으로 또는 중첩적으로 개입되는 형태도 있다. 이러한 액자소설의 종류로는 순환적 액자소설 · 단일액자소설 · 목적액자소설 · 인증액자소설 · 폐쇄액자소설 · 개방액자소설 등이 있다.

고전소설 가운데에서 액자소설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김시습의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운영전」, 박지원의 「호질」 · 「옥갑야화」 등이 있으며, 이른바 몽유록소설도 서술유형상으로 보면 액자소설의 특수형태라고 할 수 있다. 신소설로서 대표적인 것은 「화중화(話中話)」가 있고, 현대소설로는 김동인의 「배따라기」를 비롯하여 현진건의 「고향」, 김동리의 「무녀도(巫女圖)」, 이청준(李淸俊)의 「줄」 등이 있다.

그 밖에도 소설의 유형이 달리 분류될 수 있는 여지는 많다. 즉, 구조유형으로 분류하면서 문학장르적 판정을 근거로 하면, 사건의 보고적인 서술로 이루어지는 서사적 결속의 소설이 있고, 극적 긴장의 소설이 있으며 서정적인 소설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삶에 대한 태도로 볼 경우 해학적 소설과 비극적 소설로 양분될 수 있으며, 동기적인 근거로 보아 성격소설과 운명소설로 나눌 수도 있다. 바흐친의 역사적 유형론에 근거한 여행 · 시련 · 전기 · 성장의 기준에 의해서 4개 유형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또 시간의 구조시학적인 측면에서 전진적 구조의 소설, 회상적 구조의 소설, 장벽시간 구조의 소설 및 다시상(多時相)소설(히그비) 등으로 분류해 보거나 소설사를 서술할 수도 있다.

한국 소설의 발달과 그 전개

경험적 서사와 허구적 서사

이른바 서술의 근원상황으로 볼 경우 소설은 아마도 아득한 옛날 서사의 형태로서 원시동굴생활에서 이미 발생했으리라 본다. 수렵과 채집의 군거생활을 하던 원시인들이 서로 즐기기 위하여 동굴의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그들이 실제로 경험했거나 일어난 사건을 가장 단순한 서술형태로 이야기한 것에서부터 서사문학은 발단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이야기된 내용은 아마 근원적으로는 사실적인 서사였겠지만, 점진적으로는 인간의 상상력에 의하여 사실을 극적으로 변형하는 있음직하거나 허구적인 서사체를 만들기 시작함으로써 이야기문학이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서사체는 근원적으로 경험적 서사체와 허구적 서사체를 양대 근간으로 삼고 있다. 전자의 역사적인 발전형태가 실록이라면, 후자는 곧 설화요 전기(傳奇)이며 허구인 소설이다. 그러한 점에서 『삼국사기』 열전과 『삼국유사』는 한국서사의 시학과 우리 소설사의 전개에서 매우 중요한 머릿돌이 된다. 그것은 이들이 이전부터 전하는 신화나 서사시, 전설과 일련의 설화를 문헌적으로 정착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사서(史書)로서 이들의 서사방법이 역사소설의 본기(本紀)의 엄격한 경험주의보다는 낭만화된 경험주의 내지는 허구적인 재현충동에 의한 허구성 지향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삼국사기』 열전에 나타나 있는 김유신(金庾信) · 박제상(朴提上) · 온달(溫達) · 설씨녀(薛氏女) · 도미(都彌) 등의 전기나 일대기는 사적(史的)인 전기임이 분명하지만, 역사 또는 전기서술 태도에서 서술자인 발언 주체가 역사적 자아의 성격만 지니지 않고, 서사적인 자아로서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서사문예적인 형상력을 어느 정도 갖추어 나타나 있는 것이다. 또 우리 고전소설의 표제가 ‘전(傳)’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삼국유사』에 수록된 일련의 설화도 역사의 사실 존중적인 엄격한 경험주의에서 한결 풀린 상태에서 서술된 것이다. 『삼국유사』의 조신 이야기는 「구운몽」과 같은 소설로, 이는 한국의 서사시학이 긴 사실성(史實性) 중심에서 소설적인 관심이 열리고 있음을 시사하는 근거인 것이다. 성장할 수 있는 서사적인 단순형태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창작으로서의 허구가 아니라는 한계가 전제되어 있다.

허구적 서사체로서의 가전체

가전체(假傳體)란 우의적인 문학이나 우화문학의 일종이다. 이 우화는 짐승 또는 비인격적(비생산적)인 대상에 인격을 부여한 이야기로서 교훈과 풍자를 위한 문학이다. 우리 나라에서 이러한 우언(寓言)이며 우화인 가전체가 어느 시기에 비롯되었는지 현재로서는 정확하게 알 길이 없다. 설총(薛聰)의 「화왕계(花王戒)」가 이미 있었으나, 13세기를 전후하여 고려 말기에 이 같은 형태의 문학이 두드러졌던 것은 확실하다.

지금까지 전하고 있는 고려의 가전체 작품으로는 임춘(林椿)의 「공방전(孔方傳)」과 「국순전(麴醇傳)」을 비롯하여, 이규보(李奎報)의 「국선생전(麴先生傳)」 · 「청강사자현부전(淸江使者玄夫傳)」, 이곡(李穀)의 「죽부인전(竹夫人傳)」, 식영암(息影庵)의 「정시자전(丁侍者傳)」, 이첨(李詹)의 「저생전(楮生傳)」 등이 있다. 이들 작품은 각각 돈(공방전) · 술(국순전 · 국선생전) · 거북(청강사자현부전) · 대(죽부인전) · 지팡이(정시자전) · 종이(저생전)를 의인화(擬人化)한 것으로서, 이들 모두는 교훈적인 효과와 풍자가 담겨 있다. 그런데 이들은 그 서사방법으로 열전적인 사전(史傳), 또는 사전(私傳)의 전기적인 방법을 채택하고 있으며, 그 말미에는 ‘사신왈(史臣曰)’ 또는 ‘사씨왈(史氏曰)’이라는 논평이 첨가되어 있다. 이는 그만큼 우리의 가전체 서사방법이 경험적인 서사체인 사전과 발생론적으로 긴밀성을 가지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가전은 비록 사전의 방법에 근거하고 있는 서사체라고 할지라도, 이미 역사지향적 서사체로서의 실록이 아니다. 실록적인 서사내용과 다른 방법을 변형, 대입시킨 것으로, 여기에는 허구지향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은 사실을 기초로 허구를 꾸미는 존재다. 따라서, 가전체를 전기 그 자체의 규범으로 보면 위축과 퇴화현상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사실적이고 경험적인 서사체로부터 허구적인 서사체로 가는 변이적 지양 형태라는 점에서 소설의 발달사에 있어 오히려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물론, 여기서 유의하여야 할 점은 가전만을 소설 발달과 전개의 전사적(前史的) 형태로 단일화하거나 확정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전기의 4품 내지는 5품이라고 일컬어지는 사전(史傳) · 가전(家傳) · 탁전(托傳) · 가전(假傳), 변전(變傳) 또는 별전(別傳), 잡전(雜傳) 등의 허구화가 모두 소설의 생성과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가전의 변이와 대치가 소설적인 성격에 가장 근접한 것은 사실이다. 어쨌든, 전기의 형태는 우리 나라 소설을 형성하는 주요한 잠재적 근간의 하나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이후 임제(林悌)의 「수성지(愁城志)」와 「화사(花史)」, 「장끼전」 및 신소설 「금수회의록」 등으로 이어지는 사실로도 수긍될 수 있는 문제이다.

전기와 금오신화

김시습이 쓴 한문단편집 『금오신화』는 우리 나라 소설사에 있어서 가장 확실한 서장(序章)이라는 의의가 있다. 이로써 본격적인 소설의 시대가 전개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금오신화』 형성에 중요한 요인이 된 것은 전기소설인 명나라 구우(懼佑)의 『전등신화(剪燈新話)』 등이다. 이른바 전기는 육조시대(六朝時代)의 지괴(志怪)나 신괴(神怪)에 대칭되는 당대(唐代)의 주된 서사문학이다.

전기는 기(奇)를 전(傳)한다는 뜻이거니와 그 기본적 성격에 있어서 단순한 기록성만을 지닌 황교한 지괴에 비하여, 특정한 작가의 개인적인 창작의식이 개입됨은 물론 작가가 존재하고, 또 구성이나 인물(성격)묘사가 정교하며 현실성과 사회성을 반영함으로써 중국 단편소설의 원형이 되는 문학이다. 전(傳)의 특수한 경우이면서 환상적인 것과 사실적인 것이 융합된 이야기이다. 말하자면 일련의 단형서사체에서 가장 예술적이고 심미적인 형태인 것이다. 이는 명대의 학자 후윙린(胡應麟)이 소설을 지괴(志怪) · 전기(傳奇) · 잡록(雜錄) · 총담(叢談) · 변정(辨訂) · 잠규(箴規) 등 여섯 장르로 구분한 데서 비롯된다.

당대의 지식계층의 소설인 전기는 열전의 3부 구조의 흔적이 있으나, 이성의 논리와 그 논리적 연계를 초월한 두 세계가 교직된 허구적 담론이다. 이러한 전기형태의 수용과 영향에 의하여 비로소 『금오신화』와 같은 창작적이고 예술적인 소설문학이 형성될 수 있었다. 이에 『금오신화』의 소설적인 의의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금오신화』에서 ‘신화(新話)’라는 명명은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다. 물론, 비교문학적인 관점에서 밝혀지고 있듯이, 이 말은 구우의 『전등신화』의 신화 운운에서 그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지만, 이 새로운 이야기라는 의미는 개화기 문학으로서 고대소설에 대한 상대적인 개념으로 붙인, 이른바 ‘신소설(新小說)’이라는 의미 이상이다. 그것은 마치 독일의 근대적인 단편소설 형태인 ‘노벨레(Novelle)’가 그 어원에서 ‘nonus’, 즉 ‘새로운’, 또는 ‘새로운 사건, 색다른 일’을 시사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뜻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신화’라는 표제에 함축된 의미는 존재의 경험적 서사체와 밀접한 열전적인 전기유형이나 또는 의인적인 가전형태에 비하여 훨씬 창작적이고 허구적인 속성과 결구력(結構力) 및 개성을 반영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김시습은 『금오신화』에서 비록 명혼(冥婚) · 인귀교환(人鬼交懽) · 이혼(離魂) · 환생(還生) 등과 같은 환상적이며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전통적 내용을 수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전기형태를 받아들임으로써 전기 유형과는 다른 새로운 허구적 서사형태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미메시스와 환상, 즉 일상적 사실과 초자연적인 현상이 교호하고 있다.

둘째, 『금오신화』는 그 서술방법에서 경험적 서사체의 단순한 보고적 문장으로 이루어진 일련의 전기와 민담의 ‘본래적 이야기’보다는 ‘장면적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그만큼 자연이나 심리적인 성격묘사 및 대화가 중심을 이룸으로써 근대소설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셋째, 전기형태의 단편집인 『금오신화』에 실려 있는 각 작품의 발단 부분이 열전이나 가전체와는 현저하게 다를 뿐만 아니라 민담의 발단과도 다르다.

“남원에 양생(梁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일찍이 부모를 잃고, 아직까지 결혼하지 못하고, 홀로 만복사(萬福寺)의 동방(東房)에 기거하고 있었다.……”(만복사저포기), “송도에 이생(李生)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낙타교(駱駝橋) 옆에 살고 있었다. 나이 18세에 풍채가 준수하고 자질이 빼어났다.……”(이생규장전).

이와 같이 ‘옛날 어느 곳에 어떤 사람이’라는 민담적인 이야기의 발단 내지 서사적 출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 열전류의 발단인 출생 · 국명 · 가계 · 이름 · 자 · 시호나 역사적 왕조연대 등이 배제되어 있다. 또, 주인공의 탄생에 얽힌 이야기가 없는 것도 특징이다. 그 대신 다소 비현실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현실적이고 지지적(地誌的)인 것, 일상적이고 사회적인 것에 대한 인식도 그만큼 확충되어 있다. 이것은 그만큼 현실성을 토대로 한 허구의 이야기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넷째, 서사적인 사건경과 속에 시가의 개입을 지적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시가의 개입은 당대 문화나 생활양식을 그대로 반영하는 면도 있지만, 시가로 주인공들의 심리적 상태를 표출하는 방법을 삼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러한 형태는 그 뒤 창작적인 한문 단편소설에 영향을 준다.

다섯째, 『금오신화』에 실린 단편 「취유부벽정기」나 「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 등의 서술유형에서 보듯이 단일 액자소설 성격을 지니고 있다. 여기서 액자를 이루고 있는 것은 과음으로 인한 수면상태와 관련된, 몽환적인 꿈과 그 꿈의 깨어남이다. 그리고 그 내부 이야기는 바로 꿈 이야기이다. 이른바 몽유록소설은 액자소설의 한 유형이다. 꿈과 현실의 상호성은 환상의 ‘불확실성의 시학’으로 평가되는 당대 소설의 중심이다. 이러한 몽유록소설의 등장을 전후하여 우리 소설에서 원호의 「원생몽유록」과 심의(沈義)의 「대관재몽유록」을 비롯하여 「수성궁몽유록(壽聖宮夢遊錄)」(일명 雲英傳) 및 「구운몽」 등과 같은, 꿈을 서사적 매개로 하는 작품들이 출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섯째, 이러한 전기는 지적 또는 윤리적 교훈의식이나 비판적인 기능이 작용한 전대의 우화문학으로, 가전이나 탁전과는 별개의 성격이라는 것이 또 하나의 특징이다. 그 생성과정에서 중국 당대 전기의 영향을 받았던 한문소설 『금오신화』는 우리 문학에서 허구적인 소설의 근원으로 평가된다.

이상으로 보아 우리 나라 소설의 잠재적인 기틀은 대개 경험적 서사체인 열전의 전기성, 가전체의 우화성 및 전기의 현실성과 환상적인 영향을 받은 『금오신화』의 허구성 등으로 그 근간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홍길동전과 구운몽

『금오신화』의 창작으로 비로소 그 탄생을 보게 된 우리 나라의 소설은 그 뒤를 이어 나온 「홍길동전」 및 「구운몽」의 출현과 함께 소설의 본격적인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이 두 작품은 우리 나라 소설문학의 원형과 두 개의 기둥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허균(許筠)이 쓴 「홍길동전」은 최초의 국문소설이라는 의의와 함께 열전계의 전기적인 직선의 시간구조를 그 구성의 기본원리로 삼은 작품으로서, 경험론적인 현실관에 입각한 일종의 사회소설이며, 영웅적이고 협객적인 인물소설이다. 이른바 문학의 시대적 기능 혹은 문학의 시대성을 반영한 것으로서, 외적 세계와 사회 현실이 지닌 불합리에 대한 비판정신을 수용하고 있는 작품이다.

비록, 둔갑이나 축지법과 같은 비현실적인 요소들이 개재되지 않는 바는 아니나, 관권의 수탈과 폭력, 이로 인한 민중의 빈민화 및 도둑떼의 반사회적인 폭력과 같은 현실문제가 제시될 뿐 아니라, 적서차대(嫡庶差待) 및 서얼방한(庶孽防限)이라는 서자의 사회적 신분상승이나 권력형태 접근을 금지하는 모순된 제도의 구속 및 비형평을 비판하고, 그와는 다른 율도국이라는 현실의 ‘반대상’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소설이 형성되는 데에는 「수호전(水滸傳)」 등 명나라 협객소설의 영향이 또한 지대했다.

한편, 앞서의 「홍길동전」이 그 원류적인 맥락관계에서 열전계라고 한다면, 김만중(金萬重)의 「구운몽」은 전기계로서 꿈과 현실이라는 복식적인 시간 및 순환적인 시간구조를 기본적인 구성원리로 한 작품이며, 삶의 존재론적인 인식에 역점을 두고 있다. 즉, 이성적인 것과 욕망 및 충동과의 변증법적인 대립과 갈등은 물론, 그러한 갈등을 초월한 삶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영육(靈肉)의 존재양식적인 대립을 조정하는 지향적인 생의 한 문법을 제시한 것이다. 여기서는 문학의 초시대적 기능이 존중된다.

이처럼 우리 소설의 두 개의 큰 기둥에 해당하는 「홍길동전」과 「구운몽」은 서술 구조나 방법 및 세계인식 태도에 있어서 서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우선 「홍길동전」은 전기적인 단일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가계(家系)가 존중된 데 비해서, 「구운몽」의 경우는 원형의 순환구조로 이루어지고, 또 주인공인 성진(性眞)의 가계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전자의 표현방법이 보고적 단순성과 서술경과의 급진성을 보이는 데 비하여, 후자는 묘사적이고 장식적이다.

서술과정도 전기의 신괴나 호협을 수용한 「홍길동전」이 시대와 배경공간에 대한 인식에서는 경험적인 명확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도술이나 둔갑과 같은 환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요소가 개입되는 반면, 수행과 애정 · 명예 등의 금욕과 욕망이 교차되는 「구운몽」은 경험적 공간과 격절되고 있으며, 구성도 『금오신화』의 경우처럼 꿈의 세계를 중요한 서사세계로 삼고 있다. 뿐만 아니라 「홍길동전」이 현세나 사회를 그 인식의 토대로 하여 영웅적인 삶과 사회의 개조를 목적하고 있는데 비하여, 「구운몽」은 오히려 추방으로서의 적강(謫降)과 사랑, 상승적 귀환의 과정 속에서 비세속적인 개오달도(開悟達道)의 길을 제시하고 있다. 즉, 전자가 외관적(外觀的)인 인식의 문학이라면, 후자는 내성적(內省的)인 성찰의 문학이다. 또, 전자가 현실적인 데 비하여 후자는 낭만적이다.

이러한 두 소설의 성격은 이후 우리 나라 소설의 전개에 중요한 기조적 요소가 된다. 이들 요소의 대립 혹은 융합현상이 이후 소설의 현상적인 특성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시 3자적인 기조가 바로 가전에서 그 원초적인 맥락을 찾을 수 있는 우화문학의 풍자적인 비판의 요소이다.

소설의 융흥과 작가의 무명현상

개략적으로 지적해서 16세기 이후에서 19세기에 이르는 기간은 우리 나라 소설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다. 특히 18, 19세기는 소설사에서 인식론적인 전환의 시대로 평가되고 있다. 그것은 우리의 고전소설작품이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대부분의 소설이 이 시기에 출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설사적으로 정리할 때 이 시기처럼 불분명하고 막연한 시기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바로 각 작품이나 소설제작의 확실한 연대가 구명되지 않았고 소설사회학적 관점에서 제기되어야 할 사회사, 작가와 후원자의 문제 및 작가의 사회적인 지위와 전문화, 그리고 소설의 유통구조에 대한 기초적이고 실증적인 해명이 아직도 답보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이 방면에 관한 소중한 연구가 현재 진행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소설들이 그 작가를 전연 알 수 없는 무서명(無署名)이라는 점, 출간연대를 확정할 수가 없는 문제점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렇게 그 작가나 창작시기를 확정할 수가 없게 된 문화적인 요인은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부정적인 소설관과, 소설이 사회의 인심과 풍기를 문란하게 만든다는 유교윤리적인 가치규범 때문이다. 따라서, 소설 그 자체의 존립을 위해서는 으레 유교적인 윤리덕목을 소설에 가미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을 위한 문화적인 환경은 척박했지만, 유교적 윤리덕목을 가미함으로써 소설문학은 그나마 융성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이 이 시대에 소설이 그런대로 융성할 수 있었던 요인은 전대부터 수용되었던 중국 명대소설의 이입과 영향 및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의 참담한 전쟁경험을 거쳐, 영조 · 정조시대 실학사상이 대두함으로써 정신사적인 관념으로부터 현실관으로 전환이 이루어지고, 서민의식의 각성이 증대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몇 개의 교환회로상의 소설사회학적인 문제점을 점검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많은 소설이 무서명으로 발표된 점으로 보아 작가의 사회적 신분이나 위치는 결코 높지가 않았으며, 그 후원자나 독서층도 주로 중산층이거나 제한된 부녀자들이었을 것이다. 우선 작가의 경우, 중국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와 「수호전」을 지은 나관중(羅貫中)이나 「서유기(西遊記)」의 오승은(吳承恩)이 각각 서리나 현승(顯丞)이라는 중하층 정도의 지식인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적으로 몰락한 양반이나 선비 그리고 과거에 급제하지 못했거나 벼슬길에 나갈 수 없는 가난하고 교양있는 중산층 지식인이 그 작가였으리라 추측된다. 이들 준직업적인 작가들은 그들 사회집단의 좌절된 소망이나 의식 그리고 세계관을 표현하고, 그들의 사회적 경험을 허구 속에 조직화하려 함으로써, 소설의 융흥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둘째, 한글 즉 국문의 보급에 의하여 독서대중이 점진적으로 증대될 수 있었다. 이 시대만 하더라도 한글은 서민이나 여성의 글이었다. 이러한 한글이 보급된다는 것은 독자의 증대와 함께 읽을거리에 대한 수요를 또 그만큼 증대시킨다. 이러한 독서적 요구는 소설의 발흥을 가져올 수 있는 요인이 되었다.

셋째, 출판형태 내지 기업으로서의 경판(京板) · 완판(完板) · 안성판(安城板) 등의 판본과 방각본(坊刻本)이 등장하면서 소설이 필사본이라는 원초적 단계를 넘어서 시장에 진출하는 유통적인 상품이 될 수 있었다. 동시에 세책가(貰冊家)가 있어서 유통될 수도 있었다.

이 시기의 전기에 나온 소설로서는 영웅소설 · 염정소설 · 몽유록 또는 몽자소설 · 가계가족사소설 · 가정소설 · 실록적인 전기소설류 등이 있다.

영웅소설은 비범한 인물인 영웅 · 명장의 비범한 일생을 서술한 소설이다. 이러한 소설의 생성은 「삼국지」 등 중국소설의 영향 및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의한 전쟁경험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이 소설들은 근본적으로 충군(忠君)의 유교적인 이상을 형상화시킨 것이다. 「유충렬전」 · 「조웅전」 · 「소대성전」 · 「장국진전(張國振傳)」 · 「이대봉전(李大鳳傳)」 · 「장풍운전(張風雲傳)」 등이 이에 해당된다.

염정소설은 남녀의 사랑과 결혼을 다룬 소설이다. 사랑은 어느 시대에서나 생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의 하나이거니와, 당시의 애정양식을 다룬 것으로 권필의 「주생전」 및 작자 미상의 「운영전」, 그리고 「숙영낭자전」 · 「백학선전」 · 「금향정기(錦香亭記)」 · 「춘향전」 등이 있다. 전대부터 있어온 몽유록 또는 몽자소설로는 「운영전」 등이 있다.

가계 또는 가족사소설은 가문이나 가족의 역사를 서술한 것으로 「조씨삼대록」 · 「임씨삼대록」 및 「유씨삼대록」 등이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소설은 그 서사구조가 전기적인 형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조선시대 소설의 대부분이 전기소설에 해당하지만, 이 경우는 협의적으로 보아 경험적인 서사유형으로서 역사적인 실존인물의 전기를 뜻한다. 「인현왕후전(仁顯王后傳)」 · 「임경업전」 · 「이순신전」 · 「곽재우전」 등이 그것이다.

그 밖에도 이 시대에 주목되는 현상은 전자들과는 달리 가정적인 분위기나 가족의 갈등문제를 다룬 가정소설의 현저한 출현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사건이 범상한 사실이나 가정 외적인 것의 서술에 치중되어 왔던 것과는 달리, 서민의 가정비극을 주로 형상화하고 있다. 가정적 리얼리즘의 생성결과이다. 이는 일상적인 현실, 서민적인 삶의 양식 및 정감을 중시한 결과이다. 김만중의 「사씨남정기」를 비롯하여 「장화홍련전」 · 「정을선전」 · 「콩쥐팥쥐」 등이 그것이다. 영조 · 정조시대 이후의 서민적인 소설형태의 등장은 우리 소설사에 풍부한 해학성과 함께 사회소설적인 성격을 부여했다.

박지원의 한문소설

실학파의 지식인인 박지원의 한문소설들은 풍자와 해학 등으로 사회적인 현실을 예각적으로 해부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소설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작품으로 「호질」 · 「옥갑야화」 및 「마장전(馬駔傳)」 ·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 「양반전」 등의 9전이 있다. 그의 소설은 서술형태상 액자소설로 이루어진 것이 많다. 흔히, 「허생전」 운운하는 작품의 명칭도 엄격히 따지면 「옥갑야화」라고 일컬어야 마땅하다. 왜냐하면, 순환액자로 된 옥갑야화의 7개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또, 『열하일기』 관내정사(關內程史)에 삽입된 「호질」도 단일액자의 형태를 빌려 비판을 위한 고도의 위장방법을 택한 것이니만큼 ‘석저옥전현(夕抵玉傳顯)’부터 작품부분으로 보아야 한다.

「양반전」은 신분사회의 동요를 희극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 작품에는 양반의 전형적인 경제적 몰락과, 그와는 반대로 경제력은 확보하였지만 사회적 특권을 갖지 못해 신분적으로 열등한 신흥부자의 생활양식이 대비되고 있다. 양반은 궁핍한 경제적 조건 때문에 양반이라는 신분이 한푼 어치 값도 없다고 보고 이를 매매하는 반면, 경제력은 갖추었으나 신분적으로 열세인 부자는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신분을 사는 반어(反語)를 보여주고 있다. 양반에 대한 동경과 적의의 감정이라는 상반된 이중구조를 드러내 주는 동시에 양반의 생활양식의 허식성을 비판한다.

「옥갑야화」의 제7화 ‘허생의 이야기’는 양반의 경제적인 몰락을 보여주는 점에서는 「양반전」과 비슷하다. ‘허생 이야기’는 무역상인의 등장이란 점에서는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그러나 「양반전」의 양반은 신분적으로 우월한 특권을 궁핍 때문에 매매해야 하는 지경이지만, 이 작품의 허생은 오히려 당당하게 부자의 돈을 꾸어서 매점매석의 상술로 치부함으로써, 양반도 장사를 하면 훨씬 더 잘 할 수 있다는 오기와 긍지를 보여준다. 이 점에서 박지원은 당대의 관습화되고 형식 위주의 욕례적(縟禮的)인 양반문화와 허식적인 시대착오를 비판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흔히 평가하고 있듯이, 양반 중심의 사회적 가치체계나 질서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거나 이탈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양반의 비현실적인 취약성을 지적함으로써 합리적인 변혁을 꾀하려는 것이다.

한편, ‘허생의 이야기’는 도시상업사회의 상인계급에 대한 비판도 놓치지 않고 있다. 허생이 찾아가 거금을 빌린 변(卞)부자는 근세 이전의 대표적인 상인이다. 이러한 상인에게 나중에 돈을 돌려주며 허생은 “재물로써 얼굴빛을 좋게 꾸미는 것은 그대들이나 할 일이지, 만 냥이 아무리 중한들 어찌 도를 살지게 했단 말인가(以財睟面君輩事耳萬金何肥於道哉).”라고 공박한다. 뿐만 아니라 상인마저도 감히 생각하지 못할 상술을 펼쳐 보임은 상인들의 올곧지 않는 행위를 의도적으로 우롱하려는 것이다. 특히, 매점매석은 백성을 못살게 하는 방법이라고 지적하고 있음은 상도의 비정상성을 비판하려는 것이다. 이로 보면 양반이나 선비에 대하여 냉혹하게 비판하고 있으나, 그것은 양반사회제도를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낡은 허식을 버리고 시대에 맞게 적응하는 합리적인 사고를 가져야 할 당위성을 제기한 것이다.

또한, 허생의 이야기는 도둑과 같은 변두리 인생과 그들의 구제와 결부된 사회적 현실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허생은 돈과 밭과 아내라는 사회적인 안정요소를 모두 갖지 못한 범죄자들을 찾아가 그들의 지도자가 되어 무인도로 데리고 간다. 그러나 결코 「홍길동전」의 경우처럼 협객적인 집단행위를 한다거나 체제 거부 태도를 갖고 있지는 않다. 무인도는 현실사회의 반대상이다. 그러나 섬생활의 기본 주제는 부유 · 교양 · 예절로 압축되어 있다. 이 점에서 박지원의 합리적인 실용주의와 함께 도덕적인 이상주의를 접할 수 있다.

「호질」은 현실과 우화를 곁들여 선비와 정절여인이 가지고 있는 표리부동의 양면성을 희극화하는 가운데, 위학(僞學)과 위정(僞貞)의 허위적인 가면을 풍자적으로 해부한 작품이다.

판소리계 소설의 희극성과 비판성

이른바 판소리계 소설이란 영조 · 정조 이후의 서민 또는 민중의식을 수용하고 있는 문예양식으로서, 판놀음[演戱]에서 부르는 판소리의 문학, 즉 구연과 연행에서 생성된 문학이며, 개인창작적이기보다는 공동창작적인 적층성(積層性)을 지니고 있다. 「춘향전」 · 「심청전」 · 「배비장전」 · 「옹고집전」 · 「흥부전」 · 「변강쇠전」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민중문학 형태로서의 판소리계 소설은 이전의 양반과 귀족 취향적인 소설에 비하여 비수사적이며 유동적인 동력구조(動力構造)라는 점에서 기본적인 성격이 규정된다. 즉, 시조에 대한 사설시조의 대응이 그러하듯이 판소리계 소설은 양반관료적인 공식문화의 정태성(靜態性) · 규범성 및 장식성과는 달리, 비속화 · 전도 · 욕설 · 과장 · 부실예찬(不實禮讚) · 기상천외적 비유 · 에로티시즘 · 재담을 포함한 언어유희 내지 열거의 수다스러움을 통하여 진지성보다는 희극적인 경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서 유희적인 희극정신이나 웃음이 긴장완화나 갈등해결의 기능을 가진다는 것은 정신의 정화적인 현상이나 이종요법적(異種療法的)인 치유과정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비판적인 기능이란 웃음의 반역성, 즉 웃음이란 그 본바탕에 있어서 기쁨과 악의가 결합되어 있어서 긍정적이고 환대적인 한 면도 가지고 있지만, 부정적이고 배제적인 다른 한 면도 내포하고 있다는 특성이 드러난다. 따라서, 판소리계 소설에서의 웃음 또는 해학성이란 민중적인 희극정신과 함께 그 속에 리얼리즘의 비판적인 현실의식, 즉 바흐친적인 그로테스크 리얼리즘(grotesque realism)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한편, 판소리계 소설이 동력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민중의 언어력이 지닌 동적인 표현 내지는 행동의 우위성에서 엿볼 수가 있다. 이와 같은 동력성은 언제나 갱신적(更新的)인 집단의식의 발로와 연결된다. 즉, 양반관료의 생활취향에 적응하는 소설이 변화와 지속의 유동성을 원하지 않는 양반 · 관료 내지 귀족들의 생활양식에 맞게 정태적이고 장식적인 현실을 치환시킨 데 비하여, 민중의 생활감정이나 존재양식과 밀착된 판소리계 소설은 언제나 현실과 밀착되어 있고, 교체와 변화와 관계가 깊으며, 또 웃음과 친숙되어 있는 것이다.

개화기의 소설-신소설

① 신소설과 그 발생요인:개화기소설 또는 신소설이란 우리의 중세적인 전통사회가 사회변동에 의하여 근대의 들머리로 들어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이루어진 허구적 서사문학형태로서의 소설을 뜻한다. 따라서, 신소설이라는 소설형태는 기존문학으로서 조선시대 소설의 점진적인 소멸과 이에 대치될 현대소설 발흥의 준비단계라는 이질적인 평행성이 병렬하는 과도기적인 시기의 소설인 것이다. 이러한 신소설의 발생요인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개화사상의 대두 및 1876년의 개항을 비롯하여, 1894년의 갑오개혁 · 동학혁명에 의한 일련의 사회제도 개편화작업과 사회적 동요 등은 세계인식과 삶의 방식을 바꾸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변화된 사회적인 삶의 양식은 문화적인 상황으로 보아 새로운 소설의 형성을 필연적이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둘째, 소설사회학적으로 보아, 생산자(작가)-분배자(출판사 및 서적판매업)-수요자(독자)라는 교환회로의 관계가 새롭게 정립되었다. 소설관의 변화현상과 함께 개화나 애국계몽사상의 전파를 위한 국민계몽적 입장에 있는 언론계에 종사하는 개화지식인 내지는 변화된 시대의 신기성(新奇性)에 적응하려는 작가가 등장했을 뿐만 아니라, 국문을 존중하려는 고종의 칙명(1894)은 자연히 국어의 전파를 확산함으로써 독서대중이 더 많이 확보되게 하였다. 특히, 소설의 주요 독자인 중산층 부녀자들로서는 25전 내지 35전 내외의 돈으로 소설책 이상의 다른 오락형태를 구할 수가 없었으며, 솔표 석유의 판매보급은 그들에게 독서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를 더 많이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한편, 분배자로서 근대적인 출판기업인 회동서관(匯東書館) · 광학서포(廣學書鋪) · 대동서원(大東書院) · 광문사(廣文社) · 동양서원(東洋書院) · 중앙서관(中央書館) · 보성사(普成社) 등이 등장했다. 이들은 새로운 인쇄기를 도입했으며, 서적판매까지도 겸함으로써 종전의 판본 따위의 원초적 출판형태와는 다른 여건들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이들이 신소설 작가와 작품의 출현을 가져올 수 있는 후원자들이었다. 새로운 형태의 활자인쇄술 도입이 새로운 소설의 발흥에 기여하게 되었다.

셋째, 민간신문의 출현이 신소설 발생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 관보(官報)와는 달리 민간자본에 의하여 경영되는 민간신문, 특히 개화기적 교도주의의 기능을 지닌 개화기신문은 계몽과 독자확보를 위한 상업성을 함께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 1905년을 전후하여 『황성신문(皇城新聞)』 · 『제국신문(帝國新聞)』 ·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 · 『만세보(萬歲報)』 · 『경남일보(慶南日報)』 및 일본인이 발간한 『중앙신보(中央新報)』 · 『대한일보(大韓日報)』 등이 지면의 확대와 더불어 거의 모두 소설을 연재하였다. 민간신문은 신소설 발표의 거의 유일한 매개체였던 것이다.

넷째, 내재적인 전통의 축적과 외국문학의 영향이 지적될 수 있다. 신소설은 비록 전대의 소설에 대한 반작용의 결과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지만, 결과적으로 기존소설에 대한 지속적인 의존이 불가피하였으며, 여기에 다시 서구소설의 영향을 받은 점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 서구문학의 영향이라는 것도 주로 일본 및 중국(청)소설의 중간 전신자적 기능에 의한 간접적인 영향이었다. 특히 청말의 소설시학은 긍정적인 소설관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었다.

이상과 같은 요인에 의하여 신소설은 비로소 그 생성이 가능하였던 것이다. 문학형태로서는 과도기적인 미숙성을 지닌 것이었으며, 1910년대의 후반에 이르면서 이광수의 「무정」 등과 같은 현대소설에 의하여 대치되었다. 이들 신소설은 문학 그 자체의 독자적 예술성의 변혁보다는 정치 · 사회제도 및 풍속의 개혁, 새로운 교육관, 여성의 자유와 사회 · 문화적 평등, 과학적 세계관 등을 강조하려는 목적론적 성격이 우세하였으며, 기타 신기성을 추종하는 대중적인 취향에 영합하는 시장지향적 성격도 가지고 있다. 신소설의 탐정소설적, 즉 미스터리 소설적 성격이 그 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그렇다고는 할지라도 당시의 사회적인 담론이었던 토론 · 연설과 같은 담론형태를 뚜렷이 하고 있는 점이 이 문학형태의 독자성이기도 하다.

② 대표적인 작가와 작품:신소설의 대표적 작가는 이인직 · 이해조(李海朝) · 최찬식(崔讚植) · 안국선 · 김교제(金敎濟) · 이상협(李相協) · 박영운(朴永運) 등이다. 물론 1906년 이인직의 「혈의누」 전후에 「일념홍(一捻紅)」의 일학산인(一鶴山人), 「용함옥(龍含玉)」의 금화산인(金華山人), 「여영웅(女英雄)」의 백운산인(白雲山人), 「명월기연(明月奇緣)」의 한운(漢雲), 기타 반아(槃阿)와 같은 필명의 작가가 있었으나, 이들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상고할 길이 없다.

이인직은 1908년 11월 8일자 『대한매일신보』의 논설 「연극계지이인직(演劇界之李人稙)」에서 이미 “거연(遽然)히 한국 내 제일등 소설가로 자명(自明)하는 자” 운운한 바와 같이 신소설의 대표적 작가이다. 그는 신극운동에도 참여하였으며, 작품으로 「혈의 누」 · 「귀(鬼)의 성(聲)」 · 「치악산」 · 「은세계」 · 「모란봉(牡丹峯)」 등이 있다. 이해조는 경기도 포천 출신으로, 작품으로는 「자유종」 · 「구마검(驅魔劍)」 · 「화의혈」 · 「모란병(牡丹屛)」 · 「빈상설(鬢上雪)」 · 「고목화(枯木花)」 등 30여 편이 있다. 특히, 그는 「화의혈」 말미에서 소설을 빙공착영(憑空捉影)에 비기는 미메시스의 독특한 소설관을 피력하였다. 최찬식은 경기도 광주 출생으로, 작품으로는 「추월색(秋月色)」 · 「안(雁)의 성(聲)」 · 「춘몽(春夢)」 등이 있으며, 그 밖에 안국선은 「금수회의록」 · 「공진회(共進會)」(단편집), 김교제는 「모란화(牡丹花)」 · 「현미경(顯微鏡)」, 이상협은 「눈물」, 박영운은 「김산월(金山月)」 · 「옥련당(玉蓮堂)」을 썼다.

특히, 여기에서 간과해 버릴 수 없는 것은 이 시대에 나온 역사전기소설의 의의이다. 소설사적인 계보에서 보면 이른바 신소설이 전기와 같은 허구적 서사형태의 문학이라면, 전기문학은 열전계의 경험적인 서사체 문학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서구의 많은 위인전기가 출현되기도 하였지만, 이들 전기의 소설화는 강사적(講史的)인 의의가 있다기보다는 역사적 우의(寓意)를 통하여 국권의 위난에 대처하려는 의도를 지닌 것이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전기 또는 역사전기문학은 1910년의 국권의 피탈 이후 거의 금서(禁書)의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 장지연의 「애국부인전」, 신채호(申采浩)의 「을지문덕」 · 「이순신전」 · 「최도통전(崔都統傳)」 등이 이 시기의 대표적인 전기문학이다.

무정의 문학사적 의의

1917년 『매일신보』에 연재된 이광수의 장편소설 「무정」은 그 표현형태나 내용으로 볼 때 최초의 소설로서 평가된다. 낡았지만 위력을 지닌 구 도덕과 새로운 도덕관의 마찰현상을 보여주는 가운데, 이전의 신소설 등에서 관념적으로 제기되었던 새로운 윤리관이나 애정관의 모색과 개인주의의 확장 및 인도주의적인 민족애와 새로운 문명에의 열망을 결구력 있게 형상화하고 있다. 물론, 신소설 등이 지니고 있는 교훈주의적인 문학관이 전연 배제된 것은 아니지만, 개인이 사회변화의 구조 속에서 어떻게 사회화하며, 개성적인 자아와 의식의 독립화에 눈떠 가는가를 구상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신소설의 관념적인 면과 문학적인 미숙성을 극복하여 소설의 면모를 일신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무정」의 문학사적인 의의는 자못 큰 것이다.

이야기는 주인공인 이형식과 박영채의 기구한 사랑과 운명을 다룬 것이다. 영채를 통하여 부권적인 유교윤리에 절대 순종해야 하는 여인의 희생과 그로부터의 개체적인 자각을 다루고 있으며, 이형식을 통하여 감정구조의 이중성을 보이면서도 낡은 의식으로부터의 탈피와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을 제시하고 있다. 이광수는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최남선(崔南善)과 함께 우리 나라 현대문학 초기의 선구적인 개척자이다. 그의 작품으로는 단편 「소년의비애」 · 「어린벗에게」를 비롯하여 장편 「어린 희생」 · 「무정」 · 「마의태자」 · 「단종애사」 · 「흙」 · 「유정(有情)」 · 「그 여자의 일생」 등과 그 밖에 많은 작품과 수필 · 논설 등이 있다.

현대소설의 전개

① 1920년대의 소설:1920년대는 이전의 문학적인 교훈주의가 청산되고 한국문학 자체의 현대성이 정립된 시기이다. 3 · 1운동을 계기로 문화적인 각성이 일어나고, 서구의 문예사조를 본격적으로 수용하면서 각종 문예동인지와 순수문예지가 발간되었고, 이 땅에는 비로소 현대문학다운 문학이 생성되었다. 이 시대의 소설에 나타난 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신소설이나 이광수의 소설 등에 나타나고 있던 문학의 정론성 내지는 교훈주의적 문학관이 청산되고, 문학의 독자성과 심미적인 가치가 존중되었을 뿐 아니라, 이른바 문학의 현대성으로 국정될 수 있는 낭만주의 및 사실주의가 수용되었다. 교훈주의의 청산은 도덕성 고양을 진정시키게 되었다.

둘째, 사실주의문학의 수용과 영향 등에 의하여 당대의 일상적인 삶이나 식민지시대의 사회현상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증대되었다. 따라서 가난의 현실상태, 식민지정책이 야기시킨 고향 상실 내지는 유랑 및 이주와 같은 문제들이 제기되게 되었다.

셋째, 자연주의를 포함한 리얼리즘(사실주의)의 결정론에 영향받아 인간을 환경결정론의 희생으로 해석하는 인식이 증대되었으며, 환경에 의하여 비극적으로 좌절하거나 도덕적으로 전락하는 인간의 모습을 많이 묘사하였다.

넷째, 개인과 사회 간의 상관관계 및 개인의 생활에 미치는 사회적인 힘을 많이 다루었으며, 사회적인 비관주의 및 비판적인 사실주의의 경향이 농후해졌다.

다섯째, 기법적인 객관성이 강조됨으로써 무정감(impassibilité)과 객관적인 반영의 거울이라는 소설시학이 확립될 수 있었으며, 현대적인 단편소설의 형태가 정착되게 되었다.

여섯째, 사회주의 문학관에 입각한 경향파문학 및 프롤레타리아문학의 목적의식이 얼마 동안 노출되었다. 이른바 경향소설(roman a thése)의 출현이다. 이는 1930년대에 이기영의 「고향」 및 강경애(姜敬愛)의 「인간문제」로 대표된다. 이러한 유파의 소설은 계급의 갈등에 의한 살인 · 방화 등의 범죄적인 국면을 정해진 도식으로서 예각화했다.

이 시대에 활약한 작가로는 「감자」 · 「배따라기」의 김동인, 「표본실의 청개구리」 · 「만세전(萬歲傳)」의 염상섭, 「빈처」 · 「술 권하는 사회」 · 「운수좋은 날」 · 「고향」의 현진건, 「물레방아」 · 「벙어리 삼룡이」의 나도향(羅稻香), 「탈출기」 · 「홍염(紅焰)」의 최학송(崔鶴松), 「화수분」의 전영택(田榮澤) 등이 있다.

② 1930년대의 소설:1930년대는 파시즘의 대두, 중일전쟁의 발발 등으로 세계적으로 위기가 팽만하였던 시대이다. 이러한 외부적인 정세 가운데서도 우리 문학은 계급문학의 퇴조와 더불어 마치 낙조의 아름다움과 같이 인식세계와 관심의 원근법을 확산하는 난만함을 보이면서, 제한된 한계에서나마 오히려 다양함을 발휘하였던 것이다. 이 시대 소설의 양상을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첫째, 소설의 배경공간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 관심의 지지적인 수평은 도시와 농촌 또는 문명과 자연(흙)으로 넓혀졌다. 외국문학연구회(1926)의 결성 이래 현대 서구문학의 주지적인 모더니즘에 대한 관심과 영향은 우리 소설로 하여금 도시공간과 현대문명에 관심을 갖게 하였다. 그 결과 도시의 생태나 환경 또는 도시사회에 내포된 삶의 조건을 문제삼게 되었다. 이효석(李孝石)의 「인간산문(人間散文)」 · 「장미 병들다」, 유진오(兪鎭午)의 「김강사와 티교수」, 채만식의 「레디 메이드 인생」 · 「치숙(痴叔)」 등은 도시의 병리와 생태나, 고등 유인(遊人)이 될 수밖에 없는 도시지식인의 무력함과 도시의 생태적인 악(惡)을 풍자적으로 비판한 작품들이며, 이상(李箱)의 「날개」는 자의식의 분열이라는 심리해부와 탈출충동을 제시한 작품이다.

한편, 이와는 달리 도시의 인위적인 환경이나 삶의 도시성이 지닌 긴장으로부터 벗어나서 자연과 흙에서의 삶 내지는 향토색 짙은 농촌과 가난하고 끈질긴 농민의 삶을 제시하거나, 연민적 연대성을 가지는 경향도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다.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 「돈(豚)」,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 이무영의 「제일과 제일장」, 박영준의 「목화씨 뿌릴 때」 · 「일년」 및 향토적 체취의 해학성을 물씬 풍기는 김유정의 「동백꽃」 등이 그것이다.

둘째, 관심의 방향을 수직화한 현상인데, 역사와 전통적인 민속 및 설화와 같은 경험의 원형에 대한 재현이 현저해졌다. 이러한 현상은 소설사에 있어서 역사소설 · 가족사소설 및 토착적인 신앙과 기층문화와 관련된 소설로 나타나게 되었다. 우선 역사소설로서 이광수의 「마의태자」 · 「이차돈의 사」, 김동인의 「젊은 그들」 · 「운현궁의 봄」, 박종화의 「금삼의 피」 · 「대춘부」, 현진건의 「무영탑」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비록 그 역사적 상상력이나 우의에 있어서 적극적인 역사의식을 드러내고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식민치하에서 자국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염상섭의 「삼대」, 채만식의 「태평천하」 등은 역사와 인간의 상관성을 다룬 가족사소설로서, 역사의 변천 속에서 융성, 몰락하는 가족의 세대적인 운명을 제시한 것들이다. 한편, 김동리의 「무녀도」 · 「바위」 · 「황토기(黃土記)」 등은 무속이나 주술적인 관념과, 전래되는 설화세계와 현실이 표리관계를 이루면서 삶의 구경(究竟)을 탐색하고 있다.

셋째, 특정한 시대성이나 사회성 또는 이념적인 목적문학과는 달리, 인생과 인간의 삶 그 자체에 관심을 두려는 ‘인생파’의 출현이다. 계용묵(桂鎔默)의 「백치(白痴) 아다다」는 비정상적인 가치가 전가치화된 인간을 통하여 오히려 정상인의 소유욕이 지닌 운명의 파탄과 사랑의 갈망을 그리고 있으며, 정비석(鄭飛石)의 「성황당」에서는 순수한 사랑을 제시하고 있다.

넷째, 여류작가의 등장에 의하여 여성다움의 특질이 많이 반영되었다. 당시의 여류작가로는 「추석전야」 · 「고향 없는 사람들」의 박화성(朴花城), 「지하촌」과 「인간문제」의 강경애(姜敬愛), 「흉가」 · 「지맥(地脈)」의 최정희(崔貞熙), 「꺼래이」 · 「적빈(赤貧)」의 백신애(白信愛) 등이 있다.

다섯째, 그 밖에도 세태묘사와 내면추구의 심리주의적인 소설이 등장하였다.

③ 일제암흑기 · 광복 전후의 소설:1930년대 후반과 1940년대 초반은 우리 민족에 대한 일제의 탄압과 통제가 그 극에 달하였던 시대이다. 이 기간에 일제는 한국어의 사용을 금지, 창씨개명을 강제함은 물론, 『동아일보』와 『조선일보』를 폐간시키고 『문장(文章)』과 『인문평론(人文評論)』의 문예지마저 폐간 또는 개제(改題)시켰으며, 일체의 문화활동을 철저하게 통제, 검열하였다. 이러한 절망의 시대에는 시보다 소설의 세계가 훨씬 더 제약을 받게 된다. 산문적인 의식이 특히 퇴행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 암울한 시기에 소설의 명맥을 그나마 이어간 작가로는 황순원(黃順元) · 안수길 · 최인욱(崔仁旭) · 곽하신(郭夏信) · 최태응(崔泰應) 등이 있다.

1945년 8월 15일의 광복은 빼앗겼던 국권의 회복이라는 의미와 함께 우리 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전환의 고비에 해당한다. 그것은 곧 국어의 회복이며, 현대문학의 생성 이래 계속 식민통치의 등화관제와 같은 제약 아래 있었던 문학적인 상황이 이와 더불어 자유의 넓은 지평을 확보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광복은 동시에 남북분단과 이념적인 갈등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였다. 광복 직후 수년간 소설의 특성을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식민시대의 종말과 더불어 고향으로 되돌아오는 현실문제가 주제로 많이 다루어졌다. 김동리의 「혈거부족(穴居部族)」, 채만식의 「논이야기」, 계용묵의 「바람은 그냥 불고」 · 「별을 헨다」, 이봉구(李鳳九)의 「도정(道程)」, 황순원의 「목넘어 마을의 개」, 허윤석(許允碩)의 「문화사대계」 등이 이에 해당된다.

둘째, 분단의 비극과 실향상태에 대한 인식이 현저해졌다. 염상섭의 「38선」 · 「이합(離合)」, 계용묵의 「별을 헨다」 · 「이불」, 전영택의 「소」가 대표적인 것이다.

그 밖에도 소시민의 범속한 일상성과 진주한 외국인과의 관계를 다룬 작품들로서 염상섭의 「두 파산(破産)」 · 「양과자집」 · 「일대(一代)의 유업(遺業)」 등이 출현하였으며, 김동리의 「역마(驛馬)」는 전통적인 사유를 근간으로 핏줄의 숙명적인 연쇄원리를 다루면서 순수문학의 영역을 고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1950년에 6 · 25전쟁이라는 비극의 돌발은 전쟁의 비리적 폭력과 파괴의 경험을 수용하는 전후문학이 전개되게 되었다.

④ 6 · 25전쟁 이후의 소설:광복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한국의 현대소설은 한국사회가 안고 있는 상황성과 이에 대한 반응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외적 상황성은 대략 남북의 분단으로 인한 민족공동체의 이데올로기적 분열과 갈등현상, 폭력적인 재앙인 전쟁으로 인한 훼손과 분단 고착 및 이산(離散)의 확산, 절대권력의 전제적인 지배와 통제, 근대적인 산업사회로의 전이와 거기에서 파생되는 도농(都農)의 단층화와 도시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삶과 사회의 병리적인 징후현상, 여성의 존재론적인 제약, 역사의 비인간적인 위력과 그 역사 속에서의 개인의 운명, 거듭되는 학원통제와 학생운동, 공장 또는 기업공간에 있어서의 대응의 소용돌이 등으로 요약된다.

이러한 일련의 외적인 상황성을 고립시킨 채로는 현대 한국소설에의 사적인 접근이나 현상적인 이해가 결코 가능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한국 현대소설은 이 같은 일련의 시대적인 시공의 상황과 불가분의 관계로 얽혀 있는 고통스런 경험의 숨결이며, 또 그러한 상황들이 가하는 중력과 잠김으로부터 놓여 나려는 대응과 열림에의 원망을 담아 왔기 때문이다. 조응과 대응의 전개 양상을 지적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광복의 감격은 잠시일 뿐, 분단에 의한 남북의 이데올로기적 이중 자물쇠 현상 및 이의 심화와 대결로 인한 6 · 25전쟁과 그 상처, 그리고 이산의 깊이는 한국의 현대소설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대표적인 문제적 상황이다. 거의 반세기에 가깝도록 한국의 소설은 분단과 이산의 현상에 계속 매어 있다. 매어 있다는 것은 그러한 특수상황이 지배하는 잠김의 위력이나 현실을 그대로 복제하고 있다는 점에서라기보다는 이에 대응하는 열림의 긴장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다. 그래서 많은 작품들은 피해와 상처를 제시함은 물론, 이데올로기의 배타성과 비인간성, 그리고 그것이 조성하는 갈등과 증오, 전쟁의 파괴력과 고통 · 비극적 상처를 상기시킴으로써 지향해야 할 진정한 삶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가를 시사한다. 그럼으로써 현대소설의 세계는 분단과 상처에 대한 상상력의 저장고인 동시에 역설적으로 화해와 초극을 위한 비전의 전망대이기도 한 것이다.

한국의 현대사는 이념과 사상의 분극화 현상 속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그야말로 무고하게 죽고 죽인 살육의 역사요, 증오의 논리와 폭력과 카니벌리즘의 보복이 고양 · 교차하는 쟁투의 역사로서 전개되어 왔었음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에 직면해서 거기에 대응하는 초극적인 삶의 광채를 탐조하는 소망의 인간 벽화를 제시하는 것은 바로 다름아닌 문학이요 소설이다. 이것이 우리로 하여금 소설에 대한 신임장을 철회하지 않게 하는 이유인 것이다.

둘째, 권력의 지배와 부패 · 통제현상 역시 중요한 시대사적 배경이다. 1960년대 이후의 상황은 4 · 19혁명의 횃불과 그 빛의 소멸에 이어 정치권력의 힘과 특별법의 금지장치에 의해서 삶의 제약과 타격이 적지 않았던 시대이다. 이런 시대를 지나온 소설은 물론 거기에 시인적 양상을 띠기도 하지만, 그 반동작용으로서 대립의 구조도안-닫힘 대 열림-과 상징공간의 인지적 도구를 뚜렷하게 이끌어 들이게 된다.

그래서 상황적인 공간상징으로서 중심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감옥(감방)’의 이미지이다. 군사정부는 발전과 성장의 표상인 도시를 개발하였지만, 이와는 반대로 통제의 표상인 감옥을 넓혀 놓은 이중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 시대의 상징공간으로서 감옥을 설정하고 그 속에 갇혀 있는 인간의 조건을 상정하는 것은 두 개의 의미 반경을 지니고 있다. 그 하나는 제약된 현실을 제시하는 현실효과로서의 의미이며, 다른 하나는 그로부터의 해방 내지 열림상태로의 원망(願望)의 근원적인 장소로서의 의미를 표상한다. 자유로운 상태의 원망공간은 역설적으로 속박된 세계란 공간적인 대조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것은 분명 역설(逆說)의 시학이다.

셋째, 1950년대 중반에서 현재에까지 전개된 당대의 소설을 읽으면서 모든 독자들이 흔히 마주치게 되는 현상은 신체적인 고통이나 정신적인 이상의 증후현상에 접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진단학(Diagnose)적 인지나 상상력의 빈번현상이 그것으로서, 소설의 주인공들이 신체적 · 정신적으로 앓고 있거나 병들어 있는 상태에 있으며, 또는 병들어 있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병의 효과가 이렇게 만연되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인 삶의 내용이 고통과 이상성으로 가득 차 있고 시대적 상황이 죄여 있고 부식되어 있음을 뜻하는 것이며, 시인과 작가들이 시대의 긴장형상과 징후를 괴로워하며 앓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의 소설들은 이런 병리의 주사를 그 자체 속에서 주입함으로써 사회와 시대적 병리현상을 진정시키고 치유하려고 하는 것이다.

넷째, 1960년대 중반과 1970년대 이후의 우리 현대소설은 그 지지적인 인식에 있어서 도시와 도시화현상 및 거기에서 야기되는 제반 문제에 대해서 적지 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도시에서 비전은 근대화 · 도시화로 대리되는 우리 사회의 성장 및 급격한 변동과 깊은 맥락관계에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이 시대의 작가들은 경제성장과는 달리 급속한 도시화 내지 산업사회화가 몰고 오는 삶의 도시성의 그늘과 부작용을 제시하게 된다.

그래서 촌락적 삶과 도시적 생활양식의 단절, 인구의 도시집중화에 수반하는 기대와 좌절의 행동곡선을 위시해서 도시의 구조 · 생태 · 심리 · 주거 · 교통의 문제들에 내재되는 심각성을 제시하는가 하면, ‘아스팔트 정글 · 덫 · 사망 · 담’ 등의 이미지들을 통해서 도시의 초상들을 제시한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도시가 현저하게 부정적인 이미지로서 표상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표층적인 측면만을 고려하면 이 시대의 소설은 불평투성이요 쓰레기만 보는 청소부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은 이를 통해서 잠재적으로 문명화나 산업화가 안고 있는 비인간적인 모순을 드러내고 인간다운 조건의 증진을 위한 지평을 열어놓으려 하는 것이다.

한국 소설의 특질

한국소설의 특질에 대하여 조윤제(趙潤濟)는 『국문학개설(國文學槪說)』에서 전기적(傳記的) · 가정적 · 권징적(勸懲的) · 호종적(好終的) · 운명적(運命的)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한편, 정주동(鄭鉒東)은 『고대소설론 古代小說論』에서 이상세계의 동경, 권선징악성, 삼교사상(三敎思想)의 혼합, 골계성, 저항의식, 공식적 형식 등 6개의 항목으로 열거한 바 있다. 물론, 이러한 지적은 그 대상을 고전소설에 두고 한 것이지만, 특질 해명의 암시성과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는 고전소설과 현대소설 모두를 그 대상으로 삼아 우리 나라 소설의 여러 특질을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째, 전기적인 단궤의 직선구조를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특히, 조선시대의 소설 대부분은 그 표제나 제명부터 ‘전(傳)’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그만큼 소설의 서술구조가 주인공의 일대기, 즉 전기적 속성을 가지고 있음을 암시한다. 실제적으로도 작품이 전기적인 서술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서사적인 진행이 역전보다는 순진의 직선적인 구성 내지 일화적인 사건과 사건의 직선적인 연결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사건진행의 다궤적 복잡성이나 극적인 긴장의 구성이 강화되어 있지 않다. 또한 시간의 범위가 탄생에서 죽음까지 길게 확장되어 있어, 이른바 ‘서술하는 시간’에 비하여 ‘서술된 시간’이 길며 시간의 도약이 심한 것이다.

둘째, 소설의 심미적인 가치보다는 교훈주의적인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권선징악적인 관념이 강세를 보인다는 점이다. 그것은 인물의 제시나 입상화 및 사건 구성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즉, 생을 질서와 혼돈 내지는 선과 악의 격렬한 이원론적인 대립으로 본 나머지, 인물이 사실적이거나 개성적으로 묘사, 창조되기보다는 흑백적인 선악의 전형성으로만 양극화하는 경향이 짙다.

구성에서도 전기적이고 권선징악적인 관념이 강조된 나머지 사건이 아무리 우여곡절을 겪었다 할지라도 종국에 가서는 선의 정당성으로 귀결되며, 따라서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연계의 구성을 초월하는 경우가 없지 않으며, 이에 다시 서술자의 주권적인 논평이 미적 거리를 무시하고 서사세계에 관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야기도 비극적인 좌절보다는 행복한 상태로 완결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른바 한국소설이 지닌 행복의 합목적성이다. 이것은 유교적 전통이 지닌 경제적인 문학관과 관련이 깊다.

셋째, 해학과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성향이다. 우리 나라의 소설은 감성의 농후한 국면을 지니고 있어서 눈물도 많지만, 동시에 웃음의 해학성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 특히, 민중 내지 서민문학인 판소리계 소설에서는 비속화 · 전도 · 욕설 · 과장 · 부실예찬 · 기상천외적 비유 · 재담을 포함한 언어유희 및 입심 좋고 수다스러운 열거의 모든 방법에 의하여 해학성을 유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에 의하여 규범이나 공식적인 문화 및 권위가 희극적으로 전락하고, 오히려 일상의 비속한 가치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현상은 물론 삶의 긴장을 해소하려는 데 그 이유가 있는 것이겠지만, 그러한 웃음 속에는 긴장된 삶으로부터의 자기 갱신적인 의미 이외에도 현실비판의 강한 리얼리즘의 정신이 내재한다. 그러한 점에서 이러한 현실비판의식은 현대적인 리얼리즘과 다소 구별되는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삶이나 세계의 인식에서 나타나는 수동적인 운명론을 지적할 수 있다. 물론, 과거 일련의 영웅소설 등에서는 주인공의 운명이 아무리 파란만장할지라도 끝내는 능동적으로 극복되는 경우가 없지 않았지만, 우리 나라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들은 그들이 마주친 운명의 위력 앞에서 이를 능동적으로 타개하는 삶의 자세를 가지기보다는 그렇게 주어진 운명을 거역하지 않고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그뿐 아니라, 수동적으로 이끌리는 성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운명의 타개는 자신의 힘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타력에 의한 것이다.

다섯째, 전통의 창조적인 계승이나 재조정보다는 외향적인 수용성을 더 강하게 지니고 있다. 특히 현대소설이 그러하다. 물론, 여기에는 계승하여야 할 전통적인 요소의 허약성 내지는 무관심도 문제이겠지만, 근대 이후 서구문학의 수용이나 영향에 의하여 현대소설이 생겨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요인이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서구 문예사조의 수용이 소설의 기법이나 시학을 변혁시키는 일에 적지 않게 반영된 것은 간과될 수 없는 사실이다.

여섯째, 내향적인 투시보다는 외향적인 성향이 강세를 이룬다.

일곱째,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소설의 시학 내지는 표현론적 관심보다는 ‘무엇을 쓸 것인가’ 하는 문제에 귀결되는 양상이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나라의 현대소설이 소설의 시대적 기능 내지는 메시지전달의 성격을 많이 가진다는 의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물론 일제침략시대라는 특수환경에서 소설이 창작되어야 했던 정신사적인 여건을 충분히 고려해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시대성의 굴절화와 함께 문학이 문학다울 수 있는 독자성을 위한 표현적인 실험성이나, 삶의 내면 투시 또는 문학의 초시대성 또한 결코 외면되어서는 안 될 문제이다.

그 밖에 우리 현대소설의 특수성으로는 현재에도 단형서사로서의 단편소설이 주류를 이루는 것도 지적될 수 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1970년대 이후 거대서사로서의 장편소설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은 주목할 만한 의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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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소설 / 이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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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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