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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이야기

펠레

1958년 스웨덴 월드컵

[ Edson Arantes do Nascimento ]

출생 - 사망 1940.10.23. ~ 2022.12.29.

브라질에서 펠레는 ‘황제(O Rei)’를 의미하는 대명사다. 펠레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역대 최고의 선수로서 무려 세 차례나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이는 동 대회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20년의 현역 생활 동안 성공시킨 득점만 해도 무려 1,280골. 1970년 월드컵 당시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마리오 자갈로 감독의 말을 빌리자면 펠레는 곧 축구이고, 축구는 곧 펠레다.

17세 천재소년의 등장

자타공인 최고의 축구황제 펠레

펠레가 친정팀 산토스에서 데뷔 무대를 가진 것은 1956년 9월로, 당시 펠레의 나이는 만 15세에 불과했다. 이듬 해 정식 1군 멤버로 승격한 펠레는 16세의 나이로 리그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그 해 7월에는 브라질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A매치 데뷔전까지 치렀다. 1958년 스웨덴 월드컵을 앞둔 시점에서 펠레는 이미 브라질을 대표하는 스타 반열에 올라 있었다. 그럼에도 펠레는 1958년 대회 당시 처음부터 주전 공격수가 아니었다. 훗날 AC 밀란의 전설로 추앙받게 되는 조세 알타피니, 그리고 간판 골잡이 바바 등의 벽이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라질 국민들은 대부분이 17세 소년 펠레의 편이었다. 특히 브라질이 잉글랜드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졸전 끝에 0-0 무승부를 기록하자 언론 및 여론은 펠레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페올라 감독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결국 펠레는 소련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통해 월드컵 데뷔전을 치렀고, 웨일즈와의 8강전에서는 대회 역사상 최연소 나이(17세 239일)로 첫 득점까지 성공시켰다. 펠레의 활약은 프랑스와의 4강전에 이르러 절정에 달했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프랑스 수비진을 헤집고 다닌 펠레는 대회 역사상 최연소 나이(17세 244일)로 해트트릭을 달성했고, 이에 힘입어 브라질은 프랑스를 5-2로 누르고 결승으로 향했다.

스웨덴과의 결승전에서도 펠레의 활약은 계속됐다. 질풍 같은 스피드와 현란한 개인기, 완벽한 볼 컨트롤에 이은 슈팅으로 개최국 스웨덴 홈팬들을 경탄시킨 펠레는 두 골을 연거푸 터뜨리며 관중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펠레라는 17세 영웅을 탄생시키며 감격의 첫 우승을 차지한 브라질은 이후 역대 최고의 황금기를 열어 젖히게 된다.

부상과 시련을 이겨내고

1958년 월드컵 우승 이후 펠레의 일거수일투족은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 모았다. 4년 뒤 1962년 월드컵이 개막되기 직전까지 4시즌 연속으로 리그 득점왕에 오른 펠레는 레알 마드리드의 디 스테파노와 함께 이미 세계 최고의 선수로 추앙받고 있었다. 디 스테파노마저 부상으로 쓰러지자 대부분의 사람들은 1962년 대회가 펠레의 독무대가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1골 1도움을 기록, 팀을 2-0 승리로 이끈 펠레는 가볍게 워밍업을 끝마친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체코와의 두 번째 경기에서 부상을 당한 펠레는 더 이상 1962년 대회에 출전할 수 없었고, 2연패 전선에 비상이 걸린 브라질 역시 위기 상황으로 몰리고 말았다. 펠레 없이 우승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그러나 브라질에는 또 한 명의 축구영웅 가린샤가 있었다. 신예 아마리우두가 펠레의 빈자리를 기대 이상으로 메웠다는 점도 브라질에겐 커다란 힘으로 다가왔다. 펠레는 이러한 동료들의 활약을 벤치에서 묵묵히 지켜봐야 했지만, 우승이 확정된 직후에는 미소를 감추지 못하며 대회 2연패의 기쁨을 만끽하는 모습을 보였다. 어찌 됐든 펠레는 가린샤, 디디, 바바, 자갈로 등과 함께 월드컵 2연패 멤버로 이름을 올렸다. 하지만 펠레는 1966년 대회에서 다시 한 번 부상으로 쓰러진 후 월드컵이란 무대 자체에 회의감을 느껴야 했다. 유럽 선수들의 거친 태클과 반칙은 이미 도를 넘어서고 있었고, 이에 부상을 당한 펠레는 브라질의 치욕적인 조별리그 탈락을 막아낼 수 없었다. 1966년 대회에서 시련을 겪은 펠레는 “두 번 다시 월드컵에 참가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서는 길을 택했다.

만약 펠레가 자신이 내린 결정을 변덕스럽게 번복하지 않았다면 ‘역대 최고의 선수’ 칭호는 절대로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들의 계속되는 대표팀 복귀 운동에 떠밀려 대표팀으로 복귀한 펠레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1970년 월드컵에 참가했고, 이 대회에서 MVP 및 우승을 동시에 차지하며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새롭게 썼다. 펠레는 이 1970년 월드컵 우승을 통해 진정한 축구황제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펠레, 자이르지뉴, 토스탕, 히벨리누, 제르손 등이 이끄는 1970년 월드컵의 브라질은 ‘황금의 5중주’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아름다운 개인기와 패스웍으로 중무장한 브라질은 체코와의 첫 경기부터 이탈리아와의 결승전에 이르기까지 일관적으로 최고의 경기를 선보였고, 전문가들로부터 100점 만점에 100점을 받았다. 이 대회의 브라질은 아직까지도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추앙받고 있다. 1970년 월드컵 우승 이후 펠레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기 위해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그 때는 정확히 1971년 7월 18일이었고, 펠레의 나이는 만으로 30세에 불과했다. 브라질 국민들은 1974년 월드컵을 앞두고 다시 한 번 ‘펠레 복귀운동’을 벌였지만 이번에는 마음씨 좋은 펠레도 팬들의 요구를 한사코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펠레를 잃은 브라질은 요한 크루이프가 이끄는 네덜란드에 밀려 4위에 머물러야 했다. 조용히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벗어난 펠레는 ‘축구 불모지’ 미국으로 진출하여 3년을 보낸 뒤 1977년 37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다.

전지전능한 축구황제

펠레가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 혹은 축구황제로 추앙받고 있는 이유는 비단 우승 및 득점 기록 때문만이 아니었다. 소년 시절의 펠레를 산토스 팀으로 스카우트 했던 브리투 단장은 “펠레는 17세 때 이미 완성된 선수였다.”고 회고했으며, 실제로 펠레는 어렸을 때부터 축구라는 스포츠를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있던 천부적 재능의 소유자였다.

전성기 시절의 펠레는 100m를 10초대에 주파할 정도로 발이 빨랐고, 상대 선수를 농락하는 개인기 또한 다른 브라질 선수들 이상으로 탁월했다. 그러나 펠레가 갖고 있는 진정한 재능은 경기 전체를 바라보는 시야, 그리고 동료 선수들과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탁월한 팀 플레이 능력이었다. 펠레는 최고의 스트라이커인 동시에 위대한 플레이메이커이기도 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도 펠레는 완벽했다. 양발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던 펠레는 어떤 각도, 어떤 위치, 어떤 자세로도 오른발과 왼발을 가리지 않고 정확한 슈팅을 구사할 수 있었다. 171cm의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헤딩슛에 매우 능했으며, 그림 같은 오버헤드킥이나 장거리 프리킥으로도 자주 골을 넣었다. 마라도나에 비해 역동성이나 폭발력은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볼을 신체의 일부처럼 다루는 컨트롤 능력은 도리어 한 수 위라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이름에 얽힌 뒷이야기

펠레의 본명은 에드손 아란테스 도 나시멘토(Edson Arantes Do Nascimento)이며, 어린 시절에는 이를 줄여 ‘에드손’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이는 펠레의 아버지가 발명가 에디슨(Edison)처럼 위대한 인물이 되라는 뜻에서 붙여준 뜻 깊은 이름이다. 그럼에도 에드손이라는 소년이 ‘펠레’라는 의미 불명의 이름을 갖게 된 사연은 분명하지 않다. 심지어 펠레 본인조차 그 이유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펠레 스스로의 희미한 기억에 따르면 이 이름은 자신이 어린 시절 좋아했던 골키퍼 빌레(Bile)의 이름에서부터 유래한 듯하다. 소년 시절의 펠레가 ‘빌레’를 ‘펠레’로 잘못 발음한 것이 이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는 설이다. 그 유래가 어찌 됐든 오늘날에 이르러 펠레라는 이름은 축구황제를 의미하는 대명사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펠레 본인도 이 이름을 “하늘이 내려준 최고의 선물”이라 표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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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발행일 : 2010. 05. 11.

출처

제공처 정보

  • 이형석 축구 칼럼니스트

    글쓴이 이형석은 국내 최대 규모 해외축구 전문 사이트인 <사커라인>(www.soccerline.co.kr)의 칼럼니스트로 다 년간 활동해 왔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현대축구의 전술, 알고 봐야 제대로 보인다!]와 [한 권으로 씹.어.먹.는 월드컵] 등이 있으며, 그 밖에 <후추>, <베스트일레븐>, <스포츠온>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기고활동을 벌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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