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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보스니아 내전 종료 후 현재 보스니아 민족 비율에 대해
비공개 조회수 2,537 작성일2017.09.09
안녕하세요.
최근 한 편의 영화를 보고 보스니아 내전에 대해 찾아본 사람입니다.
몇 가지 궁금한 사항이 있어서 아래에 질문을 남깁니다.
근현대사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의 답변을 기다립니다.

1. 세르비아 정교 사람들은 왜 세르비아로 안가나요?
제가 지도를 보니 보스니아 바로 옆에 비슷한 크기의 세르비아 국가가 있습니다.
보스니아 안에 세르비아 정교를 믿는 사람은 옆 세르비아 국가에 가서 살면 될 것이지,
왜 굳이 보스니아 안에서 보스니아 사람들과 전쟁, 학살을 자행했나요?

2. 대학살이 진행된 이 후, 종교 비율이 줄지 않은 이유가 뭔가요?
당시 세르비아인들에 의해 수 많은 무슬림들이 학살 당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무슬림의 인구가 많이 줄었어야 하지 않나요?
제가 찾아본 결과 보스니아는 여전히 무슬림 40%, 세르비아 30% 정도의 비율을 유지하는 것 같습니다.
왜 민족 비율이 뒤바뀌지 않았나요?

3. 대학살 당시 카톨릭교 사람들은 무사했나요?
보스니아 내에서 무슬림과 카톨릭교 사람들이 같은 편이었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따지면 원래부터 무슬림의 비율이 더 많았던 것에 카톨릭 인구수까지 가산해
훨씬 더 많은 인구비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무슬림의 희생이 컸던 건가요?
그리고 당시 학살을 자행한 세르비아 사람들은 카톨릭에 대해서는 학살을 자행하지 않았나요?

이상, 답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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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칸의 화약고 혹은1.2.3.4.5.6의 나라라고 했습니다

사분오열되어있던 나라를2차대전이후  티토라는 용장이 나타나 국가를 통합하여 유고슬라비아라고 했다가 티토사후 자유화 물결에 힘입어 나라가  6개로 나누어저버린 비운의 땅입니다.

1은 유고라는 한나라 

2.두개의 언어 슬라브 언어와 독일,

3.세개의 종교 카토릭 이슬람  동방정교

4.4개의 인종 슬라브족 세르비아족 이슬람족 게르만족

5.5개의 국가연합체(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몬테네그로)

6.6개의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있다고  1-6의 나라라고하였습니다

 

유고라는 나라는6개의 이민족과 타종교 언어 문자 를 쓰는 인종들이2차대전이후 티토라는 빨치산 운동가가 나라를 억지로 한테 묶어 강압적으로1국가를 만들었습니다. 티토의 강력한 정치아래 분열은 없었으나

티토가 죽고1990년데 유럽의 개혁과 개방 물결이 불어오기시작할때 먼저 이질적인 민족끼리 유고 연방에서 탈퇴하기시작하였습니다.

티토사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마케도니아로 분열






보스니아 내전


 


보스니아 내전(19924199512)1980년대말 90년대초 동베를린장벽 붕괴, 구소련연방 해체와 맞물린 유고연방의 분해과정에서 일어난 종족간 분쟁이다. 3년 반 동안 끌었던 보스니아 내전은 대량난민, 인종청소(ethnic cleansing), 유엔보스니아평화유지군(UNPROFOR)과 나토군의 군사적 개입, 비정부 민간 구호단체들의 개입, 그리고 언론보도의 집중 등 기존 전쟁들과는 다른 양상을 띠었다. 그래서 일부 국제정치학자들은 보스니아 내전을 새로운 전쟁이라 부른다


제일먼저 독일계인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가 독립하자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가 영향을 받아 독립할려하자 유고의 정통이라고하는 세르비아가 신 유고연방을 결성  보스니아 독립을 저지하게된것입니다


당시 밀로세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의 보스니아 인종 청소를단행 내전의 본격화 되었습니다


유고의 주축인 세르비아가  보스니아의 독립을 반대  일으킨 전쟁이바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전쟁이였습니다


인종청소기 라는 당시 세르비아대통령 밀로세비치가  대량학살하여 보스니언 30만명이 학살당하고 대부분이 난민신세가 되었습니다.


국제사회의 또다시 발칸의 화약고가 되었습니다..


문제는 영토확보이지만 인종적 종교적  문화적 차이때문에 융합될수없는 민족들이였습니다.(종교는 카토릭 그리스정교  이슬람으로 분포되어있음) 이 배경에는 구 1차대전당시 독일중심의 합스부르크 왕조 세력권으로 뭉쳤고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등 구 오스트헝가리제국)


로마노프왕조세력권인 러시아 의 지원을 받는 세르비아등 슬라브족을  중심으로한 세력권의 오래된 원한의 충돌이란 역사적 배경도 한몫했습니다


 


이 과정에 보스니아 난민을 받아주는 문제와 친 크로아티아계를 지원하는문제로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가 서로 적대적이였습니다


 


 


유엔의 강력한 제지와 밀로세비치(2006년 감옥에서 사망)의 퇴진으로 이 지역이 혼란과 혼돈으로  분리독립과 자유화 물결을 이겨낼수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얼마전에 몬테네그로가 세르비아로 부터 분리 독립하였습니다 코소보도 2008년 분리독립


이젠 몬테네그로 와 코소보는  세르비아의 연방이 아닌 엄연한 국제사회에서 한국가입니다 구유고연방은 사분오열되어 현재는 세르비아만 남았습니다



코소보사태 전말


개요


코소보는 20082월 독립했지만  유고연방과는 별개의 자치주였습니다


세르비아내의 또다른 자치주인 코소보의 독립운동이 코소보사태 전말입니다.


코소보는전인구의 80%  알바니아계 주민인데 이들도 90년대초 분리독립을 원했지만 
세르비아의 적극적인 반대에 부뒤쳐 실패 본격적으로 19983월 초 코소보의 알바니아 분리주의 반군들이 세르비아 경찰을 공격하면서 코소보사태가 발발하여 .
세르비아 경찰은 즉각 반격에 나서 반군과 반군지역 주민들을 대량학살했는데 여기서  "인종청소"라는 무자비한 작전을감행.하자 알바니아계가 게릴라전으로대응하여 사태가 악화되었음


주민 대부분이 알바니아 이며 세르비아 소수는 알바니아 주민으로부터  차별을 받게되었고 이로인해  코소보 내전이 가열되자 나토군사력등 다국적군이 결성 이 내전에 개입하게된것이  코소보 전투입니다


유엔의 중재로  자치지구로 선포되어있다가  2008217  서방국가들만이 코소보 독립을 독립을 승인하였습니다







답변

1.같은 종교일지라도 민족 언어가 다르면 분리

2.인종 청소와 종교비율은 다릅니다

3.카토릭세력때문에  나토군이 보스니아 내전에 개입한 신 십자군 전쟁터엿습니다

2017.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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