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그렉 클라이즈데일/김유신 역] 부의 이동(2008)

독서일기/국제경제무역

by 태즈매니언 2018. 3. 29. 14:01

본문

 

컨테이너화가 세상을 어떻게 바꿨는지에 대한 마크 레빈슨의 <더 박스> 증보판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한 페친께서 화물(물류)을 중심으로 본 경제사 책으로 그렉 클라이즈데일의 <부의 이동(Cargoes:How Business Changed the World)>를 추천해주셨습니다. 품절이라 아쉬웠는데 어제 알라딘 신촌점에서 득템!

 

저자는 기존의 세계경제사나 국제무역사가 아무래도 신뢰성있는 자료가 풍부한 유럽지역을 과대계상하고 중국과 인도의 성과를 제대로 기술하지 못했다고 비판합니다. 변방이라 할 수 있는 뉴질랜드의 경제학자라 그럴까요? 그는 국가 내에서 경제에 필수 불가결한 부분이며(내륙국 제외하고 ㅎㅎ), 그 지역의 상대적 효율성과 국제 경쟁력을 반영하는 해운업을 중심으로 경제중심지의 이동을 서술합니다. 중간중간 해운은 아니지만 경제중심지의 번영과 쇠퇴에 영향을 미친 다른 요인들도 풍부하게 보여줘서 읽는 재미를 더 해줍니다.

 

대항해시대 이전에 인도양에서 이뤄졌던 무역에 대해 전혀 몰랐는데 뭄바이 바로 서북쪽에 있는 인도아대륙의 한쪽 귀처럼 생긴 구자라트 지역이 인도양 무역의 중심지였군요.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에서 시작했다고 하지만 원양항해를 시도한 이베리아 뱃사람들이 남긴 항해일지와 해도, 항해지침서 역시 근대로 가는 중요한 이정표였던 것 같습니다. 첨부한 지도처럼 1500년대 해운중심지 중에서 계절풍을 이용한 무역으로 족했던 인도양과 중국해와 달리 이익을 보기 위해서는 가장 먼 원양향해를 해야했고, 이를 위해 돛과 삭구을 개량하고 선박의 강도와 조종성을 강화한 선박을 써야했던(운임이 젤 비싸더라도) 이베리아인들의 제약조건이 기술혁신을 자극했다는 걸 새롭게 알았네요.

 

해적왕 드레이크가 태평양에서 활약했던 사실도 몰랐었고요. 좀 비싼 손목시계에 있는 '크로노미터'가 18세기 영국 정부가 2만파운드의 상금을 내걸고 해결하려고 했던 '경도 측정용 정밀시계'라는 것도요. 겉멋인가 했는데 마리너들에게 꼭 필요한 기능이었군요. (그나저나 현상공모 소식을 듣고 무려 40년 동안 연구한 끝에 크로노미터를 만든 사람에게 상금을 안주려고 뻗대다니. 치사하게 --;) 립톤 티는 중국산 차에 의존하지 않고 다질링처럼 실론섬에 대규모 차 재배지를 조성한 토머스 립턴의 이름을 딴 것이라니. ㅎㅎ


이베리아반도-네덜란드-영국-미국-일본 순으로 이어지는 국제해운경쟁력의 흥망성쇠 흐름에 영향을 미친 주요 요인들에 대해 다른 책에서도 많이 다루고 있지만 약 400페이지의 많지 않은 분량으로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사대부'같은 표현이 나오는 번역이 좀 아쉽지만요. 특히 저자는 '성공의 역설'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ㅋㅋ '용선'이나 '편의치적', 상법 해상편이나 해운법에서 본 용어들을 좀 더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소득이고요.

 

저는 특히 네덜란드에 관한 부분을 읽는 느낌이 각별했습니다. 곡물농사에 부적합한 토질과 침수피해 때문에 물퍼내기 바쁜 가난한 나라가 농부나 어부들도 고기와 채소, 과일, 버터, 계란, 치즈 등을 정기적으로 먹고 다른 지역에서는 일평생 몇 번 해보지 못하는 경험(하층민은 페스트로 죽은 친척의 옷도 탐내던 시절이니)이었던 옷을 사는 것도 척척 할 수 있는 사회를 이룩하다니. 우리나라 사례처럼 전국민의 생활수준이 대폭적으로 향상되기 위해서는 번영하는 국제무역과 공업이 결합될 때라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네덜란드가 섬나라, 하다못해 반도국이었더라면 해군력 육성에 좀 더 집중할 수 있었을테고, 영국한테 그렇게 빨리 밀려나지는 않았을텐데 ㅠ.ㅠ)

 

어느 사회에서건 가장 영민한 집단인 상인들과 이에 버금가는 공학자들의 활약을 통해 지난 800년의 국제무역사를 일견하기 좋은 책입니다. 다 읽고 나니 우리나라가 앞으로도 기업가들과 공학도들을 가장 우대하고 무역을 장려하는 나라로 남길 간절히 기원하게 되네요. 남북전쟁에 대해서 <엉클 톰스 캐빈>이나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같은 휴머니즘 책만 보면, 내전도 불사한 산업정책의 결단덕분에 미국이 유럽을 위한 원자재 생산지로만 남지 않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2008년에 나온 책인데도 한국이 딱 한 번 언급된 건 아쉽습니다.  

 

----------------

 

 

48쪽

말라카의 성공은 지리적 위치 덕분이었다. 말라카는 인도양의 몬순 계절풍과 중국해의 무역풍이 교차하는 말레이시아 반도 끝에 자리 잡고 있어, 항해하던 배들이 휴식을 취하고 화물을 옮겨 실을 수 있는 천혜의 항구였다.
(레플스가 싱가폴을 개발하기 전에는 포르투갈의 향료무역기지 정도였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믈라카 술탄국이 인도양과 남중국해 무역으로 번성했군요. '이스칸다르 샤'라는 이름의 술탄도 있었다니 국제적인 느낌이 팍팍나는구나.ㅎㅎ)

 

60쪽

 

(구자라트의 캄베이 왕국) 이 나라의 1570년대 초 관세 수입이 1586년과 1587년 사이에 아시아지역에서 호황을 누리던 포르투갈 제국의 세입 총액보다 무려 세 배가 많았다. 한 포르투갈인은 이 나나를 방문하고 이렇게 경탄했다. "이 세상에 황금과 은이 흐르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바로 캄베이다."

 

126쪽

 

네덜란드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네덜란드의 항구들이 비교적 남쪽에 위치하고 있어 얼음이 빨리 녹는다는 점이었다. 이들은 프랑스에서 화물을 선적하고 발트해 지역으로 운송한 후 겨울이 닥치기 전에 본국으로 귀환할 수 있었다. (중략) 네덜란드인들은 어한기에는 쓸모없는 어선과 저비용 노동력을 해운업에 이용했기 때문에 한자동맹 가맹도시들이 네덜란드와 (발트해 무역에서) 경쟁을 벌일 수가 없었다.

 

198쪽

 

이삼바드 킹덤 브루넬은 배를 더 크게 만들면 배의 크기에 비례해서 연료가 덜 든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 배의 선적 가능 용량은 부피에 좌우되는 것이지만 배가 바다에서 만나는 저항 즉, 필요한 연료의 양은 배의 표면적에 좌우된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었다.

 

309쪽

 

기술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는 교육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무렵, 독일에서는 1년에 3,000명의 공학도가 배출되었고, 미국에서는 매년 4,300명이 공과 대학을 졸업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영국의 각 대학에서는 과학, 기술, 수학 계열을 모두 합쳐도 졸업생이 350명 밖에 되지 않았다.

 

380쪽

 

역사는 위대한 사람들의 행진이 아니다. 기업가 한 사람 한 사람은 물 한 방울과 같다. 이들이 모이면 물결이 생기고 물결에 더 강한 힘을 실어 주는 것이다.
(중략)
국가 전체가 덫에 걸릴 위험을 줄일 수 있는 한 가지 요소는 '세계화'다. 국내 환경에 대한 기업의 의존도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