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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작가

주호민

“내 만화의 작은 실수로라도 상처 받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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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솔직히 몰랐다. 그 어떤 드라마나 다큐보다 군 생활을 디테일하면서도 유쾌하게 그려낸 만화 [짬]을 보며 내내 웃고 울컥하면서도 그 작가의 다음 작품들로 또 웃고 또 울컥하게 될 거라고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군대라는 특수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덤덤하면서도 따뜻하게 풀어내는 시선은 돋보였지만 또 그만큼 군대라는 소재를 벗어나서도 그런 장점이 드러날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군대를 벗어난 자리에선 무한동력 기계를 만드는 아저씨와 함께 하는 하숙생들의 이야기 [무한동력]이 이어졌고, 한국 신화를 모티브로 창작한 [신과 함께] ‘저승편’은 2010년을 통틀어 몇 손에 꼽힐 만한 성과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짬]의 주호민은 [짬]과 [무한동력]의 주호민으로, 다시 [짬]과 [무한동력], 그리고 [신과 함께]의 주호민은 [신과 함께] 3부작이 끝난 현재, 그냥 믿고 보는 만화가 주호민이 되었다. 소재와 문제의식을 다양한 방향으로 확장하면서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태도를 놓치지 않는 이 작가는 어떻게 깊고 넓은 시선을 가지게 됐을까.

인터뷰어: [신과 함께] ‘신화편’ 연재가 끝난 지 두 달 정도가 되어간다. 어떻게 지내고 있나.
주호민: 지금은 ‘신화편’ 단행본 작업을 하고 있다. 계속 신경이 쓰여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다. 단순히 표지랑 속표지 몇 장 그리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부록을 넣어야 한다. 보통은 단행본 구입하는 독자를 위한 서비스 차원의 부록인데 이번엔 그 차원을 좀 넘은 것 같다. 엔딩에 대한 변주라고 해야 할까. 강림도령의 남겨진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덧붙일 것 같다. 그리고 지장보살과 철융신에 대한 이야기도 추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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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는 한국 신화에 대한 흥미에서 출발한 기획인데, 또한 동시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게 돋보였다.
처음에는 그냥 한국 신화가 굉장히 재미있구나, 흥미롭구나, 해서 시작하게 됐는데 ‘저승편’의 무대인 지옥은 끊임없이 사람의 죄를 묻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또 각 지옥마다 다루는 죄가 다르니까 자연스럽게 한국 사람이 보편적으로 저지르는 죄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또 그 죄가 만들어지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이 보였다. 가령 ‘저승편’의 주인공 김자홍은 착한 사람인데 갑의 입장에서 하청업체를 쥐어짜는 역할을 하는데 그것은 구조적인 문제에서 출발한 죄 아닌가. ‘이승편’은 말 그대로 이승의 신 이야기인데 이승 신은 대부분 가택신이고, 가택신 최고의 시련은 집이 없어지는 거라고 봤다. 당시 용산 참사도 있어서 철거민에 대한 이야기로 가닥이 잡혔다. ‘신화편’은 원전 그대로 그리려고 했는데 그러면 그냥 ‘만화 한국 신화’가 되겠더라. 그건 나 아닌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거고. 그래서 지금 사회에서 생각해야 할 가치들을 고민했더니 충분히 접합할 지점이 있었다. 가령 첫 에피소드인 ‘대별소별전’에서 활로 해를 떨어뜨리는 장면은 사양신화라고 해서 인간의 진취성을 보여주는 것인데, 지금 필요한 가치는 영웅의 진취성보다는 서로 힘을 모으는 것이라 생각해 사람들이 다 함께 활을 쏘는 걸로 재구성했다.

말한 것처럼 [신과 함께]만 해도 신화와 동시대의 사건들이 나오고, [무한동력]도 무한동력 기계와 취업난을 다룬다. 다루는 소재의 범위가 넓다.
관심 있는 분야가 많다. 다큐멘터리 보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해양, 우주 다큐부터 휴먼 다큐까지. 그러다보니 관심사도 많아져서 책도 챙겨보고. 얕고 넓은 거지. 그런 것들이 어느 순간 결합이 되기 시작한다. 친구들 취업 문제에 관심이 많은 상태에서 [세상이 이런 일이]에 나온 무한동력 만드는 아저씨를 보며 [무한동력]의 스토리가 만들어지고, 이승과 저승의 신에 대해 공부하다가 용산 참사가 터지는 걸 보면서 [신과 함께] ‘이승편’을 만들고. 나는 흔히 방아쇠가 당겨진다고 표현하는데, 그렇게 머릿속에 부유하던 소재들이 붙는 순간이 있다. 아마 다음 만화도 그렇게 방아쇠가 당겨지는 시점부터 시작하게 되겠지.

여러 분야에 대한 관심은 창작자로서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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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여러 분야에 촉수를 세우는 게 창작자에게 도움이 되는 것 같나.
도움이 되는 정도가 아니라 창작자로서의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요리에 비유하는 걸 좋아하는데, 재료가 다양해야 다양한 레시피가 나오는 것처럼 창작도 여러 재료가 있어야 새로운 게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당장 쓸모가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도 재미있어 보이는 거에 관심을 가지는 건 중요하다.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소재가 결합해 불이 붙을지 모르니까.

사실 요즘엔 어떤 분야든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지식을 강조하는데.
그런 게 중요한 분야도 있겠지만 만화는 그림 그리는 걸 빼면 나머지는 기획과 스토리텔링이다. 이건 단시간에 이뤄낼 수 있는 게 아니다. 자료의 양도 많아야 하고 그걸 조합하는 시간과 요령도 필요하다. 어차피 길게 보고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니까 언제 사용할지는 몰라도 계속 보고 들으며 모으고 있다. 사실 요즘엔 안 그러면 불안한 것 같기도 하다. 끊임없이 재료를 모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서 최신 기사를 보고 책을 찾아보는데 예전처럼 마냥 즐겁게 보진 못하고 있다. 그냥 재밌게 보던 것들이 내 작품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렸으니까.

그럼 요즘 재밌게 파고드는 분야가 있나.
요즘은 재밌는 게 없다. 앞서 말한 단행본 작업 때문에 사실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뭘 재밌게 못 보는 상황이다. 이 작업이 끝나고 조금 쉬면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예전에 보았는데 언젠간 꼭 활용하고 싶은 소재가 있나.
우주에 관심이 많아서 2년 전에 만화가들이랑 같이 천문대도 가고 천문학자들과 세미나도 했다. 외계지적생명체를 탐사하는 세티 프로젝트에도 관심이 많고. 그런 걸 좋아한다. 달과 관련한 음모론이나 미스터리 같은 것. SF 혹은 스페이스 오페라 스타일로 그런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다. 가령 달 뒷면에 주민들이 살고 있는데 앞면으로 오면 지구에 관측이 되기 때문에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고, 그걸 넘는 사람들이 지구에 관측되며 생기는 일들. 우주가 배경이면 배경 그리기도 편할 거 같다. (웃음)

그런 이야기를 하기에 만화는 좋은 매체인가.
내 생각이나 상상력을 표현하는데 있어 가장 싼 방법이지 않나.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에서 라디오 드라마는 ‘여기는 우주다’라고 하면 그냥 우주가 된다고 말했던 것처럼, 만화 역시 손쉽게 그런 상황을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림체와 장르의 접합이라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과거 [짬]을 연재하던 시기에는 그 이야기엔 본인의 그림체가 가장 어울린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런 생각이 있었는데 깨졌다. 정확히 말해 노마비 작가의 [살인자 o 난감]을 보면서 어떤 그림체로 그리든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4컷 짜리 만화로도 잔혹한 스릴러를 보여주지 않나. 그걸 보며 노마비 작가는 그 그림체로 스페이스 오페라를 그려도 받아들여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그림체 때문에 생기는 한계는 없다고 본다. 오히려 그림체가 가벼울수록 담을 수 있는 폭이 넓어질 수 있다. 극화체의 세밀한 그림체면 가벼운 이야기를 담기 어려울 수 있지만 가벼운 그림체로 좀 타이트한 이야기를 담는 건 거부감이 없더라. 그런 면에서 어느 정도의 헐렁함을 유지하는 게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시선은 몰라도 시야는 넓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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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체에 대한 판단이 변한 것처럼 [짬]을 연재하던 이십대 중반과 비교해 시선의 변화 같은 게 있나.
시선은 모르겠고, 시야는 조금 더 넓어진 것 같다. 사실 군대 다녀오기 전만 해도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 같은 건 없었다. 만화를 그리며 필요에 의해, 혹은 관심에 의해 여러 매체로 동시대의 문제를 보니 부조리도 많고 약한 사람도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러면서 이상하게 그쪽에 마음이 끌리더라. 그래서 항상 등장하는 인물도 소시민이나 하숙생, 철거민이 되고. 그리고 나이를 먹다보니 확실히 삼십대 취향의 만화를 보게 된다. 머리가 좀 굵어져야 이해할 수 있는 만화들. 가령 윤태호 작가님의 [미생]이나 아즈마 히데오의 [실종일기]처럼 극적인 요소가 없어도 사람 사는 이야기만으로 뭉클하고 울컥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좋아졌다. 시각적 쾌감이 주가 되는 활극보다는.

하지만 [신과 함께] ‘저승편’은 상당한 활극을 보여주면서도 그런 울컥하는 요소를 곳곳에 담았다.
어쨌든 지옥을 해쳐나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했으니까 활극적인 요소를 고민해야 했다. 다만 주인공의 감정은 좀 더 보편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걸 조율하는 과정이 재밌었다. 한 회 활극이 나오면 다음 회에선 주인공의 내레이션이나 과거 사연이 나오고 그게 지루해질 거 같으면 다시 활극이 나오도록. 그래서 저승차사의 원귀 추격전과 김자홍이 저승에서 겪는 이야기를 번갈아 나오게 했다. 적당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으려고. ‘저승 편’은 공간 자체가 상상의 공간이다 보니 그렇게 다양한 시도를 많이 해볼 수 있었는데 ‘이승 편’에서 꾀죄죄한 철거 직전의 공간으로 돌아오니 확실히 내용이 지루해졌다. 이야기의 집중은 됐지만.

지루한 건 모르겠지만 전작 모두를 통틀어 유일하게 우울한 작품이었다.
대놓고 암울한 신파였지. 나는 그렇게 노골적인 걸 싫어하는데 그릴수록 노골적인 선악 구도가 되는 거다. 어느 순간부터 제어가 되지 않아 힘들었다. 좀 더 돌려서 말하고 싶지만 그래도 용역이 집 때려 부수는 장면은 나와야 하고. 용역 깡패 아르바이트를 하는 체대생의 비중을 좀 더 늘렸어야 했다. 더 일찍 등장시키고. 그 캐릭터가 고민하는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었어야 했는데 단편적인 인물이 되어버렸다.

대사보단 은유로 독자가 보고 느끼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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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작품들에서도 느껴지는 것이지만 작가의 감정이나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걸 경계하는 것 같다.
캐릭터의 감정을 말풍선 안에 대사로 드러내는 걸 경계하는 편이다. 소년만화 보면 ‘평화는 소중한 거야!’ 이런 식으로 만화의 주제를 직접 말하지 않나. 그보단 은유나 상황 제시, 행동을 통해 독자가 보고 느끼도록 하는 게 울림이 더 크다고 본다.

그게 말하는 방식에서 조심하는 면이라면, 말하는 내용에 있어 조심하는 건 어떤 걸까.
이 만화에 나오는 작은 문장의 실수로 인해 상처 받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나도 모르게 차별적인 말로 특정 계층을 화나게 할 수도 있지 않나. 가령 ‘뭐야, 너 게이 같아’ 이런 말. 물론 이게 어떤 상황, 가령 안 어울리는 분홍색 바지를 입고 나온 친구에게 가볍게 하는 농담으로선 유머러스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하지만 자칫 ‘나는 그게 게이 같아서 불편하고 싫어’라고 받아들여지면 안 되지 않나. 그건 지금처럼 대형 포털에서 연재를 하기 전에도 항상 고민하고 조심하는 지점이다. 작품보단 트위터에서 실수를 많이 하는 편이지.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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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모든 작품이 범작은 넘었으면 좋겠다

트위터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만 이제 유명인으로서 작품 외적인 발언을 조심하게 되는 게 있나.
퍼거슨 감독이 트위터는 인생의 낭비라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다만 재밌는 인생의 낭비겠지. 얼마 전 약간의 말싸움이 생기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는데 내가 명백히 잘못한 거다. 난 팔로워의 수가 권력처럼 된다는 걸 그때 알았다. 팔로워가 많은 사람이 개인적인 문제를 토로하면 ‘이거 좀 보세요. 제가 이렇게 당하고 있어요’라고 비춰질 수 있다. 그건 독백일 수 없다. 2만 5천 명 정도의 팔로워가 보는데. 확실히 전파가 빠른 개인 매체라는 매력은 있지만 조심해서 써야 한다는 걸 느낀다.

전작 모두가 좋은 작품이지만 그만큼 개인의 영향력이 커진 건, [신과 함께]가 엄청난 인기를 끈 때문이라고 본다. 메가히트 작품을 낸 만큼 후속작에 대한 고민이 클 것 같다.
매번 만화 끝나면 슬럼프가 온다. [짬] 때도 그랬고, [무한동력] 때도 그랬다. 아마 이번에도 올 거다. 완전 바닥을 친다. 더 재밌게 그릴 자신도 없고 그리고 싶은 것도 없다. 언제나 극복했으니까 이번에도 극복을 하긴 할 거다. 다만 [신과 함께]는 내 작품 중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고 영화화도 결정된 만화라 아마 그만큼 그리긴 쉽지 않을 거다. 그냥 이렇게 생각한다. [신과 함께]가 홈런이라면, 1, 2루타 정도를 쳐도 나쁘진 않을 거라고. 삼진만 안 당하고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또 홈런을 칠 거라고.

결국 꾸준하게 일정 타율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겠다.
타율은 유지해야지. 다만 야구선수는 3할이면 성공이지만 만화는 그러면 다음 연재가 어려울 수 있다. (웃음) 8할 정도를 치면 좋겠다. 앞으로의 모든 작품이 범작은 넘었으면 좋겠다.


작가프로필

  • 이름
    주호민
    데뷔작
    경력
    2005~2008년 짬
    2008~2009년 무한동력
    2010~2012 신과함께
    수상
    2011년 대한민국 콘텐츠 어워드 만화부문 <대통령상>
    2011년 제8회 부천만화대상 <우수이야기만화상>

발행일

발행일 : 2012. 11. 01.

출처

제공처 정보

  • 위근우 웹 매거진 'ize' 취재팀장

    <드래곤볼>과 <북두신권>을 보면 문제아가 될 거라는 어른들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만화책을 보며 그럭저럭 멀쩡하게 성장. 동네 글 좀 쓰는 형으로 지내다가 웹 매거진 〈ize〉 취재팀장으로 신분 상승.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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