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메뉴로 바로가기 주제분류 메뉴로 바로가기 본문으로 바로가기

중국인물사전

허진

[ 許進 , Xǔ Jìn ]

요약 명나라의 관리
허진의 초상화

허진의 초상화

시대 명나라 중기
출생 - 사망 1437년 ~ 1510년

1. 관리로 승승장구하다

자는 계승(季升)이고 호는 동애(東崖)다. 영보(靈寶, 지금의 허난 성 싼먼샤 시(三門峽市) 링바오 시(靈寶市)) 출신이다.

어렸을 때부터 학문을 좋아했고 『예경(禮經)』을 즐겨 읽었다. 29세가 되던 성화(成化) 2년(1466) 진사에 급제하여 감찰어사가 되었는데, 환관 왕직의 노여움을 사서 죽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이후 부친상을 당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삼년상을 마치고 산둥(山東) 안찰사부사(按察司副使)가 되었다.

1488년에 우첨도어사(右僉都御史), 대동(大同)순무(巡撫, 지방장관)가 되었고, 1494년에 산시(陝西)안찰사(安察使)가 되었다. 1506년에 무종(武宗)이 즉위한 후 유대하를 대신하여 병부(兵部)상서1)가 되었고, 이후 예부(禮部)상서 겸 태자소보2)가 되었다.

1510년에 향년 73세로 병사했다. 시호는 양의(襄毅)다.

그는 여덟 아들을 두었는데, 이름은 허소(許詔), 허고(許誥), 허찬(許讚), 허기(許記), 허시(許詩), 허사(許詞), 허지(許誌), 허론(許論)이다. 그중 3명이 훗날 상서가 되어 후세에 ‘명대 허씨 사상서(明代許氏四尙書)’로 일컬어졌다.

2. 억울한 사건을 해결하여 명성을 날리다

허진은 산둥안찰사부사 재임 중에 많은 백성의 억울한 사건을 해결해주어 유명해졌다. 일례로 한 시골 아낙이 남편에게 새참을 가져다주었는데, 남편이 그 새참을 먹고 갑자기 죽었다. 시누이들은 아낙이 음식에 독을 넣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관아에 고발했다. 관아에서 아낙을 압송하여 고문하자 그녀는 억지로 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허진이 이 사건을 듣고 의심스러워서 아낙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이에 그녀는 보통 때처럼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어서 자기가 한 번 먹어보고 중간에 가시나무숲에서 쉰 적이 있는데 이때 가시나무 꽃가루가 음식에 떨어진 적이 있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허진이 새로 음식을 만들고, 그녀가 지목한 가시나무숲에서 돼지에게 음식을 먹였는데, 돼지 역시 급사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가시나무 꽃가루에 독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아낙의 억울함도 풀렸다고 한다.

이 같은 그의 사건 해결은 소설에도 삽입되었다. 청나라의 저명한 소설가 능몽초의 저서 『초각박안경기(初刻拍案驚奇)』, 『이각박안경기(二刻拍案驚奇)』에는 그의 사건 해결 사례들을 인용하여 창작된 부분이 많다.

참고문헌

  • 『명사(明史)』
  • 『삼재도회(三才圖會)』
  • 『고성현상전략(古聖賢像傳略)』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 등에 따라 법적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외부 저작권자가 제공한 콘텐츠는 네이버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