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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 세계

국회의원 보좌관

음지에서 일하며 나라를 움직이는 팔방미인

해마다 무더위가 가시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면 서울 여의도는 불야성을 이룬다. 국정감사를 앞둔 국회 의원회관은 철야근무를 밥 먹듯 하는 국회의원 보좌진들로 형광등이 꺼져 있을 때가 드물다. 언뜻 생각하면 국정감사 기간에는 감사를 받는 처지에 있는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이 더 바빠야 할 것만 같다. 하지만 철옹성 같은 행정부의 폐쇄적 방어망을 뚫어야 하는, 즉 감사를 해야 하는 국회의원에게는 그 이상의 전문성과 능력, 그리고 성실함을 필요로 한다. 그 작업은 국회의원 개인이 아니라 보좌진을 포함한 의원실 단위로 이뤄진다.

보좌관들이 주로 일하는 국회 의원회관 신관 전경(사진 오른쪽). 왼쪽은 국회 본회의장과 상임위원회 회의장이 있는 본관. <제공: 경향신문 자료사진>

국회의원 보좌관은 누구

사전적 의미로 보좌관은 ‘상관을 돕는 일을 맡은 직책 또는 관리’를 말한다. 국회에서 일하는 보좌관들의 상관은 국회의원이다. 2012년 4·11 총선으로 국회에 등원한 19대 국회의원은 모두 300명. 의원 1명당 4급 보좌관 2명, 5급 비서관 2명, 6·7·9급 비서 각 1명, 유급 인턴 2명까지 모두 9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입법부에 속한 별정직 공무원이다. 좁은 의미의 보좌관은 4급 2명만을 일컫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보좌진 전체를 말한다. 의원 개인이 따로 고용한 인력을 제외한 ‘공식’ 보좌 인력은 2700명(의원 300명 곱하기 9)에 이른다. 숫자로만 따지면 국회에서 직접 마주칠 가능성이 높은 쪽은 의원이 아니라 보좌진이다. 의원보다 9배나 많은 인력이 국회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계산에서 그렇다. 의전만 보면 국회의 주인은 국회의원 같아 보인다. 하지만 국회 도처에서 ‘내 집’처럼 숙식을 마다 않는 보좌관들이야말로 국회의 안주인과도 같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이 국회 본관 앞 잔디밭을 가로질러 의원회관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제공: 경향신문 자료사진>

어떤 일을 하나

‘보좌’가 주임무지만 이들이 보좌하는 일의 종류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스펙트럼이 넓다. 하지만 크게 보면 국회 관련 업무와 선거 관련 업무로 나눌 수 있다. 국회 관련 업무는 상임위원회와 국정감사, 예산·결산 심사, 인사청문회 등에서 의원들의 질의서를 작성하는 일이 있다. 의원의 대정부 질문 원고 작성도 보좌관이 할 일이다. 새로운 법안을 제정하거나 기존 법 개정안을 입안하는 등의 입법 활동은 대표적인 보좌관 업무다. 의원실에서 입법 활동에 필요한 정책 토론회와 공청회를 주최하면 기획단계에서부터 세부 준비, 행사 개최, 뒷마무리까지 모두 보좌관의 지휘 하에 진행된다. 다른 의원들 행사에 참석하는 일정도 마찬가지다. 정책자료집 발간과 이 모든 활동을 홍보하는 보도자료 작성·배포, 홈페이지·SNS 관리 등도 국회 보좌관이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다.

한 국회의원 보좌관이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있다. 의원 일정을 비롯한 개인 일정이 빼곡이 적혀 있다. <제공: 경향신문 자료사진>

선거 관련 업무는 공약 개발 등 선거 전략에서부터 유세문 작성, 현수막 제작, 언론 인터뷰 등 실무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관장한다. 선거가 임박한 ‘전시’가 아닌 ‘평시’에도 의원 지역구 관리를 도와야 한다. 지역민의 각종 민원 해결과 주요 행사 참석은 물론 후원회 조직 관리 등 세세한 일까지 늘 챙겨야 하는 게 보좌관의 일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팔방미인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이다.

얼마나 받나

팔방미인의 급여는 얼마나 될까. 세전 기준으로 2013년 현재 4급 보좌관은 연봉 7149만원, 5급 비서관은 6220만원을 받는다. 비서들은 6급 4318만원, 7급 3732만원, 9급 2880만원의 연봉이 책정된다. 보좌진들은 연령별로는 20대부터 50대까지, 최종학력은 학사부터 박사까지 다양하다. 변호사·회계사 경력이 있는 이들도 상당수여서 보좌진에게 지급되는 금액이 일률적으로 많다거나 적다고 하기는 어렵다. 과거에는 의원이 부인을 비서관으로 등록시켜 급여를 타 내는 등 가족을 보좌진으로 채용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실제 일을 맡기도 하지만 돈을 타내기 위한 목적의 가족 채용도 있었다. 지금도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고용하는 사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금방 도태 위기에 몰린다.

오해는 오해일뿐

의원 보좌관이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국회와 접촉이 없는 다수 사람들은 보좌관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는 자세히 모른다. 그러다 보니 이 직업을 둘러싼 오해도 많다.

1) 의원 가방모찌다?
보좌관을 부르는 호칭으로 ‘가방모찌’라는 다소 비하적인 표현도 있다. 물론 수행비서가 보좌진에 포함되긴 하지만 가방을 드는 것이 보좌의 주업무일 수는 없다. 한때 과거 가신(家臣)정치 시절 “그 분의 가방모찌라도 제대로 한다는 건 과분한 일”이라는 의원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무거운 서류가방을 대신해 얇고 가벼운 태블릿 피시와 스마트폰이 자리 잡았다. 비례대표 의원들은 여성이 절반 이상이다. 여성 의원들이 국회에 많아지면서 의원은 핸드백 같은 가방을 들고 다니는데 보좌관은 맨손인 ‘반대 사례’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시는 의원의 ‘심기 경호’는 보좌관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덕목이다. 그러나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은 여느 직장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다만 국회 보좌진은 9명이 의원 1명 아래에서 일하는 소규모 조직이다. 그러다보니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고, 이 때문에 좀 더 직장 분위기에 신경을 써야 하는 점은 있다.

국회 의원회관에 있는 의원실 안에 마련된 회의실. 의원 보좌진들은 하루에도 수 차례 이곳에서 회의를 한다. <제공: 경향신문 자료사진>

2) 여우가 호랑이의 권세를 빌린다?
국회의원의 권위에 기대어 정부 부처 등에 ‘슈퍼 갑(甲)’ 행세를 하는, 이른바 ‘호가호위(狐假虎威) 하는 존재가 아니냐’는 따가운 눈초리도 있다. 옛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아직 잔재가 남아있다. 모시고 있는 의원 권세가 강할수록 보좌관의 영향력도 그만큼 큰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호가호위는 대부분 보좌관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민원인들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한참이나 거리가 있는 말이다. 지역 유권자라는 이유만으로 자녀를 어느 곳에 취직시켜 달라거나 좋은 보직을 받게 해 달라, 사고를 쳤는데 검찰·경찰에 얘기해서 해결해 달라, 병원 진료 예약을 먼저 잡아달라는 등 ‘악성 민원’도 다반사다. 들어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부탁이더라도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선거를 치러야 하는 정치인을 보좌하는 사람의 딱한 처지다. 경력이 오래된 보좌관일수록 이런 민원들을 다루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쌓여간다.

3) 싸움을 잘 해야 한다?
18대 국회 때까지만 해도 해마다 연말이면 여야 국회의원들이 뒤엉켜 몸싸움을 하는 광경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의원들보다 훨씬 많은 보좌진들이 완력을 써야 하는 사태도 종종 발생한다. 대다수 국민들이 이런 장면을 지켜보면서 정치에 더욱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국회는 자정 요구의 압박을 받았고 2012년 5월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을 통과시켰다. 과반 의석을 가졌다고 해서 쉽게 의안 상정을 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날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졌고 이 같은 몸싸움은 이 법이 존속하는 한 찾아보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대신 말싸움은 계속되고 더욱 첨예해졌다. 몸싸움을 위해 체력을 기르는 것보다 말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논리를 찾아내고 글쓰기로 이를 구현해 내는 것이 보좌관이 해야 할 일이다.

때로는 의원 대신 보좌진들이 몸싸움과 힘자랑을 해야 했던 때도 불과 얼마 전까지 있었다. <제공: 경향신문 자료사진>

4) 정치인 진출 코스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장택상 전 국무총리 비서관 출신인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보좌관 출신 정치인은 수두룩하다. 정치 입문의 길이 다양하지 않던 시대에는 ‘정치인으로 가는 길’이라는 인식이 좀 더 강했다. 그러나 요즘은 보좌관을 하는 것이 다른 전문직에서 경력을 쌓는 것보다 정치인이 될 확률이 높다고 말할 수 없다. 그만큼 정치인으로의 입문 코스가 다양해졌기도 하지만 보좌관도 전문적인 직업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국회에 있으면서 정치를 배우고 선거를 치르면서 몸소 정치를 체험하는 폭은 분명히 넓어지지만 직업 정치인이 되는 것은 이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시험을 치러 되는 것이 정치인이 아닌 이상 정해진 길은 없다고 봐야 한다.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나

대학에서 정치외교학과나 법대를 나와야 보좌관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런 전공을 한 보좌관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자격요건은 아니다. 사실상 전공불문이라고 봐야 한다. 의원들은 16개의 국회 상임위원회 가운데 하나 이상에 반드시 속해야 한다. 국회 상임위가 아우르지 않는 대학의 전공 영역은 거의 없다. 대학 졸업 후 곧바로 인턴 등으로 국회에 발을 들여놓는 방법도 있지만 특정 분야에서 경력과 전문성을 쌓은 뒤 이를 필요로 하는 의원실에 지원하는 것이 빠른 코스일 수도 있다. 다만 팔방미인이어야 하는 의원 보좌진의 특성상 전문성이 있다고 해서 ‘외통수’가 돼서는 곤란하다.

보좌관이 하는 일은 모시는 의원이 여당이냐, 야당이냐에 따라 다르고 초선이냐 다선이냐에 따라서도 다르다. 의원의 전직(前職)도 학계, 법조계, 언론계, 행정관료, 재계, 정치권 등으로 다양해서 필요로 하는 보좌관 유형도 다양하다. 특정한 능력을 설정해 놓고 거기에 맞춰 준비한다고 해서 보좌관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박사 학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직접 부딪치지 않고서는 보좌관 일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성과 도전정신일 수 있다.

국회 의원회관 신관 전경. <제공: 경향신문 자료사진>

불안정한 신분의 이면

의원실 하나하나가 하나의 회사와도 같다는 의미에서 “국회에는 300개의 회사가 있다”는 말도 있다. 형식상 4급과 5급 보좌진 임명과 면직은 국회의장이, 6급 이하는 국회 사무총장 승인을 받아 이뤄진다. 그러나 실제 생살여탈권은 300개에 이르는 개별 회사의 주인인 국회의원에게 있다. 임용은 물론 면직도 의원이 마음먹기에 따라서다. 의원이 면직요청서를 국회의장이나 사무총장에게 보내면 끝이다. 의원 보좌관의 임기가 4년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는 틀린 말이다. 하루 만에 잘릴 수도 있다.

‘하루살이’ 신세는 역설적으로 국회를 보좌관들의 치열한 각축장으로 만든다. 그렇게 하루하루 실력이 쌓이면 어느 순간에는 4년마다 대폭 교체가 이뤄지는 의원을 고를 수 있는 위치에 오르기도 한다. 전문성과 실력을 갖춘 보좌관은 특히 초선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의 스카웃 대상이다. 법안 및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고 지켜보는 것은 물론 정계·행정부 고위층과 잦은 접촉으로 고급 정보가 많은 이들을 대상으로 대기업에서 영입 경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총선·대선 등에서 수훈을 세워 청와대 비서관·행정관이나 공기업 임원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기초자치단체부터 국회의원까지 직접 선거에 나서기도 한다.

1995년부터 국회에서 일을 한 <국회보좌진 업무매뉴얼>의 저자 서인석 보좌관은 “한때 정치 등용문으로 여겨졌던 보좌진은 이제 세월의 흐름과 함께 정책을 입안하고 다루는 전문인으로, 그 위치와 역할이 변했다”라고 말한다. 그는 “과거는 말 그대로 보스를 위한 ‘비서’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의원의 의정활동을 보좌하는 ‘정책적 조력자’”라고 보좌관을 정의한다. 보좌관의 중요성을 그는 이렇게 말한다. “보좌진의 경험과 역량에 따라 결과에 많은 차이가 존재한다. 보좌진의 질이 의원실, 아니 국회의 질이다.”

발행일

발행일 : 2013. 11. 20.

출처

제공처 정보

  • 글·사진 정환보 경향신문 기자

  • 제공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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