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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

오발탄

구분 단편 소설
저자 이범선
출판사 현대문학
출판일 1959. 10.

작품해설

1959년 10월 『현대문학』에 발표된 이범선의 단편소설.

해방촌의 붉은 산비탈 계리사 사무실 서기인 송철호는 이른 봄 힘없이 비탈길을 내려와 판잣집으로 향한다. 판잣집에는 북쪽에 두고 온 산하(山河)와 고향이 그리워 ‘가자! 가자!’를 외치고 있는 어머니와 산월이 된 아내, 그리고 제대하고 2년이 넘도록 방황하고 있는 동생 영호와 양공주가 된 누이동생 명숙이가 함께 살고 있다. 어머니는 삼팔선이 가로막혀 갈 수 없다고 해도 ‘가자! 가자!’를 외치고 있고, 동생 영호는 자기 방식대로 살겠다고 하면서 사회를 저주하고 철호를 힐난한다.

이튿날 영호는 권총 강도를 하려다가 체포되어 경찰서에 갇힌다. 철호는 경찰서에 가려다가 아내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명숙의 돈을 빌려 병원에 갔으나 아내는 죽어 있었다. 철호는 치과병원 앞을 지나다가 갑자기 이가 아픈 것을 느끼고 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를 다 뽑아버린다. 택시를 탄 철호는 경찰서로 가자고 외치듯이 말한다. 경찰서에 다 왔다는 말이 어슴푸레하게 들리는데 철호는 그저 ‘가자!’를 외치고는 정신을 놓는다. 운전사가 “어쩌다가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라고 중얼거리는데 철호의 입에서는 피가 흐른다. 신호가 떨어져 차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차선을 따라 네거리를 지나간다.

이 작품은 철호 일가의 삶을 통해서 전후의 비참하고 혼란한 상황을 그리면서 한국전쟁 직후의 한국인은 오발탄과 같은 비극적인 존재라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전후라는 극한상황은 고향이 그리워 절규하는 어머니와 꿈 많던 음악도였던 아내, 제대하여 방황하면서 사회적 불만을 토로하는 영호, 살기 위하여 양공주가 되어 있는 명숙 등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외적 상황을 통해서 적절하게 그려지고 있다. 주인공의 이가 아픈 것은 이러한 외적 요인이 내적 요인으로 전화한 결과이다. 이 두 요인이 조화되지 못하고 갈등과 좌절로 비극화되어 있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다.

줄거리(사이버 문학광장 제공)

계리사 사무실 서기로 근무하는 송철호는 퇴근시간이 훨씬 넘었지만 일어나지를 않는다. 할 일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빗자루를 휙휙 날리며 마무리 청소를 하는 사환애의 노골적이 짜증에야 그는 일어선다. 손가락에 묻은 잉크를 씻으며 그는 피를 연상한다. 대야 밑바닥에 떠오른 자신의 얼굴이 원시인 같다고 생각한다.

철호는 느릿느릿 해방촌 고개를 오른다. 판잣집 문을 열자 가자! 가자!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다녀왔습니다, 라고 인사를 안 한지도 무척 오래되었다. 방문을 연 채 본 어머니의 모습은 박물관의 모습 같았다. 철호는 그대로 털썩, 벽에 기대앉는다. 그대로 엉엉 울고만 싶다. 만삭이 된 아내가 몽유병 환자처럼 일어나 부엌으로 간다. 그새 어머니는 또 외친다. 가자! 가자! 철호는 뒷산에 서 있다. 매일 저녁식사 후 산에 오른다. 춥지만 집보다는 훨씬 낫다. 북두칠성을 찾았다. 북극성도 찾았다. 두 개의 별자리와 자신을 연결해 본다. 그 끝까지 눈을 따라 가본다. 견딜 수 없게 추워졌을 때 철호는 집으로 왔다. 가자! 가자! 여전히 어머니의 소리가 마중을 한다. 철호 어머니의 고향은 이북이다.

그곳에서 땅마지기 꽤나 지니고 지주 소리를 들은 어머니는 남한 판잣집의 삶이 너무도 싫었다. 폭격을 목격한 철호의 어머니는 용산이 그렇게 무너지듯 삼팔선도 무너질 것이라고만 했다. 어서 가자고만 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정신을 마비시켜 버렸다. 고학으로 어렵사리 대학 3학년까지 다닌 동생이 또 술에 취해 들어와 허풍 잡는 소리만 한다. 군에 다녀온 후 직장을 못 잡더니 지금까지 계속이다. 돈도 없는 놈이 술에 양담배에 택시에, 철호는 그런 동생이 못마땅하다. 무슨 엉뚱한 일이라도 저지를 것 같아 불안하다. 과연 동생은 용기가 있어야 된다고 말한다.

양심, 윤리, 관습, 법, 모두 벗어 던질 수 있는 용기. 철호는 동생에게 용기가 없다는 말을 듣는다. 너무 강한 양심만 있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아픈 이빨 하나도 치료 못해 참고만 지내는 미련함을 욕했다. 여동생 명숙이 제법 사무원 티를 내며 들어왔다. 얼마 전 버스에서 내려다 본 지프. 그 안에 명숙이 미군에게 허리를 맡긴 채 앉아 있었다. 명숙은 백만 던져버린 채 어머니 옆에 쭈그리고 누었다. 가자! 가자! 엄마! 엄마! 명숙의 젖은 음성이 엄마를 애타게 불렀다. 이번에는 자다 깬 딸애가 엄마를 불렀다. 삼촌이 내 신발 사 왔지? 엄마 볼래? 내일 신어도 돼?

경찰서에서 철호를 찾는다. 철호는 경찰서 출입이 처음은 아니다. 명숙의 신원 확인차 호출을 당한 것을 처음으로 이번엔 영호의 강도 짓에 불려간다. 흉기를 든 현금수송차 탈취범. 영호는 철호를 보자 대뜸 자신이 용기가 없었음을 아쉬워했다. 인정, 그놈의 인정 때문에 죽이지 못해 실패를 했다고 계속 아쉽다고 했다. 골목에 들어서자 벌써 어머니의 외침이 들렸다. "어딜 가잔 거야. 도대체 어딜 가잔 거야?” 철호는 꽥 소리를 질렀다. 골목에서 놀던 어린아이들이 놀라 벌떡 일어난다. 그러나 집에 들어 온 철호는 누이로부터 다급한 소리를 들어야 했다. "지금쯤 애기를 낳았거나 아니면…….”

철호는 기운이 빠지면서 머릿속이 깨끗이 개는 것을 느꼈다. 뭐 놀랄 일이냐 하는 심정이 되었다. 돈 가지고 가야지. 만환이 던져진다. 핀잔을 주며 돌아앉은 명숙의 스타킹이 구멍이 뚫려있다. 철호는 오히려 친근감을 느낀다. 병원에 갔을 때 이미 아내는 죽어 있었다. 간호원의 동정의 눈빛이 무색하게 철호는 반응이 없다.

철호는 한가한 마음이 된다. 이제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만 생각한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걷다보니 회사 앞이다. 고개를 들어보니 이번에는 경찰서 앞이다. 철호는 돌아섰다. 또 걸었다. 문방구, 라디오방, 제과점, 그것들을 자세히, 한가하게, 기웃거리며 걸었다.

그러던 철호는 우뚝 섰다. 치과. 치과의 간판을 보니 갑자기 통증이 왔다. 아래위 어느 것의 통증인지 알 수가 없다. 아팠지요? 묻는 의사가 무색하게 철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오히려 잠이 왔었다. 의사는 한 개를 마저 빼달라는 철호의 말을 기어이 들어주지 않았다. 또 하나의 치과 간판이 보였다. 철호는 우습게도 안 된다는 의사에게 사정을 한다. 두 개의 어금니가 빠진 자리에서는 선지피가 간 덩어리처럼 엉겨 나왔다. 추웠다. 눈앞이 흔들렸다. 오한이 났다.

"해방촌!”철호는 당당히 외쳤다. 아니, 병원으로. 예? 아니야, 경찰서로. 택시는 경찰서에 섰다. 다 왔습니다. 철호는 상반신을 벌떡 움직였으나 곧 쓰러졌다. "가자!” 철호는 또 외친다. "어디로 갑니까?”"글쎄, 가!”

기사는 투덜거린다.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철호가 탄 차는 목적지를 모르는 대로 흘러가고 있다. 철호의 입에서 흐르는 피가 와이셔츠 가슴을 적시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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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문학의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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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 권영민 대학교수, 문학평론가

    1948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한 후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미국 하버드대 객원교수, 버클리에서 한국문학 초빙 교수를 역임했다. 1990년 현대문학평론상, 1992년 김환태평론상, 2006년 만해대상 학술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이외에도 서울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 현대문학사』, 『우리문장강의』, 『서사양식과 담론의 근대성』, 『한국 계급문학 운동사』, 『한국 근대문학과 시대 정신』, 『월북 문인 연구』, 『한국문학 50년』, 『윤동주 연구』, 『작은 기쁨』 『문학의 이해』등이 있다. 자세히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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