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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이 쓰는 ‘생명의 비밀’] 인류 최초의 의복 

무화과 나뭇잎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노화 예방, 지방 분해에 효과적이며 잼·젤리·술·양갱·주스·식초 등 요리재료로 활용

▎무화과는 암을 치료하는 약재로도 쓰인다.
우리 시골 친구네 집에 무화과나무(fig tree)가 있어서 이맘때면 입에 살살 녹는 달콤한 과일을 얻어 먹곤 했는데, 이번 추석에 갔더니만 고목이 되어 말라 죽고 말았으니 무척 아쉬웠다. 사실 그 죽마고우(竹馬故友)는 단명하여 노목(老木)이 되기도 전에 요절(夭折)하고 말았지만 말이다.

무화과(無花果) 나무는 뽕나무과(mulberry family)의 낙엽관목(갈잎떨기나무)으로 아시아 서부나 지중해 연안의 건조지대가 원산지다. 상록(常綠)이라 아열대, 열대지역에선 사철 열매를 맺으며, 과일 먹는 박쥐나 원숭이들의 먹이가 되기에 열대우림지대의 자연 생태계에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세계적으로 850여 종이나 되고, 그중에서 동남아 지역이나 우리나라에 나는 ‘보통무화과(Ficus carica , common fig)’는 과일나무로나 관상수로 인기가 높다.

보통무화과는 뽕나무처럼 자웅이주(암수딴그루)로 늘씬한 줄기는 3~5m로 문실문실 죽죽 자라고, 나무껍질은 부드러우면서 회백색이다. 잎은 어긋나고, 길이가 12~25㎝며, 넓은 손바닥 모양으로 깊게 파인 5개의 기름기름한 조각 잎(열편, 裂片, lobe)이 난다. 열편엔 도드라진 잎맥이 흐르고, 가장자리엔 잔 톱니(거치, 鋸齒)가 있다. 진초록의 잎은 거칠고, 뒷면에 털이 많으며, 상처가 나거나 덜 익은 과일에도 유액(乳液, figs latex)이 나온다.

꽃이 피지 않는 과실이라 하여 ‘無花果’라고 하나 실제로 과일 안에 꽃이 한가득 피어 있다. 다시 말하면 꽃턱(receptacle)이 안으로 도르르 말려들면서 꽃들을 둘러싸 벽에 꽃들이 달라붙어 보이지 않는다. 결국 잘라봐야 꽃을 보이니 이런 꽃을 은화(隱花)라 하고, 거기서 생긴 과일을 은화과(隱花果)라 한다.

무화과나 양딸기들은 꽃턱이 발달하여 열매가 된다. 꽃턱이란 다른 말로 ‘꽃받기’ 또는 ‘화탁(花托)’이라 부르고, 꽃받침·꽃잎·수술·암술 등 모든 생식기관이 달려 있는 불룩한 부분을 일컫는다. 무화과 열매 길이는 5∼8㎝로 구시월에 검은 자주색이나 황록색으로 익는다.

그리고 씨방(ovary)이 자라서 열매가 된 것이 참열매이고, 씨방 이외의 부분이 자라서 열매가 된 것을 헛열매라 하니 무화과는 꽃턱이 자란 위과(僞果)다. 그리고 하나의 무화과 열매에는 씨앗 하나를 가진 수백 내지 수천 개의 열매가 든 복합과(複合果, multiple fruit)로, 무화과는 겉으로는 한 개의 열매로 보이지만 실은 수많은 잔 열매가 모인 것이다.

무화과는 종에 따라 수정이 되지 않고 단순히 어떤 자극에 의하여 씨방이 발달하여 열매가 생기는 단위결실(單爲結實)하는 것과 우리나라 보통무화과처럼 꼬마말벌이 수분매개체(受粉媒介體,pollinator)가 되어 수분·수정하는 것이 있다. 세계적으로 그것이 각각 반반씩이라 한다.

꼬마말벌과의 공생 메커니즘

우리나라 무화과는 무화과꼬마말벌(Blastophaga psenes )이 꽃가루받이를 한다. 이 말벌(wasp)은 길이 약 2㎜로 눈에도 겨우 보일 정도로 작고, 자유생활을 하기에 집단(colony)을 이루지 않는다. 또 오래 살아도 며칠, 몇 주로 채 한 달을 못 사는 단명한 종이다. 하고 많은 열매 중에 하필이면 무화과람.

검은색이면서 날개가 난 암컷 말벌이 무화과의 우묵 들어간 배꼽에 있는 작은 구멍을 뚫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면 귀신 같이 날개 없는 암컷보다 작은 수컷이 다가와 짝짓기하고, 암컷은 벌침(針, sting)이 변한 산란관(産卵管)을 열매 살에 꼽고 산란한다. 부화한 애벌레는 씨방에 혹을 만들고 그 혹을 먹으면서 안간힘을 다해 자란다.

성충이 될 무렵이면 무화과의 꽃가루도 익는다. 어른 벌레가 된 암컷은 수컷이 애써 넓혀 놓은 열매 구멍을 뚫고 나와 곁에 있는 다른 무화과 열매를 찾는다. 이렇게 새 열매에다 산란하면서 몸에 묻혀온 꽃가루를 다른 꽃에 묻혀준다. 하여 말벌과 무화과나무는 서로 공생(共生, mutualism)한다. 그래서 무화과 열매를 잘라보면 흔히 벌레가 들었으니 꼬마말벌·유생·알이다.

과일이 익을라치면 쩍쩍 갈라지는 것이 눈으로도 먹음직스럽다. 날로 먹거나 꾸덕꾸덕 말려먹으며, 잼·젤리·술·양갱·주스·식초 등으로 가공해 먹고, 각종 요리재료로 쓴다. 필자도 노화예방에 좋다 하여 건과를 사달라고 졸라 자주 먹는 편이다.

열매에는 당분(포도당과 과당)이 약 10% 들어 있어 단맛이 강하고, 사과산과 구연산 같은 유기산(有機酸)을 비롯하여 피신(ficin)이 들었다. 피신은 무화과나무의 유액에 들어 있는 단백질 분해효소인 프로테아제(protease)다. 그밖에 리파아제, 아밀라아제 등의 소화효소와 섬유질이 풍부하게 들었다. 고기붙이를 먹었을 때 삭임이 제대로 안 되면 무화과를 먹으니 단백질이나 지방 분해효소가 많이 든 탓이며, 치즈 제조 때 우유 응고에 무화과유액을 사용하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고대 로마나 현재 이스라엘 등지에서는 강장제·암·간장병 등을 치료하는 약으로, 민간에서는 소화불량·변비·설사·피부질환·부인병에 쓴다고 한다. 현재 터키·이집트·알제리 순으로 많이 재배한다하고, 우리나라에서 전라남도 영암·해남에서 국내 총생산량의 90% 이상을 생산한다고 한다. 고속도로 휴게소마다 한가득 널려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 아담과 이브가 금단(禁斷)의 열매(the forbidden fruit)를 먹은 다음 국부(局部)를 가린 것이 넓적한 무화과 나뭇잎 아닌가.

권오길 - 1940년 경남 산청 출생. 진주고, 서울대 생물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수도여중고·경기고·서울사대부고 교사를 거쳐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2005년 정년 퇴임했다. 현재 강원대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등을 받았으며, 주요 저서로는 <꿈꾸는 달팽이> <인체기행> <달과 팽이> <흙에도 뭇 생명이> 등이 있다.

201511호 (2015.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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