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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클래식

글래디에이터

리들리 스콧 감독

로마 제국 최고 전성기로 꼽히는 이른바 오현제(五賢帝) 시대의 마지막 황제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였다. 우리에게 『명상록』의 저자로 잘 알려진 바로 그 황제이다. 그는 철학에 대해 논하고 사색에 잠기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나라의 사정은 그를 한가롭게 학문에만 매진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끊임없이 이민족이 침입해 들어왔기 때문이다. 독서와 사색을 좋아하는 철인(哲人) 황제가 전쟁을 반겼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통치 기간 내내 전쟁에 시달려야 했다.

음악리스트
No. 아티스트 & 연주  
1 홀스트 [행성] 중1곡 [화성] / 주빈 메타(지휘),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분 미리듣기 / 음원제공: 유니버설 뮤직 / 앨범 정보 보러가기

책임감이 강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황제로서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직접 전장에 나가 군대를 지휘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는 바로 이 전쟁터에서 시작한다. 로마 군대를 이끌고 게르만 족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로마 장군 막시무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다. 황제에게는 코모두스라는 아들이 있는데, 황제는 자기 아들보다 막시무스를 더 신뢰한다. 그래서 막시무스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려고 한다. 황제가 원하는 것은 로마 공화정의 부활인데, 이를 실현시키는 데에는 탐욕스러운 코모두스보다 올바른 품성을 가진 막시무스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황제가 자기가 아닌 막시무스에게 황제 자리를 물려주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코모두스는 질투와 분노를 느낀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황제를 살해한다. 그리고 황제가 자연사한 것처럼 꾸민다. 하지만 막시무스는 직감적으로 황제가 코모두스에게 살해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부친의 죽음과 동시에 황제의 자리를 이어받은 코모두스는 황제의 근위대에게 막시무스를 처형하라고 명령한다. 막시무스는 그 즉시 처형장으로 끌려가지만 처형 직전에 근위대를 공격해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그리고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몇 날 며칠을 달려 고향집에 도착한다. 고향집에서 막시무스는 눈앞에 펼쳐진 처참한 광경에 경악한다. 아들과 아내, 병사들이 모두 불에 타 죽어있었던 것이다.

전장에서 군사들을 지휘하는 막시무스

그 후 아내와 아들의 시신을 땅에 묻고 탈진해 정신을 잃은 막시무스는 한 노예 상인에 의해 발견된다. 노예 상인은 그를 프록시모라는 사람에게 팔아넘긴다. 검투사 출신인 프록시모는 노예들을 검투사로 훈련시키고 이들을 시합에 내보내 돈을 벌고 있다. 이런 프록시모에게 팔려간 막시무스는 검투사가 된다.

검투사 시합에서 막시무스는 오랜 시간 전장에서 다진 전투력을 바탕으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한다. 검투사로서 그는 '스패냐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승리를 거듭하면서 영웅이 된 스패냐드는 마침내 로마의 콜로세움에서 열리는 검투 시합에 참가하게 된다. 콜로세움에서의 첫 시합에서 막시무스와 그의 동료 검투사들은 전차를 타고 나타난 병사들을 무찔러 관중들로부터 엄청난 환호를 받는다.

시합이 끝나자 황제인 코모두스가 검투사들 앞에 나타난다. 이 자리에서 막시무스는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이에 충격을 받은 코모두스가 그를 죽이려 하지만 막시무스에게 열광하는 관중들 앞에서 그를 죽일 수 없다고 생각하고 포기한다. 이후 막시무스는 그를 죽이기 위해 코모두스가 보낸 불패의 검투사 타이그리스와 싸움을 벌여 그를 쓰러 뜨린다. 막시무스의 공격을 받고 바닥에 쓰러진 타이그리스. 황제는 그를 죽이라고 하지만 막시무스는 그를 살려준다. 이 때문에 그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비로운 막시무스'로 통하게 된다.

타이그리스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후 그를 살려주는 막시무스

그 후 막시무스는 하인이었던 키케로를 만나 그가 지휘하던 군대가 여전히 그를 지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에 용기를 얻은 막시무스는 코모두스의 누이 루실라, 원로원의 그라쿠스와 공모해 반란을 일으킬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낌새를 알아챈 코모두스가 루실라를 협박해 계획을 알아내는 바람에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간다. 관련자들이 모두 죽고, 탈출을 시도하던 막시무스 역시 붙잡힌다.

코모두스와 막시무스

코모두스는 자기가 직접 막시무스와 결투를 벌여 그를 죽이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경기에 앞서 막시무스를 찾아간 코모두스는 칼로 막시무스를 찌른다. 그런 다음 상처를 가리고 갑옷을 입혀 경기장에 내보내라고 명령한다. 애초부터 공정한 시합이 아닌 셈이다.

그 후 두 사람은 수만 관중이 보는 가운데 시합을 벌인다. 계속해서 피를 흘리는 막시무스는 점점 무너져가는 몸을 추스르며 혼신의 힘을 다해 코모두스를 공격한다. 그래서 마침내 코모두스의 목을 찔러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황제의 뜻을 전한 후 그 자신도 숨을 거둔다.

[글래디에이터]에서 음악을 담당한 사람은 한스 짐머이다. 그런데 그는 지난 2006년 영국의 홀스트 재단으로부터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소송을 당했다. 그가 영화를 위해 쓴 [전투]라는 곡이 영국 작곡가 홀스트의 관현악 모음곡 [행성들] 중 [화성]을 표절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한스 짐머는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두 곡을 들어보면 비슷하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다. 두 곡의 분위기가 너무나 흡사하다. 홀스트의 [화성]의 부제는 ‘전쟁을 가져오는 자’이고, 짐머의 곡 제목은 [전투]이다. 홀스트나 짐머나 모두 ‘전쟁’을 그리려고 했다는 점에서 같다.

하지만 같은 상황을 그린다고 모두 비슷한 음악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짐머의 곡을 들어보면 표절이 아니라는 본인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그가 작곡하는 과정에서 홀스트의 [화성]을 참고(?)했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특히 집요하게 반복되는 리듬을 들을 때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그대로 베끼지는 않았어도 그 아이디어는 참고했던 것이 아닐까.

구스타브 홀스트(Gustav Holst, 1874 -1934) <출처: Wikipedia>

[행성들]을 작곡한 홀스트는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그는 당대 작곡가들이 추종했던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영향을 의식적으로 기피했다. 동료 작곡가인 본 윌리암스와 함께 영국 민요 채집에 심혈을 기울여 여기에서 받은 음악적 영감을 자기 음악의 토대로 삼았다. 하지만 그저 민족적인 작품을 쓰는데 그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의 독창적인 세계를 만들어갔다. 특히 인상주의적인 경향과, 대담한 화성, 독특한 리듬의 세계를 펼친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대표작인 [행성들]도 그런 작품 중 하나이다.

홀스트가 하늘에 떠 있는 별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13년 무렵이었다. 당시 그는 런던에서 출판된 알랜 레오의 『천궁도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읽었는데, 여기에 매료되어 점성술에 흥미를 갖게 되었으며, 일생 동안 친구들 앞에서 아마추어 점성술사 노릇을 했다고 한다.

이런 그의 관심은 곧 작곡으로 이어졌다. 1913년부터 [행성들]을 작곡하기 시작해 3년 만인 1917년에 완성했다. [행성들]은 모두 7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곡의 순서는 화성, 금성, 수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으로 되어 있는데 순서가 천문학적 배열이 아니라 점성술에 의한 배열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전쟁의 신 ‘아레스’ 혹은 ‘마르스’ 동상. <출처: Wikipedia>

이 중 첫 곡인 [화성]은 1914년에 완성되었다. [화성]에는 ‘전쟁을 가져오는 자’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이것을 보고 이 곡이 같은 해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한 반발로 작곡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스케치를 끝냈기 때문이다.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전쟁’에 대한 곡을 썼으니 예언적인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화성]에는 왜 ‘전쟁을 가져오는 자’라는 부제가 붙게 되었을까. 인간이 화성에 대한 관측을 시작한 것은 기원전 1600년 경이라고 한다. 그때 사람들은 화성이 불과 같이 붉게 빛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 후 바빌론 사람들은 화성을 ‘위대한 영웅’ 또는 ‘전쟁의 왕’이라고 불렀고, 이집트인들은 ‘붉은 별’ 혹은 '죽음의 별'이라고 불렀다. 한편 그리스인들은 화성을 전쟁의 신의 이름을 따서 ‘아레스’라고 불렀는데, 로마에서도 이 이름을 그대로 번역해 ‘마르스’라고 했다. ‘마르스’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이다.

관현악 모음곡 [행성들]의 특징은 뭐니뭐니해도 화려한 관현악 색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곡의 연주를 위해서는 제1, 제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바스로 이루어진 현악 5부를 기본으로 해서 피콜로, 플루트, 베이스 플루트, 오보에, 베이스 오보에, 잉글리쉬 혼, 클라리넷, 베이스 클라리넷, 바순, 더블 바순 등의 목관악기가 필요하다. 금관악기와 타악기 진용도 만만치 않다. 혼, 트럼펫, 트롬본, 테너 튜바, 베이스 튜바에 팀파니, 트라이앵글, 사이드 드럼, 탬버린, 심벌즈, 베이스 드럼, 공, 벨, 글로켄슈필, 첼레스타, 실로폰에 하프와 오르간이 가세해 거대한 음향을 선사한다.

[화성]을 들으면 가장 먼저 감지되는 것이 집요하게 반복되는 리듬이다. 음악에서 짧은 악구나 리듬이 반복되는 것을 보통 ‘오스티나토’라고 한다. [화성]에는 리듬의 오스티나토가 쓰였다.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을 연상시키는 이 집요하고 고집스러운 리듬은 타악기는 물론 현악기에서도 나타난다.

[화성]은 제시부, 발전부, 재현부의 전형적인 소나타 형식을 취하고 있다. 먼저 제시부에서는 오스티나토 리듬이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되는 가운데 혼이 제1주제를 연주한다. 그런 다음 조금 더 격렬한 느낌의 오스티나토 리듬을 타고 제2주제가 등장해 상승과 하강을 반복한다. 제2주제가 절정에 이르면 곧바로 발전부로 이어진다. 발전부에서는 행진곡풍의 리듬을 배경으로 테너 튜바가 제3주제를 연주한다. 이것이 확대, 변형되어 나타난 후 저음현에서 제2주제가 다시 등장한다. 이어 상승과 하강이 지루하게 반복되다가 금관악기의 상승과 동시에 모든 악기들이 오스티나토 리듬을 연주하면서 재현부가 시작된다. 재현부에서는 앞에서 나온 주제 선율들이 재현되다가 금관악기와 오르간이 큰 소리를 내면서 종결부로 이어진다. 금관과 오르간이 추락하듯 무너져 내리고, 곧 잠잠해지는 듯하더니 어느덧 현악과 목관이 상승하면서 반란을 일으킨다. 마지막으로 변형된 오스티나토 리듬이 팀파니와 금관악기로 연주되면서 곡이 끝난다.

[화성]의 악기 편성을 보면 목관악기에 저음역을 담당하는 ‘베이스’ 계열의 악기가 많은 것이 눈에 뜨인다. 플루트,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파트에 모두 저음역 악기가 들어가 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악기들도 주로 저음역에서 움직인다. 이런 무거운 소리들이 팀파니의 울림과 어우러져 곡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로마 검투장 모습

음악을 듣고 있으면 영화 속의 전쟁 장면이 생각난다. 리듬은 집요하게 반복되며 불과 화살, 칼이 난무하는 전쟁터의 급박함을 그린다. 시시때때로 나타나는 불협화음과 탐탐의 울림은 잔혹한 살육의 장면을 연상시킨다. 연주가 아니라 마치 악기들이 전쟁을 하는 것 같다. 그 사이사이 마치 영웅처럼 금관악기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마지막에 파국으로 치닫는다. 전쟁의 포화 속에 모두 무너져 내리고 불협화음으로 격렬하게 외치는 단말마의 비명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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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발행일 : 2014. 12. 02.

출처

제공처 정보

  • 진회숙 출판편집인, 음악평론가

    이화여대 음대 및 서울대 음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시립교향악단 월간지 SPO 편집위원이며, 서울시향 ‘콘서트 미리 공부하기’를 비롯한 여러 클래식 강좌의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평화방송 FM 음악공감 ‘진회숙의 일요 스페셜’의 진행자이다. 저서로 <모나리자. 모차르트를 만나다> 외 여러 권이 있다.

  • 사진 출처 네이버 영화,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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